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의 은사(20) 사도와 선지자 등의 직분의 은사는 누가 언제 주는가?(렘1:4~8)_2020-07-13(월)

https://youtu.be/MzLXqbR_U4M  [혹은   https://tv.naver.com/v/14748664 ]

 

 

1.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성령의 9가지 특별은사 외에도 어떤 직분의 은사를 언급했나요?

  사도바울은 성령의 9가지 특별은사(고전12:8~10) 이외에도 3가지 직분의 은사를 언급했습니다. 그것은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라는 은사입니다(고전12:28~29). 그런데 에베소서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에 주신 직분의 은사들에는 이외에도 더 있으니, "복음전하는 자"과 "목사(목자)"라는 은사가 더 있습니다(엡4:11).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어떤 직분의 은사를 받았을까요? 신약성경에 따르면 그는 "복음을 전파하는 자(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딤전2:7,딤후1:11) 그리고 "선지자"의 직분까지 받았던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니다(행13:1~2). 

 

2. 바울에게 있어서 "사도"라는 직분은 누가 준 것인가요?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된 것"이라고 언급으며(고전1:1) 또한 자신이 사도직을 맡게 된 것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갈1:1). 이것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영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기가 어떤 하나님의 직책을 맡고 싶어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으로 처음부터 창조해놓지 않았다면 그는 그러한 직책을 맡을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작정과 뜻을 따라 직분을 맡게 된다는 것입니다. 

 

3. 바울이 사도로서 선택받은 것은 언제인가요?

  그렇다면 바울이 사도로서 선택받은 것은 언제였을까요? 갈1:15에 의하면, 바울은 자신이 사도가 된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분]의 은혜를 나를 부르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보니까 좀 괜찮은 사람이라서, 어느날 "내가 그를 사도로 세우겠노라"고 해서 쓰신 것이 아니라는 뜻이며, 이는 바울이 어머니의 태에서 조성될 때부터 하나님께서 이미 그를 작정하시고 그의 영을 보내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특히 바울은 디모데후서 1:9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1:9)"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작정하신 것은 이미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도로 쓰고자 불러냈던 시기와 장소는 사도행전 9장에 나온 바대로, 그의 나이 약 30세쯤에 다메섹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구약의 예레미야 선지자는 언제 선지자로 세움을 받았나요?

  구약의 예레미야 선지자는 모태로부터 거룩히 구별되어 남유다왕국의 마지막 시기의 선지자로 세움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친이 그를 자궁에 잉태할 때에 그를 선지자로 쓰기로 작정하신 것이 아니라, 그가 아직 모태에서 사람으로 조성되기도 전에 이미 그를 선지자로 세우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보십시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1:5)" 사람은 비물질적인 영(spirit)의 영역과 물질적인 육체(flesh)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아직 태에서 바울의 육체가 빚어지기도 전에 그를 어떻게 쓰실 것인가를 작정하셨다는 것을 가르쳐주며, 그렇게 만드셔서 태중의 아기의 육체 속에 집어넣어주셨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의 육체는 부모로부터 절반씩 유전자식을 공급받아 생성되지만 사람의 영은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셔서 그 사람에게 넣어주신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5. 사람의 영도 나이를 먹고 성숙해가나요?

  네. 그렇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아담이후 부모의 유전자들의 조합으로 생성되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빚으셔서 창조하십니다. 하지만 사람의 영은 다릅니다. 사람의 영은 사람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하셔서 집어넣어줍니다. 그래서 사람의 영이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온 후에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이때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영의 나이도 다 어린아이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면서 신앙양육을 받으면서 청년(어른)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영의 영역에 있어서, 청년의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한 사람이 자신의 부모로부터 말씀과 기도를 통해 양육받으면서 제대로 성장하게 된다면, 영의 사람은 아담의 창조때의 나이(약 21~24세)로 쭈욱 성장하게 됩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어떤 사람의 그릇의 크기를 적게 잡아놓았다면 그가 그 이상 이상 커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2020년 07월 13일(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의 은사(18) 방언통역의 은사는 어떻게 받는가?(1)(고전14:13)_2020-07-10(금)

https://youtu.be/0aAHthmVu_0 [혹은 https://tv.naver.com/v/14710868  ]

 

 

1. 방언통역의 은사는 어떤 은사인가요?

