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42) 회개할 자범죄는 무엇인가?(23) 거절의 죄(눅19:1~10)_2020-01-14(목)

https://youtu.be/6i-jgC9hOWU  [혹은 https://tv.naver.com/v/17963928  ]

 

1. 거절이란 무슨 뜻인가요?

  거절이란 상대방의 요구와 제안 그리고 부탁 따위를 받아들이지 않고 물리치는 것을 가리킵니다. 

 

2. 거절의 죄란 무엇인가요?

  거절의 죄란 거절의 영에 붙잡혀 거절을 못하고 남에게 부탁하지도 못해 일평생을 쩔쩔매며 살면서 자신을 학대시키며 자신을 아름답게 지으신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는 죄를 가리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신이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을 타고난 것으로 스스로를 생각하지만, 사실은 남이 나에게 부탁이나 제안을 할 경우 그것을 거절하지 못하게 하는 영이 내게 작용하여 결국 무리해서라도 상대방의 청을 들어주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이 내가 무엇인가를 요청하면 들어주지 아니할까봐 아예 부탁조차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은 시간이 없어서 혹은 능력이 부족해서 내 부탁을 안 들어준 것 뿐인데, 나는 그가 나 자신을 거부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는 상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남에게 부탁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일은 협력해서 일해야 하는데 자기 혼자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중한 일감 때문에 쉬지 못하고, 어떤 경우에는 내 일도 하지 못한 채 남의 일 봐주다가 그만 지쳐 쓰러지기도 합니다. 

 

3. 거절당함의 영이 자리잡고 있을 때에는 어떤 현상들이 나타나나요?

  거절의 영에 사로잡히면 무리해서라도 상대방의 요청을 들어주려고 합니다. 그러한 현상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가문과 그 집안에 흐르는 영들 중에서 "거절의 영"에 붙잡혀 있을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의 경우는 보통 태아 때부터 거절당함을 경험한 자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출생후 어린 시절을 부모와 가족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늘 소외당하고 외면당한 채 살아온 자가 커서 그러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받은 어릴 적 상처 때문에 일평생 뒷치닥거리만 하다가 그리고 남에게는 부탁도 못해본 채 불행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거절의 영"의 특징은 자기를 숨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은 거절의 영 때문에 자기가 그렇게 살고 있는지를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은 거절당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공부에 전념하기도 하고, 일에 대한 성취를 통해서 그것을 만회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도 쉼이 없고 불안하고 초초해합니다. 그래서 소기의 성과를 내지 못하면 막 자기자신에게 짜증을 냅니다. 철저주의자, 완벽주의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거절의 영이 강할수록 그는 부모나 가족이나 자기가 속한 공동체나 상사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가면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빠지기도 합니다. 

 

4. 거절의 죄는 어떻게 발전하나요?

  그러므로 거절의 영에 붙잡힌 자는 그것이 적극적인 것으로 발전할 경우에는 공부중독이나 일중독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소극적인 것으로 발전하면 외로움과 고독함, 우울과 자포자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좌절과 절망의 늪에 빠져 들어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거절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5. 거절의 죄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거절의 죄는 태아 때부터 환영받지 못했던 것에 대한 상처로부터 생기는데 이는 이미 가문에 있는 거절의 영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절의 영을 우리 몸에서 제거해야 하며,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는가를 알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 거절의 죄를 회개하기 위해서는 먼저는 자신을 그러한 환경에 빠뜨렸던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었음을 받아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거절의 영을 꾸짖고 쫓아버려야 합니다. "거절의 영은 지금 내게서 떠나가라!" 셋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고 우리가 주님을 버리지 않는 한 주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복음서 전체를 읽어보십시오. 예수께서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테스트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사람의 어떤 조건을 보시지 않았으며, 어떤 조건을 들어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의 과거를 가지고 현재의 상황을 정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혔기에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여인에게도 주님은 돌로 치라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백성의 세금을 뜯어 로마에 바치는 매국노라할지라도 "너는 동네사람들로부터 멸시천대를 받아도 싸"라는 생각이나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동네사람도 다 외면하고 버리고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주님의 그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찾고 구하는 모습에 더 과분하게 반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고 언제나 새롭게 시작하고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넷째, 선포하십시오. "혹시 내 부모는 나를 버릴지라도 우리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고 있다. 이 세상에 나는 나밖에 없다. 나는 주님께 소중한 자요 존귀한 자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남에게 무엇인가를 요청할 때에는 "가능하다면 도와줘"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상대방이 거절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부탁하면 쿨하게 부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거절을 확대해석하지 말라. 그냥 받아주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점차로 거절의 영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2021년 01월 14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41) 회개할 자범죄는 무엇인가?(22) 좌절과 낙심의 죄(히12:3~6)_2021-01-13(수)

https://youtu.be/s7LJ88ia0Hg  [혹은 https://tv.naver.com/v/17916458 ]

 

1. 좌절과 낙심은 언제 생기나요?

