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삼위일체하나님(7)] 이것이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정의다(마3:13~17)_2023-06-14(수)

https://youtu.be/70E3PCdrUjs [또는 https://tv.naver.com/v/37352948]

1. 초기 기독교 회의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정의했는가?

  초기 기독교 회의에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정의했을까? 가장 먼저는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서 "성자는 성부와 동일 본질"이라고 정의했다. 이것이 A.D.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다. 이 회의를 통해 예수께서 하나님이신 것이 정의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A.D.381년)에서는 성령님도 하나님이라는 정의가 내려졌다. 그러고 나서 A.D.420~450년경에 나온 아타나시우스 신조에 비로소 '삼위일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고, 이 신조에서는 "우리는 삼위일체의 하나님 즉 하나이신 삼위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누구든지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삼위일체를 믿어야 한다"고 정의하였다. 이단에 맞서서 나온 정의로서는 어느 정도는 귀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의 단점은 무엇인가? 우선 니케아 신조를 보면,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정의하고 있으나, 아들이 홀로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정의하지 못했으며, 아들은 아버지와 동시에 존재하는 하나님이라는 것도 정의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성자와 성령이 하나님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정의했으나, 성자나 성령께서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자, 동시존재하고 활동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2. 양태론자들의 신관과 종교 개혁자들의 삼위일체 신관은 어떠한가?

  한편, 양태론자들의 신관을 보면, 이들은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는 것은 말했다. 하지만 그것을 강조하다가 그만 동시에 존재하시며 동시에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표현하지 못하였다. 양태론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어느 한쪽에서 일을 하시면 다른 쪽에서는 일하시지 못하는 공백 상태가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양태론자들의 신관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종교 개혁자들의 삼위일체 신관은 어떠한가? 이들도 역시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세 위격이 존재하신다는 것을 어느 정도 잘 설명했으나, 성부는 성자가 아니며, 성자는 성령이 아니며, 성령은 성부가 아니라는 설명을 추가함으로써, 하나님이 마치 삼신인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로 존재하시고 활동하시게 된 것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의 일인데, 그것을 창세 전이라고 소개함으로서, 홀로 한분이신 하나님 신앙을 삼신론적인 신앙으로 오해할 수 있게 하였다. 

 

3. 성경적인 삼위일체 신관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삼위일체 신관을 믿고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삼위일체 신관이란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여기에 그것을 전부 다 정의할 수는 없지만 핵심적인 사항만을 기록한다면 다음과 같다. 

1)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시어 당신의 나라를 상속시켜 주려는 계획을 세우신 가운데, 가장 먼저 아들을 낳으셨다. 

2)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바로 그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아들을 위하여’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 하지만 아직 아들은 밖으로 출현하기 전의 상황이므로, 하나님의 창조는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의 창조라고 할 수 있다. 

3)구약시대 홀로 한 분으로 활동하시던 하나님께서는 모세 때에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처음으로 계시하셨다. 

4)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이 세상에 당신의 영인 성령(하나님의 영)을 보내시어 일을 하셨다. 고로 구약시대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을 성령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5)구약시대에는 오직 여호와께서 활동하시던 때였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직 밖으로 출현하여 활동하시지는 않으셨다. 

6)B.C.4년경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아들이신 예수께서 태어나시니, 그때부터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 이렇게 두 인격체로서 동시에 존재하게 되셨다. 

7)그러나 아들도 30세가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기 전까지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사셨으며 아들로서의 진정한 사역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신 이후부터 시작하셨다. 고로 공생애 이전에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셨다거나 귀신을 쫓아냈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8)예수님의 탄생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이며 동시에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의 오심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들도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서 ‘스스로 계신 자’요, ‘처음이요 마지막’이시기 때문이다. 

9)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시어 사람이 되심은 피 흘릴 수가 없고 죽을 수 없는 하나님께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다. 

10)아들은 3년간의 공생애 끝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정작 자신은 죄를 짓지 아니하셨기에 사망과 음부가 그분을 가두어 둘 수 없어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고, 40일 동안 자신의 부활을 보여 주시다가, 원래 계시던 하늘의 아버지께로 올라가셨다. 

