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이 보았던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과 새 예루살렘 성과 새 성전에 대한 환상은 훗날 700년 뒤에 사도요한이 밧모섬에서 보았던 것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무엇이 더 선명해졌고, 무엇이 더 추가가 되었는가? 그리고 에스겔과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비교해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하며,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이 한 편의 설교만 제대로 이해하고 듣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정말 달라질 수 있고,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삶의 태도는 무척 변해 있을 것이다.

2019-11-27(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스겔강해(22)(최종회) 에스겔이 본 환상과 요한계시록과의 상관관계(3)(겔48:30~35)
https://youtu.be/53n3EMavSbg


1. 들어가며

  에스겔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부분은 심판예언이며(겔1~32장), 뒷부분은 회복예언이다(겔33~48장).그중에서 회복예언은 또한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앞부분은 새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부분이며(겔33~39장), 뒷부분은 새 예루살렘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에 대한 부분이다(겔40~48장). 그중에서 오늘 요한계시록과 비교해 볼 말씀은 겔33~48장까지로서, 새 이스라엘과 새 예루살렘 성전과 새 제사 그리고 새 땅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신약 전체에 대한 그림을 보게 될 것이고, 마지막 시기에 관한 말씀과 함께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에 관해서 조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 새 이스라엘의 회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나님께서는 에스겔더러 새 이스라엘에 관한 회복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것은 4~5단계로 이뤄질 것이라고 하셨다. 그 내용은 에스겔 33장부터 39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 내용을 요한계시록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회개를 외치는 파숫군을 통해서 새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이라고 했다(겔33장). 그렇다면 파숫군의 사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적군이 몰려올 때 경고하여, 성 안에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험을 대비하고 방비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지키는 파숫군이 적군이 침입해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그것을 성 사람들에게 전해주지 않아 무슨 일이 발생했다면 파숫군은 그 책임을 면하지 어렵다. 그런데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파숫군에게서 성 사람들의 핏값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파숫군의 사명은 적군의 공격을 미리 알려주는 일이다. 이것은 사실 예수님의 공생애 시절에는 세례요한이 감당한 사역이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으며 그 뒤로 그는 회개를 외치며 메시야의 오실 길을 예비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역할은 요한계시록에 보면, 두 증인의 역할과 비슷하다(계11:1~14). 두 증인은 환난기간에 성도들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외치는 일을 하는 자들인데, 성도들로 하여금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게 만들어주는 일을 한다. 그래서 두 증인의 사역은 곧 두 선지자가 하는 일이요, 두 감감나무로서 성령충만을 ㅂ다게 하고, 회개하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1장에 보면, 두 증인은 자신의 사역을 감당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에게 능력을 주시어 일을 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때 순교하게 된다.

  둘째, 하나님께서 직접 선한 목자로 오셔서 새 이스라엘을 회복하신다고 하셨다(겔34장). 하나님께서는 이때 이스라엘인 중에 훌륭한 목자들을 세워 새 이스라엘을 치게 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목자는 오히려 양떼를 괴롭히고 힘들게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직접 목자가 되시어 양떼들을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가장 전형적인 모델로 제시한 목자는 "다윗"과 같은 목자라고 했다. 한편, 요한계시록에 보면,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환난에 나오는 흰 옷 입은 무리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했고, 그분은 다름 아니라 보좌 가운에 계신 어린양이라고 하였다(계7:17).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딤전3:16).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유일하게 오직 다윗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예수님을 소개하는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계22:16)"이자, "다윗의 뿌리(계5:5)"로 소개되고 있다. 왜냐하면 목자로 오실 하나님의 표상으로서 가장 가까운 왕이 다윗왕이었기 때문이다.

  셋째, 이어 하나님께서는 새 이스라엘 속에 주님의 새 영을 두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게 할 것이라 하셨다(겔36:26~27). 여기서 "주님의 새 영"이란 장차 믿는 자들 속에 내주하시게 될 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회복된 새 이스라엘인은 육적인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인 이스라엘 곧 교회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령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그것은 이땅에 보내어진 예수님의 눈들이다(계5:6). 천국에서 예수께서는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어린양에게는 일곱 눈들이 있었고 일곱 뿔들이 있었다. 여기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어린양이 진짜 7개의 눈들과 7개의 뿔들을 갖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왜냐하면 '7'은 이 세상에서 완전수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땅에 완전하신 어린양이 곧 예수님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사도요한은 이 눈들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소개해준다. 그것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영들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땅에 보내신 예수님의 영이 곧 성령인 것이요, 이 영을 통해 주님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감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공동체가 탄생하는데 이것을 우리는 "교회"라는 부른다.

  넷째,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진 이후 하나님께서는 그때부터 부활로 말미암아 하늘 안에 하나님의 군대를 창설하시고, 곡과 마곡의 전쟁 때에 그들을 데리고 오신다고 하셨다(겔37~39장). 그 군대가 바로 겔37장에 나오는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의 환상이다. 이미 죽어 마른 뼈들 밖에 없는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어 그들을 군대로 불러모은다고 하셨기 때문이다(겔37장). 이들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천년왕국의 성도"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 성도들은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왕노릇한다. 이것을 두고 "천년왕국"이라고 부른다. 1천년 즉 충분하고도 긴 시간동안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거기에서 왕노릇하다가 주님의 재림시에 군사가 되어 주님의 뒤를 따라 백마를 타고 이 세상으로 들어오는 것이다(계19:11~16). 그런데 곡과 마곡의 전쟁이 일반적으로는 지상의 천년왕국 후에 있을 전쟁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헬라어원문으로 보면, 요한계시록 19장에 나오는 "아마겟돈전쟁"과 요한게시록 20장에 나오는 "곡과 마곡의 전쟁"은 동일한 전쟁에 대한 다른 각도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계20:10). 한편 이때 백마를 타고 오시는 예수께서는 만주의 주이자 만왕의 왕으로 오실 터인데, 아마겟돈전쟁(곡과 마곡의 전쟁)에서 사탄의 세력들을 물치시는 무기는 다름 아닌,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칼"이다. 고로 우리는 아마겟돈전쟁이 영적인 전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직접 말을 타고 칼을 사용하는 전쟁이 아니라, 말씀으로 사탄마귀를 대적하여 이기는 전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편에 서서 예수님과 그의 군대를 대적할 것인지에 대한 묘사를 보면, 에스겔선지자는 예수님의 칼에 의해 죽임당할 사람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7개월이나 걸린다고 하였고, 그들의 무기를 처리하는데 7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겔39:11~12, 9). 그리고 그들의 시체를 새들이 와서 배불리게 먹어치울 것이라고 했는데(겔39:17~20), 요한계시록에 보면 수많은 새들이 그들의 살로 배불릴 것이라고 동일하게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계19:21). 여기까지가 새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예언의 말씀이다. 고로 우리는 새 이스라엘은 육적인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새 이스라엘은 교회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렇다. 이 지상에 결코 제3의 성전이 세워지지 않을 것이며, 지상에 천년왕국이 펼쳐지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믿는 자는 그때 가서 땅을 치고 통곡할 것이다. 부질없는 논리에 속아 헛된 세월을 보냈다고 말이다.

