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이야기는 창조에서 시작하여 족장들의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다. 그런데 창세기의 족장들의 이야기는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되어 이삭을 거쳐 야곱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요셉 이야기로 그 끝을 맺고 있는 것이다. 왜 그래야 했을까? 대체 "아브라함과 이삭와 야곱의 하나님" 가운데 요셉 이야기는 대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인가? 우리가 만약 요셉 이야기를 제대로 볼 수 없다면, 아름다운 나무를 길렀는데 그 꽃을 보지 못한 것과 같을 것이다. 자, 요셉 이야기가 들려주는 그 위대한 영적 교훈을 이제 들어보자.

2021-08-06(금) 금요기도회

제목: 창세기강해(172)[최종회] 이긴 자였던 요셉의 삶과 죽음이 가르쳐주는 위대한 영적 교훈(창50:15~2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nxygttYZge0 [혹은 https://tv.naver.com/v/21743029 ]

 

 

1. 들어가며

  창세기는 요셉이 애굽에서 입관한 것으로 끝이 난다. 창조로 시작된 창세기 이야기가 요셉의 죽음으로 끝이 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창세기에 나오는 족장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요셉 이야기가 차지하지 비중에 놀라움을 금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창세기 이외의 성경책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소개하실 때에 꼭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는 하여도,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며, 요셉의 하나님이라"라고 말하고 있는 데는 단 한 군데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창세기 25장부터 50장까지 이어지는 야곱의 이야기 가운데, 요셉 이야기는 무려 창세기 37장부터 50장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셉 이야기가 왜 야곱 이야기에 끼어들어갔는지 그리고 그것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꿰뚫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요셉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그의 일생을 돌아보고, 창세기가 말하고자 하는 요셉의 삶과 죽음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요셉 이야기는 창세기에서 하이라이트 중의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이다. 

 

2. 요셉 이야기는 인생 성공의 감동 스토리인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요셉 이야기를 마치 성공한 인생의  감동스토리로 들어왔을 것이다. 대체로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요셉 이야기는 "한낱 목동이었던 소년 요셉이 애굽에 팔려가 노예가 되었고 거기에서 또한 죄수가 되었지만 결국 모든 어려움을 딛고서 성공함으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이야기다"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 요셉 이야기는 인생 성공 스토리인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만을 보았다면 우리는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를 너무나 축소시켜 본 것이다. 왜냐하면 요셉 이야기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며, 누가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인지를 말해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요셉 이야기는 인생 성공 스토리를 적어놓았다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인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요셉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하나님의 구별하여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 뿐만이 아니라, 애굽인으로 지칭된 이방인에 이르기까지 다 구원하시겠다는 계획이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구원받기를 원하셨다면 아마도 창세기 이야기는 유다의 이야기로 끝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창세기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야곱 이야기 속에 요셉 이야기를 끼워서 넣어두었다. 왜냐하면 기근은 가나안 뿐만 아니라 애굽 땅에 동시에 찾아온 기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총리 요셉을 통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당신의 계획을 야곱 이야기 속에 끼워넣은 것이다. 그러므로 요셉은 요한계시록에서 이기는 자의 표상으로 등장한다. 고로 우리도 요셉의 이야기를 잘 들어서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이기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144,000명에 속하는 왕같은 제사장이 되고 면류관을 쓰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창세기 말씀의 핵심 중의 핵심인 것이다. 

 

3. 요셉은 어떻게 신약의 예수님을 예표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하여 성령시대의 사람을 예표하는 야곱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한 송이의 꽃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요셉 이야기야말로 이긴 자의 이긴 자의 표상으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전한 이긴 자, 곧 영원히 이긴 자이신 예수님을 생각해보지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보내어질 때에는 하나님으로서 가진 권한들을 스스로 제한하시고 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이 사람으로서 살다가 사탄마귀를 이기시고 부활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으셨다. 그분도 40일간 금식으로 기도하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다. 그리고 매일 새벽미명에 기도하심으로 하루를 시작하셨으며, 자기를 따르던 수 만명의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했고, 제자들로부터도 버리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십자가에서 받으셨다. 하지만 겟네마네 동산에서 피땀어린 기도로 모든 것을 잘 이겨내셨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부활승천할 수 있었고, 승천후에는 이긴 자가 되어 아버지의 보좌에 앉는 자가 되었다(계3:21). 그러므로 천국의 하나님의 보좌는 "아버지의 보좌이면서 아들의 보좌"가 된 것이다(계22:1,3). 

