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에 말씀하고 있는 신부는 대체 어떤 존재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구약시대의 신부관과 과연 어떤 차이가 있으며 어떤 변화가 감지되는가? 사실 성경은 통전적으로 보아야 한다. 각기 성령의 감동을 받은 자들이 기록한 성경이기 때문에 한 권의 책 안에 모든 비밀이 다 들어 있지 않다. 또한 각 성경책에는 비유적인 표현의 말씀도 있고 감추어진 것도 더러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를 제대로 보아야 한다. 여기, 신약시대의 신부관이 구약시대와 어떻게 달라졌으며 또한 변화되었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말씀이 있다. 이 말씀만이라도 몇 번이고 듣는다면 신부관이 확실히 정립될 것이다.

2021-11-07(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신부(52)[최종회] 신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신부관은 어떤 것인가?(계14:3~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FZD-D6V_P-U  [혹은 https://tv.naver.com/v/234285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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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신구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관은 어떤 것인가? 우리는 지난 쉰 한 번의 시간을 통하여, 신구약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관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신부관과 신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신부관은 거의 동일하였다. 둘 다 그리스도의 신부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격이나 요건이 필요한지 그리고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신부들에게 주어지는 신분의 차이는 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누가 천국에 못들어가는지까지 거의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표현방식만 약간 다를 뿐이었다. 특히 구약은 아직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의 상황이라 모형론적으로 말씀하고 있다고 한다면, 신약은 실제적인 면을 부각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구약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신부관을 신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신부관과 견주어 비교해 봄으로서, 신약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신부관에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천국에 들어간 신부들 가운데, 24장로와 144,000명의 정체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신구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란 어떤 존재를 지칭하는 것인가?

  신구약성경이 공히 말씀하고 있는 신부란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를 지칭하는 것이다. 여기서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은 셋째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레 성 안에 들어가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신구약성경에서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이들을 가리켜 '이기는 자들'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기는 자들의 예표가 성경에 나오는데, 구약에서는 '야곱'이라고 할 수 있으며(창32:28), 신약에서는 소아시아의 일곱교회 안에 있는 이기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계2~3장). 결국에 이기는 자가 되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기는 자'라는 말에서 '이긴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죄와 죽음과 마귀의 세력을 이기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가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죄들의 사함을 받아야 하고, 사망으로부터 벗어나 생명 안으로 들어가야 하며, 마귀와 그의 부하들인 귀신들보다 우세하여 영적 싸움에서 승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았다고 할지라도 그가 결국에 이기는 자가 되지 않으면 그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리고 성밖으로 쫓겨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다 신부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3. 구약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신부들의 예표들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구약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신부들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가? 구약성경에 나타나 있는 가장 완벽한 신부가 있다면 그녀는 아가서에 등장하는 '술람미 여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가서강해' 52강의 메시지를 참조하기 바란다). 그리고 예표론적으로 볼 때에는 첫 사람 아담의 짝이었던 '하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회개하지 않아서 신부의 대열에서 떨어진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두번째와 세번째와 네번째는 족장들의 아내들이다. 그들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이삭의 아내 리브가, 야곱이 아내들로서 레아와 라헬, 실바와 빌하가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신부의 예표가 술람미 여인이라면, 이방인 중에서 신부의 예표가 있다면 그녀는 룻기서에 나오는 이방사람 '룻'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까지 구약성경에 등장하고 있는 신부들의 예표들을 통하여 왜 하나님께서 신부를 창조하려고 하셨는지, 그리고 어떤 조건을 가져야 신부의 대열에 동참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같은 신부라 할지라도 천국에서 신부의 신분이 각각 다르다는 것도 살펴보았다(아6:8~9)(이 부분에 대해서는 신부씨리즈 설교들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그중에서 몇 가지만 정리하자면, 인간은 그리스도의 짝된 배필 곧 신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부가 신랑으로 예표된 아담의 말을 듣지 않고 뱀의 말을 들어 그때부터 인간은 신부의 대열에서 멀어지고 말았는데, 장차 신랑이 되실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댓가를 지불하여 사람들을 사심으로 일방적으로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건져올리셨는데, 이러한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는 신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땅의 신부가 곧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광야같은 교회생활을 통해서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만약 이 때에 여러가지 죄들을 저지르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는 결국 천국에 못들어간다는 것이 광야의 교훈이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 신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왕권신부, 왕후신부, 비빈신부, 시녀신부와 평민으로 나뉘어진다는 것이다. 

 

4. 신약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신부관은 구약성경과 어떤 변화와 강조가 나타나는가?

  그런데 이러한 구약의 신부관은 신약시대에 들어오면서 약간 온도의 변화가 감지된다. 그것은 구약시대에는 선명하지 드러나지 않았던 신부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회개'라는 것이다. 처음 예수믿을 때에 회심을 통해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여 거듭난 성도라면, 그 사람은 신부로서 첫 출발을 시작한 사람에 해당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신부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죄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그럼, 어떤 사람은 질문할 것이다. 이미 예수께서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골고다에서 인류의 죄를 다 처리하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그건 맞는 말이다. 그때 예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를 없애는 제사 곧 속죄의 제사를 드린 것은 분명히 맞다. 하지만 그때 흘린 예수의 속죄의 피가 개인에게 뿌려져 개인이 지은 죄를 씻겨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백이라는 회개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성경말씀이다(요일1:9). 그러므로 초림의 예수님에서부터 사도들의 외침 그리고 부활승천하셨던 예수님의 외침을 들어보면 그 핵심은 전부다 회개하라는 것이다. 회개만 하면 죄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목놓아 외치는 것이다. 그러한 자들로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면서 예수님을 처음으로 이 세상에 소개했던 세례요한으로부터(마3:2), 그리고 초림의 예수님의 외침(마4:17), 사도 베드로의 외침(행2:38), 사도 바울의 외침(행20:21), 사도 요한의 외침(요일1:9)에 이르기까지 핵심 선포 주제는 다 '회개'였던 것이다. 

