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의 은사(28) 은사의 상실과 양신역사와 오용에 관하여(행8:14~24)_2020-07-22(수)

https://youtu.be/tf32ADOo0KA  [혹은  https://tv.naver.com/v/14917671  ] 

 

 

1. 받은 성령의 은사도 상실할 수 있나요?

  받은 성령의 은사라도 얼마든지 상실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가 합당하게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성령의 은사를 거두어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은사자가 게을러서 받은 은사를 몸된 교회를 위해 사용하지 않거나, 은사자가 현저히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때에는 은사를 거둬가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은사자는 언제나 겸손해야 하며 받은 은사에 충성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은사자에게 은사를 주셨는데 그것을 잘못 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요?

  하나님께서는 은사를 주시는 것은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이 땅에 보내신 목적에 맞게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사자는 받은 은사를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목적에 따라 잘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교회건축과 사명감당을 위해 주신 은사를 무당이나 점쟁이처럼 사용해서는 아니 됩니다. 예를 들어, 받은 예언의 은사를 사용하여 부동산을 매매하는 것을 물어보고, 증권에 투자하는 데에 물어보거나, 합격여부를 물어보고 답하는 데에 사용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성령께서 가르쳐주시지도 아니하실  뿐만 아니라 설령 그러한 것을 보여주신다고 할지라도 절대 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금기인 셈이죠.

 

3. 양신역사란 무엇이며, 어떤 경우에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가요?

  양신역사는 두 개의 신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성령께서 역사하는데 동시에 귀신도 함께 역사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예언의 은사가 강한데 사실은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예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기에게 와 있는 귀신의 힘을 빌어서 예언하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보통 양신역사가 일어나는 데에는 그가 이전부터 조상때부터 무당의 영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날 자신이 예수님을 믿기는 믿었지만 과거의 우상숭배한 죄를 회개하여 무당의 영을 제거했어야 하는데, 무당의 영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령의 은사가 오면 무당의 영 곧 악한 영을 성령의 역사로 알고서 예언도 하고, 치유도 하고, 환상을 보는 용도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 중에는 권사도 있고 목사도 있으며 기도원 원장도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도 속을 수 있는데, 미신적 성향의 영이 다 쫓겨나지도 않고 남아있는 상태에서 성령의 은사를 받았을 때에, 귀신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을 성령의 역사로 이해하고 사역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지 않을 경우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데, 만약 그가 그 일을 그만두지 아니하면 질병에 시달리게 되며 그래도 그 일을 그만두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둬가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4. 은사를 받거나 사용하는 데에 가장 주의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고로 은사를 받거나 사용할 때에 가장 주의해야 할 일은 회개하는 일입니다. 회개 없이 은사를 받거나 사용할 때에 항상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구원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일 뿐만 아니라 은사를 받고 사용하는데 가장 주의해야 할 일입니다. 회개없이 받은 은사는 성령의 은사가 귀신의 역사일 수 있으며, 회개 없이 은사를 사용할 때에는 자칫 잘못 하다가는 교만의 죄에 빠지며 물질의 노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 

 

5. 사마리아교회의 시몬은 무엇이 잘못된 경우인가요?

  사마리아에 어느날 빌립집사가 찾아와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빌립집사는 귀신을 쫓아내고 중풍병자를 고치고, 나면서 걷지 못하는 자도 고쳤습니다. 그러자 예전부터 그 동네에 마술을 행하여 큰 하나님의 사람의 사람이 일컬었던 마술사 시몬이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는 예언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빌립집사는 능력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빌립을 따라다니면서 그 능력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믿겠다고 했으며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예루살렘교회로부터온 베드로와 요한에 의해 사마리아의 성도들이 성령[의 다양한 각종 은사들을] 받는 것을 보고는 베드로에게 돈을 주면서 자기도 안수하면 성령의 은사를 받게 하는 능력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를 엄히 책망하면서, 하나님의 선물을 어찌 돈을 주고 사려고 하느냐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높이려는 욕망에서 그리고 돈을 벌 목적으를 은사를 구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2020년 07월 22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의 은사(27) 성령훼방죄란 무엇이며 진짜 용서받을 수 없나(마12:22~32)_2020-07-21(화)

https://youtu.be/y7LIES8VF3I [혹은 https://tv.naver.com/v/14883360  ]

 

 

1. 일반적으로 "성령훼방죄"는 어떤 죄라고 알려져있나요?

