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 보통 '요한계시록'하면 장차 되어질 일이 기록된 책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좀 더 들여다보면, 예수께서 누군지를 알려주는 최종 계시의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시다. 과거에 사람이셨던 분이시다. 고로 예수님은 신성에 관한 칭호와 인성에 관한 칭호를 모두 다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천상에서 예수께서는 지금 어떤 위치에 있을까? 요한계시록에서 그분을 칭하는 마지막 칭호는 대체 무엇인가? 우리가 그분에 관하여 칭호 한 가지만을 고르라면 우리는 어떤 칭호를 고르는 것이 선택해야 하는가?

 

2022-06-05(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요한계시록의기독론(30)[최종회]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예수님은 누구이신가(30)(계22:20~21)_2022-06-05(주일)

https://youtu.be/mUao2GcYn2s  [혹은 https://tv.naver.com/v/27207834 ]

 

1. 들어가며

  예수께서는 누구신가? 이것은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끊임없이 물어야 하는 질문 중의 질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만큼 우리도 예수님의 어떠하심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요, 그분으로 인하여 우리가 살아낸 만큼 저 천국에서 우리의 지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그분을 제대로 믿는 것은 매우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려주는 가장 훌륭한 성경(교본)을 하나를 고르라면 우리는 단연코 요한계시록을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 성경 66권 가운데 가장 늦게 기록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구약의 모든 계시의 완성으로 주어진 결론의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동안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기독론에 관한 연구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번 기회를 통하여, 요한계시록에 나타나 있는 예수님에 관하여 거의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요한계시록의 기독론의 마지막 시간으로서 총 정리의 시간을 가짐과 동시에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예수님은 한 마디로 어떤 분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2. 요한계시록에 나타나 있는 예수님의 신성한 칭호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요한계시록에는 예수님에 관한 신성한 칭호들도 있고, 인성에 관한 칭호들도 있다. 그중에서 신성에 관한 여러 가지 다양한 칭호들을 종합해 보면, 그분이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신성한 칭호로서 자신을 맨 처음에는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계1:17)"고 말씀하셨는데, 맨 나중에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22:13)"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예수님의 칭호가 구약시대에는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한 칭호로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사41:4, 44:6, 48:12). 그러므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는 실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신 바로 그분이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1:8에서 자신을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신 분은 누구신가? 그분은 '주 하나님'이시며 '전능하신 이'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올 자"라고 말씀하셨다(계1:4,8,4:8). 그런데 이분은 진정 누구신가? 우리는 이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일곱째 나팔과 함께 ㅊ너국에서 공중하늘로 오신 예수께서 자신을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신 이"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계11:17, 16:2). 이때 공중하늘로 오신 그분은 "인자같은 이"라고 표현되어 있다(계14:14). 그런데 요한계시록 1:13의 말씀을 보면, "인자같은 이"는 예수님으로서, 자신을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신 이이시다(계1:17). 또한 예수께서는 자신을 '보좌에 앉으신 이"라고 하심으로 그분이 주 하나님 자신인 것을 드러내셨다(계3:21, 20:11~12). 그리고 그분은 자신을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라고도 하셨다(계1:18, 11:15). 그리고 이어서 그분은 자신을 '창조의 근본(시작)이신 이'라고도 하셨다(계3:14). 또한 예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이 땅에 보낸 성령을 통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감찰하시는 전지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다(2:18, 23, 5:6).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예수께서는 하나님에 바쳐진 동일한 경배와 찬양을 그대로 받고 계신다(계5:12~14). 고로 우리는 그분에게 불려진 칭호들을 종합해 볼 때에 예수님은 바로 '한 분 하나님'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3.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있는 예수님의 인성의 칭호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렇지만 하늘에 오르신 예수께서는 자기 자신을 한 때는 사람이었던 존재였음을 분명히 밝히셨으니, 그의 칭호들 속에서 우리는 그분이 과거 인성을 취하셨던 사람이셨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원래는 '다윗의 뿌리'이셨지만(계22:16), 그분은 '유다지파의 사자'이자(계5:5) '다윗의 자손'으로서(계5:5,22:16)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그분은 '아기'이자 동시에 '아들'로서 이 세상에 태어나셨다(계12:2,5). 그리고 그분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나서는, '그리스도'라는 3중의 직책을 수행하셨으며(계1:1,2,5, 11:15, 12:10, 20:4, 20:6), 인류를 위한 대속제사를 위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시었고(계5:6,7,8,13...총30회),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계11:8). 그것은 그분이 이 세상에서 '인자(사람의 아들)'로 오셨기에(계1:13,14:14)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이 되실 수가 있으셨다(1:18). 그분은 또한 그리스도로서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가 되셨으며(17:14,19:16), 그분은 '목자'이기도 하신다(계7:17). 그리고 그분은 인간으로 오셔서 성실하게 사셨기에 아버지에게 대하여 자신을 "충성되고 신실한 이"라고 표현하실 수 있었다(1:5). 또한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이 땅에 아들로 보내어졌기에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셨다(계2:18).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께서 한 때에 인성을 취하실 분이지 지금도 인간이신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때 인성을 취하셨다는 측면에서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자(사람의 아들)'이라고 칭할 수가 있는 것이다. 