11)하늘로 가신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요청하여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으니, 이는 그분이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오셔서, 우선은 사람 속에 내주하심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성도들의 기도를 도우시며, 사람 위에서는 능력과 은사를 부어 주심으로 증인사역을 돕고 계신다. 

12)이때 보혜사 성령께서는 예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활동하신 것이나, 보혜사의 오심은 홀로 한 분이신 예수님의 또 다른 오심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13)오순절 이후 성령께서는 이때부터 단독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였으니, 성령께서 비로소 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세 인격체로 동시에 존재하시고 일하시게 되었다. 

14)하늘에 오르신 예수께서는 역할로서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일하고 계신 분이시나, 또한 하나 밖에 없는 아버지의 보좌에 앉아서 통치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의 보좌는 아버지의 보좌임과 동시에 아들의 보좌이기도 하다. 

15)이방인들의 충만한 숫자가 차고 유대인의 최종 추수가 끝나면, 아들이신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모든 인류를 심판하시어, 영생과 영벌을 주실 것이다. 이때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이 심판하시는 것은 아들이 사람되심으로 인하여 주어진 권한이다. 

16)고로 현재 천국에 가면, 아들이 통치와 심판의 보좌인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게 되며, 성령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일곱 등불로 표현되어 있다. 천국에서 아버지는 분명히 존재하고 계시지만, 역시 아들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계속해서 행하시고 있다. 

17)또한 지금도 천국에서는 어린양이신 아들께서 하나님과 똑같이, ‘네 생물’과 ‘24장로들’ 그리고 ‘천사들’과 ‘모든 피조물들’에게서 찬양과 경배를 받고 계신다. 
18)고로 오늘 현재 하나님은 한 분이지만 세 위격으로 동시에 존재하시며, 또한 동시에 활동하고 계신다. 고로 지금의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시나 동시에 세 위격으로 존재하며 일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4. 신구약 66권 성경에 나타난 삼위일체 신관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신구약 66권의 성경에 기록된 삼위일체 신관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시나(신6:4, 사43:10~11),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에는 삼위로서 동시에 존재하시고 동시에 활동하고 계신다(고후13:13)." 

 

5. 제대로 된 성경적인 삼위일체 신관을 갖게 되면 얻게 되는 유익은 무엇인가?

  성경에 입각한 제대로 된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게 된다면 어떤 유익이 있는가? 유익한 점은 아주 많겠지만 그 핵심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쉽게 이단에 빠지지 않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홀로 한 분이셨고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세 위격으로 동시에 존재하시며 동시에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되면, 신적인 능력을 갖추지 않은 인간을 감히 신이라고 고백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지금도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고 있는 유대인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유대인들이 기독교를 배척하는 것은 아들이신 예수께서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눈에 기독교인들은 다신론자들이요 우상숭배자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예수님과 성령님도 홀로 한 분 하나님이신 것에 대해 깨닫게 된다면 얼마든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사탄 마귀와 악한 영들을 대항하고 그들을 훨씬 더 강력하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귀신을 쫓을 때 사용하는 예수님의 이름은 단지 아들의 이름만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이자(마28:19), 전능하신 주 하나님의 이름이기 때문이다(요20:28).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라도 귀신을 쫓을 때에는 아들의 이름으로 쫓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홀로 한 분이신 창조주요 전능하신 이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2023년 06월 14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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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4 [삼위일체하나님(7)] 이것이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정의다(마3,13_1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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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삼위일체하나님(6)] 성령은 오순절이후 경륜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오셨다(요14:16~18)_2023-06-13(화)

https://youtu.be/XNwIBHknH7E [또는 https://tv.naver.com/v/37352913]

1. 성령을 가리켜 왜 우리는 경륜적인 영이라고 부르는가?