  일반적으로 "성령훼방죄"는 성령이 하시는 일을 귀신이 하는 일로 비방하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역사를 사탄의 역사로 몰아가는 죄를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보수신학자라고 알려져 있는 박OO교수는 그의 책 "교회와 성령"에서 "성령훼방죄는 특히 귀신들린 사람을 내보냈을 때에 이것을 의심하고 귀신의 역사로 돌렸을 때에 해당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보통 성도들이 생각하고 있는 성령훼방죄는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을 두고서 예수께서 귀신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고 비난했던 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 앞에서 말했던 "성령훼방죄"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가 틀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런데 앞에서 말했던 성령훼방죄의 정의는 사실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이러한 죄들을 두고 성령훼방죄라고 정의한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성령훼방죄는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마12:32)"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 대한 마가복음 평행본문을 보면, 성령훼방죄의 결과에 대해서 마태복음보다 더 확실하게 결과를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막3:29)"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셨는데, 그것을 두고 "저가 바알세불이 지폈다(바알세불을 가지고 있다)(막3:22)"라고 비난하거나 혹은 "저가 귀신을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막3:22)고 비난하는 것을 성령훼방죄가 아니라 예수훼방죄(예수비난죄)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만약 성령훼방죄를 잘못 정의했다가는 오늘날 이것과 유사한 말들을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상당히 많은데, 그들도 다 지옥에 떨어져야 한다는 것을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도한 적용이라 하겠습니다.

 

3. 예수께서는 성령훼방죄를 어떻게 언급하셨나요?

  예수께서는 마12:31~32에서 성령훼방죄를 이렇게 언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12:31-32)" 그렇습니다. 성령훼방죄는 예수님을 비난하는 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령 자체를 모독하거나 성령 자체를 거역하는(반대하여 말하는) 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신 일을 가지고서 예수님을 이렇다는둥 저렇다는둥 비난하는 것은 성령모독죄나 성령훼방죄가 되지 않으며, 그것은 인자모독죄와 인자훼방죄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인자를 거역하는 그러한 죄는 다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성령께서 그것이 잘못 되었다고 책망하는데도 성령을 거역한다면 그는 성령훼방죄를 짓는 것입니다. 고로 예수께서는 용서받지 못할 성령훼방죄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비방하는 죄가 아니라, 장차 성령께서 오셔서 그 사람을 책망하시는데 그것을 거부하고 거역하고 끝까지 자기 고집대로 행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4. 성령께서 행하시는 고유한 일은 무엇인가요?

  고로, 어떤 사람이 성령께서 행하시는 고유한 일을 끝까지 거부하고 거역한다면 그는 용서받지 못할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한 죄는성령께서 행하시는 본질적인 사역들을 거역한 죄들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가르치시고 깨우쳐 주시는데(요15:26), 그것을 끝까지 거부할 경우 그는 성령훼방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께서 오셔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시는데도 불구하고(요16:8) 끝까지 성령의 책망을 거부한 채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지금 성령훼방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령훼방죄란 한 마디로, 성령께서 깨우쳐주시고 책망하시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의 고집을 피우는 것을 가키립니다. 그러면 그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은 것 때문에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5.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을까요?

  사실 이 세상에서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만약 있다면 자신이 끝까지 성령의 역사를 거부한 채 자기의 죄를 회개하지 않은 것 때문에 자신의 죄를 용서받지 못하는 것 뿐입니다. 그러니까 과거에 성령훼방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지금 오늘이라도 그 죄를 깨닫고 성령의 책망을 수용하여 자신이 성령훼방죄를 지었다고 고백한다면 그는 어떤 죄든지 다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고로 이 세상 사람이 짓는 죄들 가운데 용서받지 못할 죄는 사실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다만 회개하지 않아서 용서받지 못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자신이 지금 이 순간에도 성령훼방죄를 짓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가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징계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성령께서 깨우쳐주실 때에는 즉시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가 진정 복된 자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020년 07월 21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의 은사(26) 다양한 일반은사들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롬12:6~8)_2020-07-20(월)

https://youtu.be/SUoaXUWqKeM  [ 혹은 https://tv.naver.com/v/14866134  ]

 

 

1. 성령의 은사들은 크게 어떻게 분류할 수 있나요?

  성령의 은사들은 크게 "일반은사"와 "특별은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일반은사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라고 할지라도 조상들로 물려받을 수 있는 은혜의 선물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특별은사"는 다릅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주시는 초자연적이며 또한 영적인 은사이기 때문니다. 이러한 특별은사들에는 또한 3가지 종류가 있으니, 말의 은사들(예언, 방언, 방언통역)과 행동의 은사들(치유, 능력, 믿음)과 앎의 은사들(영들분별,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이 있습니다. 한편 "특별은사"에는 은사의 내용에 따른 은사들(성령의 9가지 특별은사, 고전12:8~10)과 직분에 따른 은사들(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 고전12:28~30, 엡4:11)이 있습니다. 

