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의 핵심 축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씀과 기도다. 이것은 말씀을 많이 아는 것만으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바울이 엡6장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보니, 공격용 무기는 한 가지인데 반해, 방어용 무기는 무려 5가지나 된다. 이때 공격용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다. 고로 우리는 기도에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기도가 영적인 승리의 최후 관건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에베소서강해 마지막시간으로서, 에베소서 전체를 정리하면서 기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021-03-17(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베소서강해(18)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최종적인 권면과 축도(엡6:10~20)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FNAiupRS9E0  [혹은 https://tv.naver.com/v/19042704  ]

 

1. 들어가며

  오늘은 에베소서강해의 마지막 시간이다. 그동안 에베소서의 핵심주제들과 아울러 각 장의 말씀을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제는 에베소서강해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그동안 살펴보았던 에베소서의 핵심주제들과 각 장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 다뤄야 할 본문으로서 엡6:18~24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한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 중에 엡6:18~24의 내용은 엡6:10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한 마무리 부분(엡6:18~20)이다. 그리고 아울러 에베소서의 끝인사(엡6:21~24)다. 앞의 내용에 비하면 분량은 그리 큰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들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에베소서의 전반적인 내용을 정리하듯 살펴본 다음에 끝인사를 통하여 에베소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2. 에베소서는 어떤 책인가?

  그동안 우리는 지난 17번의 강해시간을 통하여 에베소서 강해를 진행해 왔다. 첫 시간부터 우리는 에베소서가 보통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에베소서는 지교회에 보낸 작은 편지가 아니라, 회람용 서신으로서 바울이 계시로 깨달은 복음과 그 지침들을 아주 농축시켜 액기스만을 기록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에베소서는 하나의 지교회를 향한 특별편지가 아니다. 만약 이 편지가 지교회만을 위한 편지였다면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지적했을 것이고 그리고 그 해결방안에 대해서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에베소서 그 어디를 살펴 보더라도 에베소 교회에 어떤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렇다. 에베소서는 바울이 자신의 말년에 로마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그가 깨달은 영적인 진리들을 유언처럼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향하여 쓴 것이다. 정말 꼭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핵심 진리들만을 엄선하여 그렇게 써 보낸 것이다. 그러므로 에베소서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용을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가지셨던 구원계획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성도들이 알아야 할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와 교회에 주신 직분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통 교회론에 관해 공부하고 싶다고 하면, 에베소서를 추천하는 것이 이제는 상식이 되었다. 그만큼 교회가 무엇인가 그리고 왜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만드셨으며, 교회는 어디까지 성장해야 하는가를 배우려며 에베소서에 문을 두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3. 에베소서에서 사도바울이 말하는 교회란 어떤 것인가?

  사도바울은 교회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성장해야 하는지를 에베소서에 다 기록해 두었다. 그러므로 교회론에 관하여 공부하려면 에베소서를 보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교회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을까? 그는 총 7가지로 교회를 소개하고 있다. 첫째, 에베소서 1장에서 그는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이자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이라고 했다(엡1:23).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여러 지체들의 유기적인 연합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의 확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베소서 2장에서 그는 교회의 정의를 4가지 것으로 언급한다. 고로 둘째, 바울은 교회를 "새 사람"이라고 했다(엡2:15). 여기서 "새 사람"이라 함은 2가지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것인데, 에베소서 2장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연합된 우주적인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에베소서 4장에서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영이 새롭게 되어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고 있는 새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엡4:22~24). 셋째,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의 시민 혹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소개했다(엡2:19).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그분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넷째, 이어서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소개했다(엡2:19).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아 거듭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다섯째,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 내지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다(엡2:21~22).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내주하시는 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에베소서 5장에서는 교회를 여섯째로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소개했으며(엡5:31~32), 에베소서 6장에서는 교회를 일곱째로, "그리스도의 전사"라고 소개하였다(엡6:12). 한편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있는 교회에 관한 이 두 가지 정의는 이전의 5가지 정의와는 약간 다르다. 왜냐하면 신부와 전사로의 교회는 요한계시록 19~20장에서도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장차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야 하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전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4. 에베소서는 무엇을 다루고 있는가?

  에베소서는 위에서 말한 "교회론"만을 다루고 있는 서신은 아니다. 에베소서는 그것 외에도 매우 굵직굵직한 주제들도 다루고 있다. 그것들 중의 하나는 예정론이며, 또 하나는 하나님의 구원경륜이다. 먼저, 예정론은 에베소서 1장에서 다루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자 상속자들을 예정해놓았다는 것이다(엡1:3~14). 하지만 그의 설명 어디를 살펴보아도 칼빈이 말한 바, 개인구원예정론은 살펴볼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한 무리의 믿는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들로 예정해놓았다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떤 믿는 자들이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되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키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런 자들이 결국 구원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에베소서 3장에서는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언급하고 있다(엡3:1~13). 바울은 여기에서 교회란 그리스도의 감춰진 비밀로서,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상속자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고, 또한 함께 지체가 되는 것이며,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한편 이러한 구원경륜은 그때까지 그 어떠한 하늘의 천사들도 알지 못해온 비밀이었다고 언급했다. 

