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이 부모의 품을 떠나 벧엘에서 꾼 꿈은 대체 무엇에 대한 예표였을까?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고자 정처없이 길을 떠난 그에게 사닥다리 환상은 아주 커다한 힘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오늘날 그것을 예표론적인 관점에서 보게 되면, 벧엘에서의 환상은 교회란 무엇인지 그리고 교회의 건축재료는 또 무엇이며,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해준다.

2021-06-18(금) 금요기도회
제목: 창세기강해(126) 야곱의 사닥다리 환상이 보여준 교회의 정의와 건축재료와 사명(2)(창28:10~22)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vi1MVZYhmYc [혹은 https://tv.naver.com/v/20896036 ]

 

1. 들어가며

   야곱의 생애는 참으로 파란만장하다고 아니 말할 수 없다. 한 사람이 태어나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기까지의 과정을 야곱의 생애가 오롯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야곱의 생애 가운데 가장 굵은 흔적을 남긴 사건을 고르라고 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주저없이 창세기 28장에 나오는 "야곱의 사닥다리 환상"과 창세기 32장에 나오는 "야곱의 얍복강의 철야기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들은 야곱의 생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흔적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야곱의 사닥다리 환상은 야곱이 족장으로서 이제  홀로 첫 출발하는 지점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하나님이 되어주시는 특별한 과정을 담고 있어서 더욱더 중요한 부분인데,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면, 야곱이 베개하던 돌 위에 기름을 붓고 그것을 하나님의 집이라는 불렀다는 것에서 우리는 또다른 영적인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교회에 관한 완전한 밑그림을 우리에게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야곱의 사닥다리환상을 통하여 교회란 무엇이며, 교회는 무엇으로 지어져야 하는지 그리고 야곱의 신앙고백은 어떤 것이었으며, 교회의 사명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중에서 오늘 말씀은 두번째 시간으로서, 야곱의 신앙고백과 아울러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교회란 무엇이며, 교회의 건축재료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난 시간에 야곱이 잠자던 돌 기둥 위에 기름을 붓고 그것을 "하나님의 집(딤전3:16)"이라고 했다는 말씀을 들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이 사건이 성령시대 교회를 소개해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간단히 다시 기술해보면 이렇다. 

  첫째, 야곱의 돌베개 사건은 교회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 사건이 가르쳐주는 교회란 첫째로,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이다(17절). 하나님께서 거기에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교회의 첫번째 정의로서, 교회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인간냄새만 펄펄 난다면 그곳은 더이상 교회라고 할 수 없다. 둘째로, 교회는 "하늘의 문"이라는 것이다(17절). 교회는 하늘에 들어가게 해주는 관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만약 그 영혼을 천국에 못 데려다 준다면 그것은 더이상 교회라고 말할 수가 없다. 셋째로, 교회는 "영적인 전쟁터"라는 것이다(12절). 왜냐하면 야곱이 돌베개에 기름을 부었던 장소는 땅에서부터 하늘로 사닥다리가 놓아져 있었고, 그 사닥다리 위에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천사들의 바쁜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가 만약 영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지는 교회가 되고 말 것이다. 지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사실 예수께서도 생각하셨던 교회는 음부의 문들이 이기지 못하는 교회였다(마16:18). 그러므로 약속의 씨가 오면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라고 한 바 있다(창22:17). 

  둘째, 야곱의 돌베개 사건은 교회의 건축재료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교회는 대체 무엇으로 건축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3가지다. 첫째로, 교회의 건축재료는 "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야곱은 잠 잘 때 사용했던 바로 그 돌에 기름을 부었으며 그곳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으니, "돌"이 바로 교회의 첫번째 건축재료였던 것이다(18절). 여기서 '돌'이라는 개념은 견고하다는 것과 아울러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것임을 말해주는데, 예수께서는 이 돌을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라고 말씀해 주셨다(마16:16~18). 고로 야곱이 하나님을 어떻게 신앙고백했는가가 바로 "돌"의 견고함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둘째로, 교회의 건축재료는 "기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기름"이란 돌 위에 붓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 위에 성령이 오셔야 교회가 세워진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신구약성경에서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출30:25,30, 요일2:27, 행10:38). 사실 초대교회도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한 자들에게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탄생하였기 때문이다(행2장). 셋째, 교회의 건축재료는 "하늘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12절). 누구든지 교회의 건축요소가 되기 위해서는 이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로서 사닥다리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고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예수님만이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임을 믿어야 한다. 

