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31) 남유다의 구원 경륜과 이 시대의 구원 경륜의 공통점과 차이점(렘30:1~31:40)_2023-03-16(목)

https://youtu.be/8TJZJvikiuc [또는 https://tv.naver.com/v/34145979]

 

1. 남유다는 어떻게 멸망했는가?

  북이스라엘이 B.C.722년에 앗수르의 살만에셀에게 멸망당하고, 그때로부터 136년 뒤인 B.C.586년 남유다마저 멸망당한다. 이때 남유다 왕은 제20대 시드기야왕이었고, 남유다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에 의해 멸망당한다. 그렇다면 왜 남유다는 멸망당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반드시 지키라고 주신 십계명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그 민족에게 주신 사명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랬다. 남유다는 그 나라가 후대로 갈수록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고 우상들을 섬겼다. 그리고 악행을 자행했다. 그리고 그 행위와 잘못을 고치도록 하나님께서 보낸 선지자들의 음성을 외면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남유다는 망할 수밖에 없었다. 

 

2. 남유다 백성들에게 멸망이란 어떤 개념인가?

  그렇다면 남유다 백성들에게 멸망이란 어떤 개념인가? 그것은 2가지 개념이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영영히 기업으로 주신다고 했던 약속의 땅에서 뽑혀지는 것이다. 즉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서 추방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진노 중이라도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살 길을 제시해 주었지만 결국 그 말씀듣기를 거부함으로 진멸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남유다 백성의 일부는 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남겨진 백성들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다 죽었다. 

 

3.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남유다 백성들에게 어떤 약속을 해 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남유다 백성들에게 회복을 약속해 주셨다. 즉 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70년이라는 포로 생활을 마치면,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바벨론으로부터 그들의 조상들이 살던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여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렘30:3). 그리하여 바벨론에서 70년이라는 포로 생활을 마친 유다인들 중의 일부가 B.C.537년 다시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유다인들은 두 차례 더 고국으로 귀환하게 된다. 

 

4. 남유다의 구원 경륜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남유다는 후대로 내려갈수록 많은 악행과 죄를 저질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을 더 이상 참으실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유다에게 쏟아 부으실 진노의 잔이 가득 차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내려진 선고는 곧 '진멸'이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남유다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푸셨다. 왜냐하면 전부다 죽이지 않고 일부를 바벨론으로 옮겨 주셨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왜 하나님께서는 남유다 백성들을 전멸시키지 않고, 일부는 살려두시어 바벨론으로 옮기신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까이는 다윗과 맺은 언약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윗 집과 다윗의 나라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다윗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삼하7:16). 그리고 조금 더 앞으로 가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창13:14~15). 그리고 그보다 더 앞으로 가서 아담의 시대로 가면, 여자의 후손이 나타나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창3:1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씨)을 보내어 그로 하여금 영원히 왕이 되게 하고 가나안 땅을 영원히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남유다의 범죄로 인하여 그들은 모두가 진멸당할 위치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조상들과 맺으신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진멸 중에서 남유다 백성들의 일부를 살려 두신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남유다 백성이 진멸을 당하려 할 때에, 가나안 땅에서 뽑혀 나가지 않도록 선지자를 보내셨다. 그래서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징계의 채찍으로 사용하고 있는 바벨론에게 대항하지 말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라고 선포케 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의 음성듣기를 거부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있는 자들은 바벨론의 군대에 의해 무참히 죽어나갔고, 일부만 바벨론 땅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대항하다가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나쁜 무화과'라고 하였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들은 '좋은 무화과'로 표현하셨다. 그리고 포로로 잡혀간 유다인들이 바벨론에서 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결혼하여 자녀를 낳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들의 수가 적어지지 않는다면, 좋은 무화과인 그들을 다시 본토로 되돌아가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70년이 지난 후 남유다인들은 3차례에 걸쳐 고국 땅으로 귀환하게 된다. 그래서 남유다 땅에 성읍을 건축하고, 제2성전을 건축하게 된다. 이것이 남유다인들의 구원 경륜이자 회복의 역사인 것이다. 

