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오고오는 세대와 교회를 향해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하셨다. 왜 우리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말씀을 들어야 할 대상은 왜 귀있는 자라고 말씀하셨을까? 오늘 이 시간에는 2017년 새 해를 맞이하여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말씀을 나눠보도록 하자.


1. 들어가며

  2017년이 새 해 아침이 밝았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또 한 해를 주셨다. 과연 우리들을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내야 참 잘했다고 칭찬을 들을 수 있을까? 어떤 삶을 살아야 후회없는 또 한 해를 살 수 있을까? 그것의 하나는 오늘날 우리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귀담아 듣는 것이다.

  A.D.95년경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사도요한에게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게 편지를 써보내라고 하신다. 그런데 내용은 많은 분량은 아니다. 짧지만 매우 중요한 사항만 들어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일곱교회를 향해 말씀하시고는 반드시 이렇게 요청하신다.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2:7,11,17,29,3:5,13,22)". 

  그런데 생각해보라.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직접 말씀하시지 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하시는가?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강제로 듣게 할 것인지 왜 귀있는 자만 들으라고 하시는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참으로 많은데, 왜 예수께서는 회개와 천국에 관해 말씀하실 때에는 귀있는 자만 들으라고 하시는가? 오늘 이 시간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의 중요성과 아울러 성령이 누구신지, 그리고 왜 들을 귀를 가져야 하는지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첫째, 예수께서는 왜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성령이 하시는 말씀이 곧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그 시대에 가장 필요한 말씀을 생각나게 하게 깨닫게 하고 조명해주시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는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앉아계신다(계7:15~17, 3:21). 그리고 그분은 이 세상에 당신의 영을 보내시어 구원사역을 펼치고 계신다. 그때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완전한 영은 무엇일까? 그분은 바로 성령님이신 것이다. 특별히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령님을 예수님과 관련지어 증언하고 있는데, 그것은 성령이란 곧 예수님의 일곱 눈이라는 것이다(계5:6). 여기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이 땅에서의 완전한 수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성령이란 예수님의 완전한 눈인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승천이후로 지금까지 천국에 계신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분의 눈을 이 세상에 보내어 인간의 구원사역을 진행하시고 있으시다. 그러므로 성령을 예수님과는 다른 별개의 또 다른 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성령님이 곧 예수님이신 것이다. 예수님의 영이 곧 성령님이신 것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을 알기 위해서, 그리고 성령을 체험하기 위해 쫓아다녔는지 모른다. 이곳 저곳 쫓아다녀 보지만 영적으로 나아진 것은 없다. 돈과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하고 만다. 생각해보라. 그렇게 해서 성령을 체험했다고 해서 달라진 것이 있는가? 손에서 금가루가 나오고, 이빨이 금이빨로 변하고, 뒤로 넘어지고, 귀신이 쫓겨나사고, 병에서 낫고, 예언을 따라 움직이며, 온갖 은사에 따라 움직여왔는데, 과연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고 해서 주님께서 그토록 중요하게 말씀하신 천국과 지옥을 확실히 믿게 되었는가? 그리고 천국을 얼마나 사모하는 자가 되었는가? 또한 회개가 생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는가? 결코 아니다.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수많은 다양한 은사들은 거의가 다 성령님을 가장하여 들어온 귀신들의 역사다. 아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또다른 자기자신인 것임을 알라(요16;16). 예수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이후에는 이 땅에 당신의 영 곧 성령을 보내시어 사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과 예수님을 전혀 다른 별개의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물론 성령님도 인격체이므로 다른 인격으로 표현될 수 있다. 하지만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이지 다른 또 다른 세번째 신의 영이 아닌 것이다.  요한복음을 읽어보라. 요한복음에서는 성령이 어떤 존재이며 무슨 일을 하시는지 잘 나타나 있다. 거기에 보면, 성령님은 오직 예수님이 누군지를 증언하는 영이며,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깨닫게 하시는 영이신 것을 알 수 있다(요15:26,14:26). 성령님은 오셔서 자신을 증거하거나 자신이 하시는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영이 아니다. 오직 예수님이 누구시며, 예수쎄서 하셨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닫게 도와주시는 영이시다.