  뿐만 아니라 에베소서는 교회에게 주신 직분도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에베소서 4장에 나오는 말씀이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교회에게 선물로서 5가지 직분을 주셨다고 언급하였다. 그것은 사도와 선지자요, 복음전파는 자요, 목사와 교사라고 하였다(엡4:11).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이러한 직분자를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함이여,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상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게 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다른 용어들을 등장시켜 설명하는데, 이를테면 "옛사람과 새사람(엡4:22~24)" 그리고 "겉사람과 속사람(엠3:16~17)"과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누가 과연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유업을 받을 것인지도 밝혀 놓았다(엡5:5~6).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장차 자기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자기가 구원에서 결코 탈락하거나 제외되지는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도바울은 이방인인 불신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도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고, 장차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구원에서 탈락하는 자가 나올 것이라고 하였다(엡5:5~6). 심히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한편 바울은 에베소서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기록하였는데, 앞부분(1~3장)은 믿음의 교회에 관한 부분을 다루었으며, 뒷부분(4~6장)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의 삶(생활)에 대해 다루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다루는 부분에 있어서, 그는 아내와 남편, 자녀들과 아버지, 그리고 종들과 상전들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시하였다. 무엇이 바람직한 그리스도인간의 상호존중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준 것이다. 

 

5. 하나님의 전신갑주란 무엇을 뜻하며, 핵심요소 6가지는 무엇인가?

  바울은 마지막으로 에베소서 6장에서 교회의 6번째 정의를 언급하는데, 그것은 교회란 악한 세력들과 싸워서 승리해야 할 하나님의 영적인 "전사"라는 것이다(엡6:10~20). 그리고 이 전쟁에서 싸워서 승리해야 할 대상은 결코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으며, 그것은 악한 세력들 곧 귀신들이라고 하였다. 특히 이들 가운데서도 상당히 높은 계급의 귀신들이라고 하였다. 왜나하면 그리스도인들의 대적은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둠의 세상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이기 때문이다(엡6:12). 그러므로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무기들로 무장하지 않으면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무장해야 할 무기들로서 총 6가지를 소개한다. 그것은 곧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호심겸), 평안의 복음의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그영)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레마)이다. 그래서 바울은 위에서 말한 6가지 종류의 하나님의 전신갑주야말로 마귀의 간계들을 간파하고 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라고 소개하였다. 특히 이러한 무기들 중에서 앞의 5가지 무기는 방어용 무기들이며, 뒤의 한 가지만 공격용 무기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러한 6가지 항목을 의인화시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용어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진리, 의, 평안, 믿음, 구원, 그영 곧 하나님의 말씀은 다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설명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여기에 들어가 있는 "믿음"도 사실은 하나님의 것 곧 그리스도의 것에 해당한다(막11:21~23).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믿음을 가지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6. 하나님의 전신갑주와 관련되어 있는 2가지 추가적인 사항은 무엇인가?

  사도바울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무장해야 할 항목으로서 총 6가지를 언급하였는데, 그것이 준비되면 무조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6가지 영적 무기들이 효율적으로 작동되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한 가지 보조적인 항목이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바로 "기도"라는 항목이다. 왜냐하면 기도야말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효력있게 만들어주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기도가 일종의 기계로 치자면,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기도를 영적인 눈에서 보면, 기도의 지원군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하늘로부터 천사들이 파송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기도야말로 하나님의 6가지 전투장비들을 가장 효력있게 해주는 약방의 감초와도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군사들인 천사들을 파송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영적 전투에 있어서 또 하나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왜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전투장비로 무장해야 하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말하는데, 그것은 복음전파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전쟁을 해야만 하는 이유는 악한 영들에게 잡혀 있는 사람들(불신자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즉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 영적 전투라는 것이다(엡6:19). 그렇다. 자신의 진영에 있는 사람들을 빼앗아가려고 하는데 어찌 사탄마귀가 가만히 있겠으며 그들을 순순히 내어주려고 하겠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영적인 무기로 완전 무장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기도를 보태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자신은 그 일에 일평생에 사신이 되어 일하고 있다고 증언했다(엡6:20). 주님께서 그에게 그러한 사명을 그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완수하기 위해 지금도 달려가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7. 성도와 주의 종들간의 교통은 왜 필요한가?

