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05(금) 금요기도회

제목: 내 몸의 질병 어떻게 고칠 것인가(약5:14~16,마9:12)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rx0EvxlUpDE  [혹은 https://tv.naver.com/v/28421896 ]

 

1. 들어가며

  사람은 육체를 가진 존재다. 그래서 고장도 나고 아프기도 하고 지치기도 한다. 또한 우리 인간은 반드시 먹어야 산다. 먹지 않으면 체력이 고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사는 우리 인간과 다르다. 천사는 아프지도 않고 피곤해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육체를 가지지 않은 영물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가진 고달픔은 크다고 하겠다. 그중에서 가장 힘들고 안타까운 일은 사람은 자꾸 병이 든다는 것이다. 아마도 사람 중에 질병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병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간의 육체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고장이 나기도 하고, 유통기한이 짧아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몸 중에서 가장 약한 부분부터 병이 생긴다. 그런데 어떤 질병은 우리가 아무리 병원에 가서 손을 쓰고 약을 처방다고 치료해 봐도 별로 소용이 없거나 나아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병이 고질병이나 혹은 불치병이라는 판정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과연 어떻게 질병에 걸리는지 그 원인을 정확히 진단할 수 있고 그 처방책을 따라가다 보면 그 해결점이 나타나 보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의 몸에 있어서 잘 낫지 않는 원인 모를 질병을 어떻게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지를 성경 말씀에 입각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듣고 우리 모든 성도들은 육체가 건강해져서 주의 나라를 위해 마음껏 자신의 몸을 내어드릴 수 있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 사람이 질병에 걸리는 3가지 원인은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질병의 문제를 육체적인 것이나 정신적인 영역으로 국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영혼육으로 지어진 존재이기에 이 세 가지를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살전5:23). 육체가 아픈데 영은 괜찮다는 말은 틀릴 수가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야기 하겠지만 인간의 영혼육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만 잘못 되어도 병이 든다. 하지만 이것들 중에서 2~3가지가 복합적으로 서로 맞물려 병이 들기도 한다. 사도 바울도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이라고 했다(고전6:19). 우리의 육체와 영이 다 맞물려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질병에 걸리는 원인을 세 가지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하여 바른 처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 사람이 질병에 걸리는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여러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종합해 보면 딱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영적인 원인이고 또 하나는 정신적인 원인이며, 마지막 하나는 육체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영적인 원인부터 살펴보자.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악한 영이 공격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기 때문이다(요일3:8). 특히 최초의 사람이었던 아담이 지은 죄로 인해 뱀의 공격을 육체에 받게 된다(창3:14, 2:7). 그래서 병이 든다. 그러면 이때에는 어떻게 병을 해결할 수 있는가? 그것은 지은 죄를 회개하면 되는 것이다. 먼저는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하고 그래도 낫지 않으면 조상들이 지은 죄들까지도 같이 회개해야 한다.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악한 영들이 내게 역사하기 때문이다. 그럼 무슨 죄를 회개해야 하는가? 그것은 십계명을 어긴 죄를 회개해야 한다. 십계명을 어긴 죄를 회개하면 귀신이 떠나가도 병이 낫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잘 모르겠다면 본 교회에서 소개하고 있는 '회개기도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리고 이때에는 주변의 건강한 성도들이 아픈 자를 위해 중보 기도해 줄 필요가 있다. 그러면 훨씬 더 잘 낫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중보 기도가 강할수록 악한 영들이 더 잘 떠나가기 때문이요, 치유 천사가가 와서 병을 치료해 주기 때문이다(약5:14~16)

  둘째, 정신적인 원인을 살펴보자. 정신적인 원인이란 걱정 근심이나 스트레스로 인하여 무거운 짐에 눌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신적인 문제가 악한 영들에 의해 시작된 것이라면 죄를 회개하고, 정신적인 측면에서였다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덜 받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직업을 선택해도 자신이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하는 것이 좋다. 스트레스를 그만큼 덜 받기 때문이다.

  셋째, 마지막으로 육체적인 원인을 살펴보자. 이는 첫째로, 육체가 다쳐서 병이 들고, 고장이 나서 병이 들고, 과도한 사용으로 병이 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과도한 사용을 자제하고 적당한 일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둘째로, 운동부족으로 몸의 순환이 잘 안되면 병이 생긴다. 특히 피순환이 잘 되지 않으면 병이 들기 때문이다. 고로, 고혈압 당뇨병은 질병의 시작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때에는 피를 맑게 해 주는 청혈제를 복용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온 몸에 피가 잘 돌게 해야 한다. 그러면 병이 낫는다. 그리고 적당한 운동으로 몸의 순환이 잘 되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고 셋째로, 자율신경계의 이상으로도 병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율신경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원인 모를 질병에 시달린다. 그러므로 자율신경계의 흐름과 작동 원리를 배울 필요가 있다. 이것이 우리의 몸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영역이기도 하다. 

 

3. 자율신경계란 무엇이며 어떻게 면역을 담당하는가?

  우리 몸에는 사실 자율신경계가 있어서 그것에 의해서 우리 몸이 보존되고 있으며 또한 고장이 나면 즉시 복구(치료)가 일어난다. 이러한 원리를 잘 알지 못하면 당처에만 처방을 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병을 고치기가 어렵다. 오늘날에는 병원에 가 보면 분야가 너무나 세분화되어서 종합적으로 진찰을 받기가 어렵다. 각 방면에 전문가는 많지만 종합적으로 진단해 주고 처방해 주는 데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두통이 왔다고 치자. 왜 머리가 아플까? 뇌 자체의 혈관에 문제가 있어서 머리가 아플 수 있다. 또한 거기에 암덩어리가 생기면 아프다. 그러나 축농증이 있어도 머리가 아프며, 치통이 있어도 머리가 아프기도 한다. 머리가 아픈 요인은 이처럼 다양하다. 그러니 뇌검사만 한다고 해서 두통이 치료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한다. 육체의 질병을 진단할 때에 반드시 자율신경계를 체크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왜냐하면 자율신경계가 망가지면 오장육부에 병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율신경계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몸이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을 하도록 조절하는 신경계를 가리키는데, 그것은 바로 척수신경이 담당하고 있다. 사실 우리 몸의 90%가 자율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심장이 뛰고, 잠을 잘 때도 허파는 활동을 한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내가 명령하지 않아도 위장은 소화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다 자율신경이다. 고로 뇌신경을 제외한 자율신경이 잘 작동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자율신경에는 교감신경이 있고 부교감신경이 있는데, 부교감신경은 목덜미와 꼬리뼈 부근에 있으며, 등뼈와 허리뼈 근방에는 교감신경이 자리잡고 있다. 둘이 쌍방으로 서로 교감하면서 일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깜짝 놀라게 되었다고 치자. 그러면 동공은 확대될 것이며, 숨은 빨리 쉬려하고, 심장 박동은 빨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위장이 위축되며, 쓸개즙이나 췌장액 등과 같은 소화액은 잘 분비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방광 수축이 빨라져 소변이 마려울 것이다. 이런 것들을 바로 교감신경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오장육부에 병이 생기는가? 그것은 척수신경줄이 오장육부와 끊어져 있어 신호가 잘 전달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문제가 생긴 정보를 척수신경에 전달해 주지 못하고 그러면 아픈 데가 있는데도 고치지를 못하니 병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호가 차단된 신경줄을 연결해 주는 것이 급선무다. 그렇다면 왜 척수신경줄이 오장육부에 차단되는지 아는가? 그것은 2가지 원인 때문이다. 하나는 신경줄 근방에 있는 근육이 경직되어서 그렇고, 둘째는 척추뼈가 뒤틀려서 그렇다. 그러면 이것들이 신경다발을 누르고 또한 신경줄을 누르면 신호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 왜 근육이 경직되는가? 그것은 스트레스나 심한 충격으로 등에 있는 근육이 움츠려들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몸의 면역은 피와 척수자율신경이 담당하고 있는데, 이 둘 중의 하나가 문제가 생기면 병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중에서 등이 굳어지면 오장육부에 문제가 생긴 것을 척수신경이 알지 못하고, 척수신경도 반응하지 못해 병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소화를 잘못 시키는 사람에게 위장만 계속 치료해서는 병이 잘 낫지 않는 것이다. 눌린 척수신경을 펴서 서로 연결시켜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피 면역보다는 등 면역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등이 굳어지게 하면 안 된다. 등에 척수신경이 다발로 내려와 있기 때문이다.