  또한 성령께서 증언하시는 모든 목적은 딱 한 가지다. 그것은 회개하라는 것과 이 세상에서 이기는 자가 되어 천국에 들어오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공생애의 외침이요, 지금도 천상에 계신 예수님의 절규의 외침이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 그분의 공생애를 살펴보라. 그분께서는 무슨 일부터 시작하셨는가? 그렇다. 그분은 회개하라는 것부터 시작하셨다(마4:17, 눅1:15). 그리고는 들을 귀를 가진 자는 어서 속히 천국말씀을 듣고 천국에 들어오라고 하셨다. 천국을 사모하라는 것이다. 더욱이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회개하라고 외치신다. 그리고 이기는 자가 되어 천국에 들어오라고 외치신다. 소아시아에 위치한 일곱교회들 중 칭찬만 들었던 두 교회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다섯교회에게 우리 주님은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오직 회개하라는 것이다(계2:5, 16, 21~22, 3:3,19). 그리고 이기는 자가 되어 천국에 들어오라는 것이다(계2:7,11,17,29,3:5,13,22).


3. 예수께서는 왜 들을 귀가 있는 자가 들으라고 하시는가?

  둘째, 예수께서는 당신이 하시는 말씀이 그렇게 중요하면 강제로 주입하시지, 왜 귀있는 자에게만 들으라고 하실까?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관점에서 볼 때 천사를 제외하고는 오직 인간만이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전부다 자신의 본능에 따라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본능이 아니라 자신의 자유의지의 선택에 따라 살아가도록 창조되었다. 고로 누구든지 자신의 영혼과 천국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것을 사모하는 자가 천국을 침노할 수가 있는 것이다(마11:12). 천국은 그것을 듣고 사모하는 자가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무슨 말씀에서든지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오직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대목과 천국의 비유말씀을 하실 때에만 그것을 언급하셨다(막4:3~9). 왜 그랬을까? 천국의 말씀을 들어도 정말로 그것을 사모하는 자에게만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천국이 비밀을 아는 것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결국에 그것을 사모하는 자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다(마13:11~12).


4. 나오며

  그렇다면, 이제 2017년 나 자신의 관심사는 무엇이어야 할까? 그것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어야 한다. 그것은 회개하고 천국복음을 듣고 그것을 사모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바도 회개의 비밀을 알고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천국복음에 대해 듣고 더 배워야 한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기울이는 것이다.  결국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그는 철저히 회개할 것이다. 그리고 이기는 자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게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것을 확실하게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누가 복된 자인가? 부자로 살고 명예와 권력을 얻는 자인가? 아니다. 천국을 사모하고 천국에 들어가기를 힘쓰고 있는 자이다. 이것을 위해 지금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순종하는 있는 자이다. 날마다 회개하고 천국복음듣기를 사모하는 자이다. 당신도 이런 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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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구원자이시며 구속자이시다. 그런데 신약에 보면 예수께서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구원자이시며 구속자이신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 보면 '구주'라는 표현을 하나님 아버지께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과연 구원자요 구속자는 한 분이신가? 아니면 두 분이신가? 오늘은 이사야서를 통해서 이것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도록 하자.


1. 들어가며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께서 누구신지에 대한 가장 많은 선언을 담고 있는 책을 고르라면 우리는 단연코 이사야서를 고를 수 있다. 왜냐하면 이사야서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다 담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기본적으로 전능자로서 창조주요 구원자이심을 말씀하고 있다(사49:26,60:16). 오늘 이 시간에는 구약성경 중에서 이사야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과연 구원자로서 어떻게 활동하시고 말씀하셨는가를 좀 더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거기에다가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구속자도 되시는가 하는 것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신약의 예수님께서 구약의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구원자와 구속자라는 관점에서 함께 살펴볼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다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2. 하나님과 예수님의 자기선언