 

5.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구원 경륜은 어떠한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의 대부분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으면 천국에서 쫓겨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 구원받았다면 자신은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자기가 잘못하여 범죄를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자기들에게 혹시 징계의 채찍은 댈지언정 구원에서 제외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그것은 교회에서 전하는 기존 교리들이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웬만히 큰 죄를 짓지 않는 한, 자신의 구원은 변함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과 회복의 과정을 잘 살펴보라. 그러면 오늘날에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의 구원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곧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있는 성도들의 개인 구원의 역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 예레미야 30~31장의 말씀을 통하여 남유다의 구원 경륜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것은 죄를 지어 진노의 잔이 가득 차게 된 남유다의 운명은 철저한 파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극히 일부는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옮겨진다. 그렇다. 믿는 성도들이라도 대부분은 이처럼 가나안 땅으로 표현된 천국의 기업을 차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에 들어갔어도 진멸당하여 죽거나 뽑혀졌던 남유다의 백성들처럼 오늘날의 성도들도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히 일부가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와 원래의 기업을 차지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극히 소수만이 회개하여 천국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의 최종 관문은 '회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령받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모든 계명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지키며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은 죄값을 본인 스스로가 물지 않고, 예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지불하신 것으로 인하여 상쇄시킬 수 있는 '회개'는 성도의 구원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라고 아니 말할 수가 없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러한 비밀을 알고 실천하고 있다면, 그는 다른 사람도 이렇게 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이 비밀을 전해 주어야 한다. 남유다 백성들이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후에 그의 후손들이 예루살렘교회를 세우기는 했지만, 예루살렘교회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함으로 없어지고 말았던 전철을 우리는 밟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이방인들에게까지 구원의 소식을 전파해 준 안디옥교회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구원 경륜은 예루살렘교회에서 안디옥교회로 배턴이 옮겨졌던 것이다. 고로 우리가 회개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세상에 계속해서 살아남아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2023년 03월 16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30)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언제 어떻게 성취되는가?(렘29:1~32)_2023-03-15(수)

https://youtu.be/vr9ipuefYQ0 [또는 https://tv.naver.com/v/34145955]

 

1. 예레미야 29장은 어떻게 유명한 성경의 장인가?

  예레미야 29장은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다인들에게 거기에서 정착하며 살라고 권고하면서 그곳에 있는 거짓 선지자들의 선동에 넘어가지 말라고 했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예레미야 29장은 오늘날 목회자가 성도들을 심방할 때나 혹은 설교할 때에 자주 인용되는 말씀이다. 그것은 렘29:11의 말씀과 렘29:12~13의 말씀이다.

렘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렘29:12~13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그런데 이 말씀의 원뜻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고 전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왜 남유다의 포로민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내린 것이 아니라 평안을 준 것이요 미래와 희망을 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을까? 그리고 기도 권면에 관한 이 말씀은 과연 누구에게 하는 말씀인가?

 

2.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의 바람은 무엇이었는가?

  남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건은 총3회에 걸쳐 있었다. 첫 번째는 남유다 18대 여호야김왕 3년에 있었다(B.C.602). 이때 다니엘과 귀족들이 포로로 잡혀갔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남유다 제19대 여호야긴왕 원년에 있었다(BC.597). 이때에 에스겔 선지자와 여호야긴왕과 모후 느후스다와 기능공들과 대장장이들 약 1만 명이 끌려갔다. 예레미야 29장의 예언은 바로 이 사건이 있은 직후에 주어진 말씀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남유다 20대 시드기야왕 11년에 있었다(B.C.586년). 이때 시드기야왕이 눈이 뽑힌 채 바벨론에 끌려갔던 때다. 

  그렇다면, 1차와 2차 침공 때에 포로로 잡혀간 유다인들은 거기에서 어떤 소원을 갖고 살고 있었을까? 그것은 하루 속히 바벨론이 망하여 자신의 고향이자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포로로 잡혀간 유다인들 중에도 선지자들이 있었으니, 그들 대부분은 포로민들의 바람에 맞춰, 바벨론이 속히 망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벨론이 2년 안에 망하게 됨으로, 자기들은 곧 귀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 거짓말로 지어낸 예언이었고 거짓된 몽사였다. 

