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임파테이션(7)] 회개의 임파테이션, 왜 필요한가?(마26:69~75)_2023-06-30(금)

https://youtu.be/6PtT13BvWSA [또는 https://tv.naver.com/v/38327558]

1. 말씀의 임파테이션과 회개의 임파테이션은 누구에게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가?

  성경에서 은사의 임파테이션은 몇 가지 사례가 있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함으로 은사의 전이가 나타났는가 하면,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겉옷을 건네줌으로 은사의 전이가 나타났다. 그리고 바울이 디모데에게 안수할 때에 은사의 전이가 나타났다. 그러나 은사의 임파테이션의 실제는 후임자가 전임자의 사역을 이어받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전임자에게 주셨던 은사를 후임자에게 주신 경우를 가리킨다. 고로 은사는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전12:11). 그렇다면, 말씀과 회개이 임파테이션에 있어서는 어떠한가? 우리는 하나님이자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의 임파테이션을 통해서 말씀과 회개의 임파테이션을 받았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베드로에게 나타난 임파테이션은 다음 사람들에게도 전달되고 있다는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사실 베드로는 말씀의 능력에 있어서 엄청난 임파테이션을 받았다. 이는 그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회개의 측면에서도 엄청난 임파테이션을 받았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회개는 회개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회개의 하나에 속하기 때문이다. 

 

2. 베드로는 무슨 죄를 지었으며 어떤 회개를 하였는가?

  베드로에게는 일종의 거룩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것은 새벽닭이 울 때마다 가슴으로부터 나오는 회개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왜 그러한가? 왜냐하면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12제자들을 대표하는 사람이었고, 주님으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무려 세 번씩이나 부인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처음에는 그냥 부인했지만 두 번째는 맹세하고 부인했으며, 세 번째는 아주 저주하고 맹세하여 부인했던 것이다(마26:69~75).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그런데 일전에 주님께서 곧 있으면 모두 주님을 버리고 떠나갈 것이라고 알려 주었을 때에, 베드로는 "내가 주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26:35)"라고 다짐하면서 맹세를 했건만, 주님을 모른다고 무려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3. 왜 베드로는 아주 진하게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을까?

  사실 베드로는 엄청난 말씀의 능력의 임파테이션을 받은 자이지만, 동시에 그는 회개의 임파테이션을 받은 자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12제자들 중에 베드로만큼 회개를 진하게 하하면서 일평생을 산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장차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베드로의 집을 방문해 보면 알겠지만, 베드로의 집의 1층 벽에는 그의 일생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거기에 그려진 그림들 가운데 하나는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가장 주님을 사랑했던 고백했던 베드로가 그만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매일 새벽은 항상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는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새벽녘이 되면 어김없이 닭이 울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는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며 울었던 것이다. 

 

4. 회개는 왜 베드로에게서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는가?

  왜 회개는 베드로에게서 시작되었으며, 그 출발이 예루살렘이었던 것일까? 우리는 성경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이 전부다 의미없는 구절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신약시대의 모든 말씀과 사건은 구약시대에 예언된 말씀에 대한 성취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베드로의 회개의 통곡소리'를 심히 마음에 새기고 새겨야 한다.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날 것이라고 예언한 한 선지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바로 B.C.520~518년경 예루살렘에서 활동했던 스가랴라는 선지자다. 그는 장차 있게 될 다윗의 집과 이스라엘의 '회개의 통곡소리'를 이렇게 미리 예언하였다. 그것도 통곡의 회개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슥12:10~13:2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1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3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4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13: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귀신을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

  이 예언은 예수께서 탄생하기 약 500년 전에 스가랴 선지자가 한 말이다. 그는 장차 주님을 죽인 자들이 회개하는 통곡소리가 예루살렘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리하여 이러한 회개는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회개의 첫 시작은 120명 성도들이 예루살렘의 마가락방에서 한 회개였고, 본격적으로는 오순절 날, 베드로의 성령강림 설교를 들었던 유대인들이 본격적으로 회개를 시작한 것이다. 그날 그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을 죽인 장본인이라는 것을 깨달앗따. 그러자 그들 모두는 각자 목놓아 울면서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구했다. 그래서 최초로 탄생한 예루살렘 교회는무려  3,000명이나 되었다. 이는 베드로에게 주어진 말씀의 능력의 은사 때문이기도 하다. 

 

5. 왜 회개의 임파테이션이 필요한가?

