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32) 회개할 자범죄는 무엇인가?(13) 의심의 죄(막11:20~24)_2020-12-30(수)

https://youtu.be/2Fnm0MQnazg  [혹은  https://tv.naver.com/v/17560658 ]

 

1. 의심의 죄란 어떤 죄를 가리키나요?

  의심의 죄란 과학적인 것이나 증명할 수 있는 것만 믿으려하는 불신앙의 죄를 가리킵니다.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은 못믿겠다는 입장인데, 사실 기독교신앙은 믿음이 없다면 어떤 것도 누리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아서, 이러한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님께로부터 얻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약1:6~7). 사실 믿음으로서만이 모든 세계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심으로 창조했다는 것도 알 수 있고, 나타난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그림자요 모형에 불과하다는 것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히11:3). 특별히 사람이 믿지 못하겠다는 내용은 첫째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며, 둘째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특히 성경에 기록된 초자연적인 역사와 기적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며, 넷째로, 영적인 모든 것들 곧 천사와 귀신, 천국과 지옥 등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다섯째로, 하나님께 기도해도 소용없다는 것이며, 여섯째로, 자신이 바라고 소망해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불신앙의 죄들이 바로 의심의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의심의 죄는 어떻게 해서 더 배가되나요?

  의심의 죄는 보이는 물질세계의 법칙만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지나치게 작용한 것으로서, 사실 이 세상은 보이는 물질 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가 공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물질세계만을 인정하고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를 부정하고 불신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는 다 사람에게 역사하고 있는 "의심의 악한 영"과 "불신의 악한 영"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의심해야 할 것은 의심하지 않고, 의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의심하는 데에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믿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믿지 않고 의심하였으며, 믿지 말아야 할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버지였던 마귀(타락한 천사들의 우두머리)의 말은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의심하는 모든 것을 다 죄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누가 말을 하는데 그것이 성경에서 빗나간 것인지, 성경을 인용한 교묘한 속임수는 없는지 살펴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고로 승천하신 예수께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 가운데 에베소교회를 칭찬하실 때에, 자칭 사도라고 말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가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에 대해서는 칭찬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계2:2). 이단이나 거짓된 가르침은 의심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좀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진정 의심하지 말아야 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의심하면서,정작 의심해보아야 할 마귀와 마귀의 말을 의심하지 않은 것이 진짜 문제인 것입니다. 

 

3.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사람이 믿어야 할 하나님과 믿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의심하다 보면 "의심의 영"이 와서 달라붙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불신의 영"이 추가로 더해집니다. 이러한 영들은 주로 사람의 머리와 가슴 속에 들어와서 달라붙는데, 그러면 이해하려는 이성의 기관인 혼(생각과 감정의 의지)만 발달되지만, 영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는 영을 그만 약해지고 맙니다. 사실 지구상의 피조물들 가운데 오직 사람만이 영의 세계에도 속한 존재로서 영의 능력을 경험하고 살 수 있도록 지음받았음에도오 불구하고, 영의 세계에 속한 초자연적인 일들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사는 불쌍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4. 사람이 의심하게 되면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나나요?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은 세계를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보이는 물질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사람은 보이지 않은 영의 세계에 속한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보이는 세계를 관장하는 혼(생각과 감정과 의지)만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와 교통하는 영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영의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늘 의심하고 믿지 못하면 사람은 영으로서 누릴 수 있는 수많은 많은 능력들과 유용한 혜택을 다 놓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첫째, 소망하고 바라는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누리고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막11:23). 둘째, 기도하고 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막11:24). 기도는 영의 세계를 물질의 세계로 가져오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일들을 경험하지 못합니다(마14:30-31, 21:21~22). 넷째,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누리지 못합니다(시32:8). 

