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를 보라. 그렇게 많은 체험이 주어졌고 그들에게 율법말씀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우상숭배를 하다가 멸망당하고 말았던 것인가? 이 문제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동일하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암과 희귀명, 치매, 각종사고,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1. 들어가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들 내지는 우상을 숭배했다. 결국 그들은 징계를 받고 고통을 받다가 멸망받고 말았. 그들의 우상숭배로 인해 그들은 주변국의 침략을 받아서 갓지어논 농작물과 우양을 빼았겨야했고, 때로는 자녀들까지 노예로 빼앗기기까지 했다. 또한 자연재해를 받아서 기근으로 죽어가야 했고 전염병으로 죽어가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줄기차게 우상을 숭배하는 일을 그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의 나라가 망할 때까지 그들은 우상숭배행위를 지속한 것이다. 왜 그랬런 것일까? 할례를 받아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한다는 간증을 갖고 있덨던 하나님의 백성이었음에 불구하고 그들은 왜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명한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어기고 살았던 것일까?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우상과 이방신을 섬기게 된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행위에 대한 해결책은 또 무엇인지 찾아보고자 한다.


2.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5가지 이유

  성경을 찾아보면, 하나님께서 왜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하시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그 이유과 결과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는 힘들다. 즉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를 자행했는지에 대해서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오늘 이 시간에는 호세아서를 중심으로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살았는지 그 이유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대략 5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가. 첫번째 이유와 해결책

  첫째, 하나님이 누군지를 잘 몰라서 이방신이나 우상을 하나님으로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호4:1,6). 그랬다. 북이스라엘에게서는 진리의 말씀도 없었고, 사랑과 긍휼도 없었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었다(호4:1).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탄식하셨다. "내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도다(호4:6)." 그랬다. 호세아가 이 예언을 선포할 때에는 B.C.755~722년경으로 북이스라엘의 제13대왕이었던 여로보암왕이 통치하던 시대B.C.793~753)로부터 시작하여, 19대 마지막왕이었던 호세아왕의 통치시기까지(~ B.C.722)였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약200년전에 북이스라엘의 태동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 왜냐하면 B.C.931년 북이스라엘을 세웠던 여로보암1세가 자기나라의 백성들이 남유다의 예루살렘 가서 절기를 지키고 제사를 드릴까봐 북이스라엘 땅 두 곳 곧 벧엘과 단에다가 송아지형상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태동부터 하나님도 아니고 우상도 아닌 애매한 신앙으로부터 시작되었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을 보이는 어떤 형상물로 알라고 섬기게 되었고 그것은 곧 보이는 우상과 하나님을 잘 구별하지 못하고, 우상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사태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정확히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잘 몰랐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는 우를 범하게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상을 하나님처럼 섬기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도 아니고 우상도 아닌 혼합주의적인 신을 믿는 신앙에서 벗어나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인 것을 힘써 알아가야 할 것이다(호6:3).


나. 두번째 이유와 해결책

  둘째, 까다롭고 복잡한 규정들로 점철된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훨씬 더 쉽고 간단하고 편한 방법으로 섬기는 우상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호1:13, 4:11,13). 호세아서에 의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복잡했다. 그리고 불편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해서는 안되는 규정들도도 많았고  지켜야할 규정들도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하루를 쉬면서 예배드려야 하는 규정, 무엇은 먹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 규정, 어디에는 갈 수 있지만 어디에는 가지느 말라는 규정, 누구와는 함께해도 되지만 누구와는 함께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 등 하나님을 섬기는 규정들이 까다롭고 복잡했다. 그리고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면 아무리 멀고 힘들어도 절기를 지키러 제단이 있는 곳까지 가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방신이나 우상을 섬기는 것은 훨씬 더 쉽고 편했다. 왜냐하면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산당이나 언덕을 찾아가 거기에 모셔져 있는 이방신에게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고 향을 피우면 되었기 때문이다. 너무나 간단하고 단순했다. 그러므로 복잡하고 불편한 규정을 가진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우상이나 이방신을 섬기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까다롭고도 불편한 규정들을 가지고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왜 이런 명령을 주문하셨는지를 찾아보고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알고 순종해야 한다. 일례로 하나님께서는 왜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는지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어떤 물건도 매매해서도 아니 되고 결혼식을 올려서도 안 된다고 불평하지말고, 일주일에 엿세동안은 자신의 육체를 위해 살았으니 일주일에 하루는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라고 하셨구나 하면서 감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육체가 좋아하는 것만을 추구하다가 지옥에 떨어질 공산이 때문에 일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하나님께 나아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은 죄가 있다면 회개하고 또한 자신의 영혼에 필요한 양식을 공급받아야 한다.


