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다윗의 일대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뼈아픈 교훈(마1:6)_2019-12-09(월)

https://youtu.be/R-879PqREM4


1. 메시야의 족보에 등장하는 다윗은 어떻게 소개되고 있나요?(마1:6)

  메시야의 족보에 등장하는 다윗은 2가지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그가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메시야의 족보에 등장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은 이름만 기록되었을 뿐 그의 신분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비해, 다윗만큼은 그의 신분이 기록되었는데, 그의 신분이 왕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째, 그가 "우리야의 아내"로부터 솔로몬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가 남의 아내를 빼앗아서 자식 솔로몬을 낳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대목입니다.

 

2. 가장 존귀한 직책으로서 왕이라는 신분을 가진 다윗은 어떻게 되어서 남의 아내를 빼앗은 파렴치한 사람으로 기록된 것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이 세상에서 온전한 사람이란 없다" 다시 말해, "사람은 다 죄인이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범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즉 누구나 돌에 넘어질 수가 있는 것이죠. 설령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해지던 다윗이 할지라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3. 다윗에게 "왕"이라는 직분은 좀 특별합니다. 무엇이 특별한가요?

  다윗에게 "왕"의 직분은 2가지 면에서 좀 특별합니다. 첫째, 다윗은 스스로 하나님께 왕의 지위를 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다윗은 베들레헴의 시골사람으로 무명의 목동에 불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이새의 8번째 막내아들로서 아버지로부터 늘 어린아이 취급받던 아이였습니다. 그러한 다윗이 어느날 왕이 된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지명하여 세웠다는 것이며, 훗날에는 그의 후손에게까지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았기 때문입니다(행13:22).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항상 같은 길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바라시는 것을 다윗도 원하고 바랬으며, 주님의 시선이 멈춰 있는 곳에 항상 다윗의 시선도 멈춰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서 백향목으로 하나님의 집을 지어드리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다윗에게는 그의 후손에게까지 왕직을 물려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4. 왜 메시야의 족보에는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인가요?

  그것은 다윗의 범죄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다윗도 어쩔 수 없는 죄인이었다는 것을 들추어내기 위함입니다. 그럼, 왜 성령께서는 마태복음의 기자로 하여금 다윗의 수치스러운 일을 드러내도록 하신 것인가요? 그것은 다윗의 범죄가 매우 중대한 범죄였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함이며, 자신의 부하장수였던 "우리야"는 그토록 충성되어서 주군을 위해 그리고 나라와 부하들을 위해 희생했는데, 다윗은 한가로이 궁에서 놀다가 남의 아내나 겁탈하는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함입니다. 아마도 "우리야"의 이름이 족보에 기록된 것을 보니 그는 천국에 들어간 것 같으며, 메시야의 조상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남자로서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우리야" 장수 뿐일 것입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족보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그것은 다윗이 자신의 범죄를 지적받았을 때에 즉시 인정하고 진실로 회개했기 때문입니다(시32:5). 하나님께서는 죄를 짓고도 감추고 있는 다윗에게 선지자 나단을 보냈습니다. 나단은 지혜롭게 왕에게 비유로서 왕의 잘못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즉시 지은 죄를 자복하였고 눈물로 회개하여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는 것입니다(시6:6). 그래서 어느날 자신의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에 다윗은 범죄했으나 메시야의 족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선왕이었던 사울왕은 왜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지 못했던 것인가요? 그것은 첫째, 그가 진실로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도 잘못을 시인하기는 했지만 그의 회개는 형식적인 것이었습니다. 둘째, 그가 지은 죄는 하나님께 대한 범죄였기 때문입니다. 사울왕이 지은 죄는 다음에 살펴보겠지만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죄였고 우상숭배와 동일한 범죄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한 번도 우상을 숭배하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철저히 자신을 지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인간에게 대한 범죄를 저질렀던 것이죠. 그가 지었던 죄는 간음죄, 살인죄, 도둑질죄, 이웃의 아내를 탐낸 죄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죄를 지적받았을 때 즉시 시인하고 진실로 참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간신히 그는 죄용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왕은 인간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이었기에 때문에 용서받기가 좀 더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구하고 그는 형식적인 회개만을 한 탓에 결국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한편, 우상숭배의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간 메시야의 조상의 대표자가 한 명 있는데 그는 "므낫세"왕입니다. 그는 남유다에서 최고로 악한 왕으로 정평이 나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기전에 회개하고 죽었습니다. 그럼,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나요? 그것은 그의 아버지의 중보기도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남유다왕들 중에서 최고로 선한 왕으로서 하나님을 잘 섬겼던 왕들 중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누구든지 자기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부모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식을 둔 부모의 가장 큰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2019년 12월 09일(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수를 믿어도 천국에 못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이며 예수믿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계22:14~15)_2019-11-28(목)