 

3. "새 예루살렘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에 대한 환상은 무엇이었는가?

  이어지는 에스겔 예언은 이제 "새 예루살렘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에 대한 예언이자 환상이다(겔40~48장).

  그렇다면, 에스겔에 나오는 새롭게 지어질 성전에 관한 예언은 과연 이 땅에 건설될 성전을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이미 어느 정도 결판이 난 상태다. 왜냐하면 A.D.90년 유대 랍비들이 겔40~48장에 나오는 성전에 대해 그것은 지상에는 결코 세워질 수 없는 성전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첫째는 규모면에서 그렇다고 했다. 새롭게 지어질 성전은 비단 성전만을 포함하지 않고 성전을 둘러싼 땅까지 포함하고 있는데, 레위인과 제사장 그리고 왕에게 돌아갈 땅의 크기로 보건데(나중에 살펴볼 것임), 실제적인 사건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이다(겔45,48장). 둘째는 성전 안에 기명에 있어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성전 안에는 법궤(지성소, 내소)와 "일곱금촛대와 분향단과 떡상"이 있어야 하는데, 새롭게 지어질 성전 안에는 이런 것들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빈 나무책상 하나만 놓여있었기 때문이다(겔41:22). 셋째, 성전의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와 동쪽으로 흘러간다고 했는데, 이런 일은 아직까지도 일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겔47장).

  그렇지만 에스겔이 보았던 새 성전과 새 제사와 새 땅은 하늘의 성전과 하늘의 제사와 하늘의 땅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늘에서는 동물의 피의 희생제사가 결코 드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스겔이 본 성전의 환상에는 번제단도 있으며, 거기에 희생제사를 드릴 제사장의 규례와 예물의 규례와 제사의 시기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놀라운 사실은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에 관한 말씀이 그렇다. 에스겔성전은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와 동쪽으로 흘러 강을 이루며, 이 생명의 물로 인하여 생명체들이 뛰놀게 되고 각종 과실나무들이 자라게 되며, 그 나무들이 달마다 열매를 맺고, 그 나무들의 잎사귀는 약재료로 쓰인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겔47:1~12). 이것은 지상에 있는 성전에서는 없던 일이었고, 또한 지상에 있는 강물도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솔로몬성전의 파괴 이후 제2의 성전(스룹바벨성전)이 세워지는 했지만 그러한 일은 없었고, 지금까지도 이러한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에스겔이 보았던 새 성전에 대한 환상도 영적인 성전인 교회에 관한 예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이신 성령을 받아서 생명을 받은 자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계22:1~2). 그리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만 존재할 교회는 번제단에서 죽으신 어린양의 속죄를 계속해서 힘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스겔이 보았던 새 성전에는 번제단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4. 에스겔이 본 "새 땅"에 대한 환상은 어떻게 완성될 것인가?

  그렇다면,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보았던 새 땅은 어떠하며 새 땅에 대한 분배는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 에스겔은 환상 중에 "새 땅"을 보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새 땅"을 "예물로 드릴 땅"과 "왕의 땅"과 "일반백성의 땅"으로 나누어 분배하라고 하셨다(겔45:1~8, 47:13~48:35).

  첫째로, "예물로 드릴 땅"은 다시 3개의 땅으로 나누어 분배하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각각 "레위인의 땅"과 "제사장의 땅"과 "성읍기지의 땅"으로 구분하여 그들에게 분배하라고 하셨다(겔45:1~8). 먼저 가장 위쪽에 분배할 "레위인의 땅"은 가로가 2만5천척(13.3km)이요 세로가 1만척(5.32km)이 되게 하라고 하셨고 그것을 레위인에게 주라고 하셨다(겔48:13~14). 그리고 그 아래의 땅은 "제사장의 땅"으로서, 이 땅도 레위인처럼 똑같이 척량하여 분배하되, 그것 한 가운데 "성전"을 두라고 하셨다. 새 성전의 크기는 가로 세로가 각각 500척으로 하라고 하셨다(겔48:8~12). 그리고 그 밑의 땅은 "성읍기지의 땅(속된 땅)"으로서, 이 땅은 가로가 2만5천척이 되게 하고, 세로는 5,000척이 되게 하되, 그 땅 가운데를 각각 가로세로가 각각 5,000척으로 나누어 그것을 성읍(도시)으로 삼으라고 하였다(겔48:15~20). 좌우에 만척씩은 농사짓는 구역으로 삼되, 그 땅은 일반백성이 거주하는 땅으로 하라고 하셨다. 이때 건설된 성읍을 "여호와 삼마"라고 하라고 하셨으며, 이 성읍에 들어가는 입구들은 각기 네 방향에 3개씩 문을 두는데, 문들의 이름을 이스라엘의 각기 지정된 12지파의 이름으로 지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제 "왕의 땅"을 분배하라고 하셨다(겔48:21~22). 왕에게는 이스라엘 땅의 한 중앙에 있는 "예물로 드리는 땅"의 좌우의 모든 영역을 주라고 하셨다. 그래야 왕이 일반백성의 땅을 탐내어 빼앗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셋째로, 마지막으로 레위인의 땅의 북쪽은 순차적으로 7지파의 땅으로 분배하라고 하셨고, 성읍기지의 땅 아래는 순차적으로 5지파의 땅으로 분배하라고 하셨다(겔48:1~7, 23~29).

  그런데 성도들의 장차 들어가게 될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과 에스겔이 본 성은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는 것이다. 먼저, 공통점은 천국에서도 신분에 따라 땅의 분배된다는 점이다. 즉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에는 신분이 제사장도 있고 땅의 왕들이라는 신분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천국에서는 일반성도들 중에 최고는 "땅의 왕들"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있으며, 주의 종들은 제사장의 신분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실제로 천국에 들어가보면, 주의 종들이 사는 거주지와 일반 성도들이 거주하는 지역이 다르다. 그리고 차이점은 첫째로, 천국에서는 성전과 성의 구별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어린양이 친히 성전이 되시기 때문이요, 성이 곧 성전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배를 드리러 오기 전에 성도들은 각기 분배받은 지역의 집에서 살다가 예배드릴 때에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 때 성은 성전의 역할을 한다. 여기서 찬양과 경배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것은 미비한 것이기는 한데, 에스겔이 본 새 성의 성문들에게는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이름들이 각 방향마다 정해져 있지만, 사도요한이 언급한 새 하늘에 있는 새 성이자 성전의 문은 동서남북에 각기 3개씩 있고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다고까지는 나오나 구체적으로 어느 대문에 어느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어찌 되었든 중요한 것은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한 곳에 모여 사는 것이 아니라 각기 사는 지역과 집이 다르며, 신분에 따라 각기 다른 지역과 집을 기업으로 분배받는다는 점이다. 고로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이 땅에서 제사장들로서 그리고 땅의 왕들로서 준비를 잘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분과 천국에서 받을 기업은 영원한 자신의 분깃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고스란히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에 기록되어 있다.

