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19) 진짜 주의 종 선지자는 어떤 경우에 가장 고통스러워하는가?(렘20:1~18)_2023-02-28(화)

https://youtu.be/TTVT9pmQXBY [또는 https://tv.naver.com/v/33751117]

 

1. 예레미야서 20장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예레미야서 20장은 예레미야서의 본론부 있는 제1부(2~25장) 12개의 단편 예언들 가운데, 제8예언의 뒷부분에 해당한다. 제8예언(렘18~20장)은 18장부터 20장까지로서, 그중에 18장은 그 유명한 '토기장이'의 비유가 나온다. 이는 개인과 민족의 쓰임(용도)에 관하여 절대주권을 갖고 있는 하나님에 관한 비유 말씀이다. 그리고 19장에는 토기장이가 옹기를 파쇄함으로서 회개를 거부하는 남유다의 철저한 파괴가 예언되어 있다. 그리고 20장에는 성전 총 감독자인 제사장 바스훌에 의한 예레미야의 핍박에 대해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동료들을 심판하실 것에 대한 예언(렘20:1~6)과 더불어 홀로 핍박과 조롱거리가 되어 버린 예레미야의 탄식(렘18:7~18)이 기록되어 있다. 

 

2. 예레미야는 왜 성전에서 험한 꼴을 당하게 되었는가?

  B.C.597년경 남유다의 여호야긴왕의 통치 말기였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과 함께 힌놈의 골짜기의 도벳 사당에 가서 토기장이의 옹기를 깨뜨리면서, 한 번 깨뜨린 토기는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렇듯 남유다의 멸망의 확실성을 실물적으로 보여 주었던 예레미야는 이제 성전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도시에 이러한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성전 총 관리 감독자인 제사장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잡아다가 폭행을 하고 그의 목에 차꼬를 채워 밤새도록 성전문에 묶어 두게 된다. 그렇다면 예레미야가 이처럼 험한 꼴을 당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성전에 와서 남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성전의 파괴와 멸망 곧 재앙을 예언했기 때문이다(렘19:14~15, 20:8). 

 

3. 핍박당하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무엇이었는가?

  이렇듯 죄없는 예레미야가 성전 총 관리 감독자인 임멜의 아들 제사장 바스훌에게 끌려가 모욕을 당하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3가지 말씀을 들려주신다. 첫째, 바스훌의 이름이 '마골밋사빕'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했다(렘20:3). 바스훌이라는 이름의 뜻이 '자유를 가져다 주는 자'였는데, 마골밋사빕이라는 이름의 뜻 곧 '사방으로부터의 두려움(공포)'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알려 주신 것이다. 이는 바스훌이 남유다에 자유와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오히려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사방으로부터 공포를 가져오게 하는 자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둘째, 남유다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칼에 죽고 나머지는 바벨론으로 옮겨가서 거기에서 죽을 것이며, 예루살렘의 모든 귀중품들이 약탈당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렘20:4~5). 셋째, 바스훌과 바스훌의 거짓 예언을 지지했던 그의 친구들까지 전부다 포로로 바벨론에 잡혀가서 거기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했다(렘20:6). 이처럼 하나님은 참된 주의 선지자를 핍박하고 거짓 예언을 한 바스훌에게 공의로운 심판을 집행하신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과 입을 함부로 놀려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4. 제사장과 그의 동료들로부터 심한 모욕을 받고 조롱거리의 대상이 되었던 예레미야는 어떤 탄식을 하게 되는가?

  그런데 성전의 총 관리 감독자인 바스훌과 여러 동료들로부터 심한 모욕을 받고 조롱거리가 되었던 예레미야는 이제 탄식하며 기도한다. 사람의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주께서 자신의 사정을 감찰해 달라고 하는 기도를 드린 것이다. 그러면서 차라리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면서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을 호소한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는 그것을 내팽개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탄식 중에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바로 참된 주의 종 선지자의 마음이다. 

렘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며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5. 진짜 주의 종은 어떤 경우에 가장 고통스러워하는가?