 

4. 어떻게 하면 자율신경계가 제대로 작동하게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자율신경계가 제대로 작동하게 할 수 있는가? 이것은 피 면역과 맞물려서 우리 몸에 매우 중요한 등 면역이 어떻게 잘 작동하게 하는가에 달려있다. 어찌하든지 등에 있는 척수신경줄들이 오장육부와 잘 연결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도움을 주는 방법들이 있다면 다음과 같다. 이것들 중의 가장 큰 핵심은 등에 있다. 

  첫째, 등을 반드시 쭉 펴야 한다. 가슴을 내밀고 허리를 펴서 바른 자세를 해야 한다. 자신의 목부터 등까지를 꾸부정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근육이 경직되고 신경줄이 눌리기 때문이다. 가슴을 펴라. 이것이 등 면역의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다. 그리고 이어서 척추를 교정해 주어야 한다. 소위 짝다리를 한다거나 다리를 꼬고 앉으면 안된다. 그러면 골반뼈가 틀어지고 그러면 척추뼈가 S자 모양으로 휘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부분의 신경줄이 눌리게 된다. 그러므로 일 년에 몇 번쯤은 X레이를 찍어보고 등뼈가 뒤틀려 있으면 척추교정을 해 주어야 한다. 등이 굳어 있거나 등뼈가 삐뚤어지면 병이 온다는 것을 명심하라. 때로는 온천욕 같은 것을 통해 등을 풀어 주고, 온열치료기 등으로 등뼈를 교정하면 많은 도움이 된다.  

  둘째, 호르몬 분비가 제대로 분비되도록 유산균을 먹어주라는 것이다. 자율신경계의 면역은 호르몬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호르몬 분비가 제대로 안 되어도 병이 든다. 예를 들어 부신피질 호르몬이 적거나 없어지면 체력이 고갈되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거나 의지력이 약해 멘탈이 붕괴된다. 그러므로 호르몬 분비가 잘 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몸의 호르몬은 장내의 유산균이 관장하고 있다는 것이 최근에 밝혀졌다. 그러므로 유산균을 먹어 소장과 대장까지 살아가는 유산균을 먹어주면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된다. 결국 면역체계가 잘 돌아가게 하려면 피속의 백혈구만 주의할 것이 아니라 자율신경계가 잘 돌아가도록 해야 하고 이 신경계가 잘 돌아가도록 돕는 호르몬 분비를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은 장내 유산균이 담당하고 있으므로 아침마다 요구르트에 견과류를 넣어 함께 먹어주거나, 호르몬이 더 필요하신 분은 캡술로 만들어진 유산균을 사서 복용하면 된다.

  셋째, 50대가 넘어가면 영양을 보충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피곤을 많이 느끼면 간에 좋은 음식이나 영양제를 먹어주고, 비타민C를 복용해 주는 것이 좋다. 눈이 침침해질 때 눈에 좋은 영양제를 먹어주어야 한다. 특히 비타민D가 부족하면 호르몬 분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므로, 비타민D 영양제를 먹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영양제는 체내에 흡수가 잘 되지 않으므로, 내과에 가서 비타민D 주사를 3개월에 한 번씩 3번을 맞아주면 해결이 된다. 체내 주사는 100% 흡수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호르몬 분비는 근육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우리 몸의 근육은 귀 뒤쪽에서 시작하여 허벅지가 내려온다. 그러므로 귀 뒤쪽 아래의 목 옆 부분과 허벅지 중에서 사타구니 안쪽 부분에 아로마향의 오일이나 바세린을 발라 주면 호르몬 분비에 많은 도움이 된다. 

  넷째,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분산하라는 것이다. 인간이 무엇인가에 집중하면 얼마나 많은 체력이 소모되는지 모른다. 그런데 체력이 약해져 그것이 고갈되면 다시 그것을 채워 넣는데 많은 시간이 든다. 적어도 3달 이상을 보충해야 정상적인 몸으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체력이 고갈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분산시켜 나눠서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쉬었다가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을 가급적 줄이는 것이 좋다. 나이가 들수록 쉬어가면서 일을 해야 한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염증 제거를 위해 울금을 먹으라는 것이다. 우리 몸에 염증이 생기면 온 신경이 그리로 쓰인다. 그러므로 염증을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병에 대한 치료가 그만큼 느리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선 몸의 염증을 제거해 주는 것이 좋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은 '울금' 복용이다. 울금의 효능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커큐민'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어 항산화와 항염작용을 한다. 암을 억제하고, 우울증이 사라지게 한다. 대사장애를 개선해 주고 혈액순환을 돕는다. 소화를 개선시키고 살이 빠지게 한다. 혈압을 낮추고 치매를 예방해 준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염증을 제거해 준다는 것이다. 하루에 세 번 티스푼으로 한 스푼씩 복용하면 된다. 가루가 먹기 힘들다면 환으로 된 것도 있으니 환으로 20알씩을 먹으면 된다. 복용량은 먹어서 설사를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설사를 하면 복용량을 줄이고 설사를 하지 않으면 복용량을 늘리면 된다. 한 달 먹으면 어느 정도 잡히고, 세 달 먹으면 완전히 잡힌다. 

 

5. 나오며

  우리는 신앙인들로서 모든 질병을 하나의 원인으로만 판단해서는 아니 된다. 병을 고치려면 영혼육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우선 영적인 원인을 살펴보고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정신적인 영역에서는 많은 일들을 분산시키고 쉬어가면서 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육체의 영역이다. 이때에는 육체의 과도한 사용을 줄이고 운동을 하여 혈액순환을 도우며 그리고 자율신경계가 잘 작동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의학계에서는 자율신경계를 잘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몸은 아픈데 치유가 잘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척수신경줄이 오장육부와 단절되어 신호를 서로 주고받지 못했던 것이다. 특별히 자율신경계의 작동은 등의 척추뼈에 있는 척수신경이 담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등이 굳어지거나 등뼈가 틀어져 있으면 모든 자율신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등을 펴야 한다. 등을 펴서 걷고 등을 펴서 의자에 앉고 등을 펴서 일하면 모든 것이 정상이 된다. 그리고 등뼈가 틀어져 있으면 교정을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따른 보조 방법들을 잘 활용하면 된다. 그러면 내 몸의 건강을 내가 지킬 수 있고 잘 낫지 않은 병들도 고칠 수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지금부터 시작해 보라. 그러면 이유 없이 아픈 증상이나 질병들이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잠을 푹 자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밥도 맛있게 될 것이다. 일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자신의 건강한 몸으로 주의 일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이 쓰시겠다고 할 때 건강한 몸을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이니까 소중하지 아니한가? 몸을 지키고 몸을 건강하게 하여 주님께 드리자.