  우리는 성령을 '경륜적인 영'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시대를 거치면서 역사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졌기 때문이다. 사실 성령께서 역사하는 방식은 3단계로 진행되었다. 천지창조 때부터 B.C.2458년 노아 홍수 때까지 성령께서는 창조된 사람들 모두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의 자식들로서 타락 전에 태어난 인간들('하나님의 아들들')이 타락 후에 태어난 사람들('사람의 아들들')을 취하여 육체가 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역사하는 방식을 바꾸셨다. 더 이상 사람들 안에 머물게 하지 않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노아 홍수 이후 구약시대에는 성령께서 사람 속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몇몇의 선택된 사람 밖에서 역사하셨다. 그러다가 오순절 날 보혜사 성령께서 오심으로 인하여 모든 거듭난 사람들 속에 들어가시게 되셨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의 성령을 '경륜적인 성령'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2. 구약시대(노아 홍수 이후)의 성령은 어떠한 분이셨는가?

  노아 홍수 이후부터 A.D.30년 오순절 성령강림 이전까지 성령께서는 어떻게 역사하셨을까? 그것을 좀 구분하여서, 성령의 '명칭'과 '활동'과 '특징'을 중심으로 구분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 때의 성령의 명칭을 보자. 구약시대의 성령은 맨 처음에 '하나님의 영'이라고 불리셨다(창1:2, 시104:30).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모세 때에(B.C.1446년경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인 것이 공개됨에 따라) '여호와의 영'이라고도 불리셨다(삿3:10, 사40:13).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성령을 좀 더 구체적으로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재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라고도 했으며, 스가랴 선지자는 '여호와의 일곱 눈들'이라고도 말했다(슥4:10).

  둘째, 이 때의 성령의 활동을 보자. 구약시대에 성령께서는 선택된 사람들 위에 내려오셔서 그들에게 지혜와 기술을 주고, 능력을 주었으며, 은사를 주셨다. 그리고 선택된 사람에게 직임을 맡게 하셨다. 모세시대 때에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성령이 충만케 되자, 그들에게 지혜와 총명, 지식과 재주 등이 임했다(출31:3~4), 그리고 사사시대에는 성령이 사사들 위에 내려오셔서 능력을 주셨으니, 옷니엘과 삼손 같은 경우는 능력을 받고 사사의 직임을 잘 감당할 수 있었다(삿3:10, 14:6). 그리고 성령께서 선택된 사람들 위에 내려오셔서 은사를 주시어 예언을 하게 하기도 하였다(삼상10:6, 사61:1). 

  셋째, 이 때의 성령의 특징을 보자. 그런데 구약시대의 성령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특정한 사람에게만 내려오셨다. 그리고 사람에게 오실 때에도 위에 머물러 계셨을 뿐 사람들 속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자라도 범죄하면 성령이 떠나가기도 했다(삼상16:14). 사울은 성령 받아서 예언도 하고 왕의 직임도 수행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가 범죄하자 성령께서 떠나버린 대표적인 사례에 속한다. 그리고 다윗왕도 범죄하여 성령께서 떠나가시려 하자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성령을 거두어 가지 마시기를 간구했었다(시51:11).

 

3. 성령께서 예수님에게는 어떻게 역사하셨는가?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예수님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어떻게 역사했을까? 예수님에게 성령께서는 구약적인 역사 방식으로 함께 하셨다. 물론 아들 이신 예수님 안에는 이미 아버지가 계셨으며, 서로 상호 내주하고 계셨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예수의 잉태와 부활까지 모든 영역에서 어떻게 일하셨는가? 한 마디로,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을 도와주셨다고 말할 수 있다. 먼저 에수께서 잉태될 때에는 마리아의 태중에 성령으로 잉태되게 했다(눅1:35). 그리고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곧 예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을 때에는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셔서 예수님의 머리 위에 앉으셨다(마3:16).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서 마귀에게 시험도 받으셨고(마4:1), 성령을 힘입어서 귀신들을 쫓아내기도 하셨다(마12:28). 그리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으로 죽으실 때에는 성령을 통하여 자신을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셨다(히9:14). 그리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성령으로 부활하셨다(롬8:11). 성령께서는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과 함께 하시어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도우신 것이다.  

 

4.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A.D.30년) 이후 성령은 어떻게 사역하셨는가?

