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3(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요한계시록강해보완(41)] 천상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주된 관심사는 무엇인가?(계1:9~2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_zTvQWK5o8k [또는 https://tv.naver.com/v/45415423]

 

1. 들어가며

  예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년전 이 땅에서 사셨다. 그는 이 땅에서 33년반의 생애를 사셨다. 그리고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가셨다. 그리고 약 60년이 흐른 A.D.95~96년경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유배되어 있을 때에 천상에 계신 예수님을 뵙게 되었다. 천상에 계신 예수님은 지상에 계셨던 그분이었지만 그 모습은 지상의 계셨던 그분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분은 하나님의 모습으로 계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은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던 분이신 것이 더이상 사람이 아니셨다. 그렇다면 천국에 계신 예수님은 어떤 모습을 하고 계신 것일까? 그리고 그분은 자신을 어떤 존재로서 소개하고 계신가? 그리고 그분이 천상에서 가장 관심갖고 있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래서 오늘은 천상에 계신 예수님의 모습과 아울러 그분의 자기소개 그리고 그분이 천상에서 가장 가장 관심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천상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누구라고 소개하셨는가?

  천상에 계신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자신을 어떤 존재로 소개하였을까? 사도 요한의 눈에 비친 예수님은 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셨는데 그분의 모습은 '인자같은 이'로 보였다(계1:13). 그런데 사도 요한은 그분을 감히 처다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분 앞에 납작 엎드렸다. 그리고 죽은 자 같이 두려워서 떨고 있었다. 그때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자신의 오른 손을 얹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있어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서 사망의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1:17~18)"

  이때 예수께서는 자신을 첫째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알려주셨다. 그런데 이 선언은 구약시대에 홀로 한 분이신 여호와께서 자신을 이사야선지자에게 소개하실 때 사용했던 바로 그 자기소개에 해당한다(사41:4, 44:6, 48:12). 결국 우리는 이 증언을 통해서 예수께서는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구약시대에는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소개하셨으며, 부활승천하셨던 예수께서도 자신을 소개하실 때에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소개하셨으니, 우리는 여호와와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께서는 둘째로,  '세세토록 살아있는 이'라고 소개하셨다(계1:18). 그런데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신 이를 가리켜 '세세토록 살아계신 이'라고 칭했다(계4:10). 그러므로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3. 천상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모습을 하고 계셨는가?

  A.D.95~96년경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에 성령에 감동되어 자신의 뒤쪽에서 들려오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가 몸을 뒤로 돌이켰을 때에 그는 일곱 금촛대 사이에 거닐고 계시는 인자같은 이를 보게 된다. 그런데 그분은 그가 3년반동안 섬겼었던 바로 그분,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런데 그분의 모습은 지상에 계실 때에 뵈었던 그분과는 사뭇 달랐다. 지상에 계실 때에는 그분은 청년이셨는데, 천상에 계신 예수께서는 청년이었던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사도 요한이 천상에서 보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총 10가지로 표현되어 있다. 

  첫째, 그분은 일곱 금촛대(등대) 사이에 거닐고 계셨다(계1:13, 2:1). 여기에 나오는 '일곱 금촛대(등대)'는 지상에 있는 일곱 교회를 상징한다(계1:20).

  둘째, 그분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계셨다(계1:13). 이는 구약시대에 제사장이나 대제사장이 입던 통으로 짠 옷을 입고 계셨음을 의미한다. 그분은 천국에서 제사장 내지는 대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고 계셨던 것이다. 

  셋째, 그분은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셨다(계1:13). 이는 예수께서 왕직을 수행하는 왕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왕은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을 보니 희기가 흰 양털 같았고 눈 같았다(계1:14). 이는 그분의 순결하신 분이며, 거룩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분은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로서 성결하고 존엄하신 분이신 것이다. 그분의 머리와 머리털이 깨끗한 양의 털 같다는 표현은 구약시대에 다니엘이 보았던 하나님의 모습과 흡사하다(단7:9). 다니엘은 그때에 어떤 보좌들을 보았으며, 그 보좌 위에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앉아 계시는 것을 보았는데, 그분의 옷은 희기가 눈 같았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았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단7:9). 그는 곧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다섯째, 그분의 눈을 불꽃 같았다(계1:14). 이는 그분이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뜻이고 모든 것을 다 감찰하고 계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분의 눈은 어린양의 일곱 눈들로서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일곱 영들 곧 성령님을 가리킥 때문이다(계5:6). 고로 이 세상 그 어떤 존재도 그분의 눈을 벗어나서 따로 존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두가 다 그분의 통치 아래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하신 분이시므로 온 인류의 심판자도 될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여섯째, 그분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된 빛난 주석 같았다(계1:15). 여기서 '주석'이란 금과 은과 합금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매우 무겁다. 그러므로 그분의 발에 밟히면 모두가 으깨져버린다. 그분은 모든 사람을 공의로, 자기가 행한 행위대로 갚아주실 것이다. 그분만이 공평한 심판주이시기 때문이다. 