  우리는 지난 2주동안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하나님의 자기선언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먼저는 예수님의 자기선언을 살펴보았고, 지난주에는 하나님의 자기선언에 대해 살펴보았다. 예수님의 자기선언에도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계실 때의 자기선언이 있었고, 부활하신 후에 하늘에 올라가신 예수님의 자기선언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자기선언은 둘 다 7가지씩 존재한다.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계실 때의 자기선언(7가지)은 다음과 같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8:12). 나는 양의 문이다(요10:7,9). 나는 선한 목자다(요10: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11:25). 나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다(요14:6). 나는 참포도나무다(요15:1)." 그리고 부활승천 후의 예수님의 자기선언은 이와 같다. "나는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다(계1:8). 나는 전능자다(계1:8). 나는 알파와 오메가(시작과 나중, 처음과 끝)이다(계1:17). 나는 살아있는 자다(계1:18).  나는 사람의 마음과 뜻을 감찰하는 자다(계2:23). 나는 다윗의 뿌리와 자손이다(계22:16). 나는 광명한 새벽별이다(계22:16)."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의 자기선언을 보면, 예수께서 육체 입고 계실 때의 자기선언은 그분이 우리에게 구원하기 위해 생명을 주러오신 분임을 말씀하고 있다면, 부활승천후의 예수님의 자기선언은 거의 구약의 하나님의 자기선언과 그대로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이사야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선언

  그렇다면, 이사야선지자는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어떤 선언을 간직하고 있을까? 이사야서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자기선언은 사40~66장에만 있다. 거기에는 약 20여가지의 하나님의 자기선언이 있다. 그러한 선언은 보통 "나는...이다"라는 식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을 간추려본다면 다음과 같다. "나는 여호와다. 나는 하나님이다. 나는 창조주다. 나는 구원자다. 나는 전능자다. 나는 왕이다. 나는 구원자다. 나는 구속자다. 나는 그다. 나는 거룩한 자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나 외에 다른 신은 없다. 나는 인도자다. 나는 공의자다. 나는 용서자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선언들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구원자 내지는 구속자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신약의 예수님의 자기선언과도 일치한다. 그래서 오늘은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는 하나님의 구원자요 구속자라는 자기선언을 살펴보고, 이어서 이와 관련된 신약의 예수님의 자기선언에 대해 살펴보고자한다.


4. 구원자이신 하나님

  하나님은 이사야선지자를 통해 자신이 구원자이시며 구원하시는 일을 하신다는 것을 무려 29번씩이나 말씀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사45:21).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 이외에 그 어떤 다른 구원자가 없을 것인데, 이전에도 없었으며, 이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못박으셨다(사43:11).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부터 자신이 구원자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씀하셨을까? 그것은 출애굽때부터다(시160:21,7~8). 그 이전까지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낼 때 늘 창조주라고 말씀하셨다(창1:1,출31:17,신4:32,욥4:17). 하나님은 홀로 하늘들과 땅과 그 가운데 만물들을 창조하시고 지으시고 빚어내신 분이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사43:15,44:24,45:18). 그런데 B.C.1446년 이스라엘의 출애굽부터 자신을 구원자로 계시하기 시작하셨다. 그전까지 하나님은 대부분 자신을 창조주이시며(욥4:17) 전능자이심(창49:25,민24:16,욥11:7)을 말씀하셨는데, 출애굽사건 이후부터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구원자라고 말씀하셨다(시160:21,7~8).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이 구원자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구원자인 메시야를 보내어 주실 것이라고도 말씀하셨다(사19:20). 그리고 그러한 예표로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자로서 여러 사사들을 보내주셨다. 그때 그들의 공식적인 명칭은 이스라엘의 구원자였다(삿3:9,15). 옷니엘과 에훗 등은 바로 그러한 구원자의 예표들이다. 그리고는 이사야서에서 하나님께서는 아주 놀라운 선언을 하신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 이외에 구원자는 없다는 것이다(사43:11). 그러한 신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사45:21).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구원자이며 구속자라고 선언하셨다. 특히 이사야서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구속자인 것을 무려 24번이나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구속자'란 대체 무슨 뜻인가? 그것은 노예나 종을 속전을 주고 되사는 자 혹은 속전의 값을 주고 산 다음에 풀어서 해방시켜주는 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영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구속자가 되실 수가 있는가? 하지만 그것에 궁금증은 곧 풀리게 된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신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을 속전으로 내놓으셨기 때문이다(딤전2:6). 그리고 자신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이 자신을 많은 사람을 대신하는 대속물(속전)으로 주려고 오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마20:28). 다시 말해 구약에서 그렇게 자신을 구속자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진짜로 아들로 오셔서 그 일을 집행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서에서는 하나님은 자신을 구원자이자 구속자라고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사49:26, 60:16).