막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막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약1:6-7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마14:30-31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마21:21-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시32:8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5. 의심을 제거하고 믿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람이 의심과 의심의 영에서 벗어나 믿음으로 살아 보이지 않는 세계의 초자연적인 일들을 경험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3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보이는 것만 믿으려고 했던 어리석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시공간에 영의 세계가 개입하게 되면 모든 이 세상에 속한 물질의 법칙은 정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17:17,20). 둘째, 세상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하여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변하지 않으며, 기록된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믿었으면 또한 이미 받은 줄로 믿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샤벳도 믿은 자에게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눅1:45). 그럼 처녀 마리아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을까요? 그것은 성령이 그녀 위에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그녀와 함께 하면, 처녀이어도 얼마든지 사람을 잉태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능치못함이 없다고 믿는 순간, 그녀의 자궁에 예수께서 잉태되었던 것입니다(눅1:37). 셋째, 이미 이루어진 결과를 미리 상상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행2:17). 왜냐하면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환상을 보게 하고 꿈도 꾸게 하며 미래의 일까지도 알려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을 사용할 줄 모르는 분들은 자신의 기도와 소망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믿고 영을 사용해서 미리 상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그 영의 세계에 들어가서 그 속에서 내 삶의 문제를 타파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의 세계에서 일어난 일이 실제의 물질세계에서도 일어나게 됩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0년 12월 30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31) 회개할 자범죄는 무엇인가?(12) 게으름의 죄(마25:24~30)_2020-12-29(화)

https://youtu.be/FZEyao30YWw  [혹은 https://tv.naver.com/v/17533532  ]

 

1. 게으름의 죄란 어떤 것인가요?

  "게으름"이란 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나 버릇을 가리키는 말니다. 그렇다면, "게으름"은 죄가 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달란트 비유(마25:14~30)를 통하여,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 책망하시기를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말씀하셨으며, 그 사람이 머물 최후의 장소가 "바깥 어두운 곳"이라고 하셨으며, 그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간다는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게으름도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착하고 충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2. 게으름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가리키나요?

  게으름이란 먹기는 탐하지만 노는 것이나 수다떠는 것은 즐기며, 세상일에는 아낌없이 시간을 쓰지만 영적인 일 곧 기도하는 일이나 성경보는 일, 예배하는 일에는 등한히 여기고 시간이 없다고 하고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오늘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뒤로 미룬 채, 지금도 여전히 게임이나 스마트폰보는 데에는 기꺼이 시간을 쓰되 생산적인 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3. 왜 사람은 점점 더 게을러지는 것인가요?

  사람이 게을러지는 것은 현재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게으름의 영이 붙게 되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게으름이 일상화되어지게 되면 그때에 더더욱 "게으름의 영(악한 영)"이 달라붙습니다. 주로 "엉덩이"(주로 수다 떠는 사람에게)와 "등짝"(주로 잠만 자는 사람에게)에 달라붙습니다. 유달리 게으른 사람의 영을 보면, 게으름의 영이 엉덩이에 달라붙어있거나, 등을 감고 있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 이러한 영들이 달라붙는가를 살펴보았더니 첫째, 게으름을 피우면서 일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 때에 달라붙었고, 둘째, 오늘의 할 일을 차일피일 맨난 미룰 때에도 달라붙었으며, 셋째, 영적인 일에 게으르면서도 세상일이나 노는 데에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을 때에 그리고 넷째, 수다떠는 데에는 열심이나 기도하지 않고 있을 때에 이 영이 달라붙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게으름의 영이 달라붙게 되면 덩달아 따라붙는 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영은 바로 "가난의 영"입니다. 고로 게으른 자는 반드시 가난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참고로, 사람이 가난해지는 경우는 꼭 가난의 영이 붙어서만 아니라, 거둠을 방해하는 영이 달라붙을 때에도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조급한 사람이 대부분 부지런한데, 어떤 사람은 자신이 부지런함에 불구하고 가난하게 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거둠을 방해하는 영에 의해 손발이 묶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은 보통 조급함의 죄를 지을 때에 달라붙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부지런함에도 불구하고 물질을 풍성하게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조급함의 죄로 인하여 "거둠을 방해하는 영"이 달라붙어 있음을 인지하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영을 사용하여, 손발을 묶고 있는 악한 영들을 토막내시고 쫓아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잠10: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잠19:24 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잠26:14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4. 게으름의 죄에 빠지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나요?

