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과연 언제 오실까? 그때가 과연 얼마나 남았을까요? 어느 교단에서 말하는 것처럼, 마지막 시기에 있을 7년대환난 전에 오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7년대환난 후에 오시는 것인가? 그리고 7년 대환난은 정말 맞는 주장인가? 성도들의 휴거는 환난전에 있는가 아니면 주님의 지상재림시에 일어나는 것인가? 두 증인의 활동 시기는 언제이며, 대환난 시기에 남겨지는 음녀는 대체 누군가? 주님의 재림의 시기와 대환난에 관련한 모든 비밀이 여기에 있다.

 

2022-04-24(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천국복음(52) 최종회_주님은 과연 언제 오시는가 환난전인가 환난후인가?(계22:16~2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sCzeIy4ah-w [혹은 https://tv.naver.com/v/26517477 ]

 
 

1. 들어가며

  주님은 과연 언제 오실까? 그것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그 날짜와 시간을 예언했다. 우리 시대에 겪었던 가장 큰 미혹은 '다미선교회'였다. 그들은 1992년 10월 28일 자정에 온다고 했다. 하지만 오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단들이 역사적으로 수두룩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가르쳐준 것만큼 알면 되고 성경이 말하는 것만큼 그날을 준비하면 된다. 그렇다면 주님이 오실 즈음에는 어떤 일들이 있는가? 과연 '7년대환난'이라는 것이 있는가? 그리고 성도들은 환난전에 휴거되는 것인가? 그리고 주님의 재림은 공중강림과 이중재림이라는 2가지로 재림하시는가? 아니면 지상재림 한 번 뿐인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260일이나 42달 그리고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어떤 의미인가?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666표를 찍을 때에는 언제인가? 참으로 궁금한 것이 많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가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주님 오실 때에 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이것은 지금 우리 시대에 어느 시간대 위치해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그날을 깨어서 준비하자는 데에 있다. 종말의 때에 관한 갖가지 이론이 너무나 많다. 어떤 학설을 따라가든지 그날을 깨어서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날에 이르러 주님을 부끄럽지 않게 준비시켜준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2. 주님이 언제 오시는지에 관한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주님께서 언제 오시는지에 관하여는 대체로 환난전에 오신다는 것과 환난후에 오신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환난 중간에 오신다는 이야기도 만만치 않다. 여기서 '환난'이라는 말은 '대환난'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보통 '7년대환난'이라고 언급되는 환난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대환난'의 기간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놀라운 사실은 요한계시록에서는 '7년대환난'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럼, '7년대환난'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가? 사실 7년대환난이라는 말은 다니엘 9장에 나오는 다니엘의 70이레에 관한 예언에서 유래한 것이다(단9:24~27). 70이레 가운데, 마지막 한 이레(7년)가 인류의 마지막 시기에 도래한다고 생각하고 그 기간을 7년으로 잡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다니엘 9장에서는 69이레(483년)가 지난 후에 공백 기간이 있고 그리고 나서 미래의 어느 시기에 나머지 1이레(7년)가 온다고 말씀이 없다. 다니엘의 70이레는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려는 영이 난 후로 줄곧 70이레의 기간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환난의 기간과 관련하여 요한계시록에서는 '1,260일'(계11:3, 12:6) 혹은 '42달'(계11:2, 13:5) 혹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계12:14)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한 달을 30일로 계산하면 이 기간은 '3년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보통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분들은 전3년반과 후3년반이 있다고 가정하고 이것을 합쳐서 7년을 계산하기도 한다. 그리고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표현도 다니엘서에 나오기 때문에(단7:25, 12:7), 그것이 바로 '7년대환난'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의 경우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교단에서는 7년 대환난과 환난전 휴거를 기정사실로 믿고 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에는 7년 대환난이라는 기간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예수께서는 7년 대환난에 대해 말씀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예수께서 이 기간에 대해 언급하셨다면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직접적으로 하신 말씀은 결코 거기에다가 더하기나 빼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시라도 예수께서 7년 대환난을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어떤 이론이든지 재고해야 할 것이며 그것을 기정사실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요한계시록이라는 말씀과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말씀하신 종말에 관한 말씀을 서로 비교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혹시 둘 중의 하나의 말씀을 골라야 한다면, 우리는 전적으로 먼저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하신 말씀을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종말의 때에 관한 말씀들은 거의가 다 상징적이거나 환상의 이미지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말씀하신 환난의 기간은 환상이나 상징의 이미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말과 관련지어서 '환난'에 대해 언급하려 한다면 우리는 우선적으로 공관복음에서 기록하고 있는 말씀을 우선적으로 보아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이 최우선하는 것이다. 설령 사도요한이 언급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3.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주님의 재림은 환난전에 있는가 환난후에 있는가?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가운데 제자들에게 종말의 때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그리고 주께서 언제 어디로 오시는까지도 말씀해주셨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첫째로,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짜와 그 시간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하셨다는 것이다(마24:36). 그것은 아들의 권한 밖에 있기 때문에 아들이신 예수님도 모르고 천사들도 모른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날짜와 그 시간을 계산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다만 징조를 통해서 그날이 가까이 가까이 왔음을 알고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마24:42). 왜냐하면 깨어있는 자가 그날에 남겨둠을 당하지 않고 데려감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마24:40~41). 이 말씀은 종말의 어느 시기에 도래하게 될 '휴거'사건을 말씀하신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종말의 때와 관련지어서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주님께서는 환난 후에 오신다는 것이다(마24:29~31). 환난후 휴거에 관하여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셨다. 

마24:29-31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그렇다. 주님께서는 환난 후에 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오실 것이다. 그때 주님께서는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당신의 택하신 자를 불러 모으실 것이다. 이것을 두고 '휴거'라고 말한다. 또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환난이란 단순히 환난이 아니라 '대환난'이라고 하셨다(마24:21). 마지막 시기에 있을 '대환난'은 창세로부터 그날까지 없었던 환난일 것이며 또한 그 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마24:21). 그러므로 만약 주님께서 그 대환난의 날을 감하지(단축하지) 않으신다면 모든 육체가 구원얻지 못할 것이므로, 주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환난의 날을 감해주실 것이라고 하셨다(마24:22). 그러므로 설령 7년 대환난이나 전3년반 내지는 후3년반이라고 하는 환난의 시간이 실제한다고 할지라도, 그 날들은 분명히 감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환난의 기간을 산술적으로 '7년' 혹은 '3년반'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없다. 