 

20222년 08월 05일(금)

정병진목사

 

회개할 때에 최대의 적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꼭 이렇게까지 회개해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도 있을 것이고, 가족이나 지인들의 반대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회개하다보면 같은 죄를 계속해서 반복해야 하니 지루함과 답답함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많이 졸립게 된다는 것이다. 하품이 많이 나온다. 왜 회개하려고 하면 이렇게 졸리운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은 회개할 때에 부딪히는 실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2022-05-06(금) 금요기도회 제1부

제목: [우상숭배죄회개(15)] 회개할 때 지루함과 졸음을 없애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느1:5~7)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aEEikpWhybM  [혹은 https://tv.naver.com/v/26808150 ]

 

1. 들어가며

  우리는 왜 회개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하는 데에는 2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그것이 구원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회개와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막1:15). 이때 처음으로 하는 회개는 '회심으로서의 회개'라고 할 수 있으며(눅15:18~20), 그 뒤에 짓는 자범죄를 회개할 때에는 '자백하는 회개'라고 말할 수 있다(요일1:9). 온 몸을 씻었으면 발만 씻으면 되기 때문이다(요13:10). 그리고 또 하나는 죄에 대한 벌(저주)로부터 해방을 받으려면 회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부분 우상 숭배의 죄(1~2계명 어긴 죄)에 해당하며, 그것은 자신이 지은 우상 숭배의 죄라기보다는 조상들이 지은 우상 숭배의 죄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부분의 회개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리하여 이러한 죄를 회개하는 자를 이단이니 삼단이니 정죄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는 실재하고 있으며,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는 자는 저주로부터 해방되는 회개에 대해 결코 비방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죄의 벌(저주)로부터 해방되는 회개를 할 때에 나타나는 증상 중에서 '지루함과 답답함' 그리고 '졸음'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아무쪼록 이러한 방법들이 진실로 회개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작지만 길잡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회개의 최대의 적(敵)은 무엇인가?

  회개를 하려고 하는 자에 있어서 가장 큰 적(敵)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루함'도 아니며, '졸음'도 아니다. 그것은 '의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의심'에다가 조금 더 살을 붙다면 회개 자체를 '거부하는 것(반대)'이다. 즉 회개에 대한 거부와 반대 때문에 사람들은 회개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회개하려고 할 때 가장 큰 반대는 이미 성도라고 불리는 자들의 반대가 제일 크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반복적으로 그리고 내가 짓지도 아니한 죄를 회개할 때마다 늘 자신의 마음 가운데 '내가 이렇게 회개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회개의 바른 길일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며, '내가 이렇게 회개한다 정말 내 조상들이 지은 죄가 용서되며, 내 속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이 나가는 것일까?'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의 최대의 적은 '의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반대'는 우리의 의심을 더욱 더 확정하게 만들어 주는 나쁜 조미료와 같은 것으로서, 믿음 좋다고 일컬어지는 분들이 조상의 죄를 회개하는 것에 대해 잘못 되었다고 말한다거나 그것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면 금방 그 말에 동조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회개의 두 번째, 세 번째의 적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지루함과 답답함' 그리고 '졸음'이라고 할 수 있다. 회개 기도문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기도하다 보면 같은 기도 제목을 가지고 또 기도해야 한다는 지루함과 답답함이 자기 앞에서 늘 서성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할 때 반드시 처리해야 할 것은 '지루함과 답답함'이다. 그리고 이어서 회개할 때 자꾸 터져나오는 '졸음'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 하는 것이다. 

 

3. 회개의 세 번째 적인 '졸음'을 이기는 방법은 무엇인가?

  회개의 최대의 적(敵)부터 시작하여 두 번째 적을 다루고 그리고 세 번째 적을 다루어야 하겠지만, 두 번째 적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 먼저 짧은 세 번째 적으로서 '졸음'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회개할 때면 왜 졸음이 자꾸 그리고 마구 쏟아지는가? 왜 하품이 절로 막 나오는가? 그리고 회개하다 보면 졸려서 내가 과연 어디까지 회개했는지를 헷갈릴 때가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회개하다가 졸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회개할 때에 졸리는 현상은 왜 발생하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은 회개할 때 졸리고 하품나오는 현상은 귀신이 떠날 때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해답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회개할 때 졸립게 만들고 하품 나오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귀신'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도 오랜 시간 동안 회개하다 보면 졸리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졸립다는 것을 무조건 귀신 탓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지만 십중팔 졸리는 이유는 자신의 피곤함 때문만이 아니라 기 속에 들어 있는 귀신들의 방해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성도들이 회개하면 이 귀신들이 자기가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졸립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할 때에 졸립다는 것이 느껴지시는 분들은 자기 안에 악한 영들이 아주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을 우선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회개할 때 나타나는 졸림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실제적으로 기도하다가 이런 경험을 하는 자는 다음과 같은 3가지 방법을 적용해 보는 것을 권해 드린다. 첫째, 졸립게 되면 즉시 잠깐이지만 아예 휴식을 취해 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체의 피로와 함께 졸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차라리 한 10분에서 30분 정도를 맘 편히 쉬는 것이다. 그리고 깨어나서 정신차리고 회개를 하는 것이다. 둘째는 걸어 다니면서, 돌아다니면서 회개를 하라는 것이다. 회개 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하다 보면 읽었던 줄을 또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다. 눈이 스스로 감겨서 어디를 읽고 있었는지를 갈리는 것이다. 그때에는 더 이상 앉아서 회개하지 말고 일어나서 걸 다니면서도 회개하기를 권해 드린다. 발 움직이고 걸어 다서 회개하면 졸리는 상태가 거의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졸리운 기운이 그만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다. 셋째는 똑같은 톤으로 기도문을 읽거나 회개하지 말고, 큰 소리를 내면서 회개하되, 죄지은 인물이 나올 때마다 다른 음색으로 바꾸어 회개하거나, 손동작이나 발동을 하면서 회개하는 것이다. 그러면 졸리움을 이기면서 회개하는 데에 많이 도움이 될 것이다. 

 

4. 회개할 때 지루함과 답답함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 회개의 최대의 적은 역시 '의심'과 주변의 믿는 자들의 '반대' 때문이다. 이때 주변의 믿는 자들이 회개는 하되 굳이 조상의 죄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면 주춤하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이미 저주를 다 담당하셨으니(갈3:13) 우리가 받을 저주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는다고 말하면 진짜로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귀신들도 거들어 왜 자꾸 조상들이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하느냐면서 의심을 불러 일으키고 또한 주변의 믿는 자들이 반대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보면 회개를 중단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알 것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는 것은 맞는 말씀이다(갈3:13).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원칙 같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가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진실이자 사실이며 꼭 그렇게 되는 공식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진술이 사실이 되려면 중간에 밟아야 할 과정이 있는 것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수학 공식이 하나 있다고 하자. 그 공식은 어떤 조건에서든지 그 안에 숫자 값을 대입하기만 하면 항상 똑같은 결과를 산출하게 된다. 그런데 공식을 알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답을 얻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공식에다가 자기 자신을 집어넣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집어넣을 때에 비로소 공식값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집어넣지도 않은 사람이 이미 공식에 따라 답이 나왔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치 배가 고파 있는데, 앞에 놓여 있는 밥을 보면서, 이것을 먹으면 배가 부르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두고 나는 이미 배부르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일단 숟가락을 들어야 배가 부르게 되는 것이지 생각만 하고 원칙만을 되뇌인다고 해서 배가 부르지는 않는 것이다. 죄사함이 이루어지려면 우리의 회개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회개할 때에 대부분의 성도들은 똑같은 죄목들을 계속해서 읽고 또 읽어야 한다. 그러므로 회개 기도문에 나오는 죄목들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졸립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잘못된 사고 내지는 사탄이 우리를 회개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해 작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이겨내는 자가 결국 회개도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5. 회개할 때 지루함과 답답함을 이기게 해 주는 5가지 실제적인 처방전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똑같은 죄를 반복하며 회개하는 것이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때에는 어떤 조치를 취하면 회개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가? 사실 이 문제에 대하여 정답 따로 있지는 않다. 저마다 회개하면서 자기만의 특별한 노하우를 발견하고서 그대로 회개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회개하는 습관을 제대로 바꾸려면 최소 약 1년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회개하면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았을 때 효과적이었다고 생각되는 5가지 실례를 함께 나누려고 한다. 

