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38) 사람의 모든 말과 행위는 지금도 기록되고 있다(창35:16~2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DA-UUIgEtoo  [혹은  https://tv.naver.com/v/21108329 ]

 

1. 야곱이 벧엘에서 감사의 제단을 쌓은 후 이동한 곳은 어디였으나 거기에서 또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야곱이 벧엘로 다시 돌아와 감사의 제단을 쌓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이제 아브라함 가문의 족장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다시 해주셨습니다(창35:11~12). 그러자 야곱은 대식구를 거느리고 아버지가 살고있는 헤브론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때 그가 맨 처음에 도착한 곳은 에브랏(베들레헴)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에브랏에 도착했을 때에 라헬이 막내 베냐민을 낳다가 그만 난산 끝에 죽고 말았습니다. 고통 중에 들었던 라헬은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고통의 아들",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베노니(벧오니)"라고 불렀지만, 야곱은 그의 이름을 "베냐민(벤야민)"이라고 고쳐 불렀습니다. 그 뜻은 "오른손의 아들" 혹은 "행복의 아들", "남쪽의 아들'이라는 뜻인데, 이는 그의 인생을 위한 야곱의 바램이었습니다. 

 

2. 왜 라헬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죽게 되었나요?

  라헬이 베냐민을 낳았을 때의 나이를 추정해보면 약 45세쯤이 됩니다. 그러므로 라헬은 자신에게 주어진 수를 다하고 못하고 죽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세는 말하기를 보통 사람은 70세에서 80세 정도까지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시90:10). 그러니까 라헬은 거기에 한참을 미치지 못한 채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라헬의 죽음은 축복의 죽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라헬은 일찍 죽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첫째, 그녀가 언약계승자인 야곱의 사랑받는 여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친정아버지의 집을 떠날 때에 아버지의 가정신인 드라빔을 훔쳐 가지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남편 야곱으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가지고 있었지만 우상도 섬기는 양쪽 신앙을 가졌던 것입니다. 물론 세겜에서 벧엘로 올라올 때에 그녀도 세겜 상수리나무 아래에 그것을 버리고 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가나안 땅 세겜에까지 그 드라빔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상숭배란 대체 어떠한 죄입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입니다. 또한 그녀가 일찍 죽을 수밖에 없었던 두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야곱이 자신의 외삼촌의 추격을 받고 있을 때에 외삼촌이 조카 야곱을 추격했던 명목상의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라반이 자신의 가정신인 드라빔을 도둑질해갔다는 이유였습니다.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훔쳐가지고 나온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이렇게 말했습니다. "외삼촌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입니다(창31:32)"라고 말이죠. 사람은 말을 잘 해야 합니다. 다 기록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산천초목에 그것이 기록이 되고 있고, 천사가 그것을 기록하고 있으며, 하늘에서도 그것이 다 녹음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야곱은 그날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굳이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라헬이 드라빔을 도둑질한 것과 야곱의 맹세 때문에 라헬은 그만 에브랏에서 노중에서 사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3. 야곱이 에델망대에 있었을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야곱에 에브랏을 지나 헤브론을 향해 갔을 때의 일입니다. 에델망대에 임시로 장막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야곱의 장자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동침을 하게 됩니다. 일종의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것입니다. 빌하는 라헬의 여종이었다가 라헬이 임신하지 못함을 알고 야곱에게 첩으로 들여보낸 여인인데, 그녀가는 야곱에게서 '단'과 '납달리'이라는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르우벤이 그 서모 빌하와 음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러한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4. 르우벤은 근친상간의 죄로 인해 무엇을 잃어버리게 되었나요?