  그렇다면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에 성령께서는 어떻게 역사하셨는가? 그것을 좀 구분하여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의 '명칭'과 '활동'과 '특징'을 중심으로 구분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오순절 이후 성령의 명칭을 보자. 역사적으로 볼 때 B.C.4년경 예수께서 아들로 이 세상으로 들어오셨다. 그리하여 하늘에 계신 분으로서 신성만 가지신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셨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은 신성과 인성을 가지심으로 예수님이 되셨다. 그리고 공생애를 마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요청하여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다. 그러므로 이때부터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라는 명칭 이외에도 '아버지의 영'이라고도 말해지셨으며(마10:20), 아들의 영(갈4:6), 그리스도의 영(롬8:9), 예수의 영(행16:7)이라고도 칭해지셨다. 그리고 오순절 이후에 성령께서는 '보혜사'(요14:16), '진리의 영'(요14:17), '양자의 영'(롬8:15), '생명의 영'(롬8:2), '생명주는 영'(고전15:45)'이라고도 불리셨다. 

  둘째, 오순절 이후 성령의 활동을 보자. 오순절 이후에 성령은 구약적인 방식도 갖고 있으면서 사람들 위에 계심으로 여러 가지 능력과 다양한 은사들을 주고 계신다. 그리고 이렇게 행하시는 것은 모든 믿는 이들로 하여금 예수의 증인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다(행1:8). 그래서 성도들은 성령을 받아 능력도 받고, 은사도 받아서 교회를 온전케 하면서 복음을 증거하게 하는 것이다(고전12:8~10). 위에 계시는 성령을 '능력적인 성령'이라고 부른다면, 속에 계시는 성령은 '인격적인 성령'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믿는 이들 속에 들어오셔서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 그것은 가장 먼저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신다(요3:5), 그리고 기도를 도와주시고(롬8:26~27), 가르쳐 주시고(요14:26), 생각나게 하며(요14:26), 알게도 하시고(요16:13~14), 말씀도 하시며(요16:13~14),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요16:13), 예수님을 증언하신다(요15:26). 그리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기도 하신다(요16:8). 

  셋째, 오순절 이후 성령의 특징을 보면, 첫째로 보혜사 성령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다 부어지고 또한 속에 들어오신다는 것이다(행2:17, 요14:16~17). 둘째 한번 들어오신 성령께서는 믿는 이가 죽는 날까지 결코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요14:16). 성령께서는 구속의 날까지 성도들을 인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엡4:30). 그리고 셋째 성령께서는 이때부터 능동적으로 행동하시고, 말씀하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성령께서 어떤 지시를 하시고(행13:2), 말씀으로 알려 주기도 하시며(딤전4:1), 어떤 것을 제어하고 허락하기도 하신다는 사실이다(행16:6~7).

 

5. 오순절 이후 성령께서 어떤 분이 되셨는지를 정리한다면?

  이제 정리해 본다. 오순절 이후 성령께서는 아버지와의 관계로 볼 때에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신 분이고(요15:26), 아버지께로부터 주어지셨으며(요14:26), 아버지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이시다(요14:26), 이러한 성령께서는 아들과의 관계로 볼 때에는, 아버지께 요청하여 보내어진 영이며(요15:26, 16:7), 홀로 한 분이신 예수님의 또 다른 오심이라고 할 수 있다(요14:18~19). 왜냐하면 예수께서 비록 육신으로는 제자들의 곁을 떠나가는 것이지만 영으로 오셔서 그들을 위로하고 칭찬하고 격려하고, 능력과 은사를 주어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순절 이후 성령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본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성령께서는 온 세상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눈들이시다. 둘째, 아들의 요청에 의해 보혜사로 오신 분인데, 아버지로부터 다시 인격적으로 나오신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신 것이다. 이때부터 성령께서는 아버지의 영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아들의 영이라고 불리기도 하신다. 고로 성령은 경륜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부활 승천하사 하늘에 오르신 분으로, 홀로 한 분이신 예수님의 또 다른 오심이라고 할 수 있다(요14:18~19). 