  그렇다면 이긴 자였던 요셉은 어떤 측면에서 예수님처럼 이긴 자의 표상이 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이 시간에는 이긴 자이신 예표로서 이기는 삶을 살았던 요셉과 예수님의 삶을 서로 비교하고 검토해 보고자 한다. 요셉은 크게 다음과 같은 6가지 면에서 예수님의 예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요셉이 비록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기는 했지만 형제들로부터는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었고 급기야 미움의 대상이 되어서 죄수로 넘겨진 것처럼 예수께서도 역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는 한량없는 사랑을 받았지만 유대 형제들로부터는 모함을 받아 죄수로 넘겨졌기 때문이다(마27:25, 39~43). 둘째, 요셉이 형제들에게 의해 은20냥에 팔린 것처럼 예수께서는 가룟유다에게 은30냥에 팔리게 되었기 때문이다(마27:3). 셋째, 요셉이 죄수로 있을 때에 두 명의 죄수들 중에 한 명(숱맡은 관원장)은 죄용서받고 살아남지만 다른 한 명(떡굽는 관원장)은 죽임당했던 것처럼, 예수께서 죄수가 되어 십자가에 매달릴 때에, 두 명의 죄수들 중에 한 명은 회개하여 구원을 받고 낙원에 들어갔지면, 다른 한 명은 그냥 죽임을 당하여 음부에 떨어졌기 때문이다(눅23:39~43). 넷째, 요셉이 죄도 없었는데 죄수가 되어 감옥에 갇혔지만 어느날 감옥에서 풀려나오게 되었듯이, 예수께서도 죄가 없는 사람이었는데, 죄수가 되어 십자가에 목박혀 죽임을 당해야 했지만 죽임당한 후 3일만에 무덤에서 무덤문을 열고 죽음을 극복한 채 걸어나오셨기 때문이다(고전15:3~4, 엡4:8~9). 다섯째, 요셉의 총리로서의 삶이 30세에 시작되었듯이, 예수께서도 사생애를 끝내고 공생애를 시작한 것이 당신의 나이가 30세때였다(눅3:23). 여섯째, 요셉의 자기에게 죄지은 형제들을 용서해준 것처럼, 그리고 예수께서도 당신 자신을 거역하고 침을 뱉고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용서해주었기 때문이다(눅23:34).   

 

4. 요셉의 삶과 죽음이 주는 6가지 교훈은 무엇인가?

  요셉은 야곱이 90세 때에 밧단아람에서 라헬의 소생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17세에 형들의 시기로 인해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다. 그리고 애굽의 경호대장이었던 보디발의 집에 팔려간 요셉은 거기에서 13년을 보내는데, 노예로 10년을 보냈으며 또한 보디발의 처의 모함으로 인하여 다시 감옥에서 최소 3년을 보냈다. 그리고 요셉은 그 감옥에 있으면서 술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준 것을 계기로 훗날 바로가 꿈을 꾸었을 때에 그것을 해석해줄 자로서 천거함를 받아, 요셉은 일약 30세의 나이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다. 그리고 7년 풍년후 기근 2년차가 되었을 때에 곡식을 사러온 형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어 그의 나이 40세에 아버지와 감격스러운 재회를 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17년이 지나 그의 나이 57세에 부친 야곱의 눈을 감겨드린다. 그리고 자신도 그때로부터 53년후인 해 곧 그의 나이 110세 때에 애굽에서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의 삶과 그리고 그의 죽음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들려주는 것일까? 그것은 다음과 같이 7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요셉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인류구원에 관한 계획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며, 그러한 계획을 하나님께서 당신 뜻대로 이루신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구원은 단지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 세상에는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작정하며 보낸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요셉은 이 세상에 보내어질 때에 하나님의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보내졌다. 그는 단지 기근에서 자기의 가족들을 구출하라고 이땅에 보내어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애굽의 고센 땅에 거대한 민족으로 성장시키도록 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자였으며, 더욱이 애굽사람들을 지칭하는 모든 이방인에게 이르기까지 영적인 기근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하라고 이 땅에 예표로서 보냄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이렇듯 특별한 사명을 받고 이 땅에 보내어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그것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충성(성실함, 순수함, 순종함)하고 인내함으로 하나님을 뜻을 이뤄야 하는 것도 마땅한 일이라고 하겠다. 