  그렇다면 르우벤이 근친상간의 죄를 지었을 때 야곱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라헬의 죽음의 사건과 무관해보이지 않습니다. 그가 과거 드라빔사건으로 인해 말한대로 되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곱이 르우벤의 근친상간 사실을 잊어버린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파일을 쌓아두듯 모든 것을 그의 뇌속에 차곡차곡 쌓아두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뇌속에 저장되었던 일은 르우벤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세겜에 있을 때, 둘째아들과 시므온과 셋째아들 레위가 저지른 살육과 약탈에 대해서도 그는 뇌속에 저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 마음 한 켠에 쌓아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41년이 지난 후, 야곱이 자기의 12아들들을 불러놓고 유언으로 합니다. 그때에 야곱은 자기자식들을 평가하면서 그들의 미래에 대해서 예언적인 유언을 했습니다. 그러자 훗날 그의 유언은 고스란히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첫째, 야곱은 살육과 약탈을 했던 시므온과 레위에 대해서 그들은 모의꾼이자 살륙기계라고 칭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선언적인 저주를 말하면서 그들은 나누어질 것이고, 이스라엘 중에서 흩어져서 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창49:5~7). 그랬는데 그대로 되었습니다.

  둘째, 서모 빌하와 간통을 했던 장자 르우벤에 대해서는 그가 비록 이스라엘의 장자요 능력도 있고 기력의 시작이며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도 탁월한 자이지만 그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으니 그후로는 탁월함이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르우벤은 서모빌하와의 간통으로 인하여 자신이 장자로서 누려야 할 모든 축복을 전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히12:16). 그럼 그가 잃어버린 장자의 축복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요? 첫째, 그는 언약계승자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 그래서 그 언약계승권은 유다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언약계승권이 둘째아들 시므온과 셋째아들 레위에게도 내려갈 수 있었으나 이들 역시 범죄하였던 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넘어서 넷째 아들 유다에게로 간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장자로서 자식들에게 축복할 수 있는 권한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것은 이제 레위에게로 넘어갔습니다(창35:22). 레위는 비록 혈기와 분노 때문에 야곱에게는 분리와 흩어짐의 저주를 받았지만, 훗날 출32장에 나온 것처럼 모세의 편에 가담하여 동족에게 하나님의 분노를 대신 쏟아부음에 따라 하나님으로부터 제사장의 직책을 물려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훗날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왕권도 유다지파와 요셉지파(에브라임과 므낫세지파)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리하여 남쪽은 유다지파가 왕이 되었고, 북쪽은 에브라임 지파에서 왕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 르우벤은 장자가 받을 기업의 권리 곧 아버지의 재산으로부터 2배 상속받을 땅의 분량도 함께 잃어버렸습니다. 그 축복은 요셉의 자손에게 돌아갔으니, 요셉의 두 아들들이었던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5.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일거수 일투족을 어떻게 다 알고 계시는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4명의 부인들과 12아들들의 아버지였던 야곱은 자신의 아내들이 했던 일과 자기 아들들이 했던 일들을 고스란히 기억에 저장해두고 있었습니다. 그때 야곱의 나이는 106세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약 41년이 지난 시점에서, 야곱은 자신의 아들들을 불러모아놓고 마지막으로 유언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유언 속에는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에 대해서는 축복의 말씀이 없습니다. 축복의 말씀은 넷째 아들 유다부터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가 한 일도 다 알고 있었고, 르우벤이 저지른 음행의 일을 다 알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징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죽기 일보 직전, 유언하는 시간에 시므온과 레위 그리고 르우벤에게 그들의 행위대로 될 것을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서모 빌하와 간통한 죄 때문에 르우벤은 장자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축복을 다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면 우리도 우리가 행한 일이 다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일은 네 생물이 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들은 여섯 날개를 가진 영적 생물들로서 총 네 명입니다(계4:6). 그들은 영적 존재로서 온 몸에 앞 뒤로 눈들이 가득 달린 천상의 존재들입니다. 이들의 모양을 보면, 앞에서 볼 때에는 사자같고, 또 한쪽 면에는 송아지 같고, 또 한 쪽 면은 사람의 모습을 하였지만, 또한 다른 쪽 면에서 보면 날아가는 독수리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모든 피조물의 대표성을 띤 존재가 아닌가 추측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크기입니다.  네 생물의 크기가 과연 얼마나 크냐 하는 것입니다. 과장하면 약 250평짜리 4층 건물의 크기 정도는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몸이 다 눈들이 달려있었습니다. 이는 하늘에 있는 일종의 감시카메라와 같은 것입니다. 네 생물이 각각 70억명 이상 되는 지구의 사람들을 전부 다 CCD 카메라로 다 찍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여 할 때가 되면, 네 생물이 하나님 앞에 그 장면을 띄워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생물의 몸에 달려있는 모든 눈은 감시카메라로서 지구에 있는 모든 영혼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찍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나 놀라지 마십시오. 우리가 지은 죄라도 그 죄를 자백하면 CCD 카메라에 찍혔던 장면이라도 하나도 재생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서 심판받고 상급받을 날을 생각하고 있는 성도라면, 오늘도 회개하면서 천국복을 쌓게 되기를 바랍니다. 

