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자주 인용하는 구절 가운데 구원론에 있어서 사도행전 2:38의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개역한글판이나 개정개정판의 성경번역은 성경원문과는 좀 다르게 번역되었기 때문에 믿는 성도들에게까지 많은 혼란을 주고 있다.
  먼저, 이 구절에 대한 개역개정판 성경말씀을 보자. "베드로가 이르되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 그런데 더욱 난감한 번역은 개역한글판이다. 그곳에 보면 이 구절의 뒷부분을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완전히 와전된 번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글성경의 번역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2가지 혼선을 빚고 있다. 먼저 하나는,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아야 성령의 선물을 받는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는 것과 또 하나는 사람이 구원을 받아야만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라고 짐작케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잘못된 번역이요 잘못된 해석이다.
  그럼, 행2:38의 말씀을 헬라어 원문에 따라 번역해 보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회개하라. 그리고 너희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 너희의 용서를 위하여. 그리고 너희는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이 말씀에 의하면 한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과 성령의 선물을 받는 것은 인과관계가 없음을 증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이에게 성령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단지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성령은 그 사람이 구원받을 때에 이미 그 사람 속에 들어오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의 선물이 보너스로 주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성령의 선물'은 성령의 외적인 충만함으로 주어지는 성령의 은사라고 불리워진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는 자들 중에서 구하는 자에게 복음전파를 위해 성령의 은사를 부어주신다는 말이다(눅11:13). 성령의 은사란 이미 구원받은 사람 위에 부어지는 성령의 선물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은 자에게 성령이 선물로 주어지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사도바울도 이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말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이는 그가 만약 이미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고 한다면 그에게는 이미 성령을 체험한 자임을 시사한다. 다시 말해, 이 사람은 이미 자기 안에 보혜사 성령님을 모셔들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시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신앙고백을 하게 된다. 이때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내주하시게 된다. 
  그렇지만 성령의 선물은 다르다. 그 사람이 구원받은 후에(동시에 진행되는 분들도 있기는 하다) 외적인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될 때 주어지는 특별한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선물은 받을 자도 있겠지만 받지 못하는 자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성령의 선물을 받는 것이 그 사람의 구원의 기준이 되지 않음을 명심하라. 쉽게 말하면, 그 사람의 성령의 은사의 하나인 방언을 말했다 하자. 그 사람이 방언을 말했으니까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이 기도함으로 혹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인격이 달라지지 않고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있음에도 회개하는 삶이 없다면 그는 결국 구원에서 제외될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 방언을 말하지 못한다 해서 그 사람이 구원받지 아니한 것은 아니다. 그 사람도 얼마든지 구원받기 때문이다. 그렇다. 구원이란 회개와 죄사함을 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도 구원받고 싶은가? 그럼 자신이 죄인인 것을 시인하고 회개하라. 그리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단어가 하나 있다. "회개하라"라는 단어다. 먼저 이 단어의 뜻부터 알아보자. "메타노에오"라는 단어인데 이는 "메타(뒤에, 후에)"에다가 "노에오"라는 동사가 합쳐진 말이다. "노에오"는 동사는 "누스"라는 명사에서 왔는데, "누스"는 "생각, 마음, 정신, 이성"이라고 번역된다. 그러므로 '회개하다"라는 단어는 "뒤에 먹은 마음" 혹은 "고쳐먹은 마음"이라는 뜻이다.
  아울러 "회개하라"라는 명령형 동사의 형태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헬라어 동사에는 사실 명령형이 2가지다. 하나는 한 번 회개하라는 명령형이 있고, 또 하나는 계속해서 회개하라는 명령형이 있다. 앞의 명령형을 '과거명령형'이라 부르고, 뒤의 명령령을 '현재명령형'이라 부른다. 그런데 행2:38에 나오는 회개는 그 형태가 과거 명령형이다. 이 회개의 명령은 한 번 하라는 회개명령이다. 즉 단회적인 회개를 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구원받기 위한 회개이자 단회적인 최초의 회개"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과거명령형의 형태로 보았을 때, 우리는 '회개하라'는 뜻을 이렇게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이전까지는 자신이 예수님에 대해 '거짓선지자, 사기꾼, 목수의 아들, 선동가'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듣고보니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 '진리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야이며, 인류의 구원자로서 성령을 보내주신 분'이었구나 하고 마음을 고쳐먹는 것을 의미한다.
  베드로가 오순절날 외친 설교는 단회적인 회개를 외친 것이다.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한 번은 꼭 해야하는 회개를 외친 것이다. 이 회개를 통해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회개하는 신앙고백 때문에때부터 그 사람에게서 구원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는 반복적인 회개를 해야 한다. 이러한 명령형은 현재명령형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바로 예수께서 마4:17에 외치신 그 회개가 바로, 현재명령형의 회개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서 전파하여 이르되, 회개하라. 왜냐하면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하시니라(마4:17)" 이때 예수님은 현재명령형의 형태로서 회개하라고 외치셨다. 이것은 예수님에 대해 마음을 고쳐먹는 회개를 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동안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죄를 짓고 있었던 죄들을 회개하라는 말이다. 이것은 한 번 하고 마치는 그러한 회개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죽을 때까지 해야하는 회개다. 왜냐하면 죽을 때까지 죄를 짓지 않고 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원파의 괴수 유병언이는 단회적인 회개와 반복적인 회개를 구분하지 못했다. 그는 단회적인 회개로 구원받고 천국간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죽어서 지금 지옥의 불구덩이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반복적인 회개 없이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몰랐고 아니 그것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우리는 사람이 구원받기 위한 첫번째의 회개, 단회적인 회개가 무엇인지 분명해졌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죄인은 예수님에 대한 시각을 바꾸기 위한 단회적인 회개를 해야 한다. 그리고 죄사함을 받기 위해 세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세례요한의 세례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세례로서, 죄사함을 얻기 위한 세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번 설교영상을 들어보라. 이 부분도 사실 구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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