  사람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시도해보았으나 하는 것마다 안 될 때 낙심하게 됩니다. 바라던 일이 이루어질듯 하다가도 계속해서 실패하게 될 때 결국에는 낙심하고 좌절하게 되는 것이죠.

 

2.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왜 자꾸 안 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은 자꾸 실패하게 되는 것인가요? 또한 시험을 쳤는데 합격할듯 합격할듯 하면서도 끝내 합격하지 못하는 것인가요? 열심히 돈을 벌기는 하는데, 왜 사기당하고 빼앗겨 결국 돈을 모으지 못하는 것인가요? 자녀가 머리가 멍청한 것 같지는 않은데 왜 공부를 안 하거나,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성적은 오르지 않는 것인가요? 왜 어떤 집안에서는 이혼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이 나오고, 살인사건이 있으며, 일찍 죽는 사람이 발생하는 것인가요? 이 모든 것에는 개인적인 사정도 있겠지만 실은 가문과 관련된 영들이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세대와 가문의 영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요?

  모든 사람 속에는 귀신들(뱀들=세력들=영들)이 있습니다. 죄짓지 않고 살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 속에만 세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밖에도 세력들이 있는데, 자기자신의 둘레 사방 2m 안에는 세대의 영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공중에는 가문의 영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세대의 영"이라 함은 자기의 조상 1대와 2대와 3대와 4대까지 역사했던 영들(귀신들, 용들,악령들)을 가리킵니다(출20:4). 이러한 세력들은 세력이 좀 크기 때문에 "용"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은 공중 500m~25.km 사이에 커다란 용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가문의 영들"입니다. 수경 수조 단위의 귀신들이 뭉쳐서 한 마리의 용을 만들어 형성된 것입니다. 이러한 영들에는 지금까지 선조 때부터 수십 대에 걸친 영들로 뭉친 것이기 때문에 실은 그 숫자가 엄청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가문의 영들을 종합해보면 그것을 숫자로 정리할 수 있는데, 제일 많이 있는 영들로부터 시작하여 제일 적게 있는 영들로 분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가문은 "혈기과 분노의 영"이 1순위이고, 2순위에는 "실패하게 하는 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3순위로 "속임의 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집안은 싸움이 늘 끊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늘 실패하게 됩니다. 더욱이 자주 사기를 당하여 재산을 잃게 됩니다. 모을만 하면 잃어버리고 모을만 하면 잃어버리는 일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는 가문의 영이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사기당하고 공부못하거나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게 하는 영은 어떤 영인가요?

  보통 사람이 자꾸 사기를 당하게 되는 것은 자기가 사람을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상당 부분은 자기의 가문에 "속임의 영"이 많기 때문입니다. 속임의 영이나 사기의 영이 있으면 사람은 늘 사기당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기나 속임의 영은 자기의 조상들이 어떤 죄를 지어서 된 것일까요? 그것은 자기의 조상 중에 무당과 점쟁이가 있었거나 그들을 잘 섬겼던 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무당은 늘 사람을 사기치고 거짓말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공부못하거나 시험에 늘 떨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자기의 가문에서 조상제사와 같은 제사를 지극 정성으로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자식이 공부할 마음을 좀처럼 잡지 못합니다. 다음날이 시험인데도 당일 저녁에 게임을 합니다. 그리고 시험을 쳤으나 합격할듯 합격할듯 하지만 1~2문제 차이로 늘 낙방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가문 위에 조상제사로 말미암아 들어온 영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조상제사를 지내는 가정에 보통 무지와 무능하고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5. 실패와 좌절과 낙심케 하는 영들은 어떻게 제어할 수 있나요?