  이제 바울은 끝인사를 나눈다(엡6:21~24). 그리고 한 인물을 그들에게 소개한다. 그 사람은 바로 아시아에서 온 형제로서 바울의 동역자인 "두기고"다(엡6:21). 그는 복음을 위한 진실한  일꾼으로서, 그의 사랑받는 형제이자 에베소교회 성도들과 바울 간의 다리역할을 할 수 있는 귀한 형제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바울의 현지사정을 잘 알게 해 줄 사람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에베소 성도들이 바울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에베소교회는 바울의 3차전도여행 가운데 개척한 교회로서, 바울이 가장 애지중지하였던 교회였다. 그러므로 그들 또한 바울의 건강이나 재판이나 죽음에 대해 많이 염려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두기고를 보내어 자신의 건강에는 별로 큰 어려움이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편지도 서로 왕래할 수 있을 정도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참고로 두기고는 "에베소서"라는 편지만을 전달하는 자로서 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골로새서"라는 편지도 함께 전달하도록 바울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였기 때문이다(골4:7~8). 이렇듯 주의 종과 성도들은 서로 영적인 면에서도 교통해야 하겠지만 육의 측면에서도 서로 교통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영적인 양식을 공급하는 자와 공급받는 자의 아름다운 교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울은 축도로 에베소서를 가름한다. 하나님의 평화와 미음을 겸한 사랑과 은혜가 그들에게 있기를 축원했다(엡6:23~24). 그런데 그가 에베소서에 남긴 마지막 말이 참으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왜냐하면 그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엡6:24)." 여기서 "변함없이"라는 표현을 보자. 이 표현은 "항상"이라고 하는 뜻이 아니다. 헬라어원문을 보면, "불멸 안에서"이다. 지구가 없어지고 우주가 사라진다 해도 절대 해체될 수 없고 결코 없어지지 아니할 정도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성도들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나는 이 정도로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하겠다. 

 

8. 나오며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얼마 남겨두지 아니한 상황에서 지교회에 편지를 보낸다. 그것을 옥중서신(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편지들을 살펴보면 참으로 그가 가지고 있던 믿음과 신학이 얼마나 여물어있는 것인지를 실감하게 해준다. 특히 에베소서에 기록된 만세전 예정론과 하나님의 구원경륜은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심오한 말씀들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그가 다메섹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면서 깨우치게 된 "교회"라는 개념은 그가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말해준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자 지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교회를 한 새 사람이자, 하늘나라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처이자 성전이라고 했으며, 장차 재림하시게 될 그리스도의 신부이자, 영적 전쟁에서 악한 자들과 맞붙게 될 전사라고까지 말하였다. 특히 교회에 관한 앞의 5가지 개념은 사람이 거듭남과 동시에 적용되는 개념들이라 할 수 있지만, 뒤의 2가지 것은 우리가 얼마나 회개함으로 준비하느냐 그리고 영적으로 무장함으로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그 크기가 결정되는 개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크기가 곧 천국에서 우리의 상급과 면류관과 집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얼마나 그리스도의 깨끗한 신부로서 준비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장차 악한 자들과의 한 판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을 위해 지금 나는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날의 영광과 승리를 위하여...

 

2021년 03월 17일(수)

정병진목사

 

종과 상전은 신분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둘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성도들은 본의 아니게 이미 영적전쟁에 뛰어든 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악한 영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싸움을 걸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과 지혜를 지니고 있는 이놈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여기에 언제나 승리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놀라운 방법이 있다.

 

2021-03-10(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베소서강해(17) 종이 상전과 지켜야 할 윤리와 마귀와 악한 영들을 대적하여 이기는 법(엡6:5~20)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TdB5pmpARtA [혹은 https://tv.naver.com/v/18931619 ]

 

1. 들어가며

  에베소서는 사실 교회론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란 대체 무엇이며 또한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교회가 무엇인가에 관해 7가지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중의 하나로서 일곱 번째 정의를 오늘 배우고자 한다. 교회란 대체 어떤 것이며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가?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6장을 통하여 교회는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전사"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가 전사라는 의미는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고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갈 때에 비로소 영적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전사가 될 수가 있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 그리스도인들 상호간의 윤리의 최종적인 방면으로서, 종과 상전 간의 상호복종에 관한 말씀과 아울러 그리스도인의 영적 전쟁에 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한다. 

 

2. 종과 상전 사이에 지켜야 할 상호 윤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종들은 과연 상전에게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그리고 상전들을 종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사도바울은 종들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상전에게 그리스도에게 하듯 순종하고 섬겨야 한다고 말이다(엡6:5~7). 종들은 상전에게 그리스도에게 행하듯 두렵고 떨림으로 성실한 자세로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 앞에 눈가림으로 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주를 섬기듯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자세로 상전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사람의 신분이 종이든지 아니면 자유인이든지 선을 행한대로 주님께 장차 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엡6:8). 

  그렇다면 상전들은 종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사도바울은 상전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종들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무시하거나 협박하지 말라는 것이다(엡6:9a). 이는 자신이 상전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는 자기보다 높으신 분이 하늘에 계시기 때문이요, 그분은 편애하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엡6:9b). 

 

3. 성도들에게 있어서 전투는 어떤 전투인가?