 

4. 요한계시록에는 주님의 재림과 환난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주님의 재림과 환난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 주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즉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어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의 예언이나 묵시 등을 적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환상과 예언과 묵묵시가 기록된 요한계시록은 마태복음 24장과 마가복음 13장과 누가복음 17장과 21장의 말씀을 완전히 익힌 후에 추가적으로 보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주님의 재림과 종말의 시기와 환난에 대하여 기본이 공관복음서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후에 요한계시록을 보면 요한계시록이 열리게 된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의 말씀에 나와있는 주님의 재림과 환난의 기간에 대해서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가?

  첫째, 주님은 일곱번째 나팔소리와 함께 하늘(공중)에 오신다고 하셨다(계11:15). 이때 울려퍼지는 일곱 번째 나팔소리는 공관복음서에는 "큰 나팔 소리"(마24:31)라고 표현되어 있고, 사도 바울은 그것을 "마지막 나팔 소리"(고전15:51), "하나님의 나팔 소리"(살전4:16)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주님의 재림의 최종적인 징조를 말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불게 하시는 나팔소리인 것이다. 그런데 이 나팔소리가 요한계시록에서는 모든 재앙이 끝난 후에 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소한 첫째 화(다섯 번째 나팔 재앙)와 둘째 화(여섯 번째 나팔 재앙)가 지난 후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계속해서 다른 각도에서 설명할 것이다.) 고로 모든 성도들은 첫째 화와 둘째 화를 다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환난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마24:21). 그럼, 일곱 번째 나팔소리와 함께 주님이 하늘에 오신다는 것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그것은 주 하나님의 칭호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한 분 하나님이신 주 하나님에 대한 칭호로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이 세 번이나 나온다(계1:4,8,4:8). 그런데 일곱 번째 나팔소리 이후에 주 하나님에 대한 칭호가 바뀌어져 있다. 일곱 번째 나팔소리 이후에는 "전에도 계셨도 이제도 계신 이"라고만 나오기 때문이다(계11:17, 16:5). 왜냐하면 "장차 오실 이"라는 말씀이 이미 성취된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이미 하늘(공중)에 오셨기 때문이다. 

  둘째, 하늘(공중)에 오신 예수께서는 셋째 화(일곱 번째 나팔 재앙)가 적그리스도 치하에 내려지기 전에 성도들을 휴거시킨다고 하셨다. 고로 휴거된 성도들은 아마도 일곱 대접 재앙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일곱 대접 재앙이 적그리스도 치하에 쏟아지는 기간은 매우 짧은 기간일 것이므로 성도들 모두가 다 환난의 시기를 통과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다만 주님께서는 대환난의 날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대환난의 끝 어느 부분에서 성도들을 휴거시키실 것이다. 그런데 그 날짜와 그 시간이 언제인지가 요한계시록에서도 뚜렷하게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일곱번째 나팔 재앙 때에는 신실한 성도들이 공중으로 불려 올라가서 주님을 영접한 후에 아마겟돈전쟁을 치르실 주님의 뒤를 따른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께서는 처음에는 어린양으로서 두루마리의 계시들을 하나씩 열어보이시다가(계5~8장), 다섯 번째 나팔(계9:1~12)과 여섯번째 나팔(둘째 화)(계9:13~21)이 울려퍼진 이후, 이제 작아진 두루마리를 사도 요한에게 넘겨주고는(계10장), 금면류관을 쓰신 채 구름 위에서 낫을 휘둘러 땅의 곡식을 거두실 것이다(계14:14~16).

  셋째, 성도들의 휴거 후 남겨진 성도들은 음녀에게 속한 자들이라고 하셨다(계17~18장, 14:8, 16:17~21). 그러므로 땅의 곡식이 추수된 이후에 이 땅에는 불신자들(적그리스도에 속한 자들)과 음녀에 속한 성도들만이 남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음녀'라 함은 신앙의 정절을 지키지 못한 채 세상과 짝하여 살아가는, 양다리 신앙을 가진 성도들을 가리킨다(계17~18장). 이와 반대로 해를 옷입은 여자에게 속해 있는 처녀들이 있는데, 이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그분만을 따라가는 자들이다(계14:1~5). 이들은 세속에 물들지 않은 진실한 신앙인들로서 환난의 끝부분 어느 시점에 휴거되어 공중으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그럼 음녀는 언제까지 지구상에 살아남아 있는가? 그것은 일곱 번째 나팔 재앙인 일곱 대접 재앙들을 다 받기까지 이 세상에 남아 있을 것이다(계16:17~21). 그래서 이들은 주님께서 아마겟돈 전쟁(혹은 곡과 마곡의 전쟁)이 치르기 직전까지 남아서 환난을 다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음녀로 표현되는 큰 성 바벨론이 일곱 번째 대접 재앙 때에 비로소 주님으로부터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의 잔을 받고 처절하게 파괴될 것이라고 말씀하였기 때문이다(계16:17~21)

  넷째, 성도들의 휴거 후 예수께서는 이미 천국에서 함께 따라온 천국의 성도들(천년왕국 성도들)과 천사들 그리고 알 수 없는 어느 시점에 휴거시킨 성도들과 함께 아마겟돈 전쟁(곡과 마곡의 전쟁)을 치를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성도들의 휴거는 일곱인에 해당하는 일곱 나팔 재앙 중에서 여섯 번째 재앙(둘째 화)까지 받은 후에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싯점이 어느 때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둘째 화가 있은 후 셋째 화가 이르는 어느 시점에 진실한 성도들이 먼저 휴거된다는 것이다. 먼저 휴거되는 목적은 성도들이 받을 환난이 너무 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처녀의 비유ㄹ르 보면, 지상에 재림하실 신랑을 마중 나가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때 신랑되신 예수께서는 이미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하고 있는 성도들(천년왕국 성도들)과 함께 그리고 그분의 천군천사들과 함께 공중으로 오실 것이다. 그리고 진실한 성도들을 먼저 휴거시키실 것이다(이때는 그때 죽은 자가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살아있고 남아있는 자가 그 뒤를 이어 홀연히 변화되어 공중으로 휴거될 것이다). 그리고 인류 최후의 영적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을 치르실 것이다(참고로 이때 치를 전쟁은 아마겟돈 전쟁인데, 이 전쟁이 곧 곡과 마곡의 전쟁이다. 이러한 사실은 정병진목사의 요한계시록 52주 강해를 참고하기 바란다.) 