  자기는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잘 안 되는 것은 가문을 영안으로 보면 그 가문 위에 실패하게 하는 영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만 하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열심히 했을 때에 그 결과가 나오도록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럴려면 다음과 같은 3가지를 먼저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세대와 가문의 영을 철저히 회개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상숭배의 죄들(조상제사, 부처와 불교, 무당과 점쟁이, 미신과 잡신)를 철저히 회개하는 것입니다("회개기도문"이 없으시면 교회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자기와 타인 그리고 악한 영들과 십자가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이나 영들과 나 사이에 십자가를 세우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사탄마귀의 머리가 박살난 장소이고, 악한 영들이 무장해제당한 장소이기에, 우리는 영적으로 그러한 영들과 나 사이에 십자가를 세우면 효과가 있습니다(더 제사한 것은 이미 올라가 있는 영상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보호가 순간적으로 임합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친가 1대와 십자가 세운다. 친가2대와 십자가 세운다...", "내 세대의 모든 영들과 십자가 세운다" 등등. 이처럼 "십자가를 세우는 것"은 귀신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영적인 시도이기에 중요합니다. 셋째, 나 자신과 적들(귀신들)을 향해 명령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결코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나는 축복받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가문을 새롭게 일으켜 세울 것이다." 그리고 "이 악한 영들아, 너와 나와는 이제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게서 떠나가라" 이러한 명령과 선포는  나에게 선포하고 그리고 적들에게 명령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고 십자가 세우지 않은 채 명령과 선포를 하면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1년 01월 13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40) 회개할 자범죄는 무엇인가?(21) 불충성의 죄(마25:14~23)_2020-01-12(화)

https://youtu.be/tNtrFK4iaT0   [혹은 https://tv.naver.com/v/17898007  ]

 

1. 불충성의 죄란 무엇인가?

  불충성의 죄란 충성하지 않은 죄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맡은 일에 충성하지 않은 것입니다. 맡겨진 일에 신실하지 않게 행동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죠. 이런 사람은 보통 조삼모사합니다.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변덕스럽습니다. 그리고 늘 짜증냅니다. 자기자리를 지키지 못합니다.

 

2. 충성이란 어떤 뜻인가요?

  그렇다면, 불충성의 반대는 "충성"은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그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직무에 한결같이 성실하게 임하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맡겨진 일과 자리를 끝까지 신실함으로 지켜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특별히 "충성"이라는 헬라어단어는 "충성"이 어떤 의미인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사실 헬라어에서 "충성"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문맥에 따라서 다른 단어가 그 뜻으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헬라어로 "충성"이라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피스티스"입니다. 피스티스는 보통 "믿음"으로 번역된 단어입니다. 하지만 문맥에 따라 그것은 "충성"으로도 번역되는 것입니다. 어떤 문맥입니까? 주인이 있을 때입니다. 주인이 무엇인가를 맡길 때에 등장하는 "피스티스"는 "충성"이라고 번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헬라어로 "피스티스"는 믿음, 신실함, 신뢰성, 엄숙한 약속, 확신, 충성으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고전4:2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그렇습니다. 맡기는 자가 있고 그것을 맡은 자가 있을 때, 맡은 자에게 필요한 것이 "충성됨, 신실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5장에 보면,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나오는데 그중에 "충성"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 역시 헬라어원문을 보면, "피스티스(믿음)"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인과 관련지어서 쓰일 때에는 "충성"이란 뜻으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3. 백마를 타시고 재림하시는 분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적그리스도의 세력들 곧 사탄에 속한 천사들과 왕들과 사람들을 처단하기 위해 재림하시는 예수의 모습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그분의 이름을 "충신과 진실"이라고 했습니다(계19:11). 여기서 "충신"은 "피스티스"의 형용사형으로 "피스토스(충성스러운)"라는 뜻이며, "진실"은 "알레데이아(진리)"의 형용사형태인 "알레디노스(참된, 진실한, 거짓이 없는, 진리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도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을 때에는 아버지의 말씀에 충성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원래 하나님이지만 아들로서 사실 때에는 항상 아버지를 가리켜서 "나를 보내신 자"라고 하시면서 충성했던 것입니다. 이는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아 이 땅에 그 일을 수행하는 자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사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아들로서의 사역은 재림과 심판까지인데, 그중에 재림의 장면이 요한계시록 19장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때도 역시 주님은 "충성"과 "진리"일 것입니다.