 

2023년 06월 13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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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3 [삼위일체하나님(6)] 성령은 오순절이후 경륜적인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오셨다(요14,16_18).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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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삼위일체하나님(5)] 구약시대에 아들은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는 7가지 증거는?(요1:18)_2023-06-12(월)

https://youtu.be/L0eIIps6u-4 [또는 https://tv.naver.com/v/37352906]

1. 구약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인가 아니면 한 분 하나님인가?

  구약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는가? 삼위일체 하나님이었는가 아니면 한 분 하나님이었는가? 구약시대의 하나님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서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로 계시하신 분이셨다. 구약시대는 아직 아들이 밖으로 출현하여 활동하지 않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영으로 존재하고 계셨다(요4:24).

 

2. 구약시대에 아들은 존재하셨는가?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아들은 존재하고 있었는가? 있었다. 신약성경은 구약시대에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이 나와서 존재하고 있었음을 증언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그분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모든 피조물의 프로토토코스)라고 증언하였다(골1:15). 그리고 예수께서 당신 자신에게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세상이 있기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파라)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세상이 기초 전에)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또한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도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아들을 위하여 창조하셨다(골1:16, 요1:3)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아서도 천지만물 창조 전에 이미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나오셔서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 아들은 아직 출현하지 않았으며, 활동하지도 않으셨다. 오직 한 분 하나님께서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시면서 활동하셨던 것이다. 

 

3. 구약시대에 예수께서 아직 출현하여 활동하지 않았음을 알려 주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증거들은 무엇인가?

  구약시대에는 아들이 출현하여 활동하기 전의 시대다. 존재는 하셨지만 자신을 드러내어 활동하시며 또한 말씀하시던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직 아들은 비밀처럼 숨겨진 상태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예수께서 아직 출현하여 활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증거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첫째, 구약성경은 구약시대에 유일한 창조주와 구원자는 오직 여호와 뿐이라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창세기 1장을 통해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때의 하나님을 출애굽기20:11에 따르면, '나 여호와'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사44:24에 따르면, 만물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이신데, 그분은 그분과 함께 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펼쳤으며, 땅을 펼쳤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렇다. 천지창조 사역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협의하여 창조한 것이 아니라, 오직 홀로 한 분으로서 구약시대에는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셨던 하나님께서 홀로 창조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약시대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사43:11). 즉 그분은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이시며,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신 만군의 여호와이신데, 그분은 자신 외에 다른 신이 없었다고 증언한다(사44:6). 고로 우리는 구약시대에는 아직 아들이 출현하여 활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사탄 마귀 역시 천국에서 한 번도 아들을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탄 마귀는 타락했어도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여전히 참소하는 자로서 활동하게 하셨고 하나님의 보좌까지 왔다 갔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구약이 끝나고 신약시대에 도래하였고, 메시야가 아기로 출생하게 된다. 그리고 30년을 준비하신 예수께서는 드디어 30년 되던 해에 공생애를 시작하시는데, 그때에 예수께서는 40일을 금식을 하셨다. 기도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순간 인간이 가장 약해진 상태에 있었을 때에 마귀가 예수님께 찾아와서 시험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질문은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게 한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존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증거해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 마귀가 천국에서 죄지은 인간들을 참소할 때에도 그는 하나님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있었던 것이다. 아직 아들이 밖으로 출현하여 활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 구약시대에 예수께서 아직 출현하여 활동하지 않았음을 알려 주는 세 번째와 네 번째 증거들은 무엇인가?

  구약시대에는 예수께서 아직 출현하지도 않았고 활동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려 주는 그 다음 증거들은 무엇인가?

