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부활체의신비(06)] 사람이 부활체를 입는 시기는 대체 언제일까?(살전4:13~18)_2023-04-14(금)

https://youtu.be/_ovuaSLg6JY [또는 https://tv.naver.com/v/35305679]

1. 사람은 언제 부활체를 입을까?

  사람이 부활체를 입는 시기에 대해서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재림시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홀연히 변화되어 주님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한 근거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15:51~52의 말씀과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의 말씀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한복음 5:28~29이다. 

고전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요5:28~29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그러므로 성도들은 대부분 사람이 죽으면 무덤 속에서 쉬고 있다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무덤 속에서 일어나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될 것이며, 재림시에 살아 있는 자들은 그날 홀연히 변화되어 부활체를 입고 주님을 영접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주장은 옳은 것인가?

 

2. 사람이 종말을 맞이하는 것은 주님의 재림시인가 아니면 개인이 죽을 때인가?

  성도들 중에 많은 분들은 사도 바울이 고전15장과 살전4장을 기록했을 때의 사도 바울의 바람(기대와 소원)에 나타난 모습을 사람의 부활의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사람의 부활의 시기는 곧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시각으로 고착화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와 데살로니가전서를 썼을 때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즉 그때에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종말의 시기는 우주적인 종말의 시기와 같았지만, 지금 개인의 종말의 시기와 우주적인 종말의 시기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쓸 때(A.D.55년경)와 그리고 데살로니가전서를 쓸 때(A.D.51~53)까지만 해도 사도 바울의 생각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자신의 시대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은 계속해서 지연되었다. 그러자 그가 마지막 시기에 썼던 디모데후서 편지에서는 그의 종말관을 바꾸었다. 그것은 우주의 종말은 지연될 것이고 그때가 오기 전에 자신의 종말이 먼저 올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장차 도래할 우주적인 종말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끝이 나는 것이겠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이 계속해서 지연됨으로 자신의 개인적인 종말을 우주적인 종말보다 먼저 맞이하게 될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가 죽기 직전에 썼던 디모데후서의 말씀에 따르면, 그는 우주적인 종말은 잘 모르겠고, 다만 자신은 이제 심판받고 먼저 천국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딤후4:18).

딤후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그러므로 고전과 살전을 쓸 당시의 사도 바울을 비롯하여 지금 우리들이 맞이하게 될 종말을 정확히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고전과 살전을 쓸 당시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실현되는 우주적인 종말이 곧 자기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편지를 썼지만, 그러한 우주적인 종말이 오기 전에 자신이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개인적인 종말을 먼저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사람이 죽으면 무덤에서 쉬다가 그리스도의 재림시 부활하게 되는가?

  그렇다면 지금 사람이 죽게 되면 잠시 동안 무덤 속에서 쉬고 있다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부활하여 그날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 사람이 죽으면 죽은 즉시 육체는 이제 흙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지만, 그의 영은 부활체를 입고 천국과 지옥으로 갈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부활체를 입는 시기는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되어질 일이 아니라 오늘이라도 당장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여러 가지 증거가 있겠지만, 크게는 2가지 증거가 있다. 첫째는 성경적인 증거가 있으며, 둘째는 실제로 지금 천국과 지옥에 갔다 온 사람들의 증언이 이러한 사실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엇인가를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첫째는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아내야 할 뿐만 아니라, 둘째는 실제 죽은 다음에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아보고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에서도 사람이 죽으면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다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이나 지옥에 들어간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근거로서 첫째는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히9:27). 둘째는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따르면, 나사로는 죽자마자 곧바로 천사들에게 받들려 그의 영혼이 아브라함의 품(낙원)으로 들어갔고, 부자는 죽자마자 그의 영혼이 음부에 떨어졌기 때문이다(눅16:22~23).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결코 무덤 속에 들어가서 쉬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즉시 부활체의 몸을 입고 아브라함의 품(낙원)으로 갔기 때문이다. 셋째는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이다(고전15:20).

 

4. 무덤 속에 있는 자가 그분의 음성을 듣고 살아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런데 예수께서는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 이렇게 알려 주셨다. 