 

4. 충성된 자에게 주시는 상은 무엇인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맡겨진 일에 충성된 자에게 놀라우 상을 허락하십니다. 그것은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계2: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이 말씀은 고난과 핍박받고 순교하는 교회를 상징하는 "서머나교회"에게 주신 말씀인데, 주님께서는 고난 중에서 믿음이 변치 않고 충성한 자들에게 한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죽도록(죽기까지)" 충성했던 자들에게 주시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주님과 복음을 위해 내놓은 자들을 위해 주님께서는 천국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자들은 장차 결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할 것입니다(계2:11)" 

 

5. 어떤 자가 불충성한 자이며 그런 자는 어떻게 이것을 극복할 수 있나요?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비유는 대표적인 충성됨에 관한 비유말씀입니다(마25:14~30). 어떤 주인이 3명의 종들에게 각각 그의 능력을 따라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그런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맡은 자는 가서 열심히 일했습니다("장사했다"는 번역은 잘못된 것임). 그래서 또 자기가 받은 만큼의 분량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것을 땅에 감추었다가 주인이 돌아오자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 종은 주인이 왜 자기에게 그것을 맡겼는지를 전혀 몰랐습니다. 맡겨진 충성된 자에게 더 큰 것으로 맡겨주시려는 뜻이 있음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능력대로 주신 것인데, 자기에게는 적게 주었다고 주인은 인색한 사람으로 나쁘게 생각했습니다. 작은 것에 충성하면 더 큰 것으로 맡겨주시는 주인의 뜻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불충성된 자였습니다. 그런데 맡겨진 일에 신실하지 않은 자에게 하나님은 더 이상 다른 것을 맡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못했던 분들은 자기를 홀대했다고 불평불만했던 것을 거두어들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을 불충성으로 이끌어가는 사탄의 영을 쫓아내야 합니다. 사탄은 처음부터 주인에게 충성하지 않은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맡겨주시던지 맡겨진 일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큰 것으로 맡겨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1년 01월12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39) 회개할 자범죄는 무엇인가?(20) 앙심과 서운함의 죄(왕상21:1~10)_2021-01-11(월)

https://youtu.be/KKow5hQ_JsU  [혹은 https://tv.naver.com/v/17851220  ]

 

1. 앙심과 서운함의 죄란 무엇인가?

 앙심이란 서운함이 발전하여 원한을 품고 앙갚음을 하려고 벼르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이런 앙심을 품고 있는 분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서운함 곧 섭섭함의 죄에는 많이 빠져 있습니다. 서운함의 죄는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저지르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것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서운함의 영과 앙심의 영이 계속해서 치고 들어올 것이며, 이러한 죄는 결국 원망과 불평의 죄, 미움의 죄로 이어질 것이고, 혈기와 분노의 죄를 거쳐 살인의 죄까지라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2. 왜 서운함이나 앙심의 마음이 생기게 되는가?

  어떤 기대를 가지고 했는데 거기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때 사람은 서운한 감정을 갖게 됩니다. 적어도 무슨 일을 했을 때, 칭찬과 인정을 받으려는 마음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때 인정받지 못하면 사람은 서운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왜 서운하겠습니까? 그것은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 앞에 잘 보이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고 칭찬도 해주지 않기 때문에 섭섭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모든 일을 사람 앞에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에게 꼭 인정받고 칭찬받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부모가 인정해주지 않고, 목사님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섭섭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운한 감정은 죄가 아닌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서운한 감정은 다른 영들(귀신들)을 불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깊은 생활회개 기도문(유하출판사, 2016)"을 쓰신 김석곤목사님은 마귀가 쓰는 앙심과 서운함은 전방위적인 마귀의 공격무기라고 했습니다. 앞서 보내서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기 위한 계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운함의 마음은 미움으로 발전하든지 아니면 자기를 내치는 것 같으면 비꼬는 모습으로 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3. 서운함과 앙심의 영은 어디에 주로 어디에 거주하고 있는가?