  진짜로 하나님께서 쓰임받는 참된 종은 무엇에 가장 고통스러워할까? 자신이 받는 핍박과 조롱거리가 고통스러운 것일까? 예레미야는 자신의 동료였던 제사장이자 선지자였던 바스훌에게 심한 모욕적인 언사와 처벌을 받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는 바스훌이 아무런 잘못이 없는 자신을 처벌한 것에 대해 고통스러워했던 것일까? 아니다. 그는 자신의 동료 종들을 보면서 고통스러워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남유다의 백성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라고 세워준 지도자들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참된 음성을 듣지 못하여 가짜로 예언하고 있었고 가짜를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은 비단 그때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에도 그때처럼 가짜를 예언하고 가짜를 가르치는 주의 종들이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아니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오늘날에 성도들은 주의 종들이 선포하는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이 결코 틀린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부분 넓은 길을 가르치는 주의 종을 따라가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에 대한 책임을 성도 본인에게만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가르치는 지도자들의 잘못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 주의 종들이겠지만 그들의 말속에는 거짓이 들어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말로 성도들을 가르쳐 그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게 함으로, 결국 한 명의 성도라도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주의 종이 있다면, 그 책임은 목회자가 져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하늘의 별따기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부활 승천하신 예수께서 거짓말을 하는(거짓 예언하고 거짓된 말씀을 선포하는) 주의 종들은 결단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있게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들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 넣게 되든지(계21:9), 아니면 새 예루살렘 성밖에 두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21:27, 22:15). 고로 우리 성도들은 자신에게 말씀을 증거하는 목회자가 끝까지 참된 진리만을 선포하는 목회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목회자가 전하는 말씀은 곧 나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2023년 02월 28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16) 토기장이의 비유,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어떤 비유인가?(렘18:1~20:18)_2023-02-24(금)

https://youtu.be/7YI3dSKeOJs [또는 https://tv.naver.com/v/33750841]

 

1. 예레미야서에서 토기장이의 비유는 어디에 나오는가?

  예레미야서에서 토기장이의 비유는 예레미야서의 본론부 제1부의 12개의 단편 예언들 가운데 8번째에 나오는 예언이다. 즉 예레미야서에서 제8예언은 렘18:1~20:18까지의 말씀으로서, 토기장이의 실례와 옹기 파괴란 상징적 행동을 통하여 온 우주와 인류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함으로, 범죄한 유다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원칙에 따라 엄정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토기장이의 비유'는 제8예언 가운데도 제일 처음으로 '만민 처우 원칙'이라는 주제에 따라 등장하고 있다. 그때 주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렘18: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2. 토기장이의 비유는 성경 어디 어디에 나오는가?

  성경에서 토기장이의 비유는 주로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에 나온다(사29:16, 64:8, 렘18~19장). 한편 신약성경에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 9장과 디모데후서 2장에 언급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롬9:21, 딤후2:20~21). 여기서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토기장이에 비유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토기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토기장이가 자신의 의견을 따라 여러 종류의 그릇을 만든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모든 만물의 창조주로서 당신의 뜻을 따라 만물을 창조하시고 계신다. 특히 사람을 당신의 뜻을 따라 창조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은 조물주요, 아버지이며, 토기장이인 것이다(사64:8). 

사64: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3. 토기장이의 비유는 오늘날 어떻게 잘못 전달되고 있는가?

  그런데 오늘날 토기장이의 비유는 잘못 알려진 것이 많다. 왜나하면 토기장이의 비유를 사람의 어떤 쓰임 즉 용도에 관한 비유로 사용하지 않고, 구원과 멸망에 관한 비유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토기장이의 비유를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토기를 빚으시는데, 어떤 개인이나 민족이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에 계속해서 빗나간다면 결국 그 토기를 깨뜨려 버리시고 새로운 다른 그릇을 빚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만세 전에 개인에 대한 구원과 또한 멸망이 이미 결정된 채 있다는 것으로 토기장이의 비유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적용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구원과 멸망을 설명해 주시기 위해 이러한 '토기장이의 비유'를 사용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께서 토기장이의 비유를 사용하신 것은 하나님께서는 어떤 의도와 목적을 따라 당신이 사용하시려는 용도에 맞춰 사람들을 창조하신 후에 그 영혼을 이 땅에 있는 사람 속에 보내신다는 것이다. 

딤후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4. 토기장이의 비유는 어떠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관한 비유인가?