 

5. 나오며

  어떤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면 심심해서 어떻게 살겠느냐고 투털하기도 한다. 그것은 안 가서 하는 말이다. 천국에 들어가보면 안다. 그리고 거기는 얼마나 기쁨과 감격과 감사과 찬양이 끊이지 않는 곳인지를 말이다. 그곳에 들어가보면, 자신의 신분에 따라 영광과 존귀가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가서 비로소 "아, 부럽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껄껄껄"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있을 때, "조금만 더 전도하고, 조금만 더 봉사하고, 조금만 더 기도하고 예배하며, 조금만 더 헌신할 껄"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천국 성도의 영광과 존귀의 차이는 나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터이니 염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우리는 이제 가만히 넋놓고 있을 수만 없지 아니한가! 열심을 내야 한다. 부지런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서 꼭 천국에 들어가야 하고, 천국에서 많은 땅의 분깃을 차지하기를 바라며, 영광과 존귀를 얻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9년 11월 27일(수)

정병진목사 


에스겔서는 실로 놀라운 책이다. 그저 에스겔37장에 나오는 에스겔골짜기의 마른 뼈 환상만 기억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곳곳에 하늘의 모습과 새 예루살렘 성과 도시에 관한 정보가 빼곡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시퍼의 타락과정에 대한 계시는 이사야 14장과 더불어 에스겔 28장이 백미다. 그 어디에서도 이러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요한계시록 12장과 누가복음 10:18~20의 말씀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정보를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에스겔서를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원형적인 사건과 그 소스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19-11-20(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스겔강해(21) 에스겔이 본 환상과 요한계시록과의 상관관계(2)(겔48:30~35)
https://youtu.be/6plr1N2bsd4


1. 들어가며

  에스겔서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살아계신 분이시며 그분이 모든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느끼지 아니할 수가 없다. 왜 그런가? 그것은 에스겔이 보았던 것들 때문이다. 에스겔은 B.C.622년에 태어나서, 그의 나이 30세인 593년부터 예언을 시작하여 약22년간을 바벨론에서 사역한 대선지자 중의 하나다. 그런데 그가 본 하나님 보좌의 환상(겔1,10장)과 또한 그가 보았던 새 예루살렘 성과 성전에 대한 환상(겔40~48장)은 그때로부터 약 700년 뒤인 A.D.95년경에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보았던 환상에 대한 밑그림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에게 에스겔서가 없었다면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묵시(계시)를 이해하는데 많은 공을 들여야 했을 것이며 또한 정확한 이해도 어려웠을 것이다. 에스겔이 보았던 환상들이 또 다시 요한계시록에도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에스겔서는 작은 요한계시록 내지는 요한계시록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주에 이어서 에스겔서를 전체적으로 복습하되, 에스겔서 9장부터 33장에 나오는 말씀을 요한계시록과 서로 견주어서 살펴고자 한다.

 

2. 이마에 표를 치는 환상과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어느날 에스겔을 불러 그의 영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려가신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자들을 보여주신다(에스겔8장). 놀랍게도 거기에는 이스라엘의 장로 70명이 서기관 사반의 아들인 야아사냐와 함께 향로를 들고서 우상에게 향을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성전의 북문에 이르서는 여인들이 앉아 동방태양의 아들인 담무스를 애곡하고 있었고, 또한 성전 안뜰에 이르서는 레위인들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자신의 얼굴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방태양에게 예배하고 있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죽이도록 6명의 사람들(천사들)을 파송하신다. 그들의 손에는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들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중의 한 명 곧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그릇을 찬 사람에게 말했다.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겔9:4)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 사람에게는 성읍 중에 있는 백성을 불쌍히 여기지 말고,다 죽이되, 이마에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을 죽이라고 명령하신다. 이것은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 중에서, 결코 우상을 숭배하지 아니하면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자들을 주님이 보호하시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라도 우상숭배를 멀리하고 그것에 대해 애통해하는 자들을 지켜주시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와 똑같은 일이 요한계시록에도 기록되어 있다(계7장). 그것은 여섯째 인이 떼어지고 일곱째 인이 떼어지기까지 중간계시로 등장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땅과 바다와 각종 나무들을 치기 전에 특정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에게 인을 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즉 어떤 천사가 동쪽에서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올라오더니, 하늘의 네 바람을 주관하는 천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미아 인을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계7:3)"고 하는 것이다. 그러자 곧바로 인침을 시작되었는데, 인을 받은 자들의 숫자를 들으니, 이스라엘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총 144,000명이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12지파 사람들로서, 각 지파에서 12,000명이 인침을 받은 자들이다(계7:1~8). 