다. 세번째 이유와 해결책

  셋째, 하나님을 섬기는 법으로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 것이지만 우상이나 이방신을 섬기는 곳에서는 쉽게 용납되는 것이 한 가지 있었으니, 그것은 음행허용 때문이다(호9:10,11:20). 우상이나 이방신을 섬기는 제의순서를 보면, 1부의 순서로서 우상의 제단에 음식을 바치고 그곳에 절을하고 향을 피우는 숭배행위에 이어서 2부순서가 있었는데, 그것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과 포도주를 함께 먹고 취한후에 음행을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음행의 순서는 우상을 섬기는 예식에 아예 정식으로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치고 식욕과 성욕이 없는 사람은 아아마도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식욕은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며, 성욕은 자손번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예외적으로 성을 쾌락의 도구로도 사용하는 특별한 존재다. 그러니 성의 쾌락을 즐길 수 있도록 제도화된 이방종교가 이스라엘백성에게는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왔겠는지 한 번 생각해보라.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을 사용하기는 하되 하나님의 허락하신 범위내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호3:3). 그것은 한 남편과 한 아내라는 부부 안에서만 허용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타 모든 음행에 대해서는 멀리하고 끊어야 한다.


라. 네번째 이유와 해결책

  넷째, 더욱이 우상숭배의 배후에 음란의 영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호4:11~12, 5:4). 그랬다. 그들의 우상숭배행위 자체가 이미 음행의 영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였기에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음란의 영인 귀신들이 그들 가운데서 그들을 사로잡고 있었으니, 한 번 붙잡힌 영혼들은 3~4대까지 그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출20:5).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우상숭배에 관심을 가져버리면, 인간보다 훨씬 더 강하고 힘이 있고 지혜로운 귀신들의 영향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귀신의 유혹을 뿌리치고 나오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를 죄짓게 만들고 있는 배후조종의 근원이 귀신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제압하고 쫓아버리는 것이다(막16:17~18). 이것을 위해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예수이름의 권세를 주셨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해 귀신을 제압하도록 허락하셨다. 뿐만 아니라 사도들을 통해 귀신이 사람 속에 들어오는 통로로 악용되고 있는 모든 귀신숭배행위인 제사나 추도예배, 장례에배를 금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마. 다섯번째 이유와 해결책

  이제 다섯번째 마지막으로, 자신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하나님을 버린채 힘있는 이방민족과 짝하고 교류하며 그들과 동맹을 맺었기 때문이다(후7:11, 9:3). 북이스라엘도 안전을 위해서 때로는 남쪽의 애굽나라와 협력관계를 맺기도 하였고, 때로는 북쪽의 앗수르와도 협력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였겠는가? 그렇게 되면, 주변의 이방민족의 사람과 결혼하기도 하고 그들의 풍습을 수입하기도 하고, 그들의 종교가 들어오는 것도 허락해줌으로서 이방종교의 매력에 쉽게 빠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이방민족이 섬기는 신은 귀신이지 결고 한 분 하나님으로서 창조주요 구원자인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것이다. 또한 한 분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사람의 몸을 입고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알고 오직 예수님만 구원자로 믿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들이 없음을 깨닫고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잘 섬겨야 하는 것이다(호13:4, 12:5~6, 14:3).


3. 나오며

  그렇다. 비록 하나님이 누군지를 체험하고 배웠던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하나님이 아닌 것들 곧 우상이나 이방신을 하나님으로 알고 섬길 수가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다섯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의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이방신을 섬기는 것이 훨씬 간단하고 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방종교에서는 인간의 1차적인 욕망인 성욕을 해소하도록 아예 제도로서 보장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이 우리들 배후에서 강력한 귀신들이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약한 힘을 보완하기 위해 주변이방민족과 협력관계를 맺다가 자연스럽게 이방종교이 영향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누구든지 우상숭배행위에 대한 경계를 늦춰서는 절대 아니 된다. 예를 들어본다면 우상숭배행위로서 기독교내의 추도예배와 장례예배와 같은 것들이다. 언제부턴가 감쪽같이 교회 안에까지 침투해 들어와 정식으로 예식으로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다. 큰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자기 안에 숨어있는 우상숭배요소를 찾아내어, 그것을 날마다 제거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징계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온갖 저주와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곧 암이나 휘귀병에 걸린다든지 치매나 각종사고로 말미암아 일찍 죽게 되기도할 것이다. 그리고 죽은 다음에는 우리의 소중한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찌하든지 우상에게서 우리 자신을 지켜내야 한다(요일5:21). 그리고 자기 안에 숨어있는 우상의 요소들을 찾아서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순수하고 온전한 하나님신앙만을 소유해야 한다. 건투를 빈다.