  방언통역의 은사는 남이 하는 방언을 듣고서 그것을 알아듣고 말해주는 은사입니다. 그때 방언통역자는 상대방이 하는 방언이 무슨 뜻인지 즉시 알아지거나, 혹은 자국어(모국어)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자기도 모르게 자국어로 말이 해석되어 나오는 직독직해로서 말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방언통역을 하는 사람은 방언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전혀 몰라도, 또한 자기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뛰어넘은 말을 가지고, 통역을 한다는 것입니다. 고로 이 은사는 신비한 영적인 은사이자 초자연적인 은사임에 틀림없습니다.

 

2. 방언통역의 은사는 받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하나요?

  방언통역의 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본인은 기본적으로 방언을 할 줄 알아야 하고 많이 하는 자라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방언통역같은 신령한 은사를 받으려면 적어도 영안(靈眼)이 열려 있는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안(영의 눈)이 열리지 않아도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은사에는 방언의 은사, 말씀의 은사(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같은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들분별의 은사, 병고침(치유)의 은사, 능력행함의 은사, 예언의 은사 등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의 눈이 열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의 눈이 열려져야 환상을 볼 수 있고, 천사와 귀신을 보며,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가 되어야 방언통역도 가능합니다. 

 

3. 신령한 은사는 어떤 식으로 점차 확대되는 것인가요?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의 그 시작은 사실 "방언말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성도가 방언을 말하게 될 때에 비로소 영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방언기도를 지속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안이 열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기도를 많이 해야 영안이 열린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얼마만큼의 기도를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면, 적어도 하루에 4시간 혹은 많게는 10시간이상 기도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저마다 방언통역은사를 받기 위한 시간의 분량이 둘쑥날쑥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 자기의 기준을 따라서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기도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영안이 열린다거나 방언통역의 은사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방언으로 은사는 말의 은사로서 기도를 많이 하라고 주신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시간을 들여서 기도하다보면 사람들 중에 가끔씩 영안이 열려서, 예언을 말하기도 하고 방언통역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장 놀라운 사실은 영안이 잘 열리지 않아서 영의 세계를 볼 수 없는는 자는 방언 은사 이후에 주어질 수 있는 다른 신령한 은사들의 세계로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4. 영안이 열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렇다면 영안이 열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것은 한 마디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속사람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그에게 앞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었던 죄들을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방언은사를 받기 위하여 자기가 기도한 분량이 사실 하루에 얼마나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과안 자신이 진정 자신의 죄들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러므로 그 죄들을 회개하기 위하여, 어떤 사람은 2시간씩만 기도해도 될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10시간 이상씩 기도해야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죄를 얼마나 회개하여 보혈의 피로 용서받음으로 얼마나 자신을 깨끗한 그릇으로 만들었느냐가 관건입니다. 

 

5. 자신의 영혼이 깨끗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회개해야 하나요?

  그렇다면 자신의 영혼이 깨끗해져서 영안이 열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것은 죄를 철저하게 낱낱이 회개하는 일입니다. 특히 죄 중에서도 자신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와 자범죄의 죄를 철저하게 통렬하게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반드시 자신의 조상들이 지었던 죄들까지도 대신하여 회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는 하나님께서 자손 3~4대까지 다 갚으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출20:5). 어떤 사람은 예수믿기 전의 죄들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다 용서받는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죄를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고 있는 자라도, 자신이 예수믿기 전에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들과 악한 자범죄들을 회개하지 않는다면, 영안이 열리지 않습니다. 더이상 영적인 은사의 진보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더욱이 자기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몰라서 우상을 만들어 섬기거나 무당 점쟁이의 일을 했던 사람들이었다면, 그 죄까지 시인하면서 대신하여 철저하게 회개기도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상숭배의 죄는 하나님께서 3~4대까지 그 벌을 받게 하시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출20:5). 그러므로 자신이 방언통역의 은사를 받고 싶은데, 방언통역의 은사가 잘 나타나지 않는 분들은 삼각산에 올라가 나무뿌리를 적어도 2~3개 뽑아야 된다는 생각보다는(물론 기도를 많이 해야 은사가 임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내가 얼마나 지은 죄들을 충분히 회개했느냐를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지은 우상숭배의 죄와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를 철저히 그리고 통렬하게 회개하지 않은 자에게는 결코 신령한 은사들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0년 07월 10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의 은사(17) 방언통역의 은사란 무엇이며 통역해보면 그 내용은 무엇인가?(고전12:10)_2020-07-09(목)