  일곱째, 그분의 음성을 많은 물소리 같았다. 이는 그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목소리를 사도 요한만 들었던 것이 아니다. 구약시대에는 에스겔이 그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다(겔43:2). 이는 예수님의 목소리가 위엄찬 목소리였다는 사실과 아울러 그분이 근엄하시고 엄위하신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여덟째, 그분의 오른 손에 일곱 별들을 쥐고 계셨다(계1:20). 여기서 오른 손은 '능력, 영광, 승리'를 상징한다. 또한 '일곱'이라는 말은 이 땅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킨다. 그리고 '별'은 각 교회의 사자 곧 각 지교회의 말씀전달자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신의 오른 손에 일곱 별들을 쥐고 계셨다는 것은 예수님은 지금도 각 교회의 메시지 전달자를 붙들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아홉째, 그분의 입에서는 좌우에 날이 선 칼이 나오고 있었다(계1:16, 계19:15).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칼'은 '롬파이아'라는 단어로서, 전쟁할 때에 사용하는 긴 칼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입에서 긴 칼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예수께서 전쟁에서 장수의 일을 감당하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로 예수님을 다른 각도에서 보면 영적 전쟁의 최고 지도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분은 전쟁에 능하신 이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는 마귀를 3대0 판정승으로 이겼고, 십자가 때에는 KO승을 거두셨다. 그분만이 마귀의 지혜와 능력을 초월해 계시는 전지전능자이시기 때문이다. 

  열째, 마지막으로 그분의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았다(계1:16). 이는 그분이 참 빛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분은 이 세상에 들어와서는 세상을 비추는 참 빛이요, 생명을 빛이지만, 그분이 천상에 계실 때에는 빛 자체이신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천국은 빛으로 만들어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4. 천상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에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그렇다면 천상에 계신 예수께서는 대체 무엇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천상에 계시는 그분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보았을 때 예수께서는 자신의 오른 손에 일곱별들을 쥐고 계시면서 일곱 금 촛대(등대) 사이를 거닐고 계셨다. 그런데 그의 눈은 어린양의 일곱 눈들로서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서 세상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천상에서 무엇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인 말씀전달자들'이다. 인자같은 이이신 예수님의 눈에는 교회가 보이는 것이다. 과연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인가 죽은 교회인가를 보시고 있는 것이다. 과연 기도의 불이 켜져 있는가 꺼져있는가를 보시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되게 하려면 교회이 지도자인 말씀전달자가 살아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가 성령충만한 상태에 있어야 한다. 또한 그는 때를 따라 돕는 양식을 성도들에게 잘 먹이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존재이유가 사라진다. 그러면 일곱 금 촛대로 표현된 교회를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시기 때문이다. 

 

5. 말세를 만난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고로 말세를 만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교회와 교회의 목회자에게 더욱 더 관심을 집중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또한 목회자의 입에서부터 나오는 말씀에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말씀전달자의 입으로부터살아있는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목회자와 더불어 회개하고 천국복음을 전파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날 자신이 속해 있는 교회를 주님께서 오셔서 없애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교회가 교회가 되게 하려면 목회자가 살아 있어야 한다. 교회가 곧 말씀전달자인 목회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세일수록 성도들은 교회를 잘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말씀전달자를 잘 선택해야 한다. 말씀전달자에 의해서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기도 하고 성밖으로 밀려나는 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계22:15).또한 만약 잘못된 가르침을 따라가다보면 성도들 중에 성밖으로만 쫓겨나는 사람이 생길 뿐만 아니라 불못에까지 들어가는 성도도 나올 수가 있기 때문이다(계21:8). 