 

2. 롬12:6~8에 나오는 "일반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롬12:6~8에 보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반은사들로서 7가지 은사들이 나옵니다. 물론 일반은사가 이런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재물의 은사, 음악의 은사, 기술의 은상 등 더 많은 종류의 은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롬12:6~8에서 7가지 은사만을 언급하였는데 이는 완전수인 "7"을 사용하여서, 교회에는 다양하고도 풍성한 은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롬12:6의 말씀에서도 나타나는데, 이 말씀을 직역해보면, "그런데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졌던 은혜를 따라 다양한 종류의 은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반은사 7가지는 또한 그것의 내용에 따라 2가지 은사들 곧 "예언"과 "섬기는 일(봉사)"의 은사들과 그리고 직책의 은사로서 5가지 곧 "가르치는 자, 위로하는 자, 구제하는 자, 다스리는 자, 긍휼을 베푸는 은사"로도 나눠볼 수 있습니다. 

 

3. 일반은사로서 등장하는 "예언"과 "가르치는 자(교사)"의 은사(고전12:6~8)는 특별은사로서 "예언"과 "교사"의 은사(고전12:8~10,28~30)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일반은사"로서 소개되고 있는 "예언"이나 "교사"의 은사는 초자연적인 은사라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이를 테면, 특별은사로서 "교사"의 은사는 성경말씀에 능통하여 그것을 잘 가르치고 설명할 수 있는 은사이면서, 교회 내에서 이런 직책만을 수행하는 자를 가리키지만, 일반은사로서 "교사"의 은사는 부모로부터 가르치는 은사를 물려받아서, 교회의 어떤 부서에서 가르치는 일에 봉사하고 있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은사로서 "예언"의 은사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은사로서 예언의 은사는 특별은사로서 나타나는 7가지의 기능(세움, 권면, 위로, 책망, 심판, 드러냄, 가르침) 중에서 어느 것 하나를 수행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일반은사로서 예언의 은사를 사용하는 자는 반드시 "믿음의 분수대로" 그 은사를 사용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은사로서 주어지는 "예언"의 은사는 분량이 적은데, 마치 자기가 특별은사처럼 "예언"의 은사를 전부 다 받은 것인량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7가지 일반은사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요?

  7가지 일반은사들 중에서 만약 어떤 것이 예언의 은사라면, 은사자는 반드시 그것을 믿음의 분량을 따라 그 분량만큼만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만약 그것이 섬기는 일(봉사)의 은사라면 봉사 안에서 그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치고 있는 자라면 그는 가르침 안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위로(권면,격려)하고 있는 자라면 위로(권면,격려) 안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구제와 다스림과 긍휼의 은사는 그것을 사용하는 자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하였습니다. 

 

5. 구제와 다스림과 긍휼의 은사는 어떤 태도로 사용해야 하나요?

  사도바울은 7가지 일반은사들 중에서 3가지의 은사들 곧 "구제하고 있는(나누어주고 있는) 자"의 은사와 "다스리고 있는(지도하고 있는, 인도하고 있는) 자"의 은사 그리고 "긍휼을 베풀고 있는(자비를 베풀고 있는) 자"의 은사를 사용할 대에는 각각 성실함(순수함, 관대함)으로, 부지런함으로 그리고 즐거움으로(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이것은 앞에 나오는 3가지 은사자가 자신의 은사를 사용할 때에는 반드시 3가지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언급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은사를 사용할 때에는 항상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고연 나는 성실함으로, 부지런함으로, 즐거움으로 이러한 은사들을 사용하고 있는가?" 만약 이렇게 하고 있지 않는 은사자라면 그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에서 상급을 받지 못할 것이며, 또한 교회 안에 있는 다른 지체들에게도 결코 유익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0년 07월 20일(월)

정병진목사 

이 세상에 있는 직분 가운데 가장 어렵고 두려운 직분이 있다면 그것은 "목사직"이 아닌가 싶다. 사람의 영혼을 다루는 직책이기 때문이다. 고로 주께서는 이 직책을 잘못 감당하는 자에 대해서는 엄한 신판을 예고하신 바 있다(마18:6). 그렇다면, 목사직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며,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것인가? 그리고 이에 맞물려 성도들은 목회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협력해야 할 것인가? 그 비밀이 오늘 말씀 속에 들어있다. 2020-07-17(금) 금요기도회 제목: 성령의 은사(25) 목사의 은사와 그 역할은 무엇인가?(엡4:8~12) https://youtu.be/Gb-N5gD6nMw [ 혹은 https://tv.naver.com/v/14846697 ]