  그러니까 토기장이의 비유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한 비유이기는 하지만, 이 비유는 사람의 쓰임(용도)에 관한 비유인 것이지, 결코 어떤 사람을 만세 전에 구원과 멸망으로 예정해 놓으셨다고 하는 개인 구원 예정에 관한 비유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 특히 칼빈의 예정론을 추구하는 한국 장로교에서는 토기장이의 비유를 개인 사역 예정이 아니라 개인 구원 예정이나 개인 멸망 예언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혼돈이 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토기장이의 비유를 잘못 해석하면 인간의 운명(구원과 멸망)은 하나님에 의해서 절대적으로 달라지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개인이 구원을 받거나 혹은 멸망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미 만세 전에 결정해 놓으신 것으로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개인이나 민족을 어떻게 사용하실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리 생각하고 만들어 가시지만, 결코 만물이 창조되기도 전에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멸망시킬 것을 아무도 모르게 정해 놓고 사람을 창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5. 토기장이의 비유가 개인 구원에 관한 절대주권으로 와전되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토기장이의 비유는 하나님께서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사람을 빚으신다는 것을 말해 주는 개인 사역 예정에 관한 비유다. 이 사람은 이렇게 사용할 것이고, 저 사람은 저렇게 사용할 것이라고 작정하고 사람을 빚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은 주의 종과 사역자로서 정해진 채 이 땅에 보내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창조하실 때에, 이 땅에서 당신의 말씀을 대언하는 종이자, 당신의 능력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도록 하는 데에 사용하시려고 준비하시고 보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사역하는 사역들 중에는 하나님의 뜻과 의도에 따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빚으셨고 또한 이 땅에 보내셨는지를 파악을 하고서 사역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역자들은 이 세상의 모든 사역자들 가운데 약 1/3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역자들 중에 1/3은 자신이 사역자로 지음받았다는 것을 모른 채 사역하고 있고, 1/3은 자신이 사역자로 지음받았다고 믿고 그냥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이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사역자로 지음받았으며 그래서 이 땅에 보내어졌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사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이 땅에 범죄한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둔다면, 이 세상 임금인 마귀에게 속아서 죄짓다가 지옥에 떨어질 것이 뻔함으로, 이 땅의 사람들 중에 건질 자를 건지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특별한 사역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또한 그 일을 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떤 용도로 쓰여질 것인가 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소관이므로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하나님께 따지지는 말아야 한다. 다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빚어진 자신의 모습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된다.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자를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사도 바울은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길밖에 더이상 다른 방법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2023년 02월 24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15) 하나님은 촛대를 과연 누구에게로 옮기신다고 말씀하셨는가?(렘16:1~17:27)_2023-02-23(목)

https://youtu.be/6MtK2zAh5xQ [또는 https://tv.naver.com/v/33750838]

 

1.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12가지 단편 예언 가운데 7번째 예언은 어떤 것인가?

  예레미야서에는 본론부 앞부분에 12가지 단편 예언들이 배치되어 있다(2~25장). 그런데 그것들 중에서 제7예언은 렘16:1~17:27에 나오는 말씀이다. 여기에는 예레미야의 신변과 관련하여 세 가지 금지명령이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이 금지명령을 통해서 유다의 심판을 예고하신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3가지 하지 말아야 할 금지명령을 내리셨다. 그런데 이 모든 명령들은 임박한 종말을 앞두고 곧 남유다의 임박한 심판을 앞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한편 예레미야가 이 말씀을 받았을 때에는 남유다 제18대 여호야김(B.C.609~587)의 말기로서, 바벨론의 3차 침입 시기 직전인 듯 보인다(B.C.597년)

 

2.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신변에 관한 어떤 금지명령을 내려 임박한 심판을 예고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임박한 심판을 앞두고 예레미야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 3가지를 주문하셨다.

  첫째는 결혼하지 말며 자녀를 두지 말라고 하셨다(렘16:2).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 봤자 그들이 곧 험한 꼴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이 독한 병이나 칼과 기근으로 인하여 비참하게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 죽음을 보는 이가 있다고 할지라도 아무도 슬퍼해 줄 사람도 없고 땅에 묻어줄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칼과 기근에 수많은 사람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다 죽기에, 시체를 치워줄 자는 오직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들 뿐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초상집에 가지말고 그곳에서 그들을 위해 애곡하지 말라고 하셨다(렘16:5). 왜냐하면 그들의 슬픔은 이미 예고된 상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이 죽게 된 것은 자기들이 지은 죄값으로 인하여 마땅히 죽게 된 것이니 그것을 두고 슬퍼하지 말라는 것이다. 셋째는 잔치집에 들어가지 말며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지 말라고 하셨다(렘16:8). 왜냐하면 지금은 결혼잔치로 인해 기뻐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곧 신랑 신부의 소리가 성읍에서 그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와 같은 3가지 명령을 받아 순종하면서, 남유다에 심판이 임박했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알게 된다. 