https://youtu.be/dWmEFlOodmE [혹은 https://tv.naver.com/v/14691577   ]

 

 

1. 방언통역의 은사란 어떤 은사를 가리키는 것인가요? 

  "방언통역"의 은사란 방언을 통역하여 말하는 초자연적이며 신령한 은사를 가리킵니다. 이 은사는 성령의 9가지 특별은사들 중에서 말의 은사(방언, 방언통역, 예언)에 속하는데, 이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알아들을 수 있는 모국어로 통역하여 말해주는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방언(글로싸)"은 사람에게 발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발설하는 것으로서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이 오직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입니다(고전14:2). 그러므로 방언은 통역하지 아니하면 아무도 그것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방언은 다른 사람도 못 알아들을 뿐만 아니라 방언으로 말하는 당사자도 못 알아듣기에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고전14:13)"이라고 권면했습니다.

 

2. 방언통역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 방언통역을 하는 것인가요?

  방언을 통역하는 사람의 유형은 크게 3가지입니다. 첫째는 남이 하는 방언을 듣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 즉각적으로 말해내는 것입니다. 느낌으로 방언을 통역하는 것인데, 이것은 약간 잘못 통역할 가능성이 있는 유형입니다. 둘째는 방언으로 말하는 자의 음성이 자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모국어)로 들려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때 통역자는 들은 것을 그대로 말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통역은 조금 조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장로에게 "주의 종을 대적하지 말라"라는 방언통역이 나오더라도, 직설적으로 말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장로가 모든 성도들 앞에서 목회자를 대적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어 그가 무안을 당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직독직해의 방식도 있습니다. 상대방은 낮은 목소리로 계속해서 방언을 말할 때에, 통역자는 그것을 계속해서 통역해내는 방식입니다. 가장 윗단계의 통역방식입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합니까? 주님의 말씀이 더이상 주어지지 않고 그칠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습니다. 짧게는 30초에서 아주 길게는 10분 정도까지 주님이 말씀하시는데, 평균 2~3분 정도입니다. 

 

3. 방언을 통해해보면 그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방언이란 사실 내 영과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언은 "대화"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도 들어있습니다. 왜냐하면 방언은 내 영과 하나님과의 대화일 뿐만 아니라, 내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고전14:14). 이것을 굳이 퍼센트로 따지자면, 대화는 방언의 약 80~90%를 차지하고, 기도는 방언의 약 10~20%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방언통역을 해보면, 개인의 속사람(영)이 주님께 기도하는 내용이 약 10~20% 정도는 나오며, 주님께서 개인에게 주시는 말씀이 약 90~90%가 통역되어 나옵니다. 

 

4. 개인이 드리는 방언기도를 통역해보면 그 내용은 주로 어떤 것들인가요? 

  방언의 약 10~20%차지하는 개인의 기도는 그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2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감사기도입니다. 대부분의 영은 가장 먼저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둘째, 소원기도를 올립니다. 자신의 소원을 아뢰는 것인데, 이것도은 자기를 위한 소원기도와 남을 위한 소원기도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보통 자기자신을 위한 소원기도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부여하신 책임과 사명을 잘 완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남을 위한 기도가 나오는데, 그것을 살펴보면, 첫째는 어린 자녀의 경우 가족을 구원해달라는 기도가 참 많습니다. 특히 예수믿지 않는 어머니, 아버지, 형제 자매를 구원해 달라는 기도가 나옵니다. 둘째로 사람의 영은 교회와 목회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목회자와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는 나라와 민족 그리고 세계선교를 위해 내자신의영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방언기도에는 하나도 이기적인 기도나 헛된 기도가 들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항상 자신의 영혼과 남의 영혼을 위한 기도만 나오기 때문입니다. 