 

3. 예레미야가 포로민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그러자 예레미야는 포로민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편지를 써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를 통해 전해 주었다. 그 내용은 3가지였다. 첫째, 그곳에서 정착하고 살라는 것이었다(렘29:4~6). 그곳에서 집을 짓고 결혼하고 자녀낳고 번성하여 줄어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포로 기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기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미 알려진 바대로 70년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둘째, 바벨론 성읍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였다(렘29:7). 왜냐하면 바벨론 성읍이 평안해야 남유다인들도 거기서 평안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예언과 꿈을 믿지 말고 그들의 말에 속지 말라는 것이었다(렘29:8~9). 이는 예루살렘 본토에서도 역시 하나냐 같은 거짓 선지자가 일어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거짓 예언을 하고 있었는데, 바벨론에서도 마찬가지로 포로민 중에서 거짓 선지자가 일어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거짓 예언을 할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포로민 중에는 아합과 시드기야 그리고 스마야 같은 거짓 선지자가 있어서, 바벨론은 곧 멸망하게 될 것이고, 포로민들은 곧 귀향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거짓 예언을 퍼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포로민들은 거짓 선지자의 말을 믿고 바벨론이 속히 망하기를 바라고 있었으며, 곧 귀향하게 될 것이라는 말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 

 

4. 바벨론 포로민들이 진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러나 바벨론 포로민들이 진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언제 어떻게 성취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그들이 언제까지 마실 것인가와 더불어, 언제쯤이나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이러했다. 첫째, 남유다의 포로민들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유다인들이 그때까지 쭉 남유다가 저질러 온 죄값을 다 지불하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간 70년을 반드시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렘29:10~11). 그러니 빨리 돌아갈 것이라는 들뜬 생각을 접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70년을 묵묵히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남유다 제14대 므낫세왕 때에 이미 진노의 잔에 죄악이 가득 찼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때는 진노의 잔이 쏟아지는 기간이기 때문에 그 기간을 오롯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포로민으로 잡혀간 사람들은 예레미야 24장의 비유 말씀에 의하면, 자기들은 썩은 무화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본토에 남아 있지 못하고 사로잡혀 왔기 때문에, 자기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진 자들로서 저주받은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은 그들은 '썩은 무화과'가 아니라 좋은 무화과'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심판과 재앙 중에서도 살아남아서 장차 메시야를 낳을 그루터기로 쓰임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재앙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강 가운데 있는 것이었으며, 그들이야말로 남유다의 미래와 소망이었던 것이다(렘29:11). 그리고 둘째, 하나님께서 70년 뒤에 남유다의 회복을 작정하고 계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이뤄지도록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렘29:12~13). 하나님의 뜻과 계획의 성취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이뤄지려면 인간의 기도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에게 있어서 시간 개념은 없다. 그분은 항상 현재를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시간 개념이 정작 필요한 대상은 우리 인간일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수립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 뜻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들의 기도가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는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5. 오늘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의 성취를 위해 우리 믿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고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성취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예견될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있고, 또 하나는 지금 징계를 받고 있는 경우 어떻게 회복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가 있다. 먼저 첫째,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예견될 경우를 보자. 이때는 마냥 진노의 잔이 부어짐으로 인하여 죄값이 다 지불될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노의 잔을 비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그것을 잘 몰랐으나 말세가 되다 보니 그 비밀을 이제는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자기가 지은 죄를 회개하고, 자기 조상들이 지은 죄를 대신 회개하는 것이다. 그러면 진노의 잔이 비워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내리리라고 예정되어 있는 하나님의 진노라 할지라도 한참 뒤로 미뤄지거나 아니면 없어질 수도 있으며, 혹은 약한 것으로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후손을 위해 선행을 쌓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회복이 예견될 경우를 보자. 현재 하나님께 진노를 받고 있다고 할지라도, 과거에 어떤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져 있어 다시 회복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즉시 기도에 돌입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도가 없으면 이미 작정된 하나님의 계획이라도 그 계획이 뒤로 미뤄지든지 아니면 없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와 순종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의 성취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23년 03월 15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29)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렘27:1~28:17)_2023-03-14(화)

https://youtu.be/FJpdA3d1CRs [또는 https://tv.naver.com/v/34145925]

 

1. 예레미야 시대에 하나냐는 어떤 선지자였는가?

