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42)[최종회] 하나님의 백성이 범죄하여 멸망당하면 잃어버릴 것 3가지는 무엇인가?(렘52:1~34)_2023-04-07(금)

https://youtu.be/jxvTsUC3Igg [또는 https://tv.naver.com/v/35305423]

1. 남유다는 언제 어떻게 멸망당했는가?

  남유다는 제1대 르호보암(B.C.971~913, 재위B.C.930~913)이 통치한 후에 20대였던 시드기야왕(재위 B.C.597~586) 11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의 3차 침입으로 인하여, B.C.586년 4월 9일 예루살렘이 함락됨으로 멸망한다. 그러니까 남유다는 분열 왕국이 된 후에 344년 만에 이방 민족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제2대 왕인 느부갓네살왕에 의해 멸망당한 것이다. 이러한 남유다의 멸망 기사는 열왕기하 24:18~25:7에 수록되어 있는데, 느헤미야 52장에도 거의 동일하게 나오고 있다. 느헤미야서에서는 열왕기하에 비해 단지 3구절(렘52:28~30)만 추가되어 있을 뿐이다. 아마도 서기관 바룩이 열왕기하의 말씀을 그대로 옮겨다가, 거기에 3구절을 추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한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2. 남유다가 멸망함으로 범죄한 남유다 백성이 잃어버린 것 3가지는 무엇인가?

  남유다가 범죄함으로 인하여 멸망당함으로 이스라엘은 역사의 무대에서 당분간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이때 남유다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잃어버린 아주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무엇인가? 당시 남유다 백성들은 단지 예루살렘에서 죽임당하거나 아니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남유다가 멸망당함으로 인하여 남유다 백성들이 진짜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의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범죄함으로 인하여 멸망당할 때에 잃어버리게 될 것들과 똑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다.

  첫째, 하나님이 선택한 도성 곧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 성'(도시)을 잃어버렸다(렘52:7,14).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그분의 거처를 삼고자 예루살렘을 가리켜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말씀하셨음을 언급했다(시132:13~14, 시78:68, 왕하23:27).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그 도성을 다윗이 빼앗은 후에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명했기 때문이다(삼하5:7). 그런데 이 도성이 성벽의 파괴와 함께 이제 다 불타버린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범죄하여 죄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우리도 역시 저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다(계21:2, 22:19). 

  둘째, 하나님의 집인 '예루살렘 성전'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렘52:13,17~23).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영원히 두시겠다고 약속하셨던 처소 곧 집인 성전이 이 때 파괴되었다(왕상8:44). 또한 그때 파괴된 것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 뿐만 아니라, 왕의 집인 왕궁과 서민의 모든 집들과 고관들의 집까지 다 불살라졌다(렘52:13).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범죄하여 죄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우리도 역시 저 하늘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지어진 '천국집'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는 날, 우리가 거듭날 때 들어오신 성령께서 떠나가심과 동시에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우리의 이름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천국에 지어진 집도 바람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당시 성전이 파괴되면서 거기에 있던 성전기명들이 다 바벨론으로 옮겨진 것처럼 우리가 천국집에 올려보낸 모든 것들도 우리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순간 역시 어디론가 옮겨지고 말 것이다. 

  셋째,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땅으로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렘52:27).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영원한 기업으로 주신다고 약속하셨다(창17:8). 그래서 여호수아 때에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였으나, 범죄함으로 인하여 다시 그 땅을 남에게 내어주고 그 땅에서 죽거나 그 땅을 떠나야 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만약 남유다 백성처럼 범죄하고 회개치 못해 죄용서를 못 받게 된다면, 우리도 역시 약속의 땅인 천국에서 쫓겨나 성밖이나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고 말 것이다(계21:8, 22:14~5). 