 

6. 나오며

  교회란 무엇인가? 우리는 교회의 정의를 사도 바울을 통해서 들었을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의 신부요, 새 사람이요, 새 성전이요,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등등으로 말이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교회를 그렇게 정의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에서는 교회를 성령의 불이 타오르고 있는 등대(촛대)라고 표현하면서 동시에 말씀전달자가 곧 교회라고 표현한다. 그렇다. 교회의 주인은 성령이시다. 그분이 운행하는 교회라야 참다운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인간적인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이나 건물이 잘 지어진 건물이 교회가 아니라, 성령이 운행해야 그것이 교회가 되는 것이다. 특히 말씀을 전달해주는 말씀사역자가 주님의 온전해야 그 교회를 교회라고 부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과연 나는 지금 교회다운 교회에 소속되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과연 얼마나 성령을 존중히 여기고 있는지도 살펴보면서, 내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해주는 목회자를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있으며, 그를 주님처럼 사랑하고 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만약 목회자에 대한 사랑이 식어진 채 계속 지속된다면 주님께서는 그 교회를 없애버리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2:5). 

 

 

2023년 12월 03일(주일)

정보배목사

2023-11-26(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인류를 창조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계1:4~7)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uYV1nXlNTfI [또는 https://tv.naver.com/v/45415276]

 

1. 들어가며

 

 

 

2. 창세기의 창조기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3.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4.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5. 요한계시록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6. 나오며

 

 

 

 

2023년 11월 26일(주일)

정보배목사

2023-11-19(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요한계시록강해보완(30)] 상급에도 차등이 있는데 그렇다면 형벌에도 차등이 있을까?(계22:12~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wVY_R1g6VM4 [또는 https://tv.naver.com/v/45413228]

 

1. 들어가며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다 영적인 나이와 계급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상급도 각각 다르다.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그들에게 보상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성도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보상은 다 이 땅에서 자신이 행한 것들을 되돌려 받는 것이다. 그래서 천국은 아주 공의로운 장소다. 그렇다면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은 어떠할까? 한 번 지옥에 떨어지면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 지옥의 장소에 떨어지며 똑같은 형벌을 받는 것일까? 그래서 오늘은 과연 지옥은 어떤 곳이며 그곳에서도 차등 형벌이 존재하는지를 살펴보고, 만약 차등 형벌이 있다면 어떤 형벌들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2. 지옥은 어떤 곳인가?

  우리말 성경에 나오는 '지옥'이란 땅의 감옥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헬라어 원문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우리말로 '지옥'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로 '게헨나'이다. 그 뜻은 '힌놈(애곡)의 골짜기'라는 뜻이다(느11:30, 수15:8, 수18:16).

  '힌놈의 골짜기' 혹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란 예루살렘의 남쪽에 있는 계곡을 가리키는데, 여기에 과거에 아이를 제물로 바쳤었다(왕하16:3, 21:6). 그때는 불로 이글거리는 황소의 형상을 하고 있는 몰록신의 팔에 어린아이를 던져서 태워 죽였다. 그러자 그때부터 계곡에서 울음소리가 퍼져 나갔다. 그러다가 요시아왕 때에 인신제사가 금지되었다. 그리고 그곳을 사람들이 혐오하여 그곳에 모든 종류의 쓰레기를 버렸다. 심지어 죽은 동물의 사체를 버리기도 하였고 매장되지 못한 범죄자들의 시체를 그곳에 던졌다. 그래서 그 쓰레기와 시체를 태우기 위해 유황불을 붙였다. 그러므로 그곳은 유황불이 타는 곳이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항상 불이 타고 있고 독한 악취가 나는 그곳을 사람이 심판받아 떨어져서 영원히 고통받는 장소 곧 지옥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실제로 지옥에 가면, 유황불이 타고 있고, 독한 악취로 가득하다(막9:43, 계21:8). 그러므로 이 비유적인 표현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막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2. 천국과 지옥, 과연 어떤 구조일까?

  그렇다면 천국과 지옥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가? 누가복음 16장에 읽어 보면, 음부에 들어간 부자가 아브라함의 품(낙원)에 있는 거지 나사로를 보면서 아브라함에게 어떤 부탁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면 음부와 낙원이 가까운 장소일까?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영의 세계에서는 거리상의 구분이 거의 필요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영의 세계에는 두 세계가 매우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두 세계는 절대 오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실제 영의 세계에서는 천국과 지옥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것은 사실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불못이 나타나는 시기가 될 때에 공개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천국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을 가리킨다. 열두 진주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는 그곳이 바로 천국인 것이다. 그리고 지옥은 새 하늘과 새 땅의 밑에 위치해 있다. 물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지옥은 공간적으로 떨어진 무엇인가가 있다. 그러므로 절대 오갈 수는 없다. 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의 땅 밑에 지옥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과 지옥은 일종의 두 개의 원뿔형이 서로 거꾸로 마주 대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위에 있는 원뿔형은 새 하늘과 새 땅의 구조를 말해 준다. 그리고 원뿔의 최고 꼭대기가 바로 시온산이며, 시온산에서 제일 높은 장소에 바로 하나님의 보좌가 위치해 있다. 그리고 성도들은 평지에서부터 시온산쪽을 향하여 있는 각자의 집에서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보좌쪽으로 갈수록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사실 집도 멋진 대저택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지옥은 이와 정반대다. 원뿔을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생겼으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깊은 지옥이 되는데 그럴수록 형벌이 더 세진다. 그리고 지옥 제일 아랫쪽에 사탄이 자신의 보좌를 만들어 놓고 거기에서 귀신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 