  임파테이션이 3가지 종류(성령의 은사의 전이, 말씀의 전이, 회개의 전이)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고르라면 우리는 어떤 임파테이션을 골라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단연코 회개의 임파테이션일 것이다. 회개없는 은사의 사용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물질의 노예가 되게 만들어 결국에는 주님을 떠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사도와 빈야드 운동가들은 오늘날에도 역시 성경에 나오는 오중직이 살아 있다고 주장하면서 예언과 방언, 방언통역과 신유 등을 행하고 있지만 실은 상당 부분이 귀신이 하는 것을 성령이 하시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왜 성령의 사람이 그렇게 변질되어 버린 것일까? 그것은 신사도 빈야드 운동에서는 집회를 할 때 회개를 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회개없는 은사 전이, 회개없는 능력 전이는 결국 자신으로 하여금 성령 훼방죄를 짓게 만들며, 그것은 결국 주님으로부터 자신이 버림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 자신에게 은사의 전이가 일어나지 않았다거나, 말씀의 능력에 대한 전이가 역시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굳이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들이 회개를 하며 회개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이것을 실천하고 있다면, 우리들은 최소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계22:13~14). 왜냐하면 회개는 첫째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게 해 주어 천국(새 예루살렘 성)에 입성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둘째로, 자신의 삶 가운데서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저주를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저주의 실체는 귀신들 곧 악한 영들이다. 그래서 우리가 한 번 죄를 짓게 되면(요일3:8, 창3:14), 그놈들은 순식간에 우리 몸속 안으로 치고 들어오게 된다(마12:43~45). 왜냐하면 사람의 몸은 귀신의 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회개에 힘써야 한다. 특히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들에 대해 계속해서 더 많이 자백하면서 회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조상이 지은 죄들이 우리 자신이 지은 죄들에 비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3~4대가 망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2023년 06월 30일(금)

정보배 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임파테이션(6)] 말씀의 임파테이션 과연 어떻게 이뤄지는가?(행2:36~41)_2023-06-29(목)

https://youtu.be/zW4SMfY8t3w [또는 https://tv.naver.com/v/38327535]

1. 임파테이션(전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사람에게 영적인 어떤 것이 전이되는 것에는 3가지가 있다. 하나는 은사의 전이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들이 전이되는 것이다. 둘째는 말씀의 전이다. 말씀이 전이되는 것이다. 셋째는 회개의 전이다. 회개도 전이가 된다. 여기서 '임파테이션(전이)'라는 말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임자의 성령의 어떤 것이 후임자에게 전수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하나님께서 후임자가 전임자의 사역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후임자에게도 부어 주시는 성령의 어떤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은사가 될 수도 있고, 말씀도 될 수 있으며, 회개도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임파테이션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임자와 후임자 모두에게 성령의 어떤 것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2. 말씀의 임파테이션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말씀의 임파테이션이라는 말은 전임자에게 있었던 말씀의 능력이 후임자에게도 고스란히 주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가장 말씀의 임파테이션을 많이 받은 자는 누굴까? 그는 바로 베드로 사도다. 왜냐하면 베드로 사도는 지상에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계셨던 예수님에게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3년 이상을 예수님에게서 직접 말씀을 들었고, 말씀이 얼마나 능력있는지를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말씀의 능력을 고스란히 받았다. 그러므로 오순절 이후 베드로가 사도로 쓰임받게 되자, 베드로가 받았던 말씀의 임파테이션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베드로에게서도 말씀의 능력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크게 그리고 많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3. 베드로가 받았던 말씀의 임파테이션은 어떤 것인가?

  베드로는 3년 6개월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말씀을 들었다. 그랬더니 예수께서는 크게 2가지로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는 복음의 말씀을 전파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하신 것이다. 또 하나는 직접 어떤 대상에게 명령을 내려 자신이 하신 말씀이 실현되게 하는 일을 하신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의 경우를 보면, 예수께서는 3가지 모습으로 그분의 말씀이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첫째로,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병든 자를 고쳐 주셨으며 죽은 자를 살려주신 것이다. 예를 들어, 나병환자에게는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다(마8:3). 그러자 그대로 되었다. 그리고 말씀으로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셨다. 예를 들어, 백부장의 딸이 죽었을 때에는 그녀에게 가서 "달리다굼"(내가 네가 명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했더니, 정말 죽었던 소녀가 벌떡 일어났다(막5:41). 그리고 무덤 속에 묻힌지 4일된 나사로에게도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명령했을 때에, 나사로가 몸을 세마포로 동인 채 동굴 무덤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요11:53). 둘째로,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다(마8:16). 예수께서는 무덤 사이에 거주하는 귀신들린 사람에게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막5:8)"고 꾸짖으니 2,000마리나 되는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셋째로,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자연만물까지 다스리셨다. 예를 들어, 바람과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막4:39)"고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막11:14)'고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왜 그러한가? 예수님에게는 말씀의 임파테이션이 아주 크고 매우 강했기 때문이다. 이는 성령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다. 

