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교회, 첫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라고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 교회가 잃어버렸다고 알려진 '처음 사랑'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보통은 그것이 예수님을 처음으로 믿게 되었을 때 주님을 만나서 감격하고 고마워하고 눈물로 찬양하던 일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 그러한 의미였을까? 헬라어원문을 통해 살펴보는 에베소교회의 상태, 그것은 교회가 없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나의 상태는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1. 들어가며

  이 땅 위에는 과연 어떤 교회들이 세워지고 있을까? 그리고 사라지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어떤 교회를 칭찬해주시고 격려해주실까? 또한 우리 주님께서는 어떤 교회를 책망하시고 꾸중하실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죄와 죽음과 사탄마귀를 이기어 승리하는 자들이 된다면,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떤 복을 주시는 것일까? 그 이야기가 바로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나온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요한계시록에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게 주신 말씀(계2~3장)을 차례차례 공부해보고자 한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소아시아교회 가운데 첫번째 교회로 언급되고 있는 에베소교회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계2:1~7)에 대해 공부해보고자 한다.

 

2. 천상에 계신 예수님은 어떤 모습을 지니셨으며,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가?

  먼저, 천상에 계신 예수께서는 어떤 모습으로 거기에 계시며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다시 말해 부활승천하사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요한계시록 1:9~20에 의하면, 그분의 모습은 곧 하나님의 모습이며, 그분은 거기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다. 그것은 그분의 오른속에 일곱 별들을 꽉 쥔 채로,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시다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일곱별과 일곱 금촛대는 무엇인가? 일곱 별은 일곱교회의 사자(앙겔로스)를 가리키며, 일곱 금촛대는 일곱교회를 가리킨다(계1:20).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러한 것이라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계1:20). 그렇다. 승천하사 하늘 위에 계신 예수님의 제일 큰 관심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분은 항상 교회에게 관심이 있으며, 더욱이 그 교회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사자(메신저)에게 관심이 있음을 알 수 있다.

 

3.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는 어떤 교회들이며,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는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일곱교회만을 향하여 편지를 쓰라고 하셨을까? 다시 말해, 왜 일곱교회를 언급한 것인가? 당시 소아시아에는 요한계시록 2~3장에 등장하는 일곱교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교회들이 실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께서는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 가운데 딱 일곱 교회만을 선별하시어 그 교회에 편지를 써 보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항상 말미쪽에 가서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말씀하셨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어떤 특정한 교회를 지정해서 편지를 쓰라고 하신 것이기는 하지만, 그 내용들은 모든 교회들가 다 알아야 할 말씀인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곱교회에게 보내라고 명령하신 편지의 내용들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그것은 대체로 7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누구에게 보내는가이다. 예를 들어, 에베소교회의 경우는 "에베소교회의 사자들에게"라고 되어 있다. 둘째, 뭐라고 명령을 하신다. "편지를 쓰라" 셋째, 누가 보내는가이다. 이때 예수님은 자신을 여러가지 모습으로 계시하는데, 그분의 모습과 활동들은 요한계시록 1:9~20에 나오는 인자같은 이이신 예수님 곧 하나님이신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넷째, 칭찬과 격려의 말씀이 나온다. 이어서 다섯째, 책망하고 꾸중하시며 경고하시는 말씀이 나온다. 그리고 여섯째,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청종하라는 권면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일곱째, 각 교회의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 나온다. 이 약속의 말씀 또한 각기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데, 모두가 다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씀하시는 것들이다.

 

4. 각 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제, 예수께서 써 보내라고 했던 말씀 중에서, 에베소교회에게 써 보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사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석방법일 것이다. 그래서 각 교회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도 성경의 원문대로 읽어보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에베소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께서 에베소교회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가장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잃어버린 '처음 사랑'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자칭 사도'와 '니골라당의 행위들'도 같이 살펴봐야 한다. 만약 이 의미들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교회가 어떻게 되어서 사라지게 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사실 일곱교회 가운데 교회를 없애버리시겠다고 한 것은 에베소교회 뿐인데, 그들이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회개하지 않고, 처음 행위들을 행하지 않을 때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5. 에베소교회에게 주신 말씀은 무엇인가?