  그렇다면, 이때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들은 144,000명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구원받은 자들"을 지칭하는 표현일 수도 있겠고, "신구약의 백성들 가운데 구원받은 자들의 총수"일 수도 있을 것이다(본인은 후자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들이 누구인지는 요한계시록에서 더 자세히 나온다. 그런데 이들은 하나님의 인침을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자들로서 결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성도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누구인지는 요한계시록 14장에 더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다. 이들은 "시온 산에 서 있는 144,000명의 성도들"로서(계14:1), 그들의 이마 위에 어린양의 이름과 어린양되신 그분의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자들이다(계14:1). 다시 말해, 천사들이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친 것은 이들의 이마 위에 하나님과 아들의 이름을 인친 것이다. 이러한 표시는 이제 그들이 완전히 하나님과 어린양의 소유가 되었다는 표시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들을 빼앗기지 않으실 것이라고 표시를 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의 인침을 받아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된 것인가? 그것은 요한계시록 14장에 더 자세히 나온다. 이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네 생물들과 24장로들과 더불어 새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자들로서, "땅에서 구속함을 입은 144,000명"이다. 이들은 여자에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였던 자들이며, 순결한 처녀들이다. 이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고 있는 자들이고, 처음 익은 열매(첫째부활)로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입에는 거짓말이 없었으며, 흠이 없는 자들이다(계14:2~5). 이런 자들은 구약의 구원받은 성도들과 예수승천이후 개인적으로 구원받아 부활체를 입고 첫째부활에 참여하여 천국에 들어간 자들을 가리킨다. 여기서 "첫째부활"이란 둘째부활을 전제하는 말로서, 둘째부활이 예수재림직전에 있을 전 우주적인 부활을 가리킨다면, 첫째부활은 예수승천이후 개인적으로 죽어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는 부활을 가리킨다. 요한계시록에는 이마에 하나님과 어린양의 표를 받은 자들의 예표가 나오는데, 그들은 빌라델비아 성도들 중에 이기는 자들이다. 그때 예수께서는 빌라델비아교회의 사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기고 있는 자에게는 내가 내 하나님 성전 안에 그를 기둥으로 만들 것이다. 그러면 그가 결코 더이상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나의 하나님의 이름과 나의 하나님의 성의 이름 곧 하늘로부터 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고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사람 위에 장차 기록할 것이다(계3:12. 직역)" 고로 여기서 "인침"이라는 것은 그가 하나님과 어린양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더이상 밖으로 쫓아내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 이들은 이 땅에 있을 때부터 빌라델비아성도들처럼 시험의 때로부터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계3:10).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천사로부터 하나님의 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인침을 흉내내는 자들이 나온다. 그들은 사탄의 3위일체다(계16:13). "사탄"과 "짐승"과 "거짓선지자"도 자기들의 소유가 되었음을 인치는 행위를 하는데, 이때 짐승이나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의 이마 위에나 혹은 오른손 위에 표를 하는 것이다(계13:15~18). 그런데 이 표는 짐승의 이름이며 짐승의 숫자와 같은 것으로서, 바로 "666"이다(계13:17~18). 고로 "666"이라는 것은 베리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자기의 소유가 되었음을 표시하는 영적인 표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자그마한 칩을 사람의 몸속에 집어넣는 것을 두고서 "666"표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어리석음을 지금도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아니다. 틀렸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창세이후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채, 이 땅에 살고 있는 자들이 짐승에게 경배하고서 이 표를 받는다 했다(계13:8). 그렇다면, 베리칩이 나오기 전에는 짐승의 표를 받았던 사람들이 아직 한 사람도 없었다는 뜻인가? 베리칩론자들은 지금도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3. 음녀는 누구를 가리키며, 그들의 결국은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선지자를 통해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음녀"에 비유하였다. 그들의 음행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에스겔 16장과 23장에 적나나하게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원래 한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두 자매 중에서 북이스라엘을 "오홀라"라 이름하였고, 남유다는 "오홀리바"라고 칭하였다. 그런데 이들 중에 먼저 북이스라엘이 음녀가 되었음을 말씀하신다. 그녀가 연애한 것은 "애굽사람"과 "앗수르 사람"이었다는 것이다(겔23:5~10). 그리고 남유다의 오홀리바도 연애를 하였는데, 그녀가 연애한 것은 "애굽사람"과 "앗수르사람"과 "갈대아사람(바벨론)"이라고 하였다(겔23:11~21). 여기서 "음녀"라 함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이 섬기던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자가 되었음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 있을 때부터 애굽의 신을 섬기던 자였다. 그들이 애굽에서부터 우상을 숭배하고 살았다는 것은 그들의 출애굽하여 광야로 나왔을 때에 그들이 광야에서 만들어 섬긴 송아지 우상에게서 그 증거가 발견된다. 그리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한 민족으로 살았으나,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 왕 때에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고 만다. 그리하여 북이스라엘은 일찌감찌 우상을 들여오게 되는데, 나중에는 앗수르의 신들을 들여오고 앗수르제국의 왕들을 의지하게 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연애하던 앗수르제국에게 그녀를 넘겨버리신다. 그리고 이어서 남유다도 자신을 구원해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앗수르를 의지했다가 이어서 바벨론을 의지했다가 그리고 또다시 애굽을 의지했다고 하다가 멸망당하고 만다. 물론 남유다 백성들도 앗수르와 바벨론과 애굽이 섬기던 신들을 들여와 숭배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남유다도 그들이 의지하였던 제국들에 의해 망하게 허락하신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는 것이 음녀가 받을 심판이었떤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도 오직 어린양의 신부가 되어야할 성도들이 음녀가 되어버린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계17~18장). 그리고 음녀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보다 먼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렇다. 하나님 이외의 구원자는 없다. 그렇지만 거짓말장이요 속이는 자인 사탄마귀는 쉬지 않고 일을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마저도 유혹하여 자신을 따르게 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것은 "사치"와 "향락"이다(계17:4, 18:7). 그래서 순결한 처녀로 살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만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사탄마귀와 귀신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이다. 이들이 주는 것이 달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음녀에게서 빠져 나오라고 강력하게 권고한다. 그녀가 추구하는 것은 사탄이 주는 것으로서, 그것이야말로 우상숭배하는 자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계18:4~5).

 

4. 두로왕의 타락과 애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에스겔28장은 두로왕의 타락을 언급한다. 두로왕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주변의 7개 나라들 가운데 하나로서, 특히 두로는 교만이 하늘을 찔렀던 도시국가의 하나였다. 특히 두로는 지정학적으로 육지에서부터 약 800m 떨어진 섬과 육지를 동시에 갖고 있는 특별한 도시국가였는데, 이중에서 두로의 섬은 공격하기 어려운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섬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두로는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게 되고, 해상국가로 발돋움하게 되는데, 심지어 그들은 먼 육지에 자신의 도시를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그러니 두로왕의 자존심은 대단했던 것이다. 그러자 어느날 두로왕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도다(겔28:2)"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하나님인 체 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두로왕은 자기가 가진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거둬들이고,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무역으로 인해 더 많은 재물을 축적하자 기고만장했기 때문이다. 사람인 주제에 자신을 신이라고 말했던 두로왕의 심판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루시퍼의 타락의 과정을 통해서 그의 심판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그렇다면 사탄마귀라 불리던 루시퍼는 어떻게 타락했을까? 그도 두로왕과 마찬가지였다. 피조물인 주제에 자신의 지혜와 영광스러움에 취하여 그만 선을 넘어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실 하늘의 천사들 중에 최고의 천사로 지음을 받았던 존재였다. 그가 창조될 때에는 자신이 거할 처소도 미리 정해질 정도였으니, 그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서 거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보석으로 단장해 주었으니, 대제사장의 흉패에 들어갈 12가지 보석들 가운데 9개의 보석으로 그를 치장해 주었던 것이다(겔28:13). 그리고 그가 창조되던 날에 그를 위해 소와 비파까지 준비해 주셨다.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대장으로 그를 창조하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창조되던 날부터 교만이 하늘을 찔렀다. 모든 천사들이 자신을 흠모했기 때문이다. 이사야14장에 보면 그가 그때 이렇게 속으로 말했던 것이 드러난다.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내가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사14:13~14)"

  그러자 교만한 그를 하나님께서는 처음에는 악한 일을 하는 천사로 쓰시다가 예수께서 탄생하기 직전에 하늘에서 쫓아버린다. 그러자 그는 자기를 따르는 하늘의 천사들 1/3과 더불어 하나님께 대항하였는데,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를 따르는 천사들을 하늘의 군대장관인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을 시켜 하늘에서 쫓아버리신다. 그러한 과정이 요한계시록 12장에 고스란히 나오는다. 그때 하늘에서 쫓겨난 사탄마귀는 용으로 변하였고, 그를 따르던 천사들은 뱀과 전갈과 같은 흉측한 파충류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땅 속으로 쫓겨나게 된다(계12:9). 이때 그들이 쫓겨난 장소는 땅 속 곧 "음부"이며, 음부가 그들의 거처가 된다. 하지만 예수께서 돌아가시 전까지 그래도 그들은 음부로부터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미혹하여 음부로 끌고 내려가곤 했는데, 그만 죄없으신 예수님을 죽이는 바람에, 사탄마귀는 자신이 가진 사망권세를 예수님에게 내어주게 되고, 그는 음부 곧 무저갱에 갇히게 된다(계20:1~3). 그러자 그는 음부에서 자신의 2인자와 3인자를 음부의 문들을 통해 올려보내서 지금까지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하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잠깐 놓아주시게 되면, 그는 음부에서 풀려나와서 인류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을 할 것이다(계20:7~10). 하지만 흰 말을 타고 오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칼로 대적들을 모두 멸하실 것인데, 이 때 사탄(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산 채로(천사들이니까)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고, 땅의 왕들과 그를 따르는 군사들은 다 전멸당하여 새들의 먹이가 되고 말 것이다. 이것이 아마겟돈전쟁이자, 곡과 마곡의 전쟁인 것이다.