 

3.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남유다를 철저히 심판하셨으나 남겨두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남유다를 철저히 심판하셨다. 그래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이셨다. 그러나 그들 중에 일부는 '바벨론'으로 옮기셨다.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것이다. 이는 남유다의 백성이 없어진다면 장차 하나님께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야가 태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서도 남유다에게 긍휼을 베푸시어, 먼저 남유다 백성의 일부를 1차, 2차, 3차에 걸쳐서 바벨론으로 옮겨주셨다. 이를 가리켜, 하나님께서는 '나쁜 무화과' 중에 '좋은 무화과'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렘24:5~7).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범죄 직후부터 장차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지은 죄에 대한 댓가로서, 대신 죽어갈 어린양을 예비하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가리켜, 아담 때에는 '여자의 후손(씨)'이라고 칭하셨다(창3:15). 그리고 언젠가 때가 되면 '여자의 씨(메시야)가 뱀(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그의 후손으로 20대 만에 아브라함이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 씨를 언급하셨는데, 이때 아브라함에게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요,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을 것이라"고 또 한 번 언급해 주셨다(창22:17~18). 그리고 계속해서 '이삭의 씨(창26:4)'와 '야곱의 씨(창28:14)'로서 메시야를 보내 주실 것을 반복해서 약속해 주셨다. 이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남유다가 죄를 지었지만 그들을 아주 멸하지는 않으셨던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서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태어나게 된 것이다(마1:1).

 

4. 약속의 씨를 낳아 줄 사람이 바벨론에 살고 있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고로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씨를 낳아 줄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들이 아직도 바벨론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 예레미야서의 말미에 유다 왕 여호야긴의 회복을 언급하고 있다(렘52:31~34). 즉 바벨론의 제3대 왕이었던 에윌므로닥(B.C.562~560)이 자신의 통치 원년에 여호야긴을 감옥에서 풀어주고 그에게 친절하게 대하였으며, 그의 왕위를 그와 함께 있는 바벨론의 왕의 자리보다 더 높여 주었고, 그의 죄수 의복을 갈아 입혔으며,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고,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이 정해 주었으며, 그것을 종신토록 받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호야긴은 스알디엘을 낳고(마1:11~12), 스알디엘은 다시 스룹바벨을 낳았으며, 그후로도 그의 후손들은 자식을 계속해서 낳음으로, 드디어 야곱이라는 사람이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메시야)라 칭하는 예수가 태어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마1:16). 

 

5. 예레미야를 통해서 배우게 된 역사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예레미야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가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자 모든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거짓 신인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지도자들의 타락과 우상숭배를 더욱더 싫어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도 안타까워하고 미워하시지만 백성의 대표인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의 타락에 대해 매우 분노하신다. 그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회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을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회개만이라도 한다면 진노의 잔이 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유다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토록 회개하고 돌이킬 것을 외쳤던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멸망당했기 때문이다. 고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역시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회개를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어떤 죄를 지어서 지옥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안 해서 지옥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지도자들의 타락과 범죄는 더욱더 심각한 것임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지도자의 범죄는 한 나라의 존립 자체를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의 정치적인 지도자와 영적인 지도자가 바로 설 수 있도록 늘 기도해야 한다. 

 

 

2023년 04월 07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41) 선민이 의지했고, 선민을 괴롭혔고 멸망시킨 이방나라들의 멸망이 주는 교훈(렘46:1~51:64)_2023-04-06(목)

https://youtu.be/lHTWUAOdMBs [또는 https://tv.naver.com/v/35305289]

1. 선민이었던 남유다가 의지했고 선민을 괴롭혔으며 선민을 멸망시킨 나라들은 어떤 나라들이었는가?

  하나님의 택하신 민족이었던 이스라엘, 그중에서도 북이스라엘은 B.C.722년 앗수르의 살만에셀에게 멸망당했다. 그리고 이어서 B.C.586년에는 남유다마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에게 멸망당한다.

  그런데 남유다가 멸망할 당시 남유다가 의지했던 나라가 하나 있었다. 그 나라는 애굽(이집트)이었다(렘46:2~28). 왜냐하면 가장 가까이 있던 강대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쪽에서 앗수르가 쳐들어올 때나, 동쪽 유브라데스강 하류에서 살던 바벨론이 쳐들어올 때나 남유다는 항상 애굽을 의지하였다. 그런데 그때 남유다가 범죄했을 때에 주변국들이 쳐들어와 남유다를 괴롭히곤 하였으니, 남유다를 괴롭힌 나라들로서는 블레셋(렘47:1~7), 모압(렘48:1~47), 암몬(렘49:1~6), 에돔(렘49:7~22), 다메섹(렘49:23~27), 게달과 하솔(렘49:28~33), 엘람(렘49:34~39) 등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유다에 3차례나 쳐들어와 결국 남유다를 멸망시킨 대제국이 있었으니 그 나라가 바로 '바벨론'(신바빌로니아 제국)이었다(렘50~51장). 