  자, 그렇다면, 헬라어 원문상으로 에베소교회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이었는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1절) 에베소 교회 안에 있는 전달자(앙겔로스)에게 써라. 그의 오른손 안에 일곱 별들을 붙잡고 계시는 이, 일곱 금 등잔대 가운데 안에 거니시는 이가 이것들을 말씀하신다.

(2절) [내가] 너의 행위들을 알아왔다. 그리고 수고를 그리고 너의 인내를. 그리고 네가 악한 이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을 그리고 [너는] [자칭] 사도들이라고 [계속해서] 말하는 자들을 시험했다. 그리고 아닌 것을. 그리고 [너는] 그들이 거짓되다는 것을 드러내었다(밝혀내었다).

(3절) 그리고 [너는] 참았다. 그리고 네가 견딤을 가지고 있다. 나의 이름을 위하여 수고해왔다. 그리고 지치지도 아니해왔다.

그리고 에베소교회의 전달자는 참았고 견디어냈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위하여 수고했으며 또한 예수님의 이름 곧 예수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에 지치지도 않고 일했다.

(4절) 그러나 [내가] 너를 대항할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네가 너의 처음의 사랑(아가페)을 버렸다는 것을

(5절)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진 채 있었는지를 [계속해서] 기억해보라. 그리고 [단호하게] 회개하라. 그리고 여 처음의 행위들[즉각] 행하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에게 간다. 그리고 만일 네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의 등잔대를 그것의 자리에서 옮겨버릴 것이다.

(6절) 그러나 [네가] 이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들을 미워하는 것이다. 나도 도한 이것을 미워한다.

(7절) [현재] 귀를 가지고 있는 자는 그 영이 교회들에게 [현재] 말씀하고 있는 것을 [단호하게] 들어라. [현재] 이기고 있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낙원의 가운데 안에 [지금] 있는 생명나무로부터 먹도록 그에게 줄 것이다.’

 

가. 수신자로서 에베소교회의 사자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예수께서는 누구에게 편지를 쓰라고 하셨는가? 1절에 보니, 에베소교회의 사자라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사자'라는 말은 헬라어로 '앙겔로스'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대부분 천사로 번역되어 있다. 하지만 이 단어가 '사자' 즉 '전달자' 내지는 '메신저'라고 번역되는 곳도 있다. 원래 이 단어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자'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대부분 천사라고 번역되어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는 천사일까 사람일까? 천사는 아니다. 왜냐하면 서머나교회와 버가모교회의 경우에 보면,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죽기까지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천사는 죽을 수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오는 '사자'라는 것은 각 교회들의 메시지 전달자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각 교회의 주의 종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천상에 계시지만 교회에 관심이 가장 많으시다. 그렇지만 교회의 구성원 중에서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의 종들에게 가장 관심이 많으시다.

 

나. 송신자로서 예수님은 자신을 누구라고 소개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은 에베소교회의 말씀전달자에게 자신을 무엇이라고 소개하고 있는가?(2절) 그것은 첫째,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시다고 하셨다. 일곱별은 일곱교회의 말씀전달자이고, 오른손은 권세와 능력과 승리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예수님께서는 능력으로 교회의 말씀전달자를 붙들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둘째,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신다고 하셨다. 이는 예수께서 비록 천상에 계시지만 이 땅의 교회를 감찰하시고 돌보신다는 말해준다.