 

3.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는 장소는?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성경의 기록으로 보면, 세 군데로 간다.

  첫째는 '성밖'으로 간다(계22:15, 마25:10). 새 예루살렘 성의 바깥이 바로 성밖인 것이다. 성밖에는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결국 그가 죽을 때에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진 자가 가는 장소다. 그러므로 지옥은 새 예루살렘 성의 바깥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둘째는 '더 바깥쪽 어두운 곳'이 있다(마22:11~13, 25:28~30, 8:11~12). 이곳은 바깥쪽으로 갈수록 점점 더 어두워지는 곳이다. 사실 성벽 가까이 붙어 있는 성밖은 어느 정도 빛이 비친다. 왜냐하면 새 예루살렘 성 자체가 거대한 빛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빛이 되어 주시고 어린양이 등불이 되어 주시기 때문에 성안은 항상 대낮처럼 밝은 곳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밤이 없다. 하지만 그 빛 때문에 성 바깥 바로 연접한 곳에는 어느 정도 빛이 비치고 있다. 하지만 성 바깥쪽으로 갈수록 빛은 줄어든다. 그러므로 성 바깥쪽으로 갈수록 어둡다고 할 수 있다. 더 바깥쪽은 성 바로 바깥에 사는 자보다 더 죄를 지은 자가 가는 장소인 것 같다. 왜냐하면 형벌받을 자가 더 바깥쪽 어두운 곳으로 가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주님을 배척했던 외식하는 자들(마8:11~12)과 예복을 입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려고 했던 자들(마22:11~13)과 악하고 게을렀던 종이 가는 장소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마25:30). 

  그리고 셋째는 '불못'이 있다(마13:41~43,47~50, 25:41, 계21:8). 불못은 사실 불과 유황이 타는 연못이다. 거기에는 영영한 불이 타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는 누가 들어가는가? 이곳에는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불신자들(계21:8)이 들어간다. 그리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남을 실족하게 하는 자들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어서 생명책에 이름이 지워진 자들이 들어간다(마13:41~43). 그리고 의인 중에서 악인이 들어가며(마13:47~50), 염소의 자리에 속해 있는 외식하는 자들로서 입은 살아 있지만 행함이 없는 자들이 들어간다(마25:41). 

 

4. 지옥(게헨나, 불못)의 4대 특징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장차 진짜 지옥 곧 불과 유황이 타고 있는 불못은 대체 어떤 곳일까?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통하여 그리고 지옥의 실제 상황을 통하여 그곳이 어떤 곳인지를 어느 정도 알 수가 있는데, 그곳은 다음과 같이 4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지옥은 물이 없고 불이 넘쳐나는 곳이다(눅16:24). 천국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생명수가 흘러나와 하나님의 보좌를 적시고 생명강을 이룬다. 그리고 그것이 아래층으로 흘러내려가 성도들이 살고 있는 모든 땅을 적신다. 그러므로 천국은 물이 풍부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지옥은 이와 반대다. 물이 없는 곳이다. 물 한 방울을 마실 수 없는 장소가 지옥이다. 대신 지옥은 불이 가득하다. 어디를 가든지 화염으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지옥은 뜨겁다. 불에 데이면 육신이 불에 데인 것과 같은 고통을 느낀다. 그리고 이곳에는 불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름가마가 있어 사람을 기름에 튀겨버린다. 그리고 용암도 있어서 사람들을 용암에 빠뜨려버린다. 

  둘째, 지옥은 빛이 없고 캄캄한 어둠이 가득 찬 곳이다(벧후2:17). 천국은 빛의 나라다. 하나님이 빛이시고 어린양이 그 등불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국에는 밤이 없다. 하지만 지옥은 이와 반대인 곳이다. 그곳에는 빛이 없기 때문이다. 그곳은 캄캄한 어둠만이 있기 때문이다. 빛이 있다면 화염이 비칠 때에 잠시 볼 수 있을 뿐이다. 실제로 지옥에 가 보면, 그곳의 시간은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의 시간만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새벽 4시가 되면 아침이 오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밤 11시가 되는 것이다. 