※그리고 이제는 말씀을 잘 들어보시고, 참 진리의 말씀을 온전히 전파할 수 있도록 동탄이나 오산이나 수원에서 후원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분이 있으시면 연락주십시오(010-9953-9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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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중에서 예언서들에 공히 등장하는 한 가지 독특한 표현이 있다. 그것은 '여호와의 날'이 도래할 것이라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날"이란 대체 무슨 날인가? 선지자들은 그날을 크고 두려운 날이요 심판의 날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반대도 선포했다. 그 날이 구원의 날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여러분에게 그날은 대체 어떤 날이 될 수 있을까? 그날이 구원의 날이 되기 위해 우리들이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1. 들어가며

  이사야는 남유다왕국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왕 때에 남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해 예언했던 선지자다. 시기적으로 볼 때에는 B.C.740~680년 어간에 활동한 선지자다. 그는 히스기야왕의 아들이었던 므낫세에 의해 톱으로 몸이 잘려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왕궁에서 여러 왕들을 향해 외쳤던 이사야는 남유다가 망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들을 향해 그들의 죄를 엄히 책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메시야를 보내주실 것이라고 소망을 선포한다. 이제 오늘 이 시간에 다루게 될 것은 이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회개를 촉구하는 본문으로서, 여호와의 날에 있을 메시야의 구원과 우상숭배자들에 대한 준엄한 멸망을 경고하는 부분이다. 이렇듯 이사야 2장은 여호와의 날에 있을 구원을 말하는 부분(1~5절까지)과 여호와의 날에 있을 멸망을 말하는 부분(6~22절까지)으로 나뉘는데, 오늘은 여호와의 날에 대한 개념, 남유다에 대한 구원약속의 말씀, 이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2. 여호와의 날이란 무엇인가?

  먼저, "여호와의 날"이라는 개념에 대해 살펴보자. "여호와의 날"은 이사야서에서 처음으로 언급된다(사2:12). 이 뜻은 한 마디로 여호와께서 무엇인가를 행하시는 날이라는 뜻인데 요약하면 여호와께서 심판하시는 날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여호와의 날'은 바로 심판의 날인 것이다. 그런데 이 날에 사람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게 된다. 하나는 심판을 받아 구원받을 사람들이 있고, 또 하나는 심판을 받아 멸망으로 떨어질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여호와의 날이란 개념은 이사야선지자를 비롯하여 많은 선지자들에게 의해 심판의 날이란 대용어로 사용된다. 여호와의 날을 언급한 선지자들로는 이사야(사2:12, 13:6,9), 에스겔(30:3), 요엘(1:15,2:1,3:14), 아모스(5:18), 스바냐(1:7,14), 스가랴(14:3) 등이 있다.

  '여호와의 날'이 심판의 날이라는 사실을 언급한 이사야를 필두로 그날에 대해 가장 많은 예언했던 선지자는 요엘선지자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슬프다 그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욜1:15)". 그는 그날이 보편적으로 슬픔과 고통의 날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왜냐하면 그날이 남유다에게는 파멸의 날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기 때문이다(욜2:1~2). 또한 그날에는 땅이 진동하되 하늘과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둘 것이라고 했다. 심히 두려워 당해낼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욜2:10~11). 그렇지만 그날이라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는 오히려 소망의 날이 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욜2:12~13). 뿐만 아니라 요엘선지자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사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그날이 구원의 날이 될 것이라고도 예언했다(욜2:28~32).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2:28-32)" 그렇다. 여호아의 날은 분명히 크고 두려운 날이자 심판의 날이기는 하지만, 어떤 자에게는 파멸이 주어지는 날이면서 동시에 구원이 주어지는 날이기도 한 것이다.