 

2021년 07월 02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37) 야곱의 세겜에서 벧엘로의 이동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창35:1~1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cdoHm_R7QAo  [혹은 https://tv.naver.com/v/21088287  ]

 

1. 야곱은 왜 세겜에서 벧엘로 가게 된 것인가요?

  밧단아람에서 돌아온 야곱은 세겜에서 자신의 딸의 겁탈사건을 겪게 되고 이어서 피비린내는 살육과 약탈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야곱에게도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혹시 가나안 사람들이 서로 뭉쳐서 야곱의 집을 치러오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들이었던 시므온과 레위가 자신의 동생 디나에게 성폭행을 시도했던 가나안의 히위족속 곧 세겜성의 모든 남자들을 다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차에 하나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고 말이죠(창35:1).

 

2. 야곱이 세겜에서 벧엘로 갔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왜 복을 주셨을까요?

  야곱이 세겜에 머무르게 된 것은 하나님과는 관계가 별로 없었지만, 야곱이 벧엘에 간 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창31:1,13, 35:1). 다시 말해 야곱이 세겜에 머무르게 된 것은 야곱자신의 선택이었지만 그가 벧엘로 간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가 결정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혹 보장해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대해 순종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3. 야곱이 벧엘에 도착했을 때 그가 복을 받게 된 핵심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야곱에 벧엘에 도착했을 때에 복을 받게 된 진짜 이유는 사실 "회개"에 있습니다. 회개 이외에는 우선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회개가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야곱에 세겜에 머무르게 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자신의 결단이었고, 거기에서 제단을 쌓았고 그 장소를 "엘 엘로헤 이스라엘"이라고 기념하여 부른 것도 자신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스스로 감사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야곱이 세겜성에 오기전에는 아무 것도 행하지 아니하였지만 야곱이 세겜성을 떠나 벧엘로 갈 때에는 회개를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3가지로 진행되었는데, 첫째는 자기 가족이나 함께 한 자들이 가진 이방신상들을 제거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다 모아서 세겜 성의 상수리나무에 파묻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기들을 씻어 성결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셋째, 자기들의 의복(옷)을 바꾸어입었다는 것입니다(창35:2). 이것이야말로 그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나타내보임으로 그의 회개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4. 야곱의 회개가 가져다주었던 보너스의 축복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야곱의 회개는 결국 야곱을 죽이려하는 사면 가나안 백성들을 크게 두려워하게 함으로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게 만들었습니다(창35:5). 이것을 영적으로 본다면, 더욱 철저한 회개야말로 귀신의 공격을 막아내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상숭배행위를 금하는 일이야말로 사람의 영적인 눈이 활짝 열리게 해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5. 야곱이 벧엘에 다시 도착하자 하나님께서는 어떤 복을 주셨습니까?

  야곱에 30년만에 다시 벧엘로 찾아가서 하나님께서 제단을 쌓게 되었을 때, 주님께서는 야곱을 불러서 그에게 다음과 같은 5가지 복을 주셨습니다. 그 복은 첫째, 하나님께서 직접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창35:9). 둘째, 하나님께서 야곱을 이긴 자로 인쳐주셨다는 것입니다(창35:10). 왜냐하면 야곱이 벧엘에 온 이후로 얍복강가에서 받은 축복을 다시 언급하여 확정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이제 하나님께서 야곱의 하나님이 되어주셨습니다(창35:11). 이는 이제 야곱이 이삭의 언약계승자로서 완전한 인침을 받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전까지만해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고 이삭의 하나님이었는데 이제부터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려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넷째, 생육하고 번성하되 그에게 한 백성이 나오고 한 백성들의 총회가 나올 것이며, 심지어는 그의 허리로부터 왕들이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창35:11). 다섯째, 그에게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한 땅을 그와 그의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다시 확증해주셨습니다(창35:12). 그렇습니다. 회개하면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100% 순종했을 때에 야곱은 더할나위없는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1년 07월 01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36) 시므온과 레위의 학살과 약탈, 과연 정당한 것이었나?(창34:18~31)_2021-06-30(수)