 

2. 남유다와 관련된 나라들은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세울 때에 남유다의 선지자로만 세우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기 때문이다(렘1:5).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열방의 여러 나라들과 남유다의 여러 왕들을 뽑고 심고 세우고 파멸하는 예언을 맡게 된다. 그중에 가장 먼저 남유다가 B.C.586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에 의해 멸망당한다. 그리고 주변국들도 역시 멸망을 당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남유다와 주변 9개국을 멸망시킨 나라가 누구였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 나라였다. 그 나라는 남유다가 가장 싫어하는 바로 그 나라, 곧 '바벨론'이었다. 그때 바벨론은 남유다가 그렇게 의지했던 애굽을 쳐부수어 무너뜨렸다. 그리고 나머지 남유다의 주변국을 전부다 정복하여 세금과 곡물을 바치게 하였다. 그런데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세계를 뒤흔들어 놓고 고대 근동을 다 차지했던 바벨론이라는 제국도 결국 얼마 못 가서 또 다른 나라에 정복당하고 말았다는 점이다. 참고로 그때 바벨론을 정복한 나라는 메대와 바사의 연합군이었다. 고로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이 세상의 어떤 나라도 영원한 나라, 영원히 지속되는 나라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혹시 만약이라도 그러한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는 이 땅의 나라가 아니라 저 하늘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일 뿐이다. 

 

3. 남유다를 멸망시켰던 바벨론은 왜 멸망당하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남유다를 멸망시켰던 바벨론은 왜 멸망당하게 되었는가? 우리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바벨론의 멸망 원인을 살펴볼 수 있는데,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바벨론이 살아계시며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전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다(렘51:15~17). 바벨론은 벨(=마드룩)과 느보를 신으로 섬긴 나라였다(렘51:44, 사46:1). 그들은 자기들의 우상 신을 섬긴 것이지 결코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들이 그 속에 생기가 없고 거짓 뿐인 우상을 섬겼기 때문이었다(렘51:17). 그리고 둘째, 바벨론이 멸망당한 두 번째 이유는 그 나라의 교만 때문이다(렘50:29). 그들은 자기들이 고대 근동을 전부 정복하게 되자 기고만장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힘과 지혜와 능력이 뛰어난 것이라고 착각했고, 자신들이 섬기는 신이 최고라는 자만의식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의 교만을 두고 보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또 다른 나라에 의해 멸망당하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결국 바벨론이 멸망당함으로 인하여, 70년 만에 남유다 백성들은 다시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원수의 원수의 나라는 우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4. 남유다와 주변 열방 10개국의 멸망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역사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남유다 주변 열방 10개국의 패망을 통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역사적인 사실들을 깨달을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은 비단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선민으로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으로 특별히 삼으셨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이방 나라들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이 우주의 주관자시라는 것이다. 그렇다. 이 세상에 단 하나인 절대 주권자는 우리 하나님 뿐이시다. 구약으로 치면 여호와 하나님이시요, 신약으로 치자면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둘째, 이 세상의 역사는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인간들의 우발적이거나 치밀한 계획에 의한 산물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개인 뿐만 아니라 국가를 심고 뽑을 수 있고, 세우고 허물 수 있기 때문이다. 

  

5. 남유다와 주변 열방 10개국의 멸망을 통하여 깨달을 수 있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남유다 주변 열방 10개국의 패망을 통해 다음과 같은 영적인 교훈들도 함께 발견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 이외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의지하는 모든 것은 결국 헛된 것이요 허망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남유다는 한사코 애굽을 의지했다. 하지만 애굽은 결국 바벨론으로부터 남유다가 멸망하는 것을 도와주지 못했다. 이 세상과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결국 허망한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이방 사람들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징계와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지만, 이방 사람들은 결국 악의 도구로 하나님께 쓰임받다가 결국 버려지고 만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방신들이 섬기는 신은 우상이요 결국 귀신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나 저주받은 귀신을 섬긴 개인이나 나라는 반드시 망하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 사람으로부터 섬김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 뿐이시기 때문이다. 바벨론이 그랬다. 