  성도들에게 있어서 전투는 혈과 육에 관한 전투가 아니다. 성도들은 사탄마귀 및 악한 영들과 더불어 영적 전쟁을 수행해야 할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즉 마귀에게 속한 보다 더 높은 계급의 영들과 싸움을 싸우는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을 사도바울은 "통치자들", "권세자들", "이 어둠의 세상주관자들", "하늘들 안에 있는 악의 영들에 속한 것들"이라고 말하고 있다(엡6:12). 그렇다. 이들을 꼼꼼히 살펴보라. 이놈들은 사람 속에 실제적으로 들어와서 공격하는 말단전투병들인 귀신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상당히 높은 계급에 속한 영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싸움은 바로 그러한 것이다. 고로 사람이 영적으로 성숙해져서, 자기도 구원하고 남들도 구원할 수 있으려면, 악한 영들을 잘 알아야 하고 그것과 싸워서 승리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혈과 육을 상대하여 사람과 싸우는 성도들이 더러 있다. 아니다. 사람을 미워하고 사람과 갈등하고 사람과 관계를 끊는 등의 방법은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의 싸움은 사람 배후에서 역사하고 있는 악한 영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악한 영들과 싸워서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4.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이 영적 전쟁을 잘 수행하여 승리하기 위하여 사도바울은 5가지를 권면한다. 첫째, 자신이 강건해야 한다고 했다(엡6:10). 둘째,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엡6:11~13). 셋째,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사용하는 방법도 알아아 한다는 것이다(엡6:13~17). 참고로,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에는 방어용 무기도 있으며, 공격용 무기도 있다. 그러므로 교회인 성도들은 전사로서 둘 다 가진 특징과 장점을 충분히 파악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비상시에는 지원받을 수 있는 지원군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기도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째, 왜 싸움을 싸우는지 그 이유와 목적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5.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어떻게 착용해야 하며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여기서에 말하고 있는 "전신갑주"란 헬라어로 "파노플리안"이라는 단어로서, 이는 "파스"(모든)와 "호플론"(병기, 무기, 연장, 무장)이라는 두 단어가 합쳐진 단어다. 고로 이 단어는 자신의 전신을 무장하여 적과의 싸움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또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의 총칭이다. 이러한 장비를 사도바울은 총 6가지로 제시하고 있는데, 앞의 5가지는 방어용 무기이지만, 마지막 한 가지는 공격용 무기다. 이것들은 다 세상에서 로마군인이 착용했던 장비를 본따서 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각 무기의 수식어가 영적 전쟁의 실젲거인 무기라는 것을 염두해두어야 한다.

  첫째, 허리에 진리의 허리띠를 둘러야 한다. 허리띠는 졸마매여 기동성을 확보하게 하는 것이다. 허리띠가 헐렁하거나 없다면 몸을 걸치고 있는 옷의 거추장 때문에 전쟁수행능력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전사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영적전쟁에 사용되는 허리띠를 "진리"라고 말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나게 될지 모르는 적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해서는 성도는 "진리"로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평소 그가 진리의 말씀이 아니라 거짓된 가르침으로 무장해있다면, 그에게 있어서 전쟁 수행 능력은 탁월하게 떨어질수 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 가슴에 의의 흉배를 붙착해야 한다. 흉배는 가슴 속에 있는 장기들 곧 심장과 폐 등의 치명적인 장기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비다. 고로 사람이 전쟁에서 치명상을 입지 않으려면 그 사람은 평소 "의"로운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 늘 죄만 짓고 사는 사람은 영적 전쟁에 나가면 치명상을 입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는 빨리 회개하여 제거하고, 우리의 의로운 행위를 가지고서 적진에 나가야 한다. 그래야 치명상을 입지 않는다.

  셋째, 발에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어야 한다. 여기서 신은 샌달과 같은 모양인데, 이것은 이동할 때 발이 가시에 찔리지도 않게 하고 어디든지 달려갈 수 있게 해주는 장비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 신은 "평안의 복음"의 신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성도들이 어디든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평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로 늘 자기자신에 대한 걱정근심이 많은 자는 전쟁하기가 어렵다. 빨리 근심걱정을 해결해야 한다. 

  넷째, 믿음의 방패를 취해야 한다. 방패는 적의 모든 공격무기를 차단하기 위한 방어장비다. 그런데 이때 적은 우리에게 불화살을 쏘며 쳐들어온다. 그러므로 방패가 없다면 적이 쏜 불화살에 맞아서 내가 죽거나 태워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적이 쏜 화살 등의 무기를 방어하게 위해서는 큰 방패가 필요하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믿음"이라고 했다. 귀신들의 공격을 차단하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때에는 믿음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믿음의 분량이 큰 만큼 적의 큰 공격을 다 막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영적 전쟁을 잘 수행하려면 큰 믿음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섯째,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한다.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는 전투장비다. 만약 전쟁할 때에 머리에 타격이라고 입으면 온 몸이 움직일 수 없다. 이처럼 머리는 온 몸에 대한 통제장치로서, 이것에 타격을 받으면 결국 치명상을 입어 자기가 지금 어떤 위치에 처해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고로 성도들은 반드시 자신의 구원관에 있어서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천국에서 어떤 영광을 얻기 위해서 지금 달려가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방어용 무기들이다. 