  사람이 게으름의 죄에 빠지게 되면 "게으름의 영"이 달라붙게 되고 이어서 "가난의 영"도 달라붙게 됩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3가지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첫째, 그는 점차 가난해집니다. 가난이 영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성경구절도 이와같은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잠6:6-11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7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8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9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10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11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둘째,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까지 빼앗길 날이 오게 됩니다. 오늘 본문말씀(마25:24~30)에 따르면,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바로 그러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가 주인에게서 한 달란트를 받았으니 너무 적어서 기분 나쁨으로 그랬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기는 하는데,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달란트"의 가치는 6,800데나리온 어치의 값어치로서, 노동자가 한 푼 쓰지 않고 20년을 모아야 비로소 소유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분량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는 악했습니다. 그리고 게을렀습니다. 한 달란트나 되는 많은 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하기 싫어서 곧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어서 그것을 땅 속에 파묻어두었다가 주인이 오는 날 꺼내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인을 혹평했습니다. "당신은 굳은(가혹한)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마25:24)" 그는 자기가 게으른 것을 가지고서, 주인을 나쁜 고리대금업자라고 핑계를 대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악하고 게으르다는 책망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한 달란트마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 한 달란트는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또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던 자 곧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게으르면 약도 없다고 하는데, 있는 것도 사라지게 없어지고 빼앗길 날이 오는 것입니다. 

마25:28-29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셋째, 마지막에 가서는 하나님께서 그를 토해버리시어 그를 버릴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버림받아 지옥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한 달란트를 받은 자가 들어갈 최종적인 장소가 바로 "바깥 어두운 데"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슬퍼하고 이빨을 가는 장소로서, 마13장에 나오는 천국비유를 따른다면 그곳은 "풀무불"입니다. 그곳은 바로 형벌받는 장소(마24:51)이자, 곧 불이 강력하게 타고있는 장소로서(마13:42,50), 곧 지옥인 것입니다(계21:8). 

 

5. 게으름의 죄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먼저는 자신이 그동안 게으름이 죄인지도 모른 채 살아온 지난 날로부터 돌이키시고 그것이 죄였다는 것을 겸손히 시인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성경은 "회개"라고 합니다. 둘째는 이제부터는 자기자리에서 떨쳐 일어나 항상 열심이 일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전후서에서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아담의 타락이후 인간은 열심히 일하여 수고하고 그래서 얻은 분깃으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는 게으름을 피우다가는 가진 것을 다 잃어버리고,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새기면서, 내 몸에 붙어있는 악한 영들을 토막나고 깨뜨려버린 후 쫓아버리야 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새 나도 부지런한 사람이 될 것이고, 천국에 가면 칭찬듣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0년 12월 29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30) 회개할 자범죄는 무엇인가?(11) 조급의 죄(행7:20~29)_2020-12-28(월)

https://youtu.be/RKETeAuXPo4  [혹은 https://tv.naver.com/v/17512679  ]

 

 

1. 조급의 죄란 어떤 죄를 가리키나요?