https://youtu.be/tGufKbaB0ic

 

1. 예수께서는 계22:13~15에서 자신을 누구로 소개하고 있으며,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예수께서는 계22:13~15에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계22:15에 나오는 "성밖에 있으리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인가요?

  계22:15에 나오는 말씀은 6가지 종류의 죄를 지은 사람들의 운명에 관하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운명이 "성밖에 있으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헬라어원문을 보면, "밖에"라는 부사어만 있을 뿐 "성"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우선 헬라어원문으로 계22:15을 직역해보겠습니다. "[그런데] 개들과 점술가들(술객들)과 음행인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을 좋아하고 있으며 만들고(지어내고) 있는 자는 밖에(외부에)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6가지의 죄를 짓고 있는 자는 다 외부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계22:15에 나오는 "바깥(외부)"는 어떤 장소를 가리키는 것인가요?  어떤 이는 "바깥"을 예루살렘 성(도시) 바깥부분을 가리킨다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6가지 죄를 저지른 자는 예루살렘 성 안으로는 못 들어가지만, 천국에는 들어가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믿는 자가 설령 위와 같은 6가지를 죄를 지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를 지옥에 떨어뜨릴 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기존에 들어왔던 말이나 잣대로서 성경을 해석하면 안 됩니다. 우선은 헬라어나 히브리어 원문으로 성경을 보아야 하며, 문자적인 해석을 시도하고, 그리고 문맥이나 평행구를 살펴보아야 하며, 그래도 해석이 안 될 때에는 상징적으로 풀어가야 합니다. 

 

3. 계22:15에 나오는 "바깥"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이 말씀에 나오는 "바깥"은 예루살렘 성바깥쪽을 의미할 수도 있고, 다른 장소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선 잘못된 부분부터 바로 잡겠습니다. 첫째로 "성 바깥"이라는 말씀은 원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헬라어원문에는 "성(도시)"라는 단어는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6가지 죄를 저지른 자는 "바깥"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어딘지는 정확하지는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바깥'이 어딘지를 알려주는 본문이 가까이에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8의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21~22장은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말씀인데, 계21:8에 보면, 8가지 죄목을 가진 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본문은 이렇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비겁한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 그렇습니다. 두려워하는 자들(비겁한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다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계22:15의 말씀과 비교해보면,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이랴는 말 대신에 "개들"이라는 말로 바뀌어 있을 뿐 동일한 자들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로 계22:15에 나오는 "바깥"은 천국에서 예루살렘 성전 바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으로부터의 바깥인 "불못"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고로, 누구든지(그가 예수님을 믿는지 믿지 아니하든지) 죄를 짓는 자(특히 십계명을 어기는 죄목들임)는 다 불못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예수님을 믿었으니 자신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는 생각은 낭만적인 생각입니다.

 

4. 예수님을 믿어도 천국에 못 들어가는 사람이 있나요?

  그럴 수 있습니다(그렇게 되지는 말아야 하겠지만).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간음하는 자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며, 예수믿는 자라도 우상숭배하는 자라면 그도 역시 천국에 못 들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계21:8). 이는 천국에 들어가려면 2가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야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은 죄들을 자백하여 용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지은 죄들을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므로, 지은 죄를 용서받으려면 직접적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 용서받게 됩니다(요일1:9).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은 중간에 한 마디를 빠뜨린 잘못된 정의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며, 동시에 그때부터 죄를 회개하면 죄용서를 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5. 어떻게 해야 천국의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나아가며 그리고 생명나무를 누릴 수 있는 권세가 주어지는 건가요?