 

4.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예수님이 누군지는 한 마디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예수님은 한 마디로 어떤 분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그것은 "주[님]"(퀴리오스)이라는 칭호로 정의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왜냐하면 주님이라는 칭호는 그분이 인성을 취하실 때에도 불려진 칭호이지만, 지금 천국에서는 '하나님'이라는 칭호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주님'이라는 칭호는 예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 사람들과 제자들이 먼저 불렀던 칭호였다. 그때 '주님'이라는 칭호는 그것이 '하나님'과 같은 신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선생님'이나 혹은 '위대한 선지자'와 같은 의미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공생애를 살고 계실 때에 사람들과 제자들이 불렀던 칭호를 보면, 그분은 "주님", "랍비", '선생님",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 등으로 불리셨음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승천하셔서 하늘에 계신 우리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모든 만물로부터 '주님'이라는 칭호를 기꺼이 받고 계신다. 

 

5.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주님'이라는 칭호는 어떤 칭호인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주님'이라는 칭호는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칭호였을까? 요한계시록을 보면, '주님'이라는 칭호는 다음과 같은 3가지 대상에게 사용되었다.

  첫째는 '한 분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때 '주님'이라는 칭호는 '하나님'이라는 칭호와 함께 동시에 사용되었다. 그래서 "주 하나님"(11회)(계1:8, 4:8, 4:11, 11:17, 15:3, 16:7, 18:8, 19:6, 21:22, 22:5, 22:6)이라고 불리셨다. 그리고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7회)(계1:8, 4:8, 11:17, 15:3, 16:7, 19:6, 21:22) 혹은 "주 하나님이 전능하신 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2회)(계1:8, 4:8) 라고 사용되기도 하였다. 둘째로, '주님'이라는 칭호는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되었다(계11:4). 이것은 구약의 말씀인 스가랴서를 인용하여서 그렇다(슥4:14). 마지막으로 셋째, 그것은 순수하게 우리 주 예수님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표현은 요한계시록에서 총 6번에 걸쳐서 나온다(계1:10, 11:8, 14:13, 17:14, 22:20, 22:21).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사용되는 '주님'이라는 칭호는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가?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이라는 용어는 사실 '하나님'을 대신하는 동격의 칭호라고 정의할 수 있다. '주님'이라는 말과 '하나님'이라는 말이 사실 동격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근거는 요한복음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거기에서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리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요20;28)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나의'라는 소유격을 빼버린다면, 예수님은 '주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이는 '주님'이라는 칭호가 곧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대신하는 동격의 칭호라는 것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제자들이 '주님'이라고 불렀던 분을 이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한편, 요한계시록의 맨 마지막 부분에 가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주님'이라는 칭호를 붙여서 "주 예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즉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22:20-21)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사도 요한은 맨 마지막으로 예수님에게 "주님'이라는 용어를 붙여서 사용함으로써 그분이 곧 '주 하나님'이신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계22:16에서는 예수님께서 손수 자신을 가리켜 "나 예수"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그분이 구약시대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라는 것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라는 의미의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분은 스스로 있는 자시요 그분만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6. 나오며