  셋째, 지옥은 향기가 없고 악취와 유황 때문에 숨쉬기가 곤란한 곳이다(계21:8). 천국은 향기가 가득한 나라다. 꽃밭에서 온갖 종류의 꽃들이 피어나며 거기에서 향기가 나온다. 그리고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 그것이 방귀가 되어 나오는데 향기가 되어 나온다. 천국에는 그래서 화장실이 없다. 그런데 지옥은 다르다. 온갖 악취와 유황 냄새로 인해 숨쉬기가 매우 힘든 곳이다. 역겨운 냄새로, 사람의 살이 타는 냄새로 가득한 장소가 지옥이기 때문이다. 온갖 배설물과 사람의 살이 타는 냄새로 인해 온통 악취 뿐인 곳이 그곳이다. 숨이 컥 하고 막히는 장소가 지옥인 것이다. 

  넷째, 지옥은 온통 사람을 괴롭히는 벌레와 곤충과 짐승들 그리고 고문하는 귀신들이 가득찬 장소다. 천국은 온갖 멋있는 나비들과 새들과 짐승들이 있어 모두가 다 말을 하면서 반겨 주는 곳이다. 하지만 지옥은 이와 반대다. 지옥에 있는 생명체들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고문하고 괴롭혀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지옥에는 구더기들이 있는데, 구더기에는 이빨이 달려 있어서 사람의 살을 파고 들어간다(막9:48~49). 그리고 각종 징그러운 곤충들과 동물들이 있다. 바퀴벌레, 거미, 전갈, 지네 등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곳에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다가와 사람에게 고문을 준다. 더욱이 지옥에는 귀신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 역시 각종 고문 도구들을 사용해서 지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문을 준다. 톱으로 몸을 썰어버리고, 펜치로 눈과 혀를 뽑아 버리고, 망치로 머리를 깨뜨려 버리고, 불로 지져버린다. 

 

5. 지옥에 들어가지 않으려면?

  한 마디로 지옥은 어떤 곳인가? 그것은 사람 살 곳이 못되는 곳이다.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이다. 이곳이 더욱더 비극적인 이유는 지옥에 들어가서 당하는 고통을 끝없이 맛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만이라도 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쉴 수도 없는 곳이다. 언젠가 나갈 수 있는 기회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곳이다. 더욱이 이곳에서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원히 고통을 맛보는 곳이 지옥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이곳에 가면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지옥을 면할 수 있는가? 그것은 2가지다. 첫째, 예수님을 믿어서 과거의 죄를 탕감받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 올리는 것이다. 둘째, 날마다 과거의 지은 죄를 회개하여 저주에서 벗어나면서, 현재 짓고 있는 죄까지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옥은 죄를 지었으나 죄를 용서받지 못한 자들이 가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 스스로 자신의 죄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에 당신이 대신 벌을 받으려고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대신 벌을 받으시고 죽으셨다. 그리고 감옥에까지 갇히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믿는 자는 형벌을 면제받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은 후에 지은 죄들에 대해서는 회개를 통해 용서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었을 때에 이미 미래의 죄까지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이들은 회개를 소홀히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따라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행동을 따라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날마다 자신의 죄를 낱낱이 회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날마다 깨끗한 세마포 옷으로 단장해야 한다. 

 

6. 나오며

 사실 지옥은 어떤 사람들이 가는가? 그것은 회개하여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스스로 저버린 자들이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 스스로가 죄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신 하나님께서 우리 대신 형벌을 받으시려고 이 땅에 내려오셨으며, 또한 그 죄값을 치르셨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를 살려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거부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는 결국 죽어서 자신이 자신의 죄값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지옥의 형벌에 처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옥에 떨어지게 된 것은 다 자신의 책임 때문에 생기는 것이지 결코 하나님의 책임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함으로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으로 태어나서 살아갈 때에, 가장 먼저 해야 할 가장 큰 일은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것 이외 다른 방법으로는 자신이 지은 죄값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절대 우리 힘만으로는 하나님의 생명을 취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오직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며, 하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름하여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이러한 구원을 우리는 값지게 여겨야 한다. 그리고 그분이 값없이 베풀어 주신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이웃에게 복음을 전파해 주는 일이며, 그것은 바로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땅에 전해 주는 일이다. 