 

5.  결국에 하늘의 기업을 차지하지 못한 신부들에 관한 신구약성경에 나오는 사례와 그 비유는 무엇인가?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할 것 없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에까지 나왔으나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아니 그러한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여기 언급된 '애굽'이란 흑암의 권세가 역사하는 사탄 마귀의 영역을 가리킨다. 즉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그 사람은 즉시 음부의 권세로부터 벗어나며 또한 둘째 사망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유월절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광야에 나왔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광야에 나왔으나 애굽을 동경하면서 하나님께 불평불만을 가졌던 자들이나, 광야에 나왔어도 여전히 송아지 우상을 숭배했던 자들이나,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대하여 불신을 가진 자나, 이방여인들과 교제하기 위해 음행의 죄를 범한 자들은 다 광야에서 엎드려져 죽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새 예루살렘 성밖으로 쫓겨나는 일인 것이다. 이것이 실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칭의를 받아 구원의 여정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곧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그것은 광야생활에서 이기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요단강 건너가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육신이 죽어서 천국에 들어가려면 우리는 결단코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에 구원의 여정에 들어온 자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다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해주셨는가? 그것은 마태복음 25장의 3가지 천국비유에 나온다. 예수님을 믿었던 자라 할지라도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첫째로 신랑을 맞으러 나간 처녀이기는 하였지만 여분의 기름이 없어 막상 혼인잔체 들어가려는 순간에 기름이 떨어진 '미련한 다섯 처녀'가 있다. 이들은 성밖에 다 남겨지고 말았다. 둘째로, 주인되신 예수님께 자기의 분량을 따라 달란트를 받았으나 악하고 게을러서 주인의 뜻을 행하지 않았던 '한 달랄트 받은 종'이 있다. 이 종은 바깥 어두운데로 쫓겨나게 말았다. 그 종은 거기에서 슬피울며 이를 갈 것이라고 하였다. 셋째로, 외식하는 자들이 되어 생색내는 일에는 아주 열심을 내었지만, 자기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현장이나 사람들에게는 냉대하며 살았던 자들이 있다. 이들은 결국 '영영한 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것이 천국에 못들어가는 신약성도들의 예이다. 

 

6. 신구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 위한 3가지 조건은 무엇인가?

  결국 신구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신부는 어떤 신부여야 하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회개하여 자신을 정결케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예수님을 믿었던 것 때문에 현재 자신이 짓고 있는 죄들이나 앞으로 지을 죄들이 다 용서받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한 죄들은 다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에 대한 지조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정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이 이랬다 저랬다 해서는 까딱 잘못하다간 핍박과 순교의 현장에서 주님을 부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목숨이 끝나는 그날까지 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정절을 꼭 지켜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로, 천국에 들어가서 우리가 누리고 살 것을 이 땅에서 잘 단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나 자신을 향하여 정해 놓으신 주님의 뜻을 깨달아 알고 실천해야 하며, 주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상이 결국 하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천국에서 우리가 누릴 상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러한 상에는 첫째로, 행위에 따른 신분(왕권신부, 왕후신부, 비빈신부, 시녀신부, 평민)이 있고, 둘째로, 천국집이 있으며, 셋째로, 왕노릇할 기업과 종들이 있고, 넷째로, 머리에 쓸 면류관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을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천국에서 영원토록 누릴 우리의 미래를 잘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7. 신부들 중에서 24장로와 144,000명은 대체 어떤 신부를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24장로들과 144,000명은 누구를 지칭하는 표현인가?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이미 천국에는 24장로가 있었다. 사도요한은 그때 그들을 보았고 그들과 대화도 나누었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24장로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24장로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천국에 가서 그 사람들이 누군지를 확인해보지 않는 한 사실상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는 24장로의 이름이 한 명도 거론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구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힌트와 직접 천국에 올라가서 그것을 보고 온 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24장로에는 구약성도가 있고 신약성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보통 성도들이 생각할 때에는 24장로는 구약성도에서 12명이, 신약성도에서 12명이 참여하고 있지 아니할까 추측하기도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구약의 성도가 20명이요 신약의 성도가 4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은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지금 현재 24장로들이 주님 재림시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름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언급할 24장로들의 이름은그저 참고만 하기를 바라며, 그들이 왜 24장로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자신의 영적 성장에 유익이 될 수도 있음을 말씀드린다. 그렇다면, 24장로들은 누군가? 그 이름을 구약시대에부터 역사적 순서를 따라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구약의 성도에는 1)아담, 2)아벨, 3)에녹, 4)노아, 5)아브라함, 6)사라, 7)욥, 8)이삭, 9)야곱,10)유다, 11)요셉, 12)모세, 13)아론, 14)여호수아, 15)다윗, 16)밧세바, 17)엘리야, 18)엘리사, 19)이사야, 20)에스겔이 있으며, 신약의 성도에는 21)세례요한 22)베드로 23)바울 24)스데반이 있다.