  우리는 장장 30번의 시간을 통하여, 요한계시록에 나타나 있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살펴보았다. 처음에 그분은 흰 머리를 가지시고 흰 옷을 입으신 분으로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셨다. 그것은 다니엘이 보았던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의 모습과 같은 것이다(단7:9). 하지만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님이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여호와로 나타나신 것이며, 신약시대에는 아들로서 사람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사람이 되셔서 인류를 위한 대속제물로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 그리고 하늘로 되돌아가셨다. 그러므로 지금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는 바로 예수께서 앉아계신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한 분 하나님의 보좌를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고 불렀다(계22:1,3). 예수께서는 원래 한 분 하나님으로 계시다가 우리를 위해 사람으로 오셨으며, 다시 하늘로 되돌아가신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한 한 분 하나님에 대한 경륜을 말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표현으로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성부 하나님에 대한 칭호가 아니며,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칭호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장차 오실 이'로 표현된 하나님이 다름 아닌 예수님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계11:17, 16:5). 영국의 신약학자 리차드 보컴(보쿰) 교수는 그의 저서 "요한계시록 신학"(한들출판사, 2000)이라는 책에서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리하여 보컴 교수는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였다. "그리스도가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즉 예수님이 심판하는 것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이요, 예수님이 통치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보좌에 앉으시는 것은 하나님이 앉으시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이 곧 주 하나님이신 것이다. 할렐루야! 

 

2022년 06월 05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29) 천상에서 예수님은 인자(人子)같은 이이시다(계1:13)_2022-06-03(금)

https://youtu.be/sq8fP61yf0g  [혹은 https://tv.naver.com/v/27142676 ]

 

 

1. 예수께서 자신을 칭할 때에 사용했던 칭호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예수님을 지칭하는 칭호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런 것에는 "주", "그리스도(메시야)", "하나님의 아들", "다윗의 자손" 등의 칭호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칭호들은 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칭하는 칭호들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스스로를 어떻게 칭하였을까? 요한복음을 읽어보면 예수께서는 스스로를 '아들'이라는 용어를 참 많이 사용하셨다. 이는 다름 아닌 '아버지'와의 관계를 두고 자신를 칭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 "아들'이라는 칭호는 곧 예수께서 '아들'이자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사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인자'라는 또 다른 칭호를 많이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공관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께서는 자신을 가리키는 말을 대신하여 "인자'라는 칭호를 많이 사용하셨던 것을 알 수 있다. 즉 예수께서는 '인자'라는 칭호를 마태복음에서 29회, 마가복음에서 14회 그리고 누가복음에서 27회, 도합 70회를 사용하셨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도 예수께서 자신에 대한 칭호로서 '인자'라는 칭호를 무려 12번이나 사용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그러한가? 이는 예수께서 그만큼 '인자'라는 칭호를 즐겨 사용하셨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2. 예수님은 왜 자신에 대한 칭호로 '인자'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셨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자신에 대한 칭호로서 '인자(人子)'라는 용어를 참 많이 사용하셨는데, 어떤 경우에 이러한 칭호를 사용하신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내가"라는 말 대신에 사용하신 것 같다.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19:28)" 그렇다. 예수께서 '인자'라는 칭호를 사용하실 때에는 "내가'라는 말을 대신하여 그렇게 사용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내가'라는 칭호 대신에 왜 굳이 '인자'라는 칭호를 사용하신 것인가?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 누군지를 감추기 위한 것이다. 이는 듣는 이로 하여금 혹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단죄하여 예수님에게 돌로 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보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마9:6)",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요6:62)" 그랬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실은 하나님이셨지만 우선 그것을 감추어야 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사람들이 부인할 수 없게금 증거들은 남긴 채 십자가를 지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라는 말을 사용하려 하실 때에, 혹시 그 말을 잘못 듣게 되면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판단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일부러 '인자'라고 표현하신 것이다. 

 

3. 예수님에 관한 칭호들 가운데 '인자(人子)'라는 칭호는 어떤 의미인가?