 

 

2023년 11월 19일(주일)

정보배목사

2023-11-12(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요한계시록강해보완(24)] 성 밖은 대체 어떤 곳이며 누가 새 예루살렘 성 바깥으로 쫓겨나게 되는가?(마25:24~3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VyGmvTvSNog [또는 https://tv.naver.com/v/43804095]

 

1. 들어가며

  요한계시록 22:15에 의하면, 새 하늘과 새 땅에 성밖이 있다는 것을 소개해주고 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2:15의 말씀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성밖'의 단어에 '성(城=폴리스)'이라는 단어는 들어있지 않다. 성경을 번역한 사람이 임의대로 '성'이라는 글자를 추가한 것이다. 헬라어 원문에는 '엑소'(바깥, 밖, outside) 즉 '바깥'이라는 단어만 있다. 하지만 여기서 '바깥'이라는 단어는 그때까지 천사가 사도 요한에게 새 예루살렘 성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었기에 문맥상 새 예루살렘 성의 '바깥'을 지칭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성밖'은 대체 어떤 곳인가? 그리고 그곳에는 과연 누가 살게 되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밖'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를 원한다. 그리고 어떻게 되어야 우리도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서 살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우리의 구원의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할 때에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느 단계까지 구원을 받아야 하는가? 그동안 들어왔던 말씀을 종합해 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4단계의 구원까지 이르러야 함을 알 수 있다. 

  첫째, 최초에는 죄와 죽음에서 구원받는 단계다. 사람이 처음으로 구원을 받았을 때에는 죄와 죽음으로부 벗어나는 구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구원'이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인하여 내가 죄와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할 때 죄사함으로 실현되는 것이며, 죽어서는 둘째 사망(불못에 던져짐)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나는 것이다. 

  둘째,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을 받는 단계다. 혹 우리가 죄와 죽음에서 벗어났다고 할지라도 셋째 하늘에 준비된 천국에 못 들어간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구원을 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처음에는 이신칭의를 통한 구원을 가지고 목청껏 외쳤지만(롬5:9), 나중에 그가 신앙의 여정을 마감하려 할 때에는 천국 안으로 들어가는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딤후4:18).

  셋째,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는 구원을 받는 단계다. 천국이라는 개념은 사실 2가지를 포함한다. 하나는 상태적인 천국이요 또 하나는 장소적인 천국이다. 상태적인 천국이란 사실 이 세상에서도 누릴 수 있는 천국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왕의 통치가 임하는 곳이 곧 천국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눅17:20~21). 그러나 우리가 궁극적으로 받아야 할 구원은 장소적인 천국으로서 지금 셋째 하늘에서 준비되고 있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계21:27).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이 성은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하는 것처럼 단장을 마치게 될 터인데, 우리가 얻을 구원은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구원을 받는 것이다. 

  넷째,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 가는 구원을 받는 단계다. 우리가 구원을 받되,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구원을 받는다는 것 자체도 사실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사모해야 할 구원은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에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보다 더 영광스러운 지위와 신분을 얻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 더 나아가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허다한 무리에 있기 보다는 144,000명이 되는 것이고, 144,000명 중에서도 왕노릇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천국에서 성도의 지위와 신분은 예배드릴 때에 얼마나 더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 가느냐가 알려주며, 천국의 아랫층의 거주지에서 살 때에는 얼마나 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시온산 가운데에 더 가까이 집을 짓고 사느냐가 알려준다. 

 

3. 누가 성밖으로 쫓겨나 거기서 살아가는가?

  장차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에 하나님 밖에서부터 하늘 안에서부터 새 예루살렘 성이 내려올 때가 있을 것이다(계21:2). 그리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만이 그 성 안으로 들어가서 영원히 살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밖이라는 공간이다.

