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06(수) 9월 특별새벽집회 셋째날

제목: [하나님의 은혜(5)]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되려면 통과해야 할 마지막 관문은?(고후12:7~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1R5ld5OOs0s [또는 https://tv.naver.com/v/40839913]

1. 들어가며

  기도 응답이 되지 않은 것을 두고 과연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오늘 본문은 바로 그렇다고 대답하는 아주 특별한 말씀이다.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그렇다면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이든지 무한정으로 다 퍼주는 것을 지칭하는 것일까? 조건없이 거저 주어진 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는 것일까? 우리는 은혜가 은혜가 된다는 개념에 대해 분명하게 이해하여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가 결국에 우리를 저 천국에 들어가게 만들어 주고, 천국에서 상을 받게 해 주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들을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값없이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결국 내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천국에서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은혜라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역행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은혜가 마지막에 가서도 은혜가 되기 위해서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믿음이 필요한지에 대해 살펴봄으로서 은혜가 은혜로 끝나기 위하여 통과해야 할 마지막 관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께서는 왜 바울에게 사탄의 사자를 허락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사탄의 사자를 그에게 있게 할 필요가 있다고 여기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허락하셨다. 그렇다면 여기에 나오는 '사탄의 사자'는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헬라어로 '앙겔로스 사타나'라는 것으로서 그 뜻은 '사탄의 천사'를 가리킨다. 곧 사탄이 쓰는 귀신을 가리킨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목적을 위해 사도 바울에게 귀신이 들어가서 역사하도록 허용하셨다는 것이다. 왜 그러셨을까?

  그렇다면 사도 바울에게 허용하셨던 '사탄의 천사'인 귀신은 바울에게 어떻게 역사하였고 또한 그에게서 어떤 결과를 낳게 했을까? 사탄의 천사인 귀신이 사도 바울에게 역사했을 때, 바울은 병이 들었고 그래서 약해졌다. 바울은 사탄의 사자인 귀신의 공격을 받아서 자신에게 허약함들(아스테네이아)이 발생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것도 약함이 한 가지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허약함이 있었다. 그리하여 바울은 자신의 육체가 귀신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여러 가지 고통을 겪게 되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나의 허약함들 안에서"라는 말을 두 번씩이나 사용했다. 이중에서 '허약함'이라는 단어는 약함, 허약함, 병약함이라는 뜻이며, 더 나아가서는 '질병'이라고 해석되는 단어이다. 고로 그는 귀신의 공격을 받아서 여러 가지 육체적인 질병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3. 바울에게 허락된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가리키는가?

  어느 날 바울은 기도하다가 하나님으로터 어떤 신령한 은사를 받게 된다. 그때는 그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후 아마 고향에 가 있으면서 기도할 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때 그는 여러 가지 환상들을 보았고 주님으로부터 계시들을 받았다(고후12:1). 그중에는 그가 입신하여 셋째 하늘에 다녀온 것도 있고, 이 땅에 내려보낼 영혼이 자라고 있는 낙원에도 다녀온 것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 사도 바울이 본 계시들은 실로 엄청난 것들이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 일이 있은 후에 그의 몸에 사탄의 사자인 귀신의 침투를 허용하셨다. 그러자 바울에게서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어떤 질병이 나타났다. 그는 그것을 갈라디아서에 기록해 놓았다. 그가 갈라디아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육체의 연약함 때문이었다는 것이다(갈4:13).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곳에서 그 병을 치료하면서 복음을 전했는데, 갈라디아 사람들은 바울을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과 같이 대우했었다고 말했다(갈4:14). 그래서 그들은 복음 전파를 위해서 애쓰는 바울에게 자신의 눈이라도 떼어서 주고 싶어했다고 말했다(갈4:15). 이는 그의 허약함에는 눈병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의 속에 있는 영들은 오직 눈병을 일으키는 귀신만 들어 있었던 것일까?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한 영들은 더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남과 논쟁할 때에 결코 지지 않겠다는 '자만의 영'도 있었을 것이고, 받은 계시가 너무 커서 우쭐대고자 하는 '교만의 영'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울에게는 예수님을 믿기 전부터 가지던 있던 '혈기 분노의 영'도 상당히 있었을 것이다. 그의 초기 사역에는 그 영이 아직 그에게서 빠져나가지 않았다는 정황이 계속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특히 2차 전도여행을 하는 문제로 바나바와 피차 싸우는 것을 보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그 몸에 남겨두시어(혹은 들어가도록 허락하시어) 그를 적절하게 통제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귀신의 공격을 받아 자신에게서 나타난 허약함과 질병에 대해서 바울은 어떻게 대처했는가?

