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5(주일) 오후찬양예배

제목: [요한계시록강해보완(18)] 백보좌 심판대 앞에 서게 될 세 부류의 죽은 자들과 그들의 미래는?(계20:11~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all8-CCVLoo [또는 https://tv.naver.com/v/43802510]

 

1. 들어가며

  백보좌 심판은 예수께서 그 보좌에 앉아 심판하는 것인데, 이때는 죽은 자들을 최종적으로 심판하는 때이다. 여기서 '죽은 자들'이란 귀신들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첫째 사망을 받은 자들로서 사람을 가리킨다. 영물들 중에서 사람만 육체를 지녔기 때문에 죽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보좌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을 '죽은 자들'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리고 왜 거기에 와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심판을 받은 이후에는 그들은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가?

 

2. 천국과 지옥의 심판은 마지막 날 백보좌 심판대에서만 이루어지는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날에 있을 백보좌 심판대에 나아가서 자신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아니다. 백보좌 심판은 하나님께서 첫 하늘과 첫 땅을 싹 없애버리시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시려고 할 때에 있을 심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보좌 심판은 최종적인 심판에 해당하며, 더 이상 심판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인류가 다 백보좌 심판대에 가서 심판을 받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모든 사람들은 죽은 즉시 심판을 받아 천국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음부(지옥)로 갈 것인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을 천국과 지옥으로 보내는 심판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 이후에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천국과 지옥에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심판이 유보되어 있다가 그래서 잠자는 중간 상태에 있다가 그날 백보좌 심판대 앞에 나아가서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미 죽어서 천국에 들어간 자가 백보좌 심판대 앞으로 나아와서 다시 심판을 받을 일은 없다. 이미 천국행이 결정되어 천국에서 살고 있고 천국에서 왕 노릇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다시 불려나와 백보좌 심판대에서 심판받을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죽어서 음부에 들어가 있는 자들은 백보좌 심판대에 올라와서 최종적인 심판을 받아서 불못에 던져진다(계20:13). 

 

3. 재림 후 심판대에 서는 세 부류의 죽은 자들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 이후 백보좌의 심판대에서 심판받는 '죽은 자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이들은 그때 어떤 심판을 받는 것인가?

  요한계시록 20:11~15에 나오는 말씀을 헬라어 원문을 가지고 자세히 읽어 보면, '죽은 자들'이 한 부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은 똑같은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다. 또한 모든 인류가 그날 그 자리에 나와서 심판받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죽어서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은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날 백보좌 심판대 앞에 나와서 심판받는 세 부류의 죽은 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첫째, 한 부류는 그리스도인들로서 심판이 잠시 유보되었던 자들이다(계22:12). 사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 모든 성도들은 죽은 즉시 심판을 받고 천국으로 곧장 들어간다. 고로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은 백보좌 심판의 때에 죽은 자들로서 심판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때 심판에 참여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전 공중 강림 이후부터 죽은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이름은 이미 생명책에 기록된 채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때 불려나와 심판받는 그리스도인들은 적그리스도의 대환난 치하에서 목숨을 걸고 주님을 믿고 섬겼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이날 나와서 서서 심판을 받는 것은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행위를 따라 보상을 받는 상급 심판에 참여하는 것이다. 

  둘째, 한 부류는 바다가 내어 준 죽은 자들이다(계20:13). 어떤 학자들은 바다가 내어 준 죽은 자들이나 사망과 음부가 내어 준 죽은 자들이나 똑같은 불신자들이라고 구분하는데,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사도 요한이 둘을 구분하여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다는 백보좌 심판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시작되면서 그때에 비로소 없어진다(계21:1). 이제는 더 이상 바다가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다가 내어 준 사람들은 사망과 음부가 내어 준 자들과 다른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체 누구일까? 그것에 대해서는 베드로 사도가 아주 중요한 말씀을 들려주었다. 

벧전3:18~21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그렇다. 이들은 노아 홍수 때에 죽은 자들이다. 이들은 그때 죽어서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런데 이들은 노아로부터 회개의 메시지나 구원 초청의 메시지를 거의 받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다. 왜냐하면 노아가 방주를 지을 동안 방주를 짓지 않고 전 세계에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러 돌아다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그때 지구의 인구가 70억 정도 되었다고 한다.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약 천 살을 살면서 자녀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물에 빠져 죽을 때에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전달받은 적이 없이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재생의 기회를 주시고 있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에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하신 것이다.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인 자는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허용하셨다. 하지만 그래도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은 여전히 바다 감옥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시까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노아 홍수 때 죽은 자들이 그때에 불려나와 심판을 받는 것이다. 

  셋째, 마지막 한 부류는 사망과 음부가 내어 준 자들이다(계20:13). 죄를 지은 자는 사망이 그를 삼킨다. 그러면 그는 육신이 죽어서 영혼과 육신이 분리된다. 그때에 영혼은 음부(지옥)로 떨어진다. 왜냐하면 음부가 그를 집어 삼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자는 음부의 문들이 그를 해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마16:18). 우리말 성경에는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한 자들에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되어 있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음부의 문들이 우세하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 예수님을 자신의 구원자로 영접한다는 것은 복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자는 죽은 즉시 음부가 와서 그를 끌어 당겨 끌고 간다. 그래서 아담 이후에 죽은 모든 불신자들은 다 음부에 들어가 있다. 그러므로 백보좌 심판 때에 음부가 내어 준 사람들은 아담 이후 믿지 않고 죽은 불신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4. 아담 이후 죽은 모든 불신자들 왜 백보좌 심판대 앞에 나아가서 심판을 받는 것인가?