  예레미야 시대에 남유다에는 여러 선지자들이 있었다. '하나냐' 외에도 이름이 알려진 선지자들로 아합, 시드기야, 스마야 선지자 등이 있었다(렘29:21,22,24). 그런데 이러한 선지자들 중에 제사장 출신으로 영향력 있는 선지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하나냐'이다. 그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이며, 그는 기브온 출신의 앗술(이도 역시 제사장)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그는 예레미야 시대에 활동하던 선지자로서, 예레미야의 예언에 맞서 그와 반대의 예언을 쏟아내었다. 

 

2. 참된 선지자는 어떤 자이며,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어떤 선지자가 참된 하나님의 선지자인지 아닌지는 어떻께 알 수 있는가?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레미야 26장 강해를 통하여, 참된 선지자는 어떠한 선지자인지를 살펴보았다. 간단히 요약하면, 참된 하나님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보낸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선지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특징은 3가지다. 첫째,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하나도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전달한다는 것이다(렘26:2). 둘째, 자기의 전하는 메시지가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다고 할지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다는 것이다(렘26:14~15). 셋째, 전하는 메시지는 항상 일관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예언 사역은 40년간 지속되었지만,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왜 재앙이 임하는가 하는 원인을 알려 주는 것이었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지금이라도 재앙에서 돌이켜 주신다는 것이었으며,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여 바벨론 왕을 섬겨서 목숨을 부지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야 다시 회복의 그루터기로서 쓰임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3. 거짓 선지자는 어떤 자이며,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누가 거짓 선지자인가? 거짓 선지자는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보내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말하고(렘28:15),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닌데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말하는 선지자가 바로 거짓 선지자인 것이다(렘28:2). 놀랍게도 기브온 출신의 앗술의 아들 하나냐는 하나님께서 보내지도 않았는데도 하나님께서 보낸 것처럼 행세를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주신 일도 없었는데도 그는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셨느니라"라고 말했다(렘28:2).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예언을 쏟아낸 것이다. 그가 바로 거짓 선지자인 것이다. 

 

4. 거짓 선지자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거짓 선지자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이미 율법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거짓 선지자를 구별할 수 있는지를 알려 주셨다. 그것은 신명기서에 나온다. 그것은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을 했던 것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가짜라는 것이다(신18:22). 그러한 예언은 자신이 자기의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니, 그런 선지자의 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 중에는 자기 마음에서 지어내서 말하는 선지자가 있으며, 또한 다른 신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말하는 선지자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 금방 확인이 되는 것이면 좋겠지만, 그 기한이 따로 한정되지 않아서 우리가 죽어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라면 난감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선지자가 거짓 선지자인지 아닌지를 마냥 그 기간이 차기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다. 그리고 혹시 그 예언이 정말 죽어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라면, 죽어봤는데, 그때 가서 그가 거짓 선지자인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면, 이 일을 대체 어찌할 것인가? 그때는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정도 어떤 선지자가 거짓 선지자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냐의 경우의 예를 통하여, 거짓 선지자들은 과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참된 선지자는 하나님이 전하는 메시지를 가감없이 전하지만,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는 메시지가 아닌, 오히려 대부분 백성들이 바라는 것을 전하는 선지자라고 할 수 있다(렘28:1). 당시 하나냐가 전한 메시지는 남유다 백성들이 바라고 소망하던 것이었다. 그것은 예루살렘과 성전이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오히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멸망시킨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백성들의 바람이었던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결코 아니었다. 

