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신약성경만 주시지 아니하시고 구약성경도 주셨음을 안다. 이는 이미 예언자들을 통하여 주어진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었고 또한 앞으로 성취될 것인가를 살펴봄으로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신 것을 안다. 더욱이 우리는 앞으로의 되어질 일들도 역시 신약과 구약성경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예언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스가랴서에서는 메시야의 재림에 관하여 어떤 말씀을 하고 있을까? 그것은 크게 5가지로 나뉜다. 그래서 오늘은 스가랴강해 마지막시간으로서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다섯가지 말씀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2020-03-04(수) 수요기도회
제목: 스가랴강해(12) 메시야의 재림과 아마겟돈 전쟁에 관한 예언(2)(슥14:1~21)
https://youtu.be/M5v_rNCQgzg


1. 들어가며

  오늘은 스가랴서의 마지막 시간이다. 스가랴 선지자는 B.C.520년경 학개선지자와 함께 제2의 성전인 스룹바벨성전 공사를 독려했던 선지자였다. 그는 아주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선지자가 되었으니, 그의 나이 약 20세쯤이었다. 그런데 그가 보았던 환상들은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들이었다. 그래서 천사의 도움으로 8가지 환상의 의미를 깨닫고 그것을 유다백성들에게 전달하였다(슥1~6장). 그리고 금식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전달하였으며(7~8장), 이어서 메시야의 공생애와 재림에 관한 예언을 할 수 있었다(슥9~14장). 오늘은 스가랴강해의 전체적인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보면서, 지난 주에 이어서 그가 인생 하반기에 들었던 메시야에 관한 예언들 가운데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예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스가랴서는 어떤 예언서인가?

  스갸랴서는 내용상 크게 "환상"과 "예언"으로 구분된다. 전반부는 성전건축에 관한 환상들이 주류를 이루며, 후반부는 메시야에 예언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벧엘사람들이 물어본 금식에 관한 질문들과 그 답변이 들어있다(슥7~8장). 한편 스가랴서를 메시야에 관한 예언에 관한 관점에서 구분해 본다면, 스가랴서는 메시야의 신분에 관한 예언(슥3,6장,9장,13장)과 메시야의 공생애와 수난에 관한 예언(슥9~13장),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예언(슥14장)으로 나눠볼 수 있다. 그중에  메시야의 신분에 관한 예언으로는 3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싹"에 대한 예언(슥3장,6장), "왕"에 대한 예언(슥9장), "목자"에 대한 예언(슥13장) 등이 있다.

  한편 스가랴서를 요한계시록과 비교해서 견주어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스가랴가 보았던 첫번째 환상(슥1:7~17, 붉은 말과 자줏빛 말, 흰 말)와 여덟번째 환상(슥6:1~8, 붉은 말과 흰 말과 검은 말과 어룽진 말)은 요한계시록의 6:1~8에 나오는 네 가지 말탄 자들(흰 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로 등장하고 있다. 둘째, 두번째 환상인 "네 뿔"에 관한 예언은 요한계시록 12장, 13장, 17장에 나오는 "열 뿔"에 대한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 "뿔"은 세상에 있는 권세를 상징한다. 셋째, 세번째 환상은 측량줄을 잡은 소년의 환상(슥2:1~13)은 요한계시록 11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성전을 측량하는 사도요한의 모습과 흡사다(계11:1~2). 넷째, 다섯번째 환상인 일곱개의 "순금등대"와 "두 감람나무"의 환상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일곱금촛대와 소아시아 일곱교회와 연결이 되어진다. 특히 두 개의 감람나무는 일곱교회에게 기름을 보충하는 존재로서, 스가랴서는 "제사장인 여호수아"와 왕으로 특징지워진 "스룹바벨"을 가리키고 있는데, 요한계시록 11장에서 두 감람나무는 두 증인이자 두 선지자로서, 구약의 율법의 대표자인 모세와 예언자의 대표인 엘리야를 예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계11:3~14). 다섯째, 여섯번째 "날아가는 두루마리 환상"은 요한계시록 5장과 10장에 나오는 두루마리와 연관이 매우 깊다. 왜냐하면 이 두루마리의 안팎에는 온갖 저주들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곧 말세에 있을 일을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여섯째, 스가랴 14:1~3과 12절의 말씀은 요한계시록 19장에 나오는 "아마겟돈전쟁"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3. 스가랴서에 나오는 메시야의 재림 예언에 관한 5가지 예언은 무엇인가?

  스가랴 14장에는 메시야에 재림에 관한 5가지 예언이 담겨 있다. 첫째, 마지막날 전쟁에 관하여 예언되어 있다. 이는 메시야께서 그날에 강림하시어 이방나라들을 치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슥14:1~3). 이것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그것은 곧 '아마겟돈전쟁(혹은 곡과 마곡의 전쟁)'인 것이다(계19:15, 20:8~9). 그럼, 그날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의 말에 속아서 하나님을 대적할 것인데, 그때에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악의 무리들을 치실 것이다. 이때는 여호와이신 예수께서 나가서 이방나라들을 직접 쳐단할 것이다. 둘째, 메시야의 재림장소가 예언되어 있다(슥14:4). 그곳은 스가랴선지자는 "예루살렘 앞 동쪽 감람산"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에 흰옷 입은 두 명의 천사들이 어떤 말을 하였는가? 예수께서 승천하시던 산 곧 감람산(행1:12)에서 말하기를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진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11)"고 하였다. 고로 예수께서는 재림하실 때에 결코 동방의 땅 곧 한국에 오시지도 아니할 것이며, 과천의 청계산으로도 오시지 아니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늘로 좇아 공중으로 오실 것이며, 그때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 광경을 지켜볼 것이며, 재림하실 장소는 예루살렘 앞에 감람산이 될 것이다. 셋째, 재림하실 메시야의 두 무리의 군대에 관하여 예언되어 있다(슥14:5). 장차 메시야께서 재림하실 때에 주님의 뒤를 따라오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스가랴선지자는 그들을 "거룩한 자들"이라고 말했다.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들은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19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을 백마르 타고 그를 따르더라(계19:14)" 이들은 "천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혼자 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보낸 첫번째 편에서 주님과 동행할 "거룩한 또다른 무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들(거룩한 자들)과 함께 강림하실 때에...(살전3:13)" 그렇다. 주님께서는 재림하실 때에 한 편으로는 이미 구원받아 천국에서 왕노릇하고 있던 성도들을 데리고 오시고, 또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오시는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께 대항하는 이 세상 사람들과 전쟁하기 위해 오는 것이고, 천사들은 하나님께 대항하는 사탄과 그의 부하들인 귀신들과 전쟁하기 위해 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날에 성도들이나 천사들이 칼 들고 싸우지는 않는다. 백마를 타고 오시는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칼로 한 방에 끝장내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계19:15). 넷째, 메시야의 재림 시간에 대하여 예언되어 있다(슥14:6~7). 독특하게도 구약성경 중에서 메시야의 재림에 관하여 그 시간을 알려주는 예언은 바로 스가랴서에 나온다. 스가랴 선지자는 "그날에는 빛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슥14:6). 광명한 것들이 떠나갈 것이기 때문이다(슥14:6). 여기서 "광명한 것들"이란 해와 달과 별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예수께서도 재림직전에 그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마24:29), 사도요한도 환상 중에 본 여섯째인 가운데(계6:12~13)에서 그런 일들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메시야의 재림의 때에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계21:1). 그러므로 해와 달과 별들도 응당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재림하실 그 날짜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마24:36). 그것은 오직 아버지의 권한에 있을 뿐이다(행1:6~7). 그러나 그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래서 스가랴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는 빛이 있으리로다(슥14:7)"고 예언했던 것이다. 다섯째, 마지막 전쟁시 메시야의 무기에 관하여 예언되어 있다(슥14:12~15).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주께서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어떤 무기를 사용하실까? 그것은 곧 "말씀의 칼"을 사용하신다. 말씀 한 마디에 그냥 초토화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때 예루살렘을 치러온 이방백성들은 메시야의 말씀의 칼에 의해 우선적으로 살이 썩고 눈동자가 썩고 혀가 썩는 재앙으로 죽게 될 것이다(슥14:12). 그리고 이것을 지켜보는 자들이 도망치다가 서로가 서로를 치게 될 것이다(슥14:13). 이것은 기드온시대에 미디안족속이 도망칠 때에 서로가 서로를 찔러 죽이는 모습과 흡사하다(삿7:22). 그러므로 그때에 주께서는 땅의 사방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보화 곧 은금과 의복을 전리품으로 취하실 것이다(슥14:15). 그리고 더불어 그들이 이동하며 사용했던 운송수단들 곧 동물들과 육축에게도 같이 재앙이 임할 것이다(슥14:15).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무리들은 아마겟돈전쟁에서 모두가 다 썩는 재앙을 당하면서 패망하고 말 것이다.