요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5:28~29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이 말씀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무덤 속에 있다가 부활한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무덤'은 사람이 죽었을 때에 그의 시신을 파묻어 둔 장소를 가리키는가? 아니다. 사실 이 말씀은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왜냐하면 요5:25에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그때는 "곧 이때라(지금이라)(현재)"고 주님께서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고 있던 바로 그 시기가 바로 그들이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죽은 자'란 영이 죽은 자를 가리킨다. 고로 예수님이 이 말씀은 "영이 죽어 있어 그 안에 생명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믿고 받아들임으로 생명을 얻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요5:28에 나오는 '무덤 속에 있는 자"는 결국 육체라는 무덤 속에 있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는 무덤 속에 있는 자가 예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그분을 믿고 회개함으로 생명을 얻게 된다면, 그는 자신이 죽을 때에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듣지 못해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은 자는 결국 심판의 부활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는 즉시 지옥(음부)에 떨어져서 고통받다가 예수께서 재림하시게 되면,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5. 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좇아 강림하실 때에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서 말씀했던 죽은 자의 부활은 이미 죽어서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의 부활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때 당시에 죽은 자들을 가리킨다. 그럼 이전에 죽어서 이미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은 어떻게 표현했는가? 사도 바울은 그들에 대해서는 '[잠]자는 자들'이라고 말했다(살전4:13~14). 왜냐하면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고 있는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살전4:13~14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그렇다. 여기서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이란 이미 천국에 들어가서 천국의 누림에 참여하고 있는 자들로서,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재림의 대열에 가장 먼저 동참할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시에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사람들이 주님과 합류할 것이다. 첫째는 이미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서 들어가 있는 성도들이 가장 먼저 주님과 함께 재림의 대열에 참여할 것이다. 둘째는 당시 아마겟돈 전쟁으로 죽은 자들이 먼저 부활하여 참여할 것이다. 셋째 마지막으로 그때까지 살아남아 있는 자들로서,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어 주님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더 자세한 사항은 이 메시지의 후속편을 참고하기 바란다. 

 

 

2023년 04월 14일(금)

정보배(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부활체의신비(05)] 천국에서 누릴 부활체의 영광은 어떻게 결정되는가?(딤후2:20~21)_2023-04-13(목)

https://youtu.be/_QSEpb3UjX0 [또는 https://tv.naver.com/v/35305651]

1. 천국에 들어간 성도가 장차 받게 될 부활체의 영광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천국에 들어간 성도가 장차 받게 될 부활체의 영광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가? 그것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3가지 원칙에 의해 결정된다. 첫째,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심은 대로 결정될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심지 않은 것을 천국에서 거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이 정해 주신 분량대로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성도에게는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사명을 주어 보냈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어떤 자에게는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늦게 믿었다고 해서 꼭 부활체의 영광이 작다고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천국에 들어간 성도가 장차 받게 될 부활체의 영광의 첫 번째 결정 요인은 어떤 것인가?

  천국에 들어간 성도가 장차 받게 될 부활체의 영광의 첫 번째 결정 요인은 우리가 이 땅에서 심은 대로 얻게 된다는 것이다(갈6:7).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씨를 뿌리지 않았으면서 곡식을 추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별히 우리 주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줄 상이 네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주리라"(계22:12). 그렇다. 우리가 행하지도 않은 것을 하나님께서 주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있을 때 부지런히 씨를 뿌려야 한다. 물질을 심든지, 시간과 노력을 심든지, 헌신을 심든지 우리는 우리가 심은 것을 나중에 천국에서 받게 되기 때문이다. 

 

3. 천국에 들어간 성도가 장차 받게 될 부활체의 영광의 두 번째 결정 요인은 어떤 것인가?