  그것은 "자기의 두루마기(겉옷)를 [지금도] 빨고 있는 자들"이어야 합니다(계22:14). 알파와 오메가이시요, 처음과 마지막이시며, 시작과 마침이신 예수(계22:13)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자기의 두루마기를 빤다는 것는 어린양이신 예수의 피로서 그 죄를 씻어내는 것을 가리킵니다(계7:14). 그것은 오직 자백함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요일1:9). 그러면, 예수의 피가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해 줌으로 더럽혀진 겉옷을 희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요일1:7). 그러므로 예수믿는 자라도 자신이 지은 자범죄들을 회개하여 예수의 피로 씻어내지 못하는 자는 결국 자신이 지은 자범죄 때문에 불못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계21:27에도 죄를 짓는 자는 그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로, 우리 예수믿는 자들은 "내가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구원은 걱정없어"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내가 예수 믿고 있어도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불못이야"라고 생각하면서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은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2019년 11월 28일(목)

정병진목사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것은 그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신칭의를 얻었다고 해서 구원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구원의 노정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며,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골인하는 것인가?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하며,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좁은 문을 통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얻게 되는가? 그런데 그 예가 있다. 그 예를 통하여 우리도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오늘은 그 좁은 문의 두번째 키워드를 정리해 보기로 하자.

2019-11-15(금) 금요기도회
제목: 좁은 문을 통과하게 해주는 회개란 무엇인가?(눅15:11~20)
https://youtu.be/W4apiY9VO9s


1. 들어가며

  구원을 얻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그것은 좁은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눅13: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다고 예수께서 말씀해주셨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대체 어떻게 해서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을 받게 되었는가? 좁은 문을 통과하려면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 그래서 오늘은 구원얻기 위한 좁은 문을 통과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이 무엇인지 살펴보되, 그중에서도 두번째 관문은 "회개"에 관하여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2.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을 받으려면 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받는 자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누구였는가? 눅13:28~29를 살펴보니, 한 부류의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고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은 이방인들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후 구원은 혈통적인 조건에 따라 받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을 받게 되는가? 그것은 2가지다. 그것은 그들이 가졌던 "믿음" 때문이요, 또한 "회개"를 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가. 구원받는 좁은 문은 첫째가 "믿음"이다.

  사람이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받으려면 첫째로는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및 모든 선지자가 하나님의 나라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고, 장차 동서남북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눅13:28~29).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믿음의 조상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귿르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신 약속의 말씀에 대한 "믿음"은 구원의 첫번째 요소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총을 누릴 수가 없다.

 

나. 구원의 좁은 문은 둘째가 "회개"다.

  사람이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받으려면 이어서 "회개"가 필요하다. 믿음만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다. 믿은 즉시 순교할 때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은 그날에 죽지 않는다. 적어도 30~50년은 더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을 구원받게 해주는 또 하나의 관문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회개"다. 왜냐하면 죄를 지은후에 회개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자신이 회개하지 못했던 그 죄 때문에 구원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 생각해보라. 예수님을 믿는 자인데도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면, 그는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른지를 말이다. 아니다. 못받는다. 예수님을 믿어도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계21:8).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반드시 지은 죄를 처리하기 위해 반드시 "회개"가 필요한 것이다. 지은 죄들을 용서받는 유일한 방법은 "회개"이기 때문이다.

 