  그렇다면, '인자'라는 칭호의 본래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인자'라는 말을 헬라어 원문을 따라 그대로 보면,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은 '예수께서는 사람이시다'라는 뜻인데, 그분이 동정녀 마리의 몸을 빌려 이 땅에 태어나셨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분은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분은 원래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이 땅에 오신 분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분의 아버지는 그를 이 세상에 보낸 분으로서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는 자신을 '아들'이라고 칭하셨다. 그러므로 이때 그분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 외에도 '인자(사람의 아들)'라는 칭호를 참 많이 사용하셨다. 이는 예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이이다. 즉 자신은 동정녀(처녀)의 몸에서 탄생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인자'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신 것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이셨지만 사람으로서 태어나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인자'라는 불리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이것이 '인자'에 대한 첫 번째 방면의 뜻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뜻이 있다. 그것은 그분이 인류의 대속제물로 자신을 내어주기 위해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항상 자신이 기억하고 새기기 위하여 그렇게 자신을 부르신 것 같다. 왜냐하면 사복음서를 읽어보면, 인자라는 용어는 예수께서 자신이 고난받고 핍박받으며, 사람들에 의해 넘겨지시고,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시며, 그리고 무덤에 묻히시는 것과 관련지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자'에 대한 두번째 방면의 뜻이다.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마17: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마18: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마26: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요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마12: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눅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그렇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음을 늘 기억하고 되새기기 위해서 자신에게 늘 '인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신 것이다. 

  그리고 '인자'에 대한 세번째 뜻이 있다. 그것은 그분이 장차 심판주로 재림하시어 상을 줄 자에게는 상을 주시지만, 벌받을 자는 면제하지 아니하시고 그를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하기 위한 것것이다. 고로 사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사역 중에서 재림에 관한 말씀을 증거할 때에는 꼭 자신을 '인자'라고 칭하셨음을 알 수가 있다. 

 

4. 예수께서 인자가 되심으로 인하여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런데, 예수님의 자기낮춤식의 '인자'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어떤 은혜를 부어 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인자가 되심으로 인하여 2가지 권한을 아버지로부터 받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는 죄사함의 권한이다(마9:6). 이것은 예수께서 인자가 되어서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내놓으심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또 하나는 심판하는 권한이다(요5:27). 이는 예수께서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이 되셨기에 한 분 하나님의 권한 가운데 그분이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도 요한복음에서 언급하기를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요5:27)"고 말씀하셨다. 고로 예수께서는 인자가 되심으로 인하여 여러가지 유익을 얻으신 것이다. 그것은 죄사함을 주는 것이요, 심판하는 것이다. 

 

5.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인자와 같은 이는 어떻게 모습인가?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하고 있는 사복음서를 제외한다면, '인자'라는 용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예수께서 육신을 벗으신 후에는 '인자'라는 칭호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 것이다. 사복음서 외에는 딱 4번만 사용되고 있는데, 한 번은 스데반이 죽기 전에 인자를 보고 사용한 표현한 것이고("인자가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내가 보노라, 행7:56)", 또 한 번은 사람을 지칭할 때에 즉 그것이 단지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의미로서 히브리서에 1번 사용되고 있다(히2:6). 그리고 나머지 둘은 요한계시록에만 나오는 표현들이다. 그것은 천상의 예수님은 이제 '인자와 같은 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인자와 같은 이'라는 표현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첫째로,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에는 인자(사람의 아들)였지만, 이제 천상에서 예수님은 더이상 인자는 아니시며, 다만 인자의 모습을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상에서 그분은 더이상 "인자'라고 불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그분을 '인자와 같은 이(닮은 이, 유사한 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다시 오실 심판주로서의 예수님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렇게 사용한 것이다(계14:14). 그렇다. 예수께서 다시 '인자와 같은 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 것은 그분이 이미 공중에 와 계실 때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얼마후 잘 익은 곡식들을 추수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인자같은 이'라는 칭호는 그분의 재림과 더불어 사용되고 있는 표현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여기서 예수께서 '인자'라는 칭호를 사용했다는 점을 통하여, 우리의 미래를 잘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원래 하나님이셨던 예수께서 자신을 낮추시고 '사람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셨고 또한 그러한 삶을 사셨기 때문에 그분의 이름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된 것처럼, 우리들도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처럼 자기를 낮추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 땅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에서 큰 지위를 가지려면, 귀신도 많이 좇아야 하겠지만, 스스로 낮은 자가 되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복음을 위해서 물질로 헌신하는 자라야 하기 때문이다. 