  그렇다면, 24장로들이 천국에서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반차를 따라 자기가 우두머리가 되어 예배를 집례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천국에서 예배드릴 때에는 24 로테이션에 따라 24장로들의 한 명이 자기에게 속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올라와서 예배를 집례하는 것이다. 한 반차마다 다 우두머리로서 24장로들이 있으며, 하나의 반차 안에는 총 70줄의 계급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보좌에 앉아 있는데, 한 줄에는 A.B.C.D.E.라인이 있다는 것이 천국의 실제 모습이다. 그런데 오직 70줄에 있는 자들에게만 보좌가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한 줄에도 5개 라인이 있으니, 24반차의 70줄 안에 들어있는 신부의 숫자는 총 144,000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4장을 보면, 구원받은 성도들 가운데 오직 시온산에 서 있는 144,000명만이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144,000명만이 제사장이 되어 예배를 집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 천국에는 24반차별로 마을들이 하나님의 보좌를 빙둘러 있다. 그리고 그 마을들 이름이 바로 24장로의 이름인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가 들어갈 마을은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가? 그것은 24장로가 이 땅에 살았던 삶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일평생 순종하며 군소리 하나 없이 산 사람은 '이삭'마을에 들어갈 것이고, 처음으로 예수님을 자기 가문에 들여와서 가문을 복음화시킨 사람은 '아브라함' 마을에 들어갈 것이다. 저처럼 일편단심 회개를 외치는 사람은 '세례요한'의 마을에 들어갈 것이며, 순교했던 자들은 '스데반' 마을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70줄 가운데 1~3번줄은 Major King들이 앉아 있으며, 4~6번줄은 Minor King들이 앉아있는데, 참고로 1~3번줄에는 여자들은 하나도 없고, 4번줄부터 있다는 것이다(나중에 천국에 올라가서 확인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사도 바울도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고 말했던 것이다(고전11:3). 이는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자들이 교회에 때에는 머리에다가 너울을 쓰든지 아니면 긴 머리를 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하라고 한 것이다(고전11:8~10).

 

8. 나오며

  참으로 긴 긴시간을 흘러갔다. 우리는 그간 신부가 누구며 어떻게 신부가 되고 신부의 반열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부지런히 달려왔다. 우리는 오늘까지 52번의 시간을 바른 신부관을 얻기 위해 달려온 것이다. 그래서 이를 위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말씀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직도 못 찾아낸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말씀이라고 한다면 모두다 살펴보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언젠가 또 다시 시간이 흘러 주님께서 기록된 성경말씀을 조명해주시고 하늘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신다면 이보다 더 정확한 말씀을 나눌 것이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알았다고 만족하기보다는 적게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한 신부가 되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기도와 노력 그리고 땀과 댓가의 지불이 필요하다.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 그를 결코 구원해내지 못할 것이며, 그것이 그를 신부가 되게 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것이 그에게 하늘의 상을 가져다 주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신부가 되기 위한 우리의 기도와 노력, 실천이 필요한 때가 시작된 것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애굽을 떠나왔고 지금 거의가 다 광야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광야의 삶을 잘 보내야 한다. 잘못하면 이미 얻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지만 그것이 잘못된 메뉴얼에 따라서 행하고 있다면, 우리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어느날 허사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의 가르침, 불순물이 들어있지 않는 순전한 가르침을 따라서 우리는 순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댓가를 지불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끝까지 믿음의 지조를 지켜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때로는 금식도 해야 한다. 진리의 말씀을 듣기를 매우 많이 사모해야 한다. 그리고 들었다면 그대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쪼록 한 사람이라도 이 말씀을 듣고 거룩한 신부의 대열에 동참한다면, 그것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그것이 우리 교회와 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신부가 되도록 우리를 깨우쳐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린다. 이는 다 그분이 행하시는 일이요 그분의 주관하에 진행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2021년 11월 07일(주일)

정병진목사

 

 

신부란 대체 누구를 지칭하는 표현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천국에 최종적으로 입성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다 입성할 수 있는가? 성경은 믿음이 없이는 천국에 입성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건 믿음만이 아니었다. 그것을 아는 자는 장차 천국에 신부로서 입성할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그것은 신약의  주의 종들 곧 세례요한과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과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주 예수님께서 직접 그것을 말씀해주셨다. 그것이 바로 구약의 신부상과 신약의 신부상의 중대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2021-11-05(금) 금요기도회

제목: 신부(51) 구약의 신부상과 신약의 신부상의 중대한 변화는 무엇인가?(요한계시록3:3~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M6YHiYGkmxk  [혹은  https://tv.naver.com/v/23427862  ]  

 