3.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그렇다면, 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및 모든 선지자들 그리고 동서남북으로부터 이방인들이 하나님 나라 안에 들어가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는가? 그것의 첫번째 요소는 "믿음" 때문이다. 왜냐하면 눅13:28~29의 평행본문은 마8:10~12에 보면, 예수께서 가버나움의 이방인이었던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즉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음식을 먹기위해] 비스듬히 앉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이들이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믿음을 통하여 천국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대체 어떤 믿음을 가졌던 것일까? 그들은 2가지를 믿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을 것임과 그들과 그들의 후손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생전에 그것을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믿었고 자식들에게 자기가 믿었던 신앙의 내용을 전수해주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들이 아브라함의 씨(후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씨"는 단수로서, 오실 메시야를 상징한다. 그렇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되, 특히 메시야에 관한 약속의 말씀을 믿은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믿음에 대해서, 그것이 "좁은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첫째,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데도 보는 것처럼 믿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움이 뒤따라온다. 이를터면, 무엇인가를 다 보여주고 그리고 다 만지게 해놓고 난 뒤, 믿으라고 한다면 믿지 아니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여주지도 않고 손에 만질 수도 없는 것인데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믿었다는 사실이다. 둘째, 한 번 가진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은 좁은 문이다. 믿다가 흔들려 포기하는 자는 결국 구원에서 탈락하고 말 것이다. 믿음을 끝까지 붙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믿음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잠시 안 믿는다고 한 다음, 자신의 목숨을 살려놓고 그리고 나서 회개하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그러한 믿음으로는 천국가기는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그는 넓은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것을 좁은 문을 통과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넓은 길로 가는 것은 결코 구원의 바른 길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4.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한 "회개"는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구원을 위하여 좁은 문을 통과하려면 회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누가복음에 나와있는 사례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매우 "회개"를 강조하는 복음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누가복음을 "회개복음서"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의 첫 외침이 회개였고,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고 말씀했기 때문이다(눅5:32).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서 전해야 할 복음도 이신칭의의 복음이 아니라, "회개의 복음"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눅24:46~48). 왜냐하면 부활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께서 유언처럼 제자들에게 그것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때 이후로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세례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 전파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하셨고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이 말했던 칭의는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얻는 칭의가 아니라 오히려 "믿음을 통하여 얻는 칭의"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가. 회개의 시작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회개는 어떻게 시작하는 것인가? 그것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시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사례는 "고기잡이의 기적"으로 알려진 베드로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눅5:1~11). 밤이 새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던 어부 베드로였지만 그는 예수님의 레마를 듣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다. 그런데,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았다. 그리하여 동역자의 배까지 고기로 가득 채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보인 반응이 무엇이었을까? 그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린다. 왜냐하면 그 사건을 통해서 베드로는 예수께서는 정말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소문이 헛된 소문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베드로는 창조주요 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라면 절대 하실 수 없는 일을 직접 경험했다. 베드로는 겸손했다. 그리고 고기잡이의 기적으로 인해 즐거워하기보다는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했다. 그렇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로면 그분 앞에 엎드리게 된다. 고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일이 바로 회개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회개의 과정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죄인은 어떠한 과정을 거치면서 회개하는 것인가? 그것은 낱낱의 죄를 다 고백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눅15:18~20). 그것은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 고스란히 나온다. 둘째는 아버지가 생존해 계시는데도 자기의 몫에 해당하는 아버지의 재산을 달라고 요구하여 그것을 가지고 아버지의 곁을 멀리 떠나갔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길이 미치는 않는 곳에서 허랑방탕하게 지내더니 결국 받은 재산을 다 탕진해버린 둘째아들은 이제 남의 집에 붙여사는 인생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게 되자, 그는 송구스럽지만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어찌 아버지의 얼굴을 그냥 볼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지은 죄를 고백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아버지 앞에 아들로서 자격없는 자라고 시인하기를 바랬다. 그리고 자신을 일꾼의 하나로 받아달라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고백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눅15:21)." 하지만 그는 자기가 준비해간 세 가지의 말을 다 하지 못했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는 말까지 마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이 자식의 용서를 비는 마음보다 훨씬 더 컸기 때문이다. 그렇다. 낱낱의 죄를 자백할 때에 우리의 죄가 용서된다. 우리는 회개를 통해 지은 죄를 용서받게 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그때 죄가 용서되는 것이 아니다. 그때에 예수의 피로 우리의 죄가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한 것이다. 그때부터는 지은 죄를 고백할 때 죄가 용서된다(요일1:9). 죄를 자백하지 않는데, 어찌 자동적으로 죄가 용서되겠는가? 어떤 이는 예수님을 믿으면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가 다 용서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다. 죄는 자백할 때 비로소 예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어내어 용서받게 되기 때문이다.