  만약 우리가 무슨 일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버리지 못하고 사람에게 칭찬을 들으려는 욕구로 일을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서운함의 영과 앙심의 영에게 붙들리게 될 것입니다. 특히 서운함의 영은 우리의 뇌를 사용하기 때문에 머리에 많이 감겨 있으며,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미움이 자리잡기 때문에 또한 심장도 많이 감고 있습니다. 그러면 거기에서부터 원망과 불평, 짜증이 올라옵니다. 특히 자아가 강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자신을 섭섭하게 대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더 깊이 그 감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더욱더 그 영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다른 사람에 비해 나는 더 섭섭병에 더 잘 걸리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조상들 중에 그와 비슷한 일로 인하여 앙심을 품고 죽게 한 일이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함을 해서 죄인을 만들고 한 집안 전체를 한이 맺히게 만든 조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후손이 앙심과 서운함의 죄에 쉽게 노출되고 그 영이 침범해 들어오게 되면 그냥 시험에 들고 마는 것입니다. 

 

4. 서운함과 앙심의 죄를 지은 대표적인 성경의 인물은 누구인가요?

  그런데 성경에 보면 서운함과 앙심의 죄를 지은 인물이 나옵니다. 그것은 북이스라엘의 7대왕이었던 아합왕과 이세벨 왕비입니다. 아합왕은 이세벨에 비하면 늘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이세벨은 완전히 여장부같은 사람이었죠. 그의 딸 아달랴가 남유다에 시집갔는데 남유다를 쑥대밭 만들고 일시적이지만 왕권을 찬탈한 자가 바로 아달랴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이세벨와 똑같은 성질을 지녔던 자입니다. 그런데 앙심과 섭섭함의 죄는 아합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아합은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이었으며며 자기를 칭찬하면 쏙 잘 넘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대국 아람나라 벤하닷왕이 전쟁을 일으키려고 했습니다. 그는 그전에 사신을 보내 아합왕에게 엄청난 것을 요구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은금과 처자식을 종으로 내놓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고민해 빠집니다. 대신들의 말을 들은 아합왕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하려 보냅니다. 그러자 전쟁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북이스라엘이 전쟁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아람나라의 벤하닷은 전쟁을 소홀히 하다가 큰 코 다칩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전열을 가다듬어 수십만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북이스라엘을 침범해들어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어 전쟁에 승리할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그래서 아합왕은 아람보병 10만명을 죽이고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벤하닷왕은 항복선언과 함께 아부를 떨며 아합왕을 추켜 세웁니다. 그러자 그를 살려보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아합을 불러 책망을 합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합왕은 기고만장해서 이스르엘에다가 자신의 별궁을 짓습니다. 그런데 나봇의 포도원이 문젯거리입니다. 통로가 모자랐는지 아니면 정원을 꾸미려고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땅을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봇은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화가난 아합왕은 침상에 눕고 밥도 먹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얼마든지 보상해주겠다고 하는데 왜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지 화가 난 것입니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이세벨이 나서서 나봇을 모함하여 돌에 맞아죽게 만듭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아합왕에게 보냅니다.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면서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것처럼 네 몸의 피도 핥게 될 것이다"고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집안에 그것 때문에 재앙을 일으켜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가 죽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앙심을 품고 나봇을 죽인 이세벨도 개들이 와서 먹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합왕도 적이 쏜 화살에 심장을 맞아 피가 흥건히 고인 상태에서 수레에서 죽고 말았고, 이세벨은 높은 별궁에서 땅에 던짐으로 인하여 몸이 텨져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정말 개들이 와서 그녀의 몸을 핥았습니다. 그리고 아합왕의 자녀들 70명도 예후장군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앙심의 죄는 살인죄로 이어졌고, 그의 후손이 비참한 결과를 얻게 된 것입니다. 

 

5. 앙심과 서운함의 죄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요?

  앙심과 서운함의 죄는 사탄이 간을 보고 마음을 빼앗기 위해 시도하는 첫번째 계략전이기 때문에 사실 싹부터 잘라내야 합니다. 서운함의 생각을 거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앙심과 서운함이라는 것이 사탄의 쓰는 계략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둘째, 이미 앙심과 서운함의 마음을 갖고 있다면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사탄의 들어오는 문을 열어준 것을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앙심과 서운함의 영을 꾸짖고 쫓아보내야 합니다. "나는 서운함을 대적한다. 이 더러운 앙심의 영아, 내게서 떠나가라. 나는 하나님만 보고 일할 것이다. 나의 보상은 주님이 하신다. 이 더러운 것은 떠나가라."라고 말이죠. 그리고 넷째, 이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을 바라보고 일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하늘에서 받을 상을 기대하면서 기쁨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1년 01월 11일(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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