1. 들어가며

  우리는 지난 몇 시간에 걸쳐서 구약의 신부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구약시대의 완전한 그리스도의 신부의 예표는 아가서에 나오는 '술람미 여인'이다. 그녀는 고된 노역의 생활을 하다가 솔로몬을 만나 왕의 아내가 됨으로 고된 노역에서 벗어나게 된 여인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는 남편의 임재를 잃어버리고 남편을 찾는 과정에서 기도와 회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왕이 무엇에 마음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정작 자신도 그 일에 동참하게 된다. 그리하여 더 많은 신부들을 산출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이것이 바로 구약에 나타난 완전한 신부의 모습이다('아가서 강해 30강'을 들어보시기를 바란다). 하지만 구약시대에 술람미 여인 말고 그리스도의 신부의 예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러한 신부들은 주로 창세기에 나온다. 그러한 여인들로는 하와, 사라, 리브가, 야곱의 4명의 부인들과 12아들들 그리고 이방 여인 룻이 있다. 그리고 드디어 여자의 후손이자 고엘(구속자)로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다. 그러자 인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신부의 예표들을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신약에 등장하는 신부들로의 변화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신약시대에 출현한 신부상은 구약시대에 나타난 신부상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구약시대의 신부상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비밀을 아는 자들 중에서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2. 구약시대의 신부의 특징은 무엇인가?

  구약시대의 신부상의 전형적인 모습은 서두에서도 밝혔지만 아가서에 나오는 '술람미 여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부상의 예표는 구약성경의 술람미 여인말고 있는가? 있다. 그들은 주로 창세기에 집중하여 있다. 그렇다면 창세기의 신부상이란 어떤 것일까? 우리가 창세기를 읽어 보면 알겠지만 창세기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다섯 종류의 신부의 예표들이 등장한다.

  첫째는 아담의 아내였던 하와이다. 그녀는 아담의 짝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자신의 남편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뱀의 말을 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죄를 지은 여인이었다. 그리하여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결국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 징계를 보면, 하와는 임신과 해산의 고통이 더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또한 남편이 그녀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도 둘째, 셋째, 넷째 신부의 예표는 다 족장들의 아내들인데, 그들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이삭의 아내 리브가, 야곱의 아내들이었던 레아와 라헬, 실바와 빌하이다. 우리는 '사라'의 예를 통하여, 그녀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매우 강했다는 것과 남편을 주인으로 섬김으로 신부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리브가의 경우를 통해서 신부는 기도를 통해서 찾아낼 수 있다는 것과 신부는 남편을 머리로 아는 존재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야곱의 네 명의 아내를 통하여서는, 아내라 할지라도 신분이 다 똑같지 않고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배웠고, 아내들을 통해 난 자식들 12명의 사례를 통하여,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신부가 가려진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비록 이방 여인이었지만 거룩한 신부의 대열에 동참했던 자가 있다는 것도 배웠으니, 그녀는 나오미의 며느리 룻이었다. 그녀는 과부였지만 자신의 남편이 되어 준 보아스를 만나 신부의 대열에 합류한다.

  이상으로 우리는 구약시대의 신부의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웠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구약시대의 신부의 조건은 크게 두 가지 것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하나는 죄를 지으면 안 된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 앞에 충성되이 자신의 직무를 잘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신부가 되려면 죄를 지으면 안 되는가? 그러한 사례에는 장자의 축복을 경홀히 여겼던 에서의 사례가 있고, 아버지의 첩인 빌하와 간통죄를 저지름으로 왕권과 제사장권과 땅의 축복을 잃어버린 르우벤의 사례가 있었다. 그리고 우상 숭배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야곱의 둘째부인이었던 라헬의 경우를 통해 살펴보았다. 이는 그녀가 남편을 따라 고향과 아버지의 집을 떠날 때 그만 아버지의 가신(우상)인 드라빔을 훔쳐서 나오는 바람에 결국 노중에서 사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약속의 땅인 막벨라 굴에 묻히지 못했다. 그렇다. 신부라 할지라도 죄를 지으면 신부의 대열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것과 천국에서 누리게 될 신분이 강등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반대되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나 맡은 일에 충성함으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기는 자가 되게 해 주시고, 천국에서 누릴 신부의 신분을 상승시켜 주는 사례가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먼저, 이기는 자의 예표를 보자. 그는 바로 '야곱'의 경우다. 야곱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얍복강에서의 기도도 혼신을 다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부러 져 주셨다. 그리고 그를 이기는 자라 불러 주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거룩한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 자는 반드시 기도의 훈련을 잘 쌓고 기도로 어둠의 세력을 뚫는 신부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맡겨진 일이나 모든 환경 속에서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충성하여 계급이 올라간 경우도 있으니, 그들의 예로는 바로 레아의 아들 '유다'와 라헬의 아들' 요셉'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 중에 유다는 타고난 복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야곱의 넷째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왕중의 왕이신 메시야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가족과 형제가 위기의 순간에 몰렸을 때에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음으로 그는 왕권신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똑같은 왕권신부가 된 자이지만 조금 다른 자가 있으니 그는 '요셉'이다. 왜냐하면 요셉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하늘에서 사명을 받고 이 땅에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늘의 사명에 충실했다. 그래서 그는 꿈의 계시대로 절을 받는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룻이라는 여인은 이방 여인이어서 결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 규정을 뛰어넘어 왕비가 되었다. 그녀는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말씀의 계명에 순종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만이 살아 계신 참신이라는 알고 그분을 붙듦으로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이 구약에 나타난 신부들의 전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3. 신약시대에 신부상은 구약시대와는 어떻게 달라지기 시작했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구약시대에 살았더라면 우리 중 거의 대부분은 아마도 신부의 대열에 참여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의 경우, 신부가 되기에 합당한 조건들을 총족시키기에는 우리의 삶과 신앙이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의 시대에 태어난 자들로서, 너무나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나를 24시간 깨우쳐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보혜사 성령께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라고 한다면 스스로 자신의 입과 생각과 행동을 통제할 수 있어야 신부가 될 수 있었던 것을 지금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신부가 될 수 있는 경륜상 더욱더 복받는 세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신약시대에는 우리 성도들이 받아야 할 복이 이 땅에 있는 복이 아니라 하늘에 간직된 신령한 복이라는 것을 그냥 알 수 있는 시대에 살게 되었으니, 이것 또한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의 신령한 복이란 한 마디로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 