  한편 천상의 예수님은 에베소교회의 말씀전달자의 행위들을 다 알고 있다고 하셨다(3절). 여기서 '아신다'는 말은 배워서 아는 '기노스코'가 아니라, 초자연적으로 절대적으로 안다는 '오이다'라는 뜻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모든 교회의 형편과 모든 교회의 목회자들을 다 직감적으로 다 아시고 있다. 특히 '아신다'는 단어가 직설법, 완료, 능동태 구문인 것은 그분은 오래전부터 그 교회의 모든 것을 알아오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신다'는 내용이 이 교회를 칭찬하려는 것이라면 참 좋겠지만 이 교회를 책망하는 것이라면 주님은 곧 심판자로서 임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행히도 에베소교회는 주님이 아신다고 하는 내용이 칭찬히 상당히 많이 있고 이어서 책망이 나온다. 그런데,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두아디라교회는 칭찬할만한 것을 아신다는 것이 아니라 책망할 것을 아신다는 뜻으로 나오니, 얼마나 예수님이 두려운 분이신가?

 

다. 에베소교회가 들었던 칭찬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에베소교회의 말씀전파자는 무엇 때문에 칭찬을 들었던 것일까? 그것은 2~3절에 나온다. 예수님은 그 교회의 사자의 수고함과 참고 견디어낸 것을 아시고 있었다. 특히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고 말을 하고 다니지만 그들을 시험하여 그들 중에 어떤 이는 거짓사도인 것을 드러낸 것을 주님은 아시고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에베소교의 사자는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수고해왔다. 그러나 지치지도 아니한채 끊임없이 그 일들을 해온 것이다.

 

라. 에베소교회가 들었던 책망은 무엇인가?

  그런데 에베소교회는 책망받을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치명적인 것이었다. 만약 그것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그 교회의 촛대를 옮겨버리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교회는 사라지고 다른 교회가 그 자리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교회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과거에 행했던 처음의 사랑이다(4절). 

 

마. 에베소교회가 잃어버렸던 "처음 사랑"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에베소교회의 처음 사랑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많은 학자들은 에베소교회가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라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 처음으로 예수님을 알게 된 후 감격적으로 그분을 만나서 감사하고 감격했던 그분과의 사랑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본문에서 그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교회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에 실천해왔던 희생적인 사랑(아가페)를 가리킨다. 그것은 결코 감정이 아니며,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행위들이었다. 그것은 5절에서,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방법을 일러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확실하게 나온다. 5절을 읽어보자.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진 채 있었는지를 [계속해서] 기억해보라. 그리고 [단호하게] 회개하라. 그리하여 처음의 행위들을 [즉각] 행하라(실천하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에게로 [지금] 간다. 그리고 만일 네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의 등잔대를 그것의 자리에서 옮겨버릴 것이다." 그렇다. 에베소교회의 사자 내지는 에베소교회는 처음의 행위들로 인해 주님을 기쁘시게 했으며, 그것 때문에 에베소교회가 존재할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언젠부턴가 그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6절에 나오는 니골라당의 행위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7절에 나오는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1절에 나오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소개하고 있는 부분과도 관련되어 있으며, 2절에 나오는 자칭 사도라 말을 하는 자가 있었지만 그가 거짓된 자인 것을 드러낸 것과도 관련이 있다.