 

다. 회개의 결과는 어떠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죄인이 진정 회개를 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은 자신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것의 예가 바로 "삭개오의 회개"다(눅19:1~10).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리장이었다. 그의 삶을 되돌아본다면, 그는 자신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던 인물로 보인다. 심지어 동족에게서 세금을 거둬 로마에 바치는 세금징수요원으로서 살았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2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하나는 부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는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잃어버린 것도 있었다. 첫째는 동네사람들로부터 신임을 철저히 잃어버렸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 무엇보다도 하나님으로부 멀어져 다. 그의 이름이 무엇이었던가? 그의 이름은 "삭개오"로서, "깨끗한 자"요 "의로운 자"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칭함받을 수 없는 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그는 눈물짓는 밤이 계속되었으리라고 본다. 그러다가 어느날 조건없이 심지어 창녀라도 만나주신다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그분을 만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고 그는 뽕나무 위로 올라가서라도 그분을 만나기를 사모했다. 그때 주님이 그에게 찾아오셨고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는 겸손히 내려와 자기 집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그는 즉시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팔아 율법의 말씀대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였다. 그리고 만일 토색한 일이 있다고 한다면 4배가 갚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19:9)." 그렇다. 회개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삶 속에서 열매로 나타나야 한다. 그는 이미 그것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러자 주님께서도 그 사람의 회개를 인정해주셨던 것이다. 우리가 만약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했다고 치자. 그런데 심판의 날에 주께서 우리를 모른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주님을 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알아주셔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자신에게서 나타나고 있느냐가 말해준다. 삭개오는 이미 회개의 열매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주님은 그의 회개를 인정해주신 것이다.

 

5. 구원받는데 회개의 중요성은 얼마나 큰 것인가?

  그렇다. 회개는 믿음과 더불어 구원의 요체다. 믿음 없이 구원받을 수 없고, 회개없이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런데 종교개혁이후 그만 "회개"가 축소되었거나 회개가 약화되고 말았다. 회개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된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생각이 교회를 가득채우고 말았다. 믿음만 있으면 구원받는다는 식이다. 아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회개가 동반되어야 한다.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이 회개복음이요, 예수께서 오신 목적이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그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그가 회개하지 않아서다. 눅13:3,5에 보면, 예수께서는 사람이 회개하지 않아서 멸망을 받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언급하셨다. 특히 평소 때 회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죽기 전에 회개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눅23장에 나오는 "한 편 강도의 회개"다. 한 편 강도의 회개는 죽음 직전에 사람은 회개하고 죽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고 그때라도 회개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구원은 결코 넓은 길로 가는 것이 아니며, 좁은 문을 통과하여 겨우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받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받은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해주셨다. 찬찬히 보니 그렇게 좁은 문을 통과하여 구원받은 사람이 누군지를 주님께서 알려주셨다. 그러한 예를 통하여, 우리는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믿음과 회개가 그것의 관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 "믿음"이란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이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믿는 믿음이며, 이 믿음도 끝까지 지키는 믿음이라야 한다. 그리고 "회개"는 자신의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지은 죄를 낱낱히 고백하는 것임을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고백한 후에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나타나고 있어야 진짜 회개라는 것도 들었다. 말은 사실 간단한 것이지만 그렇게 살아내기는 여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구원의 길이다. 이것이 좁은 문을 통과하는 구원인 것이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은 이 좁은 문을 통과하여 꼭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9년 11월 15일(금)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었다면 골고다 언덕에서 자신의 죄들이 이미 다 용서되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사실일까? 롬3:20에서, 사도바울은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한다고 했다. 거꾸로 말하면, 율법을 모르는 자는 죄를 깨닫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개신교인들은 과연 율법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율법은 크게 "도덕법"과 "의식법"과 "재판법"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의식법"은 장차 메시야로 오실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려주는 법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오셔서 직접 자신이 그 법대로 살아내심으로 성취하셨다. 그래서 폐지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희생제물을 바치지 않아도 되고, 음식을 가려먹지 않아도 되며, 토요일의 안식일을 지키지 않아도 되고, 유월절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어긴다고 해서 그것이 죄가 되는 것은 아니며, 그것 때문에 저주받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덕법으로서 십계명은 어떠한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 부분에서 큰 실수를 범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과연 우리 믿는 이들은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를 깊이있게 다루고자 한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2019-07-21(주일)
제목: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계2:20~23)
https://youtu.be/cQUc4snWpZ8