 

4.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원대한 뜻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주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를 다시 말씀하셨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다시 제사장나라로 쓰임을 받는 일이다(슥14:16~21). 그리고 이후로는 레위지파만이 쓰임받는 것이 아니라 유다사람 전체가 제사장으로 쓰임받기를 원하셨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치신 재앙으로 말미암아 살아남은 자들이 해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여호와를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고 했다(슥14:16). 만약 올라오지 않는 땅의 백성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다(슥14:17). 거기에는 애굽족속이나 모든 이방민족이 동일하다고 했다(슥14:18~19). 그리고 그날에는 부정한 동물들까지도 다 거룩함을 지향하게 될 것이며, 심지어 유다사람이 사용하는 모든 솥도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처럼 거룩하게 쓰여질 것이라고 했다(슥14:20~21). 왜냐하면 그때가 되면 모든 사람이 다 거룩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안에는 슥14:16~21에 대한 말씀을 "지상에 세워질 천년왕국의 실현"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아주 많다. 특히 세대주의자들이나 환난전휴거론자들, 여호와증인, 신천지 등이 그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 말씀은 과연 지상 천년왕국의 실현으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육적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를 말하는 것일까?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본문을 지상세 세워질 천년왕국으로 보는 견해가 강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기대를 저버린 채, 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까지 거부하고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민족주의가 너무 강했다. 자기에게 주어진 특권을 강조할 뿐 그것을 이용하여 다른 이방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도록 인도하는 직책을 수행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육적인 이스라엘은 버림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다시 이 세상의 역사에서 쓰임받을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육적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한 기대가 하나님의 영적인 이스라엘인 교회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원감람나무의 가지가 꺾이고 돌감람나무의 가지과 원감람나무에게 접붙힘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래서 극상품포도가 맺히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이들을 위하여 포도원을 만들어주고 술틀을 파주고 돌을 제거해주어 그들이 좋은 포도맺기를 기다리셨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들포도만을 맺였을 뿐이다(사5:1~7). 그러므로 슥14:16~21의 말씀은 이제 교회가 이어받아 그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

 

5. 나오며

  스가랴서는 구약성경 가운데 많은 메시야 예언을 담고 있는 예언서이자 또한 묵시서에 해당한다. 우리는 스가랴서에 나오는 8가지 환상들을 통하여 요한계시록을 푸는 열쇠들과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상징들을 푸는 실마리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메시야의 공생애와 수난 그리고 재림에 관해 알기를 원하는 분은 스가랴서를 꼭 같이 공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보다 더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도 스가랴서는 꼭 공부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또한 우리는 스가랴서를 통하여 우리는 한 분 하나님에 대한 계시도 발견하게 된다. 스가랴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경륜과 메시야의 비밀을 알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2020년 03월 04일(수)

정병진목사 


예수께서는 과연 언제 오시는가? 그리고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어떤 일이 있어날 것인가? 그 전에 일어날 일들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예수께서 재림하실 장소는 어디인가? 신천지가 말하는 동방의 땅, 과천 청계산에 있는 증거장막성전인가? 아니면 부천의 소사인가? 그리고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의 순서는 어떠한가? 그리고 천년왕국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그 세계는 정말 육체를 가지고 들어가는 자들(유대인 제사장들과 땅의 백성들)과 부활체로 들어가는 자들이 공존하는 세계인가? 아마겟돈전쟁과 그리고 곡과 마곡의 전쟁은 각각 다른 전쟁인가 아니면 하나의 전쟁인가? 이 모든 것들이 이 영상에 다 들어 있다.

2020-02-26(수) 수요기도회
제목: 스가랴강해(11) 메시야의 재림과 아마겟돈 전쟁에 관한 예언(1)(슥14:1~21)
https://youtu.be/Ia5YGpt4gJs


1. 들어가며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예언들 가운데 천년왕국과 관련지은 예언들은 주로 스가랴서와 이사야서에 나온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스가랴서의 예언은 메시야의 재림의 장소의 정보가까지 알려주는 아주 특별한 예언을 담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이단들이 재림예수를 자처하여 과천에 혹은 소사에 이미 육체로 재림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재림예언은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그리고 스가랴선지자가 가르쳐주는 재림예언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한편 왜 동방 특히 한국에 재림예수라는 사람이 그리도 많은 것인가? 그 이유의 하나가 바로 스가랴 14장에 나온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스가랴 14장을 통하여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지어서 있을 아마겟돈전쟁과 지상의 재림장소로서 천년왕국이 이루어질 장소가 어디인지를 좀 더 다각적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한다.

 

2. 스가랴서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스가랴서는 그것이 쓰여진 시기와 내용에 따라 크게 2부분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전반부에 속하는 1~8장까지는 B.C.520~518년경 스가랴가 보았던 환상과 들었던 것을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면, 후반부에 속하는 9~14장은 그때로부터 약 38~40년이 지난 시점인 B.C.480년경에 스가랴가 들었던 예언을 기록하고 있다 하겠다. 다시 전반부는 스가랴가 보았던 8가지 환상에 관한 부분(1~6장)과 금식에 관한 말씀(7~8장)으로 나눌 수 있으며, 후반부는 메시야의 공생애와 수난에 관한 예언을 담고 있는 부분(9~13장)과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예언을 담고 있는 부분(14장)으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전반부의 말씀(1~8장)에서도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 없는 것은 아니니, 스가랴 3장과 6장에 보면 "메시야의 신분에 관한 예언)슥3:8~9,6:12~13)"이 들어있기도 하다(이것은 이전에 했던 스가랴강해를 참고하기 바란다.)

 

3. 스가랴 14장은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어떤 예언들이 등장하는가?