  여섯째, 성령(그 영)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레마)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은 한 가지이지만 유일한 공격용 무기다. 방어용 장비만으로 적군과 싸워 이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공격용 무기로 적을 무찔러야 한다. 이때 사용하는 공격용무기는 양날이 있는 날선 검이다. 그런데 이 검을 사도바울은 "성령(그영)의 검"이라고 했다. 성령께서 사용하는 검이라는 뜻인데, 내 영과 연합된 성령께서 그것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럼, 나의 영과 연합된 성령은 실제적으로 어떤 것을 검으로 사용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결국 평소 때에 성령이 누구시며 그분이 어떤 일을 하시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어떻게 하는지를 모르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 이때 성령이 사용하는 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로고스'말씀이 아니라, '레마'말씀이다. 이것은 기록된 말씀 중에서도 자기에게 믿어지는 말씀을 가리킨다. 아무리 좋은 양약일지라도 그것이 자신을 이롭게 할 수 없다고 믿는 자들에게는 양약도 아무 소용이 없듯이, 하나님의 말씀일지라도 그것이 악한 영을 공격하여 그것을 무찌르며 토막낼 수 있음을 믿지 못하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소용이 없다. 자신의 영이 하나님의 말씀을 휘들러 적을 공격하면 실제로 악한 영들이 그 영향으로 넘어진다는 아는 자가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사용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과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전쟁하는 목표과 영혼구원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시간관계상 다음 주에 살펴보도록 하자. 

 

6. 나오며

  성도들 중에는 영적인 싸움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아니다. 우리는 지금 마귀와 악령들 그리고 귀신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고로 우리들 중에 누구든지 천사가 어떤 존재인지를 잘 모르고, 마귀와 타락한 천사의 공격전술을 잘 모르고 있면 악한 영들과 싸움에서 승리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놈들은 오늘도 우는 사자처럼 두루 돌아다니며 집어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놈들은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놈들의 나이가 벌써 6천살이 넘었으니 그놈들은 우리 인간의 약점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집안 사람들은 이렇게 공격하면 쉽게 무너뜨릴 수 있고, 저 집안 사람들을 저렇게 공격하면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약점을 빨리 간파하고 보완해야 한다. 그리고 적의 공격에 맞설 수 있는 방어용 무기들을 하나씩 하나씩 잘 장만해야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공격용 무기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여 적을 공격할 수 있어야 한다. 방어만 해서는 승리하기가 어렵다. 이는 적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격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완전군장을 꾸려야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 영 안에 여섯 가지를 다 갖추고 있어야 한다. 즉 "진리, 의, 평안, 믿음, 구원, 그영"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며, 그러한 것들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모르면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장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결국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는 자만 천국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3월 10일(수)

정병진목사

 

 

그리스도와 교회간의 유비는 아담과 하와, 남편과 아내간에게도 있다. 예를 들어, 하와는 흙이 아니라 아담의 살과 뼈 곧 아담의 몸으로 건축된 것이다. 그런데 아담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하와는 교회의 모형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정의한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교회에 담긴 영적인 비밀과 더불어 그리스도인의 결혼관 과 효도관 및 자녀교육관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2021-02-24(수) 수요기도회 제목: 에베소서강해(16)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과 부모자식 및 상전과 종들 간에 지켜야 할 윤리(엡5:31~6:9)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EIHud0FsvDU [혹은 https://tv.naver.com/v/18667872 ]

 

1. 들어가며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르게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가? 이때 특별히 신경써야 할 중요한 3가지 관계가 있다. 그것은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꼭 접하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3가지 만남이 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서를 쓰고 있던 당시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상전과 종들간의 관계 그리고 부부간의 관계가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것을 중에 부부간의 올바른 관계를 살펴보았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있어서 남편은 아내에게 그리고 아내는 남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살펴본 것이다. 오늘은 이 말씀에 이어서, 부부간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모형론적인 예표로서, 아담과 하와의 관계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도 살펴볼 것이다. 특히 결혼을 앞둔 선남선녀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에게 과연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부모는 자려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까지 살펴보고자 한다. 내가 살아가야 할 관계들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살아가는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2.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윤리는 어떠 해야 하는가?