1. 들어가며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지은 죄들은 회개해야 하는가? 그 이유가 있다. 그것이 자신에게 저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요 결국에는 파멸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불신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똑같이 받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한사코 자신은 저주를 받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예수께서 이미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기 때문에, 자신은 더이상 저주를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은 그렇지만 실제는 어떠한가? 그리스도인들도 온갖 종류의 질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재앙을 받고 있고, 자녀들이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또한 벧전2:24의 말씀에 따라,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 믿는 이들은 이미 나음을 입었다고 선포도 해보지만 여전히 병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대체 무슨 이유에서인가? 성경말씀이 틀린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성경을 잘못 이해한 것인가?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원인이 없는 결과는 결코 없다는 것이다. 반드시 어떤 원인으로 말미암아 저주가 나타난 것이지 그냥 저주가 나타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저주의 원인이 나오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죄"다. 특히 우상숭배의 죄를 지었을 때에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주의 원인인 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죄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것을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그렇게 행동했을 때에 복을 받지 못하고 저주를 받게 하는 원인들로서,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지 않고 마귀의 말을 듣고 산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죄를 짓게 된다면 반드시 저주가 뒤따라오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저주는 질병과 재앙으로 나타나며, 결국에는 사망(파멸)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주의 원인을 찾아서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꼭 저주의 결과를 맛보고서야 자신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요, 시작과 끝이신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해주신 것이 있다. 즉 우리가 어떤 결과를 맛보지 않은 상태라도, 자신이 어떤 죄를 지으면 어떤 결과과 나오는지를 무엇인가가 지금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십계명"이다. 그래서 오늘은 율법 중에서 십계명이 갖고 있는 의미가 무엇이며, 왜 그것을 어기면 죄가 되는 것이고, 죄를 짓게 되면 저주가 따라오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혹시 잘못하여 죄를 지었으면 또 어떻게 해서 저주를 받지 않고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왜 그리스도인들은 자범죄를 회개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의 대다수는 예수님을 믿으면 자범죄를 회개하지 않아도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기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이미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를 용서받았다고 가르침을 받았거나 누구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자범죄들의 사함을 받는다고 하는 성경말씀은 사실상 성경에는 없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분의 피로 우리가 지은 죄들을 회개할 때 용서함받을 수 있도록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데 회개를 한다고 해서 자신의 죄가 씻겨지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일은 자신이 회개했을 때 죄사함이 일어나도록 하는 근거가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왜 그리스도인들은 회개해야 하는가? 그것은 첫째로, 회개하지 않는 죄는 여전히 남아있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로, 회개하지 않는 죄는 용서함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요일1:9). 그러면 그 사람은 그 죄로 인해 저주와 파멸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지은 자범죄는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회개할 때에 죄용서가 일어나고, 저주와 파멸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3.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죄를 회개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죄를 회개해야 하는가? 사도바울은 로마서3장에서 율법의 기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즉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3:20)". 그렇다. 사람은 율법을 통해서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실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려고 생겨난 법은 아닌 것이다. 다만, 누구든지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위가 죄인지를 잘 모르고 행했다고 하더라, 저주를 당하면서 비로소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것인다. 그런데 율법은 저주를 경험해보지 않아도, 그것이 죄인지 아닌지를 알려주는 놀라운 말씀인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을 알면 우리는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에게 어떤 저주가 찾아왔는지 그 이유를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을 통해서 자신의 모든 죄를 지었는지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4. 율법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율법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유대인들은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기록되어 있는 율법을 구분할 때, 명령어로 구분한다. 즉 "하라"라는 명령어로 구성된 율법과 "하지 말라"고하는 명령어로 구성된 율법으로 나눈다. 그중에서 "하라"는 율법은 248가지이고, "하지 말라"는 율법은 365가지다. 그래서 도합613개의 율법규정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말을 들으면 즉시 "어떻게 613가지나 되는 조항을 다 알 수가 있으며 그것을 지킬 수가 있지?"하고 금방 포기해버린다. 그러나 율법을 내용면에서 분류하면 우리는 율법을 구분하기가 상당히 쉬워진다. 즉 율법을 내용면에서 보면, 3가지로 나눌 수 있으니, "도덕법"과 "의식법"과 "재판법"으로 나눌 수 있다. 이것들 중에서 첫째로 "도덕법"이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지켜야 할 윤리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을 우리는 "십계명(출20장,신5장)"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둘째로, "의식법"이 있다. 의식법이란 어떤 절차적인 행위를 통해서 깨끗하게 되고 용서받게 되고 문제를 해결받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한 의식법에는 제사법, 절기법, 정결법, 음식법 등이 있다. 또다시 "제사법"은 제사법과 제사장법과 성막법이 들어있으며, 절기법에서는 안식일법과 7가지 절기법 등이 있다. 그리고 "정결법"에는 각종 정결예식이 들어있으며, 마지막으로 "음식법"에는 어떤 음식은 먹으면 부정하고 어떤 음식을 깨끗하여 먹을 수 있다는 규정이 들어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이 의식법의 규정에 따라 사람이 죄인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고 판단하고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할례를 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큰 죄를 지은 것이 되며, 안식일을 지키지 않거나, 부정한 음식을 취식하는 경우도 큰 죄를 범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5. 왜 그리스도인들은 의식법을 지키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의식법들 다 지켜야 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오셔서 의식법이 요구하는 사항을 다 만족시키셨으며 그것을 성취해 버리셨기 때문에, 의식법은 그만 폐지된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는 이들은 더이상 의식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은 더이상 의식법을 지키지 않아도 정죄받지 아니 함을 가리켜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라디아 이방인교회는 할례파 그리스도인의 주장에 흔들리고 있었다. 예수님을 믿어도, 축복받기를 원하고 천국에 들어가려면, 예수님도 믿고, 율법의 의식법들을 다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자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람이 구원받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2가지인데, 하나는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과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할례파 유대인들은 율법의 의식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정리가 잘 마무리 되었다. 이는 예수께서 의식법의 요구사항을 다 성취하심으로 완성해버리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의식법의 과제가 수행된 상태이므로, 예수님만 믿는다면 더이상 의식법으로 사람을 정죄할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의식법을 지키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게 하신 것이다. 즉 이미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형벌을 다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만 해도 의식법을 준수하지 못한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렇다. 이러한 측면에서 예수님은 율법의 마침이시다. 그리고 구약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이 곧 "내게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신 그 말씀(의식법)의 성취된 것이다.