  첫째, 처음에는 무조건 '회개 기도문'에 나오는 한 가지 죄의 제목을 그대로 쭉 읽으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사'의 죄라고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이 부분을 그대로 읽어 내려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나열해 둔 죄목을 읽으 자기와 자신의 부모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를 다시 마음에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둘째, '회개 기문' 책을 읽을 때에 죄목에 따라 이미 자신이 지었던 죄들이 떠오르게 되면 그때에는 회개 기도문 대로 기도하는 것을 잠시 중단한 채, 그 죄를 통회하면서 회개하는 것이다. 혹은 그때 읽으면서 기억나는 죄가 있는 대목에 밑줄을 그어 놓는 것이다. 그리고 다 읽은 후에 그 밑줄 그어진 죄를 놓고 깊이 회개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직접 경험했거나 자신이 직접 보았던 죄를 중심으로 회개해야 통회 자복하는 마음이 더 생기게 된다. 

  셋째, '우상 숭배 회개 기도문' 책으로 회개를 할 경우에는 한 가지 죄목에 대해 자기 조상의 세대의 수만큼 회개하는 것이다. 그전에는 회개 기도문을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회개했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자기의 조상이 지은 우상 숭배의 4가지 죄목을 가지고 하나씩 하나씩 회개하되, 각 대마다 끊어서 한 번씩 처음부터 끝까지 회개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조상의 시조때까지 회개를 하는 것이다. 자기의 시조가 35대라면 35대가 지은 죄까지 35번을 회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회개하는 것은 많은 시간을 요구한다. 왜하면 한 세대가 지은 죄에 따라 그들이 지었던 죄의 내용들을 반복적으로 회개하다 보 회개했던 죄를 또 반복해야 하는 지루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대 부모의 죄부터 회개하기 시작하여, 5대까지 회개하고, 또 10대까지 나누어서 회개하고, 또 20대 30대까지 회개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회개할 수 있다. 그리고 옆에 '회개 기도표'를 놓고 기록하면서 회개하면 회개의 진척도를 볼 수 있어 더 낫다. 참고로, 회개했으면 반드시 '십자가 세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회개하는 것은 내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이 떠날 준비를 시켜 주는 것이요, 십자가를 세우는 것은 그것들이 떠나가도록 명령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넷째, 우상 숭배 회개 기도문을 가지고 회개할 경우에는 각 세대의 조상의 이름과 그의 부인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회개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 조상 3대의 증조할아버지 할머니의 성함이 '정만숙'과 '김상문의 딸 김해 김씨'라고 하면,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친가 3대의 할아버지 정만숙과 그의 부인 김상문의 딸 김해 김씨가 무지하고 무식하여..."이런 식으로 회개를 하는 것이다. 4개의 우상 숭배의 죄에 최소 7번 이상씩 이름을 넣을 수 있도록 '우상 숭배 회개 기도문'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기 조상들의 이름을 기억하면서 회개하게 되고, 그 조상들의 부인들의 이름과 가문까지 기도하게 되기 때문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 즉 그냥 "친가 3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무지하고 무식하여..."라고 기도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영이 잘 빠져나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몸속에 들어 있는 수천 수만의 악한 영들이 지금 누구 죄를 회개하고 있는지 서로에게 묻다가 "바로 너야"라고 지적해 주기 때문에, 그 세대에 들어온 악한 영이 그때 빠져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어느 선조 때에 들어온 영인지를 귀신들도 다 듣고 있기 때문에 누가 떠나야 하는지를 그들도 알고 떠나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 회개 기도할 때 하나님이 보여 주신 환상을 통해 더욱더 구체적으로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회개를 하게 되면 기도할 때에 그 세대에 지은 죄가 환상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그러면 그 죄를 놓고 회개하면 더욱더 효과적으로 회개할 수가 있는 것이다. 환상과 꿈은 하나님의 간접적인 계시의 통로이기 때문에, 이것을 회개에 활용하고 적용하는 것도 좋은 것이다. 물론 환상이나 꿈에는 유의미한 것이 아닌 것도 들어 있다. 하지만 진실로 회개하면서 가다 보면 점차 유의미한 환상과 꿈이 나타난다. 사실 요셉도 꿈는 자였고, 다니엘도 꿈꾸는 자였지 않았는가? 그렇다. 깨끗하고 진실한 성도들이 기도하다가 받은 환상 기적은 우리를 더 전문적으로 회개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가져다 줄 것이다. 

 

6. 나오며

  회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수적이다. 회개없이는 천국도 못 들어가고, 저주(죄에 대한 벌)로부터도 빠져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그리스도인들이 될 때에 회심의 회개를 하며, 또한 자기가 지은 자범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회개를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자기의 조상들이 지은 죄까지 회개해야 하는 데에 나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첫째로 그것은 내가 짓지 아니한 죄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요, 둘째는 조상들이 지은 죄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적인 실상은 다르다. 십계명의 말씀에 조상들이 지은 우상 숭배의 죄는 3~4대까지 벌하겠다고 주님이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출20:5). 그 벌이 무엇인지를 영으로 살펴보니, 악한 영들이 자기의 몸속에 들어오는 것이요, 자기가 죽으면 그 영들이 자기의 후손에게 내려가는 것이었다. 특히 엄마의 모태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악한 영들이 치고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악한 영이 들어 있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오직 예수님만 예외이시다). 이것을 두고 아담의 원죄가 유전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자기의 죄 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죄를 다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우상 숭배의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온갖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악한 영들은 저주받은 영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개할 때에는 죄를 지을 때마다 한 마리의 영들이 들어온 것이니, 회개할 때에도 나와 내 조상들이 지은 죄의 숫자만큼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세대마다 각각 따로 따로 한 번씩 회개를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것이다(물론 시간은 훨씬 더 많이 들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기 생각에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할 것이고, 믿는 가족들과 지인들의 반대도 매우 심할 것이다. 그리고 지루함과 답답함과 그리고 졸음과의 싸움도 해야 한다. 하지만 해 보라. 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회개하여 5년, 10년, 30년을 회개했다고 쳐보자, 하늘은 투명해질 것이다. 내 속은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해져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내 자식과 손자에게 물려줄 악한 영들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오, 주님, 우리에게도 그러한 날이 속히 오게 하여 주소서!!!"