  스가랴 14장에는 메시야의 재림에 관한 총5가지 예언이 나온다. 이것을 분류해보면, 메시야의 재림예언으로서 첫째, 여호와로 표현되어진 메시야가 그날에 이방나라를 쳐서 무너뜨릴 것에 대한 예언(슥14:3)이 나오고, 둘째, 메시야의 발이 예루살렘 앞 동쪽 감람산에 서실 것에 대한 예언(슥14:4)이 나온다. 첫번째의 예언에 대해서 요한계시록에서는 그 전쟁을 "아마겟돈전쟁" 혹은 "곡과 마곡의 전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두번째 예언은 메시야의 재림장소에 관한 예언으로서, 사도행전 1장의 메시야 재림장소예언(행1:11)에 대한 성취예언이다. 그곳은 물론 예루살렘 감람산이다(행1:11,슥14:4). 그리고 셋째, 여호와로 표현되어진 메시야께서 모든 거룩한 자들과 함께 오실 것에 대한 예언(슥14:5)이 나오는데, 이는 메시야가 두 종류의 거룩한 무리들과 함께 오실 것에 대한 예언으로서, 한 무리는 예수님의 승천이후부터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하고 있는 성도들(살전3:13)이고 또 한 무리는 거룩한 천사들의 무리들(계19:14)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넷째, 메시야의 재림의 날짜와 시간에 대한 예언(슥14:6~7)이 나오는데, 날짜는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라고 예언되어 있고9슥14:6), 그 시간은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며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슥14:7). 이는 그 날자와 시간은 아버지 하나님 이외에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과도 일치한다(마24:36, 행1:7). 왜냐하면 그 날짜와 그 시간은 아버지의 권한에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메시야가 오셔서 악의 무리들을 어떻게 심판하시고 처단하실 지에 대한 예언(슥14:12)이 나온다. 이때는 백마를 타고 거룩한 두 무리들과 오시는 메시야께서 초자연적으로 악의 무리들인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들 그리고 이들의 조종을 받고 전쟁에 참여한 땅의 왕들과 백성들이 어떻게 패배하고 멸망당하게 될른지에 관한 예언이다. 그런데 이때 백마타고 오신 재림주께서는 눈과 혀과 살이 썩는 재앙으로 그들을 치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슥14:12).

 

4. 스가랴서에서는 인류 최후의 전쟁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스가랴선지자는 인류 최후의 전쟁에 대해 2가지를 예언했다. 하나는 인류최후의 전쟁이 있기 전에 이방 민족들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약탈되고 부녀가 욕을 당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고 했다(슥14:1). 이것은 환난이 있은 후에 주님의 재림이 있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슥14:1에서 "예루살렘"이라는 명칭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한다. 그런데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십자가에 죽으실 때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루살렘이었다. 하지만 메시야를 거부한 채 그분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육적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특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후로부터는 이방인들과 똑같이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얻는 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로 하나님의 백성을 지칭하는 예루살렘은 이제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 곧 "교회"가 되었다. 그러므로 슥14:1에서 예루살렘이 약탈을 당하고 부녀가 욕을 당하고 백성들이 잡혀간다는 말은 "사탄마귀와 그의 세력들에 의해 그리스도인들이 많은 환난을 당하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메시야가 재림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백성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비롯한 구약의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가르침도 역시 환난을 당할 때에 인내로 견뎌야 한다고 한 것이다. "그때에... 환난이 있으리나. 이는 개국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단12:1)", "그때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24:9),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겠고 후에도 없으리라(마24:21)", "또 [짐승이]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계13:7)",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2)", "그날 환난후에...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마24:29~30)" 그렇다. 예수께서는 환난후에 오신다. 그러므로 오늘날 환난전휴거(특히 세대주의자들)를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들은 환난을 당하면서 비로소 자신들의 견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한편, 예루살렘과 싸우도록 하는 존재는 누구인가"아니다. "내가 이방나라들을 모아 예루살렘과 싸우게 하리니(슥14:2)"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전쟁을 하도록 허락하신다는 뜻이다. 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환난을 허락하시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환난을 통해 진정한 믿음이 표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환난을 당하면서 알곡신자와 쭉정이신자가 구분되기 때문이다. 환난에 쭉정이신자는 환난을 피하여 도망칠 것이고, 결국에는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다.

  스가랴 선지자는 이어 또 하나, 인류최후의 전쟁은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여 끝내시는 전쟁이라고 예언했다(슥14:3). "그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이방나라들을 치시되...(슥14:3)" 그렇다. 그날에 환난받는 백성들을 건져내기 위한 전쟁은 하나님께서 끝내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이 땅에 살 때 받을 환난은 우리가 끝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분이 오셔서 직접 끝내셔야 환난이 끝나는 것이다. 이 환난을 통해 주님은 알곡신자는 곡간에 들이시고, 순교자의 숫자를 채워 재림의 시기를 정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인류최후의 전쟁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때에 우리 성도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우리가 할 일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이 "이왕의 전쟁의 날에 싸운 것같이 할 것(슥14:3)"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 이스라엘 민족이 홍해 앞에서 애굽군대에게 쫓겨 진퇴양난에 빠졌을 때에 모세가 이렇게 말했던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4)" 그래서 하나님께서 홀로 애굽군대를 무찌르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날 행하실 일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5. 요한계시록에서는 인류 최후의 전쟁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인류최후의 전쟁에 대하여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어떻게 예언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 인류최후의 전쟁은 한 마디로 "아마겟돈전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여섯째 나팔재앙 때에 그것이 어떤 전쟁일른지 먼저 시연을 보여준다(계9:13~21). 이때 인류 1/3이 죽는다. 그리고 여섯째 대접재앙 때에 아마겟돈 전쟁이 준비될 것이다(계16:12~16). 그런데 이 전쟁은 개구리같은 세 가지 더러운 영들인 용과 짐승과 거짓선지자들이 합세하여 땅의 왕들과 왕들의 군대를 규합하여 그리스도에게 대항하는 전쟁이 될 것이다(계16:12~13). 그러므로 이 전쟁은 영적 전쟁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전쟁을 이름하여 사도요한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이라고 불렀다(계16:14). 그리고 이 전쟁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 19장에 그 모습이 정확히 묘사되어 있다(계19:11~21). 주님께서는 앞에서는 말씀드렸지만 두 무리들의 군대들(천국에 들어가 있던 성도들과 거룩한 천사들)을 데리고 백마를 타고 오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의 검으로 무찌를 것이다(계19:15). 그런데 그 검에 의해 죽임당하는 악의 무리들의 군대가 얼마나 많은지, 땅의 모든 새들이 그들의 살을 먹을 것이라고 했다(계19:21).