  첫째, 구약시대에 나타난 ‘여호와의 천상회의’에 아들은 단 한 번도 등장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아들이 있었다면 그 중요한 회의에 아들을 참여시키지 않을 이유를 찾고 찾아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들이 아직 출현하여 활동하던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 고위급 천사들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회의하는 장면이 가끔 나온다. 이름하여 '천상회의'를 여호와께서 주관하시는 것이다. 그러자 남유다 왕국의 마지막 선지자 예레미야 선지자도 그와 같은 장면을 지켜 보고 있었다(렘23:18,22). 그리고 시편 기자는 거룩한 천사들의 모임 가운데 여호와께서 좌정하셔셔 모임을 이끌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시89:5~8). 그리고 욥기서 1장과 2장을 보면, 사탄도 천상회의 가운데 참여하고 있는데, 이때도 역시 아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특히 미가야 선지자 때의 일이다.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을 죽이려고 꾀하시는데, 그때 여호와께서는 하나 밖에 없는 그분의 보좌에 앉으셨으며, 만군의 하나님 보좌 좌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증언하고 있다. 

  둘째, 성육신이야말로 비로소 하나님의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출현하는 방법이자 시기였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의 품속에 비밀처럼 간직되어 온 독생하신 하나님 곧 예수께서 자신을 이 땅 안에 나타내신 때는 B.C.4년 예수님의 탄생 때였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태를 빌려 태어나기 전까지는 아들에 관한 출현과 활동 기사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5. 구약시대에 예수께서 아직 출현하여 활동하지 않았음을 알려 주는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증거들은 무엇인가?

  구약시대에 예수께서 아직 출현하여 활동하지 않았음을 알려 주는 다섯 번째 증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구약시대에도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있는 듯한 장면이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시편 110편 1~5절의 말씀이고, 또한 다니엘 7장 3~4절의 말씀이다. 먼저, 시110:1은 다윗이 쓴 시편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히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것은 다윗시대에 다윗이 실상을 그대로 본 것이 아니라, 장차 되어질 일들을 미리 본 것이기 때문이다. 즉 다윗은 주의 오른편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시고 구속사역을 마치셨을 때에, 하늘로 올라가셔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승천 이후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집행하고 있음을 환상으로 본 것이다. 그리고 다니엘 7장에 보면,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여호와)에게 인자 같은 이(예수님)가 인도되는 장면을 볼 수 있다(단7:13~14). 그런데 이러한 환상도 하늘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실제 상황을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장차 재림 후에 어떻게 만물을 심판하실 것인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예수께서 아직 출현하여 활동하지 않았음을 알려 주는 여섯 번째 증거는 구약시대에는 여호와께서 아들을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자신을 아버지라고 하거나, 또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버지’라고 자신을 계시하신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을 '아버지'라고 말씀하고 있기는 하지만(말1:6, 시89:26, 사63:16, 64:8, 렘3:4,19), 이것들은 전부다 비유적인 표현일 뿐이다. 그리고 그 뜻도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토기그릇을 만들듯이 만들고 있고, 토기장이로서 당신의 백성을 지키고 보호하고 인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 뿐이다. 

  한편 구약시대에 예수께서 아직 출현하여 활동하지 않았음을 알려 주는 아홉 번째 증거는 '독생자' 예수님은 비로소 동정녀 마리아의 몸으로부터 비로소 낳아지셨기 때문이다(마1:16). 다시 말해 아들의 출현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할 때부터인 것이다. 아들께서 그전부터 존재하고는 있었지만 아직 자신의 존재를 밖으로 드러내서 활동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2023년 06월 12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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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삼위일체하나님(3)]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인가 하나님과 하나인가?(요10:30)_2023-06-09(금)

https://youtu.be/uYaZMSt1Cow [또는 https://tv.naver.com/v/37352799]

1.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자신의 관계를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는 "나 자신과 아버지 곧 우리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요10:30). 왜 예수께서는 "내가 곧 아버지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나 자신과 아버지 곧 우리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일까?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인가? 우리가 그동안 몇 번에 걸쳐서 살펴보았지만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요, 또한 구약에 계시된 여호와께서 육신을 입어 아들로 오신 것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니라고 말씀하지 않고,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일까?

 

2. 예수님은 하나님이신가 아들이신가?