 

2022년 06월 03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28) 예수님은 구원자로 오신 한 분 하나님이시다(계22:20~21)_2022-06-02(목)

https://youtu.be/0CNJTL8V-Vw  [혹은 https://tv.naver.com/v/27141976 ]

 

1. 구약의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이며, 신약의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구약의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혹은 '야훼')이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께 여쭤봄으로 인하여 비로소 알려지게 된 이름이다(출3:13~15). 그렇다면 신약의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다시 말해,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라는 이름이다(마1:21, 눅1:31). 그렇다면 '여호와'와 '예수'라는 이름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2. '여호와'와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구약의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다(출3:14~15). 그럼 그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이거나 아니면 "나는 '나는 ~이다'이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여호와 호쉬아[흐]'라는 말을 줄인 것으로서, '여호와가 구원하신다' 혹은 '구원하러 오신 여호와'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 속에 이미 '여호와'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 39권 가운데 단 한 군데에도 '여호와'라는 이름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신약 시대의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은 이렇게 이제는 '예수'라고 계시되었기 때문이요, '예수'라는 이름 속에 이미 '여호와'라는 이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리아와 약혼한 요셉의 꿈속에 나타난 천사가 장차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일러주었을 때, 그 이름의 뜻은 이미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할 자'였음을 요셉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마1:21). 그러므로 '여호와'라는 이름이 "스스로 있는 자, 나는 ~이다"라는 뜻을 지녔다면, '예수'라는 이름은 "스스로 있는 자가 구원하러 왔다"라는 뜻인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어 아들이 되신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예수'라는 이름을 히브리어로 읽으면 '예슈아[흐]'이다. 이는 '여호와 호쉬아[흐]'의 축약형이다. 여기서 '호쉬아[흐]'라는 단어는 '야솨'라는 동사에서 온 것으로, '구원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신약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예루살렘 입성하실 때에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 흔들며 환영하던 군중들의 외침 소리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때 군중들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외쳤다(요12:12). 또한 여기에 나오는 '호산나'는 히브리어로 '여호와 호쉬아나'이다. 그리고 여기서 '호쉬아[흐]'는 구원하다는 뜻이며, '나(NA)'라는 뜻은 '지금(NOW)'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호쉬안나(=호산나)라는 단어의 뜻은 '여호와여 지금 구원하소서'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3. 구약 시대 하나님의 진짜 이름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셨던 하나님의 이름을 모두들 '여호와'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맞다. 그때에는 '여호와'가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 음가가 '여호와'인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늘날 히브리어는 모음이 붙여진 상태이지만 원래 히브리어는 자음만 있을 뿐 모음이 없는 글자였다. 그러므로 원래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록된 신명사문자 곧 "요오드 헤 와우 헤"라는 자음도 사실은 '나의 주님'을 뜻하는 '아도나이'의 모음을 가져다 거기에 붙여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데 학자들이 연구해 본 결과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라는 발음보다는 '야훼'가 훨씬 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구약 시대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혹은 '야훼'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이름을 '3인칭 미완료'로서 말씀하신 것이요, 하나님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는 1인칭 시점으로 말씀하셨기에 그 음가가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학자들이 찾아낸 하나님의 이름은 '아하야[흐]'라는 이름이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축약형이 '야[흐]'이기 때문이다(예: 이사야, 예레미야, 할렐루야 ...). 그러니까 원래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혹은 '야훼')가 아니라 '아하야[흐]'였던 것이다.