  천국에 들어간 성도가 장차 받게 될 부활체의 영광의 두 번째 결정 요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이 땅에 보내실 때에 주신 분량대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두에게 사명을 주시지 않지만 이 땅에 보낸 사람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명을 주어 보낸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그대로 놔두면 다 마귀에게 속하여 지옥에 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이 세상 사람들 중의 일부를 구원하기 위해 그렇게 조치를 취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막중한 사명을 가지고 온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그것을 알게 하신다. 그리고 그 일을 하게 하신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받게 될 부활체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사명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 자기에게 있다고 말이다(행20:24). 그런데 이러한 사명은 대부분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이러한 사명을 감당할 자에게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은사와 달란트를 더해 주신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맡은 사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는 바로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분량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각각 그 재능대로 곧 자기 자신의 능력을 따라 달란트를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마25:15).

 

4. 천국에 들어간 성도가 장차 받게 될 부활체의 영광의 세 번째 결정 요인은 무엇인가?

  천국에 들어갈 성도가 장차 받게 될 부활체의 영광의 세 번째 결정 요인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결정 요인으로 결정되는 것이지만 예외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베풀어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품꾼들을 포도원으로 들여보내는데, 이른 아침부터 들여보냈다. 보통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12시간을 일해야 하루의 품삯 곧 한 데나리온을 받는다. 그러므로 오전6시부터 오후6시까지 일해야 한 데나리온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포도원 주인은 오전6시에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냈다. 그런데 이 주인은 오전9시에 나가서 장터에서 놀고 있 사람들에게 그들에게 상당하게 줄 것을 약속하고 들여보내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주인은 정오에도, 오후3시에도 그렇게 했다. 그래서 오후5시가 되었다. 그런데도 그때에도 여전히 장터에는 일감을 얻 못해 서성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자 주인은 그때도 가서 사람들을 고용했다. 왜냐하면 그들을 써 주는 주인이 없어서 종일도록 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디어 오후6시가 되자, 포도원 주인은 청지기를 시켜 품꾼들에게 품삯을 주게 하였다. 그런데 나중 온 자부터 먼저 삯을 주라고 했는데, 오후5시에 들어와 한 시간 일한 자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먼저 온 자들 자기들은 오후5시에 들어온 자보다 더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주인은 그들 모두에게 전부 한 데나리온씩만 주었다. 그러자 먼저 온 자들이 불평을 하였다. 종일도록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자기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인은 말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노라. 내가 너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했다. "나중 온 이 사람들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가 선하므로 네가 나를 악하게 보느냐?(마20:14~15)" 그렇다. 주인은 오후5시까지 일감을 얻지 못해 서성이고 있는 이들을 불쌍히 여긴 것이다. 그들도 역시 이른 아침부터 주인에게 선택받았더라면 그들도 역시 한 데나리온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는데, 그렇게 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중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있을 수 있다. 

 

5. 부활체의 영광의 종류와 크기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그렇다면 장차 성도들이 받게 될 부활체의 영광의 종류와 크기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첫째, 부활체의 종류와 크기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부활체의 종류와 크기에 대해 고린도전서 15장에 해의 영광, 달의 영광, 별의 영광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전15:40~41). 그런데 디모데후서 2장에서는 금그릇과 은그릇 그리고 나무그릇과 질그릇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딤후2:20). 둘째, 그런데 부활체가 얼마나 귀한 것이 되느냐 하는 차이는 그릇의 종류와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을 깨끗하게 하였느냐 혹은 충성되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였다. 즉 어떤 그릇이든 하나님께서는 각기 다르게 창조하셨지만 그러한 그릇이 하나님께 존귀하게 쓰임받느냐 아니면 천하게 쓰임받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자기 자신의 몫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은 첫째로, 얼마나 자신을 깨끗한 그릇이 되게 했느냐의 차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회개의 정도를 가리킨다. 둘째로, 얼마나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했느냐의 차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충성의 정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그릇으로 창조되었고 어떤 분량대로 지음을 받았든지 회개하여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일이 주어지면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2023년 04월 13일(목)

정보배(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부활체의신비(04)] 하나님이 계획하신 부활체의 영광은 대체 얼마나 큰 것인가?(계3:21)_2023-04-12(수)

https://youtu.be/5FUxiN1VFC0 [또는 https://tv.naver.com/v/35305622]