  셋째, 하나님은 악한 자들이나 악한 영들(귀신들)을 야당처럼 쓰시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고 나면 오히려 그들을 심판하여 영원한 불못에 던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악의 도구로 사용된 자들은 악을 산출한 것이므로 그들은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가룟 유다에게 상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예수님을 팔아 넘겨서 죽게 해야만이 인류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려지게 되기 때문에, 가룟 유다가 그 일을 했으니 상을 주어야 하고 천국에 들여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가룟 유다는 선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악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인을 무고하였고 죽이는 데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이고 파괴하는 것은 사탄이 하는 일일 뿐인 것이다. 우리는 일평생 주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선의 도구로 사용될 망정 결단코 사탄처럼 악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3년 04월 06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40) 끝내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는 자들이 맞이하게 될 비참한 최후(렘40:1~45:5)_2023-04-05(수)

https://youtu.be/wQ8xnA3JlGs [또는 https://tv.naver.com/v/35305794]

 

1.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은 남유다를 어떻게 처리했는가?

  B.C.586년 4월 9일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됨으로 인하여 남유다는 멸망한다. 그 뒤로 남유다는 포로에서 귀환하여 돌아왔지만 계속 속국으로 살다가 A.D.70년 로마에 의해 지구상에서 없어진다. 남유다는 그렇게 망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남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은 남유다의 잔류민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그것은 총독으로 미스바에 있는 서기관이었던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임명해서 세금을 바치며 살게 한다(렘40장). 

 

2. 그다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바벨론 왕이 그다랴를 총독으로 임명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들에 있는 지휘관들과 부하들이 그다랴를 찾아왔는데 그중에는 '요하난'도 있었고 '이스마엘'도 있었다. 그런데 '이스마엘'은 왕족으로서, 왕족인 아닌 서기관 출신이 유다를 다스리는 것에 대해 매우 큰 불쾌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요하난이 그와 같은 사실을 알아차린 후, 그다랴에게 이스마엘을 제거할 것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한다. 그 후 어느 날 이스마엘이 그다랴와 함께 식사할 시간이 있었는데, 이때 이스마엘은 아무런 방비도 갖추지 못한 그다랴를 칼로 죽이고 만다(렘41:2). 그리고 그것 외에도 예루살렘 순례객들 70명까지 암살하고 만다. 그러자 요하난이 즉시 전열을 가다듬고 이스마엘과 싸우게 되는데, 이스마엘은 자신의 전세가 불리한 것을 깨달은 직후 즉시 8인과 함께 암몬 자손에게 피신하여 숨어버린다.

 

3. 요하난은 남은 유대인을 어떻게 인도했는가?

  그러자 바벨론에서 임명한 총독이 암살당했다는 말이 바벨론에게 들어가면, 틀림없이 응징하러 온다는 것을 예상했던 요하난은 남은 유다인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피난을 떠나려고 한다. 그러자 예레미야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한다. 그냥 유다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하나님께서 세우고 헐지 아니하고 심고 뽑지 아니할 것이라고 전한다(렘42: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하난은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데리고 애굽 땅으로 들어가 다바네스와 믹돌과 놉과 바드로스 등에 거주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애굽 땅에 살고 있는 유다인들을 향하여, 그들이 또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애굽으로 들어갔던 사실을 거론하시면서, 애굽 땅으로 들어가 살 것을 고집하던 유다의 남은 자손들을 다 처단할 것이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이 애굽 땅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을 뿐만 아니라, 애굽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전제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렘44:18~1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 있는 유다의 모든 사람들을 바벨론의 군대를 불러다가 칼과 기근으로 죽일 것이라고 경고하신다(렘44:27,30). 