 

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알려 준 진짜 하나님의 이름의 이름은 무엇이었는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혹은 '야훼')정도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더 정확한 하나님의 이름은 '아하야[흐]'인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처음에 모세에게 당신의 이름을 계시할 때에는 어떤 발음이었는가? 그것은 출애굽기 3장 14절을 맛소라 텍스트로 보면 나온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이름은 '에흐예'이다. 그러니까 출3:14에 나오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라는 문구는 히브리어로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로 되어 있다. 이를 번역하면, "나는 에흐예이다"이다. 그러니까 출3:14에 처음 등장하는 하나님의 이름은 '에흐예'였던 것이다. 하지만 신학자들이 과연 '에흐예'라는 발음이 정말 적합한 것인지를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에흐예'라고 읽을 것이 아니라, '아하야[흐]'라고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보다 더 정확한 진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발음은 '아하야[흐]'였던 것이다. 그런데 '아하야[흐]'란 '아'(히브리어로 '나'라는 뜻)에다가 '하야'라는 동사가 합쳐진 단어이다. 여기서 '하야'라는 동사는 영어로 be동사로서 그 뜻은 "있다" 혹은 "~이다"이다. 그러니까 '아하야[흐]'라는 하나님의 이름의 뜻은 "나는 '나는 ~이다'이다" 혹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원래 하나님의 이름으로서 '아하야[흐]'는 히브리어 알파벳 첫 글자인 '알렢' 더하기 '야하[흐]'로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원래는 '아하야[흐] 아쉐르 아하야[흐]'여야 함)라는 뜻은 "나는 '나는 알파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가 무슨 뜻인지를 헬라어 구약 성경(70인역, LXX)에서는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고 에이미 호 온'이다. '에고'는 1인칭 '나'라는 뜻이요, '에이미'는 be동사로서 '있다' 혹은 '~이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리고 '호 온'은 '하야'동사(be동사)의 동사 분사 현재 능동태 구문으로서, '호 온'만을 따로 해석한다면, "이제도 계시는 이"인 것이다. 요한계시록 1:8에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문구에서 맨 앞에 나오는 문구(호 온)를 그대로 옮겨서 쓰고 있는 것이다. 결국 '여호와'(혹은 '야훼')나 '아하야[흐]'의 이름의 뜻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이거나 "나는 나는 ~이다고 하는 이다"의 뜻인 것을 알 수 있다. 

 

5.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수'라는 이름의 용례가 가르쳐 주는 사실은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에는 '예수'라는 이름이 총 12번 나온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라는 이름도 이 땅에 속한 이름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이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7'은 이 땅의 완전수를 뜻하고, '12'는 하늘의 완전수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2번의 예수의 이름 가운데, '예수'라는 이름이 '그리스도'라는 직책과 더불어 쓰인 것은 3번이다(계1:1,2,5). 이 때 '예수'라는 말은 특별히 그분의 이름을 가리키는 것이고, '그리스도'라는 것은 그분의 직책을 가리키는 것이다. 고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표현한 것은 곧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직책을 함께 명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 아홉 차례 더 '예수'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것들 중에서 여섯 개는 예수님을 믿게 되는 자가 환난을 받을 수도 있고 왕국에 참여할 수도 있으며, 참음(인내)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차례는 그것이 주 하나님과 관련되어져서 표현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러한 용례는 "나 예수는...(계22:16)"이라는 표현이 한 번, 그리고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의 문구 속에서 두 번 있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가서 불려지는 예수님의 명칭들 셋의 경우를 보면, 이 세 가지의 것들은 예수께서 스스로 계시는 한 분 하나님이심과 더불어 그분에게는 못할 것이 없는 '전능한 분'이신 것을 드러내 주는 표현들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불려지던 '예수'라는 이름이 천국에서도 동일하게 계속 사용된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한 번 쓰인 이름은 영원히 기억되는 이름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 이름이 '정병진'이라고 치자, 그러면 그때 구원을 받았으면 천국 집의 문패에도 역시 한글로 '정병진'이라고 쓰여진다는 것이다. 그렇다. 결국 '예수'라는 이름은 예수께서 누군지를 계시하는 이름으로 이 땅에서 쓰였지만, 예수께서 그 이름으로 충성함으로서 천국에서도 그대로 그 이름이 사용되는 것이다. 우리의 이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이름이 천국에서도 불려질 이름답게 이 땅에서 부합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1] 창세기강해(08) 하나님의 진짜 이름은 무엇인가(출3:13~15)_2021-02-03(수) https://youtu.be/qvFFH9TdGos

