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03) - 왜 회개해야 하는가?(03) 회개없이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가?( 마12:43~45)_2020-11-26(목)

https://youtu.be/UkCeK5O8SmM  [혹은  https://tv.naver.com/v/16893620 ]

 

 

1. 왜 회개해야 할까요?

  사람은 왜 회개해야 할까요?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들은 아주 많습니다. 적어도 20여 가지는 됩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개하지 않으면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못 들어가기 때문이요, 또한 회개하지 않으면 사람이 이 땅에서 형통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성도라도 회개하지 않으면 왜 형통한 삶을 살 수 없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지은 죄들 때문에 저주받은 영들(귀신들, 뱀들, 세력들) 우리 몸 안으로 치고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놈들을 이 땅으로 내어쫓겨날 때부터 저주받은 영들이되었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우리 몸 안에서 그놈들을 내보내지 아니하면 우리도 그놈들 때문에 저주받은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2. 귀신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요?

  귀신들이 사람의 몸 속에 들어올 때에는 뱀의 형태로 들어옵니다. 하늘에서 떨어질 때 저주를 받아 뱀과 전갈들이 되었기 때문인데, 이것들이 사람의 몸 속에들어올 때에는 뱀의 형태로 들어옵니다(막16:17~18, 눅10:18~19). 고로 누군가 사람이 죽어서 지옥(음부)에 떨어졌다면, 그 사람은 거기서 뱀의 식사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지옥(음부)에서는 뱀이 사람의 몸을 갉아먹고 씹어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놈들이 이 세상에 있을 때에는 사람 몸 안에 있으려고 합니다. 왜냐햐면 사람의 몸을 자기의 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마12:43~45). 그러므로 이놈들이 할 수만 있으면 사람의 몸 속에 들어오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그놈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고, 그래서 죄를 지으면 그것을 빌미로 사람 몸 속에 들어오는 것입니다(요일3:8). 그러므로 만약 이 놈들이 우리 몸에 들어와 있다면 우리는 기필코 이놈들을 내보내야 합니다. 이놈들은 우리의 영혼과 건강과 축복을 도둑질하고 우리의 몸을 사탄(루시퍼)에게 제물로 바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요10:10). 이놈들은 내 보내지 않고 있으면 이놈들에 의해 어느순간부터 저주가 나타나는데, 곧 질병과 가난에 시달리고 사건사고에 휘말리게 되고, 모든 일들은 막히게 되고, 어려운 난관에 늘 부딪히게 됩니다. 

 

3. 귀신들은 어떻게 내보낼 수 있나요?

  이 땅에 존재했던 사람들 중에는 예수께서 최초로 실제적으로 귀신을 내쫓아보낸 첫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4장에 보니, 귀신들의 왕 바알세불인 사탄마귀와 싸워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마4:1~11). 그리고 결정적인 패배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였습니다(창3:15, 골2:14~15). 그런데 벧후2:19에 의하면,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는 영적인 원리에 따라, 귀신들은 자기의 대장인 마귀가 예수님에게 3대0으로 판정패 당했던 것이기에, 그때부터는 무조건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나가라고 하면 그들은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못 쫓아보낸 귀신들이 없습니다. 그분은 이미 이긴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으로부터 귀신을 쫓아보낼 수 있는 능력과 권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낼 수도 있었지만 귀신을 내보내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4. 제자들은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을까요?

  예수께서는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제자들에게도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눅9:1~2, 막6:7). 그러자 제자들은 나가서 많은 귀신들을 쫓아내었고 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바르며 병을 고쳐주었습니다(막6:13). 그런데 제자들이 모든 귀신을 다 쫓아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니, 예수께서 세 명의 제자들(베드로와 안드레와 요한)을 따로 데리시고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에, 산 아래에는 나머지 9명의 제자들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간질병에 고통받고 있는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자기의 아들을 데려와서 9명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제자들은 그 아들로부터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왜 자기들을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나이까 조용히 물었을 때, 주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이 없음을 책망하셨으며, 기도와 금식 이외에는 이런 종류가 나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마17:17,20~21). 

 

5. 회개하지 않은 채 귀신을 쫓아보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요?