https://youtu.be/fkMYWXz2XF4  [혹은  https://tv.naver.com/v/21087857 ]

 

1. 시므온과 레위는 누구인가요?

  시므온과 레위는 야곱이 레아에게서 낳은 야곱의 둘째아들과 셋째아들입니다. 레아는 야곱에게서 아들들로서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를 낳았으며, 막내로 딸 디나를 낳았습니다. 

 

2. 야곱이 세겜에 머물러 있었을 때에 디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야곱이 세겜에 머물러 있었을 때에 막내 딸 디나가 겁탈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창34:1~2). 혼자 세겜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다가 히위족속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이었던 세겜이 그녀를 끌어들여 강간하게 욕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겜은 디나를 많이 사랑했기에 그녀를 아내로 취하려고 자신의 아버지 하몰에게 청혼을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가 야곱을 찾아왔는데, 야곱은 그것을 혼자 듣고 알고 있었지만, 아들들도 들에서 이 소식을 듣고 돌아와서는 모두 근심하였으며 매우 화를 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3. 디나의 오빠였던 시므온과 레위은 얼마후 무슨 일을 저질렀나요?

  디나의 오라비였던 시므온과 레위 두 형제는 혈기와 분노가 아주 많은 형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수할 시간을 노렸습니다. 이윽고 하몰과 세겜이 찾아와서는 어떠한 혼수품을 요구한다고 할지라도 다 들어주겠다고 하면서 청혼을 했습니다. 그러자 시므온과 레위가 복수의 칼을 갈며면서 그들에게는 속여서 대답했습니다. 서로간에 통혼을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모든 남자들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모든 남자들의 할례를 받고 3일째 되는 날, 시므온과 레위가 기습적으로 쳐들어가서는 자기들의 칼로서 세겜성의 모든 남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리고 농사짓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소의 발목 힘줄마저 다 끊어버렸습니다(창49:5~7). 한 마디로 세겜성의 모든 남자를 학살한 것입니다. 그러자 이후에는 그들의 형제들마저 세겜성에 가서 그 성에 있는 양과 소와 나귀들과 재물까지 빼앗아갔으며, 그들의 자녀들과 아내들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한 마디로 그 성을 잔인하게 약탈한 것입니다. 

 

4. 시므온과 레위가 한 일은 정당했나요?

  시므온과 레위는 세겜성 남자들을 다 죽인 것은 자신의 동생을 더럽힌 것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일은 합당하다고 여겼습니다(창34:31). 하지만 야곱의 평가는 달랐습니다. 그들이 잘못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 일은 가나안족속에게 나쁜 냄새를 풍기게 하여 결국 자기와 자기의 가족들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세겜성의 추장 세겜이 한 일은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는 청년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에서도 그러한 경우에는 여자의 아버지에게 혼수품을 많이 주고 평생 버리지 못할 아내로 맞이하라고 했습니다(신22:28~29). 그러므로 세겜의 행동은 죽임당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보입니니다. 오히려 디나가 잘못 행한 것도 보입니다. 왜 혼자 구경하러 갔다가 그러한 일을 당한 것입니까?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 야곱도 실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가나안으로 갔기에 하루라도 빨리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았어야 했는데, 그는 그만 세겜에서 약 10년간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므온과 레위의 행동은 혈기와 분노의 따른 폭력의 결과였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5. 시므온과 레위는 그 일로 인해 어떤 결과를 맞게 되었나요?