[참고2] 창세기강해(12) 아하야흐(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요5:43)_2021-02-07(주일) https://youtu.be/09LHNpumiHM

 

2022년 06월 02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27) 천상에서 예수님은 여전히 그리스도의 직무를 수행하고 계신다(02)(계11:15)_2022-06-01(수)

https://youtu.be/YKcy2db-B4Q  [혹은 https://tv.naver.com/v/27140068 ]

 

1.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인가?

  요한계시록은 계시의 책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계시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에 대한 계시다. 첫째는 예수께서 누구신지에 대한 계시다. 그분은 일곱 금촛대 사이를 흰옷을 입고 거닐고 계셨다. 둘째는 교회를 향한 주님의 호소로서 구원론에 관한 계시다. 어떻게 해야 사람이 구원받으며 어떻게 해야 이기는 자가 되어 왕 노릇하는 자로 참여하는지를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장래에 대한 계시다. 이는 장차 온 인류와 전 우주의 역사에 관한 계시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예수께서는 "네가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이라고 3가지로 말씀하셨다(계1:19). 그중에 지금 우리는 예수께서 누구신지에 관한 계시의 말씀을 다루고 있다. 

 

2.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는 천상의 예수님을 다음과 같이 두 방면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나는 그분이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계1:8, 22:20~21). 그분은 주 하나님으로서, 전능하신 이이시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며(계21:13), 처음과 마지막이시고(계1:17, 22:13), 또한 시작과 마침이시다(계21:6, 22:13). 그리고 그분은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이시며(계1:18), 그분은 보좌에 앉아 계시는 분이시다(계3:21, 20:11). 그리고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가 예수님이시다. 또 하나는 그분은 한 때 인간이셨다는 것이다(계1:18). 인간이셨던 그분은 사도 요한에게는 인자 같은 이로 보여졌다(계1:13). 더욱이 그분은 지금도 천국에서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라 불리시며(계5:6), 그분은 또한 그리스도의 직분을 소유하신 채 이 땅에서 사셨고 죽고 부활하셨다. 그리고 그 후에는 저 천국에 가서 그리스도로서의 직무를 여전히 수행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그분은 이 땅에 어떻게 들어오셔야 했는가? 그분은 왜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 태어나셔야 했으며(계5:5),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야 했는가?(계5:5, 21:16) 그리고 그분은 원래 '다윗의 뿌리'이시건만 왜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는가?(계22:16). 그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분은 아기이자 아들로서 여자에게서 태어나셨으며(사9:6, 계12:2,5), 사람으로 태어나셨기에 온 인류의 속죄를 위해 대신 죽으실 수 있으셨다(계1:18). 그렇지만 그분은 죄가 없었기에 다시 살아나셨다(계1:18, 2:8). 

 

3. 요한계시록에서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예수께서는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오셨지만 동시에 그분은 '그리스도'로서 직무도 수행하셨다. 여기서 '그리스도'라 함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서, 예수께서도 역시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직무를 수행하셨다는 뜻이다. 그럼, 예수께서는 언제 누구에게 기름부음을 받으셨는가? 그분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예수님에게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셨다. 그리하여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것이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케 되셨으며, 그분은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다. 이를 본 사탄 마귀에게 예수님을 시험하러 왔고, 예수께서는 말씀으로 사탄 마귀를 물리치심으로 사탄 마귀의 부하인 귀신들을 쫓아내실 수 있는 권세를 확보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공생애는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으로 점철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그분은 '그리스도'의 직무를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 그분이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었다(마12:28). 그러므로 기름부음을 받은 직책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성령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공생애 초기에 당신의 고향 나사렛에 가서 처음으로 회당 설교를 하실 때에, 이사야 61:1~3의 말씀을 펴서 읽게 하신 후에 그 말씀이 오늘 그 설교를 듣고 있는 그들의 귀에 응하였다고 말씀하셨다(눅4:16~21). 이때 그분이 읽게 했던 말씀은 이것이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그러므로 예수님의 공생애를 지켜 보았던 베드로도 훗날 이렇게 고백하게 된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 그렇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그의 사역을 시작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선지자직과 왕직 그리고 제사장직을 수행하신 것이다. 