  셋째, 이 땅에서 살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충성한 자에게는 하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셉은 이긴 자들 중의 이긴 자의 대표적인 모형이 되었는데, 그는 천국에서 24장로에 포함되어 있으며, 그를 위하여 제1번의 보좌자리와 많은 면류관과 멋진 천국집이 예비되어 있다. 

  넷째, 하나님은 선택받은 혹은 예정된 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자를 통하여 모든 이방인까지 다 구원받아 복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야곱에게 있어서 장자는 두 명이었다. 하나는 메시야의 조상이 되는 영적인 장자로서 '유다'가 있었고, 또 하나는 장자의 명분을 가진 자로서 기업을 두 배로 차지하게 된 '요셉'이 있었다. 그런데 유다는 오직 메시야를 낳는 일에 충성하였고, 요셉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구원 곧 하나님의 구원은 이방인을 포함하는 구원이라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신약시대의 사도로 비유하자만, '유다'는 할례자의 사도였던 베드로와 같은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고, '요셉'은 이스라엘 백성과 임금들과 이방인의 사도였던 바울과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하나님의 안배 즉 하나님의 사명을 깨달은 자는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고 그 사명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런 자는 끝까지 인내하여 자신의 소임을 잘 감당해 낸다는 것이다. 요셉은 이러한 사실을 그의 나이 17세 때에 꾼 2가지 계시적인 꿈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곧 형들의 곡식단이 자신의 곡식단에게 절하는 꿈(창37:7)과 해와 달과 11개의 별들이 절하는 꿈(창37:9)의 꿈을 통하여 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사명을 분명하게 깨달았던 요셉에게 있어서 고난은 더 이상 원망과 불평의 원인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은 그에게 장차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되었다. 사실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이다. 

  여섯째,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려는 자에게 있어서 고난은 필수적인 과정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거의 다 그랬다. 아벨도, 노아도, 야곱도, 요셉도 다 그랬다. 그리고 요셉의 뒤를 잇는 모세도 40년을 인내해야 했고, 다윗은 15년을, 사도바울도 10년 이상을 인내하며 고난을 통과해야 했던 것이다. 

  일곱째, 하나님으로부터 이 땅에서 형통하는 축복을 받는 것은 자기만의 노력이라기보다는 자기의 조상들의 수고와 노력이 내려와서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가문이 복을 받게 된 것은 그의 증조부 아브라함은 저주를 끝냈기 때문이며, 이삭은 자신의 송두리째 내어바쳐 헌신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소유를 다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양보하고 내주었으며, 야곱은 자기에게 주어진 11명의 아들들이 계속해서 축복의 대상이 되도록 철야기도함으로 그것을 지켜내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여기에서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이 땅에서 어떻게 축복을 받게 되느냐 하는 것의 핵심은 저주를 없애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만약 아브라함이 우상숭배로 인한 그의 가문의 저주를 끝내지 못했더라면, 그 뒤에 태어나는 후손들에게 형통함의 축복은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저주를 끝내놓으니까, 이삭이 농사하면 100배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고, 파는 장소마다 우물이 터져나올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야곱이 양떼에 손을 대면 양떼가 불어나게 되었으니, 자기 외삼촌의 양떼가 그랬고 자신의 양떼도 그랬던 것이다. 그러니 요셉이 가는 곳마다 형통함이 축복이 뒤따라올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요셉이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서 일하니 보디발의 집과 밭과 소유에 복을 받을 수 있었고, 감옥에 들어가서 일하니 간수장이가 요셉에게 모든 일을 맡기었으며, 요셉이 애굽의 왕궁에 들어가니, 애굽 나라 전체가 복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그의 조상들이 해놓은 일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5. 나오며