5. 구원자요 구속자이신 하나님은 구원사역을 어떻게 행하셨을까?

  그렇다면, 영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오신 후에는 어떻게 구속사역을 펼쳐 나가셨을까? 다시 말해, 예수께서는 어떻게 구속사역을 펼쳐나가심으로 인류에 대한 구원사역을 완성하신 것인가? 그것은 피흘려 죽으심의 과정을 통해서다(히9:22, 레17:11, 요1:29). 다시 말해 그분이 사람이 되신 것은 피흘려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를 속하고 죄값을 대신지불하시려 하 것이다(엡1:7, 히9:15).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구속자가 되신 것은 인류의 죄를 속할 어린양이 되시기 위해, 곧 피흘려 죽을 희생양이 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이 인류의 죄를 속량하기 위함이라고 늘 말씀하셨다(마20:28, 막10:45). 결국 죄를 속량할 수 있도록 사람이 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이가 33년반이 되었을 때에 십자가에 매달려 피흘려 돌아가심으로 구속의 약속을 이루신 것이다. 구약의 약속을 "다 이루신" 것이다(요19:30). 그러므로 믿는 이들이라면 누구든지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지은 죄들에 대해서 회개함으로 죄사함을 얻게된다(엡1:14, 골1:14). 또한 구속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함으로 율법의 온갖 저주에게서도 해방받게 된다(갈3:13). 그랬다. 구속자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오셔서 구속사역을 통해서 온갖 저주와 가난과 질병에서 우리를 구출하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결국 십자가에서 인류의 대속제물로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완전히 지불하셨다. 그러니 이제는 누구든지 구원자이신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행하신 일을 믿과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 구얻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하여  자신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6. 나오며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창조사역을 통해 자신이 전능자이심을 밝히셨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해내심으로 자신의 구원자이심을 드러내셨다. 그리고 출애굽때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을 대속제물이자 화해제물로 취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심으로 그것을 보여주셨다. 오늘날 우리들은 그때 피흘려 대신 죽은 유월절 어린양이 곧 예수님을 예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전5:7). 결국 자신을 구원자이자 구속자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구속사역을 집행하심으로 구원사역을 완성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의 기록에도 예수께서 구원자이며(눅2:11,행5:31,빌3:20,딤후1:10,벧후2:20) 구속자이신 것(마20:28,눅24:21, 행7:35, 갈3:13, 엡1:14, 히2:17, 계14:3-4)이 기록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도 구원자이시며 구속자인 것도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마:21,막16:16,눅1:71, 요3:17, 롬10:9~10). 그래서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구주이신 예수님이라는 표현(빌3:20)과 동시에, 구주이신 하나님이라는 표현(딤전1:1,2:3,4:10,딛1:3,2:10,3:4)을 둘 다 보게 된다. 홀로 한 분 하나님께서 행하신 동일한 일이기 때문이다(유1:25).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구원을 말씀하셨고, 신약에서는 아들의 신분으로 오심으로 그 일을 집행하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한 분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그리고 그분만이 구원자이심을 선포하자. 또한 그분 이외에 구원자가 없음을 선포하자.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어야 한다. 언젠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불법이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목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이렇게 믿고 이렇게 외쳐야 한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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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가 아들을 낳았다. 그러면 그 아들은 누구의 아들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당연히 마리아의 아들 내지는 요셉의 아들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천사는 그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려질 것이라고 했다. 그녀가 남자의 씨가 없이 성령으로 잉태했던 그 아이가 대체 누구길대 천사는 그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가르쳐주는가? 오늘은 성탄절을 맞이하여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었던 예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아보자.