  먼저, 6절에 나오는 니골라당의 행위들에 대해 살펴보자. 니골라당의 행위들에 대한 해석을 보면, 어떤 이는 평신도 위에 어떤 지배층이 군림하는 것이란 해석을 내놓고 있는데,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빗나간 해석이다. 왜냐하면 니골라당이 다른 교회에서는 주님께서 책망하는 문맥에서 나오고 있는데, 그 행위가 발람의 교훈(버가모교회)과도 비슷하며, 이세벨의 가르침(두아디라교회)과도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회의 지도자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음행을 저지르는 행위를 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가르치는 것이었다(이것은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고로, 니골라당의 행위들이란 에베소교회에 찾아온 어떤 지도자가 당을 지어 우상숭배와 음행이 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하면서 허용한 것을 가리킨다. 이것을 주님께서 미워하신다고 하셨고, 이것을 에베소교회도 미워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6절). 또한 7절에서 예수께서는 에베소교회의 이기는 자들에게 복을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낙원 가운데 안에 있는 생명나무로부터 먹을 수 있도록 그것을 주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기는 자들로 하여금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도록 하신다는 뜻이다. 그리고 1절에 예수께서 당신을 소개하실 때에 자신을 '일곱별을 붙들고 계시는 이"라고 하셨다. 또한 2절에 보면, 에베소교회에 어떤 사도가 왔는데, 그가 거짓 사도인 것이 발각되어 쫓겨나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결국, 에베소교회가 잃어버렸언 '처음 사랑'이란 곧 주의 종을 환대하여 그 사람들을 주님이 반기듯 극진히 대접하고 그들의 말에 순종했던 것을 의미한다. 에베소교회의 원래 가장 큰 자랑은 사도들과 같은 말씀전달자들을 주님처럼 잘 대접한 것에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말씀사역자들이 자기 교회를 찾아올 때마다 극진히 대접했던 것이다. 잔치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때에는 거짓 사도가 와서 거짓된 가르침 곧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전파했던 것이다. 그러자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에베소교회는 그가 진짜 사도인가를 시험해보았던 것이다. 그랬더니 아니가 다를까 그는 잘못된 가르침을 가르치는 가짜 사도였던 것이다. 그리로 그러한 일들을 여러 번 경험하다보니, 에베소교회의 사자와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이제는 무조건 환영하던 처음 행위들을 잃어버리고 무조건 그가 가짜인지부터 시험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도 공생애기간에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면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마10:40-42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랬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은 것을 먹으라(눅10:8)." 그런데 에베소교회는 유별나게 주의 종들을 잘 섬기고 대접했던 것이다. 아마도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사르밧과부처럼 섬겼는지 모른다. 하지만 말씀전달자들 중에 가짜가 더러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사도라 해서 사도라고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시험해보고 분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어찌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에게서 섬기는 희생적인 사랑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전부 뱁새 눈을 뜨고 지켜보게 된 것이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 교회의 아름다운 미덕을 다시 회복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그동안 말씀사역자들을 소홀히 대접하고 홀대했던 것을 회개하고 그들을 예수님을 맞이하듯 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를 없애버리시겠다고 하셨다. 교회는 말씀사역자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에베소교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였다. 이 교회는 칭찬과 있었고 책망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 매우 중대했다. 그것은 처음에 그들이 목회자들에게 했던 희생적인 섬김의 행위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은 거짓교리나 이단의 가르침을 분별해내려고 하다가 나타난 부득불의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된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주님께서는 어떤 사도가 가짜인지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내었고, 니골라당의 행위들을 미워하는 것에 대해 칭찬하셨다. 하지만 항상 이렇게 해서는 아니 된다. 주의 종을 존중하지 않는데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주의 종을 섬기지 않는데 어찌 이 땅에 물질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도 이제는 처음 사랑을 잃버리고 실천하지 않고 있는 것을 회개하자.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없어지고 말아서 더이상 신앙생활을 할 곳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제1부 예수 안에서 '칠전팔기'
"전도나 책 세일은 처음부터 거절되고, 거부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1. 첫 이력서
2. 기쁜 소식을 함께 판다
3. 전 세계 서적 판매왕
4. 빅 세일즈맨으로 우뚝 서다
5. 예수에 중독되다

 

 

 

제2부 성공으로 향한 비전
"세상만사가 해가 뜰 때가 있으면 해가 질 때가 있는 법이더라."

 

1. 성공하는 사람
2. 아버지, 나의 아버지
3. 금의환향
4. 전쟁의 포화 속에서
5. 부잣집 도련님
6. 내 생애 첫 번째 위기
7. 학보병 가다
8. 고진감래

 

 

 

제3부 절망을 딛고 희망으로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것이 내 승리의 신념이 되었다."