  한편, 아마겟돈전쟁에 관련되어 하나의 전쟁을 더 살펴볼 것이 있다. 그것은 "곡과 마곡의 전쟁"이다(계20:7~10). 그동안 대부분의 요한계시록 강해서들은 "아마겟돈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을 다른 전쟁이라고 본다. 즉 "아마겟돈전쟁"은 지상에 펼쳐질 천년왕국 전에 있을 전쟁으로 보고, "곡과 마곡의 전쟁"은 지상의 천년왕국 후에 있을 전쟁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그럴까? 이러한 경우, 우리는 성경의 기록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을까? 먼저, "아마겟돈전쟁"을 살펴보자. 그때 백마를 타고 오신 예수께서 악의 무리들을 처단하시는데, 먼저는 짐승과 거짓선지자를 산 채를 불못에 던질 것이며, 이후에 그들을 따랐던 땅의 왕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검으로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되어 있다(계19:220~21). 그리고 요한계시록 20:1~6에 천년왕국에 대한 묘사가 등장한다(그렇다고 성경 기록의 순서대로만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요한계시록에서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천년이 시작되기 전에 무저갱에 갇혔던 사탄이 천년이 지난 후 잠깐 놓임을 받는데, 그때에 그가 땅의 사방백성들 즉 곡과 마곡을 미혹하여, 성도들의 진영과 사랑하시는 성인 예루살렘 성을 대항여 전쟁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계20:7~9). 그런데 마지막 최종결과를 보여주는 말씀에 놀라운 반전이 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마귀와 그리고 짐승과 거짓선지자의 최후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말 개역개정성경부터 살펴보자.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20:10)" 이 번역으로 보면, 불못에는 이미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불못에 던져진 채 있고 그 상태에서 이제 마귀도 그곳에 던져지는 것처럼 번역되어 있다(현재까지 대한민국에 나와있는 수십 종의 모든 성경은 다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하지만 헬라어원문은 그렇게 되어있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헬라어성경(네슬알란트28판)으로 직역해보면 이렇다. "그리고 그들을 [현재] 미혹하고 있는 마귀가 불과 유황못 안으로 [단번에] 던져졌다. 그리고 그곳에 역시 짐승과 거짓선지자도 [던져졌다]. 그리고 그들은 시대들의 시대들 동안 밤낮으로 괴로움을 [장차] 받을 것이다" 그렇다. 헬라어원문을 보면, 마귀가 불못에 던져지는 시점에 역시 짐승과 거짓선지자도 던져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와있는 모든 한글성경이나 영어성경은 다 우리개역성경처럼 잘못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시간적으로 볼 때, 아마겟돈전쟁 후에 천년왕국이 지상에 펼쳐지고 그리고 천년왕국의 끝무렵에 곡과 마곡의 전쟁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하에서 번역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그레고리 K. 비일(Beale)이라는 신학자가 "NIGTC 요한계시록"이라는 책(2016. 새물결플러스)에서 저와 같이 번역했다. 그리고 아마겟돈전쟁과 그리고 곡과 마곡의 전쟁을 한 가지로 보았다. 즉 다시 말해서 이 전쟁들은 다른 각도에서 본 하나의 전쟁이라는 것이다. 고로 지금의 세대주의자들의 천년왕국론이나 역사적 전천년설이 말하는 천년왕국은 전면적으로 재검토를 되어야 한다. 하지만 기존에 이미 교리화되어있는 것을 가지고서 그것을 얼마나 교정할 수 있을른지 짐작할 수가 없다.

 

6. 헬라어원문으로 보는 천년왕국은 실제 어떤 왕국인가?

  여기서 천년왕국에 대한 모든 것을 논할 수는 없다(홈페이지에서 저의 요한계시록강해를 참고하기를  바란다). 결론만 요약해서 말하면 이렇다. 지금 이 지상에서 천년왕국은 펼쳐지지 않을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만 등장하는 천년왕국은 실제 문자적으로 성취될 왕국이 아니라 영적인 왕국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000년이라는 기간은 결코 산술적인 1,000년이라는 기간이 아닌 것이다. 마치, 144,000명의 사람이 산술적인 숫자가 아니듯 말이다(144,000은 구약의 구원받은 백성들을 대표하는 12지파에다가 신약의 구원받은 백성들을 대표하는 12사도들을 곱한 값에, 많은 것을 상징하는 1,000을 곱한 숫자값이다., 고로 144,000명은 신구약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총칭하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1,000년이란 것은 아주 오랜 기간을 일컫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천년왕국"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하늘에서 왕노릇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 모든 성도들이 죽을 때에 잠자는 상태에서 무덤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은 죽은 즉시 심판을 받아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로, 요한계시록에는 이미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있다는 것이 무려 7번 이상 나온다). 이것을 "첫째 부활"이라고 부른다, 고로 첫째 부활은 개인적인 부활로서 부활의 시기가 각각 다르다. 그리고 "둘째 부활"은 예수님의 재림시에 있을 동시적인 부활, 우주적인 부활을 가리킨다. 때가 되어 예수께서 공중으로 오시면, 이 땅에서 아마겟돈전쟁으로 죽은 성도들이 즉시 부활체를 입고 휴거되어 공중으로 올라갈 것이고, 이어서 살아있고 남아있는 성도들도 그 다음으로 부활체를 입고 공중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것은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마중나가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휴거"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승천이후 재림까지는 성도들이 계속해서 휴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순간 부활체를 입고 천국으로 곧장 가는 것이요,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홀연히 그때 죽은 성도와 살아있는 성도들이 순서대로 변화하여 부활체를 입고 공중으로 휴거되어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도들의 휴거는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재림시에 있을 딱 한 번만 있을 일이며, 그것도 오직 단체적인 휴거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에 천년왕국이란 실제하지 않는다. 이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우선 성경을 뜯어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때 가보면 무엇이 맞는지 다 알게 될 것이다.

 

7. 신천지 이만희가 말하는 육체영생한다는 천년왕국설은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그렇다면,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이상 '신천지')의 이만희교주는 어떻게 144,00명이 육체영생한다고 주장하고 있는가? 그의 이론은 좀 독특하다(실제로는 허무맹랑하다). 그는 이미 죽어서 천국에 들어간 순교자의 숫자가 144,000명이 차고, 지상에서는 이만희와 같은 말세에 약속된 목자요 이긴 자가 육체영생으로 들어갈 성도들 144,000명을 모으게 되면, 둘이 서로 만나 신인을 이룬다는 것이 그 교리의 핵심이다. 그때가 되면 지상에서 신천지에 들어온 성도들 144,000명은 죽지 않고 영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천지의 천년왕국론이다.

  그리고 신천지 이만희는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로 요한계시록 20:4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 말씀은 이렇다(이것도 역시 논리성이 없고 성경원문과도 거리가 먼 터무니 없는 주장인 것은 마찬가지다). 먼저 한글 개역개정을 보자. "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계20:4)" 그는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을 순교자로 본다. 죽은 성도들로서 천국에 들어간 성도라고 본다. 그리고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은 신천지의 성도들이라고 본다. 지금 살아있는 신천지 성도들이다. 이 둘이 그날이 되면, 하나가 되면 신인이 되는데, 이것은 신천지성도들은 결코 죽지 않으며 육체를 가지고 영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터무니 없는 주장인가? 헬라어원문을 읽어보면, 계20:4의 "살아서"라는 말은 신천지 성도들이 천년왕국에 "살아서" 들어간다는 말이 아니라, 죽은 모든 성도들이 "살아나서" 첫째 부활에 참여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살아서"라는 말은 죽은 성도들이 살아난다는 뜻인 것이지, 살아있어서 들어간다는 뜻이 아니다. 자, 이제는 헬라어로 직역해보자.

계20:4[직역] 그리고 나는 보좌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거기 위에 앉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심판하는 권세가 주어졌다. 또 내가 보았다. 예수의 증언으로 인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이미 목베임을 받은 채 있는 자들의 영혼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짐승과 그것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이마 위와 손 위에 그 표를 받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났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동안 왕노릇하였다(통치하였다, 다스렸다).

  이 말씀(헬라어원문)을 보면, 순교자들과 육체를 가진 신천지인들이 각각 따로 있다는 뜻이 아니다. 순교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않은 자들이고 그들이 이마와 손 위에 표도 받지 않은 자들이라는 뜻이다. 이들이 죽었다가 살아나서(부활하여서) 천년동안 왕노릇한다는 뜻이다. 고로, 신천지의 이만희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는 희대의 사깃꾼이다.

 

8. 스가랴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의 장소에 관하여 어떤 정보를 제공해주는가?