1.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작정하신 인류에 대한 경륜은 어떤 것이었는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작정하신 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에베소서 3장의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알려 주는 비밀한 계시를 소개한다. 그것은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한 경륜으로서, 다른 세대들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곧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엡3:6).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죄사함을 안겨 주시려고 창조하셨던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물려받아 그 나라를 통치하게 하려고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게 하기 위한 첫 단추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하나님께서는 원래 누구에게 만물을 상속하려고 하셨는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만물을 창조하시되 어떤 목적을 갖고 창조하셨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전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만물을 상속시켜 주려고 작정하시고 아들을 먼저 낳았으며, 또한 그 아들을 통하여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히1:2). 그런데 요한계시록의 기자는 죄와 죽음과 사탄 마귀를 이겼던 자인 아들에게 만물의 통치권을 주신 채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계3:21). 그래서 만물의 통치권은 아들로 옮겨진 것이다. 다시 말해, 아버지의 보좌를 이제 아들에게 주신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의 보좌는 아버지의 보좌이면서 동시에 아들의 보좌이기도 하다(계22:1,3). 원래 하나님의 통치의 보좌는 단 한 개였다. 그것을 '하나님의 보좌'라고 불렀다. 그리고 구약시대까지만 해도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보좌가 단 한 개 뿐인 것을 보았고 또한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하늘의 광경을 보니, 하나님의 보좌는 역시 하나인데 그것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첫째로, 하나님의 보좌에 이긴 자였던 예수께서 앉아 계신다는 사실이다(계3:21). 고로 지금 만약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간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에 예수께서 앉아 계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둘째로, 우리 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통치의 보좌를 이긴 자들(인류)에게도 나눠주시고 있다는 것이다(계3:21). 그래서 생겨난 보좌가 24장로의 보좌요, 144,000석의 보좌인 것이다. 

 

3. 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를 이긴 성도들에게 나눠주시려 하는가?

 왜 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를 아들에게만 주시지 않고 이제는 이긴 성도들에게도 주려고 하시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이긴 성도들은 장차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자들인데, 아들 그리스도는 신부인 이긴 성도들과 한 몸이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에게서 아들이 나온 것처럼, 아들인 그리스도에게서 신부인 사람들이 나왔다. 이는 마치 하나님에게서 아담이 나왔고, 아담에게서 하와가 나온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아들이신 우리 주님께서는 하와인 우리 성도들을 결코 둘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우리 인류가 범죄하여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될 위험에 처하자 아들이 대신 우리 인류가 범한 죄값을 치러주시고 우리를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사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이기고 그래서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역시 이 세상에서 죄와 죽음과 마귀를 이기게 된다면 예수님의 보좌에 앉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단 한 개뿐인 하나님의 보좌를 우선적으로는 24개로 늘려 놓으셨고, 이어서 144,000개로 늘려 놓으신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역시 우리가 이긴 성도들이 된다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144,000석의 보좌의 어느 보좌에 앉을 수가 있는 것이다. 

 