 

4. 누가 말씀의 임파테이션을 받을 수 있는가?

  성경을 통틀어 말씀의 임파테이션을 받은 자를 살펴보면, 누가 임파테이션을 받게 되는지를 알 수가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그를 만세 전에 말씀 사역자로 사용하시려고 이 땅에 보내신 자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어떤 이를 말씀 사역자로 부르지 않는다면, 그는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살다가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자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말씀 사역자로 부르시기도 한다. 그러면 누가 과연 말씀 사역자가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가? 그건 누구나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 사역자로 세우실 사람만이 말씀의 전이를 받고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구약으로 치자면, 모세나 선지자가 바로 말씀 사역자라 할 수 있고, 신약으로 치자면, 베드로나 바울과 같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확히는 인간으로 사셨던 전임자인 예수님과 함께 3년 이상을 따라다니면서 말씀을 들었던 베드로만이 오리지널 말씀의 임파테이션을 받게 된 자라고 말할 수 있다. 

 

5. 누군가가 말씀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어떤 징조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인가?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그에게서 우리는 어떤 것을 발견할 수 있는가? 최소한 우리는 다음과 같은 4가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가 깨달아진다는 것이다(마13:7,11). 왜냐하면 말씀을 들었지만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마귀가 그 말씀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에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자는 말씀에 갈급함을 느끼게 된다. 영적인 말씀이 아니면 만족을 느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다는 것을 온전히 믿어서 말씀을 선포하게 되면 그 말씀이 그대로 이뤄질 것을 믿고서 실행으로 옮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자, 사람과 귀신들과 자연만물이 다 복종했기 때문이다. 셋째, 말씀을 전파할 때에도 담대하게 목숨을 걸고 전파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자가 밖으로 나가서 복음과 천국을 전파하면 듣는 자가 생겨나는 것이다. 특히 천국에서 그들의 상급은 어마어마하게 커지는 것이다. 넷째, 말씀 사역자의 훌륭한 가르침을 다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해 아래 새 것은 없는 것이다. 베드로가 전한 말씀이 어디에서 왔겠는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서 3년간 말씀을 들려주셨던 예수님에게서 고스란히 보고 배운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승천하시자 하나님께서는 천국복음을 전파하게 하시고, 병든 자를 치유하고 귀신을 내어쫓고 자연만물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베드로를 선택하신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3년 이상을 예수님에게서 직접 배웠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말씀의 권세와 능력은 탁월했다. 그러니 설교 한 번으로 3,000명과 5,000명을 회개시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행2:41, 5:4). 심지어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자, 그들은 안수를 받지 않았어도 성령세례를 받아 방언을 말하게 되고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행10:46).

 

 

2023년 06월 29일(목)

정보배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임파테이션(5)] 엘리사에게 임파테이션이 더 강해진 이유는 무엇인가?(왕하2:6~11)_2023-06-28(수)

https://youtu.be/Utbsu1RMocw [또는 https://tv.naver.com/v/38327499]

1.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청출어람이 가능할까?

  고사성어에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이 있다. 靑 푸를 청, 出 날 출, 於 어조사 어, 藍 쪽 람인데,  쪽에서 우러난 물감이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를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면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임파테이션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스승보다 더 훌륭한 제자가 배출된 적이 있을까? 그러한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단 한 건의 사례가 성경에 나온다. 그것은 바로 스승 엘리야와 제자 엘리사의 경우다. 실제로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을 서로 비교해 보면, 엘리사가 엘리야보다 2배 이상 더 많아졌고 더 강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엘리사가 더 많이 더 큰 일을 행한 것이다. 

 

2.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을 비교해 보면 어떠한가?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통해 엘리야와 엘리사가 어떤 일을 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엘리사의 사역이 엘리야보다 훨씬 더 앞선다.