  귀신을 사람에게서 내쫓아버리려면 귀신을 쫓아내려는 축사자가 강력한 권세자이거나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귀신들린 "당사자"입니다. 당사자가 회개를 하지 않은 채 귀신을 내보내게 되면 귀신들은 축사자의 명령이 무서워 나가기는 나가지만 나갔다도 다시 들어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늘 저만치 나갔다가도 얼마후 다시 그 사람에게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몸은 이전부터 귀신의 합법적인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때 귀신은 축사자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되면 고통을 받기에 그냥 나가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갔다고 얼마 후에 다시 들어가게 됩니다. 합법적으로 자기 집에 들어가겠다고 하는데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신을 내보내려 할 때에 가장 중요한 관건은 귀신들린 자가 회개하는 일입니다. 회개를 철저히 하면 할수록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깨끗하게 제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회개하지 않은 사람인데도, 축사자의 권세와 능력에 눌러 귀신이 나간다면, 나중에는 그 귀신이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들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중형편이 처음보다 더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고로 할 수만 있으면 귀신들린 자는 회개를 보다 철저히 그리고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귀신도 잘 나가고 나간 귀신도 다시 들어오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2020년 11월 26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02) 왜 회개해야 하는가?(02) 한 번 회개로 지은 죄를 다 용서받을 수 있는가?(히10:9~14)_2020-11-25(수)

https://youtu.be/mqu-1u0YWRc  [혹은 https://tv.naver.com/v/16874195   ]

 

 

1. 한 번 회개하면 지은 죄를 한꺼번에 다 용서받을 수 있나요?

  한 번 회개해서 모든 죄를 다 용서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면 아마도 모든 인류가 다 구원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진실로 회개했으면 굳이 더 회개하지 않아도 자신의 죄는 다 용서받는다고 믿고 있는 성도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럼, 그는 왜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단 번의 제사로 영원히 성도들을 온전케 하신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의 속죄제사는 성도들을 영원히 온전케 한 것인가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예수님의 완전한 희생제사를 자기의 완전함으로 생각하여, 예수께서 단 번에 희생제물로 드려지심을 자기의 일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즉 자기는 예수님의 속죄제사의 공로로 용서를 받게 된 것이니, 더이상 무슨 제물이 필요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자기도 죄도 그때 다 용서받은 줄로 앏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속죄의 완전성을 자기에게 잘못 적용한 사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인류의 속죄를 드린 희생제물은 완전합니다. 한 번으로 충분하다는 뜻이요, 더이상 속죄제물이 필요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사람이셨지만 동시에 하나님이셨지기에, 그분이 흘리신 피는 분명 사람의 피였지만 동시에 그분은 하나님의 피이기도 하기에(행20:28), 그분의 피의 효능은 끊임없이 지속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렸던 속죄제사는 한 번의 속죄제사에 한 마리의 속죄제물만이 효력이 있었던 것처럼, 한 번 드려진 속죄제물이 계속해서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는 누군가 또다시 죄를 지으면 또다른 희생제물을 필요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이므로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한 번이지만 영원히 효력이 있습니다(히7:24~25). 그러므로 그분은 단 번의 제사로 모든 사람을 영원히 온전케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은 다릅니다. 비록 그분의 속죄는 완전한 것이었어도 우리는 여전히 죄된 본성을 가지고 있고 귀신들의 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는 그날까지 우리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죄와 싸워야하고 마귀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넘어지면 다시 회개를 통해서 예수님의 피로 우리 자신의 죄를 씻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14절(원문)의 말씀처럼, 그분의 제사는 한 번의 제사로 계속적인 것 안으로 완전하게 된 채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거룩하게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한 번 만 자백해도 된다고 했나요?

  요한 사도는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에 과연 어떻게 해야 죄용서를 받고 깨끗하게 되는지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더우시고, 의로우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요일1:9)"(표준새번역). 그렇다면 우리가 한 번만 자백하면 내가 지은 모든 죄가 다 용서되는 것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요일1:9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한다면" "그분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실 것이다"고 말이죠. 이것을 거꾸로 생각하면,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의 골고다의 희생사건 자체가 우리의 죄를 자동적으로 용서해주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자신이 지은 죄를 비로소 자백할 때에라야 그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용서해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이 본문을 헬라어로 살펴보면 그것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는 "자백하면"이라는 동사가 동사, 가정법, 현제, 능동태구문이기 때문입니다. 헬라어에서 가정법은 현재가정법과 과거가정법이 있습니다. 현재가정법은 반복적 계속적인 경우에 사용되고, 과거가정법은 단번에 혹은 단호하게 하는 경우에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이라는 말을 헬라어원문에 따라 직역하면,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계속해서 자백하고 있으면"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자백은 한 번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는 그날까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4. 자기가 지은 죄를 자백할 때에는 마음으로 해도 되나요?