  바울은 그것들이 자신에게 엄청난 타격을 안겨 준다는 것을 알았다(고후12:7). 그러자 바울은 그것들이 자기에게서 떠나가도록 세 번이나 힘써 간구했다. 그것을 거둬가 달라고 한 것이다. 귀신과 질병을 거둬가 달라고 주님께 기도한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궁금한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환상도 보았고  또한 계시도 받았으며, 더불어 거의 모든 성령의 은사를 다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직접 본인이 그 문제를 처리하지 않고 주님께 처리를 부탁하신 것일까? 그것은 그가 가진 약점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가 그토록 많은 은사들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갖지 않은 한 가지 은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영 분별의 은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귀신을 보는 은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베드로와 바울에게 공통적인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베드로는 능력 행함의 은사가 강했다. 그래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성전 미문의 장애인을 일으켜 세울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말씀을 전하는 파워가 대단히 강했다. 그러므로 그의 설교를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한 번에 3천 명, 5천 명이 회심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귀신을 쫓는 은사도 강했다. 그런데 사도 바울도 이러한 은사가 있었겠지만 그는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깨달을 수가 있었고, 장차 되어질 일을 알고 기도하면서 나갈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귀신을 볼 수 있는 영 분별의 은사가 없었다. 오히려 2차 전도여행의 동역자였던 실라는 선지자의 은사를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영 분별의 은사도 가지고 있어서 그를 도와줄 수 있었다. 그러므로 빌립보 성에서 점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것은 실라의 도움을 받아 그 귀신의 정체를 알고 그 귀신을 쫓아낸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바울이 귀신을 보는 은사가 있었더라면 그는 예수님에게 귀신을 쫓아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내쫓아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귀신들이 보이지 않았기에 그는 예수님께 사탄의 사자를 쫓아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5. 주님께서는 왜 바울의 기도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고 대답하셨던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예수께서는 바울의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으셨다. 오히려 "내 은혜가 네게 충분한 것이니 그 문제에 대해 다시 거론하지 말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바울에게 주어졌던 능력은 약할 때에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채워져서 온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고후12:9). 이는 바울에게 모든 은사와 능력들이 공급되었을 때에 그가 걸어갈 길이 주님의 눈에 선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은사와 능력을 허락했던 루시엘이 그만 스스로 교만해져서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에게서 귀신을 보는 은사를 허락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귀신을 쫓아주지도 않으셨다. 그러므로 그가 높아지려고 할 때마다 그가 우쭐대려고 할 때마다 귀신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약한 눈을 비롯하여 온 몸의 어딘가가 아파왔던 것이다. 그러면 그는 즉시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자신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회개를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바울에게서 귀신을 쫓아주지 않고 질병을 계속 허용한 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바울이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계속 머물도록 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울이 하나님 앞에 무릎꿇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울은 자신이 받은 모든 것이 다 은혜로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자신이 똑똑하고 잘나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말은 하지만 결국 마귀에게 실컷 쓰임받다가 버림받아서 멸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바울을 극진히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에게서 귀신을 쫓아주지 않았고 그로 인하여 질병을 고쳐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교만함을 회개했으며, 주님을 더 의지하게 되었으며,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6. 모든 것이 은혜가 되기 위해 통과해야 할 마지막 관문은 무엇인가?