  예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아들이신가? 성경은 둘 다를 말씀한다. 그런데 보통 오늘날의 개신교인들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건 100% 틀림없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알고 있으면 하나님은 두 분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난 시간에도 살펴보았지만 구약의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셨는데, 그분께서는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사43:11)"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만약 예수께서 구약에 계시된 여호와가 아니라면 예수님은 구원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행4:12과 요14:6에 따라 신약에 계시된 유일한 구원자는 예수님이며, 이분이 곧 구약에 계시된 여호와인 것을 살펴보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것이지만 그분은 본질상 하나님 자신이신 것이다. 

 

3. 예수님과 아버지는 하나이지만 구별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아들이신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이다. 하지만 구별되신다. 왜냐하면 아들은 인성을 취하신 하나님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을 구별하여 말씀한다. 첫째로 요한복음에 따르면, 아버지는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분으로 나오며, 아들은 이땅에 파송받아 온 분으로 나오기 때문이다(요8:42).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아버지를 가리켜 '나를 보내셨던 이'라고 말씀하신다(요5:31). 둘째로 사도 바울도 자신이 썼던 편지의 인사말에서 항상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별하여 같이 언급하기 때문이다(롬1:7, 고전1:3. 고후1:2, 갈1:1~3, 엡1:2, 살전1:1, 살후1:1~2, 딤전1:2, 딛1:4, 몬1:3) 그것은 사도 요한도 마찬가지다(요이1:3). 셋째로,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해서 빌라델비아교회에 써 보내라고 했던 편지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자신의 새 이름인 예수에 대해 둘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은 구약시대로 치자면, '여호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신약의 아들의 이름이 바로 '예수'이다. 하지만 예수라는 이름은 아들의 이름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는데(마28:19), 실제 사도행전에서 제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기 때문이다(행2:38, 8:16, 10:48, 19:5). 그리고 넷째로 지금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이면서 동시에 아들이신 어린양의 보좌이기 때문이다(계22:1,3).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는 2개 내지는 3개가 아니라, 한 개밖에 없는데, 거기에 예수께서 앉아 계시는 것이다(계3:21, 20:11, 22:1,3).

 

4. '예수는 아버지다'라고 말해서는 아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우리가 '예수는 아버지다'라고 말하면, 한 분 하나님이 강조되기는 하지만 양태론의 이단에 빠지기 때문이다. 양태론 이단은 한 분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즉 한 분 하나님께서 아버지 역할, 아들 역할, 성령의 역할을 감당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의 단점은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을 때 동시에 아버지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존재하여 활동하고 대화하는 것(마26:39)을 설명할 수가 없다. 고로 '예수는 아버지다'라고 말해서는 아니 되고,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하나다'라고 말해야 한다. 한 분 하나님께서 동시에 아버지도 되시고 아들도 되셔서 그 일을 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결코 육신을 입으신 적이 없는 신성의 하나님만을 가리키는 표현이라면, 아들은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셨을 뿐만 아니라(골2:9), 인성을 취하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고로 아버지는 신성의 하나님만을 표현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신 아들이 피 흘리셨고 죽으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가 피 흘리고 아버지가 죽으셨다고 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피 흘리시고 죽으신 분은 아들이기 때문이다. 고로 양태론의 한 분파인 성부고난설은 틀린 것이다. 

 

5. '예수는 아버지가 아니다'라고 말해서는 아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예수는 아버지가 아니다'라고 말하면 삼신론의 이단에 빠질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개신교의 삼위일체 신앙고백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A.D.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동일 본질로 교리화하였다.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만천하에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A.D.381년에 콘스탄티노플 종교회의에서는 성령님도 하나님이라고 교리화하였다. 그리하여 성부도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하나님이시며, 성령도 하나님이나,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삼위일체 교리가 완성되었다. 그런데 종교 개혁자들이 이것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하였다. 그리하여 벨직 신앙고백서에서는 '성부는 성자가 아니며, 성자는 성령이 아니며, 성령은 성부가 아니다'고 규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하나님을 오해한 것이다. 아니다. 성부와 성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성부가 성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부나 성자는 둘 다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때 성자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육신을 입으신 분이기 때문이다. 고로 예수님은 아들이면서 동시에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2023년 06월 09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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