 

5. 이스라엘의 파숫꾼으로 세워진 에스겔은 어떤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인가?

  에스겔 25장부터 32장까지 이스라엘의 주변 7개국의 심판을 말씀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에스겔 33장부터 39장에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해주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와 더불어 주변의 강대국을 하나님처럼 섬기다가 멸망당한 이스라엘을 어떻게 회복하시는 것인가? 그것은 첫째, 이스라엘의 파숫꾼을 보내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게 하시고(겔33장), 둘째, 선한 목자이신 다윗과 같은 왕을 보내 회복하시며(겔34장), 셋째, 성령을 사람 속에 보내 회복하시고(겔36장), 넷째, 하나님의 군대를 마련하신 뒤에(겔37장), 곡과 마곡의 전쟁을 통해 악한 무리들을 처단하심으로 회복하실 것이다(겔38~39장). 이러한 일련의 회복과정의 첫번째 시작은 바로 에스겔을 이스라엘의 파숫꾼으로 파송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에스겔 33장에 나온다.

  그런데 에스겔 33장은 사실 에스겔 3장의 확대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약 6년동안 벙어리로 사역하게 하셨지만, 하나님은 그를 불러 이스라엘의 파숫꾼으로 삼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겔3장). 그때는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던 30세 때의 일이었다(겔3장).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33장에 가서 비로소 이제 정식으로 그를 이스라엘의 파숫꾼으로 삼아 파송하신다.

  그렇다면, 파숫꾼이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듣든지 선포하는 것이다(겔3:11,27). 그래서 우상숭배로 인하여 마땅히 죽을 자들이 선지자의 경고를 듣고서 회개하게 되면 그들은 살게 될이지만, 만일 그들이 듣지 않으면 그들은 반드시 멸망당할 것인데, 그렇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는 그 피값을 묻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겔3:17~21).

  그런데 이러한 파숫꾼의 사명이 요한계시록에도 나온다. 그것은 세례요한의 사역을 계승하는 자로서 "두 증인"이라는 상징적인 인물로 나온다(계11장). 이 인물에 대해서는 다음주에 계속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6. 나오며

  에스겔서는 거의 요한계시록의 축소판과 같이 보인다. 그런데 실은 요한계시록이 에스겔서의 순서를 그대로 빌려서 차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만큼 에스겔서는 하늘의 광경에 대해서 영적인 놀라운 사실들을 정확하게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한 천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는 장면이나, 우상숭배를 통해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 음녀를 심판하는 장면을 에스겔9장, 그리고 에스겔16과 23장을 통해서 그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루시퍼의 타락의 과정이 에스겔 28장에서는 요한계시록보다 보다 소상하게 잘 기록되어 있다. 고로 우리는 사탄의 타락의 과정을 요한계시록보다 에스겔서 28장에서 보다 더 명확한 자료를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놀라운 계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영적인 이스라엘의 회복이 두 주인의 하나인 세례요한의 외침으로부터 시작되듯이, 에스겔서에서도 이스라엘의 파숫꾼으로 세워진 에스겔 선지자로부터 시작된다. 우리에게 에스겔서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린다.

 

2019년 11월 20일(수)

정병진목사 


에스겔은 크게 2가지 환상을 본다. 하나는 "하나님의 보좌"에 대한 환상이고 또 하나는 "새 예루살렘 성(도시)과 성전"에 대한 환상이다. 전자는 1장과 10장에 나오고, 후자는 40~48장에 걸쳐 나온다. 그 중간에 두루마리 책에 기록된 재앙들이 나온다. 고로, 에스겔서의 책의 구성은 영락없이 요한계시록과 흡사하다. 그래서 에스겔서를 어떤 이는 "요한계시록의 축소판"이라고도 부른다. 그만큼 요한계시록(모든 것의 완성)을 이해하는 데 에스겔은 매우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주와 다음주에는 에스겔과 요한계시록을 비교해보기로 했다.

2019-11-13(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스겔강해(20) 에스겔이 본 환상과 요한계시록과의 상관관계(1)(겔48:30~35)
https://youtu.be/ZF-GbIDLkVk


1. 들어가며

  에스겔서는 정말 놀라운 예언의 책이자 계시의 책이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신약의 책이 한 권 더 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도 에스겔서와 마찬가지로, 신약성경 중에서 유일하게 예언의 책이자 계시의 책인 것이다. 먼저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의 책의 구성을 보자. 놀랍게 거의 비슷하다.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이 먼저 나오고 이어서 중간에 재앙들이 나오고, 마지막에 가서 새 예루살렘 성(성전)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구성 면에서 보나 내용면에서 보나 가장 많이 에스겔서를 많이 빼닮은 요한계시록을 에스겔과 서로 비교해보는 것은 대단한 유익이 아닐 수 없다고 하겠다. 어쩌면 제2이사야서(40~66장)를 신약성경(마태복음~요한계시록)의 축소판이라고 정의한다면, 에스겔서는 "요한계시록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다음 시간과 두 차례를 나누어, 에스겔서를 요한계시록의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다시 말해, 에스겔서가 얼만 요한계시록의 배경과 바탕이 되어있는지를 살펴봄으로서, 요한계시록이 왜 예언과 계시의 완성의 책이라고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 에스겔서의 독특한 특징은 무엇인가?

  에스겔서는 요한계시록과 비교해 볼 때에 어떤 책인가? 우선 첫째로, 책의 구성에 있어서 예언서요 계시서인 요한계시록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에스겔서를 잘 알고 있었거나 에스겔서를 쓰게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가 시대만 차이가 날 뿐 거의 동일한 것을 보았기 때문일른지 모른다. 왜냐하면 둘 다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과 하나님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과 성전을 보았기 때문이요, 그것을 책의 맨 앞과 맨 뒤에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우리도 에스겔서를 통하여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주변의 광경 그리고 하나님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과 성전의 모습을 비교해는 것이 가능하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장차 메시야로 보낼 존재가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에스겔 3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장차 보내주실 메시야는 다름이 아니라 여호와다. 여호와께서 친히 선한 목자로 오셔서 친히 이스라엘을 다스리겠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으로 오신 것이다. 다시 말해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메시야로 오실 것임을 에스겔서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셋째,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의 약 700년의 시간차이가 있어, 하늘의 광경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비교해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에스겔서이 쓰여진 시기는 B.C.592년~571년경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A.D.95~96년경에 쓰였다. 시간차는 약 700년 가량 나는 것이다. 하지만 하늘의 광경이 많이 달라졌다. 에스겔서에는 없던 것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며(예를 들어, "24장로들"), 네 생물의 날개가 2쌍에서 3쌍으로 달라진 것이다. 넷째, 같은 것을 묘사하고 있지만 에스겔서에는 없지만 요한계시록에는 있는 것과 에스겔서는 있지만 요한계시록에는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에스겔서는 두루마리에 기록된 대재앙을 간단하게 묘사한다. 그것은 칼과 기근과 전염병과 사나운 짐승들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는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은 3대7중재앙으로서 다양하고 많거 커졌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의 재앙은 일곱인과 일곱나팔과 일곱대접재앙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에스겔서에는 자세히 기록되었으나 요한계시록에는 짧게 기록된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새 예루살렘 성에 있는 성문의 12지파의 이름들이 요한계시록에는 나오지 않지만 에스겔서에서 나오고 있고,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에게 땅의 분배가 어떻게 이루어지에 대해 요한계시록은 언급하지 않지만 에스겔은 언급하고 있고,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의 직분 중에 제사장과 땅의 왕들이 있는데, 이들이 어떤 자격을 얻어야 그러한 직분을 얻게 되는지 에스겔이 더 잘 묘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서 조금 미흡하다고 느끼는 것이 있다면 에스겔을 통독해보기를 권장한다.