  우리가 지은 죄를 자백할 때에는 마음으로 해도 되는 것인가요? 결론은 "아니올시다"입니다. "자백하다"라는 단어 자체도 말을 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자백하다(시인하다)"는 단어는 "호모로게오"라는 동사인데, 여기서 "호모"는 "같은, 동일한"이라는 뜻이고, "로게오"라는 동사는 "말하다"는 뜻입니다. 고로 "호모로게오"라는 동사는 자신이 지었던 죄를 다시 말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지은 죄가 생각이었든지 말이었든지 행동이었든지 지은 죄를 자백하여 용서받기를 원할 때에는 반드시 말로 시인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회개기도문을 눈으로만 읽는 것은 자백이라고 할 수 없으며, 누군가 녹음해놓은 것을 듣는 것도 자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자신의 입술로 소리내어 말해야 시인(자백)이 되는 것입니다. 

 

5. 지은 죄의 숫자가 너무나 많은데, 꼭 지은 죄의 숫자만큼 회개해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야 정상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용서는 자백한 것만이 용서된다고 나와있기 때문입니다(요일1:9). 예를 하나 들어서, "음란의 죄"를 회개할 때에는 몇 번이나 자백해야 할까요? 아마도 나이가 많을수록 더 많이 시인해야 할 것입니다. 그럼 몇 번이나 자백해야 할까요? 아마 그것은 수백 수천번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17년 이상 회개임상실험을 하여 죄가 어떻게 용서되었는지를 조사해했던 바에 따르면, 사람이 지은 죄는 최소한 160번 이상은 해야 용서되는 것 같습니다. 하루에 네 번씩 회개한다면 40일을 꼬박 쉬지 않고 회개해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적어도 360번 이상을 회개해야 어느정도 회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죄의 양상도 다르고, 숫자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몇 번이나 회개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딱히 정해진 답안은 없습니다. 다만 내가 수 백 번을 회개했을 때에 더이상 자신이 지은 죄가 거리낌없이 느껴진다면 그때는 회개가 어느 정도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까지 회개해야 하는지를 "성령께서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굳이 그것을 확인하려면, 회개하기 전에 갖고 있었던 자신의 저주(가난, 질병, 무지) 등이 다 떠나갈 때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조상들이 지은 죄를 회개할 때에는 조상들이 물려준 세력들(귀신들, 뱀들)이 내 몸에서 다 떠나갈 때까지 우리는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따르면, 진실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 위해 가슴을 치기를 그치지 않았던 세리가 의롭다하심을 받고 집으로 내려갔다고 하니, 꼭 죄를 지은 숫자만큼 반드시 해야 하는 것같지 않습니다. 회개의 숫자에도 하나님의 긍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내가 지은 죄의 숫자만큼 죄를 시인하고 자백한다고 각오로 일평생 회개를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0년 11월 25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01) 왜 회개해야 하는가?(01) 한 번 회개로 모든 죄가 용서되는가?(01)(히10:9~14)_2020-11-24(화)

아침묵상입니다.https://youtu.be/YT6fjP7ptNo  [ 혹은 https://tv.naver.com/v/16855621   ]

 

 

1. 왜 회개해야 하는 것인가요?

  왜 사람은 회개해야 할까요? 그리고 왜 믿는 자들이든지 믿지 않는 자들이든지 다 회개해야 하는 것인가요? 문제는 왜 회개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며, 무슨 죄를 얼마나 어떻게 회개해야하는지도 잘 모르고, 한 번 회개했으면 더 이상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속에 빠져있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예수 믿을 때에 한 번 회개했으면 과거에 지은 죄와 현재 짓고 있는 죄와 장차 지을 미래의 죄가까지 다 용서받은 것일까요? 정말 회개의 실체와 진실을 잘 모를 때에는 이러한 말이 진리인 것처럼, 성경말씀인 것처럼, 이것이야말로 참 믿음의 태도인 것처럼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따라서 이것이 잘못된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성경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 종교개혁자들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요?