  분명 시므온과 레위의 행동은 참으로 지나친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갖고 태어난 기질이 혈기과 분노가 강한 것이었기에 그들도 그것을 이기지 못한채 그러한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훗날 야곱이 자신의 12아들들을 불러 유언할 때에 시므온과 레위에게는 저주를 내렸습니다. 여기서 저주란 "선언으로서의 저주(아라르)"로서, "재앙으로서의 저주(켈랄라)"를 선포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이 형제로서 서로 모의하여 폭력의 도구인 칼을 가진 자들이며, 그들이 자의신 분노를 따라 많은 사람을 죽였으며 그들의 혈기를 따라 소의 발목 힘줄까지 끊어놓았으니 그들이 저주를 받되 첫째로 그들은 나누이게 될 것이며, 둘째로 그들은 흩어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니라 다를까 훗날 가나안 땅에 입성할 때에 시므온은 가장 작은 숫자의 지파로 전락했으며 그것도 자신이 기업으로 차지한  여러 곳의 땅을 잃어버린 채 유다 지파의 땅에 빌붙어 있다가 그만 유다지파에게 흡수통합되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시므온 지파에게 내린 야곱의 유언 곧 분리와 흩어짐의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레위지파는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레위지파가 하나님 앞에 헌신하게 되어 제사장지파로서 쓰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에게 남아있던 확실한 지파는 유다지파, 베냐민지파 그리고 레위지파 뿐이었습니다. 그럼 왜 레위지파는 예수님 당시까지 살아남았던 것일까요? 그것은 레위의 후손들이 약 500년 뒤에 모세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편에 속하여 자신의 형제들이자 이웃친척들과 심지어 자기의 자식들까지 죽였기 때문입니다. 왜 죽였습니까? 모세가 시내산에 율법의 두 돌판을 받으러 올라갔을 때, 산 아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자고 하면서 금송아지로서 우상을 만들어놓고 광란의 춤을 추다가 산에서 내려오는 모세에게 발견되었고 모세가 하나님의 분노를 대신 냈을 때에, 우상숭배한 자들을 죽이라고 명령에 따라, 레위지파가 앞장서서 자신의 형제이웃 가족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때 레위지파의 칼에 의해 죽임당한 사람들이 무려 3천명이었다고 하니 역시 레위지파는 혈기과 분노가 강하고 칼을 잘 쓰는 지파인 것임에 분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레위지파가 그 일로 인하여 제사장지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레위의 아버지였던 야곱의 유언을 따라 레위의 후손들은 가나안 땅에 48개의 성읍으로 찢어지기는 했어도 자신이 가진 분노와 혈기의 기질을 가지고 죄악을 심판하는데 사용함으로써 오히려 복을 받는 지파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의 선언(창49:5~7)이 얼핏 보면 그들에게 저주같이 보이니 레위지파 사람들은 그것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사용함에 따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쓰임받는 지파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에게 분노와 혈기의 기질이 있다면 우선 회개부터 한 다음, 우리는 죄와 귀신과 악과 싸워야 하는데, 죄에 대한 분노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죄와는 피흘리까지 싸울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1년 06월 30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35) 왜 야곱은 세겜에 머물렀으며 그의 선택은 과연 합당한 것이었나(창33:16~34:17)_2021-06-29(화)

https://youtu.be/gtKKm8mnxo0  [혹은 https://tv.naver.com/v/21043316  ]

 

1. 형 에서와 화해했던 야곱은 어디로 이동했나요?

  형 에서와 화해했던 야곱은 숙곳을 지나 가나안땅 세겜으로 갔습니다(창33:18)

 

2. 야곱은 세겜에서 몇 년동안 머물러 있었나요?

  야곱은 세겜에서 적어도 10년간은 머물러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디나가 가나안의 히위족속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이를 듣고 화가난 그의 오빠 둘이 세겜성 사람들을 전멸시켰는데, 그럴려면 디나나 시므온과 레위가 청년은 되었어야 할 나이이기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디나의 나이를 15세 전후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세겜에 도착하여 무려 10년이상을 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더군다나 야곱은 히위족속 하몰의 아들들로부터 들(목초지)까지 샀습니다. 