  지난 약 7개월 동안 우리는 창세기를 172번에 걸쳐 배울 수 있었다(2021.01.25~08.06).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회개와 천국복음"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창세기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오직 한 분이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우리는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의 말씀을 통하여, 창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늘 설화 내지는 꾸며낸 이야기로만 들어왔던 것을 역사적인 사실이며 과학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을 들을 수 있었으며,  창조의 이야기는 곧 하나님의 누군지를 소개해주는 이야기라는 것을 배웠다. 그분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요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아의 홍수사건을 접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역사적인 사건이었으며, 그것을 통하여 인류가 어떻게 되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되었는지를 쭈욱 살펴보았다. 그리고 창세기 12장부터 우리는 4명의 족장들의 역사를 살펴보게 되었다. 어떻게 되어서 과연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는지, 그리고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정말 축복받는 인생을 살게 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장자의 축복을 계승하려는 야곱의 눈물겨운 사투도 지켜보았고, 하나님의 안배로 이 땅에 보내어진 요셉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은 단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시며, 하나님은 이방인을 포함하여 모든 민족을 다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천국은 이긴 자가 들어가는 곳이며, 충성하여 인내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는 자에게는 하늘에 놀라운 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우리는 이번에 창세기를 통해 베풀어주신 은혜를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또 듣고 또 들어서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갔을 때에 주님으로부터 직접 "너는 나의 기쁨이었고 나의 자랑이었다. 내가 너 때문에 타락한 이 세상을 보면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었다"는 놀라운 말씀을 들어서, 천국에서 면류관 얻는 위대한 하늘나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71) 야곱의 삶과 그의 죽음이 남기고 간 위대한 영적 교훈(창49:28~50:14)_2021-08-06(금)

https://youtu.be/W9sKjBGzGVI  [혹은  https://tv.naver.com/v/21725179  ]

 

1. 야곱은 누구였고 어떤 인생을 살았나요?

  야곱은 이삭의 쌍둥이 아들 중에서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형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다고 해서 "야곱"이라고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형은 들사람이 되었고 야곱은 장막 안에 거했습니다. 그래서 조부 아브라함과 15년을 살면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 듣고 자랐습니다. 조부가 돌아가시자 그는 즉시 장자의 권리를 얻기 위해 작업에 들어갔으니, 16살 때에 팥죽으로 형의 장자권을 샀습니다. 그리고 60년이 지났을 때에 아버지 이삭이 유언과 축복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야곱은 어머니의 도움으로 장자의 축복까지 받았습니다. 그러자 형은 야곱을 죽이려고 하였고,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쳤습니다. 20년동안 그 집에 살면서 야곱은 외삼촌의 딸 라헬을 사랑하여 그녀를 아내로 얻고자 14년을 봉사했으며, 그때에 4명의 아내로부터 7년간 11명의 아들들과 1명의 딸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외삼촌을 위해 6년을 봉사하여 살림을 장만하여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자신의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이려고 400명의 군사를 거느니라고 온다는 이야기에 얍복강에서 목숨을 내거는 기도를 한 끝에 하나님으로부터 "이긴 자"라는 개명과 함께 보호를 약속받았습니다. 형 에서와 재회한 야곱은 이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지만, 세겜에서 10년을 보내다가 딸 디나의 강간사건을 겪어야했고, 아버지의 집에 오는 길에 라헬이 난산후 잃게 되었으나 12번째의 아들 베냐민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시 10년후 아버지집을 방문하고, 4년 뒤에 아버지를 잃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10년후, 그의 나이 130세에 기근으로 애굽으로 이주하여, 17년을 살고, 147세의 일기로 조상들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2. 야곱은 어떻게 임종을 맞이했나요?

  야곱은 죽을 무렵이 가까이 오자, 요셉을 불러 자신의 시체를 애굽 땅에 묻지 말고 가나안 땅 조상의 묘지에 묻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두 아들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양자로 입양한 뒤에 그들을 축복해 주었으며, 이어서 자신의 12아들들을 불러다가 침상에 앉아서 지팡이를 짚고 유언했습니다. 그리고 축복이 끝나자 침상을 누웠고 두 다리를 나란히 모은 뒤에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말씀과 야곱의 유언대로 요셉이 그의 눈을 감겨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에게 장자의 권리는 요셉에게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파란만장한 야곱도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3. 야곱의 장례는 어떻게 치러졌나요?

  요셉은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자신의 수종드는 의사들에게 명하여 아버지를 향으로 처리하게 했습니다. 일종의 미이라로 만든 것입니다. 이는 장례의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아버지의 시체가 부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향재료로 처리하는데 40일이 걸렸고, 애도는 70일간 했습니다. 애굽 왕 바로의 장례 기간이 72일인 걸 보면, 거의 왕족에 준하는 장례(=국장)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직접 발인을 할 때에는 바로의 모든 신하들과 바로의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들이 그 대열에 참여하였고,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아들들도 다같이 참여하였습니다. 그리고 병거들과 기병들이 장례행렬을 보이콧해 주었습니다. 그야말로 엄숙하고 웅대한 장례식이었습니다. 장례행렬이 아닷의 타작마장에서 멈추고 7일동안 애곡하자, 가나안 사람들이 그것을 보더니 "애굽의 슬픔"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야말로 장례는 엄숙하고 거대하였던 것입니다. 이윽고 고센 땅으로부터 480Km를 떠나온 야곱의 시신은 야곱이 가나안 땅에 있을 때에 미리 파놓은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고, 장사한 후에 요셉은 자기의 형제들과 그리고 장사하러 올라간 모든 사람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습니다. 