 

3. 야곱의 3가지 신앙고백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교회의 건축재료가 되는 돌 곧 야곱의 신앙고백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창28:13~16절에 나온다. 그것은 3가지다. 첫째, 여호와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요 이삭의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성취하시되, 아브람과 이삭와 야곱의 후손인 메시야를 통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얻게 하신다는 것에 대한 믿음을 가리킨다(13~14절). 이러한 신앙고백이 없다면 천하의 야곱이라도 구원받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둘째, 여호와는 끝까지 자신을 지켜주시는 보호자가 되신다는 믿음이다(15절). 하나님께서는 그때에 야곱에게 그가 어디로 가든지 그를 지켜주실 것이고, 그가 다시 벧엘로 돌아오게 해 주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시려고 했던 모든 것을 받을 때까지 그를 떠나지 않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야곱은 힘든 20년의 외삼촌의 종살이에서도 잘 견딜 수가 있었다. 셋째, 여호와는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야곱은 가지고 있었다. 이전까지 야곱은 자신의 아버지가 계신 곳에만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사닥다리 꿈을 통하여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가는 나그네길을 결코 무서워하지 않았으며, 외삼촌에게 자신의 소유를 다 빼앗기고 있어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자기자리를 지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4. 야곱의 서원을 통해서 살펴본 교회의 3가지 사명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때 처음으로 자신의 하나님으로서 여호와를 만났던 야곱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렸는가? 우리는 그의 고백을 통하여, 교회가 가져야 하고 반드시 실천해야 할 막중한 3가지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다. 

  첫째, 교회는 오직 한 분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21절). 야곱은 교회가 해야 할 사명으로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길 것을 말했다. 그랬다. 교회의 사명은 혼합주의가 될 수 없다. 종교다원주의도 될 수 없다. 오직 한 분 하나님이셨으나 우리를 위해 아들로 오신 하나님 곧 예수님만을 섬기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구약시대에 여호수아는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한 후에 마지막으로 그들을 각 지파의 땅으로 돌려보내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그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인 것이다.  

  둘째, 교회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또 다른 교회를 건축해야 한다는 것이다(22a절). 두번째로 야곱은 교회는 또 다른 교회를 건축하는 교회여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기둥으로 세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되게 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교회의 두번째 사명은 교회가 또 다른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다. 그럼 어떤 교회를 건축해야 하는가? 그것은 음부의 문들(권세들)이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건축해야 한다. 사탄마귀의 권세에 눌리는 교회를 세워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바른 신앙고백에다가 날마다 회개를 생활화할 때 주어진다. 

  셋째, 교회는 자신에게 계속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늘 보답하며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22b절). 세번째로 야곱은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했다. 그것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교회는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를 잊지 말고 하나님 앞에 늘 표현해야 한다. 그것이 교회가 해야 할 세번째 사명이기 때문이다. 

 

5. 나오며

  야곱에서 벧엘에서 잠을 자다가 본 환상은 사실 교회에 관한 환상이었던 것이다. 성령하나님의 활동을 예표하는 야곱의 삶은 그의 첫 출발이 벧엘에서의 꿈이었다. 그것은 성령 하나님을 받은 성도들이 맨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이 곧 교회건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랬다.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하자 맨 처음 생겨난 것이 교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의 예표로서 벧엘에서의 돌베게 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교회란 어떤 것이며, 교회의 건축재료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 위에 성령의 기름이 부어짐으로 탄생하는 모든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신의 하나님과 구세주로 증거함으로서 그것을 믿고 따라오는 모든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그것을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교회를 위하여 우리도 오늘도 성령충만을 받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공부하여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교회를 만들어가보자. 건투를 빈다. 

 

 

2021년 06월 18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25) 야곱의 사닥다리 환상이 보여준 교회의 정의와 건축재료와 사명(1)(창28:10~22)_2021-06-18(금)

https://youtu.be/4WkcIUjpKWM  [혹은 https://tv.naver.com/v/20895446  ]

 

1. 예수님과 사도바울에 의하면 야곱의 삶은 무엇의 예표인가요?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바울의 성경해석에 의하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떻게 일하시는가 하는 것에 예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삶은 성령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말해준다고 하겠습니다. 