 

4. 예수께서 성령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수행하신 3가지 직무는 어떠한 것이었나?

  예수께서 공생애 시작에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나신 후에 그분은 "기름부음받은 자"로서 3가지 직무를 수행하셨다. 첫째로 '왕직'을 수행하셨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시면서 당신이 모든 만물의 왕이라는 것을 드러내셨으니, 이 세상 임금과 싸워 승리하신 후에 귀신을 쫓아내셨으며, 바다 위를 걸어오셨으며, 말씀으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자 그 다음 날 나무가 뿌리째 마른 사건도 생겼던 것이다. 둘째는 '제사장직'을 수행하셨다. 그분은 제사장의 직무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으로서 직무도 감당하셨으니, 친히 속죄 제물이 되시어 인류를 위한 속죄 제사를 골고다에서 드리셨다. 그리고 그분은 죽으시기 하루 전날 밤에는 마가 다락방에서 홀로 대제사장으로서 바치는 기도를 드리시기도 하셨다. 즉 속죄 사역과 기도 사역을 행하신 것이다. 셋째로 그분은 '선지자직'을 수행하셨다. 그분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으며,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셨고,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지금 와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가르쳐 주시고 보여 주셨다. 그분이 곧 선지자이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의 선지자직이다. 선지자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기름부음을 충만히 받으셔야 했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말한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요3:34)"이라고 말이다. 

 

5. 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직무와 천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직무는 어떻게 다른가?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에 수행하셨던 그리스도의 직무와 천상에서 지금 수행하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직무는 사실 약간 다르다.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에는 그리스도의 삼중 직무를 곧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직무를 다 수행하셨었다. 그런데 이땅에서 3대 직무를 완성하신 예수께서는 하늘에 오르셨다. 그리고 천상에서 그분은 지금도 그리스도로서의 직무를 여전히 수행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천상의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의 삼중 직무 중에서 어떤 직무를 수행하고 계실까? 그것은 한 가지 뿐이다. 그것은 바로 '왕직'이다(계11:15, 12:10). 왜냐하면 제사장의 직무는 이 땅에 계셨을 때에 행하셔야 했던 직무이셨기 때문이요, 선지자의 직무는 이 땅에 계실 때에 무지한 백성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회개를 촉구하며 메시야를 받아들이게 하는 직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더 이상 설교가 필요 없다. 거기에서는 가르침도 필요없다. 영적 지식이 충만하여 그냥 다 알기 때문이다. 배우지 않아도 그냥 다 알기 때문이다. 사실 요한계시록에서는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총 7번 나오는데, 그중에 3번은 '예수'라는 이름과 함께 '그리스도'가 당신의 직분상의 명칭으로 쓰인 것이다(계1:1,2,5). 그리고 나머지 4번은 전부다 왕직과 관련된 용어로 사용되었다. 즉 예수께서 왕의 권세를 가지고 세세 무궁토록 왕 노릇하실 것이라고 나오는 것이다. 나머지 두 번은 이러한 그리스도와 더불어 성도들이 천 년 동안 왕 노릇할 것이며, 천국에서 예배를 인도하거나 집례하는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할 본문으로 등장하고 있다(계20:4,6).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우리는 더 이상 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을 보지 못할 것이며, 선지자로서의 예수님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분은 천국에서 세세 무궁토록 왕 노릇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감사한 것은 천국에서 보좌에 앉아 영원히 경배받으셔야 할 예수께서 왕 노릇하고 심판하는 권한을 믿는 자들에게도 일부 나눠주셨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천국에서 예배할 때에는 제사장으로 참여하지만 어떤 이는 예수님과 더불어 왕 노릇하는 성도들도 있게 될 것이다(계20:4,6). 

 

2022년 06월 01일(수)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