 

3. 야곱은 왜 세겜성에 머물러 있었던 것인가요? 

  야곱은 왜 세겜성에 그렇게 오랫동안 지체하며 머물러 있었을까요? 그것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전후맥락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 이유를 추정해볼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3가지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첫째, 세겜은 그의 조부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약속의 땅을 밟은 뒤에 장막을 치고 제단을 쌓은 곳이었기 때문입니다(창12:6~7). 그래서 자기도 이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부터 가나안 땅 안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했기에 가나안의 첫 성인 세겜 땅에 머무르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둘째, 20년 처가살이를 잘 마치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형 에서와 화해할 수 있었기에 그동안 가족들과 가축들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려고 그랬지 않았나 싶습니다(창33:20). 그것은 그가 그곳에 제단을 쌓고 그 제단의 이름을 "엘 엘로헤 이스라엘(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야곱이 얍복강에서 하나님이 보낸 천사와 씨름하여 이겼을 때에 천사가 붙여준 야곱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셋째, 자신의 조부 아브라함처럼 가나안 땅의 일부를 사들임으로 그곳을 장차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약속의 땅의 거점을 확보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창33:19). 그러므로 야곱은 단지 그 땅에 머물러 있었던 것만이 아니라 자신이 장막을 친 들판을 돈을 ㅇㄴ주고 샀습니다. 그 값은 백 크시타였는데, 여기서 '크시타'는 화폐단위인에 당시에 은화같은 것이었으며, 1크시타는 양 한 마리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양 백 마리를 주고 그 장막친 들을 산 것입니다. 이는 아마도 가나안 땅에 대한 거점확보 곧 마중물로서 사 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4. 야곱이 세겜에 머물렀던 것은 잘 한 일인가요 잘못 한 일인가요?

  야곱에 세겜에 머물렀던 것은 위의 설명만 들어보면 잘 한 결정은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잘못 결정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되어진 일들을 종합해보면, 야곱이 이러한 행동은 잘못된 행동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밧단아람의 외삼촌 집에 약 20년동안 있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 것이지 "세겜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창31:3,13). 그러므로 야곱은 그때 세겜이 머물러 있지 말고 곧바로 벧엘로 가서 제단을 쌓았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20년전 야곱이 가나안 땅을 떠나올 때에 그는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거기에 돌기둥을 세우면서 자신이 편안히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그가 기름부은 돌기둥이 하나님의 전이 되게 하겠다고 서원하였고, 여호와만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겠다고 했으며, 자신의 재산의 1/10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했기 때문입니다(창28:20~22). 그러므로 그는 결코 세겜에 머물러서 지체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 야곱이 세겜에 머물렀던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에 야곱이 세겜에 머물렀던 것이 잘못된 결정이었음이 그 뒤의 이어지는 사건으로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첫째, 야곱이 세겜에서 제단을 쌓았어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벧엘에 가서야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자신의 딸 디니가 그땅에 주인이 가나안의 히위족속의 추장이었던 세겜에게 성폭행당하는 수치를 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창34:2). 그리고 셋째, 디나 성폭행사건 이후에 하나님께서도 또다시 그에게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에서 제단을 쌓으라"고 정확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창35:1). 

 

5. 세겜성에 머무른 야곱의 실수가 들려주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야곱은 세겜성에서 머무르며 지체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야곱이 세겜성에 머물렀던 것이 비록 야곱 자신에게는 합당한 것이었고 명분이 있게 보였어도 실은 그가 하나님과 약속한 것에는 반하는 행동이었으며, 야곱이 밧단아람에 있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벧엘로 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세겜에서 제단을 쌓았지만 하나님께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에서도 그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로 이 사건은 첫째, 하나님의 분명한 뜻과 말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벗어나 자기 단독적으로 행동하게 되면 고통과 불행이 뒤따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아하고 그대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셋째,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을 때에는 자기와 자기의 가족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넷째, 하나님의 뜻이 분명할 때에는 그 뜻에 우선순위를 두고 빨리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만약 그럴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받은 복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2021년 06월 29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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