  다섯째,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첫째 화(다섯째 나팔 재앙)와 둘째 화(여섯째 나팔 재앙)가 주님 오시기 전까지 게속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환난을 겪는 것이다. 사실 일곱 인의 내용은 일곱 가지 나팔 재앙 중에서 여섯 번째 나팔 재앙까지는 모든 성도들도 다 받을 재앙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일곱나팔 재앙을 순서대로 보면, 처음 네 나팔은 '지해강천(地海江天)'의 재앙을 일으켜 각 장소 곧 땅과 바다와 강과 하늘 생물의 1/3을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치는 재앙 3가지가 올 것인데, 그것은 다섯 번째 나팔 재앙(첫째 화)이요 여섯 번째 나팔 재앙(둘째 화)이다. 첫째 화를 통하여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이 다섯 달 동안 황충(메뚜기) 재앙을 만나게 될 것이다(계9:1~12). 그리고 둘째 화를 통하여 지구에 사는 1/3의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다(계9:13~21). 여기까지는 모든 성도들이 다 받는 재앙인 것이다. 그리고 일곱째 나팔 재앙의 어느 시기에, 그것도 끝무렵 쯤에 성도들의 휴거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여섯째, 첫째 화와 둘째 화의 기간 중에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첫번째는 이 기간은 두 증인이 활동하는 끝자락이 될 것이다(계11:3~13). 왜냐하면 두 증인의 활동기간이 1,260일인데, 이 기간은 시작지점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대해서는 정확히 말씀하고 있다(계11:7).

  계11:7 그들(두 증인)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렇다. 두 증인의 활동이 끝나는 시점에 사탄이 올라온다. 즉 이때 무저갱으로터 올라오는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계13:1~10)도 아니요,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계13:11~18)도 아니다. 천년왕국의 마지막 시기에 주님이 무저갱에 갇혀 있는 사탄마귀를 잠깐동안 놓아주게 됨으로 그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260일이라는 기간은 그 기간이 영적인 기간인지 아니면 진짜 마지막 끝자락의 시기에 도래할 실제적인 기간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주님께서 승천하신 이후부터 시작된 환난의 날은 주님의 재림시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부터 혹은 마지막 시기의 어느 시점에, 바다짐승과 땅짐승이 연합하여 성도들을 죽이게 된다고 하였다(계13장). 그것이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데, 이러한 환난은 초기교회 때에도 있었다. 표를 받지 아니하면 매매를 하지 못하게 하여 그리스도인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고, 황제를 "주 하나님"으로 숭배하지 않는 자는 다 죽이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러한 일은 지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사탄마귀가 올라와서 짐승과 거짓선지자와 더불어 활동하는 잠깐의 기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기 동안에 성도들은 다 환난을 받게 될 것이다. 참고로 천년왕국은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지상에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하늘에 올라간 성도들이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것을 가리킨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병진목사의 요한계시록 52주 강해를 참고하라). 그리고 사탄의 감금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에 이미 일어난 일로서, 죄없는 예수님을 죽인 것 때문에 지상에서 활동하던 사탄마귀가 무저갱에 갇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 자신을 대신하여 다른 짐승 곧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그리고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을 시켜 그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천년왕국의 끝 무렵에는 그 놈이 직접 올라와서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일 것이다. 그리고 최종의 시기에 짐승(첫째 짐승=바다짐승)과 거짓선지자(둘째 짐승=땅짐승)와 연합하여 세상 만국을 미혹하고 땅의 왕들을 미혹하여 아마겟돈 전쟁 곧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세번째는 이 기간에 해를 옷입었던 여자가 광야로 가서 1,260일동안 양육받을 것이다(계12:6~17). 사실 여기에 나오는 1,260일 곧 42달 혹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그것이 산술적인 숫자인지 영적인 숫자인지는 예단하기가 쉽지 않다. 왜나하면 해를 옷입은 여자가 광야로 가서 1,260일동안 양육을 받는다고 하였는데, 그 여자가 광야로 가는 시기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아이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승천하는 직후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자가 광야로 가서 양육받은 기간(1,260일)은 예수님의 승천이후 재림 때까지의 모든 기간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환난이 지속되다가 어느 시기가 되면 진짜 1,260일이라는 기간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그때에는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진실한 성도들을 매매를 못하게 할 것이고 짐승과 그의 우상을 경배하지 않는 자는 죽일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가 도래하면 주님께서는 초자연적으로 성도들을 광야에 숨겨 양육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첫 열매로서 예수님을 낳고 그 뒤로 이기는 성도들을 산출하였던 바, 해를 옷입은 여자를 주님께서는 환난 중에서 지켜주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짐승에 의하면 죽임당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허락하심 하에 일어날 일이 될 것이며, 그런 자가 순교자의 숫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네번째는 이 기간동안 성전(교회의 성도들)이 이방인들(만국)에게 의해 짓밟힐 것이다(계11:1~2).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1장 첫 부분에서 이방인들(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에드네'로서 '만국')이 '거룩한 성'을 42달 동안 짓밟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나오는 '거룩한 성'이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가리키는데, 42달이라는 기간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기간도 실제적인 기간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기간을 가리킨듯 보인다. 그리고 거룩한 성 또한 상징적인 장소라고 보인다. 왜냐하면 이 시간에 만국이 성도들을 핍박하는 기간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또한 요한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의 백성들 곧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거주하는 공간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42달의 기간은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까지의 전 기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앞에서 언급한 '두 증인'이 활동하는 기간이나, 해를 옷입은 여자가 도망하게 광야에서 양육받는 1,260일이나 사실은 다 같은 기간인 것이다. 