  모든 것이 은혜가 되어서 은혜로운 결말을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선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설령 자신이 아무리 주님께 아뢰어 문제 해결을 구했지만 그것을 해결해 주지 않는 것도 내게 가장 적합한 은혜를 베푸신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님께서 그때 바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에게서 귀신을 볼 수 있는 은사를 허락하셨다든지 아니면 그에게서 귀신을 쫓아버리시고 그의 질병을 치료해 주셨다면 그는 틀림없이 마귀처럼 스스로 교만해져서 타락으로 빠져들어 갔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 은혜의 마지막 관문은 내가 그렇게 간구를 한 것이라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은 것도 나를 위한 최선의 길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있어야만 그것이 나 자신이 타락하는 것을 막아 주고, 주님을 더 의지하고 신뢰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 주님의 온전한 사역자로 세워 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더 나아가서 내가 가진 은사와 능력은 다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내가 아무리 귀하고 위대한 은사와 능력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때그때마다 주께서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도우심이 없을 때에 자기에게 나타나게 될 부끄러움이나 연약함 그리고 질병일지라도 그것을 드러내 놓고 자랑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 구원을 받고 사역자가 되었으며, 은사를 받았으니 주님의 일을 하면서 받는 수많은 어려움과 역경 그리고 핍박과 조롱까지도 내가 오롯이 감당해야 할 사명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은혜의 모든 관문을 잘 통과한 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7. 나오며

  사실 알고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무한정 나에게 공급되는 것만이 꼭 은혜인 것은 아니다. 그러다가 교만해지다가 죄를 짓게 되어 그만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구원에서 탈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적절하게 통제해 주시는 것도 은혜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다가올 수 있어야 정말 은혜를 아는 자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은 주께서 우리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구원도 주셨고, 직분도 주셨으며, 은사와 능력도 주신 것이다. 그런데 주님 때문에 고난과 역경, 핍박과 조롱을 조금 당하는 것을 가지고서, 주님께 항변하고 대들고 그것을 견딜 수 없어 한다면 그것은 은혜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삶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안 들어주는 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셔야, 내가 받은 은혜가 영원히 나에게 머무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에 때로는 "내 은혜가 네게 충분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들어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이 응답을 받은 이후, 더 이상 자신에게서 귀신을 떠나게 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질병을 고쳐 달라고 구하지도 않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질병이 그에게 문제가 되지 않도록, 의사 누가를 붙여 주신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눈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함 가운데 신약성경 13권을 저술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최종적인 은혜였기 때문이다. 

 

 

2023년 09월 06일(수)

정보배목사

2023-09-05(화) 9월 특별새벽집회 둘째날

제목: [하나님의 은혜(4)] 은혜가 은혜되도록 지금도 주께서 행하시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고전15:9~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JWgUk3AT4jM [또는 https://tv.naver.com/v/40839910]

 

1. 들어가며

  은혜란 나는 받을 수 있는 자격이나 조건이 주어져 있지 않는데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위를 보지 않으신 채 그냥 조건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은 3가지다. 즉 구원의 은혜, 부르심의 은혜, 은사의 은혜가 바로 주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은혜들은 만약 하나님께서 조건없이 주시지 않는다면 사실 받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이 구원을 받은 것과 부르심을 받아 직무를 위임받은 것과 직무 수행을 위해 은사를 받은 것에 대해 늘 감사해야 한다.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주시기 위해 행하신 희생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과 부르심의 은총과 은사 수여의 은총을 베푸신 후에는 모든 일을 다 우리에게 맡기시며 아무것도 관여하지 않으시는 것인가? 아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조건없이 많은 은혜를 베푸셨는데 그 이후에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계속해서 베풀어 주시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메시지를 다 듣게 된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라는 말을 그냥 고백하게 될 것이다. 

 

2. 왜 사도 바울은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는 것을 자처하였는가?