 

4. 야곱은 왜 유언으로 자신의 시체를 가나안 땅 조상의 묘지에 묻어달라고 했던 것일까요?

  야곱은 유언으로 자신의 재산(부동산과 동산)의 분배를 명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한 가지, 자신의 시신을 막벨라굴에 묻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것은 1차적으로는 요셉에게 하였고(창47:29~30), 2차적으로는 12아들들에게 했습니다(창49:29). 그렇다면 야곱은 왜 유언으로 이러한 부탁을 한 것일까요? 그것은 자신과 자신의 가문이 꼭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곧 꿈에도 잊지 말아야 할 소원은 오직 한 가지, 그것은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얻는 것임을 자식들 마음 속에 깊이 새겨주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러자 요셉도 자신이 죽을 때 자신의 뼈를 가지고 가나안 땅으로 갈 것을 후손들에게 명하고 유언으로 남겼습니다(창50:25). 그렇습니다. 야곱이 바라본 약속의 땅은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는 "천국"입니다. 우리도 늙어 죽을 때까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어찌하든지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또한 거기에서 땅을 기업으로 얻는 것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이것에 목숨을 걸 수 있나요? 

 

5. 야곱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의 엄숙한 죽음이 가르쳐주는 영적 교훈은 무엇인가요?

   야곱의 파란만장한 삶과 그의 엄숙한 죽음이 가르쳐주는 영적 교훈은 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하늘의 축복은 사모하고 사모하는 자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영적인 축복에 대해서 처음에는 그의 조부 아브라함에게 들었을 것입니다. 15년을 함께 살았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을 사모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취했습니다. 둘째, 아무리 영적인 축복을 사모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에게 거져 주어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영적인 장자권을 얻기 위하여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며 또한 그것을 얻음으로 인하여 받게 될 고난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20년의 타향살이였습니다. 셋째, 이미 얻은 장자의 축복이라도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기도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전반부는 '야곱('형의' 뒷발꿈치를 잡은 자)'이라는 삶이었고, 후반부는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이라는 삶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의 전반부는 형의 장자권을 얻는 데에 모든 관심의 촛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의 후반부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댓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목숨을 건 철야기도였습니다. 힘이 약했던 야곱에게 기도야말로 이미 받은 축복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차자의 설움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생고생해서 얻은 장자의 축복을 이제는 자기의 모든 아들들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다 누리게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자기의 힘만으로는 자식들을 지켜낼 방도가 없었습니다. 에서 형이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죽이러 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매달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교만한 자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기도하지 않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엎드리지 않는 자가 가장 교만한 자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기꺼이 자신을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밤이 새는 줄도 모를 정도로, 자신의 환도뼈가 위골되는 줄도 모를 정도로 그는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그래서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이긴 자"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후에 야곱은 천국에 가보시면 알겠지만, 하늘에 있는 24보좌에 앉는 24장로 중의 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면류관(적어도 '소망', '사모함', '열정', 꿈을 이름', '승리'의 면류관)을 쓸 수 있게 되었으며, 천국에 엄청난 규모의 천국집을 얻는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참으로 고달프고 힘겨운 삶이었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할 만한 가치있는 삶을 살다가 간 것입니다. 

 

2021년 08월 06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43) 요셉의 꿈과 천국에서 왕노릇할 자는 누구인가?(창37:6~10)_2021-07-07(수) 

https://youtu.be/CPLvmN6T_W8  [혹은 https://tv.naver.com/v/21205961  ]

 

1. 요셉의 첫번째 꿈은 무슨 꿈인가요?

  요셉이 꾸었던 첫번째 꿈은 곡식단에 관한 꿈이었습니다(창37:7) 형들의 곡식단이 일어서더니 요셉의 곡식단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꾸었던 이 꿈은 계시적인 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꿈은 장차 요셉과 그의 형들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미리 보여주는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꿈 중에는 이러한 계시적인 꿈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이러한 계시적인 꿈을 일컬어 우리는 "환상"이라고 부릅니다. 