  네번째는 이 기간에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성도들이 핍박하여 죽이기도 할 것이다(계13장). 이때 바다에서 올라오는 첫째 짐승(일명 '적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제국의 왕)와 땅에 올라오는 둘째 짐승(일명 '거짓선지자'로서 교회의 지도자)는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일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짐승(바다짐승)이 사탄으로부터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길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계13:7). 이 때는 성도들에게는 인내가 참으로 필요할 것이다(계13:10). 더욱이 첫째 짐승이 죽임을 당하고 이제 둘째 짐승(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으로서, 교회 가운데서 활동하는 '거짓선지자')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첫째 짐승을 위하여 표를 만들라고 하고, 짐승의 표(666표)를 받지 아니하는 자들을 죽일 것이 때문이다. 이것은 초기교회로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마지막 시기에 더 활성화될 것이다.

  다섯번째는 이 시기에 하늘에 있는 보좌자리인 144,000석의 자리에 이기는 성도들로 거의 다 채워질 것이다(계6:9~11, 14:1~5). 그리고 나머지는 셋째 화(일곱번째 나팔=일곱가지 대접 심판들)의 직후에 채워짐으로 완성될 것이다. 지금 천국에 있는 144,000석의 보좌 자리는 거의 다 채워진 상태에 있다. 몇 몇 자리가 비어있기는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이 마지막 시대에 그 자리들이 채워질 것이다. 그 자리가 채워지면 주님이 오신다. 그 빈 자리가 채워지는 기간이 곧 1,260일이며, 42달이며,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될 것이다. 

 

5. 주님이 공중으로 오시는 그 시점에는 무슨 일이 있는가?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언제 하늘(공중)으로 오실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통하여 그 싯점을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오심은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 같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살전5:3). 그러므로 그날을 준비하지 못한 자들은 그날이 도둑처럼 임할 것이다. 하지만 깨어있어 그날을 준비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그 싯점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둠에 있지 아니하는 자들은 그날이 도둑같이 임하지 않는다고 사도 바울은 말했다(살전5:4). 그러므로 진실한 성도들은 그날이 언제쯤 될 것인지를 예상하고 있다가 부름을 받고 공중으로 들려올라갈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천국에 이미 들어가 있는 성도들과 그의 천사들과 함께 과연 언제 공중으로 오시게 되는가? 그리고 그때쯤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

  첫째, 이 때 쯤에 이제 마지막 재앙인 셋째 화(일곱번째 나팔재앙=일곱대접 재앙들)가 시작될 것이다. 이 시점은 무저갱으로부터 용(짐승)이 올라와서 두 증인을 죽임으로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계11:7). 왜냐하면 성도들은 '첫째 화'와 '둘째 화'는 동일하게 받지만 적그리스도 치하(음녀 포함)에 내리는 '셋째 화'는 받지 않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여기서 '셋째 화'라는 것은 일곱 번째 나팔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일곱 가지 대접 재앙들을 가리킨다(계16장)

  둘째, 셋째 화의 시작 시기를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그때는 천년왕국이 끝나는 시점으로서 하나님께서 무저갱에 갇혀 있는 용을 잠깐 놓아주는 기간이 될 것이다. 거의 확실하건데 셋째 화는 진실한 성도들은 받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무저갱에 갇혀있던 사탄이 올라와 죽이는 환난은 실로 무시무시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날을 감하지 않는다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오히려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환난의 날들을 감하신다고 하셨다. 이 시기가 바로 그 시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천년동안(상징적인 기간으로 많은 시간을 가리킴) 왕노릇하던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하늘군대의 대열에 참여할 즈음에, 주님께서는 미가엘 천사(?)를 지켜서 무저갱에 갇혀있는 사탄마귀를 잠깐 놓아줄 것이다. 그것도 일시동안만 말이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모아서 아마겟돈 전쟁을 일으키라고 주시는 특별기간이다. 그러므로 이 때에 이 땅에 남겨진 성도들은 쭉정이나 음녀와 같은 성도들 뿐일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진실한 성도들이 휴거되어 하늘로 올라간 상태이므로 사탄 마귀는 명목상이지만 남겨진 세속적인 성도들을 핍박할 것이다. 그러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짐승에게 경배하고 그의 표를 받아 사탄의 편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도 극소수는 깨닫고 짐승을 경배하지 않으며,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할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 몇몇은 순교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8장에 보면, 음녀 곧 세상과 짝하여 사는 성도들이 죽임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놀랍게도 음녀가 짐승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다. 무저갱에서 사탄마귀가 올라오기 전까지, 음녀는 첫째 짐승과 놀아났다. 그래서 사탄을 대신하는 첫째 짐승을 힘입어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진찌 짐승 곧 사탄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는 것이다. 