 

2022년 05월 06일(금)

정병진목사

 

세속적인 삶은 결국 우리가 죽은 후에 우리를 새 예루살렘 성밖에 살게 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가 생명책에서 이미 기록된 자기의 이름이 지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세속적인 삶에서 떠나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사도 바울은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야고보는 과연 어떤 방법을 제시했을까? 여기 정말 놀라운 방법이 지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2022-04-27(수) 수요기도회

제목: 야고보서강해(05) 세속적인 삶에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법(약4:1~17)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JolIrNDz5_s [혹은 https://tv.naver.com/v/26518760 ]

 

1. 들어가며

  야고보서는 교리서가 아니다. 야고보서는 자신의 삶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지를 알려 주는 일종의 윤리 지침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야고보서는 산상수훈(마5~7장)과 많이 닮아 있다. 왜냐하면 산상수훈은 천국 백성의 윤리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야고보의 윤리 지침은 사실 야고보가 익히 들어서 자신의 삶에 배어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 그는 대체 누구에게서 산상수훈과 같은 말씀을 들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를 지도했던 베드로에게서 들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베드로전서와 야고보서는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약4:6,10, 벧전5:5~10). 그렇다면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는 로마 치하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대체 무엇을 편지하였던 것일까?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지침을 내린 것인가? 오늘은 야고보서 강해 5번째 시간으로서, 야고보서 4장을 다루고자 한다. 야고보서 4장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짝하는 삶의 원인이 무엇이며, 아울러 하나님의 자녀라면 과연 어떻게 생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삶인지를 기록하고 있다(약4:1~12).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돈을 벌며 살기를 원하는 자의 최후가 어떠한지와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약4:13~17). 이제 야고보가 성령으로 기록한 야고보서 4장의 말씀을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2.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모든 싸움과 다툼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야고보는 야고보서 3장 후반부에서 위로부터 난 지혜와 땅에 속한 지혜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위로부터 난 지혜를 사모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약3:13~18). 그리고 이제 4장에 들어와서 세상 욕망에 대한 경계와 아울러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 합당한 자세에 대해 교훈한다(약4:1~12). 그리고 서두를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싸움과 다툼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질문한다(1절).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람 속의 내부에 있는 '정욕(헬라어, '헤도네')이라고 말한다(1절). 그것은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것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싸움과 다툼을 하게 되는 원인은 바로 정욕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이것 때문에 평생을 상대방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다투고 싸우게 될 것이다(2절).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한다. 이것을 그냥 놔 둔다면, 인간은 계속해서 그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야고보는 그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성령을 통하여 영적 순결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5절). 

 

3.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순결을 지켜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죄악된 본성이 가득한 자기 자신 곧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올라오는 그 욕망을 제어한 채 성령의 음성을 좇아 살아갈 수 없는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야고보는 2가지를 먼저 언급한다. 첫째, 인간이 욕심을 내지만 얻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먼저 언급한다(2~3절). 그것은 2가지 때문이라는 것이다. 첫째로 하나님께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2절하). 생각해 보라. 세상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그 욕심을 이루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겠는가? 그러므로 욕심 자체가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것이므로 사람은 그것을 이뤄 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하나님께 구하되 정욕으로 쓰려고 악한 동기에서 구하기 때문에 욕심을 내지만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3절). 자신의 정욕의 필요를 따라 구하는 악한 동기를 하나님께서 모르실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가 과연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구하는 기도인지 아니면 자신의 세상적인 욕심을 따라 구하는 것인지를 하나님이 모르실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몹시 바라지만 그것이 세상적인 욕망이기 때문에 구하지 않아서 받을 수가 없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 구한다고 할지라도 그 내용이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그릇된 동기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는데, 사람은 도리어 교만할 뿐만 아니라 교만을 불러 일으키는 마귀를 대적하지도 않으며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6~8절). 야고보의 편지는 일종의 윤리 지침서와 같다고 서두에서 말씀드렸다. 그러므로 야고보가 말하는 있는 바는 산상수훈과 비슷하며, 베드로전서와도 비슷하다. 그리고 구약 성경을 언급한다면 토라(율법서)와 잠언서를 말하고 있다. 야고보는 그리스도의 윤리의 기본 강령을 율법의 십계명에서 따온다. 그리고 각각의 내용들은 잠언의 말씀을 인용한다. 특히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 곧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그가 교만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한다(6절, 잠3:34). 교만이란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오직 자기 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못하게 하며, 자기가 최종 권위가 되고 싶어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의 권위마저 업신여기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그 마음을 주는 사탄 마귀의 지배하에 일평생 매여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지 못하며 세상적인 욕심을 채우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 결과 서로 싸우고 다투며, 미워하며 시기하는 것이다(2절). 

 

4. 하나님을 향하여 합당한 생활을 하기 위해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힘써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어서 야고보는 하나님을 향하여 합당한 삶을 위해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언급한다. 그리고 그것이 없이는 육체의 소욕을 이기지 못하며, 결국 성령의 소욕도 따라갈 수 없다고 언급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해답은 바로 9절에 나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회개'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지금 이러한 문제를 놓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의 웃음이 결국에는 애통으로 변할 날이 올 것이며, 우리의 즐거움은 근심으로 바뀔 날이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9절). 그렇다. 우리가 육체의 정욕을 이기고 성령의 음성을 쫓아 살아가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수적인 것이다. 사실 이것을 깨닫기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니, 이러한 영적인 비밀을 깨닫지도 못한 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문제에 묶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오늘도 그냥 세상과 짝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두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하는 상태로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음녀와 음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이런 자는 결국 진실한 성도들이 휴거받을 때에 들림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최종의 날까지 남겨져서 주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더러운 육체의 정욕을 이길 힘은 오직 회개에서 나오는 것이다. 

 

5. 사람 속에서 나오는 더러운 정욕을 이기는 회개의 영적 비밀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사람 속에서 나오는 더러운 정욕을 이기는 회개의 영적 비밀은 무엇인가? 그것은 영안을 열어서 인간의 내부에 있는 죄된 본성을 지켜보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신 적이 있다. 그것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속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인간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막7:15~16). 예수께서는 이때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셨다. 그것은 바로 12가지라고 하셨다(막7:20~23). 

막7:20~23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의견들)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무분별)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그렇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모든 것이 사람의 속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12가지 항목을 영적으로 분석해 보면, 전부다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들(뱀들)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음란하게 되는 것은 사람의 육체 속에 음란의 영이 있기 때문이요, 사람이 탐욕을 부리는 것은 자기 육체 속에 탐욕의 영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어도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이러한 악한 영들을 내보내지 않는다면 그는 여전히 죄악된 본성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는 훈련을 하면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날마다 영성 운동을 하거나, 기도원이나 수도원에 틀어박혀 있지 않는 한 이러한 훈련은 지속적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이 세상과 접촉하며 살지 아니할 수 없고, 또한 이 세상과 접촉하다 보면 세상의 것이 욕심나지 아니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 속에 악한 영을 계속 내버려둔 채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살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적합한 다른 방법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회개하여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들을 아예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문제는 과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영적인 비밀을 알고 회개에 집중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을 때에 이미 다 죄용서를 받았다고 믿기 때문에 무슨 죄를 회개해야 하느냐며 의문을 던진다. 그러나 그 문제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에 자기 엄마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이미 이러한 악한 영들의 공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어난 모든 아기의 육체 속에는 이미 더러운 영들이 가득 들어 있다. 그러므로 태어나면서부터 인간은 죄악된 본성을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내 육체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18~20)"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렇다. 내 속에 거하는 죄된 본성이 문제인데, 바로 이것의 실체가 바로 악한 영들(뱀들)이었던 것이다. 그럼 왜 내가 범죄하지 않았는데도 이러한 영들이 내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인가? 그것은 조상들이 지은 우상 숭배의 죄 때문에 조상들의 육체 속에 악한 영들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상들이 회개하지 않고 죽었을 때에 그 악한 영들이 그의 자손에게 내려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십계명에 나와 있다(출20:5). 그러므로 내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내 조상들과 부모 속에 들어 있던 영이 내 육체 속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들 때문에 거기에 내가 지은 죄가 더해져서 점점 더 악한 영들이 내 몸에 쌓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들을 내보기 위해서는 조상들의 우상 숭배의 죄들을 회개하고 내가 지은 죄를 날마다 자백함으로 회개해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평생 죄된 본성을 정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회개함으로 이러한 영들을 밖에 있는 것부터 한 겹씩 떼어 내면 언젠가는 이 영들을 다 내보낼 날이 오고야 말텐데, 처음부터 아예 이러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다. 회개해 보라. 직접 해 보면 이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를 알게 될 것이다. 