 

5. 방언 중 주님께서 우리 개인에게 주시는 말씀은 주로 어떤 것들인가요?

  놀랍게도 방언은 기도가 주가 아니며, 사실 주님께서 각자의 영혼에게 주시는 말씀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후자가 80~9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방언기도 중에서 주님께서 개인에게 주시는 말씀만을 떼어놓고 본다면, 그것은 예언과도 거의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차이가 나는 것은 예언은 예언을 말씀하시는 분이 성령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부이지지만, 방언통역은 오직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방언통역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면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방언통역을 통하여 주님께서 내 영에게 하시는 말씀의 형태가 그것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방언 속에서 개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주로 3가지인 형태입니다. 첫째는 개인을 인정해주고 칭한하며 위로하는 말씀이 먼저 나옵니다. 주로 "내가 너의 어떠어떠한 것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우리가 얼마나 수고하고 있는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얼마나 영혼을 사랑하는지를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어, "내가 너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했느니라." "너는 내가 말씀의 종으로 세운 특별한 종이니라" 등등의 위로의 말씀이 나옵니다. 둘째는 책망하고 충고하고 경고하고 권면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서, 이미 결혼한 여성분들에게는 "네 남편을 이기려고 하지 말라"고 하고, 일반 평신도에게는 "주의 종을 비난하지 말라. 그를 위해 기도하라." "주의 종을 내쫓는데 가담하지 말라. 그러면 어찌 너에게 죄가 없다고 하겠느냐?"는 말이 나옵니다. 또한 "예수님을 제일로 섬기라", "세상의 미련을 왜 버리지 못하느냐?", "의심하지 말라"는 말씀도 나오고, 가장 많이 나오는 말씀 중에는 "네게는 지금 회개할 것이 있느니라"는 책망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바램이나 사명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너는 주의 종이 되거라. 부흥사의 사명을 가지고 있느니라. 기도원을 하라. 선교사로 헌신하라. 미국 가서 목회하라" 등등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방언통역으로 나오는 우리 주님의 말씀에는 결코 당면한 문제의 해결의 열쇠로서 던져주는 말씀은 들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당면한 문제는 우리가 결단하고 결정하며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가 잘못된 결정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에는 주께서 그 부분에 관하여 책망을 하시기는 합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0년 07월 09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의 은사(16) 예언은 어떻게 말하게 되며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가?(행9:10~19)_2020-07-08(수)

https://youtu.be/morhgMviWlY [혹은 https://tv.naver.com/v/14687764  ]

 

 

1. 예언의 은사란 어떤 은사인가요?

  예언의 은사는 신령한 영적인 은사이며, 초자연적인 특별은사의 하나인데, 은사들 가운데서도 "말(언어)"의 은사(방언, 방언통역)에 속하는 은사입니다. 이 은사는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미리 받아서 말해내는 은사입니다. 예언을 대상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대개 국가와 민족을 위한 예언이 많고, 개인을 위한 예언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또한 내용에 따라 살펴보면,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 많지만 장차 오실 메시야에 관한 예언도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언의 은사는 이미 메시야가 오셨고 성경의 기록이 완성되었으니, 사라지고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예언의 은사는 우리가 주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보는 날까지는 있을 은사입니다(고전13:8~10).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하실 말씀이 더 있기 때문입니다. 

 

2. 예언은 어떻게 말하게 되는 것인가요?