  한편 스가랴에서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장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그곳은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감람산"이라고 말하고 있다(슥14:4). 그러므로 예수님은 결코 동방에 있는 과천의 청계산이나 계룡산에 오시지 않을 것이다. 물론 예수께서 재림하실 땅은 지금 있는 이 하늘과 이 땅(옛 하늘과 옛 땅)은 아니다. 그곳은 주님께서 완전히 질적으로 새롭게 하실 장소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질적으로 다른] 새 하늘과 [질적으로 다른] 새 땅으로 성도들을 데리고 가서 왕노릇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9. 나오며

  요한계시록은 결론의 책이다. 희미한 것도 요한계시록을 보면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사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심판과 회개를 외치면서도 늘 희망적인 회복의 역사를 외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 성취될지 모를 미래의 일들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앞뒤 순서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단회적인 것도 있으나 복합적인 것 혹은 점진적인 것도 있다. 그러므로 예언의 성취가 시간적으로 혹은 장소적으로 100% 일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육적인] 이스라엘은 선지자이 예언한 대로 살지 못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스라엘을 버리고 영적인 이스라엘(교회)를 선택하셨고, 지금도 이 영적인 이스라엘인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일을 성취해가고 있다. 그러므로 장차 옛 하늘과 옛 땅이 될, 지금의 이 하늘과 이 땅에서는 완전한 성취란 있을 수 없다(마귀가 같이 있는 한 불가능하다). 완전한 성취는 저 천국에 있는 새 예루살렘에서 있을 것이고, 장차 도래하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희미하더라도 구약시대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많은 것을 보게 되었다. 특히 스가랴선지자는 예수님의 재림의 장소 곧 새 하늘과 새 땅에 어디에서 펼쳐질른지를 놀롭게 예언한 선지자다. 우리에게 이러한 선지자들의 기록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아니할 수 없다.

 

2020년 02월 26일(수)

정병진목사

구약의 메시야는 어떻게 예언되었을까? 아담의 타락직후 창3:15에서부터 시작된 메시야에 관한 예언은 무려 350가지 이상이나 된다. 그런데 메시야의 예언은 크게 2가지로서, 영광의 왕으로 오실 메시야와 수난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야 예언이 있다. 그렇다면 고난받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은 어디에 나오는가? 그것은 시편22편, 이사야53장과 더불어 스가랴 12~13장에 나온다. 그렇다면 스가랴서에 나오는 메시야의 수난예언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메시야의 수난과 더불어 반드시 알아야 할 또하나의 사건을 발견할 것이다.

2020-02-19(수) 수요기도회
제목: 스가랴강해(10) 메시야의 수난과 성령강림에 대한 예언(슥12:1~13:9)



1. 들어가며

  구약성경에서는 메시야의 수난(고난)에 관한 예언이 그리 많지 않다. 이사야53장과 시편22편에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메시야의 수난에 관한 예언이 스가랴서에도 나온다는 것은 매우 놀랍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350가지의 메시야예언 중에서 영광스런 메시야 혹은 왕이신 메시야에 관한 예언은 참으로 많지만, "배척받는 메시야 혹은 찔림받는 메시야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은 메시야"에 관한 예언은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스가랴서 12~13장에 나오는 메시야의 수난예언과 더불어 성령강림예언과 회개의 확산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스가랴 14장 가운데 스가랴 12~13장의 위치는?

  스가랴서는 크게 스가랴가 젊었을 때에 본 환상과 벧엘인들의 금식질문(1~8장. B.C.520~518년)그가 늙었을 때에 받은 메시야의 예언들(9~14장, B.C.480~470년)로 나눠볼 수 있다. 그중에서 메시야의 공생애에 대한 예언은 스가랴 9장부터 13장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스가랴에 나오는 메시야의 예언은 첫째, 메시야가 겸손하여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입성할 것을 시작으로 하여(슥9:9). 둘째, 그분이 과연 어느 지파의 후손으로 올 것인지(슥10:4~6) 그리고 셋째, 그가 어떤 역할을 감당할 것인지(슥11:4)가 나온다. 그 중에서도 스가랴 12장~13장에는 메시야의 수난과 성령강림 그리고 그 후에 있을 거국적인 회개운동과 성령께서 오셔서 사람을 회개케 하실 때에 나타나는 3가지 증상에 대해서 소상하게 언급한다.

 

3. 말세의 종말론적인 예루살렘의 보존과 그 영광은 어떻게 예언되었는가?

  하나님께서는 메시야의 수난에 대해 언급하시기 전에 먼저 종말론적인 예루살렘의 보존(보호)에 관하여 놀라운 예언의 말씀을 주신다(슥12:1~9). 그것은 그 어떤 이방민족도 예루살렘을 쳐서 없애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들이 예루살렘을 둘러쌀 수는 있어도 오히려 그 이유 때문에 자기들이 비틀거리게 될 것이며, 자기들이 다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슥12:2~3).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에워쌀 이방민족의 상태를 2가지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는데, 하나는 예루살렘 사면을 둘러싼 이방민족은 "취하게 하는 자(비틀거리게 하는 대접)"이 되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다(슥12:2). 생각해보라. 비틀거리는 잔을 안고 있으면 정작 본인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 잔 때문에 자신은 더 많이 비틀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에는 하나님께서 이방민족들을 "무거운 돌"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다(슥12:3). 왜냐하면 그 돌을 옮기려고 들었다가 오히려 자신의 몸만 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온 말과 말탄 자들은 오히려 그들의 눈이 멀게 될 것이다. 그러면 예루살렘 거민들은 그것을 보고 오직 만군의 여호와로 인하여 힘을 얻었다고 말할 것이다. 특히 하나님께서는 전쟁 중에 유다의 족장들을 나무들 가운데에 화로같게 만들 것이라고 했으며, 곡식단 사이에 횃볼같게 함으로 유다의 족장에게 덤비는 모든 자가 그만 불에 타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슥12:6).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호해줄 백성의 범위는 고관대작부터가 아니라 평범한 유다시민으로부터 시작하여 예루살렘 거민들 그리고 다윗의 왕가로 확대되어갈 것이라고 하셨다(슥12:7). 이는 하나님은 객과 고아와 과부들에 대한 긍휼하심이 풍성하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렇듯 3년반동안 공생애를 사셨던 예수께서도 병들고 신음하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셨다. 그리고 그들을 먼저 구원으로 초청하셨다. 그들을 먼저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4. 스가랴는 말세에 하나님께서 부어주실 성령이 오게 되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했는가?

  이어서 스가랴는 그날이 되면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서 은총과 간구의 영(성령)을 부어주실 것이라고 했다(슥12:10). 그러면 그들이 찔렀던 바 그분(여호와)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심하게 통곡하기를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었던 애통과 같이 애통할 것이라고 했다(슥12:10~11). 그러므로 이 예언은 메시야에 대한 다음과 2가지를 예언을 포함하고 있는 놀라운 예언이 아닐 수 없다.