 

6. 왜 그리스도인들은 형제를 비방하거나 판단해서는 아니 되는가?

  이처럼 야고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윤리를 먼저 말한다(6~10절). 그것은 교만한 생각을 버리고 이것을 추종케 하는 마귀를 버리고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속에 들어 있는 죄된 본성을 이기기 위해서는 철저하고도 즉각적인 회개를 해야 한다고 했다(9절). 그러고 나서 야고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윤리에 대해 언급한다(11~12절). 그것은 자신의 형제들을 함부로 비방하거나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 모두는 율법을 제정자도 아니며 율법의 심판자(재판관)도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형제 모두가 율법의 준행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1절). 오직 형제의 잘못됨을 판단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사람을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시기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12절). 그렇다. 사람이 죄된 본성 곧 자기 육체 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들을 제어할 때에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꺼내려는 마음보다는 자기 속에 들어 있는 들보를 꺼내는 일을 먼저 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남의 육체 속에 들어 있는 죄된 본성은 사실 그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 들어와 있는 악한 영들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가지고 그 사람을 평가해서는 아니 된다. 그 원인은 자기 뿐만 아니라 자기 조상들의 죄로 인하여 들어온 악한 영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 회개하여 내 속에 들어 있는 악한 영들을 뽑아내는 데에 중점을 두라. 그것이 바로 성도의 올바른 자세인 것이다. 
 

7. 세상의 물질을 얻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는 것은 무조건 나쁜 일인가?

  이제 마지막으로 야고보는 그리스도인들의 물질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13~17절). 그리스도인들이 물질을 얻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는 것은 무조건 잘못된 일인가 아니면 그것은 허용되는 일인가를 말한다. 그런데 야고보서의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이 부분을 읽지 못한다면, 돈을 벌기 위해 시간과 장소와 목적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잘못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고 말하는 자들을 야고보가 책망하고 있기 때문이다(13절).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아예 돈 벌 계획을 세우지도 말아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야고보의 권면의 말씀은 그것이 아니다. 돈을 벌려고 해도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설정해 놓고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자신의 육체의 이익만을 위하여 돈 벌 계획을 세워 놓고 일을 추진한다면 그것이 어느 날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자신이 일평생 애써서 모아 둔 모든 물질이 하루 아침에 안개처럼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14절). 그러므로 우리가 물질을 벌어들일 계획을 세운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어디에 쓸 목적으로 계획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는 것으로 판가름 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중심에 바르지 못한 것 곧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욕심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돈을 벌어들일 계획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뜻과 부합되는 삶이라면 그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옳다고 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모든 직업을 다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님의 뜻이라면 우리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행할 것입니다(16절)"라고 말이다. 그런데 사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어떻게 사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행하지 않을 때가 참 많다. 다시 말해, 자기가 돈을 버는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데에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렇게 행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데 야고보가 언급하는 것처럼,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것이 분명히 죄라고 하였다. 그렇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죄라는 것인 줄 우리는 알고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나의 미래를 온전히 준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8. 나오며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자신의 죄된 본성을 이기는 법에 대해서 알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대체 얼마나 될까? 사도 바울도 이것을 깨닫고 사람이 스스로 죄된 본성을 이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 로마서 7장에 기록해 놓았다. 그것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사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로마서 8장이다. 그런데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기 위해 생명의 성령의 법 가운데서 사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사도 바울이 제시해 주는 방법도 육체의 정욕을 이기는 완벽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렇게 사는 이는 많지 않다. 왜 그런가? 그렇게 훈련을 받고 있을 때는 괜찮지만 그렇지 못한 환경에 처했을 때에는 금방 옛날로 다시 되돌아가 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의 내부에 있는 죄된 본성 곧 육체의 정욕을 이기게 도와주는 다른 방법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육체 속에 이미 들어 있는 더러움의 실체 곧 자기 속에 있는 악한 영들(뱀들)을 회개를 통해 내보내는 것이다(출20:5, 요일1:9). 이 방법은 정말 대단한 방법이다. 한번 내보낸 영은 내 몸에서 깨끗하게 제거되기 때문에, 만약 회개하여 음란의 영을 내보내었다면 우리는 그만큼 음란의 영에 대해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실로 놀라운 영적인 발견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야고보는 분명하게 말했다. 자신이 죄된 본성을 이기지 못하고 마귀를 따라가고 있다면 그때에는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어야 한다"고 말이다(약4:9). 그래야 우리 속에 있는 죄된 본성들의 실체 곧 악한 영들이 우리 속에서 제거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는 우리 육체 속에 들어 있는 죄된 본성에게 승리를 거두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모든 사람들이 자기 속에 있는 모든 악한 영들을 다 내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이러한 회개를 지속한다면, 우리도 어느 정도 죄된 본성에서 자유롭게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죄된 본성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육체의 정욕에서 헤매이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회개다. 회개만이 이 모든 것의 열쇠인 것이다. 야고보는 말했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 역시 죄가 된다고 말이다. 예수님께서도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또한 그분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라고 했다(눅12:46). 이제는 우리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자. 주님을 다시 만날 그 영광스러운 날을 위하여...

 

 

2022년 04월 27일(수)

정병진목사

 

부활절이 되면 늘 부담이 되는 것 한 가지가 있다. 나도 이 좋은 부활의 소식을 나의 불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를 않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부활하셔서 살아 계신 예수님을 내가 믿고 있지만, 여전히 내가 병에 시달리고 있고 가난에 허덕이고 있으며 내 자녀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한 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전도하면 그들이 말하기를 "너나 병원에 가지 않고 살아 봐! 너나 돈에 치지 않고 살아 봐, 네 자식이나 잘 키워서 내게 한턱 쏴 봐"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살아야 우리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 놀라운 소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2022-04-17(주일) [부활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부활의 이 아침 우리는 어떻게 산 증인이 될 수 있는가?(고전15:3~4)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tTB7gegCNKY [혹은 https://tv.naver.com/v/26320851 ]

 

1. 들어가며

  부활절은 성탄절과 더불어 기독교 최대의 명절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시작은 예수님의 부활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활절은 기독교인들만의 축제여야 하는가 아니면 모든 인류를 위한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자명하다. 그것은 모든 인류를 위한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현실은 어떠한가? 예수님의 부활이 불신자들에게도 진정 기쁜 날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불신자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가? 대부분 후자가 답일 것이다. 왜 그럴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 믿는 이들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에게도 기쁜 소식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할 때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이 회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함께 살펴볼 것이다. 이 사실을 듣고 깨달아 실천한다면, 우리도 역시 놀라운 영적인 진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며 삶의 윤택함을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2.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지라도 절대 이길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은 모든 만물 중에 최고의 걸작품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이길 그 어떤 존재도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식물이나 동물 중에 인간만큼 지혜롭고 뛰어난 존재는 지금까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듯 뛰어난 인간이라 할지라도 성경에 보면, 이길 수 없는 것이 3가지 있다.