 

4. 신약시대에 이기는 신부가 되는 데에 가장 중요한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

  신약시대에는 천국에 들어가는 신부를 일컬어 '이기는 자(우세하는 자)'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신약의 이기는 신부가 되기 위해 제일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회개'라는 것이다. 회개하기만 하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에 이기는 자들은 대체 누구이며,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선포했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자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하였던 세례 요한의 경우 그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는 바로 '회개(메타노이아)'였다. 그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3:2)"고 외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회개하는 자만이 천국을 가져오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회개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가는 최종적인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막1:4). 

마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막1: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둘째, 이제 공생애를 첫 시작하는 예수님께서도 제일 중요하게 여긴 것이 역시 '회개'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에 제일 처음으로 선포하신 말씀 역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생애를 다 마치고 승천하기 직전에도 주님께서는 회개에 대한 증인이 될 것을 제자들에게 부탁하셨다(눅24:47~48)

눅24:47-48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셋째, 예수님의 12명의 제자들 가운데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가 오순절날 성령을 받은 이후, 방언을 듣고 물려준 자들에게 맨 처음으로 말씀을 선포할 때에 그가 외친 말씀의 핵심은 회개해야 성령받고 구원받는다는 말이었다(행2:38). 그리고 그가 순교하기 전에 남긴 말씀도 역시 주님은 회개를 원하신다는 것이었다(벧후3:9). 

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벧후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넷째, 사도 바울의 바톤을 이어받아 이방인의 복음 전파에 힘썼던 사도 바울의 경우에도 가장 중요한 선포의 주제는 회개였다. 그가 각 성에 가서 외쳤던 말씀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행20:20-21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다섯째, 사도 요한 역시 예수님의 구속으로 인하여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준비가 다 되어 있지만 그것이 효력있게 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지은 죄를 그냥 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신의 입술로 자백해서 용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요일1:9). 회개없이는 지은 죄가 용서되지 않기 때문이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섯째, 무엇보다도 승천하신 주 예수께서 A.D.95년경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는 사도 요한을 불러 정말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 역시 그 중심 주제가 회개였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때 요한에게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 편지를 써 보내라고 하셨는데, 칭찬만 들었던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를 제외하고는 전부 다 회개해야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계2:5[에베소교회]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2:16[버가모교회]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계2:21-22[두아디라교회]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계3:3-4[사데교회]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계3:18-19[라오디게아교회]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끝에 가서도 예수님께서 정말 간절히 바라는 것은 자기의 더럽혀진 겉옷(두루마기)을 빨아서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들어올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22:14).

계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모든 하나님의 사역자들과 우리 주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회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죄를 회개했느냐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회개하면 새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가는 자만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고  하셨으니(계21:2,9), 신약시대에 최대의 신부의 관건은 회개에 있었던 것이다. 

 

5. 어떻게 하면 더럽혀진 자신의 옷을 희게 할 수 있는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결국 흰옷을 입은 자가 이기는 자인 것을 알 수 있고, 이기는 자가 될 때에 새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계3:4~5, 4:4, 6:11, 7:13~14, 19:8, 19:14, 22:14). 그러면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입혀진 흰옷은 어떻게 더럽혀지는가? 그것은 죄를 지을 때다(계22:15). 십계명을 어기면 옷이 더럽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옷을 씻어서 희게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더럽혀진 옷을 희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우리를 위해 친히 고엘(구속자)로 오셔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피뿐이다.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 양의 보배로운 피만이 사람이 지은 죄를 깨끗이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피가 나의 더럽혀진 옷을 씻게 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그것은 우리가 지은 죄를 자백하는 것이다(요일1:9). 그때에 어린 양의 피가 우리의 더럽혀진 옷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계7:13~1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것은 수천 번을 강조해도 과하지가 않는 것이다. 

 

6. 나오며

  회개는 백 번 천 번을 외쳐도 부족함이 없는 말이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결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결국 그 영혼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신앙생활의 최종적인 목표는 우리가 새 예루살렘 성 곧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정말 달라지고 확연히 드러난 사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회개하면 지은 죄를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세지인 것이다.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부지런하며 하나님의 왕국 건설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것은 차후의 문제다. 그리고 이것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우리의 상급과 신분을 결정하는 요소인 것이지 그것 자체가 천국에 들어가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하든지 새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죄를 해결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었어도 지은 죄로 인하여 자신의 옷이 더럽혀져 있는 자는 결국 그 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밖으로 쫓겨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하늘에 있는 24장로의 음성을 통하여 말한다. 오직 새 예루살렘 성안에 들어가려면 예수의 피에 자신의 더럽혀진 옷을 빨아 희게 하라고 말이다. 그런데도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그리고 예수 믿을 때에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 다 사함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음을 본다. 죽어 보면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누구의 말을 따라가야 하는지 그때 가 보면 다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영이 겸손한 자는 자신의 죄를 회개할 것이요 그렇지 않은 자는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갈 것이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서 자신의 더럽혀진 옷을 날마다 희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죽는 그 날에 반드시 새 예루살렘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021년 11월 05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신부(50) 신약의 예수께서 신부를 위하여 행하셨던 2가지 일들(요2:1~11)_2021-11-05(금)

https://youtu.be/m7mK2TaxVqA  [혹은  https://tv.naver.com/v/23369569  ]