 

2. 창세기 28장에 나오는 야곱의 사닥다리 꿈과 돌베개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얼핏 보기에 창28장의 꿈이란 정처없이 길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을 찾아가는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실 것이며 지켜 주실 것이며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을 약속해주시자 그가 하나님께 감사드린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창28장의 야곱의 이야기는 성령하나님께서 어떻게 교회를 세우는지를 말해주는 하나의 완전한 그림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닥다리 환상과 돌베개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한 것은 신약시대이후 성령께서 오셔서 교회를 세우시는 일의 예표이기 때문입니다(마16:18, 딤전3:16). 

 

3. 창28장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교회"를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창28장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장차 탄생할 교회가 어떤 것이며 또한 교회의 건축재료는 어떤 것이 사용될 것이고,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데, 그중에서 첫번째로, 창28장에 나오는 야곱의 이야기는 교회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해준다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해석은 예수님과 사도바울의 말을 통해서 확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의 교회와 비교해볼 때 창28장은 교회의 정의에 대하여 어떤 씨앗이 등장하고 있는 것인요? 그것은 총 3가지입니다. 

  첫째,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입니다(17절). 왜냐햐면 야곱이 꿈을 꾸었을 때에 그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함으로 그곳 이름을 "하나님의 집(벧엘)"이라고 칭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는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다" 혹은 "그곳에 하나님께서 사신다"는 뜻입니다. 이는 어떤 집을 누구의 집이라고 말하려 했을 때에 그곳에 그 사람이 살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교회라고 불리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사람 냄새만 난다면 그곳은 더 이상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친목단체요, 종교 사교단체이며, 취미생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교회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그곳의 주인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예수께서 그 모임의 주인이 될 때에 그곳을 비로소 "교회"라고 부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교회는 "하늘의 문"이라는 것입니다(17절). 야곱은 사닥다리 환상을 통하여 자기가 잠자고 있는 바로 그곳이 땅에 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늘로 들어가게 해주는 연결통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닥다리 끝에는 여호와께서 계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늘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이시며, 유일한 길이 되시는 사닥다리(요1:51) 곧 예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이처럼 어떤 단체나 장소가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곳에 예수님이 계실 뿐만 아니라, 그곳에 속한 사람을 전부 하늘로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가 그 사람을 천국에 데려다주지 못하고 있다면 그 교회는 더 이상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교회되려면 한 영혼을 천국문으로 데려다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교회는 치열한 영적 전쟁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12절). 왜냐하면 야곱이 보았던 사닥다리에는 그때도 부지런히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창28:12). 그럼, 이 천사들은 무엇하는 천사들입니까? 이 천사들은 보고천사들과 수호천사들 이며 그리고 전투천사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지금 성도들의 기도에 따라 움직이는 천사들로서, 이 세상의 임금이자 그의 부하들인 귀신들과의 싸우고 있는 우리 성도들을 돕기 위해 이 땅에 파송되고 있는 천사들이기 때문이요, 또한 우리가 행한 일을 보고하는 천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최초로 교회라는 단어를 언급하실 때에, 참된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라면 그 교회는 반드시 "음부의 문들을 이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온전한 교회란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전사들로 세워주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되려면 그 교회가 사탄마귀와 귀신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에 결국 실패하게 되면 그 교회는 음부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에, 더이상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4. 창28장의 야곱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교회의 건축재료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나요?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 재료를 통하여 세워지는 것인가요? 그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돌이요, 둘째는 기름이며, 셋째는 하늘의 이상입니다. 첫째로 교회의 건축재료는 야곱이 베고 잠자던 바로 그 "돌"로 세워지는 것입니다(18절). 야곱은 그날 자신이 가는 길에 하나님이 계속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기가 베고 잠자던 그 돌을 가져다가 기름을 붓고 그곳을 "하나님의 집(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께서도 수제자 베드로에게 장차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말씀하시면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바로 "반석(페트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6:18) 그러므로 훗날 베드로가 편지를 쓸 때에도 그때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 잊어버리지 않고서, 유대인들에게는 건축자가 버린 돌이었던 예수께서 결국 교회를 건축하는 모통이 돌이 되셨다고 말하면서 그분이야말로 "보배로운 산(살아있는) 돌"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벧전2:4). 둘째, 교회의 건축재료는 "기름"입니다. 교회는 베드로의 신앙고백만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반드시 성령이 강림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령께서 오시기 전에도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고백을 했지만 그때 베드로를 교회라고 말씀하시는 않으셨습니다. 오순절날 성령이 베드로와 함께 한 무리들 위에 내려오실 때부터 그들을 "교회"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름"은 구약시대에 "성령"을 예표하는 것이므로(출30:23~25, 행10:38, 요일2:27), 교회의 건축재료로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기름같은 성령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셋째, 교회의 건축재료는 "하늘의 이상"으로서, 야곱의 사닥다리 환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그날 꿈을 통하여, 하늘의 이상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 사는 죄인이 사닥다리인 예수님을 통해서 하늘에 들어갈 수 있음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예수님 뿐이라는 것을 보고 믿어야 합니다(요14:6, 행4:12). 왜냐하면 이같은 하늘의 이상을 본 자만이 결국 교회가 되고, 교회의 성도가 되어야 음부의 문들을 이기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그럼 내가 속해있는 교회는 과연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어떤 부분에서 충만한 것인가요?