 

6. 율법말씀 중에서 도덕법인 십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도덕법인 십계명이 남아 있다. 십계명법은 율법 중에서 도덕법을 가리킨다. 그런데 성경 어디를 보더라도 십계명이 폐지되었다는 말씀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니 없다. 오히려 육체를 입고 오신 우리 주 예수께서는 십계명을 한층 더 강화시키셨다. 그리고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장차 누가 구원을 얻을 것인지를 말씀하실 때에,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라고 말씀하심으로, 십계명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있을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계14:12).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십계명을 지키는 일에 소홀하지 말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도 여전히 십계명법은 유효하고 그것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효력을 발휘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십계명에 주의하지 않는다. 예수님만 믿으면 십계명은 혹 지키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장차 우리가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주님께서는 무엇으로 우리를 심판하시는지 아는가? 그것이 바로 십계명이다. 십계명을 가지고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지 아니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갈지가 결정되는 것이다(계21:8). 다시 말해, 십계명은 장차 심판대에서 심판의 기준으로 여전히 사용되는 법이었다. 뿐만 아니라 십계명법은 여전히 살아있기에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이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 것은 죄가 되며, 그 죄는 응당 우리들을 저주와 파멸로 끌고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계명을 어긴 죄와 저주에서 빠져나오려면 우리 믿는 이들은 응당 회개를 해야 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을 때에 이미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되었다고 가르침을 받다보니, 십계명을 어긴 죄에 대해서 신경쓰지 못했다. 하지만 십계명을 어긴 자에게는 두 종류의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 하나는 살아서 받는 형벌이요, 또 하나는 죽어서 받는 형벌이다. 특별히 우상숭배의 죄를 지은 자들이 살아서 받을 형벌은 계2:22~23에 나오며, 죽어서 받을 형벌은 계21:8에 나온다.