  우리는 지난 주에 가정의 시작인 부부간의 도리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음을 위해서 그것을 간단히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아내들은 자기의 남편에게 복종하되 교회가 주님에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영적인 질서로 볼 때,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엡5:22~23). 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이것을 좀 더 풀어서 보면, 첫째는 여자(하와)가 남자(아담)로부터 나왔기 때문이요(고전11:3,8), 둘째는 여자(하와)를 지은 목적이 남자(아담)를 돕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며(로전11:9), 셋째는 여자가 꾀임을 받아 먼저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딤전2:13~14). 그리고 사도바울은 남편들에게 권면하기를, 자기의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였다(엡5:25). 왜냐하면 아내는 남편의 몸 곧 자기 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엡5:28~29). 그 누구라도자기의 몸을 사랑하지 아니할 사람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기의 몸을 내 준 것 같아야 한다고 했다(엡5:25). 그리고 여자는 더 연약한 그릇인만큼 돌볼 때에도 아낌없는 배려를 해주어야 하며,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했다(엡5:29).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교회를 위해 내주었던 것인가? 사도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자기 옆에 세워 파트너로 삼되,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전혀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남편과 아내의 바른 관계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담과 하와의 관계와 같다는 하였다. 살펴 보니, 하와는 아담의 잠듦에서 나왔었다. 이는 아담의 죽음을 통하여 하와가 건축된 것처럼,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교회가 건축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담을 만든 육체의 재료가 흙이었다면, 하와를 건축한 재료는 아담의 살과 뼈 곧 아담의 몸이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몸이기에,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여기에 근거하여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라고 정의하였던 것이다(엡1:23, 골1:18). 

 

3.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인 부부의 결혼관은 어떤 것인가?

  이어서 사도바울은 부부의 관계의 시작 곧 결혼관에 대해 언급하였다. 어떻게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는지를 아담과 하와의 만남을 통해서 설명한 것이다. 그것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서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엡5:31). 그런데 이 말씀은 아담과 하와가 부부가 되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 창세기 2:24의 말씀을 다시 인용한 것이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이것을 말하고 있다"고 하였다(엡5:32). 다시 말해,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한 몸이 되어 가정을 이루게 되었는지를 잘 살펴보면, 결혼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는 어떻게 해서 한 몸이 되어 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는가? 그것은 에베소서 5:31에 그 답이 들어있다. 우선 이 말씀을 헬라어 원문으로 번역해보자. "이것에 상응하여, 사람(남자)이 장차 그 부모를 남겨두어야(καταλείπω) 한다. 그리고 그는 장차 자신의 아내를 향하여 달라붙어야(προσκολλάω) 한다. 그리고 그 둘이 장차 한 육체 안으로 있어야 한다(엡5:31,헬라어직역)" 이 말씀을 보니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하기 위해서는 첫째, 남자가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헬라어원문을 보면, 이때 남자는 자기의 부모를 내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남겨두는(~의 뒤에 남겨두다)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새로운 가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남자가 독립해야 할 것은 비단 경제적인 독립만 가리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불어 의지적인 독립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결혼을 했으면서도 자꾸 부모님을 의지하고 결정을 엄마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고 아내에게 묻지 않는다면 부모로부터 독립한 것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결혼관계가 깨질 수가 있다. 둘째는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향하여 달라붙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쓰인 헬라어는 달라붙다는 단어는 '프로스콜라오'라는 동사(~을 향하여 부착하다, 달라 붙다, 결합하다, 합일하다)로서, 아내를 향하여 남자가 달라붙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 말은 남자와 여자간의 육체적인 성적인 결합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한 남자가 한 아내에게 달라붙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셋째로, 두 사람은 하나의 육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 결혼이란 성적인 결합과 정신적인 결합과 더불어 영적인 결합까지 같이 가는 것이다. 이것들 중에 하나라도 성립되지 않으면 결혼생활은 유지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현대의 삶에서 성경말씀대로만 살아야 한다고 못 박을 수는 없을 수 있겠지만, 성경이 말하는 원칙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위기상황에 부딪혔을 때 그 문제의 원점에서 검토해보고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자녀의 성경적인 효도관은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자녀는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이 된 자녀라면 그는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한다면, 응당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가 있으니 그것을 사람들은 "십계명"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십계명에 보면, 자녀가 부모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명으로 정리되어 있다. 그것은 총10가지다. 그런데 이것을 중에서 인간계명으로써 첫번째 계명은 바로 "부모공경"의 다섯째계명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부모에게 해야 할 것을 2가지로 언급한다. 하나는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엡6:1). 그리고 또 하나는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것이다(엡6:2). 어찌 보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실은 둘은 다른 것이다. 순종하는 것은 말이나 행동에 관련된 것라면, 공경하는 것은 태도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순종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헬라어로 "아포쿠오(ὑπακούω)"라는 동사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아포(~아래에서)"와 "아쿠오(듣다)"가 합쳐진 말로서, "아래에서 듣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낮은 자세로 듣고 부모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공경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티마오(τιμάω)"라는 동사가 사용되고 있다. 이 단어는 "티메"라는 명사에서 나온 말이다. 참고로 "티메"라는 단어는 "값, 가격, 가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부모을 매우 가치있는 존재로 여긴다는 뜻이다. 자기를 낳아준 생명의 원천을 매우 값지게 여기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경의 문제는 바로 태도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십계명을 살펴보면,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만 나올 뿐이다. 더욱이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식이 있다면 그를 죽이라고까지 명령하고 있다(신21:18~21). 이 말씀은 우리가 혹시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할 수는 있어도,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은 안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 우리가 살다보면, 부모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할 수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회 가지 마라. 예수 믿지 마라" 등등의 명령들은 여기에 속한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부모에게 순종하되, "주 안에서" 순종하라고 권면했던 것이다(엡6:1). 이는 주님의 말씀과 부모의 명령이 충돌될 때에는, 우선순위를 주님의 말씀에 두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혹 믿는 자녀가 있는데 믿지 않는 부모의 명령에 거역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자식은 결단코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부모공경에 대한 축복이 있는가? 있다. 사도바울은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2가지나 된다고 말했다. 첫째는, "네가 잘 될 것이다"라고 했다. 이는 이 땅에서 형통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땅 위에서 장수할 것이다"고 했다. 이것 역시 효도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내려지는데 그것은 수를 다하는 축보, 곧 장수의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십계명에서 약속하고 있는 바일 뿐만 아니라 사도바울도 다시 확증해주고 있는 말씀이다(출20:12). 