1. 들어가며

  아기예수께서 태어나신 날 밤을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밤"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사건이 그날밤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없었고 그후에도 없을 일이 그날 밤에 일어났던 것이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오신 것이다. 그래서 그날을 거룩한 밤이라고 한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정말 그 밤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놀랍게도 예나 지금이나 세상사람들은 예수님의 탄생에 아무런 반응이 없다. 요즘 촛불시위에는 생방송까지 아낌없이 진행하건만,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지상파방송과 종편채널방송국 그 어디에도 크리스마스를 위해 준비된 어떤 프로그램도 없다. 우리나라의 개신교인구가 968만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영화 하나 르포 하나 없다. 그러니 우리가 이 날에 축하고 그 날의 의미가 무엇인지 전해주어야 되지 않겠는가?


2. 성탄절은 대체 무슨 날인가?

  성탄절날은 무슨 날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로 물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몸을 입으신 날이다. 그리고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날이다. 그렇다면 맨 처음 하늘의 천사는 마리아에게 어떤 소식을 전해주었을까?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높다. 대체, 마리아가 낳은 아기는 어떤 존재였으며 예수님의 탄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2. 마리아는 대체 어떤 여인이었나?

  먼저, 천사가 전해준 메시야의 잉태 고지를 받아들였던 마리아가 누군지부터 살펴보자. 천사의 고지를 수용했던 마리아에 대해서 누가복음은 두가지 방면의 놀라운 사실을 알려준다(눅1:27). 그것은 첫째, 그녀는 유다지파 다윗의 자손 요셉과 정혼한 여자로서, 메시야를 낳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혈통적인 조건을 갖춘 여인이었다는 점이다뿐만 아니라 둘째로, 그녀는 처녀였다는 점이다. 그렇다. 그녀는 자신도 유다지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었으며(눅3:23), 뿐만 아니라 약혼했던 요셉이라는 총각도 유다지파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었다. 둘 다 다윗의 자손이었던 것이다. 다만 두 사람의 차이점이 있다면, 마리아는 다윗의 아들 중 나단의 혈통에서 나온 후손이요(눅3:23~31), 요셉은 다윗의 아들 중 솔로몬의 혈통에서 나온 후손이라는 것이다(마1:6~16). 그렇지만 이러한 두 사람이 당시 약혼한 상태에 있었으니, 마리아는 아브라함의 다윗의 자손으로서 혈통적으로 메시야를 낳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여인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그녀는 아직 남자를 모르는 동정녀 즉 처녀였다(눅1:34). 당시 그녀는 요셉과 약혼한 상태였지만 아직 합방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까지 마리아는 사내를 알지 못했다(눅1:34). 그러니 아마도 마리아는 모든 인류 가운데 메시야를 낳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갖춘 여인이었을 것이다.


3. 마리아의 태중에 임심할 아기는 누구였는가?