  사도 바울은 사실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은혜를 받은 이후에 어떻게 살았을까? 그는 말한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내가 모든 사도들보다 더 수고하였다"고 말이다(고전15:10). 그렇다면 그는 왜 하나님께서 조건없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모든 사도들보다 더 수고하며 살았는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가 헛되지 않게끔 하려고 그렇게 행한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총이 헛되지 않도록 그는 늘 지은 죄를 회개하면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갔던 것이다. 왜냐하면 한 번 구원을 얻었다고 해서 자신이 만고불변의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구원받은 자들 중에서도 구원에서 떨어진 자 곧 구원으로부터 버림받은 자도 있기 때문이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라도 그가 죽는 날에 그의 이름이 지워질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계3:5). 사도 바울은 알았던 것이다. 자신의 구원을 위해 주께서 치르신 희생이 얼마나 크고 고귀한 것이었는지를 말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주께서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총, 부르심의 은총, 은사의 은총이 헛되지 않도록 일생을 수고하며 노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다른 사도들보다 자기는 더 수고하고 살았노라고 말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3. 은혜가 은혜가 되도록 주께서 행하신 조치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들 곧 구원의 은총과 부르심의 은총과 은사의 은총이 계속해서 유효하도록 어떤 일을 계속 행하시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저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 살게 하시고, 그 나라에 들어가는 날에 상을 받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어떤 일을 수행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나라에 들어가기 전 수행해야 할 직무를 위해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들에 관하여 어떤 조치를 취하고 계시는가? 이것 역시 은혜의 방면이 3가지인 것만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가 은혜되도록 취하고 있는 조치 역시 3가지인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첫째,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은총을 완성할 수 있도록 취하고 계시는 조치가 있고 둘째, 우리가 받은 직무를 끝까지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취하고 계시는 조치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사명자에게 필요한 도구들로서 주어진 은사에 대해서 취하고 계시는 조치가 있다. 

 