  셋째, 일곱째 나팔이 울려퍼지면 용이 올라와서 마지막 대환난(대대적인 핍박과 살해)이 시작될 것이다. 그렇다. 주님은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오실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먼저 공중으로 오실 것이다. 그렇다고 환난전 휴거론자들이나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주의자들처럼 주님이 공중에서 7년동안이나 머물러 혼인잔치를 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천국에 들어가서 진행되는 어마어마한 행사이기 대문이다. 그 일을 공중에 잠시 머무는 동안 진행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재림하시어 공중에서는 7년동안 모든 성도들과 함께 혼인잔치를 하고, 지상에서는 유대인들이 남아서 핍박을 받다가 적그리스도를 거부하고 구원을 받는다는 설정은 처음부터 잘못된 설정인 것이다. 비록 본인이 혈통적으로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그때 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인내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 적그리스도의 치하에서 고난을 겪는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천년왕국의 끝부분에서 사탄이 올라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믿는 사람들이 그의 살륙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지혜로운 다섯 처녀 처럼 댓가를 지불하여 기름을 준비해 놓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날 남겨져서 사탄의 핍박을 받게 될 것이다. 그날이 되어셔 부랴부랴 준비하지 말고 지금부터 기름을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날의 핍박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견디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기 전에 미리 회개하여 깨끗한 자녀가 되고 주님께 드릴 옥합을 준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6. 나오며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만큼만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더이상 나아가려해도 아니 되고, 이미 나와있는 말씀인데 없다고, 모른다고, 아니 알 것 없다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환난의 날이 곧 도래할 것이다. 마지막 시기에 있을 환난은 이전보다는 더 극심한 환난이 될 것이다. 최근까지 뜸하였는데 갑자기 코로나 전염병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청황색말). 그리고 곡과 마곡의 땅인 러시아가 유대인이 대통령으로 시무하고 있는 우크라이를 침범하여 전쟁을 시작하였다(붉은 말). 그리고 조금 있으면 극심한 기근이 찾아올 것이다(검은 말). 그렇지만 천국 복음 전파는 마지막 시기에 더욱 더 불타오를 것이다(흰 말). 이미 네 가지의 인들이 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순교자의 호소가 뒤따라올 것이다. 이것이 다섯번째 인이 떼어지는 것이다. 순교자들이 채워진다는 것은 극심한 성도들의 핍박과 살해가 일어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여섯째 인이 떼어질 때 해와 달과 별들에게 이상한 징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재림하시는 것이다(마24:29~31). 순교자들의 채워진다는 것은 짐승과 거짓선지자에 의한 핍박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곧 있으면 이 마지막 시기에 이 환난은 더 극심하게 적용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누구든지 환난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환난을 견뎌낼 신앙의 준비가 필요하고 일상생활을 영유하기 위한 준비도 같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면 얼마후에 사탄이 놓이게 될 것이다. 이때에 주님께서 하늘로 오시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정확한 시기는 알 수는 없어도, 주님께서 진실한 성도들을 공중으로 불러올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휴거'인 것이다. 그리고 지상에는 적그리스도 치하에 일곱 대접 심판들이 내려질 것이다. 음녀가 되어 세상과 짝하여 살던 양다리 신앙 성도들은 이때 남겨질 것이다. 그래서 사탄짐승에 의한 극심한 박해를 겪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은 주님을 부인하고 짐승을 경배하고 666표를 받겠지만 그래도 몇몇의 극소수의 사람들은 그때에 회개할 것이다. 아마도 이들을 위한 중보기도가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휴거된 성도들의 기도가 이들을 순교의 자리에 들어할 것이다. 그러나 그 숫자는 많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금새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회개하고 천국복음을 전파할 시기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지금처럼 좋은 시기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회개하려면 지금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천국을 사모하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 시대에 주님의 주시는 주님의 마지막 자비이기 때문이다. 

 

 

2022년 04월 24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50) 곧 속히 오시겠다고 하신 분은 예수님인가 주 하나님인가?(계22:6~21)_2022-04-21(목)

https://youtu.be/wA9qK2U3Dds  [혹은 https://tv.naver.com/v/26371478 ]

 

1. 요한계시록 22장에서 속히 곧 오시겠다고 하신 분은 누구신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내가 속히 온다"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오는데, 총 5차례가 나온다. 요한계시록 22장에서 세 차례 나오고(계22:7,12,20), 그 외에도 두 차례 더 나오기 때문이다(계2:16, 3:11). 이 말씀을 헬라어 원문으로 직역한다면, "내가 신속히 오고(가고) 있다"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장차 신속히 갈 것이라는 미래 시제가 아니라, 지금 현재 오고(가고) 있다는 현재 시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 밖에서 항상 현재로 거주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분은 대체 누구인가? 계2:16, 3:11에는 그분은 '예수님'이시라고 분명하게 말씀한다. 그리고 계22:7,12,20의 말씀에서도 그분이 '주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속히 오실 분은 우리 주 예수님이신 것이다. 

계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계3: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계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 속히 오시겠다고 하신 분은 예수님인가 주 하나님인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속히 오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분은 분명히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아들로 이 땅에 오셨다가 가셨던 그분이 다시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분에 대해 사도 요한은 놀라운 정보를 우리에게 공개한다. 첫째로,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이다(계22:20,21). 그리고 둘째로 그분이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분을 '주님'이라고 칭했다는 말은 그분이 곧 주 하나님이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이라는 칭호가 요한계시록 21장까지는 전부 다 '하나님'이라는 용어와 함께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요한계시록 22장에 와서 '주님'이라는 칭호를 '예수'라는 용어와 함께 사용하고 있다(계22:20,21). 또한 속히 오시겠다고 하신 '나'이신 '예수'께서 당신을 소개하실 때에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하셨다(계22:13). 이는 실로 놀라운 선언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22장 이전까지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라고 하는 자기 선언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계1:8, 21:6). 더불어 "나는 시작과 마침이다"라는 자기 선언도 역시 오직 주 하나님이시자 보좌에 앉아 계신 분에 대해서만 사용한 용어이다. 다만 요한계시록 22장 이전까지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선언하셨을 뿐이다(계1:17, 2:8). 그런데 요한계시록 22장에 와서, 주 하나님의 칭호('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 '나는 시작과 마침이다')라는 용어가 주 예수님의 칭호('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다')라는 용어와 더불어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소개하고 있는 분을 가리켜 '주 예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곧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속히 오시겠다고 하신 분은 '예수님'이시지만 그분은 사실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계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3. 구약 시대에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신 분은 누구이셨는가?