 

2. 창세기의 요셉은 왕노릇할 자를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이 부분에 어떻게 말씀하셨나요?

  창세기에서 요셉은 왕노릇할 자를 예표합니다. 그의 첫번째 꿈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들은 요셉의 첫번째 꿈을 들어보고는 그것은 요셉이 그들 위에서 왕노릇하는 것이며, 그들을 다스리게 될 꿈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창42:6). 그러므로 야곱 이야기 가운데 등장하는 요셉 이야기는 누가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될 것인가를 말해준다고 하겠습니다. 이 부분에 관하여 예수님도 말씀해주셨고 사도들도 증언하고 있으며 요한계시록에서 확실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께서도 천국에 들어가면 왕노릇할(다스릴) 자가 있고, 섬기는 자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날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을 주의 왕국에서 예수님의 좌우편으로부터 앉게 해 달라고 했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럴려면 고난의 잔과 죽음의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고 물으신 뒤에 천국에서 누가 큰 자인지를 말씀해주셨는데, 그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5-27)" 그렇습니다. 천국에서도 다스리는 자가 있고 섬기는 자가 각각 따로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누가 천국에서 보좌에 앉아 다스리는 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나요? 그것은 첫째,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그들을 섬기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0:25~27). 둘째,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9:27~28). 그러면 그들이 12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심판할(분할통치할, 결정할, 판단할, 다스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셋째, 모든 시험들 중에서도 그것을 이겨내고 항상 주님께 함께 한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22:28~28). 그러면 그런 자들은 주님의 왕국에서 주님의 식탁 위에서 먹고 마실 것이며 또한 보좌 위에 앉아서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다스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사도들에 천국에서 왕노릇할 자를 어떻게 말씀했나요?

 그렇다면 사도들은 천국에서 왕노릇할 자는 어떤 자들이라고 말씀했나요? 첫째, 사도 베드로는 어둠에 속해 있는 자들을 주님의 놀라운 빛 안으로 들어오게 하며, 주님의 아름다운 미덕들을 널리 알리는 자가 왕같은 제사장들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둘째, 사도 바울은 주님과 함께 죽고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잘 참고 인내하는 자가 주님과 더불어 왕노릇할 것이라고 했습니다(딤후2:11~12).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딤후2:11-12)" 

 

4. 요한계시록에서는 왕노릇할 자를 어떻게 말씀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사도요한은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천국에서 왕으로 다스릴 자가 있고 다스림을 받을 자가 있음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요한계시록에서 왕으로 다스릴 자는 왕과 제사장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으며(계5:10, 20:4~6, 22:5), 반대로 어떤 이는 만국백성이 되어서 왕의 다스림을 받을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계2:27, 21:24). 먼저, 사도요한이 보았던 왕이요 제사장이란 어떤 사람들일까요? 첫째로, 그들은 천국에서 제사장으로서 새 노래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것이며, 그들은 천국에 있는 땅 위에서 왕노릇할 것이라고 했습니다(계5:10). 둘째, 그들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순교하는 자들이며 우상경배를 거부하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로서, 죽은 죽시 천국에 올라가 주님이 재림하는 때까지 천년동안(주님의 부활승천이후 재림 때까지의 기간) 그곳에서 왕노릇할 것이라고 했습니다(계20:4~6). 셋째, 천국에서 왕이요 제사장은 재림전까지만 왕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재림이후에는 세세무궁토록 왕노릇할 것이라고 했습니다(계20:5).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천국에 들어가는 자로 만족하지 말고, 천국에 들어가서도 제사장으로 일하고, 뿐만 아니라 왕노릇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더욱더 힘써야 하겠습니다. 

 

5. 요셉의 첫번째 꿈은 요한계시록에서 어떻게 완성되나요?