 

3. 하나님께서는 왜 남유다와 예루살렘에 이 큰 재앙이 임하게 된다고 말씀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와 예루살렘에 큰 재앙이 임하게 되는 이유를 제7예언 가운데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그들이 하나님을 이미 떠났기 때문이라고 하셨다(렘16:11, 7:5,13). 그랬다. 남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은 이미 하나님을 저버린 지 오래된 상태였다. 곧 그들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만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렘17:13). 그들은 환난 때에 그들을 도울 수 없는 사람을 의지하고 있었다(렘17:5). 둘째, 그들이 그들의 조상처럼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렘16:11). 그들이 다른 신들을 따라서 그 신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에게 향을 피우며 전제를 드리고 과자를 구워 바치고 있었기 때문이다(렘16:10~13). 셋째, 그들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렘17:27). 그들은 자신의 영혼을 위하는 날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안식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면서,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고 있었으며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남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은 제1계명과 제2계명 그리고 제4계명에 불순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4.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촛대를 이제 누구에게로 옮기신다고 말씀하셨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붙들고 있었던 이스라엘을 뽑아서 버리시겠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으며, 이방신들을 섬기고 있고, 하나님의 날을 지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뽑아내 버리시고, 다른 사람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리에 심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누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일까? 그것은 땅끝에서 올 '이방 민족들'이다(렘16:19). 하나님께서는 이제 처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붙들어서 사용할 백성이 누군지를 말씀해 주셨다. 그들은 놀랍게도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바로 이방인들이었다. 

 

5. 장차 하나님께서 붙들어 쓰실 이방인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땅끝에서 어떤 민족들이 주님께 나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렘16:19).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놀랍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 주님 앞으로 나아와서 쓰임받는 사람들은 이방 민족들로서, 그들은 자기들이 이전까지 섬기고 있었던 신들이 얼마나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오직 유일하게 살아 계시고 만물의 주관자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 신약으로 치자면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님 앞으로 나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의 능력과 권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겠다고 하셨다(렘16:21). 다시 말해, 장차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해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요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여호와'라는 이름은 '스스로 계신 분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신다'는 뜻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불어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가 구원하러 오셨다', 혹은 '여호와는 구원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한 번 사람이나 어떤 민족을 쓰셨다고 해서 끝까지 그를 쓰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쓰시려고 선택하셨지만 인간이 거부하고 불순종한다면 계속해서 그를 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사역자를 찾으신다. 그런데 그러한 사역자는 자기들이 섬기고 있던 신은 확실히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 오직 여호와와 예수님만이 참 신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만을 목숨처럼 믿고 따르는 자들이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께 끝까지 쓰임받을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은 오직 우상이나 가짜 신을 버리고, 오직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지조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또 다른 당신의 사역자로 선택하시어 그를 사용하시는 것이다.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2023년 02월 23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14) 마지막 때에 임할 세 재앙과 한 가지 소망은 무엇인가?(렘14:1~15:21)_2023-02-22(수)

https://youtu.be/xaV3SftO2Kk [또는 https://tv.naver.com/v/33750834]

 

1. 예레미야 시대와 종말의 시대는 어떻게 닮았는가?

  예레미야 시대는 남유다 왕국이 종말로 치닫고 있던 마지막 시기였다. 그 시기는 남유다 16대 요시야왕 13년(B.C.627년)부터 17대 여호아하스, 18대 여호야김, 19대 여호야긴, 20대 시드기야왕 11년(B.C.586년)에 이르는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때는 이미 남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이 아주 가까이와 있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의 파괴도 역시 매우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런데 선지자로 오신 예수님 시대에도 예루살렘의 파괴가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한편 요한계시록에서도,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믿는 도시들이 파괴되며 또한 성전인 교회도 해를 입는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42달 동안의 성전 파괴 예언이다(계11:1~2). 그러므로 우리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외침을 들을 때에 그것이 그 시대를 향한 메시지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한 메시지라는 것을 자각하면서 들어야 한다. 

 

2. 남유다를 향한 12가지 예언들 중에서 예레미야 14~15장의 말씀은 어떠한 말씀인가?

  남유다를 향한 12가지 예언들(2~25장) 가운데, 렘14:1~15:21의 말씀은 '제6예언'에 속한다. '제6예언'은 남유다 18대인 여호야김(B.C.609~598)시대에 주어진 예언으로 보인다. 이 예언에는 남유다에 임한 가뭄 재앙과 이에 관련하여 예레미야가 3번에 걸쳐 드린 중보기도(렘14:7~9,13,19~22)가 나온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예레미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을 통해서 제시되고 있는 남유다 심판에 관한 말씀들이다. 