 

5. 부모의 올바른 자녀교육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아버지들은 어떻게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가? 사도바울은 2가지를 권면하고 있다. 하나는 자녀를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엡6:4a). 이것은 부모가 자녀를 불공평하게 대하거나, 편애할 때 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자녀가 생각할 때에도 항상 부모는 자녀에게 합당하게 처우해야 한다. 또 하나는 양육할 때에 가르치는 모든 지침이 주님의 훈련과 권고 안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엡6:4b). 그렇다. 부모라고 부모에게 힘이 있거나 돈을 가지고고 있다고 해서 자녀를 함부로 대해서는 아니 된다. 부모라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를 잘 돌보아주고, 양육하고 가르치고 훈계해야 하는 것이다. 

 

6. 나오며

  가정은 부부로부터 시작된다(창2:24). 또한 그렇게 시작된 가정은 사실 강력하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두 사람이라 할지라도 만나서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면, 어떤 세찬 비바람도 다 막아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고로 남자는 그 누구의 지지를 받지 않는다 할지라도 아내의 지지만 받게 된다면 백배의 힘을 낼 수가 있다. 그만큼 아내의 지원과 격려가 남편에게 큰 힘이 되는 것이다. 남편을 머리로 생각하는 아내의 기지가 정말 필요한 대목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그러한 현숙한 아내를 둔 남편은 그녀를 더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 그런 아내를 위하여 남편은 자기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고 해도 아깝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하여 시작된 가정에는 필히 새로운 생명이 출현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 그때 부모는 자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마디로, 잘 양육해야 한다. 자녀가 어릴 때에 받은 상처는 아이에게 더 깊게 패이고 오래 가기 때문에 아이가 어릴 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지도할 때에도 주의 말씀을 가지고 훈육하고 지도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자랄 때에 울분을 품지 않게 해 주어야 한다. 부당한 대우를 하지 말고, 편애하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다. 혹시 그러한 일이 있었음이 조금이라도 드러나게 된다면, 부모라 할지라도 빨리 시인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반대로 자녀는 부모의 말씀에 항상 순종해야 하며, 부모를 대할 때에는 언제나 그분을 가치있고 존귀한 분으로 존중해 드려야 한다. 그것이 마땅한 바요 합당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부모는 나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요,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음주에는 상전과 종들간의 문제와 더불어 영적 전쟁의 필수적인 아이템인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2월 24일(수)

정병진목사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지만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 사람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자신의 배우자다. 배우자는 촌수로 계산하면 1촌이 아니다. 또한 2촌도 되지 못한다. 그러나 둘은 일평생 같이 살아야 할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조심스럽게 그리고 소중하게 대해야 할 사람은 곧 배우자인 것이다. 특별히 아담과 하와의 예표를 통해 보여준 남편과 아내의 위치를 우리도 잘 지켜야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위치와도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남편과 아내가 서로 지켜야 할 도리를 잘 지키는 것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여기에 그 해답이 있다.

2021-02-17(수) 수요기도회
제목:에베소서강해(15) 남편과 아내가 서로 지켜야 할 도리(엡5:22~3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gpIZPa0kAok [혹은 https://tv.naver.com/v/18547984 ]

 