  첫째, 사역기간을 보면, 엘리야는 얼마라고는 나오지 않았지만 비교적 짧았던 기간을 사역했으나, 엘리사는 약 50년간 어마어마한 긴 시간을 사역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엘리야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의 7대 왕이었던 아합왕과 8대 왕이었던 아하시야 때까지 2명의 왕들의 시대에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엘리사는 아합왕 때에 부름을 받았으며, 아하시야 다음 왕인 제9대 여호람과 제10대 예후, 제11대 여호아하스 때까지 약 50년간(B.C.848~979)까지 쓰임을 받았던 인물이다.
  둘째, 기적들을 비교해 보면, 역시 2배 이상 3배 정도로 차이가 난다. 엘리야는 요단강물을 갈랐으며, 사르밧 과부의 가루통과 기름병에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하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고 살았다. 그리고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그 여인의 아들을 살려준다. 하지만 엘리사는 사역의 직무가 훨씬 확대된다. 예를 들어, 엘리사도 엘리야와 마찬가지로 요단강물을 가른 적이 있다. 그리고 물과 국을 해독시켰으며, 물에 가라앉은 쇠도끼가 물 위로 떠오르게도 했다. 그리고 선지생도의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었으니, 북이스라엘 기근이 쉬지 않고 오겠지만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암시하셨다. 그리고 떡 20개로 10명을 먹였으며,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자 역시 엘리야의 경우처럼 그를 살려낸다.

  셋째, 예언을 비교해 보아도 엘리사가 더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엘리야는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더니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다가, 다시 비가 올 것이라고 했다고 비가 왔다. 그리고 악한 왕과 왕비였던 아합과 이세벨의 심판에 관해 예언했는데 그대로 성취가 되었다. 그리고 아합의 대를 이은 아하시야왕의 죽음을 예언했는데, 또한 그대로 되었다. 그런데 예언사역의 경우 거의 대동소이하지만 엘리사의 예언이 더 많다. 엘리사는 가뭄 가운데 비가 올 것을 예언했으며(왕하3:16~17), 아들이 없는 수넴 여인으로 하여금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고(왕하4:16),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성을 포위하여 굶주림이 찾아올 때에도 곧 있으면 정상적인 곡물거래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는데 그대로 되었다(왕하7:1). 그리고 7년간 기근이 찾아올 것이라고 했는데 역시 그렇게 되었다(왕하8:1). 그러므로 예언사역에 있어서도 엘리사가 엘리야보다 약간 앞선다. 넷째, 능력면에서 보면, 엘리야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을 다루었다고 한다면, 엘리사 선지자는 불과 말을 사용하는 천사를 부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섯째, 영적 권세의 측면에서 보면, 엘리야는 그런 적이 없었지만 엘리사는 사람의 영안을 열고 닫았으며, 아람 군대의 육신의 눈도 닫고 열어 주었다. 여섯째, 마지막으로 치유의 측면에서 보면, 엘리야는 죽은 자는 살렸지만 치유받은 사람 이야기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엘리사는 아람 나라의 군대장관이었던 나아만 장군의 병을 치료해 주었다. 치유의 기름부음도 강했던 것이다. 이상의 사실들을 보면, 엘리야에 비해 엘리사가 뒤지는 측면은 거의 없고, 상당 부분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엘리사가 엘리야보다 더 많은 은사를 더 강하게 받아서 사역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신학자들을 말한다. 엘리사가 엘리야보다 더 많은 은사와 능력을 소유할 수 있고 그것을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자신의 은사를 전이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은 아니다. 왜냐하면 은사는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일개인이 줄 수도 있으며, 빼앗을 수도 있다는 말은 거의가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엘리사가 자기의 스승보다 더 많은 은사를 더 강하게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특별한 존재로 사용하실 것을 만세 전에 계획하셨다가 이 땅에 태어나게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도 엘리야에게 지시하시기를 "그는 내가 지명하여 엘리야를 대신하여 직무를 수행할 자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인류구원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찌감치 구별하여 자신의 모친의 자궁 안에 집어넣어 주신 특별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엘리야보다 더 크게 쓰임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구별하셔서 이 땅에 어떤 직무 감당을 위해 보낸 특별한 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4. 엘리사가 엘리야보다 더 많은 은사를 더 강하게 받아서 사역할 수 있었던 부차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 엘리사가 엘리야보다 더 크고 더 강한 은사를 받아서 더 많이 사용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를 그렇게 쓰려고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예정된 대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엘리야로부터 부름받은 그 이후가 어떠했는지를 보아야 한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4가지 측면에서 엘리사는 특별했기에 그는 엘리야 사후 더 강하고 큰 사역자로 쓰임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첫째, 영적인 일에 매우 큰 열심을 내었다는 것이다(왕하2:9). 엘리사는 자신의 스승이 승천하려 하자 끝까지 매달리면서 결국 엘리야의 겉옷이자 능력의 상징인 의복을 선물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엘리사는 자신의 스승에게 역사하는 성령의 능력을 2배 이상 받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둘째, 엘리사는 늘 겸손했다는 것이다. 그가 아직 자신의 독자적인 임무를 수행하기 전이었다. 그때 그는 엘리야의 종처럼 일했다. 엘리야가 손을 씻으면 물을 갖다 부어드렸기 때문이다(왕하2:11). 그리고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때가 오기까지 떠벌리지도 않고, 생색내지도 않았다. 