  구약 시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개하실 때에는 딱 2가지로 말씀하셨다. 하나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나는 ~라고 하는 바로 그 자신이다)"(출3:14)라는 자기 선언이요, 또 하나는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는 자기 선언이다(사41:4, 44:6, 48:12).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는 자기 선언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는 자기 선언은 구약 시대에 오직 한 분 하나님이셨던 여호와에게만 적용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더욱더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이 두 가지 표현을 예수께서 똑같이 자기 선언으로 사용하셨다는 사실이다. 첫째로,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께서는 자신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3번이나 말씀하셨다(요8:24,28,58).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표현은 헬라어 성경에만 나올 뿐 우리 한글 성경에서는 그렇게 나오지 않는다. 둘째로,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자기 선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계1:17, 2:8, 22:13). 그것도 무려 세 번씩이나 그렇게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양단 간에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예수님을 사기꾼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한 분 하나님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즉 그분은 스스로 있는 자도 아니며, 처음과 마지막이신 이도 아닌데도 자기를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했으니 그분을 사기꾼으로 볼 수도 있다(이는 그분이 참람죄, 신성 모독죄를 지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아니면 그분이야말로 한 분 하나님으로서 구약에 나타났던 여호와 하나님으로 믿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님은 거짓이 전혀 없는 진리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을 단 한 구절이라도 버리거나 제쳐놓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이야말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하신 분이자 동시에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고 말씀하신 분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신약에 아들로 나타나셨던 예수는 구약의 여호와로 나타나셨던 분과 동일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4. 요한계시록에서는 '주 하나님'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는 '주 하나님'이라는 용어가 총 7번 나온다(계1:8, 4:8, 11:17, 15:3, 16:7, 19:6, 21:22). 이것은 한 분 하나님을 지칭하는 고유한 명칭이다. 그분은 '주님'이시며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 하나님'을 지칭하는 다른 표현들이 요한계시록에 등장한다. 그것은 이렇다. 첫째, '알파와 오메가'라고 2번 나온다(계1:8, 21:6). 둘째, '전능하신 이'로서 9번 나온다(계1:8, 4:8, 11:17, 15:3, 16:7, 16:14, 19:6, 19:15, 21:22). 셋째, '시작과 마침'이라는 표현은 한 번 나온다(계21:6). 넷째,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은 3번 나온다(계1:4, 1:8, 4:8). 그렇지만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신 이"라는 표현만으로 보면 총 5회가 나온다(계1:4, 1:8, 4:8, 11:17, 16:5). 다섯째, "보좌[위]에 [스스로] 앉으신 이"라는 표현은 12회 나온다(계4:2, 4:3, 4:9, 4:10, 5:1, 5:7, 5:13, 6:16, 7:10, 7:15, 19:4, 21:5). 단, 1회는 그리스도에 쓰였다(계20:11). 그렇다. 우리 하나님은 주 하나님으로서,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 분이요, 전능하신 이시자,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보좌에 앉으신 이'시다. 그런데 보좌에 앉으신 이가 자기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했으니, 장차 재림하실 분은 예수님이지만, 주 하나님 자신인 것이다. 

 

5. 요한계시록이 들려주는 놀라운 한 분 하나님의 실체는 어떤 것인가?

  우리는 이상의 말씀을 통하여 요한계시록에서 들려주는 한 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 수가 있다. 그분은 만세 전부터 홀로 한 분으로 존재하셨던 분으로서, 구약 시대에는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알려 주셨으며, 그분의 자기 선언으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와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 한 분 하나님께서 만세 전의 계획과 경륜을 따라 자기에게서 아들의 이름으로 이 세상으로 오셨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구약의 여호와를 대신하는 한 분 하나님의 표현이자, 아들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 성경에서는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혹은 야훼)'라고 칭했지만, 신약 시대에는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님'이라고 칭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들은 예수님을 아들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의미에서 구약의 여호와와 동시에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칭했던 것이다. 고로 '주님'이라는 칭호는 신성한 한 분 하나님의 칭호였던 것이다. 고로, 구약 시대에는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요,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하셨던 분은 아들의 이름으로 오신 후에 역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이자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인류 구원을 위해 삼위로 역사하셨던 한 분 하나님께서는 이제 성경 맨 마지막 장(계22장)에서 이제는 둘이 아니라 하나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이 예수님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재림하시는 그분을 뵈올 때에 '예수님'으로 보겠지만 그분을 이제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로 볼 수 있어야 한다. 

 

2022년 04월 21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49) 천국인데 왜 생명강과 생명나무가 필요한가?(계22:1~5)_2022-04-20(수)

https://youtu.be/KrqTlp7_Vi8  [혹은 https://tv.naver.com/v/26371212 ]

 

1.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은 어떤 모습인가?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은 장 광 고가 각각 12,000스타디온(약24,000km)이나 되는 정방형의 거대한 도시다. 그런데 이 도시의 한 복판에는 높은 산(시온산)이 있고 이 산 꼭대기에 하나님의 보좌가 놓여 있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생명수가 흘러나오는데, 그 물은 큰 강을 이루어 동서남북으로 흘러 내려간다. 그리고 생명강의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다. 그리고 생명나무의 잎사귀는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성 안에는 다시 저주가 없으며, 다시 밤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성안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이 성은 햇빛이나 등불이 필요가 없다. 

 

2. 천국의 생명강과 생명나무는 어떻게 생겼는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발원하여 흘러 내려가는 강줄기는 추측컨데 여러 개인 것 같다. 그런데 그 강줄기가 몇 개나 되는지 정확히 아는 분은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다. 그 숫자는 가장 작게 보면 에덴동산처럼 4개가가 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많게는 24개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천국이 총 24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천국은 이 강줄기를 중심으로 집이 지어진다. 이 강줄기에서 다시 지류로 물이 나뉘어 흘러가는데, 천국의 건축 천사들은 성도들의 집에 이 지류의 물을 끌어들이는 공사를 한 후에 집을 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집에는 이 생명강의 작은 물줄기가 들어간다. 한편 생명강의 큰 줄기에는 생명나무들이 즐비해 있다. 

  천국에 있는 생명나무는 생명강의 좌우에 있다. 그리고 생명나무는 한 나무만 있는 것은 아니라, 수많은 나무들이 있다. 그런데 그중에는 원 생명나무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다. 나머지는 생명강의 큰 물줄기를 따라 강 좌우편에 놓여 있다. 그런데 신비하게도 이 생명나무가 열매(과일)를 맺는데, 달마다 열매를 맺어서 일 년에 12번이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달마다 다른 종류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그 열매를 따먹게 되더라도 곧 다시 그곳에 열매가 열린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오병이어이 기적처럼 떡과 물고기를 나눠줘도 예수님의 바구니 안에 또 떡과 물고기가 생겨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3. 천국의 생명강과 생명나무의 환상은 어디에서 이미 주어진 것인가? 