  조급의 죄는 참지 못하고 몹시 급한 마음에 어떤 결정을 내리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일을 그릇치게 됨으로 오히려 자신의 인생길을 방해하는 죄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죄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많이 있는 성질의 죄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뭐든지 "빨리빨리" 재촉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급의 죄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지 못하고 자기가 나서서 일을 하다가 그만 일을 그르쳐 하나님의 때를 그만 뒤로 밀치는 역할을 감당하기에 조심해야 할 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급의 죄를 실제적으로는 조급케 하는 악한 영에 의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조급의 죄를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급의 죄를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이유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조급의 죄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기 내면에 조급의 죄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기가 지금 조급한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사람을 조급케하는 악한 영(조급의 영)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파악한다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조급의 영은 보통 손과 발에 붙어 있습니다. 조급의 영은 우리 몸 안에도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우리의 몸 밖에서 있어서, 거기에서 역사하는 영입니다. 보통은 손을 묶고 있고 발을 묶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은 "세대의 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하늘에서 타락한 천사들이 쫓겨날 때 큰 권세와 능력을 가진 천사들은 용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고, 작은 권세와 능력을 가진 천사들은 뱀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용의 모습을 취한 큰 천사들은 대부분 사람 밖에서 그리고 공중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뱀의 모습을 취한 천사들은 사람 몸 속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람 밖에서 활동하는 큰 세력들을 "악한 영들(악령들)"이라고 부르며, 사람 속에서 활동하는 작은 세력들은 "귀신들(실제는 뱀의 모습을 취하고 있음)"이라고 부릅니다. 조급의 영은 우리 몸 밖에서 활동하는 영입니다. 우리 몸 밖에서 활동하는 영들 중에서 우리와 혈통과 관계되어 있는 영들은 2가지인데, 하나는 자기의 윗대 조상 중 1대에서 4대까지는 "세대의 영"(세대 위에 있는 영)이라고 부르고, 4대부터 약 30대까지는 "가문의 영"(가문 위에 있는 영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부친과 조부, 증조와 고조할아버지의 시대에 활동하고 있는 악한 영들이 바로 세대의 영들인데 이들은 사람의 몸에서 2m이상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가까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1~2대에서 활동하던 영들이 주로 사람의 몸에 붙어 있습니다. 그러한 영에는 "혈기분노의 영"도 있고, "조급의 영"도 있는데, 조급의 영은 주로 손과 발에 붙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세대의 영 중에서 조급의 영이 역사하고 있는 사람은 2가지 증상이 있습니다. 첫째, 손에 조급의 영이 붙어 있는 분은 거둠을 방해받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은 열심히 수고하고 노력해보아도 열매를 별로 얻지 못합니다. 조급이 영들이 우리가 거두어들이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발에 조급의 영이 붙어 있는 분은 전진을 방해받습니다. 그러ㅏ므로 이러한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성장이 없습니다. 발전이 더딥니다. 왜냐구요? 전진을 방해하는 조급의 영이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게는 조급의 영이 없다고 하시는 분들은 자신의 삶에 이 두 가지 현상이 있는지를 확인해보시고 만약 그것이 있다면 자신도 조급의 영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조급의 죄를 지었던 성경의 인물은 누구인가요?

  조급의 영에 따라 조급한 성격을 표출함으로 일을 그르친 사람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는 40대 때의 모세입니다(출2:11~15). 모세는 80세 때에 비로소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쓰임을 받았는데, 그가 40세 때쯤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40세 당시 그는 상당히 혈기가 강한 사람이었고, 조급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사려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비록 바로의 공주(하셉슈트공주)의 양자가 되어 40년간 애굽의 모든 학문과 무술을 연마했음에도 자기내면의 혈기와 조급함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애굽사람과 히자기의 동족 히브리인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애굽사람을 쳐서 죽이고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를 모래속에 감추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다음에는 히브리인들끼지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자, 잘못한 사람에게 "너는 왜 동포를 치느냐""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말하기를 "누가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출2:14)고 했습니다. 모세는 곧 자기가 살인한 것이 이미 다 파다하게 퍼졌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미디안으로 도망을 칩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혈기왕성한 자였는데, 그만 조급성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의분을 품고 있다가 자기의 판단대로 뜻을 이루려다가, 출애굽의 위대한 사역을 40년 뒤로 미루게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조급성 때문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에게 역사하고 있던 조급의 영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조급의 죄를 이기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 결국 선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던 성경의 인물은 누구였나요?