  요셉의 첫번째 꿈은 요한계시록에 가서 완성단계에 이릅니다. 사실 성경에 등장하는 꿈이야기는 요한계시록에 가서 비로소 완성돤계에 이르는데, 그것들을 주의깊에 살펴보면, 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꿈과 환상들의 종합체요 완성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요셉으로 시작되는 꿈이야기가, 다니엘서로 넘어가 꽃을 피우며, 에스겔의 성전환상을 통해 새 예루살렘성전이 계시되고, 스가랴서를 통해 완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 요한계시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환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요셉의 꿈, 다니엘의 환상, 에스겔의 성전환상, 스가랴의 환상을 공부해야 합니다. 이것을 공부하지 않으면 요한계시록의 환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꿈과 환상의 시작이 바로 요셉의 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놀랍기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창세기에서 요셉 이야기는 성령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기는 자들이 누군지를 알려주는 비밀입니다. 고로 요셉 이야기가 요한계시록의 씨앗에 해당하므로 우리는 창세기를 공부하면서부터 요셉 이야기에 주목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고로, 요한계시록강해, 다니엘강해, 에스겔강해, 스가랴강해를 듣기 원하시는 분은 본 교회 홈페이지의 "수요강해설교(https://dongtanms.kr/board_MSkM52)"에 이미 수록해놓았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21년 07월 07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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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요셉의 꿈과 하늘에서 왕노릇하는 자가 누군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성경에 나타난 <꿈과 환상의 성경강해 씨리즈>설교입니다. 

 1. 정병진목사의 다니엘강해(20강) https://dongtanms.kr/board_YEeT26

 2. 정병진목사의 에스겔강해(22강) https://dongtanms.kr/board_UzhG31

 3. 정병진목사의 스가랴강해(12강) https://dongtanms.kr/board_tgox25

 4. 정병진목사의 요한계시록강해(52강) https://dongtanms.kr/board_qHUM98

 

동탄명성교회 - 66.요한계시록강해(52강)

회개와 천국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교회입니다.

dongtanms.kr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44) 요셉의 꿈과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자는 누구인가?(창37:6~10)_2021-07-08(목)

https://youtu.be/GD3ljYRIYy4  [혹은 https://tv.naver.com/v/21205201  ]

 

1. 요셉이 꾸었던 꿈 2가지는 무엇이며 어떤 공통점과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있나요?

  요셉이 꾸었던 꿈은 2가지였습니다. 첫번째 꿈은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창37:7~8). 이것은 요셉이 자신의 형들 위에서 왕노릇할 것이며, 그들을 다스리는 자가 된다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창41:6, 50:18). 그리고 두번째 꿈은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이것을 해석할 때에 요셉에게 말하기를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창37:10)"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해석은 올바른 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얼핏 보기에는 야곱의 해석이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100% 진짜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의 어머니 라헬은 이미 15년전에 베들레헴에서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라헬 말고도 "레아"나 "빌하와 실바"를 어머니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성립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렇게 해석하려 했다면 "어머니"를 단수로 표기하지 않고 복수로서 "어머니들"로 표기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어원문으로 보면, "네 어머니"는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해와 달과 별들"은 다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얼마 뒤에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에 들어간 야곱의 식구들 가운데, 어머니들은 빠져있습니다. 아마도 전부다 사망한 것 같습니다. 애굽에 들어간 자는 요셉과 그의 아들들과 자부들 그리고 손자손녀들만 들어갔다고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창46:5~7). 그러므로 곡식단이 절하는 꿈과 해와 달과 별들이 절하는 꿈은 같은 것도 있지만 다른 점도 있는 것입니다. 먼저 같은 것은 둘 다 요셉에게 절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셉이 다스리는 자 곧 왕노릇하는 자가 된다는 뜻이며, 다른 형제들은 요셉에게 절하며 섬기는 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다른 점은 있는데, 그것은 요셉에게 절을 하는 대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앞의 꿈에서는 요셉의 10명의 형들이 절했습니다. 그런데 뒤의 꿈에서는 해와 달과 별들이 절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창세기에서 "해와 달과 별들"이 누군지를 제대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완성의 책인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습니다. 

 