  그런데 이러한 생명나무와 생명강의 모습은 사실 에스겔 선지자가 B.C.593~571년경에 환상으로 보았던 것과 매우 흡사하다. 특히 강줄기가 있고 강좌우편에 달마다 열매를 맺는 각종 과실나무가 있는 것은 거의 똑같다(겔47장). 그때 에스겔 선지자는 환상으로 성전에 대한 환상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눈에 성전이 보였고, 성전의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와 동쪽으로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자 어떤 사람 손에 척량 줄이 있었는데 그것으로 천 척(약532m)을 재어보니 물이 발목에 찼고, 다시 천 척을 재어보니 물은 무릎에 차 올랐으며, 다시 천 척을 재어보니 이번에는 허리에 차 올랐다. 그리고 다시 천 척을 재어보니 강이 되었다. 그래서 더이상 사람이 건널 수 없을만큼 큰 강으로 변해 있었다. 그리고 강 좌우편에는 나무들이 심히 많이 있었다. 또한 물에는 물에서 번성하는 모든 생물들이 살고 있었고 고기도 심히 많이 있었다. 그리고 강좌우에는 각종 먹을 과일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잎들은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물이 성소에서부터 흘러나온 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열매를 음식이 되었고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약 재료가 되고 있었다. 

 

4. 왜 천국에 사는 성도들에게는 생명강과 생명나무가 필요한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아니할 수 없다. 왜 천국에 생명강이 필요하며 생명나무가 필요한가를 말이다. 사실 천국에는 영생을 얻는 자가 들어가는 곳이기에 물이 필요하지 않을 것처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천국에서 역시 각 집마다 생명수가 들어가고 있으며, 생명나무에 열매들이 있어 그것을 따먹도록 되어 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에덴동산과 그 이치가 비슷하다고 하겠다.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에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생명나무를 두어서 그 열매를 먹도록 하셨다. 마찬가지로 천국에서도 사람들이 영생하도록 하기 위해서 생명의 물을 두신 것이다. 그리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신 것이다. 그렇다. 천국에서도 사람들이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각 집집마다 생명의 물이 들어가도록 만드셨으며, 생명나무에 달마다 다른 종류의 과일이 맺히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생명의 물이나 생명나무의 열매는 다 생명이신 예수님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생명의 물이나 생명의 과일은 예수께서 당신의 생명을 나눠주는 통로들인 셈이다. 그렇다. 아무리 천국이라고 할지라도 계속해서 영생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음식과 음료로 먹고 마셔야 하는 것이다. 

 

5. 천국의 생명강 좌우에 있는 생명나무의 잎사귀들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가? 

  그렇다면 생명강 좌우에 있는 생명나무의 잎사귀들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가? 사도 요한은 그것이 '만국'을 치료하기 위해서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천국에도 아프거나 다치거나 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는 더 이상 눈물이나 사망, 울부짖음이나 우는 것이 있지 아니하며, 무엇보다도 아픈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계21:4). 한 마디로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더이상 저주가 없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인 마귀와 그의 부하들인 귀신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생명나무 잎사귀가 약치료제로 쓰인다고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2가지 목적 때문이라고 본다. 하나는 지금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아픈 자들을 치료해주기 위해서다. 이 세상 사람들 중에 기적적인 치료가 일어나는 것은 다 천국의 치유 천사들이 다 이 천국의 생명나무의 잎사귀로 만든 약을 가져와서 치료해주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이미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성밖에 거주하는 자들을 치료하려고 그러한 것이다. 성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더이상 아픈 것이 있지 않지만 성밖은 좀 다르다. 우선 거기에는 생명강도 없으며, 생명나무의 실과도 없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칠 수도 있다. 부활체는 피도 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21:24~26의 말씀을 통하여, 만국이 새 예루살렘 성밖에 거주하고 있음을 배웠다. 그들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적이 있었지만 결국 그 이름이 지워져 성밖으로 쫓겨난 자들이 거기에 거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이들은 세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는 성 바깥에 거주하는 자들이 있고, 둘째는 더 바깥쪽의 어두운 곳에 거주하는 자들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셋째는 바깥 끝의 아래의 낭떨어지의 불못에 거주하는 자들도 있다. 그런데 바로 옆의 성 바깥은 지구와 비슷한 환경이기 때문에 다치는 일이 별로 없겠지만, 더 바깥 쪽의 어두운 곳에 사는 자들은 형벌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아마 다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때에 천사들이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해서 생명나무 잎사귀를 쓰는 것 같다. 그러므로 성 바깥의 더 어두운 곳에 있는 자들이 다칠 때에 그들을 치유하기 위하여 생명나무의 잎사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아마도 십중팔구는 맞는 이이야기일 것이다. 왜냐하면 성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에 "땅의 왕들"이라는 신분을 가진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성밖으로 나가서 왕노릇을 하기 때문이다(계21:24,26, 2:26~27). 이들이 성 안으로 가지고 들어올 자기들의 영광과 존귀는 성밖에 위치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능력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어찌하든지 성밖에 남겨지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꼭 회개하고 또 충성하여서 죽은 후에는 반드시 성 안에 들어가서 사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22년 04월 20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천국복음(48) 믿는 이들 중에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못 들어가는 자는 누군가?(계21:24~27)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hYAuj7nAbWE [혹은 https://tv.naver.com/v/26321211 ]

 

1.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누가 사는가?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천국은 새 예루살렘 성 안을 가리킨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오직 '어린양의 신부'가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계21:9). 그럼, 누가 어린양의 신부가 되는가? 그들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으로 스스로를 단장한 자들이다(계19:8). A.D.95년경 사도 요한이 보았을 때 이미 새 예루살렘 성 안에는 그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어린양의 신부가 '새 예루살렘 성'이라고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계21:9~10). 그 성의 기초석 위에 어린양의 12사도들의 이름이 있고, 12진주문 위에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이름이 있기에 새 예루살렘 성도 어린양의 신부라고 말할 수도 있을른지 모르겠지만, 실제는 아니다. 어린양의 신부는 인격체인 것이지 어떤 건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새 예루살렘 성 자체를 어린양의 신부라고 한다면 그 성이 곧 지성소와 같은 성전이며, 성전은 하나님과 어린양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니(계21:22~23), 어린양의 신부가 하나님과 어린양이라고 하는 등식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신부를 새 예루살렘 성이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또한 새 예루살렘 성의 한 중앙에 있는 보좌에서부터 생명수가 흘러나오는데, 피조물로서 어린양의 신부는 생명수를 만들어 낼 수가 없기 때문에 새 예루살렘 성이 어린양의 신부라고 말하면 아니 되는 것이다. 고로 어린양의 신부는 정확히 말하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2.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누구누구인가?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크게 세 무리의 사람들이다. 첫째는 24장로들이다(계4:4). 이들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의 대표자들로서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있다. 둘째는 144,000명의 사람들이 있다(계14:1~5). 이들은 영광의 광장에 모여 예배드릴 때에 144,000석의 보좌에 앉아서 예배드린다. 이들은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자로서, 음녀와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처녀로서 정절을 지킨 자들이다. 이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며, 그들의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다. 144,000명의 사람들 중에는 땅의 왕들이 있고, 다른 성도들로부터 섬김을 받는 주인과 같은 자들도 있다. 셋째는 144,000석의 보좌 뒤에 서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큰 무리가 있다(계7:9). 이들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로서, 자기의 겉옷을 어린양의 피에 씻어 희게 한 자들이다. 이들 중에는 144,000석의 보좌에 앉는 사람들의 집에 가서 섬기는 자들도 있다. 