3. 여호와의 날에 구원얻을 자는 누구며, 멸망받을 자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여호와의 날에 구원을 받으며, 어떤 사람이 여호와의 날에 멸망을 받는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그 말씀대로 살아하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는 그날이 구원의 날이 될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역행하여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자 특별히 우상숭배를 하는 자들에게는 그날이 멸망의 날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사야서 2장은 이 두 가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언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이사야 2장은 두 부분의 예언을 기록하고 있으니, 하나는 여호와의 날이 구원받을 자들을 기록하고 있는 부분이요(1~5절), 또 하나는 여호와의 날에 멸망을 받을 자들을 기록하고 있는 부분(6~22절)이 그것이다.


4. 이사야는 여호와의 날에 구원얻을 자는 누구라고 묘사했을까?

  이사야는 먼저 말일에 있게 될 구원의 여호와의 날에 대해 언급한다(사2:1~5). 이 날은 하나님의 전의 산 곧 시온산과 예루살렘이 모든 산들과 도시들 위에 우뚝서게 될 것이며, 모든 민족이 그리로 몰려올 것인데, 이는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선포되고 가르쳐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전쟁을 그칠 것이고 평화로이 거주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언제 이러한 예언이 성취되었을까? 남유다가 바벨론에서 70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귀환할 때였을까? 아니었다. 그때에 만방이 그리로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후로도 계속해서 전쟁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2:1~5에 등장하는 시온산과 예루살렘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늘의 참된 평화를 가져오신 예수님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시온산이 하나님의 전의 산이 된 것은 다윗왕 때인데, 다윗왕이 시온산에 법궤를 안치하면서 그 산이 하나님의 전의 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법궤'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약 천년뒤에 시온산이 있는 예루살렘에 오셔서 자신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신 분이 있었으니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요2:19~22). 그리고 예수께서 거기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에,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여기서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성"이란 뜻으로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평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5. 여호와의 날에 대한 성취는 언제 도래할 것인가?

  그렇다면, 말씀이 나오고 평화가 도래하는, 구원의 날은 언제 궁극적으로 성취될 것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시일 것이다. 그날에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가르쳐질 것이고, 악이 제거되고 완전한 평화가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날이 인류 역사가운데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요엘서를 근거로 그날을 진단해보면, 행2장(오순절날)에서도 1차적으로 그날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전세계의 15개국에서 사람들이 절기를 지키러 시온산이 있는 예루살렘에 왔다가 베드로로부터 회개와 평화의 복음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온 땅에 회개와 평화의 복음이 전파됨으로 영적인 참된 평화가 도래하기 시작했다. 결국 누가 심판하시는 여호와의 날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요 회개하는 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이 육화되신 예수님을 사모하고,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라도 그날에 열방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다 성령 하나님이 오심으로 가능한 일이기에, 예수께서도 이미 공생애기간 중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나오며

  그렇다. 여호와의 날이란 곧 심판의 날이다. 하지만 그 날에 구원받을 영혼들이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자들이다. 당신은 지금도 얼마나 말씀을 사모하고 있는가? 그리고 죄를 얼마나 잘 처리하고 있는 자인가? 어찌하든지 우리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그날이 우리에게 복된 날이요 기쁨의 날이요 구원의 날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주에는 그날에 멸망받을 자는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이 심판의 날에 멸망을 가져오게 하는 것인지를 살펴볼 것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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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해보지만 왜 자신의 인생은 잘 풀려지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자신의 신앙이 견고해지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에게도 북이스라엘민족의 신앙관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호세아선지자는 그들을 향해 하나님을 알되 힘써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외쳤다. 우리도 무엇이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이것을 바로 잡지 않는 한 우리의 신앙도 그대로이거나 퇴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안에 들어있는 북이스라엘민족이 가진 잘못된 신앙관, 오늘은 그것이 내게 있는지 살펴보록 하자.


1. 들어가며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은 대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어떤 이는 자기딴에는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내 인생은 풀리지 않고 내 인생은 이리 고달프며, 하나님께서는 왜 나에게만큼은 이리도 가혹하게 대하시는가하고 불평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신앙이 잘못된 신앙인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오늘도 자기의 기도가 부족한 것을 탓하고, 자기가 예물을 적게 드린 것이 문제인가를 고민할 뿐이다. 아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은 내가 생각해 낸 신앙이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적어도 우리의 생각의 잣대로 세워놓은 기준에 맞는 신앙은 아닌 것이다. 그 신앙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원하시는 신앙이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신앙이라는 것이 내 기준에 따라 되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필히 혼합주의적인 신앙형태 내지는 미신적인 신앙으로 흐르고 말 것이다. 지금 나의 신앙은 과연 어떠한가? 순수한 신앙인가 아니면 미신적인 신앙인가?