4. 구원의 은총이 헛되지 않도록 주님께서 지금 취하시고 있는 조치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그들은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을 얻기까지 행하시는 일들이 있다. 이것 역시 은혜에 속하는데 만약 하나님께서 이러한 조치를 취해주시지 않는다면 인생들은 한 번 얻은 구원을 나중에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사함을 받고, 받은 하나님의 생명이 무효화되지 않도록 많은 일들을 행하신다. 그것들 중에 가장 중요한 사역은 첫째,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시어 그가 죽는 그 순간까지 성령이 돕도록 붙여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께서는 그 사람 속에 내주하시면서, 그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구원의 실체이신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제대로 알려 주신다. 그리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는 책망하신 후에 회개케도 하신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이후에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보혜사 성령을 그 사람에게 붙여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혹시 그가 죄를 짓는다고 할지라도 그를 떠나지 않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가 죽는 날까지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이후 혹 죄를 지었다면 성령께서 그냥 떠나버리셔야 하는데 그분이 끝까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회개함으로 구원을 꼭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더욱이 둘째,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우리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주님께로 돌이키기만 하면 과거에 지었던 죄를 다 덮어 주시고 또 기억하지도 않으신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어떤 죄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용서를 받고 있는 우리들이 어찌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우리가 한 번 얻은 구원이 계속해서 유효화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돕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니 구원의 은총에 관한 모든 일에 있어서, 모든 것이 주의 은혜입니다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5. 부르심의 은총이 헛되지 않도록 주님께서 지금 취하시고 있는 행동은?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신 후에 그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그것은 그로 하여금 하늘나라에 들어갔을 때에 상을 받고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그에게 어떤 직무를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구원받은 이후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어떤 직무를 맡아서 일하게 된다. 그러한 직무는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하다. 어떤 것은 한시적인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죽을 때까지 감당해야 할 항구적인 것도 있다. 그러므로 모든 구원받은 자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함으로 천국에 들어가서 받을 상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직무를 맡기실 때 그냥 아무렇게나 대충대충 맡기시는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그 직무를 감당할 수 있을 분량을 아시고 가장 적합한 분량의 직무를 맡겨 주시기 때문이다(롬12:6, 마25:14~15). 이때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큰 무거운 사명을 맡겨 주시는 것도 아니며, 힘도 안 들이고 그냥 해낼 수 있는 쉬운 사명을 주시는 것도 아니다. 누구든지 그 사람에게 속한 능력을 따라 그리고 그가 감당할 만큼의 믿음의 분량을 따라 맡겨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직무를 맡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더욱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분량의 직무를 맡았든지, 그 직무를 성실히 수행했을 때에는 다 똑같은 상을 주신다는 것이다(마25:21,23).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은 능력이 크면 다섯 달란트를 받을 것이고 그러면 그가 최선을 다함으로 인해 다섯 달란트를 남길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능력의 분량이 적어서 두 달란트 밖에 되지 않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함으로 두 달란트를 남길 수 있다. 그런데 나중에 그 두 사람이 받을 상을 비교해 보면 똑같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분량만큼에 모두가 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르심도 은혜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둘째로, 똑같은 능력의 분량을 가진 자가 똑같은 사명을 받았을 경우, 자신이 받은 사명에 최선을 다함으로 어떤 결과를 남기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가 남긴 결과만큼의 상을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똑같은 분량을 받아서 적당히 산 사람과 최선을 다한 사람은 천국에서 상급이 다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누가복음의 열 므나의 비유에 고스란히 나온다(눅19:11~27). 그러므로 자신이 부르심을 받아 직무를 수행한 것에 대한 상을 받는 모든 것도 다 은혜에 속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6. 은사 부여의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주께서 지금도 행하시는 일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연장을 주시는데 이것도 역시 은혜에 속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직무를 맡기실 때에는 그에게 그 직무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연장인 은사도 같이 주시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데 잘 수행할 수 있는 은사도 없는 사람에게 어떤 직무를 맡기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가 일할 수 있도록 그에게 맞는 기본적인 은사를 주시면서 일을 맡기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사도 역시 은혜가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다. 더욱이 자신이 맡은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은사가 더 필요할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역시 은혜로 더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필요한 은사가 더 있다면 필요한 은사를 사모하라고 언급하였다. 사모하여 주께 기도함으로 그것을 받으라는 것이다(고전12:31).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맡은 직무를 잘 감당하기를 원하셔서 우리가 구하는 것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조상죄들까지 회개하면서 구하게 되면 우리에게 원래 주시기로 작정되지 않은 은사라고 할지라도 얼마든지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더 좋은 연장을 받으려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후7:1). 왜 그런가?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함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을 채워 주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시107:9).

 

7. 나오며

 하나님은 참으로 은혜로우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원래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와 긍휼이 많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출34:6). 우리는 바로 그분을 우리의 아버지로 모시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과 부르심의 은총과 은사의 은총을 베푸신 후에 그냥 우리를 내팽개쳐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목숨이 끝나는 그날까지 진정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을 우리의 아버지로 모시고 살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분은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주신 후에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를 끝까지 인도해 주시고, 혹 우리가 잘못했어도 회개하기만 하면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시며, 그 죄를 용서해 주시는 자상하신 아버지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장차 우리가 천국에 그냥 들어가지 않고 그곳에서 누릴 지위와 영광 그리고 상을 준비하여 들어갈 수 있도록, 구원받은 이후에 우리에게 적당한 양의 직무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같은 분량이라면 최선을 다해 더 많은 결과를 남긴 자에게는 더 큰 상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분은 아주 공평하신 분이시다. 더욱이 그분은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은사들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로 지금 내가 어떤 직무를 맡고 있다면 기본적인 은사들은 이미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 다만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더 필요한 것이 있을 때에는 더 좋은 은사들을 간구해야 한다. 그분은 구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더 풍성하게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눅11:15). 그러므로 우리에게 하나님은 참으로 은혜롭고 자비로운 분이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것을 다 비교하면서, 하나님이야말로 우리 자신을 장차 하늘에서 상을 받을 때까지 책임지고 인도하시는 분이신 것을 깨닫고는 자신의 모든 수고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한 것이다. 