 

1. 구속사(救贖史)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구속사(Salvation history, 독일어: Heilsgeschichte)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의지가 유효케 되도록 인간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인격적이며 구속적인 사역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가리킨다. 그런데 원래 구속사는 구원의 역사라기보다는 인류를 구속하시는 역사를 가리키는 표현이 맞는 것인데, 어느새 구속의 역사가 아니라 구원의 역사로 바뀌게 되어 버렸다. 다시 말해, 구속사(救贖史)라는 것은 구속자('고엘')이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역사라는 표현이 맞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새부턴가 '구속사'라는 말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구원사역 그중에서 속죄하는 사역만을 일컫는 말로 고착화되어 버렸다. 그러나 원래 구속의 역사는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구속(히브리어:가알=속죄하다, 되사다, 근친의 일을 하다)'이라는 뜻은 인류의 속죄 사역만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속의 하나님은 대체 무슨 일을 하신 것일까? 레위기 25장의 고엘(=구속자, 기업무르는 자)제도를 읽어 보면, 그것은 총 4가지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인류가 죄와 죽음의 세력과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것에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다(레25:25, 벧전3:18, 눅13:16, 호13:14). 둘째, 신랑이 되시어 신부를 취하시는 일이다(신25:5~10, 룻4:5,10, 요3:29). 셋째, 기업을 되찾아(회복시켜) 주는 일이다(레25:25,10, 눅4:18, 마19:29). 넷째, 원수를 보복해 주는(갚아 주시는) 일이다(사63:4, 계6:9).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는 일 곧 속죄사역의 일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분은 신랑이 되어 주시고, 기업을 되찾아 주시며, 원수를 갚아 주시는 일까지 포함하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2. 구속자로서 예수께서 신부를 위하여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인류 특히 죄인들을 위한 속죄양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마20:28, 딤전2:6). 왜냐하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예수께서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속죄 제물 내지는 화목 제물이 되시어 대신 죽으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의 신랑이 되시기 위해 그분은 이 땅에 오셨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신랑이 되기 위하여 친히 당신이 근족(고엘)이 되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속자로서 예수께서 신부를 위하여 행하는 일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크게 2가지다. 그것이 레위기 25장의 고엘 제도에 나오고 아가서에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신약성경 중에서 예수님의 성만찬 제정사에 나온다. 그것은 첫째, 그것은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피를 흘리시는 일이시다. 

마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리고 둘째, 잔치에서 최고의 기쁨을 안겨 주기 위한 포도주가 되는 것이다. 사실 포도주는 2가지 역할을 행한다. 하나는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해 그분이 대신 흘리시는 점없고 흠없는 피를 의미한다. 그런데 하나가 더 있다. 그것은 혼인 잔치집의 사람들에게 최고의 즐거움을 안겨주기 위한 기쁨을 의미한다. 

마26: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내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즉 예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이기는 신부가 되도록 다른 것을 하나 더 준비해놓으셨다. 그것은 그분이 바로 기쁨의 포도주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잔치집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구성품이었기 때문이다. 

 

3. 요한복음 2장의 가나 혼인 잔치에서는 신랑으로서 예수께서 해야 할 2가지 일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예수께서 신랑이 되시기 위해 무엇이 될 것인가 요한복음 2장의 '가나 혼인 잔치'에 나온다. '가나'라는 지역에 위치한 어떤 남자가 장가를 가는 날이었다. 그런데 그때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신랑과 가까운 친족이었던 것 같다. 그러자 마리아는 결혼식의 주요 준비위원이 되었다. 그때 마리아는 그 집의 연회장 밑에서 일하는 자로서 특히 음료를 담당하는 중간책임자였다. 그런데 그만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사실 포도주는 혼인식장을 가장 밝고 기쁘게 그리고 즐겁게 하는 요소인데 그만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다.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참석했든지 아니면 포도주를 좀 더 많이 드셨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럴 때면 신랑은 그때부터는 어쩔 수 없이 질이 낮은 포도주를 내오게 되어 있다. 하지만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신랑은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마리아가 나서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신랑을 부르지 않고 예수님에게 부탁한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들려주셨던 말씀은 우리의 가슴에 뭉클하게 한다. 

요2:3-4 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렇다. 당시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는 잔치집의 큰 문제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선 포도주가 자신이 피흘려 죽어야 할 때를 지시하는 것이라 판단하시고는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않았나이다"고 말씀드린 것이다. 그러자 마리아는결혼잔치에 필요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그에게 말한 것이었다. 

 

4. 예수께서 혼인식을 행하는 날에 우리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행하신 일은 무엇인가?