  아담 이후 죽은 불신자들은 구약시대에도 음부에 들어갔고 신약시대에도 음부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눅16:24). 그곳에는 물이 없다. 그러므로 갈증이 끝이 없다. 하지만 물 한 방울 얻을 수 없다. 불꽃만이 타오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이들의 모습을 음부에 내려가서 보면, 이들은 2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귀신들에 의해 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들이 들어간 음부에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사탄과 그의 천사들이 결박된 채 처넣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이 있었다는 것은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온다. 그러므로 그때 이후 음부에 있는 불신자들은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 가운데서 고통받는 것에다가 귀신들이 주는 고문까지 같이 받고 있다. 그때 귀신들은 사람을 썰어버리거나 찢어버리거나 머리통을 깨뜨려버리거나 한다. 그러면 사람에게서 피가 나온다. 그러면 그 피를 받아 먹으면서 즐거워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아직 부활체를 입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부활체를 입은 최초의 장본인이다. 그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당신을 보고도 믿지 못하는 제자들 앞에서 음식을 먹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24:39)" 그렇다. 부활체는 손과 발이 있다. 그리고 영체가 아니다. 영체는 살과 뼈가 없지만 부활체는 있다고 하셨다. 그런데 여기서 피가 있다고는 말씀하지 않았다. 실제로 천국에 부활체로 들어간 성도들 중에 피를 흘렸다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천국에서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도 들어보지 못했다. 천국의 성도들은 이미 부활하여 부활의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부활의 몸은 살과 뼈는 가지고 있지만 피는 없다. 그러므로 먹을 수는 있어도 피를 흘리지는 않는다. 그런데 죽어서 음부에 들어간 사람들은 피를 흘린다. 왜 그럴까? 알 수는 없지만 실상이 그렇다. 그런데 이들에게도 놀라운 소식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들이 백보좌 심판대 앞에 가서 심판을 받아 그때 부활체를 입은 후부터는 귀신에게 고문을 당하지도 않을 뿐더러, 피를 흘리지도 아니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백보좌 심판 이후에는 귀신들이 들어갈 불못과 사람들이 들어갈 불못이 각각 다른 장소이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그러니까 지금 음부에 들어간 불신자들은 아직 부활체를 입지 않은 어떤 과도기적인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백보좌 심판의 때가 되면 그들도 부활체를 입게 될 것이다. 그것을 가리켜 예수께서는 '심판의 부활'이라고 말씀하셨다(요5:29). 믿는 자는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지만 불신자는 심판의 부활에 참여한다고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죽은 불신자들은 임시 처소인 음부에서 고통받고 있다가, 주님께서 재림하신 후에 백보좌 심판의 때가 되면 그분 앞으로 나아가 심판을 받은 후에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 

 

5.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자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앞서 백보좌 심판 때에 그리스도인들 중에 죽은 자들이 심판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들에 대해서 이 시간은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요한계시록 20:4~6에 나오는 첫째 부활이 어떤 것인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계20:4~6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이 말씀에 따르면, 천년왕국에 들어갈 자는 첫째 부활을 입은 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계20:6). 여기서 첫째 부활이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 죽은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적으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부활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까지 죽은 모든 성도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서 산다. 그리고 거기에서 왕 노릇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는 나머지 죽은 자들로서, 천 년이 차기까지 살아나지(부활하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씀한다. 이들은 아마도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일 것이다. 하나는 불신자들로서 죽은 모든 자들이다. 불신자들은 백보좌 심판의 때까지 부활하지 않은 채, 음부에서 고통을 받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신자들로서 죽은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일곱 번째 나팔이 울려퍼진 후 어느 경점에 구름 위로 강림하실 것인데, 이때부터 죽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심판이 유보된 채 그냥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판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인데, 지금 예수께서는 익은 곡식들을 휴거시키고 재림하시기 위해 공중에 와 계시기 때문이다(계14:14~16). 이들이 바로 첫째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는 죽은 그리스도인들인 것이다. 이들은 이미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만, 아직 상급 심판을 받지 못한 상태이므로, 그때 백보좌 앞으로 나아와서 상급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6. 나오며

  성경의 기록은 참으로 놀랍다. 특히 죽은 자의 부활과 심판에 대해 이렇게까지 분명하게 기록으로 남겨주셨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 중에는 부활관이 크게 잘못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자신의 심판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로 승천하신 이후부터는 모든 성도는 다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고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서 천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우주의 종말의 때에 있을 마지막 날 백보좌 심판에서는 이제 모든 것을 끝내는 심판이 마지막으로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에는 세 부류의 죽은 자들이 백보좌 심판대 앞으로 나아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첫째로, 마지막 대환난 중 곡식 추수 이후에 죽은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행위를 따라 상급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둘째로, 노아의 홍수 때에 갑자기 죽게 된 사람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복음을 불신하고 거부한 자들이 올라와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아담 이후 죽은 불신자들이 올라와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이들은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날 전부가 불못에 처넣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나마 감사한 것은 이제 그들이 들어갈 불못에는 아마도 귀신들이 없어 고문을 더 이상 받지 않아도 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음부의 경우처럼 더 이상 죽었다가 살았다를 반복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피흘릴 일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도 이때에는 부활체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들은 자기가 지은 죄값 때문에 불과 유황 속에서 세세토록 고문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어서 만약 어떤 심판대 앞에 선다면, 영원 천국과 영원 지옥을 나누는 백보좌 심판대 앞에 설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상급에 대한 심판을 받는 심판대 앞에 서도록 해야 한다.  

 

 

2023년 11월 05일(주일)

정보배목사

2023-10-29(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요한계시록강해보완(11)] 시온산에 서 있는 십사만사천(144,000)은 대체 누구인가?(계14: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vOfGEX-LW80 [또는 https://tv.naver.com/v/43708400]

 

1. 들어가며

  우리는 지난 시간에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144,000명이 누군지를 살펴보았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7:1~8의 말씀을 통하여, 144,000명은 자신의 이마에 인침을 받은 자들로서,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배웠다. 여기서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쓰시기 위해 이 땅에 특별히 구별하여 보낸 자들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들의 숫자가 144,000명인 것은 이들이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 그리고 거기에다가 충분한 많은 수인 1,000을 곱한 의미로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총수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144,000석의 보좌에 앉을 사람이라는 것도 배웠다. 이들은 구약시대의 인물로부터 시작하여 오늘까지 있었던 교회사적인 인물들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불어닥칠 마지막 대환난의 시대에도 나올 것임을 들었다. 이제 오늘 이 시간에는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인침을 받았던 144,000명이 요한계시록 14장에 나오는 144,000명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으며, 144,000명은 구체적으로 어떤 하나님의 사역자들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들은 어떻게 분류할 수 있는가?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들은 다 똑같은 신분과 지위를 갖는 것일까? 아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천국에서도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다고 말이다(마5:19). 그중에 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들 중에서 최고이기는 하지만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하셨다(마11:11). 그리고 제자들더러 "[이 세상에서]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천국에서]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이 세상에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천국에서]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20:26). 그렇다.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다 똑같은 지위와 신분을 갖는 것이 아니다. 천국에서 왕들이 있고 제사장들이 있으며, 후기 이기는 자들인 144,000명의 성도들이 따로 있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신분으로 24장로들이 있다.