  둘째, 참된 선지자는 보편적으로 심판과 회개의 메시지를 외치지만, 거짓 선지자는 당장의 평화와 안전을 외친다는 것이다(렘28:9). 참된 선지자는 궁극적으로 사람을 살리고 구원해야 하기 때문에, 만약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것을 전한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는 당장의 위험은 없을 것이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평화와 안전이 있을 것이라고 외친다. 그것은 남유다의 경우 하나님이 영원히 함께 계신다는 성전이 백성들의 눈앞에 아직 있기 때문에 그 성전만큼은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이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은 백성들의 소원을 따라 혹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예루살렘 성전만큼은 꼭 지켜 주신다고 외쳤던 것이다. 이는 마치 오늘날 목회자들이 예수만 믿으면 이미 구원을 받은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전하면서,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불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혹시 자신이 조금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이미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깨뜨릴 수는 없다고 안심시키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 하겠다. 

  셋째, 참된 선지자는 소수이지만 거짓 선지자는 대다수라는 것이다(렘28:1, 29:21,22,24,31). 이것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대부분 일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참된 선지자는 회개와 심판을 외치는 사역을 하기 때문에, 그 사역을 계속해서 감당하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된 선지자는 소수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는 백성들이 원하는 것을 예언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좋아한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는 백성이 좋아하는 예언을 주로 하게 되는데, 그래서 이런 선지자가 선지자들 중에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이다. 사실 예레미야 시대에도 참된 예언을 선포하는 선지자는 극히 소수였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아주 많이 있었다. 

  넷째,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그것은 참된 선지자는 자신의 예언이 고스란히 성취되는 선지자라면, 거짓 선지자는 시간이 흘러가도 그 예언이 결코 성취되지 않는 선지자를 가리킨다(렘28:9). 하나냐는 2가지를 예언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치러왔던 바벨론의 멍에를 꺾어 버렸다고 했다(렘28:2). 그리고 또 하나는 바벨론으로 잡혀간 여호야긴왕과 귀족들 그리고 성전 기구들이 2년 안에 다시 되돌려질 것이라고 했다(렘28:3~4). 그러나 바벨론은 꺾여지지 않았고 더욱더 기세가 등등하여 전 세계를 함락시켰으며, 여호야긴왕과 귀족들 그리고 성전 기구들은 2년 뒤에 결코 예루살렘에 돌아오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날 하나냐는 자신의 마음에서 지어낸 예언을 내뱉었기 때문이다. 

 

5. 거짓 선지자는 어떤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가?

  그렇다면 거짓 예언을 쏟아내었던 하나냐는 어떻게 되었을까? 구약시대 율법에 따르면, 거짓 선지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되어 있다(신18:20). 아니나 다를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냐의 예언이 있은 후 정확히 3달이 지난 어느 시점에 그를 죽여 버리신다(렘28:16~17). 하나님께서 거짓을 예언했던 하나냐가 그 해에 죽을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참한 최후는 거짓 선지자 자기 혼자만 겪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거짓 선지자 스마야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손까지 벌하여 하나도 남김없이 죽일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렘29:32). 실로 무서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런가? 그것은 그 선지자의 말을 듣고 아무런 대비를 못하다가 그만 멸망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에 보더라도, 거짓말을 하거나 지어내는 자는 성밖이나 불못에 던져진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계21:8,27, 22:15).

 

 

2023년 03월 14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28) 하나님께서 참 선지자를 이 땅에 계속해서 보내는 이유(렘26:1~24)_2023-03-13(월)

https://youtu.be/yRP4Q47t3n4 [또는 https://tv.naver.com/v/34145895]

 

1. 예레미야가 여호야김 왕국 초에 성전 뜰에서 행한 설교는 어떤 내용인가?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왕국 초에 예레미야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성전 뜰에 서서, 당시 절기를 지키러 온 유대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그 설교의 내용은 2가지였다. 하나는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이 꾸준히 보낸 선지자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은 폐허가 되게 할 것이고 예루살렘 성은 저줏거리가 되게 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백성들은 예레미야를 붙잡아 놓고는 "이 놈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외친다. 