 

1. 집안을 일으키리라
2. 자전거 배달부
3. 뒷주머니 속 영어사전
4. 약도매상 시작하다
5. 6년 만에 꿈을 이루다
6. 100% 된다는 신념으로
7. 두 번의 자살기도

 

 

 

제4부 푯대를 향하여
"낮아지며 봉사하며 섬길 때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은혜!"

 

1. 기도원으로 숨어들다
2. 하나님께로 인도한 아내
3. 기도원의 심부름꾼으로
4. 3년 반의 기도원 생활
5. 기도원의 해결사?
6. 모든 것 주께 맡기니

 

 

 

제5부 최악에서 최고로
"불가능한 조건들을 선한 도구로 가능케 사용하신 하나님"

 

1, 원인 모를 40도의 고열
2. 택시운전사로 복음 전하다
3. 공짜가 없으신 하나님
4. 지하 단칸방의 축복
5. 자녀들을 통한 북방선교
6. 예수 안의 '칠전팔기'

 

제1부 예수 안에서 '칠전팔기'
"전도나 책 세일은 처음부터 거절되고, 거부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1. 첫 이력서
2. 기쁜 소식을 함께 판다
3. 전 세계 서적 판매왕
4. 빅 세일즈맨으로 우뚝 서다
5. 예수에 중독되다

 

 

 

제2부 성공으로 향한 비전
"세상만사가 해가 뜰 때가 있으면 해가 질 때가 있는 법이더라."

 

1. 성공하는 사람
2. 아버지, 나의 아버지
3. 금의환향
4. 전쟁의 포화 속에서
5. 부잣집 도련님
6. 내 생애 첫 번째 위기
7. 학보병 가다
8. 고진감래

 

 

 

제3부 절망을 딛고 희망으로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것이 내 승리의 신념이 되었다."

 

1. 집안을 일으키리라
2. 자전거 배달부
3. 뒷주머니 속 영어사전
4. 약도매상 시작하다
5. 6년 만에 꿈을 이루다
6. 100% 된다는 신념으로
7. 두 번의 자살기도

 

 

 

제4부 푯대를 향하여
"낮아지며 봉사하며 섬길 때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은혜!"

 

1. 기도원으로 숨어들다
2. 하나님께로 인도한 아내
3. 기도원의 심부름꾼으로
4. 3년 반의 기도원 생활
5. 기도원의 해결사?
6. 모든 것 주께 맡기니

 

 

사람은 왜 고난을 받게 되는가?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고난이 찾아왔는데 회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탄이 주는 핍박의 고난인데도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그를 낮추고 그를 돌아보게 하고 자신의 사명에 충성하게 하려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고난인데도 그것을 두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오늘은 시편119편의 기자인 다윗이 어떠한 고난을 받았으며, 그러한 고난에 다윗은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통해서, 고난의 현장에서 표현한 그의 놀라운 신앙고백 즉 "고난이 유익이라"고 말했던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여러분도 고난을 통해서 다윗처럼 영적으로 놀라운 성장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1. 사람은 왜 고난을 받을까?

  사람은 왜 고난을 받게 되는 것인가?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일도 잘 풀리고 건강하게 살고 복을 누려야 하는데 왜 현실에는 그렇지 못할까? 그렇다면 왜 사람은 고난을 받게 되는 것인가? 고난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며, 또한 그것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고난을 통과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무엇인가? 오늘은 시편119편의 말씀을 통하여 고난의 원인과 대처방법 그리고 고난의 유익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사람이 받는 고난에는 3종류가 있다.