  교회가 무엇이며, 교회의 건축자료가 무엇인지에 대한씨앗들을 우리는 창세기 28장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이야기가 성령하나님의 역사의 예표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교회는 자기에게 속한 사람을 천국에 못 데려다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교회"라는 말하기도 합니다. 어떤 교회는 귀신들과의 싸움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으면서도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만약 교회들이 이러한 개념들이 무엇인지를 말하지 않고 또한 가르치지 않으면서 자신을 교회라고 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 우리 교회는 어느 측면에서 교회로서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서 그것을 보완할 수 있도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음부의 권세를 못 이기는 교회가 되고, 그러면 교회는 사람들을 천국문에 데려다주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2021년 06월 18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24) 벧엘의 약속이 말하고 있는 또 하나의 중대한 선언(창28:1~15)_2021-06-17(목)

https://youtu.be/W5iv53TCNxc  [혹은 https://tv.naver.com/v/20895326  ]

 

1. 야곱의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사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야곱은 정말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야기거리도 많습니다.147년의 야곱의 인생 이야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창28장의 벧엘의 사닥다리 꿈 사건과 창32장의 얍복강의 철야기도 사건이 아닐까 합니다. 두 사건은 야곱의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들이 되었으니까요.

 

2. 야곱은 왜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이동해야 했나요?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하란으로 이동한 것은 겉으로만 보면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니까 피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그는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자신의 혈통 중에서 아내를 얻기 위해서 이동하는 것입니다. 

 

3. 그가 벧엘에서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그때에 사닥다리 위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2가지 말씀은 무엇인가요?

  야곱이 정처없이 외삼촌 라반의 집을 찾아 길을 떠난지 이틀이 지났습니다. 밤이 되어 잠을 청했는데, 잠 잘 곳이 마땅치 아니했는지 야곱은 돌을 베개로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꿈 속에서 사닥다리 환상이 보였습니다. 그 사닥다리는 땅에서 하늘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위로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사닥다리 맨 꼭대기에서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들렸습니다. 그 내용은 크게 2가지입니다. 하나는 이제는 야곱이 언약계승자가 되었다고 하는 승인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의 여행 중의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실 것이고 지켜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이었습니다. 

 