 

3.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 보좌의 환상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에스겔이 환상 중에 올라가 본 하늘에는 한 마디로 궁창과 하나님의 보좌와 보좌에 앉으신 이와 네 생물이 있었으며, 하나님의 음성과 천사들의 날개 부딪히는 소리가 있었다. 에스겔 보았던 하나님의 보좌는 수정같이 맑은 궁창 위에 있었으며, 그 보좌의 모양이 남보석 같았고 그 보좌 위에 사람같은 한 분이 앉아 계셨다(겔1:26~28). 그분의 허리 위의 모양이나 허리 아래의 모양은 달아오른 금붙이와 같은 광채가 사방으로 나고 있었고, 무지개가 그 보좌에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네 생물들의 머리 위에 수정같이 맑은 궁창(펼쳐진 광활한 공간)이 있었다(겔1:22).

  그런데 에스겔은 보좌를 보기 전에 먼저 본 것은 보좌 주위에 있는 네 생물이었다(겔1:5~21). 네 생물은 하늘에 있는 그룹천사 형상을 지니고 있었는데(겔10:15,20), 그들은 꼭 사람의 모습같았다(겔1:4~13). 그들의 모습은 특이했으니, 각각 사방으로 네 개의 얼굴을 가졌고, 네 개(2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이때 네 생물의 사면 얼굴모습은 송아지(그룹), 사람, 사자, 독수리의 얼굴이었다(겔1:10, 10:14). 네 생물들의 밑에는 횃볼같이 타는 바퀴같은 것이 있었고 이 바퀴에 둘러가면서 눈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 생물이 가고자 하면 바퀴가 들려져서 이동하였다(겔1:15~21). 그리고 날개가 부딪히는 소리는 놀랍게도 "많은 물소리" 같았다(겔1:24, 3:13). 그리고 네 생물의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모양 같은 것이 있었다(겔10:21).
  그러나 계시록에 나오는 네 생물은 얼굴 모습이 다르다. 각 생물들은 오직 한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날개는 늘어나서 6개(3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요한이 그 생물이 모습을 한 쪽면만을 봐서 한 면만이 보여진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당시에는 더이상 4면의 얼굴보다도 한 면의 얼굴만을 가져도 상관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의 네 생물의 날개는 모든 것이 완성된 후이기 때문인지, 그들의 권위가 훨씬 더 올라가 있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네 생물의 날개가 두 쌍에서 세 쌍으로 늘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700년이 지난 후에는 그만큼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것이 대한 보상이 주어진 것 같다.

  그러나 확연히 다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에스겔을 비롯한 다른 구약의 성도들은 한 번도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 있는 24장로들과 거기에서 경배하고 찬양하고 있는 성도들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아직 구약의 성도들이 부활체를 입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부활체를 입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부활체를 입기 전까지 구약의 성도들 중에는 부활체를 입은 자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영체로서 천국에 있는 낙원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부활의 첫열매로서 부활체를 입고 하나님의 보좌에 앉게 되었고, 그후에 구약의 성도들은 한꺼번에 부활체를 입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가 있게 된 것이다. 그때 구약의 대표성도들 12명이 12개의 보좌 위에 앉게 되었고(아마도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 등이 앉아있지 않을까 추정해본다), 그리고 신약의 12사도들(가룟유다를 대신하여 사도바울이 앉아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도 12보좌에 앉게 된다. 그리고 신약의 성도들은 죽으면 곧바로 부활하여 생명의 부활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 보좌에 앉아계신 예수님을 뵈옵고 있는 것이다.

  그때 보좌로부터 전능자로부터 큰 음성이 들려왔다.  이때 “보좌 위에 앉으신 이"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은 꼭 “맑은 물소리”와 같았다(겔43:2). 그런데 전능자의 "맑은 물소리"같은 음성은 “그룹들의 날개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와도 같았고 “군대가 떠드는 소리”와도 같았다(겔10:5, 1:24). 그런데 요한계시록을 보면, "많은 물소리"와 같은 음성은 “예수님의 음성”인 것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계1:8,21:6,22:13). 더욱이 예수님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처럼 들리기도 했지만(계1:15) “나팔같은 큰 음성”으로 들리기도 했다(계1:10, 4:1). 또한 천국에서 “많은 물소리”의 음성은 “구원받은 백성들의 찬양의 음성”이기도 했다(계19:6).

 