2. 요셉이 꾸었던 두번째 꿈 가운데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요셉이 꾸었던 두번째 꿈에 출현하고 있는 "해와 달과 열한 별들"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해와 달과 별들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 모든 것들이 다같이 "하늘에서 빛을 내는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하늘에 떠 있는 존재들이므로 이들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사람들이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의 사도였던 바울은 하늘에서 성도들이 받을 영광 중에 해와 달과 별들의 영광이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전15:40-41)" 그렇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은 대단히 빛나는 영광스러운 존재들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해와 달과 별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것은 완성의 책인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확인해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 구약의 꿈과 환상에 대한 완성작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의 꿈과 환상에는 요셉의 환상, 다니엘의 환상, 에스겔의 환상, 스가랴의 환상이 있습니다(본 교회 홈페이지의 '성경66권강해'의 각 권 강해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해와 달과 별들"이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12장에는 해를 옷을 입고 있는 한 여인이 등장하고 있습니다(계12:1). 그런데 그녀의 발 아래에는 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 위에는 열두별들로 구성된 면류관이 있습니다. 여기서 "면류관"은 금관(디아데마)가 아니라, "승리관(스테파노스)"을 가리킵니다 경주에서 그리고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에게 씌워주는 승리관(월계관)이 그 여인에게 씌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와 달과 별들은 승리자 곧 이긴 자들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3. 해를 옷입은 여자는 누구를 가리키며, 그녀가 낳은 사내아이는 누구인가요?

  그렇다면, 해를 옷입은 여자는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것이 그 여인이 낳은 자식을 통해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환상을 보니, 이 여인이 해산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사내아이인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사도요한은 그 사내(남자) 아이를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내아이는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것은 시편에 나옵니다.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는 말은 구약시대에 다윗이 시편에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메시야를 소개할 때에 사용했던 문구였기 때문입니다(시2:7~9).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시2:7-9)" 그렇습니다. 철장으로 다스리를 자란 이방나라(만국)을 다스리는 자를 가리킵니다. 한편 이 표현은 요한계시록에서 딱 2가지 용도로 쓰였습니다. 첫번째는 진정한 완전한 이긴 자이신 예수님에게 쓰였습니다(계19:15). 그리고 두번째는 예수님의 뒤를 이어 배출되는 성도들 중에서 이긴 자들을 가리키는데 쓰였습니다(계2:26~27).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라오디게아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신 자신을 "이긴 자"라고 표현하셨으며, 이어서 성도들 중에도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자들이 있는데 이들도 "이기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나와]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이겼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3:21)" 그렇습니다. 참고로 요한계시록에서 보좌에 앉는다는 말은 왕으로 통치한다는 것을 가리키며, 이것은 이기는 자에 대한 묘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남자는 오직 예수님 뿐인가요?

  한편 요한계시록에서는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리게 될 이기는 자를 오직 예수님에게만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요한계시록 2~3장의 일곱교회에 주신 말씀에서 성도들 중에서도 이기는 자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주님께서 두아디라교회에게 주신 말씀에 따르면, 이기는 자가 나오는데, 그들은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릴 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이기는 자는 만국 위에 왕노릇하는 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계2:26~2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계2:26-27)" 그렇습니다. 천국에서 들어간 성도들이라도 이긴 자들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자는 소수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기는 자들이 결국 예수님처럼 보좌에 앉아 왕노릇할 것입니다(계3:21). 그리고 이때 왕노릇할 대상은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들이기는 하지만, 섬기는 자나 종으로 들어간 자들일 것입니다(마20:26~27). 그렇다고 해서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자와 섬기는 자의 개념이 이 세상에서의 개념과 같지는 않습니다. 천국에서 이긴 자들은 만국을 다스릴 자들인데, 여기에 사용된 "다스린다(포이마이노)"는 동사는 "압제한다. 억누른다"는 뜻이 전혀 들어있지 않은 동사로서, "목양한다, 돌본다(포이마이노)"의 의미가 동사이기 때문입니다. 

 

5.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가진 자로서 천국에서 왕노릇하기 위해서는 내게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그렇습니다. 요셉이 꾸었던 꿈 중에서 첫번째 꿈은 천국에서도 이긴 자로서 왕노릇할 자가 있고, 반대로 다스림을 받고 섬기는 자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계시적인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꿈은 천국에서 이긴 자로서 영광스러운 자들이 있을텐데, 그중에서 요셉은 그들 가운에서도 더 영광스러운 이긴 자들이 있을 것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천국에서 아마도 이기는 자들의 대표들 중의 대표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좌우편으로부터 먼저 앉게 될 사람들 중에 요셉이 먼저 들어가 있을 확률이 매우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떠한 사람들로 준비되고 있습니까? 이땅에 높은 자로, 이 땅에서 섬김을 받는 자가 되는 것을 축복의 전부로 알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이제는 우리도 천국에서 왕으로 다스릴 자가 될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자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야곱 이야기 중에 요셉 이야기를 등장시켰고, 더불어 요셉이 꾸었던 2가지 꿈을 통하여 그것을 계시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1년 07월 08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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