 

 

1. 들어가며

  성령의 은사에는 크게 일반은사와 특별은사가 있다. 그중에서 초자연적인 특별은사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들을 통해 하나씩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것은 총9가지 은사들인데, "지혜의 말씀의 은사, 지식의 말씀의 은사, 믿음의 은사, 병들치료함의 은사, 능력행함의 은사, 예언의 은사, 영들분별의 은사, 방언의 은사, 방언통역의 은사"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은사들 말고도 직분으로 주어지는 은사들도 있으니, 그것은 고전12:28~30에 따르면, "사도"의 은사, "선지자"의 은사, "교사"의 은사가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에베소서 4:11에 의하면, 직분의 은사는 방금 전에 말씀드린 3가지 것 외에도는 2가지가 더 있음을 소해하고 있는데, 그것은 "복음 전하는 자"의 "목사"의 은사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이것들 중에서 '목사의 은사'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목사의 은사"란 대체 어떤 은사이며, 목사직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자이며, 성도들을 어떻게 목사와 협력할 것인지까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목사의 은사는 어떤 위치를 가지고 있는가?

  목사의 은사는 성령께서 주시는 오중직의 직분은사들 중에서 교사와 함께 등장하고 있는 은사다(엡4:11). 이것이 한글말으로는 "목사와 교사"의 은사로서, 두 가지 직분을 가진 다른 사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지만 실은, 정관사 하나만 붙어 있는 것이기에, 목사이면서 교사의 은사라고 했던 것이다. 고로 목사직의 은사를 받은 자는 필수적으로 교사직의 은사도 동시에 받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목사의 은사는 한 교회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 직분을 수행하는 은사에 해당한다. 그러나 나머지,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 그리고 교사의 은사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수행하는 직분의 은사들에 해당한다. 그런데 "목사의 은사"는 교사의 은사를 동시에 수행하는 직분의 은사인데, 그것은 한 곳에 머물러서 그 직분을 수행하는 은사인 것을 알 수 있다. 

 

3. 목사의 은사는 어떤 은사를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목사"의 은사는 어떤 은사를 가리키는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목사"의 은사란 목사의 직분을 수행하는 은사를 가리킨다. 그런데 목사직의 직분은 사실 "목자"의 직분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헬라어원문을 통해서 볼 때, 엡4:11에는 "목사"라는 신분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한글성령으로 본다면, "목사"라는 단어는 오직 엡4:11에서만 단 한 번 등장하고 있긴느 하지만, 헬라어로 볼 때에는 이 단어는 "목사(사목)"가 아니라, 양떼를 돌보는 "목자"(shepherd)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목사의 직분은 목자라는 직분에서 흘러나와서 더욱 발전된 과정을 거친 직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4. 목사의 원래 직분인 "목자"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우리는 지금의 목사라는 직책이 곧 목자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목자"라는 직책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호칭에서 나온 것이다. 다윗의 시로 추정되는 시편100편에 보면,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표현함으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편23편의 다윗의 시에서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다(시23:1~4).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육신을 입고오신 예수께서도 당신과 우리 인간의 관계를 비유할 때에, 당신을 "선한 목자"라고 하였으며, 우리 인간을 일컬어 "양"이라고 비유하였다(요10:11~15)."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요10:14~15a)". 고로 오늘날 "목사"의 직분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성도를 목양하는 직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조금 뒤에 살펴보겠지만, 부활후 갈릴리바닷가에서 예수께서는 어린양의 12제자들의 대표였던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명령하심으로, 목자로서의 직분을 사도들에게 위임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기자는 예수님을 일컬어 "양들의 큰 목자(히13:20)"이라고 언급하였고, 베드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벧전2:25)"이라고 언급한 한편, "목자장(벧전5:4)"이라고 말했다. 

 

5. 목자인 목사는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 자인가?