1. 들어가며

  사도바울 당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중에 가장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혹 있다면 그들은 아마도 세 종류의 사람들일 것이라고 했다. 사도바울은 그들을 남편과 아내, 자녀와 부모, 종들과 상전들이라고 했다. 그중에서 사도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부부 사이에도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일이며,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며,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리고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복종하는 것이며 또한 사랑하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그리스도인들끼리의 바른 삶에 대한 교훈 가운데,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이 말씀을 통하여 아무쪼록 자신이 남편과 아내의 위치에 있다면,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아내는 남편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남편들도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2. 에베소서 5:22~33의 위치는?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그리스도인들끼지 지켜야 할 도리 가운데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런데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의 바른 삶에 대한 교훈을 말씀하고 있는 에베소서 4:17~5:20의 말씀의 다음에 나오는 말씀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의 상호복종(엡5:21) 가운데 첫번째 부분에 해당한다. 사실 사도바울은 이 말씀 바로 직전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본 받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했으며(엡5:1~14), 성도로서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권고를 한 바 있다(엡5:15~20). 그리고 이어서 부부사이의 상호복종에 관한 메시지를 전했다. 그것은 크게 전반부로서 아내를 향하여 주는 권면의 말씀이 있고(엡5:2~24), 남편을 향하여 주는 권면의 말씀이 있다(엡5:25~30). 그것을 한 마디로 딱 요약하라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이며,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대체 왜 남편과 아내는 배우자에 대한 본분을 다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할 때에 배우자에 대한 자신의 도리를 잘 감당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3.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할 3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사도바울은 아내가 자기의 남편을 대할 때에는 자발적으로 복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복종하다'는 말은 "~아래에 두다. ~의 하위에 놓다"라는 뜻의 헬라어동사 "휘포타쏘"의 분사명령형 현재 수동태 문장이다. 보통 수동태 문장은 번역하기가 조금 까다롭다. 그래서 수동태 문장은 보통 긍정문으로 바꾸어서 번역하곤 하는데, 그때에는 보통 "자발적으로 ~하다"라고 번역한다. 그러므로 엡5:22의 말씀을 이 원칙에 따라 번역해보면 이렇게 할 수 있다. "아내들이여, 자기자신들의 남편들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라(엡5:22)" 그렇다. 아내들은 자기의 남편들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아내들은 자기의 남편이 아닌 다른 남편에게는 복종하면서도 정작 자기의 남편에게는 군림하려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되는 행동이다. 다른 사람은 다 남편을 달리 대해도 아내만큼은 남편을 세워주어야 할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내는 자기의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가? 사도바울은 오늘 말씀 중에서 엡5:23~24을 통해 그 이유에 대답을 하고 한다. 그것은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남편은 아내가 머리이기 때문이다(엡5:23,고전11:3). 이것은 마치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이신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이것을 좀 늘려서 표현하면 3가지인데, 그 이유들은 고린도전서 11장과 ,디모데전서 2장에 나오기도 한다. 즉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할 이유는 3가지가 있는 것이다. 첫째, 창조질서상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고전11:8). 즉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둘째, 남자가 여자를 위해 지음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여자의 창조의 목적이 남자를 위한 조력자로서 처음부터 건축되었던 것이다(고전11:9). 셋째, 여자가 동산에 찾아온 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으로 먼저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다(고전11:10, 딤전2:11).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여자들은 항상 권위 아래에 있다는 표시로서 기도할 때면 머리에 수건을 쓰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고전11:4~5)

고전11:8-10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9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10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딤전2: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4. 남편이 자기 아내를 사랑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남편은 자기의 아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아내가 복종한다고 아내 위에 군림해야 하는가? 결코 아니다. 사도바울은 남편이 아내에게 할 것은 딱 한 가지라고 했다. 그것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사랑하다"는 동사는 "아가파오"다. 아가파오는 이성간의 '에로스'의 사랑도 아니고, 친구간의 '필리아' 사랑도 아니며,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아가페' 사랑을 가리킨다. 아가페사랑은 조건없는 희생적인 사랑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나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사랑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왜 남편은 자기의 아내를 사랑해야 하는가? 그것은 아내는 자신의 몸이기 때문이다(엡5:28~29). 왜 그런가? 하와가 아담의 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남편이 자기의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자기의 몸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의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편은 자기의 아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사도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했던 것 같이 사랑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 방법을 3가지 제시하였다. 첫째, 자기의 몸을 아내를 위해 내어주듯이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엡5:25).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께서 장차 탄생할 교회를 위해 자기의 몸을 내어주셨기 때문이다. 둘째, 자기의 몸을 보살피듯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엡5:29a). 자신의 아내를 연약한 그릇으로 알고 적절한 양분으로 공급하듯 아내를 애정깊은 관심과 돌봄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자기의 몸을 소중히 여기듯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엡5:29b).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소중히 여기시 나머지 하찮은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웠듯이 아내를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들 때까지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아내에게서 결점이나 흠이 없고, 주름이 없도록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고, 말씀으로 무장하여 흠없는 자로 세워야 하는 것이다(엡5:26~27). 

 

5. 나오며

  그리스도인들끼리 가져야 할 바른 자세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피차 경외함으로 섬겨주고 사랑하는 것이다. 특별히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이 자신의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이는 여자의 출생이 남자로부터 나왔기 때문이요, 여자의 존재목적이 남편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며, 여자가 먼저 죄를 지어 인류에게 고통을 안겨다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편은 복종하는 아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아내 위에 늘 군림하면서 아내를 종처럼 부려야 하는가? 결코 아니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행한 것처럼 그렇게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내를 위하여 자기의 몸을 내어주며, 아내를 끝까지 돌보아주며, 아내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으며 살아왔는가? 과연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듯 복종해 왔으며,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듯 사랑해 왔는가? 반성해야 할 점이 참 많아 보인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다 천국에 들어가야 파트너들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2월 17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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