  고로 우리는 포도주가 양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는 술 취하여 방탕으로 가는 측면이 있다. 이것은 죄악이기 때문에 술마신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술에는 또 하나의 방면이 있다. 그것은 잔치집에서 기쁨을 더욱 가득 채워주는 역할을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아가서에서는 솔로몬으로부터 입맞춤을 원하는 술람미 여인의 청원이 곧 기쁨의 포도주와 같다고 말한 것이다(아1:2). 왜냐하면 포도주는 잔치에 참여하는 자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고 행복에 젖게 하기 때문이다. "[그가]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아1:2)."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포도주의 유용한 기능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 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시104:15)." 그러므로 우선 포도주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분의 죽음을 그것에 비유하셨다. 그런데 포도주는 한 가지 기능이 더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잔치집에서 기쁨을 더 해주기 위한 요소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잔칫날의 기쁨의 포도주인 것이다. 사실 아가서는 신부 교과서라 할 만큼 엄청난 내용들을 담고 있는데, 거기에서 보면,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과 연애할 때에 딱 한 번 그녀를 데려간 장소가 나온다. 그곳은 다름 아닌 '잔치집'이었다(아2:4~5). "그(솔로몬)가 나(술람미여인)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  5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아2:4~5)."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단어 '잔치집'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포도주의 집'이라고 나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실 때에 그분은 인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속죄양으로서의 일을 행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때에 예수께서는 이미 장차 혼인 잔치에 참여할 사람들이 즐거워하도록 하기 위해, 그날(십자가에 매달린 날에) 미리 기쁨의 포도주가 되신 것이다. 

 

5. 예수께서 고엘이 되시어 기쁨의 포도주를 마시게 할 것이라는 예언과 그 성취는 어디에 있는가?

  신구약성경은 사실 여러 사람들이 쓴 것이다. 적어도 40명 이상이 된다. 그런데 그 내용을 뜯어보면 한 사람이 쓴 것처럼 거의 똑같다. 특히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데 있어서 기쁨의 포도주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동일ㅎ나 내용들이다. 특히 B.C.750년경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하나님께서 어떤 종에게 기름을 부으실거인데, 그러면 그가 나가서 희년법에 있는 고엘의 법을 성취할 것이라고 했다(사61:1~4). 그런데 그때 주님께서 신부들에게 기쁨의 포도주를 주시기 위해 하나의 일이 있었으니 그것은 인류의 슬픔을 대신 담당하시는 일이었다. 그분은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대신 감당하신 것이다(사53:4). 그러므로 그가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을 때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던 그날까지, 그분은 우리에게 장차 기쁨을 주기 위해 인간이 슬퍼하는 모든 요소를 없애 주기 위해 일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속죄를 위해 그분의 목숨을 내놓으신 것과 장차 혼인식에서 우리를 기쁘게 하려고 인류의 슬픔을 대신 담당하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21년 11월 5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신부(49) 구약성경에 나타난 신부들이 알려주는 최종적인 영적 교훈(민수기13:30~14:3)_2021-11-04(목)

https://youtu.be/qVo07Da-gAY [혹은 https://tv.naver.com/v/23369666 ]

 

1. 구약성경에서 우리의 신랑되시는 예수님은 어떻게 비유되어 있는가?

  구약성경에서 우리의 신랑되시는 예수님은 어떻게 비유되어 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히브리어로 '고엘'로 비유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 '구속자(고엘)'가 되어 주신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사44:24). 그리고 그분이 우리의 '기업 무를 자(고엘)'가 되어 주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레25:25, 룻4:1). 그런데 '구속자'나, '기업무를 자'는 히브리어로도 동일하게 '고엘'이라고 단어이다. 그렇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고엘로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일을 하신 것이다. 첫째, 우리를 마귀의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해 주셨다. 둘째, 과부로 전락해 버린 우리를 기꺼이 신부로 맞이하기 위해 신랑이 되어 주셨다. 셋째, 우리가 팔아 버린 천국 기업을 되찾아 우리에게 주시려고 우리를 구속하셨다. 그리고 넷째, 우리의 원수였던 마귀 사탄과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에게 복수하시기 위해 우리를 구속하셨다. 이를 위해 이미 2천년 전에 예수께서는 마귀의 머리를 박살 내어 사망 권세를 깨뜨려 놓으셨다. 그리고 마귀의 부하들인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는 권세를 믿는 이들에게 주셨다. 그러나 우리가 평생 기억할 것은 그분이 우리의 구속자가 되어 주시기 위해 엄청난 값을 지불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친족이 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 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들어가야 할 지옥(음부)에 가셨다가 나오셨다. 그분을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하신 것이다. 

 

2. 고엘로서 일하신 우리의 신랑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최종적인 정착지는 어디인가?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왜 약속의 땅 곧 자신의 기업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광야에 죽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의 가까운 친족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께서는 과연 그들을 광야에서 죽이시려고 출애굽 시켰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건 아닐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애굽 땅에서 구출해내실 때에 이미 그들을 신부로 삼고 그들에게 하늘의 기업을 주시려고 불러내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만약 오늘날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인 된 교회 성도들이 그분을 끝까지 붙잡고 간다면 반드시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것이고, 하늘의 기업을 차지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아직도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기 전의 상황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 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주어진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시간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시험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사례를 보라. 그들이 비록 광야에 나왔지만 광야를 통과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간 자는 극소수였지 아니하였는가! 그러므로 아직 내가 그 땅을 밟지 못한 상태라면 우리는 정말 둘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빌2:12).