  그렇다면 천국에서 성도들은 과연 어떻게 그 지위와 신분이 구별되는가? 그것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관점에서 살펴보면 우리는 천국에서 성도들은 총 3가지 지위와 신분을 갖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는 24장로들이 있다. 24장로들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 최고의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천국의 지위와 신분 가운데 최고의 반열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2가지 신분을 갖고 있는데, 하나는 제사장들이고 또 하나는 왕들이다. 이들이 예배를 인도할 때에는 제사장의 신분을 갖지만, 이들이 평소 때 살아갈 때에는 왕의 신분을 갖는다. 그리고 이들은 성도들이 거주하는 둘째 하늘과 땅에서 24반차를 이끄는 대표자들이다. 

  둘째는 후기 이기는 자들인 십사만 사천(144,000)이 있다(계7:1~8). 성경에서 이긴 자는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계3:21). 그러므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이긴 자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이들은 후기 이기는 자들이라고 명명해 본다. 후기 이기는 자들인 십사만 사천은 요한계시록 7장에 보니,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을 가리킨다(계7:3). 그리고 요한계시록 22장을 보면, 이들이 바로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들인 것을 알 수 있다(계22:5). 다시 말해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들은 24장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후기 이기는 자들인 144,000명이 있는 것이다. 이를 보다 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144,000명의 숫자 안에 24장로들도 들어가 있는데, 24장로들은 십사만 사천 명의 제일 꼭대기에 있는 자들이라고 보시면 된다. 이들도 24장로들처럼 보좌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데, 이들이 누군지에 관하여는 조금 있다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셋째는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배하는 허다한 무리들 곧 셀 수 없이 많은 무리들이 있다(계7:9~17). 이들은 보좌가 없는 자들이다. 이들은 예배드릴 때에 서서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십사만 사천 뒤에 서서 예배를 드린다. 이들은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구원받은 자들로서, 어린양의 피에 날마다 씻어서 희게 한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세상에서 승리했던 자들이다. 그래서 이들의 손에는 승리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들이 들려 있다. 그들이 이 세상에 살 때에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굶주리기도 하였고, 목마르기도 했다. 그리고 고생도 엄청 많이 했다. 눈물도 많이 흘렸다. 하지만 이들은 구원받아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온 자들이다. 이들은 영원히 성 안에서 살 것이다. 비록 이들이 주님께 쓰임받은 종들은 아니었더라도 자신의 신앙을 위해 기꺼이 세상의 명예와 쾌락과 돈을 버린 자들이다. 그래서 이들도 역시 천상의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것이다. 

 

3. 천국에서 보좌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천국에서 예배드릴 때에 보좌에 앉아 있는 자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리고 왜 그들은 보좌에 앉아 있는가? 먼저, 천국에서 보좌는 원래 한 개뿐이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것은 오직 전능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 뿐이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서는 구약시대에도 천상에 가서 하나님의 보좌를 보고 온 자들을 소개해 주고 있다. 그들 가운데에는 시편 기자인 다윗(시9:4,7, 103:9), 미가야 선지자(왕상22:19), 이사야 선지자(사6:1), 다니엘 선지자(단7:9), 에스겔 선지자(겔1:26, 10:1), 예레미야 선지자(렘14:21,17:12, 애5:19) 등이 있다. 그런데 A.D.95~96년경 하늘에 올라가 천상의 광경을 본 자가 있었다. 그는 사도 요한이다. 그런데 그가 천국에서 본 것은 보좌가 1개 뿐만 아니었다. 거기에는 한 개 뿐인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계4:2, 22:1~3) 외에도, 24장로들의 보좌들이 있었고(계4:4, 20:4), 그리고 후기 이기는 자들인 144,000명의 보좌들도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계3:21). 그런데 이 보좌는 철장을 가지고 왕 노릇하는 보좌들이다(계2:26~27).

  그럼 어떻게 되어서 구약시대에만 해도 한 개 뿐인 보좌가 144,024개가 되었을까? 그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명을 이루고 천상에 오르시어 하나님의 보좌에 앉게 된 이후, 주님이 그 보좌를 24장로들과 후기 이기는 자들인 144,000명에게 나눠주셨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공생애 때에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주의 일에 힘쓴 자들인 제자들에게 보상으로서 보좌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마19:28, 눅22:30). 황송하게도 주의 일을 열심히 감당한 종들에게 통치권을 이양시켜 주신 것이다. 

 

4. 요한계시록 7장의 인맞은 자 144,000명과 시온산에 서 있는 144,000명은 같은 사람들인가 다른 사람들인가?

  그렇다면 시온산의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는 십사만 사천은 대체 누구인가? 이들은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144,000명과 같은 자들인가 다른 자들인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들은 같은 자들이다. 왜냐하면 천국에는 두 무리의 144,000명이 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며, 이들이 누군지를 가르쳐 주는 내용들(계7:1~8, 14:1~5)을 분석해 보면 이 둘이 하나인 것을 알려 주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그들의 이마에 인침을 받았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다시 말해 천국에서 십사만 사천이란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인침을 받게 될 하나님의 종들로서, 이들은 앞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할 종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바로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십사만 사천이다. 그래서 천사들로부터 인침을 받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잘 감당한 뒤에 하늘에 올라간 주의 종들이 생겨난다. 이들이 바로 요한계시록 14장에 나오는 144,000인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7장의 말씀(계7:1~8)은 인류의 모든 미래가 기록된 두루마리가 아직 떼어지기 전에 먼저 천사들에 의해 인쳐질 자들이 누군지를 알려 주는 것이라면, 요한계시록 14장의 말씀(계14:1~5)은 그렇게 해서 인침받은 자들이 사역을 잘 마치고 천국에 올라간 상태를 묘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요한계시록 7장의 사람이 곧 요한계시록 14장의 사람들이 된 것이다. 둘은 같은 사람들인 것이다. 