4. 두루마리 책과 책을 먹는 행위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어 보좌에 계신 하나님께서 손을 내밀어 에스겔에게 한 권의 두루마리 책을 주신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서 먹으라고 하신다(겔2:8~9). 그런데 두루마리 책은 안팎으로 글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그 글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된 책이었다(겔2:10). 그것은 장차 에스겔이 예언한 계시의 내용이었는데, 그것의 내용은 재앙이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입에 넣어준 책은 달기가 꿀 같았다(겔3:3). 비록 재앙의 말이 기록되기는 했어도 그 말씀은 엄연히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마찬가지로, 사도요한도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의 말씀이 기록된 두루마리에 대한 환상을 보았고(계5:1), 또한 작은 두루마리는 자신이 직접 받아서 먹게 된다(계10:2). 먼저, 사도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이로부터 어린양이 일곱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 책을 받더니, 그 인봉을 떼는 장면을 보게 된다(계5:1,5,7~8). 거기에는 장차 되어질 일이 기록되어 있었다. 물론 그것은 재앙의 기록들이다. 그렇다. 요한계시록에는 2개의 두루마리 책이 나온다(계5:1, 10:2). 하나는 일곱 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 책인데(계5:1), 큰 책이었고 봉인되어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6~22장에 나오는 “장차 될 일”을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펴놓인 채 있는 “작은 두루마리 책”이 하나 더 나온다(계1:2,8~10). 그것은 이미 봉인된 책들이 풀려졌고 여섯째 나팔재앙까지 다 떼어진 상태이므로 이제 "작은 두루마리"가 된 것이다. 예수께서 재림을 준비해야 하시기 때문에 힘센 천사에게 위임한 것이다. 이것 역시 일곱째 나팔의 재앙이 기록된 책이다. 그런데 이때 사도요한이 받아서 먹었던 "작은 두루마리"도 사실은 에스겔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먹었을 때에는 사도요한의 입에서는 꿀같이 달았다. 하지만 그것이 뱃속에 들어갔을 때에는 쓰게 되었다(계10:9~10). 그것 안에 수많은 재앙들이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5. 장차 일어날 재앙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두루마리 책에 기록되어 있는 재앙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된 것이었다(겔2:10). 그리고 그 내용을 살펴보니, 재앙들은 하나님께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과 ‘사나운 짐승’으로 예루살렘을 파멸시키겠다는 것이었다(겔5:16~17, 6:11~13, 7:5~10,15~16).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보면, 일곱인의 봉인된 두루마리의 내용 역시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을 담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다 재앙은 아닌듯 보인다. 왜냐하면 첫째인을 뗄 때에 나온 흰 말은 재앙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계6:8). 아마도 복음전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둘째인으로 인한 붉은 말, 셋째인으로 인한 검은말, 넷째인으로 인한 청황색말의 출현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인한 재앙을 의미히는 것이다(계6:2~8). 그런데 이때 사용된 재앙의 종류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만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땅의 짐승들"도 들어있었기 때문이다(계6:8). 그것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등장하는 땅의 짐승들(계13:11)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자 다섯째인이 떼어질 때부터 사람이 죽어가는 재앙이 임하기를 시작하였다. 곧 다섯째인이 떼어지자, 짐승에 의한 순교자 재앙이 발생하였으며(계6:9~11), 여섯째인이 떼어질 때에는 해와 달과 별들로 인한 자연 재앙이 임하여 사람을 해치게 되었다(계6:12~17).
  그리고 일곱째인은 총7개의 나팔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첫째나팔과 둘째나팔과 셋째나팔과 넷째나팔의 재앙은 지해강천(땅과 바와 강과 하늘)에 대한 재앙이었고(계8:1~13), 다섯째나팔은 짐승을 통해 사람을 죽이는 재앙이었다(계9:1~12). 그리고 여섯째나팔은 온 인류가 죽은 아마겟돈전쟁을 예비하는 것이었다(계9:13~21). 그리고 일곱째나팔이 불어지는데, 일곱나팔은 일곱개의 대접재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은 짐승의 치하에 내리는 일곱대접 재앙들이었다(계16:1~21). 이때 첫째와 둘째와 셋째와 넷째대접 재앙은 지해강천(땅과 바다와 강과 하늘)에 내리는 재앙이었고, 다섯째대접재앙은 짐승의 보좌에 내리는 재앙이었으며, 여섯째대접재앙은 사탄의 삼위일체(용, 짐승, 거짓선지자)가 모여 인류를 아마겟돈으로 모으는 것이었고, 마지막으로 일곱째대접재앙은 큰 성 바벨론이 무너지는 재앙이었다. 큰 성 바벨론인 음녀가 죽는 재앙이었던 것이다.

 

6. 에스겔은 어떻게 공간을 초월하여 이동할 수가 있었는가?

  이제는 에스겔이 어떻게 공간을 초월하여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을 보게 되었으며, 여러 장소애 순식간에 이동하여 그곳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았는지에 관한 살펴보도록 하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을 통해서, 에스겔의 영혼을 육체로부터 분리한 뒤 하나님의 보좌에도 데려갔을 뿐만 아니라, 여러 장소에 순식간에 이동하여 그곳의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게 해 주었다. 이러한 예는 겔8:3과 11:1의 경우다. 이때 에스겔은 바벨론에 있있지만 순간적으로 예루살렘으로 이동하여, 때로는 바벨론의 그발강가의 델아빕에 갔다 올 수도 있었고(겔3:12,14),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볼 수가 있었다(겔8:3). 그리고 겔11:24의 경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이동하여 그의 영이 바벨론지역에서 포로인들이 일하고 있는 일터로 데려다 주기도 하였다. 영이 빠져나가서 순식간에 이동을 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요한계시록에도 고스란히 나온다. 사도요한의 몸은 밧모섬에 있었지만 그의 영은 몸에서 빠져나가 하늘로 올라가서 주님이 보여주시는 계시와 환상을 보고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계1:10, 4:1~2).

 

7. 나오며

  에스겔서는 제1장과 10장에서,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을 소상히 소개해준다. 그러니 이 책은 구약성경의 책들 가운데에서 몇 안 되는 독특한 계시서에 속한다. 그리고 에스겔이 예언할 때에는 요한계시록의 저자인 사도요한처럼, 온갖 재앙이 기록되어 있는 두루마리를 먹고 예언을 한다. 그렇다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4가지였다.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인한 재앙 뿐 아니라 땅의 짐승들로 인한 사망 재앙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대도 아마도 시기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문제는 온갖 재앙을 받고 있는 자라도 다시 회복할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믿음"과 "회개"를 통한 방법이다. 이것은 다음 주에 더 소상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2019년 11월 13일(수)

정병진목사 


하나님께서는 B.C.586년 우상숭배하고 주변의 대제국을 의지하는 남유다를 확실히 심판하신다. 그러나 그것은 본심은 아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위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을 다시 회복시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장차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때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는 것인가? 그것은 3가지 방법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다시 회복시키실 이스라엘은 과연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인가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인가? 이것을 모르면 하나님의 경륜을 놓치고 만다.


2019-10-09(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스겔강해(15) 성령의 내주의 약속과 에스겔 골짜기의 하나님의 군대의 환상(겔36:16~37:14)

https://youtu.be/WzIsc_Vq5Mo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멸망당한 이스라엘을 왜 회복시켜주겠다고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려 하시는 것인가? 또한 어떻게 회복시켜주겠노라고 말씀하시는가? 바벨론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이스라엘이 불쌍해서 회복시켜주려고 하시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당신 스스로 이스라엘에게 너무심하게 대했다는 생각 때문에서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멸망직후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다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주겠노라고 약속하신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주에 이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회복시켜주려고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회복시켜주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2. 하나님께서는 세일산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세일산 곧 에돔에 대해 심판을 다시 한 번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왜 이미 선포한 말씀(겔25:12~14)을 다시 되풀이하시는가? 그것은 에돔이 과거에 행했던 일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면서, 에돔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행한대로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에돔을 고스란히 심판하시고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주겠다는 뜻이다. 그것은 에돔이 행한 비열한 일들 때문이었다. 3년동안 예루살렘이 에워쌓인 가운데 예루살렘 시민이 그곳에서 도망을 쳐 나왔을 때에 에돔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호해주거나 결코 숨겨주지 않았다. 오히려 이스라엘 사람들을 무참히 죽였으며 그리고 바벨론에게 갖다 바쳤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에돔이 행한 일에 따라 그들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주겠노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상의 사실을 통해 비록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심판을 집행했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 공의를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어쩔 수 없는 결단이었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3. 이스라엘의 회복은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의 무엇을 회복시켜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2가지 방면이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산들 곧 이스라엘의 땅에 대한 회복(겔36:1~15)이요, 또 하나는 이스라엘의 족속들 곧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회복(겔36:17~38)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와 불의한 일들 그리고 이방제국을 의지함으로 인하여 심판했던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켜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먼저는 황폐한 이스라엘의 땅을 기름진 땅으로 바꿔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곳에 나무들이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며, 사람들이 성읍 안에 가옥을 건축하게 하고 많이 거주하게 할 것이며, 사람과 짐승이 번성하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겔36:8~11)