 

3. 구약의 신부들 중에서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지 못한 자들은 누구였는가?

  우리는 그간 구약에 등장하고 있는 신부들의 예표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들로는 아담의 아내 하와가 있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있으며,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있었다. 그리고 야곱의 아내들이었던 레아와 라헬 그리고 빌하와 실바도 있었다. 또한 유대인으로서 가장 정확한 신부들의 예표를 보여 준 자가 있었으니, 그녀는 바로 아가서에 나오는 '술람미 여인'이었다. 그리고 이방 여인이었지만 보아스라는 고엘을 만나 신부가 된 '룻'도 함께 살펴보았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광야에 나온 성도들 중에 누가 과연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게 되는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신부라 할지라도 누가 왕 노릇하는 신부가 되는지를 알려주는 예표였다. 이중 술람미 여인이나 사라와 같은 경우는 많지 않은 '왕권신부'를 상징하는 것 같고, 리브가나 레아, 그리고 룻과 같은 여인의 경우는 왕후신부를 상징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야곱의 첩이었던 실바와 빌하는 비빈신부의 예표로 보인다. 그리고 더 크게 인류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본다면, 왕 노릇하는 신부들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야곱의 아들들 중에서 유다와 요셉가 있을 것이다. 이들은 다 왕권신부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히11:8~22). 그런데 안타깝게도 약속의 땅을 아예 기업으로 차지하지 못한 자들도 있다. 그러한 자들로서는 '이스마엘'과 '에서'가 있다. 그리고 부모로부터 타고난 영적인 축복이 주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복을 잃어버린 자들로서, 에서(장자권을 경홀히 여김으로)와 르우벤(서모 빌하와 간음함으로)도 있었다. 그럼 우리는 어떠한 자라고 할 수 있을까?

 

4.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 알려 주는 신부의 주의할 사항은 무엇인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과 구약의 예언자들로서 신부에 언급한 예언자는 이사야 선지자와 예레미야 선지자다. 그런데 이들의 예언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신부들이 정작 힘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예복을 어떻게 준비하는가 하는 것이다. 또한 광야까지는 잘 나왔지만 결국 약속의 땅으로 비유된 새 예루살렘 성에 못 들어갔던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마귀와 지옥의 권세에서 탈출한 자라 할지라도 결국 광야로 상징되는 바, '성밖'이나(마25:10~12) '바깥 어두운 데'(마25:30)에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애굽으로 상징되는 바 사탄의 처소인 불못 안으로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마25:41,346).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마태복음 25장에 나온 세 가지 비유를 통해 살펴보았다. 즉 먼저, 미련한 다섯 처녀는 성밖에 남겨진 자의 예표다. 그리고 악하고 게을렀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자들의 예표다. 그리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지 않아 염소의 자리에 있다가 영원한 불의 심판을 받을 자들은 장차 불못에 떨어진 자들에 대한 예표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어느 누구를 결코 성밖이나 바깥 어두운 데 그리고 불못 안에 던지려고 우리를 광야로 데리고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어서 밖으로 쫓겨나가나 바깥 어두운데서 형벌을 받거나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이다. 

 

5. 어떻게 해야 우리는 약속의 기업을 차지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유월절을 통과하여 광야에 나와 교회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은 정말 우리의 신앙과 삶을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광야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광야에서 엎드려져 죽을 사람으로 분류되는가(성밖이나 바깥 어두운 데에 떨어질 것인가?), 아니면 범죄하여 불못에 떨어지는 사람이 될 것인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고엘이 되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실 때에는 우리를 새 예루살렘 성안에까지 데려 가시려고 데리고 나왔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자의 어려움을 잘 참고 인내하여 구원을 완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아무리 광야 생활이 힘들어도 끝까지 인내하여서 구원을 성취해야 할 것이다. 둘째, 무엇보다도 회개해야 한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신부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회개이기 때문이다. 죄를 지은 만큼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그러면 최소한 천국의 백성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이기는 자이므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자들이 될 것이다. 셋째, 나중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맡겨진 일에 충성하고 천국 복음 전파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 약속의 땅이자 우리가 영원히 차지하고 누리게 될 하늘의 기업에서 왕 노릇하는 소망과 기대를 갖고 도전해야 할 것이다. 구약시대의 여호수아와 갈렙의 경우를 보면 우리가 나의 현재의 위치를 결정하는데 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때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갔던 여호수아들와 갈렙의 사례를 보라.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아낙 자손을 안 보았는가? 아니다. 그리고 그 땅의 성이 견고하다는 것을 안 보았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들도 보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 땅에 대해 악평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그들에게 주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환경을 보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었다. 그리고 자신의 입술로 그렇게 되기를 선포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네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행하시겠다"고 하셨다(민14:28). 그러므로 광야(지금의 교회생활)에 도착해 있는 지금 우리 성도들은 우리 주님께서 고엘로서 행하신 일에 대한 나의 반응에 따라 나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제 공은 우리에게 넘어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주님께서는 2천년전에 이미 댓가를 다 지불해 놓으셨다. 그렇지만 그분은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즉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 그러므로 그 땅에 들어가느냐 마느냐는 우리의 회개와 결단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힘을 내자. 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21년 11월 04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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