  셋째, 그는 주님이 부르실 때에 즉각적으로 반응을 보였고 곧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이다(왕하19:20). 그는 엘리야가 자신을 불러내실 때에 지체없이 즉각적으로 순종했던 것이다. 이전까지는 정말 자신이 잘 알고 있었고 수월하게 행하고 있는 농사일을 그만두는 것은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이 좋아하던 것, 자신이 익숙하던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따라간다. 

  넷째, 엘리사는 부모를 공경할 줄 아는 자였고, 정결한 삶을 살았던 자로 기억된다. 왜냐하면 그가 엘리야로부터 처음에 부름을 받았을 때, 공인으로 살아가기 전에 먼저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할 도리를 잘 실천했던 것이다.

 

5. 임파테이션을 받았는데 전임자보다 후임자가 더 강해진 사례가 들려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이 역시 사람을 쓰시는 주권은 토기장이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새롭게 깨닫게 해 준다. 어찌 엘리사가 엘리야보다 더 큰 능력과 권세를 잡을 수 있었을까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땀과 눈물 없이 하나님이 원래 주셨던 직분과 직무를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하심을 찾아내야 한다. 즉 나에 대한 부르심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어 확인한 후에는 그러한 삶을 직접 자신이 살아내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더러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서 살라고 하실 것이다. 

 

2023년 06월 28일(수)

정보배 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임파테이션(4)] 은사의 전이는 무엇과 연관되어 있을 때에 일어나는가?(왕상18:36~40)_2023-06-27(화)

https://youtu.be/GfkWXWOyW-A [또는 https://tv.naver.com/v/38327482]

1. '임파테이션'에 대한 용어는 어떻게 알려지게 되었는가?

  '임파테이션(전이)'이라는 용어는 처음 어디에서 사용했을까? 역사적 자료를 살펴보면, '임파테이션'이라는 말은 신사도 빈야드 운동하는 분들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된 것이다. 즉 신사도 빈야드 운동을 하는 분들이 기도나 안수를 통하여 성령과 은사 그리고 능력을 전이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부터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용어가 성령과 은사운동을 하는 분들도 사용함으로써 점차로 퍼지게 된 것이다. 특히 신사도 빈야드 운동하는 분들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기도하거나 안수하면 성령의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전이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사람이 쓰러지고, 거룩한 웃음을 웃으며, 사람의 질병이 치료된다고 주장한다. 

 