 

5. 시온산에 서 있는 144,000명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14장에 등장하는 십사만 사천은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인 것을 말해 주는가? 그들은 요한계시록 7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들의 이마에 인침을 받은 자들이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불러서 세운 하나님의 종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4장을 보면, 그들의 이마에 도장이 찍혀 있었다. 하나는 어린양의 이름이요 또 하나는 어린양의 아버지의 이름이다. 아마도 신약의 종들은 어린양의 이름이 찍혀 있을 것이요, 구약의 종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이 찍혀 있지 아니할까 추정된다. 그런데 이들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은 금방 인식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거문고를 가지고 자기들만 부를 수 있는 새 노래가 있기 때문이다(계14:3). 이것은 24장로들이 거문고를 가지고 자기들만 부를 수 있는 새 노래가 있다는 것과 비슷하다(계5:9~10).

  그리고 사도 요한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구체적으로 소개시켜 주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은 5가지 속성들을 가지고 있었다(계14:4~5). 첫째, 그들은 여자(음녀)와 더불어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한 처녀들이었다. 둘째, 이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항상 따라가는 자들이었다. 셋째, 사람들 가운데서 속량함을 받아 첫 열매(아파르케)로 하나님과 어린양에 속한 자들이었다.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구약의 종들을 가리키고, 어린양에 속한 자들은 신약의 종들을 가리킬 것이다. 넷째, 그들의 입에는 거짓말이 없는 자들이다. 이들은 절대 사탄의 속성을 따라서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섯째, 이들은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죄가 없어서 흠이 없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해서 흠이 없게 된 자들이자, 죄를 짓지도 않아서 흠이 없이 산 자들인 것이다. 

 

6. 어떻게 하면 나도 144,000명에 포함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나도 후기 이기는 자들로서 십사만 사천에 포함될 수 있는가? 첫째는 그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십사만 사천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특별한 종들로서, 이미 천국에서 예정된 채 이 땅에 보내어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아무나 십사만 사천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것이다. 둘째는 그러나 가능성은 있다고도 말씀드릴 수가 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이 땅에 와서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데, 원래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목적대로 살지 않는 사람도 생기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복종시킬 것인지 아니면 자기의 뜻대로 살아갈 것인지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하에 이 땅에 보내어진 자들 중에서도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거나 타락해서 천국에 들어갈 십사만 사천에서 제외되는 일들이 간혹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약 5%정도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때에도 제사장이 그 직무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나실인으로서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이 타락하자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 사람도 아니고, 제사장 가문도 아닌 사무엘 선지자를 나실인으로서 쓰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무엘은 일반 평민이었지만 엘리 제사장의 뒤를 이어 잠깐 동안 대제사장의 직무도 감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다. 빈 자리에 일반 성도들도 대신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욱이 십사만 사천은 이미 정해진 자리였기 때문에, 앞자리로 옮겨가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에 보내어진 주의 종들일지라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분량이 이미 정해진 채 보내어졌기 때문에,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분량 이상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앞에서 빈 자리가 날 확률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고로 만약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노력과 기도와 헌신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7. 나오며

  아담 이후 모든 인류는 사탄 마귀 아래에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인간 스스로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나올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사탄 마귀는 인간보다 훨씬 더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고, 훨씬 더 뛰어난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벧후2:11). 그러므로 인간들을 스스로 내버려 두어서는 인간 스스로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와 구원받을 확률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에 빠진 인류를 깨워서 구원받게 하기 위해, 하늘에서부터 훈련된 자신의 종들을 이 땅에 내려보내시고 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선택받은 종들인 144,000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사역이 없이는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죄에 빠져 있고 사탄 마귀에게 포로되어 있는 인간을 구출하고자, 당신의 사역자들을 지금도 보내시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들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회개도 하는 것이고, 이들 때문에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구원까지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현재 천국의 상황을 살펴보면, 십사만 사천의 좌석이 거의 차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다만 아주 조금 비어 있을 뿐이다. 고로 지금의 때야말로 마지막으로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시기요, 충성하여 하나님의 주신 상을 준비할 수 있는 때인 것이다. 그리고 144,000명의 빈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시대인 것이다. 그럼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그것은 다른 이들보다도 더 회개하고, 더 충성하는 자가 받게 될 것이다. 아니 온전히 자신의 목숨을 주님께 드리며 헌신하는 자가 받게 될 것이다. 우리 가운데에서도 그러한 사람이 나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2023년 10월 29일(주일)

정보배목사

2023-10-22(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요한계시록이 말씀하고 있는 성도들의 휴거는 언제 있을까?(계19: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7H2VWHpqzxI [또는 https://tv.naver.com/v/42328107]

 

1. 들어가며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성도들의 휴거는 언제쯤 일어나는가? 요한계시록은 예수 승천 이후 재림 때 그리고 그 이후 영원 천국과 영원 지옥까지의 광경을 그대로 알려 주고 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어디에서도 성도들의 휴거의 장면을 직접적으로 알려 주지는 않는다. 다만 이미 성도들이 휴거된 상태를 말해 주거나 여전히 환난을 받고 있는 이전 상황을 말해 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성도들의 휴거가 언제 있을런지 미루어 짐작을 해야 한다. 하지만 성도들의 휴거의 문제를 공관복음서의 기록과 사도 바울의 편지와 함께 살펴봄으로서 성도의 휴거가 언제쯤 있을지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도들의 휴거를 앞둔 이 시점에서,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을 준비해야 하며, 어떠한 상태로 있어야 하는지를 고찰해 볼까 한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 성도들에게 다가올 종말의 때를 잘 준비케 도와주는 복된 말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 예수께서는 과연 언제 오시는가?