  첫째로, 인간은 스스로 죄를 이길 수 없다(롬7:18~20). 왜냐하면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인간은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예수님 없이 인간으로서 스스로 죄된 본성을 이길 사람은 절대로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기의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함을 한탄하면서 선을 행하기는 원하지만 악을 행하는 자기 자신을 본다고 하였다. 그리고 선을 행지 아니하고 악을 행하게 하는 장본인은 다름이 아니라 자기의 몸속에 들어있는 '죄'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죄[된 본성]를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둘째로, 인간은 스스로 죽음을 이길 수가 없다(롬5:12, 히9:27).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세상에 죄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죄는 결국 인간을 죽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 이 세상에서 계속해서 산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첫 계명으로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죽게 된다고 말씀한 것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모든 사람은 죄값으로 죽었고 지금도 죽는 중에 있다(롬6:23). 셋째로, 인간은 스스로 사탄 마귀를 이길 수 없다(히2:14~15). 왜냐하면 첫 사람 아담이 그렇게 지혜로운 존재였으나 마귀의 말에 그만 속아서 그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때 인간은 마귀의 종이 되어 버렸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것이 영계의 법칙이기 때문이다(롬6:16).

 

3.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어떤 것이었는가?

  그런데 두 번째 사람으로 오신 우리 주 예수께서 '죄'와 '죽음'과 '마귀'를 이기셨다.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심으로 인하여 죄된 본성을 소유하지도 않았으며(고후5:21), 또한 마귀로부터 미혹을 받기는 했으나 마귀의 말에 순종하지 않아 죄를 짓지도 않으셨다(마4:1~11). 그런데 마귀가 자기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스스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사람들을 꼬드겨서 그를 죽이게끔 뒤에서 조종을 하였다. 그리하여 죄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 만들었다. 그때 마귀는 쾌재를 불렀으나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른지는 자기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사망에 의해 삼킨 바 되셨으며, 곧장 음부에 내려가셨다. 하지만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는 3일 만에 음부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오셨다. 아무도 그를 붙들어 둘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죽어야 할 죄를 갖고 있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부활 사건'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올라오실 때에는 그분의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계셨다. 그것은 2가지 열쇠였다. 그것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들이다(계1:17~18). 

 

4. 아담이 범죄함으로 사탄에게 내어준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할 때에 사탄에게 내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에 대해 어떤 사람은 아담의 목숨 뿐이라고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때 아담은 자기의 목숨만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에게 내어준 것이 아니었다. 그때 아담이 가지고 있는 만물의 지배권마저도 함께 내어주고 말았다. 그러므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는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아담에게서 빼앗았음을 언급하였고, 자기에게 절하면 그것을 주겠노라고 제안했던 것이다(눅4:5~6). 그런데 그것 뿐만이 아니다. 그때 아담이 마귀에게 패배함으로 인하여 아담 자신의 '육체'마저 그에게 내어주어야 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창세기 3:14에 나온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뱀을 저주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창3:14)" 그런데 이때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꾀였던 뱀에게 먹이로 준 것이 있다. 그것을 원문으로 보면, '네 생명의 모든 날에 티끌(아파르)을 먹을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뱀이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그냥 땅(아다마)의 흙(에렛츠)가 아니라 '먼지'나 '티끌'로 번역된 '아파르'였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여기에 쓰인 '아파르'라는 단어가 사람의 육체를 만들었던 바로 그 재료이기 때문이다(창2:7). 그러니 이때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체의 지배권을 사탄에게 내어주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부터 뱀들은 사람의 육체에 들어가서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께서도 공생애 기간에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때에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고 말했음을 알려 주셨다(마12:43~45). 다시 말해, 더러운 영인 뱀들이 사람의 몸을 자기의 집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죄를 지은 후에 회개하여 그 죄를 처리하지 않는다면, 그 죄로 인하여 사람의 몸속에 뱀들이 치고 들어오는 것이다. 

 

5.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가?

  우리가 부활하시어 죄와 죽음과 사탄 마귀를 이기신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가? 그때 믿는 자에게는 놀라운 혜택이 주어진다. 그것은 크게 두 방면의 혜택이 있다. 하나는 원초적인 방면이고, 또 하나는 부차적인 방면이다. 부차적인 방면은 원초적인 방면 때문에 뒤따라오는 것이다.

  첫째,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원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은 좀 전에도 언급했지만 '죄'와 '죽음'과 '사탄 마귀'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히2:14~15). 우선 첫째로, '죄'와 '사망'을 이길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의 영 속에 들어오시게 되는데, 그 성령께 우리 자신을 내어 드리게 되면 우리도 역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롬8:1~2).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며, 영원한 사망 곧 둘째 사망의 해도 역시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믿는 자라도 매일매일 하루하루를 다 성령께 내어 드리고 사는 사람은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예수믿는 자라 할지라도 죄를 짓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사탄 마귀'도 이길 수 있다. 왜냐하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표적이 따른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때 믿는 자들은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으며 뱀들을 집어 올릴 수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막16:17~18). 그리고 마귀를 대적하면 저가 우리를 피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약4:7). 그러나 매일매일 하루하루를 마귀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고 마귀를 물리치며 살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마귀가 던져 주는 미끼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의 유혹에 자꾸 넘어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원초적인 혜택으로서 죄와 죽음과 사탄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는 것 같다. 

  둘째,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부차적인 혜택도 동시에 누릴 수가 있다. 그것은 '질병'과 '가난'과 '저주'로부터 해방받는 것이다. 첫째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질병'에서 고침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우리의 질병을 대신하여 우리 대신 채찍에 맞으셨기 때문이다(벧전2:24).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 중에는 하나도 아픈 사람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병원에 가 보라. 아픈 성도들이 얼마나 많이 입원해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둘째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가난'에서 놓임받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을 가난(궁핍함)을 대신하여 받으셨기 때문이다(고후8:9). 그렇지만 우리 믿는 이들 중에 가난한 자가 없이 부자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돈 때문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자가 많다. 셋째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형통함을 앗아가는 '저주'로부터도 해방받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율법의 모든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기 때문이다(갈3:13).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예수님을 믿어도 형통하지 못한 채 사업은 망하기 일쑤고 자녀의 길은 막히는 등 온갖 어려움에 처해 있는 자가 많다. 인생의 고속도로를 경험하면서 사는 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6. 왜 성도들은 부활의 증인으로 살지 못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다. 이것은 온 세상 사람들이 들어야 할 기쁜 소식이다. 하지만 예수믿는 사람들이라도 예수님의 부활을 소개하면서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왜 그런가?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은 분명히 역사적인 사실이지만 그 예수님을 믿어서 우리가 그 혜택을 누리며 살아야 하는데 그 혜택을 누리며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첫째, 예수께서는 분명 죄와 죽음과 사탄 마귀를 이기셨고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셨지만 실제적으로 성도들은 대부분 죄와 죽음과 사탄 마귀를 이기지 못한 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너도 예수믿고 죄와 죽음과 사탄 마귀를 이기며 살아라"고 말을 못하는 것이다. 성도라 할지라도 자기의 성질 하나 이기지 못하고 살고 있는데, 차마 자기 불신 가족에게 예수님을 소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죄'와 '죽음'과 '사탄 마귀'의 문제는 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소개해 줘도 그것을 확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불신자가 진짜로 죄사함을 받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으며, 죽음을 이기는 것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사탄 마귀와 귀신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예수님을 증언할 수가 있겠는가?