4. 하나님께서 하늘에 마련해 두신 보좌들과 부활체의 영광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사실 성도들이 예수님의 피를 통해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생명을 받게 되었으면, 그때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이는 그가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이어받을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옛날 조선시대를 보면 그때에 우리나라에는 왕이 있었다. 그런데 왕이 자식을 낳게 되면 그 자식들은 다 왕자라 불렸다. 하지만 그중에 왕위를 상속받을 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이처럼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할지라도, 하늘나라를 상속으로 물려받을 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늘나라의 상속자들을 가리켜, 요한계시록에서는 '이긴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계2~3장). 그런데 이러한 이긴 자들의 영광이 곧 부활체의 영광과 똑같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긴 자의 영광의 크기가 곧 부활체의 영광의 크기와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듭나서 죽기 전까지 얼마나 부활체가 받을 영광을 준비했느냐에 따라 우리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차지할 영광도 동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우리가 준비한 만큼 천국에서도 지위와 영광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5. 천국에서 이긴 자들이 누리게 될 부활체의 영광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그렇다면 천국에서 이긴 자들이 누리게 될 부활체의 영광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먼저 같은 것은 천국에 들어간 성도 모두가 이 세상에서 육체가 누렸던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영광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은 땅에 속한 자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것은 부활체의 영광의 크기가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에 따라서 보좌에서 통치할 권한도 크고 작고 하는 것이다. 이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해의 영광을 차지할 자가 있고 달의 영광을 차지할 자가 있으며, 별의 영광을 차지할 자가 있는 것으로 표현된다. 그중에서 해의 영광을 차지할 자는 천국에서 엄청난 규모의 도시를 기업으로 받아 통치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자들 중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행성까지도 통치하고 다스릴 자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래 단계에, 달의 영광을 차지할 자도 있을 것이고, 별의 영광 그리고 별과 별의 영광을 차지할 자도 있을 것이다. 이때 부활체의 영광(빛)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천국에서 다스릴 도시나 영토도 작아질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부활체의 영광의 크기를 성경의 다른 기자들도 표현해 놓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가서에서 솔로몬은 부활체의 영광을 신분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을 '왕권신부, 왕후신부, 비빈신부, 시녀신부 그리고 일반백성'으로 나눈다는 것이다. 그리고 레위기서를 보면, 부활체의 영광과 영광의 차이를 섬기는 직분의 차이로 설명해 놓고 있으니, '대제사장, 제사장, 레위인, 수종드는 여인과 일반 백성'으로 나눠 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천국에서 성도들이 누릴 영광은 서로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이 땅에서 왕 노릇할 자도 있고 또한 그를 섬기는 자가 있는 것처럼 천국에서도 역시 왕 노릇할 자가 있고 그를 섬기는 자들도 있는 것이다. 

 

 

2023년 04월 12일(수)

정보배(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부활체의신비(03)]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부활의 몸을 주시려고 하시는가(2)(엡3:1~11)_2023-04-11(화)

https://youtu.be/Tp47qmn0qD0 [또는 https://tv.naver.com/v/35305583]

1. 부활체는 육체 및 영체와 어떻게 다른가?

  부활체는 첫 사람 아담이 창조될 때에 만들어진 육체 그리고 주어진 영체와 다르다. 그중에 육체는 뼈와 살과 피로 구성된 우리의 몸으로 오감을 느끼는 부분이다. 그래서 육체는 우리 손으로 붙잡을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육체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기에 시간과 공간에 많은 제약을 받는다. 또한 육체는 반드시 먹어야 살 수 있다. 그리고 피곤함도 느낀다. 그런데 영체는 이와 다르다. 먹지 않아도 되며, 피곤해하지도 않는다. 사람의 손으로 붙잡을 수도 없고, 뼈와 살과 피도 없고, 우리가 꼬집을 수도 없으며, 아프지도 않다. 하지만 부활체는 이것들과 또 다르다. 그렇다면 부활체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부활하심으로 부활체의 실상을 보여 주셨다. 고로 우리는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의 그분의 몸을 살펴봄으로서 부활체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부활체는 어떤 것인가? 우선 부활체는 뼈와 살이 있고 피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꼬집으면 아프고 다치면 피도 흘릴 수 있다. 그런데 부활체는 확실히 공간의 제약을 덜 받는다. 고로 공간의 이동이 비교적 자유롭다. 순간적으로 이동이 가능한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을 때, 제자들에게 갑자기 나타나셨다가 또한 사라지셨다는 것은 그와 같은 사실을 증명해 준다. 그리고 부활체는 물질세계를 뚫고 들어갈 수도 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문이 닫힌 상태에서도 오셔서 제자들 가운데 서셨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부활체는 육체가 가지고 있는 오감이 완전한 상태로 활동하는 또 다른 몸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영이 갖고 있는 앎의 감각과 능력의 감각이 매우 뛰어난 상태의 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예수께서는 왜 부활하셨는가?