  예수께서는 과연 언제 오시는가?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하늘에서 구름을 타시고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하는데 그것은 주로 악의 무리들을 무찌르기 위해 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일 것이다. 이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예수께서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이 이끄는 땅의 왕들과 그들의 군대를 무찌르기 위해 오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의 모습은 사실 이와는 또 다른 측면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먼저 공중에 구름 속으로 오시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재림은 맨 마지막의 공개적인 재림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은밀한 재림(공중 강림)도 같이 있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은밀한 공중 강림의 모습을 '땅의 익은 곡식'을 추수하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계14:14~16). 즉 예수께서는 일곱 대접재앙들이 내려진 후 공개적으로 재림하시기 전에 먼저 공중으로 오심이 있는 것이다. 이는 일곱 번째 나팔이 울려퍼질 때에 구름 위에 오셔서 땅의 익은 곡식을 추수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때는 오직 땅의 익은 곡식들인 신실한 믿는 이들만을 공중으로 휴거시키신다. 이때가 되면 밭에서 일하던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남겨둠을 당하게 될 것이고, 방에서 두 여자가 맷돌을 돌리고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남겨둠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침대에서 잠자고 있던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남겨둠을 당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이 땅의 적그리스도의 치하에 일곱 대접 심판들이 내려질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주님께서 백마를 타고, 두 무리의 하늘의 군대들 곧 천사들의 무리와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의 무리와 함께 공개적으로 지상으로 오실 것이다. 

 

3. 누가 과연 휴거 때 휴거받는 알곡 성도가 되는가?

  휴거는 예수님의 은밀한 공중 강림 때에 발생하는 일이며, 그 시기는 여섯째 나팔 이후에 불어질 일곱째 나팔 때다. 나팔 중에 마지막 나팔인 일곱째 나팔이 울려퍼지면, 이 세상 나라는 우리 주님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분이 세세토록 왕 노릇하실 것이다(계11:15). 그러므로 다섯째 나팔재앙과 여섯째 나팔재앙 때까지는 이 세상은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아니다. 용과 짐승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때는 이 세상 임금인 용(사탄)과 짐승이 이 세상을 통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일곱째 나팔이 울려퍼지기 전까지는 적그리스도에 의해 통치받는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대환난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때 대환난은 무저갱의 열린 구멍 사이로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올라오면서 시작된다(계11:7). 참고로 대환난이 시작되는 시점은 다섯째 나팔재앙은 두 증인이 복음 전파사역을 마치는 때이자, 다섯 번째 나팔이 울려퍼질 때라는 것이다(계9:1~12).

  그렇다면 일곱 번째 나팔이 울려퍼질 때에 누가 과연 공중으로 휴거되어 올라가는가? 그 대상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익은 곡식'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 외에 가라지나 쭉정이는 이 세상에 남게 될 것이다. 세상을 벗하며 살아온 세속주의자 내지 인본주의자들도 역시 이 땅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 '음녀'라고 부른다(계17~18장). 이들은 그리스도인인데, 자신의 남편인 그리스도를 버려둔 채 다른 남자와 바람난 여자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곱째 나팔이 울려퍼질 때에 휴거받는 알곡 성도가 되려면, 첫째는 그때가 되기 전에 익어야 한다. 성숙해져야 한다. 설익어서는 아니 된다. 둘째는 알곡이 되어야 한다. 가라지가 되어서도 아니되고, 쭉정이가 되어서도 아니 된다. 셋째는 세상과 벗하며 살아가는 양다리 신앙 곧 음녀의 생활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휴거 때에 이 땅에 남겨지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16장을 통해서 예수께서 공개적으로 재림하시는 그 시기까지, 이 땅에는 음녀 성도들도 계속 있을 것임을 알 수 있다(계16:17~21). 고로 우리는 지금 알곡 성도가 되어야지 결코 환난 치하에 남겨지는 음녀 성도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4. 요한계시록에서는 알곡 성도가 구름 속으로 올라가는 장면을 어떻게 묘사해 주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는 휴거의 장면을 아주 독특하게 묘사해 주고 있다. 그것은 구름 위에 앉으신 인자 같은 이에 의해서 예리한 낫으로 추수하는 광경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계14:14~16). 여기서 구름 위에 앉으신 인자 같으신 이는 알곡을 추수하려고 먼저 구름 속으로 오신다.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계1:13). 그분은 천국에서 어린양의 모습으로, 그리고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인자 같은 이로 묘사되어 있는데, 알곡 성도들을 추수할 때에는 '인자 같은 이'라고 나온다.

  어느 날 때가 되면 하늘에서 천사가 큰 음성으로 예수님에게 어떤 요청을 할 것이다.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이는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계14:15)라고 외칠 것이다. 그러면 주 예수께서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곡식을 거두게 될 것이다. 그러면 땅의 곡식이 순식간에 거두어져 하늘로 올려질 것이다. 이것을 마태복음 24장에서는 구름 타고 오신 예수께서 당신의 천사들을 보내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알곡 성도들을 모으시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알곡 성도는 일곱 대접재앙들이 내려지기 전에, 인자 같은 이이신 예수님에 의해 공중으로 휴거되어 추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알곡 성도들은 공중에서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 때까지 머물러 있지는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곧장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가서 투명한 유리바다 앞에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계15:2~4). 이것이 바로 익은 곡식을 추수한 후에 있어질 모습이다. 즉 휴거받은 성도는 그대로 공중에 머물러 있다가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공중으로 불려 올라가서 예수님을 알현한 이후에는 곧장 천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 뵈온 후에 자기들을 위해 이미 천국에 준비된 채 있는 집으로 들어가서 지내다가 아마겟돈 전쟁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5. 알곡 성도들은 언제까지 적그리스도 치하에서 환난을 받아야 하는가?

  종말의 때를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복된 이들은 아마도 알곡 성도들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적그리스도에 의해 펼쳐지는 후3년 반의 대환난의 전반부까지는 보호를 받게 되겠지만, 대환난의 후반부에는 이 세상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고 공중으로 휴거되어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대환란의 전반부는 다섯째 나팔재앙과 여섯째 나팔재앙의 때다. 그런데 이때에는 성도들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에 의해 주어지는 환난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곡 성도들마저 이 기간 곧 대환난의 전반부에서 휴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로 여기까지의 사실만 보면 이는 '환난 통과설'이 매우 성경적인 견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환난 통과설'도 온전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대환난의 후반부에 속하는 일곱째 나팔재앙의 때에 알곡 성도들이 휴거된 채 공중으로 올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알곡 성도들이라도 처음 얼마 동안은 적그리스도에 의해서 지배를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 그러니까 대환난의 후반부(일곱째 나팔재앙)에 더 이상 알곡 성도들은 이 땅에 남아 있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일곱째 나팔이 언제 불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6. 성도들은 환난 전에 휴거되는가 환난 후에 휴거되는가? 