  예언이 나오는 형태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4가지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첫째, 마음 속에 떠오르는 성령의 영감을 깨닫고서 즉시 그것을 말해내는 것입니다. 둘째, 어떤 것은 환상의 한 장면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예언은사자들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말하고 있으며, 순간순간마다 환상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경우입니다(물론 그것을 검증해보아야겠지만 말이죠). 성경에 보면, 아가보선지자도 사도바울더러 장차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환상으로 미리보고서 바울에게 예언해 주었던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행21:11). 셋째, 그러나 어떤 분들은 글자와 문장으로 보고 말하기도 합니다. 마치 다니엘 5장에서 바벨론의 벨사살왕이 석회벽에 글자를 본 것처럼 선명하게 말이죠(단5:25). 넷째, 마지막으로 직접 주님의 음성을 듣고서는 들은대로 말하는 예언도 있습니다. 이때는 주님의 입에서 글자가 나오는 것이 보이기도 하며, 마음 속에 그것이 동시에 새겨짐으로 그것을 말해내기도 합니다. 아마 네번째 정도의 예언이라면 그는 아마도 세계적인 사역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행9:10~19)의 말씀에 보면, 다메섹도성에 사는 아나니아와 그리고 사도바울의 경우는 네번째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는 그때 사울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미리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해야 할 말을 주님으로부터 미리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서 말해주었습니다. 그는 사도바울의 현재의 모습을 보았고 그리고 장차 그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달한 것입니다. 사울(바울)도 아나니아가 자기에게 와서 안수하는 것을 먼저 보았습니다. 그리고 안수 후에는 사울의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벗겨졌는데, 이때 그의 영안이 열져진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에 가면, 바울도 주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그에게 할 일을 지시하고 음성을 직접 들었던 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행23:11).

 

3. 예언이 음성으로 들려질 때에 그 음성은 누구의 음성인가요?

  예언이 음성으로 들려지는 경우는 그것의 대부분은 성령의 내적인 음성입니다. 귀에 들리는 음성은 아니지만 마음에 분명하게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본인이 듣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예수님의 음성이 직접 들리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우는 흔하지는 않습니다. 인류 역사 가운데 몇 번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더 희귀한 경우는 성부의 음성이 직접 들리는 경우입니다. 그때에는 성부께서는 우리의 이름을 부르거나, 아니면 단 마디 짧은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참고로, 방언통역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는데. 이때에 말씀하시는 이는 성령님도 아니며, 성부도 아니며,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나중에 방언통역의 은사 때에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4. 예언하는 자들이나 예언을 받는 자들이 조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예언하는 자들이나 예언을 받는 자들이 조심해야 할 것은 잘못된 예언을 하고 또한 예언을 받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예언은 그냥 무조건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반드시 분별을 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고전14:29~30). 어떤 예언이 참된 예언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사실 기다려서 그 예언이 성취되는가를 살펴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언자가 말하는 모든 내용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 예언이었다고 한다면, 그 예언자는 정말 신뢰할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상당히 영성이 뛰어난 예언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언은 모두가 다 성령의 은사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여러 명의 예언자가 말한다고 할지라도 다 대동소이한 것이지, 이 사람은 어떻게 예언했는데, 저 사람은 저렇게 예언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런 예언이 있다고 한다면 예언자 중이 하나는 잘못된 예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5. 왜 잘못된 예언이 나오게 되는 것인가요?

  예언이 나오는데도 잘못된 예언이 나오는 것은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어찌 되었든 예언은 사람의 사고작용을 통과하고 또한 입으로 발설되는 것이기에, 예언자의 영적인 상태에 따라 예언의 깊이는 다를 수 있고 무게가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예언자가 회개를 많이 하지 않아서 죄의 찌거기가 있다면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예언은 거짓이 섞여 나올 확률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보았던 환상을 해석할 때에도 그 해석이 잘못될 확률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자는 철저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우선적으로 자기와 자기의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범죄의 죄까지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언 중간중간에 자신의 생각이 들어갈 수도 있고, 성령 대신에 귀신이 보여준 것을 성령이 보여준 것으로 잘못 알고 예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반드시 검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의 예언이 필요합니다. 만약 예언자인데도 자신의 영성의 분량이 적을 때에는 더 깊은 자에게서 제제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목회자의 지도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무당이 되거나 예수점쟁으로 전락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가 거짓선지자기 됩니다. 그런 자는 마지막 날에 주께서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부인하실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마7:22).

 

2020년 07월 08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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