  먼저, 우상숭배의 죄를 지은 자들이 살아서 받게 될 형벌은 3가지다(계2:22~23). 하나는 본인이 질병의 침상에 던져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한 병이나 불치병, 더 나아가서는 치매에 걸리는 것이다. 둘째, 우상숭배가 죄가 아니라는 가르침을 동조하는 자들은 큰 환난에 던져지는 것이다. 재앙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셋째, 본인의 자녀가 죽어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자살일 수도 있고 타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이가 죽어서 받을 형벌은 계21:8에 나와있는 바,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지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를 의미한다.

 

7.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성도들은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 그것은 십계명을 어긴 죄들이다. 만약 이러한 죄들을 회개하지 않는다면,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 각 계명에 따른 형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곧 저주(질병과 재앙)과 파멸(죽음)이다.

  그렇다면, 십계명의 각 계명을 어길 때에 받게 될 형벌은 어떻게 되는가? 요약하면, 제1계명(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 숭배죄)과 2계명(우상숭배죄)을 어긴 자는 저주와 파멸을 당한다. 제3계명(하나님의이름오용죄)은 어떤 형벌이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다. 제4계명(안식일범한죄)죄을 어긴 자는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며, 대가 끊기는 형벌을 받게 된다(출31:14). 제5계명(부모공경거역죄)과 제6계명(살인죄)과 제7계명(간음죄)을 어긴 자는 죽임을 당하는 형벌을 받는다. 제8계명(도둑질)은 시간과 물질에 대한 도적질인데, 2배에서 5배까지 되갚아주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해, 도둑질한 죄를 짓게 되면 집안이 거의 파산이 나게 되는 것이다. 제9계명(거짓증거죄)을 어기는 자는 자신이 위증하려 상대방을 힘들게 하려 했던 것만큼 그대로 갚아준다고 했다. 제10계명(탐심죄)을 어기는 자에게는 따로 형벌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이것은 다른 모든 계명들의 원인이 되는 죄이기 때문에, 이것 때문에 부모거역죄, 살인죄, 간음죄, 도둑질죄 등이 나오며, 1~4계명을 어기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정리해보면, 제1계명과 2계명을 어기는 죄는 저주(질병, 빼앗김, 없어짐, 일찍죽음...)와 죽음의 형벌을 받으며, 제4계명과 5계명, 제6계명과 7계명을 어긴 자는 죽음의 형벌을 받는다. 그리고 제8계명은 어긴 자는 가난의 형벌을 받게 되고, 제9계명을 어긴 자는 재앙을 받는다. 고로 우리가 오늘날 예수님을 믿어도 질병과 가난과 풍비박산 등의 저주와 재앙을 받고 결국 파멸에 이르는 모든 것들이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이다.

 

8. 나오며

  사람이 범하는 가장 큰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다. 그러면 이 사람은 죄를 사함받을 수가 전혀 없다. 오직 사람의 죄는 흠없는 속죄양으로 오셔서 대신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피만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십계명을 어긴 죄가 크다. 십계명을 어기면 그것으로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그것은 내게 저주와 죽음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잘 모른다. 그래서 온갖 저주와 재앙을 받으면서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그때에 회개를 하게 된다. 진즉 십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오늘같은 처절한 고통을 경험하지 않았을 것을. 너무나 많이 늦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러한 사실을 알았으니 회개하자. 십계명을 어긴 죄는 자동으로 용서되지 않는다. 그것은 반드시 회개함으로서 용서된다. 그러므로 생각나는 십계명을 어긴 죄들은 무조건 자백하라. 그리고 용서를 구하라. 그리고 다시는 십계명을 어기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한 번 생각해보라. 예수도 믿고 우상도 섬기는데 이 사람이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른지를 말이다. 주께서 장차 재림하실 때에는 오직 정결한 처녀만을 신부로 취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건투를 빈다.

 

2019년 7월 21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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