 

4. 남유다 멸망 후 일어난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역사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남유다가 멸망했지만 바벨론의 허락으로 인하여 그나마 빈민들은 예루살렘에서 살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빈민들마저 애굽 땅으로 건너감으로 결국 거기에서 거의 다 죽고 만다. 그곳에서 도망쳐 나온 극히 소수만이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그러니까 유다와 예루살렘은 B.C.586년을 기점으로 폐허더미가 된 것이요 황무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셨던 모든 말씀들이 고스란히 그대로 성취가 되었다(렘7:34, 24:10, 25:18).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실행된다는 것을 남유다의 멸망 속에서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렘7:34 그 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어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  

렘24:10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 그들이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렘25:18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과 그 왕들과 그 고관들로 마시게 하였더니 그들이 멸망과 놀램과 비웃음과 저주를 당함이 오늘과 같으니라 

 

5. 남유다 백성들에게 가장 안타까운 점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끝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채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 남유다의 멸망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들려주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살길을 제시해 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듣기를 거부하고 순종하지 않는 자는 결국 망하게 된다는 것을 알려 준다. 무엇보다도 남유다에게는 끝까지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외쳤던 참 선지자 예레미야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선지자의 외침을 귀담아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바로 "들을 귀가 없는 자"인 것이다. 아무리 알려 주고 들려주고 보여 주는데도 깨닫지 못한다면 결국 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랬다. 남유다가 그랬다. 그렇게 날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들을 꾸짖고 또한 그들에게 바른길을 제시해 주었지만 그들은 끝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시류에 편승하여 사람의 눈치만 보고 살았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 그러면 패망만이 자기를 기다릴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다 날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회개합시다. 회개합시다."라고 아무리 외친다고 할지라도 실제적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 보라. 모두가 하나같이 주옥같은 말씀들 뿐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주님께서 천국에 대해 말씀을 전하고,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할 때에는 꼭 한 가지로 "귀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마13:9, 계2:5,7). 이는 사람이 들어야 할 말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천국'에 관한 말씀이요 '회개'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왜냐하면 회개해야 천국에도 들어갈 수 있고, 회개해야 저주에서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믿지 않는 자들을 전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도 말로만 회개한다고 하지 말고, 직접 회개하는 일에 동참하여 회개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러한 자가 어떠한 복을 누리고 살게 되는지를 한번 경험해 보자. 

 

 

2023년 04월 05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39) 하나님의 말씀을 듣긴 들었으나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의 최후(렘37:1~39:18)_2023-04-04(화)

https://youtu.be/hO7N3ZtljY4 [또는 https://tv.naver.com/v/34630496]

 

1. 남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 곁에는 어떤 선지자가 있었는가?

  남유다가 드디어 멸망으로 치닫고 있었을 때에, 시드기야 곁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해 줄 수 있는 선지자가 한 명 있었다. 그는 바로 예레미야였다. 그런데 그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시드기야가 들었을 때에 좋아할 만한 말만 하는 그러한 거짓 선지자는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고 그대로 전달해 주는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러한 선지자가 항상 시드기야 곁에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다. 

 

2. 남유다의 운명이 기울어질 무렵 시드기야왕은 예레미야에게 어떤 부탁을 했는가?

  자신의 조카였던 여호야긴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던 시드기야는 바벨론이 세우고 간 왕이었다. 왜냐하면 B.C.597년경 바벨론의 2차 침공으로 인하여 바벨론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을 사로잡아 갈 때에, 여호야긴왕 대신에 세워 놓았던 왕이 바로 시드기야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드기야는 바벨론에게 잘 보여야 했다. 하지만 신하들은 거의가 다 친애굽파였다. 왜냐하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가장 먼저 와서 도와줄 수 있는 나라는 남유다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애굽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드기야왕은 늘 갈팡질팡했다. 그래도 그는 신하들의 의견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늘 신하들과는 반대되는 예언을 했다. 바벨론이 와서 남유다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남유다가 하루라도 빨리 바벨론에게 항복한다면,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결코 파괴되지 않을 것이고, 남유다의 왕과 왕의 자녀들과 백성들의 목숨도 역시 전리품이 되어서 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항복하여 훗날을 기약하라고 하였다. 하지만 시드기야는 만약 자신이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면 포로민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될까 봐 염려하였다. 그래서 그는 신하들의 말을 듣고 끝까지 항전하기로 결정하고 말았다. 그는 끝내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을 귀담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3. 시드기야왕의 복과 저주는 무엇인가?