 

2023년 09월 05일(화)

정보배목사

2023-09-04(월) 9월특별새벽집회 첫째날

제목: [하나님의 은혜(3)] 은혜가 은혜되게 하려면?(고전15:9~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_QXcN3idIfI [또는 https://tv.naver.com/v/40839905]

1. 들어가며

  은혜가 은혜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스도인들의 많은 수가 받은 은혜가 은혜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부끄러움이 되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가 부끄러움이 되지 않고 은혜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받은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우리가 감당해야 할 어떤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 주시는 것이라면, 나중에 우리가 심판받을 때에 우리가 받을 상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도 무엇인가 책임이 있기 때문에 상을 받기도 하고 벌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전했던 말씀으로 '은혜'가 과연 무엇이며, 은혜가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방면이 무엇인지를 간단히 정리한 후에, 은혜가 은혜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정말로 주의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은혜가 무엇이며 은혜에는 어떤 방면이 있는가?

  '은혜'란 무엇인가? 그것은 받을 수 있는 자격이나 조건을 갖추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조건없이 베풀어 주시는 호의나 선물을 가리킨다. 고로 은혜는 거저 받은 귀한 선물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주셨는가? 그것을 정리하면 은혜에는 3가지 방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은혜에는 '구원받음'의 은혜가 있다(엡2:8~9). 그것은 우리가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을 가리키는데(엡2:8~9) 거기에는 2가지 내용이 있다. 하나는 죄사함을 받는 것이며, 또 하나는 생명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오직 은혜일 수밖에 없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들이 은혜가 아니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한 것이다. 하나는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마4:17, 계22:14). 왜냐하면 죄를 가지고는 천국에 못 들어가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야 한다(요5:24, 3:15). 이것은 성령을 통해 아들이 가지셨던 아버지의 생명을 우리가 갖게 되는 것이다. 고로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으로부터 반드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다는 사실이다. 죄를 용서받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통해 거저 용서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의 수여는 오직 예수님을 믿을 때에 성령께서 우리 맘에 들어오심으로 우리에게 그 생명이 분배되는 것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을 은혜로 주시는가? 그것은 누구든지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았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다(엡2:9). 

엡2:8~9 [왜냐하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았으니(받은 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너희로부터가)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행위로부터가)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둘째, 은혜에는 '선택받음'의 은혜가 있다(딤후1:9).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여 당신의 일꾼으로 쓰시는데, 그것이 은혜로 되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하늘나라를 위하여 어떤 직무를 맡게 되는 것은 우리가 잘나서 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안배하시고 또한 우리를 불러서 그러한 사역자로 쓰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일시적인 어떤 직무를 맡아서 일을 하든지 아니면 특별한 사명자로서 쓰임을 받든지, 아니면 사명자를 돕는 동역자로서 쓰임을 받든지 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대로 받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신 소명으로 불러내신 것은 우리의 행위들을 보시고 불러내신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에게 속한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작정하신 은혜대로 하신 것이라고 말했다(딤후1:9).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구원하셨던 것과)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부르셨던 것)은 우리의 행위대로(행위들을 따라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자기자신에게 속한)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은혜를 따라) 하심이라 
  마지막으로 셋째, 은혜에는 '은사받음'의 은혜가 있다(롬12:6).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되 은혜를 따라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시고 우리를 구원으로 초청하신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천국에서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어떤 직무나 사역을 주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직무를 주실 때에 그냥 주시지 않고 그 직무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연장(도구)을 주신다. 그 도구를 가리켜 '은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에게 특히 사역자들에게는 어떤 은사가 주어져 있다. 그것은 내가 결정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작정하시고 불러내실 때에 이미 주신 것들이다. 그러므로 은사도 내가 어떤 공로를 세워서 주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다. 은혜로 받는 것이다. 