  첫째는 메시야의 수난에 대한 예언이다(슥12:10). 먼저 이것은 메시야가 고난을 받되 찔림받는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며, 수난받는 그리스도는 다름 아닌 여호와 자신이시라는 놀라운 예언이다. 장차 메시야가 어떤 수난을 받을 것인지는 사실 이사야 53장과 시편22편이 없으면 잘 알 수도 없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스가랴 12:10에서 메시야의 수난에 대한 구체적이고 놀라운 예언을 보게 된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메시야로 오실 것이고 그분이 예루살렘 거민들에 의해 찔림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이것은 곧 메시야께서 장차 예루살렘 사람들로부터 가시면류관과 채찍 그리고 창에 의해 온 몸이 찔리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을 찌르는 장본인들은 바로 예루살렘에 사는 거민들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랬다. 메시야는 가시면류관으로 인하여 머리가 찔리셨고, 채찍과 창에 의하여 몸과 옆구리가 찔리셨다. 그리고 그분을 그렇게 처참하게 만든 장본인은 로마군병이 아니라 바로 예루살렘 사람들 자신이었다.

  둘째, 성령강림과 성령강림에 대한 거국적인 회개에 관한 예언이다(슥12:10b~14). 그런데 성령께서 강림하시게 되면 동시에 큰 애통이 예루살렘에 서부터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눅24:47). 그 통곡은 므깃도 골짜기 하드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은 큰 애통이라고 했다(슥12:11). 그럼, 므깃도 골짜기에 있었던 큰 애통함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역대하35장에 나오는 사건으로서, 남유다의 16대왕이었던 요시야가 므깃도에서 애굽왕 바로느고를 맞이하여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게 되었을 때에, 남유다의 모든 백성들이 자신의 왕의 죽음 때문에 슬피 울었다는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랬다. 예수께서 죽고 난 뒤 성령이 오시고, 베드로가 "너희들이 메시야를 죽였다"고 설교하자, 15개국에서 올라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자기드이 메시야를 죽인 장본인이었음을 깨달으면서 대성통곡을 하게 된다. 회개를 시작한 것이다. 이때 스가랴선지자는 회개의 순서가 왕의 족속에서부터 시작하여 제사장의 족속 그리고 남은 모든 이스라엘 족속들의 남녀가 다 회개할 것이라고 했다. 정말 그랬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최대의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였고, 그러한 회개운동은 사마리아를 거쳐 온 이방지역으로 뻗어나갔다.

  우리는 여기서 성령이 오시게 되면 어떤 증상이 나타나게 될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이 지은 죄들에 대한 회개하는 마음이 불길처럼 타오를 것이라고 예언이다. 즉 회개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성령이 오시게 되었을 때에 나타나는 제일 첫번째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떠한가? 성령이 오시게 되면, 대부분 예언하고 환상을 보며, 꿈을 꾸고 방언을 하게 되며,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치유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성령이 오셔야만 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성령이 오시면 결론적으로 나타나는 부수적인 것들에 해당할 뿐이다. 성령이 오시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회개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성령이 오시면 자신이 지은 죄들을 깨닫게 되어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5. 성령이 오시어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리게 되면 나타나는 3가지 증상은 무엇인가?

  성령이 오시면 죄와 더러움울 씻는 샘이 열려 누구든지 이 샘에 와서 회개하여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족히 마시게 된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가? 그러면 3가지 일이 일어난다. 첫째, 자기와 자기의 마음 속에서 우상을 제거하게 된다(슥13:2a). 하나님을 마음 속에 모시게 되면 우상은 점차 자신에게 제거되는 것이다. 우상이 무엇인가?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그것을 가리킨다. 기도해 보았더니 응답이 없다고 점쟁이를 찾아가면 그것이 우상인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찬양하고 전하는 기쁨보다 세상에 있는 것을 즐기는 것이 더 좋은 사람은 그것이 우상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것이 돈이며 명예이고, 쾌락이고 인기다. 어떤 이는 자기의 마음 속에 자식을 주님보다 더 아끼고 사랑한다. 이 사람에게 있어서는 자식이 우상인 것이다. 그런데 성령이 자기 맘 속에 들어와 죄를 깨끗하게 회개하게 되면 이러한 마음들이 어느순간인가 사라지고 없어진다는 사실이다.

  둘째, 성령이 사람 속에 들어오시면 거짓선지자들의 예언이나 가르침을 추구하지도 않으며 따라가지도 않게 된다는 점이다(슥13:2b). 어떤 사람은 예언을 받으러 매주마다 예언은사자들을 찾아간다. 예언자들로부터 예언을 받지 않으면 불안해서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고 "예수점쟁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신 소원대로 행하면 되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물어보아서 무엇을 결정하고 그 일을 행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포기한 것이요, 예언을 하는 자의 종이 되어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누군가를 종이 되게하고 누군가를 종 삼으라고 오신 것이 아니다. 종된 우리의 인생을 놓아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은 예언자가 거짓된 가르침으로 말하는대도 그것이 거짓인 줄 모르고 그 가르침을 따라간다. 우리는 성령이 오시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성도들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령이 오시면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별할 수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성령이 오시게 되면 그는 진리와 거짓된 가르침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거짓을 버리고 진리만을 따라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자기의 자녀들 중에 계속해서 예언하는 자가 있다면 부모는 그것을 근절시켜야 한다. 성령이 오시면 거짓말하는 예언이 사라지게 될 것이며, 환상과 예언하는 일이 점차 없어지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 가르쳐주시기 때문이다.

  셋째, 성령이 사람 속에 들어오시면 더러운 귀신(영)을 추방하게 된다는 점이다(슥13:2c). 여기에 나오는 "더러운 영'이라는 "깨끗함을 받지 못한 영"을 가리킨다. 이것이 사탄마귀와 귀신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자는 더러운 귀신과 하나될 수가 없으며, 더러운 귀신과 함께 할 수가 없다. 거룩한 영은 더러운 영과 함께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삶에 귀신이 역사하고 있다면 우리는 즉시 회개해야 한다. 예수의 피로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해서 더러운 영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회개했으면 꾸짖어 귀신을 내쫓아버려야 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하나 되겠으며, 빛과 어둠이 어찌 같이 있을 수 있느냐고 말했던 것이다. 고로 우리가 성령의 다스림 안에 있게 된다면 우리는 점차 귀신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될 것이다.

 

6. 목자를 치게 되면 나타나는 증상은 무엇인가?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언젠가는 칼로서 하나님의 짝된 자 곧 목자를 치실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하나님의 짝 된 자요 목자"는 메시야를 가리킨다. 이 말씀은 메시야의 수난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이라는 것을 뜻하며, 그렇게 될 때에 비로소 양떼들이 어려움과 역경을 통해서 진실된 하나님의 자녀들로 연단받아 구별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약한 자들을 당신의 손으로 보호하실 것이라고 하셨다(슥13:7). 그래서 하나님께서 목자를 치실 때에는 대부분의 양떼들이 커다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때 양떼의 2/3는 멸망당하겠지만 1/3은 남아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1/3이 불가운데서 금을 연단함없이 연단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슥13:8~9). 그때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부르짖는 기도소리에 귀를 기울이실 것이며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인정하실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고난의 연단없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산출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고난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하는 가장 좋은 훈련소이며 교사이기 때문이다.

 

7. 나오며

  고난받는 종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는 이사야 53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가랴 12~13장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사람들은 성령을 받게 되면서 비로소 왜 나를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고난을 받으셨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저절로 회개가 터저나온다. 자신이야말로 메시야를 죽인 장본인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때에 비로소 성령의 샘이 열려질 것이고 그려면 모든 사람들의 갈한 영혼들이 비로소 만족함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기가 추구한 우상을 버리게 될 것이고, 더이상 거짓선지자를 좇아다니지 않게 되며, 더러운 귀신을 확실히 내쫓아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결과요 열매들이다. 그러므로 자기자신이 진정 회개한 자인지를 가늠해보면 앞의 3가지 결과가 자신에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점검해보라. 그러므로 우리의 회개가 예수께서 고난받으신 목적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회개가 성령께서 오시는 목적인 셈이다.