  사람이 받는 고난에는 크게 3종류가 있다. 첫째는 자신이 지은 죄나 부모님이 지은 죄로 인한 고난이 있다. 이런 고난은 질병과 환난과 자녀의 어려움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보자. 예수님을 믿고도 계속해서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를 통해서 우상을 숭배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계2:22~23에 보면,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 예수님을 믿고도 우상숭배하는 자들의 징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것은 본인이 질병의 침상에 던져지게 될 것이며, 그를 믿고 따르는 동료들은 환난 가운데 빠지게 되고, 자녀는 철저하게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예수님을 믿고도 우상숭배하면 본인의 중병이나 불치병 그리고 동료의 환난, 자녀의 비명횡사까지 죄에 대한 댓가로 인하여 큰 고난을 겪게 된다. 둘째는 사탄에 의한 고난이 있다. 이것은 대부분으로 핍박으로 온다. 왜냐하면 사탄이 불신자들을 써서 핍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없이 받는 고난이 있다면 그것은 상당 부분이 사탄이 주는 고난일 것이다. 이때는 불신가족이나 공동체로부터 핍박과 어려움을 당하게 되고 공동체에서 추방되며, 재산을 몰수당하거나 심지어는 묵숨까지 빼앗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대표적인 사례는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의 경우다. 셋째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고난이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대체로 4가지 경우가 있는데, 첫번째로는 하나님을 만나고 믿어야 할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것에만 계속 추구할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고난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경우가 오늘날 신섭장로님의 삶과 같은 경우다. 두번째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많아서 교만해질 가능성이 있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고난이 있다. 이런 대표적인 경우는 사도바울과 같은 경우다. 이런 경우는 죽을 때까지 고난이 자기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세번째로, 자신의 고난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불순물이 하나도 가미되지 아니한 순수하고 온전한 신앙인이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고난이 있다. 이런 예는 구약의 욥의 경우가 있다. 네번째로, 가끔씩은 자기가 고난을 이겨내었을 경우 다른 사람이 겪는 고난에 도움을 주도록 허락하시는 고난이 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고난은 119편의 저자의 고난이다. 시편119편의 저자는 왜 고난을 받았는가? 그리고 그가 고난을 받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으며, 그는 고난을 어떻게 이겨내었는가? 그리하여 고난에 직면했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며, 고난을 통과하는 자가 받게 되는 유익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3. 고난 앞에서 시편119편의 기자는 어떻게 대처했는가?

  모든 사람은 고난을 만나면 원망하고 불평하기 일쑤다. 왜 나에게만 이러한 고난을 주어지느냐면서 하소연한다. 그리고 하루 속히 고난이 자기에게서 떠나가기를 바란다. 그런데 고난이 힘들다고 무조건 고난이 떠나가기만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인가? 고난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익은 하나도 없는가? 아니다. 시편기자는 고난이 주는 유익이 있기에 고난 앞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였다. 대체 시편기자는 누구였길래 이런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래서 먼저는 시편119편의 기자가 누구인지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4. 시편119편의 기자는 대체 누구인가?

  시편119편의 기자는 누구인가?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그가 다윗일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게중에는 포로기이후 율법에 능통한 학자였던 에스라였다고 하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경건한 신앙회복을 부르짖었던 마카비시대의 한 인물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시편119편의 기자가 당한 고난을 통해서 그가 누구였는지를 찾아보도록 하자. 첫째로 그는 땅에서 나그네처럼 떠돌아다녔다고 했다(시119:19). 이는 이 시편기자는 다윗임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다윗은 20세에서 30세까지 약 10년동안 사울왕을 피해서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와 이스라엘의 주변나라에서 떠돌아다녔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는 교만하여 주의 계명을 떠난 자들 곧 악인으로부터 비방과 멸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고관들에게까지 그렇게 거짓으로 비방을 당했다고 했다(시119:21~22,61,23,161절). 이것도 역시 다윗이 사울왕으로부터의 고난을 받았음을 암시한다. 셋째로, 이것은 결정적이다. 그가 왕들 앞에서 주의 교훈을 말한 적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46절). 이는 다윗이 사울왕을 비롯하여 주변나라의 왕들앞에서 주의 말씀을 말한 적이 있기 때문에 더욱 시편119편의 저자가 다윗임을 입증해준다. 에스라나 마카비시대의 한 인물은 이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 넷째로, 이 시편기자는 매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매우 좋아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시편119편기자는 율법이나 율례 등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모하는지 모른다. 이것은 시편18편이나 19편에 나오는 말씀과도 일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참고로 시편18편과 19편은 다윗의 시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로 우리는 시편119편의 저자가 다윗일 것으로 추정해 볼 수가 있다.