롬12:6~7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은혜를 따라) 받은 은사[들]가 각각 다르니(다양하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분수를 따라),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3. 은혜가 은혜되게 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받은 은혜가 정말 은혜되게 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첫 번째 조건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시116:12). 곧 한 번 얻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고전9:27). 이미 기록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게 해야 한다(계3:5). 그것은 주님이 주신 생명을 잘 간직하여 우리가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받은 구원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치르셔야 했던 희생이 너무나 크고 고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처럼 거저 주셨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지기까지 하나님이 치르셨던 희생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를 구원하러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은 원래 창조주 하나님이셨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권한과 능력과 영광을 내려놓고 피조물인 인간의 형상과 모양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모든 인류가 지은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다. 왜냐하면 죄의 값은 사망이요(롬6:23), 피흘림이 없은즉 죄사함도 없기 때문이다(히9:22). 그리고 대속제물의 피도 흠없고 죄없는 어린양의 피여야 했기 때문이다(벧전1:19).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가 영원히 은혜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빌2:12). 그리고 보다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구원의 은총을 보답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시116:12~14).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히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벧전1: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시116:12~14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4. 은혜가 은혜되게 하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은혜가 은혜되게 하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내게 맡겨진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을 값없이 선물로 주셨다. 이어서 우리를 불러내어 하늘나라의 완성을 위한 어떤 직무까지도 선물로 주셨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도 은혜인 것이지만, 하늘나라를 위해 사역자가 된 것도 사실은 은혜대로 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뜻과 만세 전에 세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나를 어떤 직무의 일로, 특별한 사역자로 또는 그 사역자를 돕는 동역자로 삼으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따라 우리에게 어떤 직무나 직분을 맡겨 주셨다고 할지라도 그 직분 자체가 자동적으로 우리에게 상을 얻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주의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없는데 우리가 천국에서 상을 받을 리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만을 선물로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직무와 직분까지도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다(고전4:2).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어 주인이 나에게 맡겨 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마25:21,23). 그래서 하늘나라에 들어갔을 때에 충성의 면류관, 인내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순종의 면류관, 사랑의 면류관을 받아 써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은혜로 시작된 나의 사명이 정말 은혜로 끝을 맺을 수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의 직분에 늘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 어떤 핍박과 고난을 받게 되더라도 그것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을 이겨내었을 경우 우리가 훗날 받게 될 축복이 심히 크기 때문이다(롬8:17~18). 

고전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마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롬8:17~18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5. 은혜가 은혜되게 하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이제 마지막으로 은혜가 은혜되게 하기 위한 세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받은 은사가 아무리 크고 놀라운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자신을 높이게 됨으로 인하여 교만해지거나 타락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은사와 능력을 허락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부르심을 받을 경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직분에 맞는 은사도 동시에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해서 받은 은사가 너무 크거나 엄청난 것일 경우 사람은 그만 교만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사의 은혜가 은혜되기 위해서는 끝까지 겸손해야 한다. 그래서 마귀로 하여금 쾌재를 부르지 못하게 해야 한다. 교만이 내게서 올라오려 할 때마다 자신의 교만한 마음을 회개해야 한다. 

잠3: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약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벧전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6. 나오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들 중에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구원의 은혜는 너무나 큰 댓가를 지불하시고 주신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듯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하찮게 여기는 자들이 있다. 그것은 은혜를 받은 자가 또다시 죄를 짓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저 얻은 구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큰 희생을 치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로 받은 구원을 결코 잃어버려서는 아니 된다. 끝까지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지은 죄를 회개하여서 반드시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누리며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직분의 은혜를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직무에 충성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그 직무를 잘 감당했을 때에 주님께서 주시려고 준비하고 있는 면류관을 꼭 받아 써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직무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선물로 주시는 은사들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행여 그 은사가 너무 커서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기 것인 양 착각하고 살아서는 절대 아니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다 주인의 것이었지 우리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모든 자는 우리의 목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오직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나에게 직무를 맡겨 주시며, 은사까지 더해 주시는 주님을 높여드려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고귀한 희생으로서 얻게 된 은혜에 대한 우리들의 당연한 반응인 것이다. 

 

2023년 09월 04일(월)

정보배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