4. 하나님께서 왜 야곱과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을까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야곱의 이 장면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간교하고 사악한 일을 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선택하셔서 구원얻도록 작정한 사람이라면 그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는 그와 동행하여 주실 것이며, 그를 지켜주시고 그를 보호해주실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사실 이것만을 딱 떼어놓고 말했을 때에는 이 말씀이 맞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생애는 그러한 일반적인 경우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볼 때 야곱은 일반 사람들이 겪은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이야기는 족장의 이야기로서 천국에서는 24장로의 반열에 드는 사람의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엄마의 태중에 임신되면 2개월째에 보내주시는 기록천사나, 사람이 거듭날 때에 붙여주시는 수호천사의 이야기 정도가 아닙니다. 야곱의 이야기는 위대한 신앙의 인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그가 꿈 속에서 본 사닥다리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천사들의 숫자가 증명해줍니다. 그것은 천사 몇 명에 관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지금 야곱 주변에 달라붙고 있기 때문입니다(창28:12). 이러한 천사는 적어도 야곱을 도와주도록 하나님께서 파송한 특별한 천사들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에 성도들은 야곱과 같은 특별한 은혜를 받을 수 없을까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대체 누구에게 수많은 천사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바로 그러한 사람의 대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도망치는 야곱에게 꿈에 나타나시어 그가 다시 가나안 땅 그 장소로 돌아올 때까지 그를 떠나지 않으시고 그를 지켜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28:15). 이것은 예수께서 세상 끝날까지 누구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는지와 일치합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단지 예수님만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할 때 하나님께서 더 많은 천사들을 붙혀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더 많은 천사를 파송해주시고 함께해 주십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전파하는 자들입니다(마28:18~20). 만약 우리가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5. 언약의 계승자에게만 주어지는 3가지 약속이 그날 야곱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사실 야곱이 이삭에게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주신 쌍둥이 아들들에 대한 안배에서 시작되었습니다(창25:23, 26:27~30). 고로 야곱이 받은 축복은 창25:23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야곱이 그러한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거기에는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장자의 명분을 얻고 장자의 축복을 받고나니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이에 야곱의 부모였던 이삭과 리브가는 야곱을 피신시키기로 결정합니다. 그래서 밧단아람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게 합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거기에 가서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여 오라고 하였습니다. 언약계승자가 되었으니 아내를 얻을 때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약의 계승자라는 존재이며 어떤 축복을 받게 될 것인지를 그에게 알려줍니다. 첫째로, 네가 언약계승자가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많은 자손을 얻게 하실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장차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너와 네 후손으로 하여금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실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이삭이 말했던 언약계승자의 축복에다가 한 가지 더 축복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장차 그의 후손를 통하여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었습니다(창28:14). 고로 야곱에게는 자손약속, 땅의 약속, 메시야약속이라는 3가지 언약계승자의 축복의 주어진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언약의 계승자에게 주시는 3가지 약속을 주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그것은 첫째, 야곱의 이전의 삶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인 것이 그리 큰 잘못이었고 또한 범죄였으며 그것이 정당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언약계승자의 축복을 주실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벧엘에서의 환상은 야곱이 장자로서 축복받은 사건이 합당한 것이었음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둘째, 그리고 지금 야곱이 아내를 얻으려고 가는 것도 그가 하나님의 언약의 계승자로서의 길을 잘 걸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증명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지금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가는 것은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고자 혈통적으로 가까운 친족에게서 가서 아내를 구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가는 곳에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임마누엘의 축복의 약속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길을 걸어가는 자에게 더욱더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주의 종으로서 홀로 외로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야곱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사명을 붙잡고 걸어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와 동행해주실 것이고 그를 지켜주실 것이고, 그가 자신의 사명을 마치는 순간까지 그를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2021년 06월 17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23) 제 정신으로 돌아온 이삭과 에서의 때늦은 회한(창27:38~28:5)_2021-06-16(수)

https://youtu.be/ugpE9Ipoews  [혹은 https://tv.naver.com/v/20895190  ]

 

1. 장자의 축복을 받기 위해 야곱이 이삭에게 한 대답은 거짓말인가 믿음의 행위인가?

  얼핏 보기에 장자의 축복을 받기 위해 차자 야곱이 이삭에게 한 대답은 거짓말로 보입니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창27:19)는 말 중에서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틀렸는지를 말이죠. 그런데 그의 형 에서는 이미 60년전에 동생 야곱에게 장자의 권리를 팔아버린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에서는 장자의 축복을 받아서는 아니 되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분명히 장자의 명분을 그의 동생 야곱에게 이미 넘겨버린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때 아버지 이삭은 맏아들의 축복을 에서에게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맏아들로서 축복을 받을 자격은 야곱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말은 거짓말인 것은 맞지만 그것을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장자의 명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 거짓말로 자신을 "에서"라고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의 행동은 옳은 것이었나요?