  시드기야왕에게 있어서 복은 그의 곁에 항상 예레미야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전달해 주는 메신저로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 주는 일종의 풍향계와 같았다. 그러므로 바벨론 군대가 다시 예루살렘을 에워싸자 그는 곧바로 예레미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부탁할 정도였다(렘37:3). 하지만 애굽 군대가 올라온다는 소식을 들은 바벨론 군대가 잠시 예루살렘에서 떠나가자마자, 시드기야왕은 금세 마음이 변하였다. 그래서 바벨론에게 항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신하들의 말을 듣고 예레미야를 감옥에 가두어버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애굽 군대가 떠나가고 바벨론 군대가 다시 쳐들어오자 이번에도 역시 시드기야왕은 구덩이에 있는 예레미야를 불러내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예레미야는 만약 바벨론에게 항복하면, 왕도 죽지 아니하고 예루살렘 성도 불타지 아니하며, 왕과 왕의 가족도 살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만약 바벨론에게 항복하지 아니한다면, 왕은 도망치지 못할 것이며, 예루살렘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어가서 불살라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렘38:17~18). 그렇지만 시드기야는 끝끝내 신하들의 말을 듣고 결국 바벨론과 항전을 벌이게 된다. 그러다가 2년 만에 예루살렘 성은 함락되고 만다. 여기서 정리할 수 있는 핵심 진리는 시드기야왕에게 복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곁에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저주는 하나님의 선지자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4. 예레미야가 구덩이에 던져 넣어졌을 때에 용기 있는 행동을 한 사람은 누구인가?

  예레미야가 왕의 고관들에 의해 미움을 받아 구덩이에 던져졌을 때에 그를 살려 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왕궁 내시 '에벳멜렉'이었다. 그는 예레미야하고는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고관들에 의해 예레미야가 무고하게 구덩이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부당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곧바로 왕에게 그와 같은 사실을 알린다. 이는 잘못하면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는 형국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에벳멜렉의 말을 들은 시드기야는 곧바로 신하 30명을 데리고 가서 예레미야를 건져내어 살리라고 명한다. 그러자 에벳멜렉은 그들과 함께 가서 구덩이에 빠진 채 있는 예레미야를 건져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 에벳멜렉의 용기 있는 행동을 줄곧 지켜보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군대가 공격해 와서 예루살렘 거민을 학살하는 과정 속에서도 에벳멜렉 그 만큼은 절대 죽지 않게 보호해 주셨다(렘39:15~18).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시고 달아보시며, 그것에 상응하는 어떤 보상을 해 주시는 분이신 것이다. 

 

5.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3가지 반응과 그 최후는 어떤 것인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되는가? 대체로 다음과 같은 3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첫째, 어떤 말씀을 들었을지라도 그 말씀을 흘려버리는 것이다. 그 말씀에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의 선지자들과 고관들의 태도가 이 경우다. 둘째는 말씀을 들었을 때에 관심을 조금 보이기는 하지만 그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시드기야왕의 경우가 그러하다. 셋째, 주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는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들 셋의 마지막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첫째, 어떤 말씀을 듣더라도 아예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인데, 당시 예루살렘의 선지자들과 고관들이 바로 이런 부류에 속했다. 그럼 이들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가? 모두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둘째, 말씀을 듣고 관심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 말씀에 결국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의 경우가 시드기야왕의 경우다. 그런데 이러한 자도 역시 처참한 꼴을 당하고 만다. 그럼, 시드기야왕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2년간 바벨론과 항전을 벌인다. 하지만 결국에 예루살렘 성이 함락될 것 같자, 곧바로 밤에 몰래 군사 몇 명과 함께 도망을 친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바벨론 군대에 붙잡히고 만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왕 앞으로 끌려간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왕은 시드기야왕이 보는 앞에서 시드기야왕의 아들들을 다 죽여버린다. 그리고 시드기야의 눈을 뽑아버린 채, 그를 사슬로 결박하여 포로로 잡아간다. 셋째, 주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도 있다. 그러한 사람에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있었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지켜 주신다. 그러나 그때 당시 거짓 선지자들과 예루살렘의 고관들은 그를 몇 번이고 죽이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결코 그를 죽이지 못했다. 그런데 반대로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에 바벨론의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가장 먼저 감옥 뜰에 갇혀 있는 예레미야를 찾아서 석방시켜 준다. 그렇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살 것 같지만 결국 비참한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신11:26~28, 28:58~64). 

 

 

2023년 04월 04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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