  둘째, 마리아가 낳을 아기는 대체 어떤 존재인지 대해 알아보자. 오늘 본문(눅1:30~33)에 의하면, 마리아 낳게 될 아기는 적어도 4가지 신분을 가진 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 아기가 바로 아들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이자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자신이라는 것이다. 첫째로, 마리아가 낳을 아기는 딸이 아니라 아들이라는 사실이다(눅1:31). 여기에서 아들이요 남자라는 것은 씨를 가진 존재를 의미한다. 또한 씨는 성경에서 생명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마리아가 낳을 아들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둘째로, 마리아가 낳을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다(눅1:32). 자, 생각해보라. 마리아가 아들을 낳게 되면 마리아의 아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한 상태이니 요셉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천사는 둘 다 아니라고 했다. 그 아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왜 그런가? 마리아와 요셉이 그 아이의 탄생에 도구로 쓰인 것일 뿐만 직접적인 참여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태중에 잉태되려고 하는 아기는 사람의 씨를 통해서 빚어질 아이가 아니었다. 그녀의 태중에 들어갈 것은 하나님의 씨였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생명이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생명이 그녀의 자궁 안에 잉태되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녀가 잉태할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어질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 넷째, 그녀가 낳을 아기는 왕으로서 통치할 메시야라는 사실이다(눅1:32b~33). 그렇다. 그녀의 태중에 잉태되려고 하는 아기는 그냥 마리아와 요셉 부부의 사랑으로 우연히 생겨나는 그런 아기가 아니었다. 그녀가 낳게 될 아기는 무려 4천년동안 350가지 이상씩이나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야가 잉태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천사는 그녀에게 잉태될 아기는 장차 다윗의 보좌를 받아 영원히 야곱의 집을 통치할 자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의 왕국은 끝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단지 마리아가 자기 맘대로 이리저리 키를 잡고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아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다섯째, 그녀가 낳을 아기는 인류를 구원하러 오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눅1:31). 왜냐하면 장차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예수'로 부르라고 했기 때문이다. 예수란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여호와께서 구원하러 오신다는 뜻이다. 또한 마태복음에서 주의 천사가 요셉에게 가르쳐준 바에 따르면, 그 아기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하시려고 태어나는 존재라고 했다(마1:23). 즉 하나님께서 임마누엘하시기 위해 아들의 신분으로 오시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아기의 본질은 하나님 자신이다.


4.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인가 하나님의 어머니인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마리아와 예수님의 관계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라고 불러야할까? 그것은 어느정도 가능성이 있는 호칭이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과연 이 표현이 옳은 것일까? 천주교인은 한낱 피조물인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신 것과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의 차이를 말이다. 우리는 엄마 아빠의 사랑을 통해 엄마의 뱃속에서 잉태될 때 처음으로 빚어진다. 그 전에는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르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될 때 그때에 비로소 생겨난 존재가 아니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태중에 있기도 전에 선재하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태중에 있기 전에 이미 하나님으로 계신 분이셨다. 그 하나님께서 이제 사람이 되시기 위해 마리아의 태를 빌려서 태어나신 것이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결코 하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없으며 그렇게 불려서는 아니 된다. 다만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기 위해 도구로 사용한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공생애기간에 예수께서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어떻게 불렀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그의 어머니를 불렀던 딱 2번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보면, 예수께서는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라고 결코 부르지 않았다. 모두다 "여자여!"라고 불렀다(요2:4, 19:26). 이것은 결코 비하의 표현은 아니다. 이것은 "귀네"라는 말로서, 여자를 어느 정도 존대하여 부르는 말이다. 하지만 공생애 기간 중에 주님은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것은 천사가 마리아에게 일러준 것과 일치한다. 천사는 마리아더러, "너의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셉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도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만세전부터 계신 하나님께서 그녀의 태를 빌려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5. 나오며

  성탄절은 아들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이자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을 축하는 절기다. 이것은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인류역사에 가장 귀한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하심은 전적으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흠없는 속죄제물로 오시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까지 행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어떠한가? 조금만 삶이 어려워지면 이내 하나님이 계시네 안 계시네 하면서 불평하기 일쑤가 아니었던가? 일주일에 하루는 나와 함께 하자고 했건만 주일성수를 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오늘은 그분이 사람이 되기까지 행하신 날인데, 우리가 최소한 하나님 앞에 예의를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최소한 그분 앞에 나올 때에 합당한 예물로 경배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분의 오심을 진정 축하하고 기뻐하며 찬양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야말로 구원자를 맞이하는 우리들의 마땅한 마음가짐이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행하신 하나님께 대한 최소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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