 

5. 다윗은 왜 고난을 받았을까?

   그렇다면, 시편119편의 기자 곧 다윗은 왜 고난을 받았던 것일까? 서론에서 우리는 사람이 고난을 받는 3가지 이유를 살펴보았다. 마찬가지로 다윗이 고난을 받게 된 이유와 이와 비슷하다. 다윗이 고난을 받았던 첫번째 이유는 악한 자들의 거짓된 모함과 그들의 시기질투심 때문이다. 어디에서 잘 나가는 자들에 대한 시기질투심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기질투심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기도 하다. 이때 다윗을 괴롭힌 자는 사울왕이다. 이러한 경우는 죄를 짓지 아니했지만 고난받는 경우로서 사탄이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는 자들을 싫어하기 때문에 사람을 동원하여 핍박하는 경우다. 사울왕은 다윗이 자신의 사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시기했고 미워했으며 죽이려고 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고난에 대처해야 할까? 다윗은 2가지 방법으로 대처했다. 하나는 고난을 직접 감내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고난으로부터 피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제자들이 나가서 예수의 이름을 전하는 것 때문에 핍박을 받게 될 것인데 그때에는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피하라고도 하셨으며(마10:21~23), 때로는 고난을 감내하면서 고난에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하셨다(마5:11~12). 그렇다. 다윗은 처음에는 고난을 감내했다. 하지만 날마다 목숨에 대한 위협이 심화되자 사울왕을 피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다윗이 고난을 받은 두번째 이유는 자신이 지은 죄 때문이다. 다윗은 일평생에 큰 죄를 두 번 지었다. 하나는 그의 나이 40세 되었을 때에 죄를 지었고, 또 하나는 그의 나이 65세 때에 죄를 지었다. 첫번째 죄는 탐심으로 인한 간음죄와 살인교사죄가 그 죄였다.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었고, 7년동안 헤브론에서 다스렸다가 여부스족속으로부터 시온산성을 빼앗은 뒤에 예루살렘으로 도성을 옮겼다. 그리고 3년이 지나갔다. 이제는 말 한 마디만 하면 모든 것이 움직여지는 시기가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영적 긴장의 끈이 풀어질 때에 그만 그는 실수하고 말았다. 육체의 정욕을 따라 행함으로 남의 아내를 욕을 보였고, 이 사실을 감추고자 그의 남편인 충실한 장수 우리야를 적진의 최전방에 보내 죽게 하였다. 그런데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받게 되는 고난이 있다면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죄를 회개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이 이런 못된 죄를 범하자 나단 선지자를 보냈다. 그러자 다윗은 즉시 엎드려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는데, 그는 밧세바나 우리야에게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죄를 범했다고 했다(삼하12:13, 시51:3~4). 그는 정확히 누구에게 죄를 범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회개했다. 하지만 구약시대는 아직 메시야가 죄를 대속하기 전의 상황이므로,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한 징계를 받아야 했다. 그는 자기가 말한대로 4배의 징계를 겪어야 했으니, 첫째로, 간음죄에 대한 징계로서 자신의 후궁들이 백주대낮에 자신의 셋째아들에 의해 간통을 당하는 사태를 맞이해야 했다. 그리고 둘째로, 살인죄에 대한 징계로서, 자신의 4명의 아들이 자기보다 먼저 죽임당해야 했다. 첫째로는 밧세바와 간음을 통해 낳은 아들을 일주일만에 잃었으며, 둘째로는 장자 암몬을 셋째아들 압살롬에 의해 잃었으며, 셋째로는 셋째 압살롬을 자신의 충성스런 장수 요압장군을 통해 잃었으며, 마지막으로, 넷째 아들 아도니야를 자신의 10째아들로 추정되는 솔로몬에 의해 잃어야 했다. 그러니 죄짓지 말라. 자신의 범한 죄로 인하여 받는 고난은 회개 후에도 일정한 징계를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회개한 죄 때문에 지옥에 떨어질 리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죄는 그의 나이 65세 때에 있었는데, 인구조사를 시킨 죄였다. 다윗이 잠깐 하나님을 힘입지 아니하고 군사력을 의지하려 했던 것이다. 아마도 이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자, 아들을 걱정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겠는가 싶다.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 다윗은 곧바로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징계가 내려 벌써 염병으로 7만명이 죽어가고 있었다. 다윗은 즉시 여호와 앞에 엎드려 회개했다. 그리고 죄없는 백성을 살려주시고 자기와 자기의 아버집을 치시기를 간구했다.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징계가 거두워지는 방법을 알려주었으니,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염병이 그치게 되었다. 나중에 그 타작마당에서 주예수님이 돌아가셨으니 인류의 모든 죄가 주 예수님에 의해서 해결될 수 있음을 그때 다윗은 미리 경험했던 것이다.