  그렇다면 성도들은 환난 전에 휴거된다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환난 후에 휴거된다고 해야 하는가? 그것은 우선 첫째로, 알곡 성도의 휴거가 적그리스도의 핍박 기간의 후반부에 가서 있을 것이기 때문에, 환난 전 휴거로 보기가 조금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휴거되는 성도들도 대다수의 성도들이나 모든 성도들이 휴거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소수만이 휴거되는 것이기 때문에, 환난 전에 성도들이 휴거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 대부분의 성도들은 대환난의 끝까지 이 세상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환난 후 휴거라고 말하는 것이 보다 더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알곡 성도들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환난 통과 내지는 환난 전 휴거라고 말해도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7. 마지막 때에 회개하는 성도들이 받게 될 축복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마지막 때에 회개하는 성도들이 받게 될 축복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다.

  첫째는 환난 기간에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다(계9:4). 이때는 대환난의 전반부 기간이 될 것이다. 즉 짐승이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다섯째 나팔재앙과 더불어 여섯째 나팔로 인한 제3차 세계대전까지 모든 믿는 성도들은 적그리스도의 치하에서 자신의 믿음을 보존해야만 한다(계13:10, 14:12). 하지만 이 기간에 땅에 거하는 사람들을 칠 때에, 귀신들이 사람들을 다섯 달 동안 괴롭게 하고 또한 사람들을 죽이는 기간이므로, 회개를 통해 자기 안에 귀신들을 제거한 자들은 귀신들이 치는 공격을 받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이때는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들을 귀신이 해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계9:4). 그리고 이들은 대신 성령이 충만한 상태에 있으므로, 꿈과 환상과 계시로 피할 수 있는 길도 갖게 된다. 그러므로 대환난의 전반부(다섯째 나팔, 여섯째 나팔)에 진실한 알곡 성도들은 적그리스도의 핍박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성도들이 다 보호받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 버가모교회의 지도자였던 안디바의 경우처럼 적그리스도에 의해 죽임(순교)을 당할 수도 있다(계2:13, 13:7). 이것은 순교자의 숫자를 채우기 위한 것이며, 하늘에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 곧 사명자들로서 144,000명이 채워지기 위한 목적에서 허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빌라델비아교회의 경우처럼, 작은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자들은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험의 때에서부터 지키심을 받게 될 것이다(계3:10). 

  둘째는 진짜 너무나 가혹한 환난의 때가 되면 공중으로 휴거가 될 것이다(계11:18, 14:14~16, 15:2~4). 그러나 대환난의 후반부에 가면 적그리스도의 포학성은 극에 달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다 목베임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목베임을 받는 순교자의 숫자가 채워지고, 144,000명의 보좌자리가 거의 채워지면 그때 주님께서는 순식간에 알곡 성도들만을 공중의 구름 속으로 끌어올리실 것이다. 물론 금 면류관을 쓰시고 예리한 낫을 가진, 인자 같은 이이신 예수께서 천사들을 시켜서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휴거 성도들을 모을 것이다. 그때가 바로 큰 나팔 소리이자 일곱째 나팔 소리이며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려퍼지는 날이다. 고로 알곡 성도들은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부활체를 입고 공중으로 끌어올려질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보호이다. 그런데 이러한 두 번째 보호를 가리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24:22[헬라어 직역] 그리고 만약 저 날들이 단축되지 않았다면, 혹 모든 육체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선택받은 이들 때문에 저 날들은 단축될 것이다. 

  그렇다. 고로 선택받은 이들 곧 알곡 성도들을 보호하시려고 주님께서 그들을 공중으로 끌어올리는 휴거를 가리켜, 환난의 날의 단축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고로 알곡 성도들에게 환난의 날은 분명하게 단축되어질 것이다. 그리고 알곡 성도들에게 휴거가 일어났을 때에, 지상에서는 일곱 대접심판이 속히 진행되어 마지막 일곱 대접심판은 속히 종결될 것이다. 

 

8. 나오며

  주님께서 오시는 날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2020년 2월~2022년 4월까지 전 세계를 묶어버린 코로나 팬데믹이 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작년 2월 24일부터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올해 10월 7일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에 또 하나의 전쟁이 터졌다. 그리고 이번 이스라엘 하마스 간의 전쟁은 언제까지 갈 것인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만약 이 전쟁이 중동전쟁으로 비화되면서, 중국과 대만 간에 전쟁이 터지고, 북한과 우리나라 간에 전쟁이 터진다면, 그것은 요한계시록 9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여섯째 나팔재앙 곧 제3차 세계전쟁으로 비화될 것이라고 본다. 특히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은 유대교와 이슬람 세계와의 분쟁으로 치닫고 있는데, 이 전쟁을 통해 이슬람권은 점차 하나로 뭉칠 것이다. 그러면 머지 않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이은 새로운 이슬람 제국이 탄생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세계 경제를 이슬람 제국이 장악한다면, 그 제국의 지도자가 바로 적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시대는 우리의 눈으로 적그리스도를 직접 볼 수도 있는 시대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파하고 회개하고 기도하려면 지금 해야 한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아직은 불법이 되지 아니하는 바로 이 좋은 때에 우리는 나 자신의 가족과 친족과 주변에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회개를 통해 악한 영들을 내보내야 한다. 그래야만 대환난의 전반부에 있을 귀신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령충만을 받아서 환난 기간 중에 자신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복음을 전파하고 회개할 기한이 우리에게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시간을 분초까지 아껴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되어 보자. 

 

2023년 10월 22일(주일)

정보배목사

 

2023-10-15(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이 곡과 마곡의 전쟁에 미칠 영향(계20:7~1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3Sof1vs5Hts [또는 https://tv.naver.com/v/42326696]

 

1. 들어가며

  지난 10월 7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산하 가자지구의 무장단체이자 정치 세력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침공하였다. 그런데 이번 침공은 조금 달랐다. 그것은 1년 이상 조직적으로 준비한 것이었으며, 이스라엘의 국방시스템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수천 발의 미사일로 공격하면 다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노린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협상할 것을 대비하여, 가자지구에 인접한 이스라엘 동네에 침투하여 사람을 인질로 잡아갔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지 이제 화가 난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치고 있고, 완전 파괴를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이 전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과연 이 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이나 혹은 곡과 마곡의 전쟁으로 이어질 것인지가 귀추가 주목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말씀에 이어 이 전쟁이 곡과 마곡의 전쟁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 것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2. 제3차 세계대전과 곡과 마곡의 전쟁은 어떠한 전쟁인가?