    야곱이 자신을 에서라고 속인 것은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하지만 그가 진정 잘못했는지, 좀 더 나아가서 진정 그가 저주받을 짓을 했는지는 그의 아버지의 평가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삭이 자신의 아들 야곱이 장차를 축복을 거짓말로 받은 사실을 알고 어떻게 했나요? 야곱을 진정 저주했나요? 야곱에게 속아서 그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었고 그뒤 달려온 에서에게는 장자로서의 축복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에 이삭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야곱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결코 야곱을 저주할 수가 없었습니다. 야곱이 잘못 행한 것은 맞기는 하지만 그가 저주받을 짓을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그가 장자의 축복을 받은 것은 그가 마땅히 받을 복을 받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3. 눈 먼 이삭으로 하여금 제 정신을 들게 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사실 창세기 27장의 서두에서 창세기 기자였던 모세는 이삭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라(창27:1)" 그렇습니다. 만약 이삭이 그때에 눈이 잘 보였더라면 아마 야곱은 장자의 축복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삭이 그때만큼은 눈이 잘 보이지 않았기에, 차자 야곱이 아버지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을 축복하고 난 후 창세기 28장에서 이삭은 이제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올바른 판단과 멋진 축복을 야곱에게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가장다워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삭은 이제 야곱에게 언약의 계승자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축복과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잠시동안 창세기 26장에서 이삭은 정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니 정상이 아니었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창28장 이후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가 언제 눈이 어두웠었나 말할 정도로 그는 또렷한 삶을 살아갑니다. 추정컨데 아마도 이삭은 그때만 잠시 눈이 어두워졌던 것 같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때 이삭으로 하여금 자신의 눈이 멀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그것은 곧 야곱과 리브가였습니다. 벌써 야곱은 76세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16살 때에 이미 형 에서로부터 장자의 권리를 사놓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리브가도 또한 두 아들이 태중에 있을 때에, 이미 장차 아들들에게 어떤 안배가 있는지를 하나님께 들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다"는 주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과 리브가는 하나님의 안배를 믿고 그대로 실행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리브가는 대단히 보는 눈이 좋은 사람이고  또한 신앙도 투철한 사람입니다. 과거 그녀가 아브라함의 늙은 종을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사람이나 사물을 보는 남다른 면을 가지고 있었음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제 76년을 기다려서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도록 했습니다. 

 

4. 야곱이 에서가 받을 장자의 축복을 받은 사건이 들려주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그렇다면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된 사건이 들려주는 교훈은 대체 무엇입니까? 그것은 첫째로, 영적인 축복은 사모하고 사모하고 침노하는 자의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마11:12, 시107:9). 둘째로, 영적인 축복은 그것을 경홀히 여기는 자에게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에서에게 60년이라는 시같은 아주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은 그가 16살 때에 잘못 판단했고 잘못 행동했던 것을 다시 되물리고 다시 장자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를 읽어보아도 그가 그것을 되찾기 위해 어떤 일을 수행했다는 대목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이 에서를 불러서 축복하려 할 당시, 장자의 권리는 에서에게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 누가 이삭을 속인 자였습니까? 야곱입니까 에서입니까? 중요한 것은 에서도 속이는 자의 명단에서 제외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고기를 사냥해서 요리를 가져오게 하였을 때,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깨닫고 그것을 아버지에게 말씀드리고 장자의 권리를 되찾아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숨겼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들에게 일어난 사건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조건 먼저 태어난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하려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의 눈이 그 시기에 멀도록 허락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야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 그렇습니다. 누가 정직하지 못한 자입니까? 이미 장자의 권리를 상실한 채 있는 에서입니까? 아니면 그 장자의 권리를 가진 채 있는 야곱입니까? 셋째로, 영적인 축복은 그것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 받아야 하며 그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회는 주어지지만 언제까지 계속해서 주어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고로 기회는 있을 때에 붙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이유입니다. 넷째로, 사람이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에 합당한 징계가 따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늘의 징계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거짓말로 인하여 나중에 외삼촌 라반에게도 20년 가까이 속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들에게도 요셉이 죽었다는 거짓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외삼촌집에서 나올 때에는 이미 거부가 되어 있었고,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던 요셉 때문에 행복한 말년을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천국에 있는 24보좌에 앉아서 통치하는 자가 되어있습니다. 

 

5. 결국 야곱이 지켜낸 것은 무엇이었나요?

  결국 야곱은 그 집안에서 신앙의 순수성과 혈통적인 순수성을 지켜낸 자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형 에서가 언약의 계승에 관하여 소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달랐습니다. 언약의 계승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에서의 눈에는 장자의 복만 크게 보였습니다. 그러니 그는 자신의 양심을 속였습니다. 이미 자신은 장자의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부모의 허락이나 동의도 없이 이미 가나안 여인(헷족속)을 아내로 맞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달랐습니다. 그가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 했던 것은 언약의 계승자가 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결국 신앙의 순수성도 보존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에서를 피해 도망간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아내를 얻어옴으로 혈통적인 순수성까지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2021년 06월 16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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