 

2. 왕궁에서 재판장으로 온 유다의 고관들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러자 여호야김왕과는 달리 왕궁에서 온 유다의 고관들은 침착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무슨 일인지를 그들에게서 정확히 듣고자 했다. 그러자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먼저 일어나 유다의 고관들과 백성들을 향하여 예레미야를 고소했다. "이 사람이 죽는 것이 합당하니 이는 이 성에 관하여 불길한 것을 예언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렘26:11). 그러자 이에 대해 예레미야가 변호를 하였다. 첫째, 자신이 성전의 파괴와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예언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서 이 성에 관하여 예언하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이다(렘26:12,15). 둘째, 지금이라도 유다 백성들이 자신의 길과 행위를 고치면 하나님께서 재앙에 대해 뜻을 돌이킬 것이라고 했다(렘26:13). 셋째, 자신은 지금 붙들려 있기에 그들이 어떻게 하든 상관이 없지만,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댓가는 반드시 예루살렘 성과 유다인들이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렘26:14~15).

  그러자 고관들과 백성들은 예레미야는 죄가 없다고 말했다. 이때 어떤 장로들이 일어나 고관들과 백성들의 주장을 거들어 주었다. 즉 히스기야왕 때에 모레셋 사람 미가 선지자가 일어나 시온과 예루살렘 성과 성전의 파괴를 예언했을 때에, 히스기야왕이 듣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인하여 그 재앙을 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렘26:18~19). 그러므로 선지자 예레미야를 죽이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해롭게 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도와 결국 예레미야를 죽이지 않게 한다. 

 

3. 하나님께서 참 선지자를 계속해서 보내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참 선지자를 계속해서 보내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 중이라도 건질 자를 건져내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악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지라도 참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 고칠 자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들을 귀를 가진 자는 참 선지자의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자신의 길과 행위를 고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복된 자는 참 선지자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는 자이다. 오늘 말씀에 보니,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악한 자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처음에는 예레미야를 죽여야 한다는 데에 동조했지만 나중에 예레미야의 말과 재판장들의 말을 들은 후 그들은 생각을 바꾸어서 예레미야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렇다. 백성들은 쉽게 흔들린다. 그리고 지도자의 말을 따라간다. 그리고 백성들의 복은 훌륭하고 참된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교회에서 참된 목회자를 만나는 것이 복 중의 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도들치고 목회자가 말씀을 잘못 전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레미야 당시에 종교 지도자들은 어떠했는가? 전부 하나님의 말씀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자기들의 기득권이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여 예루살렘 성전의 평화와 예루살렘 성의 안전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4.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선지자는 어떻게 말씀을 전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은 선지자는 어떻게 말씀을 전해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한 말씀을 가감없이 전해야 한다(렘26:2). 더하거나 빼지 말고 그대로 전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하고 전해야 한다(렘26:14~15). 죽기를 각오하고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게 되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게 되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당시에 남유다에 기럇 여아림 출신의 스마야의 아들 우리야라는 선지자가 있었다. 그도 예루살렘 성과 유다 땅의 파괴에 대해 예언을 했는데, 왕이 듣고 그를 죽이려고 하자 무서워 애굽으로 도망을 친다. 하지만 왕이 보낸 사절단에 연행되어 예루살렘에 도착한 우리야 선지자는 왕에 의해 무참히 죽임당하고 만다. 그리고 그의 시체는 평민의 묘지에 던져지게 된다. 그렇다. 선지자가 죽음을 두려워하여 피신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리고 사명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에 내어놓았다. 그랬더니 아히감이 나타나 그를 죽지 않게 해 주었다. 셋째, 항상 일관성이 있게 전해야 한다. 전하는 내용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이번에는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다른 때에는 다르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항상 일관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였다. 

 

5. 예레미야가 항상 일관성 있게 전달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레미야가 약 40년간 선지자 생활을 하면서 일관성 있게 전한 메시지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3가지다. 첫째, 재앙이 왜 예루살렘 성읍과 예루살렘 성전에 쏟아지게 될 것인지를 전했다.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율법 말씀을 준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율법을 어기고 우상을 숭배하고 악을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질 것이라고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도 말했다. 둘째, 아무리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사 재앙을 내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전했다. 셋째,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니,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인데, 그래도 살아남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전했다. 그것은 곧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바벨론 왕을 섬기라는 것이었다(렘27:12,17). 

 

2023년 03월 13일(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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