  그리고 그 다음으로 죄로 인해 심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결케한 후에, 그들의 마음 속에 새 영을 두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게 하겠다는 것이다(겔36:26~27).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거주하면서 하나님만 섬기는 자들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겔36:28)

 

4.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주겠노라고 약속하셨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주겠노라고 말씀하신 것인가? 그것은 이스라엘의 멸망의 처참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심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겔36:22~23). 이스라엘이 우상숭배하여 더럽힌 하나님의 이름을 다시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무슨 말인가? 멸망당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다시 회복시키려 하는 것은 먼저는 하나님께서 이미 전에 선조들에게 약속하신 바를 성취하기 위함이요, 다음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가운데 멸시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그렇다. 우상을 숭배하고 이방제국을 의지하며 강포를 행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심판하셨다. 수십만명이 칼에 죽었고, 약 5만명은 포로로 잡혀갔으며, 나머지는 버려진 사람들이 땅에 남아 간신히 목숨을 이어가는 수준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켜주려고 하는 것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자들이 잘 해서도 아니요, 남겨진 약한 자들이 잘 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만물의 주관자이시며 통치자이며, 한 번 하신 말씀은 반드시 실행하신다는 것을 만 천하로 하여금 알게 하기 위함이었언 것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신의 이름의 명예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신다. 그러므로 십계명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일컫는 자를 결코 죄없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는 추가된 2가지 방법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데 사용하실 방법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우리는 지난 주에 그것에 관하여 2가지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오늘은 2가지를 더 배울 것이다. 고로 지난주에 이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때 사용하려는 방법에는 총 4가지 방법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회개를 외치는 선구자의 준비를 통한 회복(겔33:1~20)이다. 이것은 마치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메시야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세례요한의 준비와 거의 비슷하다. 둘째,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오실 분 곧 선한 목자를 통한 회복(겔34:11~31)이 그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양들의 목자가 되심으로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겔36:15). 그리고 다시 보내주마고 약속한 선한 목자는 하나님의 종이었던 다윗과 같은 목자로서,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과 화평의 언약을 맺고 악한 짐승을 그치게 하심으로 회복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겔36:25).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그것은 선한 목자(요10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이었다. 고로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모든 예언은 사실 영적인 이스라엘의 회복이며, 이는 교회에게 실행하는 것들이다. 신약시대 예수님을 제외하고 남유다의 멸망이후 다윗과 같은 자는 전혀 없었다. 그후에도 아마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그것에 대한 기대를 하지 말라. 고로, 요즘 이스라엘의 성전제사의 회복, 핍박받는 이스라엘 백성들, 실제적으로 이 땅에 실현될 것으로 믿고 있는 천년왕국의 제사장으로서의 참여는 결코 실현되지 아니할 것이다. 다 영적인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성령의 내주를 통한 회복(겔36:26~27, 11:19~20, 렘31:31~34)이다. 그전까지 이스라엘의 회복은 율법에 능통한 위대한 선지자들이나 제사장들에 의한 회복이었다. 하지만 더이상 율법책을 이용한 회복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분이 행하시고자 하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성령을 성도들의 마음 속에 두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을 받은 자의 마음은 굳은 마음에서 부드러운 마음이 될 것이며,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면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율법과 법도가 지켜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6. 하나님께서는 에스골 골짜기의 마른 뼈의 환상은 무엇 때문에 에스겔에게 보여주셨는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의 땅과 백성에 대한 회복의 말씀을 예언케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에스겔을 그분의 영으로 어느 뼈가 가득한 골짜기에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그에게 마른 뼈들을 대언할 것을 명령하셨다. 그러자 에스겔은 수많은 뼈들을 향하여 대언하기를 시작했다. 첫째는 뼈들 위에 힘줄이 생겨져라. 둘째는 힘줄 사이에 살로 채워져라. 셋째는 살로 채워진 피부에 가죽이 덮여져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 그 사람에게 생기(영)이 들어가라였다. 그러자 그 골짜기는 갑자기 큰 군대가 가득채워졌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그 뼈들은 "이스라엘의 온 족속"을 가리키는 것이었다고 말씀하셨다(겔37:11).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런 명령을 하게 한 것인가? 그것은 간단하다. 아무런 소망이 없고 희망이 없는 상태에 놓인 이스라엘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죽은 사람도 살아나 큰 군대를 이루듯이 하나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의 말씀은 언제가는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점이다.

  더불어 우리는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의 환상을 굳이 장차 성도들의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섣불리 해석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오순절 성령강림이후 모든 사람들은 죽은 즉시 부활체로 갈아입고 곧바로 심판을 받은 후에 천국과 지윽으로 이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은 다음에는 중간상태에 있어서 무덤에서 잠을 자다가 주님이 오시는 날 영혼과 육체가 도킹을 하여 부활체로 바뀐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잘못 알려진 부활관 때문에 사람들은 죽은 다음에 자신의 시신이 묻힐 무덤을 아름답게 꾸미려하는 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헛된 일이라는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미 죽은 자들을 통하여 큰 군대를 만드시려고 하시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장차 재림하시게 될 예수님의 군대로 그들을 조성하시고자 함이다. 즉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죽은 성도들은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하늘에 올라가 거기에서 천년동안 왕노릇하고 있다. 이것을 일컬어 "천년왕국"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저 하늘나라에 구원받을 숫자가 다 차게 된다면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천국에 들어가서 천년동안 왕노릇하고 있던 성도들을 데리시고, 악의 무리들을 심판하시러 하늘로부터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실 것이다. 그리고 곡과 마곡의 전쟁(혹은 아마겟돈 전쟁)을 통하셔, 악의 무리를 쳐단하심으로 인류와 우주의 모든 역사를 끝내버릴 것이다. 이때에 그분의 뒤를 따르는 군대가 필요하다. 이러한 군대가 하늘나라에 준비되어가는 과정을 겔37장의 마른 뼈의 환상을 통해 보여주신 것이다.

 

7. 나오며

  우리는 이상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회복예언이라는 것은 결코 육적인 이스라엘의 회복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들었다. 그렇다. B.C.722년이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하고, B.C.586년 남유다가 멸망당한 이후, 이스라엘은 에스겔이 예언한대로 결코 그대로 회복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예언은 사실 육적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회복 예언이 아니었으며,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회복예언이었기 때문이다. 즉 에스겔의 회복예언은 유대인을 위한 예언이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포함된 교회를 위한 예언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을 보내주시는 것도, 선한 목자를 보내주시는 것도, 믿는 자들 마음 속에 성령을 보내주시는 것도 그리고 하나님의 군대를 준비해 주시는 것도 다 영적인 이스라엘을 위한 곧 교회를 위한 예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공생애 기간에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분은 정말 이스라엘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 찾아오셨지만 정작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맞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그러나 반대로 선한 목자로 이 세상에 오셨던 예수께서는 많은 죄인들의 구속을 위한 속죄제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고 죽으신 후에는 양의 우리(울타리)에 들지 않은 많은 양들도 이끌어서 한 목자에게 있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통한 이방인들의 구원을 예언한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19년 10월 09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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