 

3. 마태복음에 보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마태복음을 읽어 보면,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로서세 부류의 사람들이 언급되어 있다(마25:1~13, 14~30, 31~46). 물론 이들은 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로서 거듭난 자들이며 이미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그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다음과 같은 3가지의 부류의 성도들로서 첫째,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 있다. 이들은 성밖에 남겨진다. 둘째, 악하고 게으른 종이 있는데 여기에 속한 자들은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게 될 것이다. 셋째, 염소들이 있다. 이들은 영영한 불에 들어가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인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련한 다섯 처녀의 경우를 보자. 이들은 등불은 준비하였으나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다(마25:1~13). 그러나 이들도 동일하게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신랑을 맞으러 나간 신부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손에는 '여분의 기름'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 기름은 사실 댓가를 지불하여 사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준비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 이들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들은 거듭난 자들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신부될 자격을 갖추긴 갖춘 자들이다. 하지만 실제로 신랑을 만날 때에 그분에게 드릴 어떤 사랑의 증표를 준비하지 못했던 자들이다. 언감생심만으로는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이다. 그들은 신랑에게 드릴 것을 준비하기 위해 그간 댓가를 지불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성밖에 남겨진 것이다. 둘째, 악하고 게으른 종의 경우를 보자(마25:14~30). 이들은 주인으로부터 책임 맡은 종이었지만 주인의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게으름을 주인의 가혹함으로 둘러대었다. 그리고 일하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악하고 게으른 자는 성밖의 더 바깥쪽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거기서 형벌을 받으며 슬피 울고 이를 갈면서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셋째, 심판 때에 염소의 자리에 서게 될 자들이 있다(마25:31~46). 이들은 믿음은 가졌으나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을 가진 자들로서, 외식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들은 항상 자신이 '양'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낮아져서 지극히 작은 자들인 주님의 형제들 곧 선교사들이나 주의 종들을 돌아보지 아니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심판 후에 불못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4.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21장에서 믿는 이들 중에 누가 과연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못 들어갈 것이라고 했는가?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21:27에서 비록 믿는 자들이지만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자들에 대해 말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세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했다.

  첫째는 속된 것에 속한 자들이 있다. 여기서 '속되다'는 말은 헬라어로 '코이노스'라는 말로서 '일상적인, 평범한, 공통적인'이라는 뜻을 지녔다. 그러므로 속된 것에 속한 자들이라는 말은 어제가 오늘과 같고, 오늘이 내일과 같은 삶을 사는 자들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이들은 그리스도인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가리킨다. 마치 노아의 때와 같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있지만 주님 앞에 자신이 어떻게 설 것인지를 전혀 예비하지 않은 채 사는 자들이다. 이들은 심판으로 자기들이 멸망받을 때까지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했었는지를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갈 것이다. 이들은 거듭나서 신부될 자격은 갖추긴 했으나 실제로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던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은 자들이라고 하겠다. 한 마디로 영이 잠들어 있어서 분별없이 살아가는 자들이다. 영이 깨어 있지 아니한 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가증한 일을 행하는 자들이 있다. 여기서 '가증한 일(브델뤼그마)'이란 구약시대에 나오는 개념과는 약간 다른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이기는 하나 세속에 물들어 사는 자들로서,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자기도 그대로 추구하며 사는 자들을 가리킨다. 신앙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오직 세상의 돈(물질)과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이들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않고 오직 자기의 만족과 쾌락을 위해 사는 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의 표준을 거부하고 그 표준을 구부려서 세상의 표준을 따라서 그것을 귀한 것이라고 알고 사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겉으로는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방탕과 탐욕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자면, 가증한 것들의 어미인 큰 음녀에 속한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계17:4~5). 그리스도와 더불어 약혼은 했지만 세상 것이 좋아 세상과 짝하여 사는 자들로서, 작은 음녀들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그러므로 추정컨대 이런 자들은 거의 대부분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고 말 것이다. 

  셋째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들이다. 이들은 거짓말장이이자 거짓의 아비인 사탄 마귀를 따르는 자들이다. 이들도 믿는 자들이기는 하지만 거짓말을 일삼는 자들로서, 거짓말을 해도 그것이 죄인 줄을 모르고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런데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사실 십계명을 어기는 것이다(출20:16, 신5:20). 그렇지만 거짓말의 강도에 따라 어떤 그리스도인은 '불못'에 던져기도 할 것이다(계21:8). 그런데 또 어떤 이는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기도 할 것이며, 마지막으로 그냥 '성 바깥'에 살기도 할 것이다(계22:15). 이러한 구분은 그들이 말하는 거짓말의 강도에 따른 분류가 되지 않는가 싶다. 

 

5. 요한계시록 22장에서는 위의 3가지 종류의 그리스도인들 외에 누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못 들어간다고 말하는가?

  요한계시록 22장에서는 위의 3가지 종류의 그리스도인들 외에도 다음과 같은 2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못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다. 첫째는 개들과 점술가들과 간음하는 자들, 살인하는 자들과 우상 숭배자들이 성 안으로 못 들어가고 성밖에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계22:15). 둘째는 요한계시록의 예언의 말씀을 제거하는 자들도 역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못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다(계22:19).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볼 것이다. 

 

2022년 04월 19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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