  일반적으로 볼 때,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유는 그분이 죽으셨지만 죄가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사망이 그를 붙잡아 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그분은 왜 죽으셨는가? 우리 인류의 죄값을 대신 치르려고 죽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이다(롬6:23).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인류의 모든 죄를 전가받아 대신 죽으시려는 대속의 죽음이었던 것이다. 고로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그분에게는 죄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고 하겠다. 이것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다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살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대신 우리의 죄값을 담당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단지 사망 권세를 이기기 위해 부활하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이는 예수께서 인류를 죽음에서 살려내시고 또한 승천하시어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영생)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예수께서는 인류에게 속죄함과 생명을 안겨 주신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인류에 대한 어떤 원대한 뜻과 계획을 이루기 위함이다. 고로 예수께서는 그 뜻을 이루기 위한 전단계로서 죽고 부활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죄를 지은 인간의 상태로서는 성취가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 계획은 죄짓기 전의 인간(아담)의 상태로서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죄짓기 전에 아담은 다만 사는 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고전15:45). 살려 주는 영(생명 주는 영)이신 예수께서 아담의 영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셔야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셔서 인류에게 생명을 주신 것이다. 

 

3.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기 전에 품으셨던 만세 전 계획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기 전에 마음에 품으셨던 계획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창세기의 인간 창조 기사에서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은 완전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림자처럼 희미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신약에 들어와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이러한 비밀한 경륜 곧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가지셨던 원대한 뜻과 계획을 계시로 알게 된다. 그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상관없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을 통해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어 그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물려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이다(엡3:6). 하나님의 나라를 물려주시되, 당신의 생명을 가진 자녀들에게 그 나라를 상속시켜 영원토록 왕 노릇하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길을 잘못 들어섰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죄짓지 않은 상태로 인간을 되돌려 놓으셔야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류를 대신하여 인간이 되시어 대신 죽고 우리 인간을 사망에서 끄집어내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죽으심의 의미다. 그리고 첫 사람 아담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통해 받아야 했던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이제는 성령을 통해 공급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주 예수님을 믿어 속죄함을 받고 또한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이루기 위한 시발점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로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칭의인이 되고 구원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첫 출발에 해당하는 것이지 결코 완성작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4. 창세기의 인간 창조 기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원대한 뜻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인간 창조의 원대한 목적을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어느 정도 계시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첫째, 모든 만물 중에 오직 인간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창1:26~27). 이것은 오직 인간을 하나님 종류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모든 만물은 다 자기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즉 새는 새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물고기는 물고기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것이 아니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사람의 종류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류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모든 보이는 만물을 다 창조하신 후에 맨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 창조된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통치 권한을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구라는 환경에서 창조하시고, 또한 지구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을 인간에게 부여하셨다. 그러므로 인간을 맨 나중에 창조하신 것은 모든 지구의 만물을 다스리고 통치하며 살라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영도 있다. 이 영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수 있는 기관으로서, 그 생명을 받은 후에 육체를 벗으면 부활체가 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영의 세계에서도 왕 노릇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체를 입은 성도들 중에는 지금도 천국에서 영의 세계에서 왕 노릇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5,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원대한 뜻과 계획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사도 바울은 성경에 기록된 인물 중에 하나님의 원대한 뜻과 계획을 가장 확실하게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에베소서에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에베소서를 주의깊게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과연 어떤 생각과 계획 가운데 인간을 창조하셨는지를 알 수 있다. 그중에서 에베소서 3장은 바로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품으신 뜻을 그가 계시로 깨닫고 적어 놓은 것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유의 상속자로 생각하시고 창조하셨다는 것이다(엡3:6). 그런데 사탄 마귀가 개입하여 인간이 생명나무에서 생명을 취하기 전에 범죄하게 함으로 결국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인류를 위한 당신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아들로 이 세상에 들어오신 후에 범죄한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신다. 그분에게는 정작 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는 부활체가 과연 얼마나 영광스런 존재인지를 알려 주시기 위해 40일 동안 자신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 위해서는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기에, 성령을 보내시어 생명을 공급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은 상태가 되었다면 그는 이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 위한 기초를 닦게 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기 위한 자격을 취득한 것이다. 

 

 

2023년 04월 11일(화)

정보배(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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