  에, 그 사람은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15살 무렵에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아, 사울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자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골리앗을 물리친 이후에는 사울왕의 군대장관과 천부장이 되었는데, 전쟁에 나가서 대승을 거두고 돌아왔을 때에 여인들이 사울에게는 천천을 돌리고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자, 그때부터 사울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애를 씁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말이죠. 그러므로 다윗은 사울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줄곧 피해다녀야 했습니다. 무려 10년동안(20세~30세)을 그렇게 말입니다. 그런데 그 기간에 다윗에게는 사울왕을 단 칼에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2번씩이나 주어져 있었습니다. 한 번은 엔게디동굴에 있을 때에 사울왕이 변을 보기 위해 굴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요(삼상24장), 또 한 번은 하길라 산에서 다윗의 아비새장군과 사울진영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모두가 잠들어 있어서 그때에는 사울왕의 물병과 창만 가지고 나왔습니다(삼하26장). 다시 말해,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전격으로 2번씩이나 있었지만 다윗은 끝까지 사울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하들을 책망하면서, 어찌 여호와께서 기름부어 세운 자를 죽이면 죄가 없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만약 여호와께서 그를 쳐서 죽이시거나 전장에 나가 죽을지언정 자기의 손으로는 결코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를 해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삼상24:12,26:10~11).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다윗을 귀히 보셨고, 그가 나중에 왕이 되어서는 남유다왕국의 39명의 왕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성군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조급의 영에 속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모든 일을 자기의 때가 오기까지 침착하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해서 차분하게 일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전형적인 오래 참음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조급의 영은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은가요?

  조급의 영이 처리하려면 첫째로, 자기와 자기의 조상들 특히 자기 윗대의 1대에서 4대까지의 조상이 지었던 조급의 죄를 회개합니다. "나와 내 조상들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못하고 조급하지 행동했습니다. 용서해주소서"라고 말이죠. 그리고 둘째로, 조급의 영을 파쇄합니다. 자신의 영 안으로 들어가서 자기의 손과 밖을 묶고 있는 영들을 곧 세대의 영들을 향하여 명령하는 것입니다. "토막! 토막! 토막!" 영으로서 그들을 칼로 잘라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로, 그들이 공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에는 즉시 내 몸과 자신의 영혼을 보호하기 위하여 십자가 세우기를 합니다. "지금 내 몸에 역사하려고 하는 모든 영들과 십자가 세운다", "이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영들과 십자가 세운다." "내 성품을 이용하여 활동하려는 모든 악한 영들과 십자가 세운다"라고 기도함으로서, 악의 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몸과 영혼을 지키는 것입니다. 십자가 세우기는 반복적으로 말을 3번 정도 반복하실 때부터 효과가 나타납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0년 12월 28일(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29) 회개할 자범죄는 무엇인가?(10) 쾌락과 유흥의 죄(시편90:3~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M7PxEmQYm3A  [혹은 https://tv.naver.com/v/17446228  ]

 

 

1. 쾌락의 유흥의 죄란 어떤 죄인가요?

  쾌락과 유흥의 죄란 육체를 위하여 온갖 종류의 쾌락과 유흥을 즐기며 사는 죄로서, 자신을 육체를 위하여 먹고 놀고 즐기는 것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시간과 돈을 쓰지만, 자신을 영혼을 위해서는 아까워하는 죄를 가리킵니다. 즉 눈으로 보고 입으로 먹는 것에는 우선적으로 시간과 물질을 배정하지만 자신의 영혼을 위한 활동이나 준비에는 소홀히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2. 쾌락과 유흥의 죄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쾌락과 유흥의 죄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맨날 먹으러 다니는 것들이 있습니다. 돈이 생기고 시간나면, 맛집을 서핑하러 돌아다니는데 멀어도 마다하지 않고 돈도 아까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로, 놀고 즐기는 것들이 있습니다. 관광하고, 노름하고, 도박하고, 화투치고, 게임을 즐기고, 춤추러 다니고, 친구들과 여행다니고, 술먹고  왠종일 TV시청하고, 오락을 즐기며 섹스나 음주가무 등을 즐기는 데에 시간과 물질을 쓰는 것입니다. 셋째로 취미생활도 있습니다. 취미생활을 일상생활과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로 과다하게 사용하고 그리고 집중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스포츠(축구, 경마, 야구, 농구 등), 낚시, 바둑, 만화, 게임, 음악감상, 영화감상, 연예인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쾌락과 유흥의 영이 자기 몸 안에 치고 들어옵니다. 만약 자신이 낚시를 하다 주일예배시간을 빠뜨리고 있다면 그는 자신이 쾌락과 유흥의 영에 빠져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3. 쾌락과 유흥을 좇아가는 것은 어떤 문제들을 야기시키나요?