  대체 새 예루살렘 성밖에는 누가 사는 것인가? 이것에 대해 그동안 알려진 바가 없었다. 하지만 주님 오실 때가 다 되다보니, 이제 성경에 이미 기록된 말씀이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되었고, 그것 가운데 하나가 '성박'이라는 장소다. 그럼, 누가 '성박'으로 쫓겨나게 되는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요한계시록 22:15의 말씀에 보면, 6종류의 사람들이 성밖으로 간다. 그들은 바로 개들과 십계명을 어긴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계22:14~15 자기[들의] 두루마기[들](겉옷들)를 빠는(빨고 있는) 자들은 복[들]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안으로)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들은 불신자들로서 죄를 용서함받지 못한 자들인가 아니면 믿는 자들이었는데 회개를 하지 않아 성밖으로 쫓겨난 자들인가? 결론적으로 이들은 불신자들은 아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이었으나 회개를 하지 않아 성밖으로 쫓겨난 자들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최종적으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만 성 안으로 들어간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계21:27).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채 그 이름이 지워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자는 문맥상 자기의 더럽혀진 두루마기(겉옷)을 빨지 않은 자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자기의 겉옷을 빨지 못한 채 있는 자들은 불신자를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다. 고로 성밖에 있는 사람들이란 그리스도인이었으나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 이들이 다 믿는 자들이었으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죽은 자들이다. 이러한 사실은 마태복음에서도 여실히 증명해준다. 즉 마태복음 25장에 따르면 누가 성밖에 남겨겨지며 또한 누가 더 바깥쪽 어두운 곳으로 내쫓기는지가 나와 있는데, 이들은 첫째,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던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자, 또한 악하고 게으른 종이었다. 이들은 전부다 신랑을 기다리는 자들이었으며, 주님의 종들이었다. 고로 성밖에 가는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으나 댓가를 지불하지 못해 성 안에 들어갈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사명을 받았으나 악하고 게을러서 그 일을 충직하게 수행하지 못한 자들인 것을 알 수 있다. 

 

4. 성밖과 바깥 어두운데는 어떻게 다른가?

  그렇다면, '성밖'과 '더 바깥 어두운데'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천국의 구조에 대해 조금 알아둘 필요가 있다. 천국은 새 예루살렘 성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 이 성이 내려오는 장소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하늘과 이 지구를 가리키지 않는다. 지금도 준비되고 있는 질적으로 새로운 하늘과 새 땅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모든 천국백성이 사는 것이 아니다. 천국백성은 오직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사는 자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밖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나 쫓겨난 자들이 가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에 한 번 떨어진 자들은 성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그들은 영원히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밖은 모두가 똑같은 장소인가? 아니다. 성밖이라는 장소도 적어도 두 부분으로 구별된다. 하나는 성 바로 바깥이 있으며(계22:15), 또 하나는 성에서 점점 떨어져 더 바깥쪽이 있기 때문이다(마25:30). 그런데 성의 더 바깥쪽은 그쪽으로 갈수록 더 어두워진다. 왜냐하면 성안을 둘러비치고 있는 환한 빛이 그곳까지는 비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 바로 바깥은 그나마 성안의 빛 때문에 걸어다닐 정도는 된다(계21:24). 하지만 더 바깥쪽으로 갈수록 빛이 없기 때문에, 완전히 바깥쪽은 칠흙같은 어둠으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더 바깥쪽으로 갈수록 은혜가 없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곳은 지옥과 거의 방불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바깥쪽으로 갈수록 형벌이 점점 강도가 세진다. 더 바깥쪽으로 갈수록 형벌을 더 많이 받게 되기 때문이다.

 

5. 우리 주 예수께서는 성밖과 더 바깥쪽 어두운 데를 어떻게 비유적으로 말씀해주셨는가? 

  이제는 성경말씀을 근거로 누가 성밖으로 가게 되며, 또한 더 바깥쪽 어두운 곳으로 가게 되는지는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그냥 '성밖' 즉 성바깥쪽으로 가는 자들이 있다(마25:1~13). 이들은 마태복음 25장의 열처녀의 비유에 나오는데, 여분의 기름을 넉넉히 준비하지 못한 자들이 그들이다. 사실 마25장에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나온다. 그것을 세 가지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첫 번째 비유는 '열처녀'의 비유다. 이 비유에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성 안으로 들어가서 혼인잔치에 참여하지만 나머지 미련한 다섯 처녀는 성밖에 남겨진 채 참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오실 무렵에 기름이 떨어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신랑되신 예수님이 오실 무렵에 미련한 다섯 처녀의 등잔에는 기름이 떨어지고있었다. 그렇지만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이미 댓가를 지불하여 여분의 기름을 준비한 채 그 기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시간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다.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자는 그날 성밖에 남겨지는 것이다. 한편 이들은 결코 불신자들이 아닌 이유는 첫째로, 이들 모두가 다 처녀였기 때문이며 둘째는 이들 모두가 다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던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비유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마지막 때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이라고 해서 모든 성도들이 다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댓가를 지불하여 자신의 옷을 깨끗히 단장하고 준비하고 있던 자들이 들어가는 것이다. 댓가의 지불없이는 그날 성밖에 남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님 재림시에 신부가 되기 위하여 오늘 나는 과연 수고하고 헌신하며 눈물 흘리며 고생하고 핍박을 견디고 잇는가? 이들이 결국 성 안으로 들어갈 있는 것이지, 자신은 별로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만 있는 자는 그날 성밖에 남겨지고말 것이다. 