2. 하나님의 강력한 권고

  북이스라엘의 후반기에,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보내어 북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알되 힘써서 여호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권고하셨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는 신앙이 뭣인가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의 신앙으로는 구원받을 수가 없는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열심을 낸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요구하시늕 신앙을 가져야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당시 북이스라엘 사람 중에는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자들이 거의 없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보내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되 힘써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권고하신 것이다.


3.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여호와를 제대로 알지 못했을까?

  그렇다면,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여호와를 제대로 알지 못했었는가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얼핏 표면적으로는 북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신앙을 가질 수 있는 주변의 환경적인 요소가 매우 적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한편 내면적으로는 여호와 하나님보다는 우상이나 이방신을 더 섬기려는 마음이 그들에게 컸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상이나 이방신을 섬기기가 훨씬 쉬웠고 그리고 그것이 매력있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북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을 알되 힘써야 알아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던 것이다.


4. 하나님을 알되 힘써서 하나님을 알라는 뜻의 의미는?

  이때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 곧 하나님을 알되 힘써서 알라는 뜻은 대체 무엇일까? "알다"는 뜻의 히브리어는 "야다"라는 동사다. 야다라는 동사는 알기는 알되 인격적으로 알고 소상하고 친밀하게 아는 것을 가리킨다. 즉 북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 석 자 정도를 아는 것이 아니다. 혹여 여호와께서는 신이다는 정도로 아는 것이 아니다. 그분께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정도도 아니다. 그분의 말씀 한 마디만 들어도 그분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릴 정도의 앎을 가리킨다. 당신도 이렇게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5. 힘써서 하나님을 알지 아니하면 안 되는 이유

  그렇다면, 북이스라엘 백성이 왜 힘써서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왜냐하면 그들이 알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과 실제의 여호와 하나님은 달랐기 때문이다. 실상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갖고 있는 신앙은 혼합주의적 혹은 미신적인 신앙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랬다. 그들에게 주어진 순수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잃어버린 채 이방신이나 우상도 하나님으로 섬기는 이상한 신앙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도 하나님처럼 섬기는 미신적인 신앙, 혼합주의적인 신앙을 갖게 된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참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환경적인 요소가 적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다. 먼저는 10개 지파가 살고 있는 북이스라엘에는 남유다와 같은 참된 성전도 없었고 참된 제사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려주는 율법말씀도 없었다. 그렇다면 북이스라엘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B.C.931년경 북이스라엘의 제1대 여로보암 왕의 잘못된 신앙정책 때문이었다. 통일왕국의 3번째왕이었던 솔로몬의 통치를 이어받은 르호보암왕의 등극 초기때의 일이다. 북쪽지파의 대표자인 여로보암이 르호보암왕께 찾아가 물어보았다. 솔로몬왕은 세금을 많이 거둬들이고 많은 노동력을 요구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말이다. 그러자 르호보암왕은 솔로몬왕 때보다 더 강력한 정책을 펴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여로보암과 10개의 지파가 등을 돌렸고, 그래서 북쪽에 10개 지파로 구성된 나라를 세우게 되었다. 이때였다. 북쪽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왜냐하면 북쪽에는 남유다처럼 성전도 없었고 제사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여로보암왕은 북쪽지역의 두 장소인 벧엘과 단에 제단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송아지형상을 만들어놓은 뒤, 그 형상을 애굽땅에서 자기들을 이끌어낸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가르치고 말았다. 여호와 하나님과 우상을 섞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레위계통의 제사장이 없으니 일반 평민중에서 제사장을 세웠다. 그리고 혹시 북쪽사람들이 절기를 지키러 남쪽 예루살렘에 갈까봐 7월 15일이 아닌 8월 15일이 절기로 바꾸어 그 날을 지키라고 가르쳤다. 결국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벧엘과 단에 가서 거기에 세워져 있는 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알고 섬기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거짓 제사장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웠으니 여호와 하나님 신앙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송아지 우상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섬기게 되었고, 그러한 신앙관은 자기동네의 동산이나 높은 산 위에도 신상을 만들어놓고 섬기는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북이스라엘의 제13대 여로보암2세 때의 일이다. 놀랍게도 이 시기는 북왕국이 창건된 이래 가장 큰 경제적 부흥과 정치적인 성장을 이룬 시기가 되었다. 그것은 사실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었다. 대외적인 요소가 작용한 것이었지만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다르게 해석했다. 다시 말해, 자기들이 산당이나 동산에 세워두고 섬긴 신들이 자기들에게 복을 준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 더욱더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신들을 섬기는 일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그러자 북이스라엘에는 포도나무의 수많은 열매처럼 수많은 제단들을 만들어 섬겼고 수많은 신들을 만들어 섬기게 되었던 것이다(호10:1~2). 그러면서 우상들을 여호와라고 섬기는 자들도 있었고, 우상들인데도 그것을 여호와와 동급의 신들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다. 결국 절대주권을 가진 여호와 하나님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고, 여호와하나님도 다른 신들과 동급의 신으로 전락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더욱이 이방인들의 신인 바알과 아세라신은 그들에게 더욱더 매력적이었으니 이 신들은 음행을 권장하는 신이었기에, 포도주에 취한 채 한 번 음행에 맛을 본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급격히 이방신들에게 동화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는 산당의 푸른나무 아래에서 포도주를 마시고 음행을 저지르는 일도 서슴치 않고 행하게 되었다(호4:13).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것을 두고 볼 수 있었겠는가!