  의외로 많은 분들이 제3차 세계대전이 곡과 마곡의 전쟁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보면, 그것은 서로 다른 전쟁이다. 제3차 세계대전 곧 2억의 군대가 동원되는 제3차 세계대전은 일곱 나팔재앙 가운데 여섯째 나팔재앙에 해당하는 전쟁이고, 곡과 마곡의 전쟁은 일곱째 나팔재앙으로 구성된 일곱 가지 대접재앙들의 끝에 일어날 전쟁이다. 즉 제3차 세계대전은 적그리스도가 등장한 이후에 얼마 안 있어서 일어날 전쟁이라면, 곡과 마곡의 전쟁은 인류 최후의 전쟁인 것이다. 그런데 둘 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 곧 유브라데강 주변의 민족들로서 이슬람 세력들을 치는 전쟁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앞으로 20년 뒤부터는 전 세계를 이슬람 세력이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구 숫자로 보나, 경제적인 면에서 보나 거의 확실시 된다고 할 수 있다. 

 

3. 곡과 마곡의 전쟁은 어떤 전쟁인가?

  곡과 마곡의 전쟁을 바라보는 입장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곡과 마곡의 전쟁으로 보는 입장이 있고, 또 하나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곡과 마곡의 전쟁으로 보는 입장이 있다.

  그래서 이 전쟁을 구약성경에 나오는 '곡과 마곡의 전쟁'으로 보는 입장으로 본다면, 이 전쟁은 이스라엘과 곡의 나라가 치는 전쟁이다. 여기서 '곡'이라는 말은 왕의 이름을 가리키며, 곡이 차지하고 있는 땅을 가리켜 '마곡'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마곡'은 로스와 메섹과 두발, 이 세 지역의 땅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러니까 곡 왕은 로스와 메섹과 두발 지역을 다스리는 왕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과 전쟁할 것이라고 알려진 곡 왕은 로스와 메섹과 두발을 다스리고 있는 왕인 것이다.

  그렇다면 '로스와 메섹과 두발'은 어느 지역을 가리키는 것일까? 사람마다 그 해석이 약간씩은 다르겠지만, '로스'는 러시아 땅을, '메섹'은 모스크바(러시아의 수도)를, 두발은 '투볼스크'(구 소련의 그루지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관측하고 있다. 그러므로 곡과 마곡의 전쟁은 이스라엘과 러시아 간에 치르는 전쟁인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에스겔 38장~39장에 기록된 이 전쟁의 속내를 들여다 보면,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상대는 '러시아'만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상대는 일종의 러시아 연합군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러시아만이 독단적으로 이스라엘을 치는 것이 아니다. 이 전쟁에서 러시아는 셈족의 후예인 바사(오늘날의 '이란)와 아프리카의 구스(오늘날 '이다오피아')와 붓(오늘날의 '리비아') 그리고 고멜(오늘날의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일, 아르메니아')과 도갈마 족속(오늘날의 '터키')과 함께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싸운다. 그러니까 곡 왕은 셈족과 함족과 야벳족을 다 모아서 데리고 와서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곡과 마곡의 전쟁은 민족 간의 전쟁으로만 볼 수 없다. 

 

4. 신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곡과 마곡의 전쟁은 어떤 전쟁인가?

  그렇다면 신약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곡과 마곡의 전쟁은 어떠한 전쟁인가? 신약성경에서 곡과 마곡의 전쟁은 요한계시록에 나온다. 그리고 이 전쟁은 천년왕국 후에 펼쳐지는 전쟁으로서 인류 최후의 전쟁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전쟁은 총과 칼이나 대포 같은 무기로 싸우는 전쟁이 아니다. 하나님이 직접 불로 치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탄이 땅의 사방 백성 곧 만국을 모아서 성도들의 진영과 사랑하시는 성(예루살렘 성)인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이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의 숫자도 바닷가의 모래와 같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 전쟁은 성도들이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개입하여 하늘에서 불을 내려 치는 전쟁이다. 일명 영적인 전쟁인 것이다. 그렇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이 전쟁을 위해 만국을 모으는 자가 사람이나 국가가 아니다. 러시아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이 전쟁은 천 년이 찼을 때에 무저갱의 감옥에서 풀려난 사탄 마귀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전쟁하는 영적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백성들을 잠깐 보호하셨다가, 그들을 치러오는 사탄의 세력들을 오히려 한꺼번에 불로 태워 없애버리신다. 그리고 이 전쟁의 끝에서 적의 원수도 처리법이 다르다. 이때는 예수께서 강림하사 사탄 마귀를 산 채로 잡아서 불못에 던져버림으로 끝을 내신다. 그리고 그때 동시에 짐승(바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땅 짐승)도 그곳으로 던져버린다(헬라어 원문 참조). 그러니까 곡과 마곡의 전쟁은 곧 아마겟돈 전쟁과 동일한 전쟁에 대한 다른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번역본은 우리말 개역성경에서 번역하고 있는 것처럼(계20:10) 천년왕국 전에 '아마겟돈 전쟁'(계19:11~21)이 먼저 있으며, 그 전쟁에서 예수께서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불못에 던져 넣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더불어 천년왕국 후에 곡과 마곡의 전쟁이 있으며, 그 전쟁에서 예수께서 사탄을 불못에 던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실제로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은 동일한 전쟁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마겟돈 전쟁에서도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그들의 군대들이 하나님의 백성과 전쟁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예수님과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하기 때문이다(계19:11~16). 그리고 그 전쟁에서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그들의 군대들을 쳐부술 때에 사용하는 무기들도 이 세상에 있는 전쟁 무기들 곧 칼과 창과 화살, 총이나 탱크가 아니라,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칼 곧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곡과 마곡의 전쟁'(계20:7~10)은 하나님의 진영과 사탄의 진영과의 영적인 싸움을 가리키는 것이지,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들과 러시아 연합군이 서로 치고 박고 싸우는 전쟁이 아니다. 그리고 이때 두 무리의 하나님의 백성으로 등장하는 유대인들(사랑하시는 성)과 기독교인들(성도들의 진영)은 이제 소수의 무리가 된 상태이기에, 당시 짐승인 이슬람 세력과 어떤 무력으로 싸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단지 진영과 성에서 단지 수동적으로 자신을 보호만 할 뿐 적들을 공격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께 기도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여 악의 무리들을 처단함으로 끝내신다. 