  둘째, 성의 더 바깥쪽 어두운 데로 가는 자들이 있다(마25:14~31). 마태복음에서는 성의 더 바깥쪽 어두운 데로 쫓겨날 자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누군지에 관하여 마태복음 총 3가지를 들려준다. 첫째로, 이들을 할례받은 유대인들이었으나 예수님을 배척한 자들이다(마8:11~12). 이들은 기득권 수호를 위해 육체로 오신 예수님을 자신의 경쟁자로 여긴 나머지 시기하고 배척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그날 성밖의 더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게 될 것이다. 둘째로, 예복을 입지 않은 채 교회 안에서 생활하는 자들이다(마22:11~13). 그들이 믿을 때에 주어진 예복에 주의하지 않은 자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기는 믿었지만 예수님께서 마련해주신 예복을 주의하지 않고 살았던 자들이다. 그 옷을 입지도 않았고 그 옷을 빨지도 않고 있었던 자들이다. 그렇다. 자신은 교회에 다니고 있으니 괜찮다고 하면서 그냥 지내는 자들은 그날성밖 더 어두운 곳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로, 이곳은 주의 종들로 선택을 받았으나 충성하지 않았던 자들 곧 악하고 게으른 종이 더 바깥쪽 어두운 데로 쫓겨나게 된다(마25:30). 그들은 주님의 종으로 선택을 받았으나 주인을 자기를 부려먹는 악덕 고리대금업자처럼 생각하였고, 자신의 게으른 것을 주인 핑계를 댔던 자들이다. 주님은 이런 자들을 하늘나라에 무익한 자들이라고 말씀하신다(마25:30). 

 

6. 풀무불에 들어가는 자는 누구인가?

  그런데 우리는 성밖을 지나서 땅 아래에 있는 불타는 지옥으로 떨어질 자들이 있다는 것도 알아 두어야 한다. 이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결국 풀무불과 같이 끊임없이 타오르는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지게 될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요한계시록 21:8에 의하면, 비겁하여 주님을 부인하는 자들이거나 혹은 불신자들이거나 혹은 십계명을 어기고 살았던 자들이 그들이다. 그렇다. 예수님을 믿다가 주님을 부인하는 자들은 결국 불못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신자들은 아예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으니 응당 자신의 죄값을 지옥에서 치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십계명을 어기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있다가 끝내 지옥에 떨어질 자들도 있을 것이다.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비겁한)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불신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그런데 마태복음에도 누가 풀무불 지옥에 떨어질 것인지를 3가지로 말씀하고 있다. 첫째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 실족하게 하는 자들이며,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했다(마13:41~43). 둘째로, 그들은 의인이라고 칭함을 받았으나 악행을 저지르고 살았던 악인들이라고 말하고 있다(마13:47~50). 셋째로, 교회 안에서 자신은 늘 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염소인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마25:31~46). 이들은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에만 신경을 썼을 뿐 진정 형제를 사랑하지 않았던 자들이며, 사람의 눈치만 보고 살았던 외식하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이 결국 풀무불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7. 나오며

 우리들 중 많은 분들이 예수님만 믿으면 천국 가는 줄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믿는다고 해서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은 자일 뿐만 아니라, 특별히 예수의 이름을 사용해 귀신도 쫓아내고 능력도 행하고 예언을 했던 자라도 천국에 못들어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늦게나마 알게 되었다(마7:22~23). 그나마 감사한 일이다. 천국가는 길이 넓고 편한 길인 줄 알았던 우리들의 어리석음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바로 알게 되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좁은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왜냐하면 처녀였지만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자는 결국 성밖에 남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어도 게을러서 주의 일을 하지 않고 있는 자는 결국 성의 더 바깥쪽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은 자이니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자는 최소 성밖에 남겨질 뿐만 아니라 지옥에도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더하지도 말아야 하고 빼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의 생각대로 심판의 기준을 낮추거나 바꾸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무엇이 부족하거나 잘못되었는지를 빨리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회개를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을 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충성하고 섬기고 인내로서 믿음의 경주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죽는 것과 동시에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면서 성밖으로 던져진 자신을 볼 때에,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사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3년 11월 12일(주일)

정보배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