 

2020년 2월 19일(수)

정병진목사



스가랴서에는 메시아에 관한 예언들로 가득 하다. 그것도 너무나 세밀하게 말이다. 꼭 미래의 현장을 보고 온 것 같다. 역시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시요 처음과 마지막이시다. 그분이 만드신 이이시요 그분이 이끌어가시는 이다. 그러나 그분이 아무리 선지자를 통하여 미리 말씀하셨다고 하더라도 그분의 뜻이 이 땅에서 이뤄지려면 반드시 우리의 기도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스가랴를 통해 그리스도의 오심과 사역을 어떻게 미리 알려주셨는가? 그 뜻이 이뤄지기 위해서 지금 우리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

2020-02-12(수) 수요기도회
제목: 스가랴강해(09) 메시야의 오심과 지상사역에 관한 예언(슥9:1~11:17)
https://youtu.be/37ZA7rhAmOQ


1. 들어가며

   스가랴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제1장부터 8장까지인데, 이것은 B.C.520~518년경에 스가랴가 보았던 '환상들"을 기록한 것이라면, 제9장부터 14장까지는 그때로부터 약 40년이 지난 뒤인 B.C.480년경에 스가랴가 받은 예언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니 배경도 다르고 내용이 상당히 다르다. 스가랴서의 앞부분(제1~8장)이 주로 제2의 성전을 짓기 전에 성전건축에 대한 독려 환상(제1~6장)과 건축을 시작하고 2년이 지난 시점에 벧엘인들의 금식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변(제7~8장)이 기록되어 있다면, 뒷부분(제9장~12장)에는 이미 성전이 완공된 후 약 40년이 지난 시점에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스가랴의 후반부(제9~14장)은 성전건축이 끝난 후 선민공동체에게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답변으로서 종말에 있는 메시야의 도래를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초림의 메시야의 도래(9~13장)와 재림의 메시야의 도래(14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용면에서 구분하여서 신약의 관점으로 본다면, 제9~11장은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부터 버림받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 있으며, 제12~13장은 십자가에서 고난받는 메시야를 그리고 제14장은 다시 오실 재림의 메시야를 다루고 있다고 하겠다. 그중에서 오늘은 스가랴 제9~11장까지의 말씀으로서, 메시야의 공생애에 관한 예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스가랴서에 나오는 메시야의 공생애의 예언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스가랴서에 나오는 메시야의 공생애에 관한 예언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으은 첫째,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나귀새끼를 입성하실 것에 대한 예언이다(슥9:9~10). 둘째, 예수께서 유다족속의 사자로서 오실 것이다(슥10:3~4). 셋째, 예수께서는 선한 목자로 오셔서 활동할 것이지만 악한 목자들과 백성들에 의해 배척을 받고, 은30에 팔리게 될 것이다(슥11:12~13). 넷째, 예수께서는 수난을 받으실 때에 찔림을 받을 것이다(슥12:10). 다섯째, 예수께서는 목자로 오셨지만 하나님께서 그 목자를 치시기 되면 양떼들이 흩어어지게 될 것이다(슥13:7). 사실 스가랴서에서 언급되어진 메시야에 관한 예언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약 500년전에 주어진 예언들이다. 그런데 어찌 그리 정확히 맞아떨어지게 되는지 놀라울 뿐이다.

 

3. 열방의 심방과 선민에 대한 보호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벨론의 포로생활로부터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은 학개선지자와 스가랴선지자의 독려에 의해, 드디어 B.C.516년 제2의 스룹바벨성전을 건축하게 된다. 그런데 성전만 완공하면 주변민족으로부터 보호도 받고, 비고 많이 내려 농사도 잘 되고, 질병도 사라져 번성할 줄 알았지만 실제는 그러하지 못했다. 주변민족은 여전히 예루살렘을 침공해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자 실망을 하고 있는 유다거민들에게 스가랴 선지자가 일어나서 선포한다. 주변의 열국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고 예루살렘은 불성곽처럼 보호해주실 것이라고 말이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스가랴선지자에게 이스라엘 나라를 괴롭힌 주변열국(이방민족들)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고 선언하게하신다(슥9:1~7). 그리고 하나님의 집(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불성곽처럼 둘러 진을 쳐 적군이 침입해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줄 것이라고 예언하게 하신다(슥9:8). 그러면 다시는 포악한 자가 그 지경으로 다니지 않게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와같은 말씀을 통하여 악한 나라와 민족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어찌하든지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악한 주변 민족들을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시는가? 그것은 이방민족이라고 해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된 행위들 때문이며, 또한 그들의 앉고 일어섬이 주님께 있다고 말씀하신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북쪽에 있는 민족부터 남쪽에 있는 민족까지 차례대로 열거하시며, 그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정확히 집어내신다. 그리고 저 북쪽 시리아지역부터 시작하여, 남쪽으로 두로와 시돈 그리고 블레셋 민족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이 세 민족의 공통적인 특징은 "교만"이라고 말씀하신다(슥9:6, 겔28:5,17). 먼저 시리아 지역부터 두로와 시돈은 지혜와 재물로 인하여 교만하여졌다고 말씀하시며, 블레셋족속은 우상숭숭배로 교만하여졌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두로에 대한 심판에 대해서는 에스겔서에서 더 소상하게 선포되고 있는데, 스가랴에서 주신 말씀과 거의 대동소이하다. 두로가 교만해진 까닭은 자신의 지혜로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는데, 그것으로 인하여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해상무역을 통해 재물을 더하였고 재물이 더하여지자 마음이 교만해져서 자신은 신이라고 까지  말하게 된다(겔28:3~5). 사람이 지혜로우면 교만해지는가보다. 또한 그 지혜로 인하여 물질적인 축복을 쌓게 되면 교만해지는가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제 요새를 건축하여 안전을 보호받고 해상무역을 통하여 은을 띠끌 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처럼 쌓게된 두로의 멸망을 직접적으로 예언하신다. 사실 두로는 고대 근동에서 대단한 도시였다. 두로는 도시가 2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하나는 육지에 있었고 또 하나는 육지에서 약800m 떨어진 바다(지중해)에 있었다. 그러므로 혹시 육지를 통해 도시를 공격해오면 육지에서 막아보다가 아차 싶으면 배를 타고 섬 두로로 도망을 쳤다. 그런데 섬은 요새화되어 있는 견고한 성이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이 섬을 공략하지 못했다. 특히 두로는 해상무역을 통해 돈을 많이 벌었기에는 두로는 여러 곳에서 용병을 기용할 수 있었고 최고의 능력자들이 이 섬을 지켰기에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도 이 도시를 무려 13번이나 공격했지만 실패했고, 바벨론의 뒤를 이어 바사(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크세르크레스)(에스더 왕비의 남편)도 침공해보았지만 헛수고였다고 한다. 하지만 스가랴에게 이 예언이 주어지고 난 뒤 150년이 후에, 헬라제국의 알렉산더가 처음으로 이 섬을 정복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먼저 육지에 있는 두로를 정복하고 그 도시의 주민들을 노예로 삼아 육지에서 섬까지 800m를 흙으로 메구어 길을 만들어서 정복했다고 한다. 결국 섬은 초토화되었고 스가랴서의 예언처럼 불에 삼키고 말았던 것이다(슥9:4).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일점일획도 변함없이 성취된다는 것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족속은 그들의 우상숭배의 교만함으로 멸망을 당할 것이나 그들중에 얼마나는 유다사람이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블레셋이 멸망당하고 그들중의 일부가, 가나안의 여부스족속이 유다지파의 사람들로 합류했던 것처럼, 블레셋 사람들도 합류하여 유다지파 사람이 된다(슥9:5~7).