  종교개혁자들은 중세의 잘못된 관행이나 교리를 바꾸자고 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교회가 잃어버린 "믿음"을 정말 간신히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이 회복해야 할 대상은 "믿음"만이 아니었습니다. "믿음"과 더불어 "회개"도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마4:17,눅23:47). 하지만 종교개혁자들은 그만 회개의 중요성을 간과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만 있으면 되는 것으로 잘못 나갔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그분이 공생애를 시작할 때 첫 번째 외침은 무엇이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왔느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마4:17). 그런데 성경의 맨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을 보면서 놀라는 것은 소아시아 7개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이 거기에 나오는데, 칭찬만 들었던 서머나와 빌라델비아교회를 제외한 나머지교회들은 한결같이 다 회개하라는 책망을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주께서는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겨버릴 것이고,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워버릴 것이고, 자식을 죽일 것이며, 입에서 토해내버릴 것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사실 예수께서 승천하신후 성령께서 오시면 모두 믿는 이들이 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회개보다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것을 강력하게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완악해서 자유의지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러자 최종적으로 예수께서는 A.D.95년경 회개를 촉구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믿음은 갖고 있으나 회개는 하지 않고 있으니, 회개만 잘 하면 천국에는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3. 회개는 예수님을 믿을 때에 한 번 하면 더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요?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한 번 회개했으면, 자신의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은 줄로 앎니다. 단지,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장차 이 땅에서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큰 죄를 저질렀을 때에는 그래도 회개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작은 죄들까지는 잘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죄들에 대해서는 이미 다 용서받았다고 생각하고는 회개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한 번 회개했다면, 예수믿기 전에 무당을 찾아가서 물어보고 행한 것들이 생각나도 회개하지 않으며, 예수믿기 전에 남의 돈을 떼어먹은 것이 있어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은 성경을 잘못 이해한 데에서 비롯된 커다란 잘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진술은 절반은 맞지만 절반은 틀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만약 우리가 지은 죄들이 한 번의 회개로 다 용서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말 그런다고 친다면 우리는 결코 저주가운데 살지 않아야 합니다. 질병에도 시달리지 않아야 합니다. 가난 가운데 살지도 말아아 하고, 무지가운데 살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죽어서는 다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천국에 갔다가 나오신 분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현재 예수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천국에 입성하는 성도들은 단지 10%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에 대해서 더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될 일이 아니라 더욱 신경을 써야 할 신앙의 핵심 주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4. 예수께서 흘리신 보혈이 내 죄를 다 용서하지 못했다는 말인가요?

  그렇다면, 2천년전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내 죄를 다 용서하지 않은 것입니까?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대부분이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판명됩니다. 다시 말해, 2천년전에 골고다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로 인하여 예수믿는 자들은 자신의 죄가 다 용서된 줄로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확히는 2천년전에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이 모든 인류의 죄를 다 용서해줄 만한 충분한 능력과 효능을 가졌으며, 그러한 속죄제사는 두 번 드릴 것이 없는 왅전한 속죄제사였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때 자기의 모든 죄들의 다 용서된 줄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2천년전에 골고다에서 흘리신 보혈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기 위한 준비단계였습니다. 모든 사람의 죄는 오직 그날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서만이 용서되고 씻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피가 죄를 속죄하느냐고 의문을 갖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룰(법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사람의 죄를 처리할 것인지를 고민하시고 결정하시기를 피가 죄를 속하는 것으로 이미 정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그날 피를 흘리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완성하신 것이지, 그날 내 죄가 자동적으로 씻어진 것이 아닙니다. 내 죄는 내가 지은 죄를 내 입술로 자백할 때에 용서되고 씻어지는 것입니다(요일1:9). 

 

5. 왜 예수님의 속죄제사는 단번의 제사였는데도 영원히 효력있는 제사가 될 수 있었나요?

  예수께서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골고다 언덕에서 피흘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피는 모든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에 충분합니다. 이는 예수께서 공생애의 시작에 요단강에서 인류의 대표자인 세례요한의 안수를 통하여 세상죄를 다 넘겨받어서 속죄제사를 드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례요한은 세례후 이튿날 예수님을 보고는 일컬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되었다고 했습니다(요1:29). 그리고 3년반 뒤에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의 경우 사람이 어떤 죄를 짓고 그 죄를 깨달았을 때에는 자기 신분과 가정형편에 따라 흠없는 우양이나 비둘기 등을 제물로 삼아서 속죄제사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제물의 피를 받아서 그것을 성막기구에 뿌리거나 바름으로 인하여 지은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다시 죄를 짓게되면 앞에서 사용한 제물을 두 번 다시 사용할 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물의 피가 이미 다 뿌려졌고 있다고 해도 굳어져서 더 이상의 피의 기능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죄를 지으면 지은 죄마다 제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의 육신을 입고 있었기에 피흘리신 것이 맞지만, 그분의 피는 사람의 피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피이기도 합니다. 제물은 한 번 흘리면 더이상 흘릴 피도 없을 뿐더러, 있다고 해도 굳어져서 더 이상 쓸모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이므로 그분의 피는 굳어지거나 없어지지 아니하고 언제라도 그 피를 흘려보내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완전한 속죄제사를 두고, 자기는 더이상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한 번의 완전한 제사는 예수님 쪽에서 하신 일이고, 우리는 날마다 지은 낱낱의 죄들을 10번이고 20번이고 2만번이고, 지은 죄만큼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의 피는 언제나 인류의 모든 죄를 용서해줄 있는 만큼 충분하고(왜 계속해서 살아있으면서 그 피를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일 계속해서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2020년 11월 24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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