 

5. 에스겔서에 나오는 '곡과 마곡의 전쟁'은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은가?

  우리가 에스겔서를 공부해 보면 알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사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여 그것은 결국 하나의 꿈이 되어버린다. 예를 들어 보자. 에스겔서에서는 새 성전(일명 '에스겔 성전')이 등장한다. 하지만 에스겔 성전은 지상에 건설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성전은 지금까지도 건축된 일이 없었으며, 그러한 성전은 앞으로도 건축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땅에 건축된 성전은 영적으로 예수님의 몸으로 성취되었고, 이어서 예수님의 몸은 다시 성령의 전인 교회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전한 성전은 하늘에서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스겔서에 나오는 에스겔 성전의 건축과 새 제사(예배) 그리고 새 땅의 분배는 이 땅에서 영적인 이스라엘인 교회에서 어느 정도 성취되었다가 장차 하늘에서 성취될 일들에 대한 예언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에스겔서에 나오는 '곡과 마곡의 전쟁' 또한 미래에 있을 영적인 전쟁에 대한 예표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제시하고 있는 '곡과 마곡의 전쟁'을 잘못된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고, 또한 육적인 것으로 해석하여 영적인 전쟁을 미처 대비하지 못한 채 사탄 마귀에게 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러시아 연합군과 싸우는 곡과 마곡의 전쟁은 영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본문인 것이지 결국 육적인 본문으로 해석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조짐들이 보일 때마다 우리는 영적인 전쟁을 잘 준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또한 그도 그럴 것이, 에스겔서 38~39장에 나오는 전쟁에서 곡과 마곡의 군대를 대항하여 싸우는 이스라엘 군대가 곡과 마곡의 군대를 무찌르는 무기를 보라. 그 무기는 결코 군대가 사용하는 무기가 아니다. 또한 에스겔 38~39장에 나오는 곡과 마곡의 전쟁도 역시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끝내는 전쟁으로 언급이 되어 있다. 즉 이때 사용되고 있는 무기는 결코 이 세상의 무기가 아니다. 큰 지진과 칼로 그리고 전염병과 피 그리고 폭우와 큰 우박덩이 그리고 불과 유황이기 때문이다(겔38:17~23).

  그렇다. 에스겔서에 나오는 말씀들은 사실 과도기적인 말씀이다. 지상에 이뤄지도록 예정한 것이었지만 육적인 하나님의 백성의 타락으로 인하여 그것이 결국 그 말씀대로 성취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에스겔서에 나오는 예언은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인 교회에서 일차적으로 성취되는 예언으로 보아야 하고, 이어서 궁극적으로는 저 천국에서 성취될 예언들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6.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곡과 마곡의 전쟁에 미칠 영향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은 일종의 종교전쟁이다. 유대교를 믿는 이스라엘과 이슬람교를 믿는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하마스도 이 전쟁을 시작했을 때에는 이미 자신의 종교적인 형제들인 다른 이슬람 국가들이 자기들을 도와줄 것을 기대하고 이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다. 이슬람 중에서도 강경파인 이란이나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조금 강경한 목소리를 낼 뿐, 온건파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별 움직임이 없다. 왜냐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가 끝나가는 시대에 자신의 나라를 먹여 줄 방법을 찾고 있는데, 그것은 석유가 아니라 산업단지 조성과 관광산업이라고 보고 그것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사막 한가운데에 그러한 인프라를 독단적으로 구축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미국의 도움이나 이스라엘의 도움이 절실하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러므로 사우디의 왕세자가 작년에 한국을 다녀갔다. 그런데 이 전쟁이 터진 것이다. 새로운 경제 대국을 꿈꾸는 사우디의 왕세자는 그래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전쟁이 한때 전 세계를 다스렸던 이슬람 제국 곧 '오스만 투르크'의 재건을 다시 생각케 하는 전쟁인 것만큼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마스가 없어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와신상담할 것이다. 그래서 경제 대국을 만든 다음에, 이슬람 형제를 쳤던 유대인들을 가만두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이 세상의 왕이 되려고 할 때 가장 반기를 들게 될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을 가차없이 제거할 것이다. 왜냐하면 곧 있으면 재건될 이슬람 제국의 최고 지도자가 적그리스도가 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7. 나오며

  요한계시록에서 곡 왕은 사탄이 쓰는 자로서 장차 '짐승'이라고 불리게 될 것이다(계13:1~10). 사탄이 직접 죄 없는 사람을 죽일 수는 없으므로, 자신을 대신할 인간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이다. 그리고 또 다른 '짐승'을 들어 쓸 것이다(계13:11~18). 우리는 앞의 짐승을 '적그리스도'라고 부르고, 다음의 짐승을 '거짓 선지자'라고 부른다. 그래서 장차 사탄과 짐승 그리고 거짓 선지자가 악의 삼위일체가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인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고 죽일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일하셨듯이, 사탄도 사탄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로 일을 행할 것이다. 그래서 인류 최후의 전쟁인 곡과 마곡의 전쟁에서 사탄은 마곡 땅의 왕인 곡을 짐승으로 쓸 것이다. 그러므로 만국의 왕을 대표하는 짐승은 결국 사탄이 주는 짐승의 영이 들어가 사탄이 행하는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경제로 세계를 장악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하나님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고 자신을 신으로 따르게 할 것이다. 만약 그것을 따르지 않고 복종하지 않으면, 그는 그러한 사람을 가차없이 죽이고 없애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이 모든 일의 서막이 될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우리가 복음을 전해 줄 수 있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려면 지금 전해야 하고, 기도해서 능력받으려면 지금 기도해서 받아야 한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황금 추수기가 끝나고, 이제 서서히 저 산등성이에서 막 넘어가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10월 15일(주일)

정보배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