 

4. 겸손하게 섬기러 오실 예수는 어떻게 예언되어 있는가?

  주변 열강들이 지혜와 재물과 우상숭배로 인하여 교만해질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장차 겸손하신 왕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왕은 겸손하여서 나귀를 탈 것인데, 나귀의 어린 것 나귀새끼를 타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슥9:9). 우리는 이 예언을 따라 우리 주 예수께서 메시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왜 백마를 타고 입성하지 않으시고 그분은 나귀를 타고 들어가셨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마21:1~7,요12:15). 이것은 그분이 군림하고 지배하러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며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 메시야는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신 분이지, 남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장차 보내실 메시야는 오랜 이스라엘의 전쟁을 끝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슥9:10). 그래서 병거와 말도 끊어버리고 활도 끊어버리실 것이며, 이방사람에게까지 화평을 전하실 것이라고 하셨다(슥9:10). 그래서 그분의 통치는 바다에 바다끝까지, 강에서 땅끝까지 이를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께서 무력을 사용해 세상을 정복하지 않았음을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분은 희생적인 사랑과 섬김으로 온 세상에 복음을 증거케 하셨고 온 세상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하셨다. 그분은 사탄마귀와 귀신들과의 싸움에서 이기셨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이미 이겨놓은 싸움을 싸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어떻게 해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셨는가? 그것은 자신(어린양)의 피로서 그렇게 하셨다(슥9:11). 그러므로 그 피를 믿는 자는 지금도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며, 사랑과 섬김으로 다른 사람을 정복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주님은 이러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한 자를 결국 천국에 불러들이시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자를 위해 축배를 들게 하신다. 그리고 그들을 하늘에서 왕노릇하게 해 주시는 것이다(슥9:14~16).

 

5.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들이 성취되려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처음과 마지막이시다(계21:5~6). 그러므로 하나님은 시간 밖에 계시다. 그분은 시간을 주관하시며 시간을 당신의 뜻대로 이끌어가신다. 그러므로 미래의 일을 현재의 일처럼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항상 현재에 살고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래의 일은 현재의 일처럼 말씀하셨다. 그것은 스가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나님은 가까이는 몇 십년에서 멀리는 수백 수천년 후에 일어날 일을 미리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미래에 일어날 일을 현재와 같이 말씀하셨으니 반드시 그러한 일이 미래에 일어나게 되는 것인가? 아니 가만히 있어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는가? 그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과 시간의 주관자이시다. 하지만 그 일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기도를 필요로 하신다. 우리의 기도가 없이는 하나님은 일하시지 않으신다(겔36:37). 그러므로 제2성전을 완공한 후, 평화로운 세상이 도래하지 않아 실망하고 있는 이스라엘백성을 향하여 기도하라고 권면하신다. "봄비가 올 때에 여호와 곧 구름을 일게 하시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그리하면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리라(슥10:1)" 그렇다. 은혜가 단비는 일방적으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시작으로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공급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기를 쉬지 않아야 한다.

 

6. 장차 오실 메시야는 과연 어느 지파의 후손으로 오실 것인가?

  이어서 스라랴 선지자는 우상을 숭배하고 점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된 이유가 그들에게 참 목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슥10:2~3).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장차 참된 목자이신 메시야를 보내어 주실 터인데, 그는 유다지파의 사자로 오시어서(슥10:3~4)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슥10:4~5). 그러면 주변 열강의 침입으로 인하여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즉 애굽과 앗수르와 길르앗과 레바논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슥10:8~12). 결국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는 유다지파의 후손으로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던 것이다.

 

7. 남유다가 멸망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남유다가 멸망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해서인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더 더 밖에서 이것을 지켜보면, 그 이유가 조금 전에서 지적했지만 남유다에 진실로 참된 목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슥11:1~3). 그러므로 양에들이 각기 제 갈길로 가서 개별적으로는 드라빔과 같은 우상을 들여와 숭배하였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점치는 자를 쫓아다녔던 것이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탈선하여 엉뚱한 일들을 저질렀고, 바른 길에서 벗어나고 굽은 길로 행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나무들 중에 최고인 백향목을 불사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나무가 바로 최고의 큰 나무요, 그렇게 가장 큰 나무가 타락했기 때문이다. 왜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이 그토록 타락하게 되었는가? 그들은 자신이 가진 직책을 이용하여 양떼들의 진액을 빨아먹었고 쓰면 뱉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맡은 양들을 팔아 돈벌이를 하였고, 그 양들을 사들인 자들을 그 양들을 죽이면서도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고 하였기 때문이다(슥11:5). 회칠하고 위선적인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누가 진정 이스라엘을 그토록 가련하게 만들었는가?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종교지도자들이었다. 이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8. 선한 목자를 핍박하는 악한 목자들과 삯군목자들의 실상은 어떠한가?

  악한 목자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도 양떼를 지키지 못하면서 남이 양떼를 돌보아준다고 해도 그것을 시기질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이 타락하여 양떼들을 지키지 못하고 해치기만 하자, 스가랴를 그들의 목자로 보내신다. 가서 가련한 양떼들을 치라는 것이다(슥11:4,7). 그래서 스가랴 선지자는 2개의 막개기를 들고 양떼들에게 간다. 하나는 "은총"이라는 막대기였고 또 하나는 "연합"이라는 막대기였다(슥11:7).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한 달 안에 그동안 양떼를 잘못 인도했던 세 목자를 제거하라고 하신다(슥11:8). 하지만 가련한 양들은 이제 스가랴를 배척하시 시작한다. 그러자 스가랴는 그들에게 좋게 여긴다면 자신이 일한 품삯을 쳐달라고 한다. 그러자 그들이 은30을 달아서 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스가랴에서 그들이 헤아려서 준 바 그 은30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의 밭에 던지라고 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양떼를 돌보지 아니한 못된 목자들을 칼을 보내 그의 팔과 그의 오른쪽 눈을 치게하여 눈이 아주 멀어버리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슥11:17). 이것이 예수께서 오셨을 당시에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실상이다. 선한 목자이신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에 오셨지만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배척하였고 결국 자기의 백성들도 그분을 영접지 아니하고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악한 목자들이 영원히 메시야를 볼 수 없도록 눈을 감겨버린다.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께서 메시야이신을 보지 못하고 있다.

 

9. 나오며

  하나님은 역시 처음과 마지막이신 분이시다. 그분이야말로 이 우주만물을 창조한 분이시며 그것을 이끌어가시는 분이시다. 그분의 뜻에 따라 만물이 서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도 일하실 때에는 어떤 원칙이 있다. 그 원칙은 혹 당신의 계획이 조금 늦춰지더라도 꼭 지키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것은 우리 성도들의 기도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것이다(슥10:1, 겔36:37). 우리의 성도들이 하나님께 은총을 간구할 때에라야 우리에게 은총을 주시기 때문이다. 그것이 공의로오신 하나님의 원칙이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다 이루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약속의 성취는 그만큼 더 뒤로 미뤄진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니 무엇을 위해 우리는 존재해야만 하는가?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 성취되도록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자. 건투를 빈다.

 

2020년 2월 12일(수)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