  지나치게 쾌락과 유흥을 좇아가면 어떻게 될까요? 우선적으로는 경제적인 손실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자녀와 가정을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 성장에는 뒷전이기 때문에 영혼은 거의 빈사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오직 먹고 노는 것에 집중하다보니, 나중에는 중독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알콜중독, 게임중독, 도박중독, 마약중독 등에 빠져서, 정말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미 이러한 사람들은 쾌락과 유흥의 영들에게 거의 사로잡혀버린 상태입니다. 내가 만약 게임이나 도박을 멈출 수 없고 끊을 수 없다면, 나도 그러한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의 기저에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은 것에 대한 허전함이 들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하나님이 거주해야만이 만족함이 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로 하나님을 떠나있는 인생을 항상 허전하고 목말라 있어서 그곳에 무엇인가를 채워야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인 줄을 모르니, 세상 것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4. 쾌락과 유흥을 절제하도록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장치는 무엇인가요?

  사람이 쾌락과 유흥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것을 절제하도록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마련해주신 장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일주일에 하루를 자신의 영혼을 위해  그리고 만물의 창조주이시자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위해 쓰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시대에 그것은 계명이었습니다. "안식일준수"가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후 안식일계명은 주일성수로 바뀌었지만 그 정신과 원리는 여전히 인간에게 유효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왜 출애굽하여 자유자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준수하라고 명령하셨겠습니까? 그것은 만약 일주일의 하루를 자신의 영혼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돌리는 일에 사용하지 않으면, 인간은 필연코 타락한 본성을 지닌 육체를 위해 살게 되며, 그러다가 멸망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을 꼬옥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은 창조주이며(출20;11) 또한 구원자되심(신5:15)을 꼬옥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분만이 전능한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분만이 우리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반드시 일주일에 하루는 모든 일을 그치고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약시대에는 안식일이었고 지금은 주일입니다. 어떤 분은 주일이 아니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말씀은 모형이고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히10;1). 따라서 실체가 움직이면 그림자도 움직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실체가 움직였는데도 그림자를 고정시켜 놓으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릅니다. 그림자가 실체를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의 주인되신 예수께서 그림자를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5. 쾌락과 유흥의 죄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쾌락과 유흥이 죄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죄악에 빠져있는 인생이 먹고 놀기에는 너무나 허무하고 짧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사40:8~9). 영적인 것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산 것만이 영원히 내 것이요 영원히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모든 육신의 기간은 자신의 영혼을 위해 그리고 영원한 것을 준비하라고 주어진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육신이 먹고 놀고 즐기는 것에만 시간과 물질을 드려서는 아니 됩니다. 자신의 영혼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 시간과 물질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편에서 모세와 신약의 야고보 장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90:4-6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약4:13-14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둘째, 하나님의 정해주신 인생이 규칙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출20:8,신5:12). 일주일에 하루는 자신의 영혼과 하나님을 위해 시간을 우선적으로 배려해두어야 합니다. 그렇지않으면 영혼은 곧이어 망가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절제가 필요합니다(갈5:23). 모든 여행이나 취미생활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돈생기고 시간이 나면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온통 노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절제가 필요합니다. 이는 봄과 가을에 자연관광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넷째, 내 영혼이 들어갈 천국에서 받을 상과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고전15:58). 이땅에서의 삶은 잠시 잠깐뿐입니다. 너무나 짧은 인생에 영원히 살 천국을 위해 준비하는 것만큼 시급한 일은 없습니다. 육체는 우리 죽으면 썩어지고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죽은 후에 새로운 생이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영원히 사는 곳에서의 삶을 지금 잘 준비하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자입니다. 

 

2020년 12월 24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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