  그렇다면, "목자"라는 직분은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 자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성도들을 목양하는 직분을 가리킨다. 고로, "목자"라는 직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주변에 다른 양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떼가 없는 목자는 더이상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로, 목자로서 오늘날 목사는 양으로서 성도들과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상대적인 은사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 목자는 어떤 일을 수행하는 자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 바다에서 나타나셨을 때에 베드로에게 부탁하신 말씀 속에 잘 나와 있다. 그때 예수께서는 이제 베드로에게 목자라는 직분을 수여하셨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21:15)", "내 양을 치라(요21:16)", "내 양을 먹이라(요21:17)"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먹이라(헬, 보스코)"는 단어와 "치라(헬, 포이마이노)"는 단어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 두 단어의 뜻은 실은 정반대의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먹이라(보스코)"는 단어는 "풀을 뜯게하라" 혹은 "양으로 하여금 음식을 먹게 하라"는 뜻인 것에 비해, "치라(포이마이노)"는 단어는 "지키다. 돌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땅에 세워진 교회에서 목양하고 있는 자가 반드시 해야 할 2가지 직무가 있으니, 그것은 양을 먹이는 일이요, 양떼를 지키고 보호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목자는 성도들을 말씀으로 먹이는 직책이라는 것이다(요21:15,17). 성도는 제때에 필요한 말씀으로 공급하지 못하는 분은 목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목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경에 능통한 자라야 하며, 그 말씀을 잘 먹일 수 있는 은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의 목동이었던 다윗은 하나님을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노래했으며(시23:1), 목자가 해야 할 일로는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언급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여호와께서는 어떤 위험한 상황에 도달한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를 지키고 보호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여 그들을 튼튼하게 성장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하겠다. 

  둘째, 목자는 양떼를 해치려는 세력들(곰, 사자, 이리 등)로부터 양떼를 지키고 보호하는 직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23편의 기자인 다윗은 목자이신 여호와의 은혜를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그림자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악, 악한 자)를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당신)의 지팡이와 [당신의] 막대기가 나를 안위(위로)하시나이다(시23:4)" 그렇다. 여기서 등장하는 두 가지 도구는 그것의 말해주는 의미가 대단하다. 왜냐하면 "막대기"를 양을 해치려 오는 동물들을 후려치는 역할을 하는 도구라며, "지팡이"는 양떼들을 푸른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자는 양떼를 해치려는 자들을 파악하여 그것을 가려내어 제거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6. 목자로서 목사는 무엇에 유의해야 하는가?

  목자이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성도를 양육하고 돌보아야 할 목사는 양떼인 성도들을 어떻게 목양해야 하는 것인가? 성도를 위한 목자로서 위임받았던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벧전5:1-4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그렇다. 양무리를 목양하는 목자로서 목사는 자신의 직분을 억지로 감당해서는 아니 된다. 자발적으로 해야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기 말고 오히려 기쁨으로 그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맡은 자들에게 군림하거나 지배하는 식으로 목양하지 말고, 양무리의 모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장차 재림하시는 목자장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영광의 승리관을 받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7. 목자인 목사를 돕는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목자인 목사로부터 목양을 받는 성도들은 어떤 자세를 가지고 목자를 따라야 하는가? 히브리서 기자는 목자에 대한 양의 자세를 이렇게 말하였다. 

히13:17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신약성경 가운데 베드로와 히브리서기자는 예수님을 목자로 비유하였는데, 그중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목자로부터 목양을 받는 성도가 취해야 할 행동과 자세를 제시하는데, 이때 목자들은 어떻게 성도들을 목양하는 자인가를 소개해주고 있다. 그들은 성도의 영혼을 위하여 깨어있기를 심판 때에 꼭 자기가 계산(회계)할 자인 것처럼 하고 있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목사(목자, 목회자)는 다 그렇게 살고 있는 신분의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목자로서의 일을 감당하도록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인도하는 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근심으로 하게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자기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기 때문이다. 

 

8. 나오며

  오늘은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직분의 은사로서 "목사"에 대해 살펴보았다. 목사는 원래 "목자"를 가리키는 말로서, 양떼인 성도들을 목양하는 목자에서 나온 것임을 살펴보았으며, 그것은 인간을 양으로 비유하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명칭에서 온 것임도 살펴보았다. 결국 목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성도를 목양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누가 함부로 그 직분을 맡을 수 있겠으며, 함부로 이 직책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만세전의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에 따라 목사도 나오는 것이다(렘1:5,갈1:15,딤후1:9). 예수께서는 만약 양떼의 작은 자 중 한 명이라고 실족하게 한다면, 차리라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실만큼 목사직을 수행하는 자를 엄하게 심판하실 것임을 말씀하신 적이 있다(마18:6).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직분이 있다면 그것은 목사직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천국에 들어가는 목사들은 성도들에 비해 거의 배 정도 적은 수가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양떼들을 잘못 인도하고 잘못 가르친 댓가는 실로 크다고 아니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땅에 목사들은 그만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살아가는 자이며, 또한 두렵고 떨림으로 그 직분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목회자를 존중하고 목자로서의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로 협력하고 함께 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20년 07월 17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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