  둘째, 예수께서는 분명, 질병과 가난과 저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셨다고 말씀하셨지만 실제로 우리가 질병과 가난과 저주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받지 못한 상태로 살고 있기에 부활의 복음을 전하기가 쉽지 않다. 다시 말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성도들은 여전히 병원에 입원하고 있으며, 물질에 허덕이고 있고, 자신의 사업이나 자기 자녀의 앞길이 꽉 막혀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감히 자신있게 자기의 불신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원초적인 혜택은 우리가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 있고 성령께 내 자신을 위탁하며 산다면 가능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불신자들에게 예수믿는 혜택을 자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초적인 혜택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신자들을 전도할 때에는 부차적인 혜택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먼저 병에서 고침받고, 가난에서 벗어나 살며, 형통함의 축복을 받는 일이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므로 불신 가족의 눈에는 매우 놀랍게 여겨지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신 가족이나 친구들을 전도하려 할 때에는 부차적인 혜택을 누리고 살면 그것이 곧 전도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활의 산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된다. 

 

7.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부차적인 혜택을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 성경이 말씀했다면 그것은 실제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내게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성경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정리해 보면, 아담의 범죄 후에 인간이 받게 되는 징계를 창세기 2장으로만 해석해 온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범죄하면 그것으로 인하여 죄가 들어오고 죄가 들어오면 사망이 들어온다는 것까지만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상이다. 창세기 3장에 보면 범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내린 징계가 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뱀에게 허락한 징계가 있다. 그것은 뱀들이 죄지은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창3:14). 그런데 아무도 그 사실에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실이 드디어 공개되는 때가 오고야 말했다. 그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법에 그것에 관한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십계명 중에서 1~2계명을 어긴 자들에게 그 죄값을 묻되(벌하되) 아버지들로부터 아들들에게까지 3~4대까지 벌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영안을 열어서 보니, 실제로 아버지가 우상 숭배할 때에 들어온 뱀들이 아버지가 죽으면 고스란히 그의 후손 3~4대까지 내려가서 그의 후손 3~4대의 몸속에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저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것이 들어가면 '질병'이 생기고, 그것들이 물질을 막아 손해보게 하고 '가난'하게 살게 만들며, 그것들이 나와 내 자녀들의 앞길을 막아서 형통함이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은 후에 우리는 내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 숭배의 죄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어야 했다. 그 죄를 회개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조상은 이미 죽어서 우리 곁에 없지만, 조상이 죽을 때에 그의 몸속에 있던 영들을 그의 후손에게 넘겨주고 갔던 것이다. 그러므로 조상들은 현재 우리들 곁에 없을지라도 그 영들이 우리의 몸속에 들어와 있기에 이것을 처리했어야 했던 것이다. 영안을 열어서 보니, 사람이 불치병으로 고생한다든지, 물질로 고생하는 것은 대부분 자기의 윗대 1~3대가 지었던 우상 숭배의 죄들 때문이었다. 그 악한 영들이 들어와서 역사해서 그랬던 것이었다. 사실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우리는 과거의 죄는 거저 용서를 받게 된다. 마치 요한복음 13장에 나오는 것처럼, 이미 목욕을 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요13:10). 하지만 그 후에 자범죄를 짓게 된다. 그러면 더러워진 발은 꼭 씻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 자범죄는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요일1:9).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자기가 예수믿을 때에 과거의 죄는 어느 정도 처리가 된 것이라고 보아야 하고, 또한 짓고 있는 죄는 자백함으로 계속해서 회개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조상들이 지은 죄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조상들이 남겨두고 간 악한 영들 곧 뱀들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야 하며 뱀들을 몸속에서 집어 올려야 하는 것을 말씀하셨다(막16:17~18). 그런데 믿는 자라 할지라도 귀신을 쫓아내거나 뱀들을 집어 올리는 일을 등한히 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조상들이 남겨두고 간 귀신들과 뱀들 때문에 우리의 육신과 삶에 매우 어려움이 계속 지속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회개했어야 했다. 그러면 즉시 우리도 부차적인 혜택을 누리고 살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누가 그것을 그렇다고 가르쳐 준 일이 있었는가?(아니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은 이단적인 사상이라고만 들어왔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도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들을 자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2가지 혜택이 주어진다고 했다. 하나는 죄용서를 받게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하늘에서 일어날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깨끗해진다고 하였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왜 사람은 더러워지는가? 그것은 죄를 범할 때에 육체가 더러워지고 또한 영도 같이 더러워지기 때문이다(고후7:1). 왜냐하면 죄를 범하면 더러운 귀신이 우리 몸속에 들어오기 때문이다(마12:43~45). 그러므로 회개하면 더러운 영들을 우리 몸속에서 내보냄으로 우리가 깨끗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회개하지 않음으로 악한 영들이 대부분 자기의 후손에게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육체의 생명을 이어받은 핏줄에게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상들이 지었던 죄는 오직 그의 후손만이 회개할 수 있으며, 회개하면 조상들의 죄사함의 영역은 아니지만(이미 조상들은 대부분 죽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에 역사하고 있는 더러운 영들을 우리의 몸으로부터 밖으로 제거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할렐루야!

 

8. 나오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지금도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기도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죄와 죽음과 사탄 마귀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질병과 가난과 저주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그것들에게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 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해결할 수 있는 열쇠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첫째로 '죄'와 '죽음'은 생명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 '질병'과 '가난'과 '저주'를 일으키는 '귀신들'과 '뱀들'은 우리가 나와 내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고 귀신들(큰 영들)은 쫓아내고 뱀들(작은 실같은 것들)은 들어올려 뽑아내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그런데 과연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자기 몸속에 뱀들이 치고 들어온다는 것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또한 자기가 죽게 될 때에 그 뱀들이 자기의 몸속에서 나와 자기의 후손에게 들어간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또 얼마나 되겠는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런데 아직도 어떤 사람은 조상들의 죄가 후손에게 영향을 안 미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그렇다면 자기는 죽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왜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죽어가고 있는가? 나의 조상이요 인류의 조상인 아담의 범죄로 인한 결과는 오롯이 받아들이면서 왜 조상들이 지은 죄들에 의한 징계가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그것은 죄의 법이 아니라 일점일획도 빠짐없이 이루어진다는 십계명법에 나온다(출20:5). 그러나 조상들이 지었던 죄 때문에 예수믿는 우리가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죄사함을 받지 못한 자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지 못한 자가 지옥에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영문도 모른 채 나와 내 후손들이 당할 고통을 한 번 생각해 보라. 우리 믿는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 뱀들이 나의 자식과 내 사랑스런 손자 손녀에게 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어찌 나 몰라라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더욱이 내가 회개하여 그것들을 떠나보내면 예수님을 믿는 부차적인 혜택이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질병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또한 가난에 허덕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형통함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한 번 두 번 그렇게 회개하는 것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이겠지만, 이것을 한 5년 10년을 지속했다고 가정해 보라. 얼마나 위대한 일이 우리에게서 나타날 것인가? 그러면 우리의 불신 가족과 친구들이 "그 좋은 예수를 왜 너만 믿고 내게는 소개해 주지 않느냐?"고 오히려 야단을 칠 것이다. 왜 그런가? 나의 삶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던 불신 가족과 친구들이 나의 달라진 삶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부활의 증인으로 사는 것에도 회개가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것을 알기까지 또 얼마의 시간이 걸린 것인가? 오 주여! 날마다 우리의 영안을 열어 주소서!!!

 

2022년 04월 17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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