  그러자 B.C.722년경 이제 심판의 시기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눈치챈 호세아선지자는 그들을 향해 강력히 외치게 되었다. 이제 곧 있으면 절대주권자인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과 이방신을 숭배하고 음행을 저지른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2가지를 말했다. 첫째는 자기들이 절대주권자인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버리고 혼합주의적인 신앙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과(호6:1~2) 둘째는, 이제는 힘써서 여호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호6:3).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몰라 우상을 숭배하고 있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회개하기만 하면 과거의 잘못은 다 용서해주실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하나님을 힘써 알려고 하면 그분은 그들에게 나타나 자신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줄 것이고 풍성한 복을 주실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후에 북이스라엘은 과연 어떻게 반응했을까? 놀라지 말라. 그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하나님이 누군지 아는 것을 거부하고 말았다. 그냥 우상을 섬기고 이방신을 섬기는 것을 계속했던 것이다. 그것이 좋았기 때문이었으리라. 결국 그뒤로 몇 십 년이 지나기도 전에 개선의 여지가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게 된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패망하였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는데, 두 번 다시 나라를 세우지 못했다. 영원히 안녕이었던 것이다.  


6. 나오며

  그렇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기기 생각과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겨서는 멸망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정확히 알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제사를 잘 드리고 번제를 잘 드리는 자를 복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여전히 그러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한다. 하나님은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고 그분을 섬기는 것을 기뻐하시건만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려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내 백성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도다"(호4:6). 그렇다. 우리도 무턱대고 하나님을 섬기되, 자기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려 해서는 아니 된다. 그렇게 섬기다보면 끝내는 북이스라엘 꼴이 날 것이다.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기록된 성경말씀에 따라서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섬겨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이 누군지를 배우기를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섬길 수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진정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분을 섬겨야 한다. 예를 들어, 그분은 우리에게 무조건 헌금을 요구하시기보다는 우리에게 회개할 것을 요구하신다. 인간은 어리석기에 그리고 사탄의 미혹에 늘 넘어지기에, 과거에 어떤 잘못을 했더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 용서해주시는 그러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내 가정과 내 육신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고만 하지말고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파악하고 빨리 회개부터 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이것이 바른 순서요 하나님의 마음이다.

  오늘날 우리들도 자칫 잘못하면 북이스라엘처럼 미신적인 신앙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자신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혼합주의적인 가짜신앙을 하고 있는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미신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었다. 그렇지 아니하면 10년 20년 아니 50년을 신앙생활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모른채, 빗나간 신앙생활을 하다가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미신적으로 믿어서 아니 된다. 자기 방식대로 믿어서도 더욱 아니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나와있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제대로 알려면 성경을 보라. 성경을 그대로 가르쳐주는 목회자를 만나라. 그래야 바른 신앙을 가지고 바른 신앙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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