2.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진정한 임파테이션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신사도 빈야드 운동을 하시는 분들의 말을 들어 보면, 그들은 자기들의 안수나 혹은 기도를 통해 상대방에게서 성령의 능력이나 은사가 나타나게 하는 것을 가리켜 '임파테이션'이라고 부른다. 고로 이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안수하는 자가 안수받는 자에게 성령이나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전이해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실제는 성령이나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전이해주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게 해 줄 뿐이다. 그러므로 신사도 빈야드 운동하는 분들의 사역은 자신에게 있는 성령 혹은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상대방으로 하여금 경험하게 해 주는 것이지 그것을 전수하여 다른 사람도 그 은사를 받게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령 혹은 성령의 은사와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지 사람이 결코 다른 사람에게 건네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고전12:11). 그러므로 성경적인 '임파테이션'이란 어떠한 사람에게 나타났던 은사가 다른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혹은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는 하나님께서 동일하거나 혹은 비릇한 은사를 다른 사람에게도 주시는 것이지 사람이 사람에게 은사를 넘겨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보다 더 명확하게 성경적인 임파테이션을 정의하라고 하면, 전임사역자의 은사가 후임사역자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3. 은사 전이(임파테이션)의 대한 사례가 과연 성경에 있을까?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임파테이션 현상이 기록되어 있을까? 그렇다. 성경에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이 3가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함으로 모세에게 있었던 은사가 여호수아에게서도 나타난 경우다(신34:9). 왜냐하면 이때에 전임자인 모세의 은사가 후임자인 여호수아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모세에게는 60만 대군을 이끄는 '지도력의 은사'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여호수아에게도 그러한 은사가 있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의 말에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종했다. 또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것처럼, 여호수아도 똑같이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살았다. 또한 모세가 기적을 일으킴과 같이 여호수아 또한 기적을 일으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었다(신34:10~12). 둘째는 엘리야가 자신의 겉옷을 엘리사에게 줌으로 엘리야에게 있었던 은사가 엘리사에게서도 나타난 경우다(왕하2:8~9,13~15). 그리하여 후임자인 엘리사는 전임자가 했던 은사를 받아 거의 동일한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때 엘리야와 엘리사의 직무라는 것은 바알과 아세라 신앙이 판을 치던 북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었고, 백성들을 위로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보자. 엘리야는 하나님만이 참 신이고 자신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 수 있도록, 기적의 은사를 사용했다. 마찬가지로 엘리사도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자신은 그분의 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기적의 은사를 사용했다. 셋째는 사도 바울이 안수함으로 목회의 직무를 디모데에게 넘겨줌으로 디모데에게서도 목회적인 은사가 나타난 경우가 있다. 이때 사도 바울은 안수를 통해서 자신이 받았던 가르침의 은사를 디모데에게서도 불일듯 일어나게 하였다(딤전4:13~14, 딤후2:1, 딤전2:7, 딤후1:11). 

 

4. 은사의 전이는 무엇과 연관되어 있을 때에 일어나는가?

  그래서 성경에 나타나 있는 3가지 경우를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은사의 전이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은사의 전이는 전임사역자와 후임사역자가 똑같은 직무를 반복해서 수행해야 할 때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둘째, 전임사역자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있었으나 이제 그 직무를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후임사역자가 그 직무를 계속해서 받아서 수행할 때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세가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는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데려가시고 모세의 뒤를 이어 그 직무를 감당할 자를 선정하신다. 그런데 바로 여호수아였기 때문에 여호수아게도 모세와 같은 은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엘리야가 갈멜산 대결 이후 이세벨 왕비가 자신을 죽이려고 할 때에, 도망다니면서 자신을 죽여달라고 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후임자로서 엘리사를 세우셨기 때문에, 엘리야의 은사가 엘리사에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셋째, 전임사역자와 함께 공동사역을 하면서 전임사역자의 사역을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그것을 배우던 자일 때에 은사의 전이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후임사역자는 굳이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아도 자신이 전임사역자를 통해 보아 왔던 그 일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사의 전이가 그러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5. 임파테이션에 대한 올바른 정의는 어떠한 것인가?

  임파테이션은 신사도 빈야드 운동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성령의 은사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다. 또한 임파테이션은 사람이 자신이 받았던 성령 혹은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임의적으로 나눠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전임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셨던 은사를 후임자가 받을 수 있도록 중간에서 도구로서 사용되는 것에 불과하다. 특별히 임파테이션은 주로 후임자의 직무와 관련지어서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전임자가 받았던 은사가 후임자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사를 받은 자가 사역자로 쓰임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것은 은사 체험에 불과한 것이지, 그것을 가리켜 임파테이션이라고 할 수 없다. 결국 임파테이션이란 후임자에게 필요한 은사를 하나님께서 전임자와 같이 주시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때에 전임자에게 주어졌던 것과 같은 종류의 은사가 후임자에게도 부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후임자가 어느 날 갑자기 전임자의 은사를 받게 되는 것도 아니다. 전임자의 사역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고 난 후에 후임자에게도 은사가 주어진다. 그러므로 후임자 자신에게서 전임자의 은사가 나타날 때까지 후임자는 전임자와 함께 생활을 하면서 사역을 배우는 것이다. 도제 제도처럼 말이다. 이때 후임자는 전임자가 어떤 직무를 수행해 왔는지를 충분히 익혀야 한다. 그러고 나서 전임사역자의 사역이 중단되었을 때에 후임사역자가 전임자가 받았던 은사들을 받아서 전임자와 동일한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2023년 06월 27일(화)

정보배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