 

3. 남유다의 심판의 예고로서 주어진 가뭄 재앙을 지켜본 예레미야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응답하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남유다가 이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죄악이 가득 차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그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남유다의 땅에 가뭄을 내리신다. 그리고 진짜 가뭄이 찾아왔다. 그런데 그 가뭄은 남유다의 전국 성읍들과 비교적 가뭄 재앙에 잘 견디도록 설계되었다고 알려진 예루살렘 도시도 피해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남유다 전체가 다 가뭄 재앙에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식수로 사용할 물을 구하기가 어려웠으며, 심지어 들판에도 비가 내리지 않음으로, 동물들도 새끼를 낳았지만 그 새끼를 키우지 못함으로 인하여, 들판에 내버리고 있는 형국이 펼쳐지고 있었다(렘14:2~6). 그러자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시작한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남유다를 제발 버리지 말아 달라는 기도를 드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의 죄악을 너무 크다고 지적하시면서 남유다를 위해서 더 이상 중보기도를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기도해도 복을 내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유다의 거민들이 금식하며 부르짖을지라도 응답하지 아니할 것이며,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그것을 받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렘14:11~12). 그리고 심지어 구약의 중보기도자의 대표로 인정받고 있는 모세와 사무엘이 와서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렘15:1). 

  

4. 하나님께서는 왜 남유다에 대한 심판을 돌이키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일까? 그 이유를 제6예언(14:1~15:21)의 말씀만을 가지고 살펴보면,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남유다가 어그러진 길을 가고 있는데 그 가던 길을 도무지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렘14:10). 계속된 타락의 길에서 그들은 멈추지 않고 죄를 향해 직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둘째, 거짓선지자들이 일어나 백성들에게 거짓 예언을 계속하는데도, 백성들 역시 그 거짓 예언을 좋아하며 그것을 따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렘14:13~14). 셋째, 남유다 14대 므낫세왕(B.C.697~642)의 우상숭배의 죄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렘15:4). 다시 말해, 계속해서 차고 있던 남유다의 죄악이 남유다 14대 므낫세왕 때에 이미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지은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 내려지지 않는 한 그들의 죄악을 없앨 다른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5. 하나님께서 당시 남유다에게 내리실 3가지 재앙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한 가지 소망은 대체 무엇인가?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남유다에게 3가지 재앙을 내리시겠다고 했다. 그것은 칼(전쟁)과 기근(굶주림)과 전염병이었다(렘14:12,15,16,18, 15:2~3,9). 즉 젊은이들은 전쟁터에 나가서 죽고, 남아 있는 백성들은 기근과 굶주림으로 죽고, 또한 전염병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는지 그 시체를 치울 수 없는 지경이 될 것이므로, 공중의 새와 짐승들이 와서 죽은 사람의 사체를 뜯어먹을 것이라고 했다(렘15:2~3).

  그러나 한 가지 소망이 있는 것은 그 어간에도 예레미야의 외침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죽을 사람이라도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 살아날 사람은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요한계시록 6장에도 나온다. 예레미야 시대의 모습이 말세에 있을 종말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한 것이다. 왜냐하면 종말에 일어날 일들로서 감추어져 있는 두루마리의 기록을 어린양께서 열어 보이시자, 총 6가지 장면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중에 앞의 4가지 모습이 예레미야 때와 거의 똑같다. 즉 예레미야의 간절한 회개의 외침과 더불어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의 재앙이 남유다에 내려졌던 것처럼, 마지막 시대에는 4마리의 말이 함께 달릴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흰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의 출현이다. 그런데 이 말들 위에는 다 어떤 사람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탄 자의 모습을 보면, 흰말은 '복음 전파'를 보여 주는 것 같고, 붉은 말은 '전쟁'을, 검은 말은 '기근(굶주림)'을 그리고 청황색 말은 '전염병'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천국복음 전파 내지는 회개의 전파를 상징하는 흰말 탄 자의 활동과 더불어 거짓선지자들의 활동이 아주 난무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가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지도 아니했는데 거짓선지자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쏟아내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보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기근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남유다와 예루살렘에 평강을 줄 것이라고 했었다(렘14:13).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낸 선지자들이 아니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가 예언자임을 자처하여, 백성들에게 거짓 계시와 점술 그리고 헛된 꿈과 거짓 예언으로 백성들을 미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에는 뭐니 뭐니 해도 시대에 주어진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이 더욱 더 심해질 것을 예상하고, 참된 진리의 말씀을 듣고 경청하는 모습이 정말 필요하다고 하겠다(암8:11~12).

암8:11~1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2023년 02월 22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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