  다윗이 고난은 받은 세번째 이유는 다윗자신이 직접 죄를 범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고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것은 그의 나이 45세 되던 해에 있었다. 그의 나이 45세 되던 해 3년동안 계속해서 기근이 찾아온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의 죄 때문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것은 사탄에 의한 핍박의 경우도 아니었다.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징계는 징계였다. 이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은 하나님이 뜻이 담겨있는 고난이기에 이때에는 무슨 이유인지 찾아내야 한다. 찾아내는 방법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해서 그 이유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울이 기브온거민을 죽인 죄로 인하여 그들의 하소연이 하늘에 상달되었기 때문인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사울왕 때에 잘못 행한 범죄 때문에 다윗의 시대에 기근이 찾아온 것이다. 그렇다. 다윗은 이러한 고난으로 인하여 어떻게 했던 것일까? 그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먼저 자신에게 범죄가 있었는가를 돌아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부르심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왕으로서 다스리는 자는 결코 자기의 백성에게 억울한 일 당하도록 만들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으로서 자신의 사명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이다.

 

6. 다윗이 고난에 대처했던 3가지 방법은 무엇이었는가?

  그렇다. 다윗은 자신이 고난을 받을 때 어떻게 처신했는가? 그는 3가지로 대처했다. 첫째는 까닭없이 사탄이 주는 핍박의 고난 앞에서는 그것을 감내하면서 때로는 고난의 현장을 벗어남으로 대처했다. 그렇지만 다윗은 결코 사울왕을 해치지 않았으며, 그가 죽은 후에는 그의 자손들을 철저히 자기자녀들처럼 보살펴주었다. 선으로 악을 갚은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자신의 범죄한 경우에는 즉시 회개함으로 자신이 지은 죄를 통회자복하며 아파했다. 그리고 그러한 죄를 두번 다시 짓지 아니했다. 그는 간음죄와 살인죄를 두 번 다시 짓지 않기 위해 일평생 애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닌 것을 의지하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 셋째는 아무런 이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이 닥쳐왔을 때에는 그는 자신을 뒤돌아보았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그 이유를 알아냈으며, 그 이유를 하나씩 하나씩 해결함으로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깨닫고 실천할 수 있었다.

 

7. 고난이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

  그렇다. 고난이란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지 그것을 잘 대처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영혼과 인생의 미래에 매우 유익한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어떠한 고난이 자신에게 닥친다고 하더라도 고난에 대해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고난에 기뻐하며 감사함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윗은 어떻게 되었는가? 다윗은 사탄이 주는 핍박을 이겨낼 수 있었다. 사울왕은 결코 다윗을 죽일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생명싸개로 그를 싸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했기에 자신의 지은 죄를 해결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겸손한 임금이 되었으며, 왕으로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실천하는 성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에게 고난이 없었다면 이러한 놀라운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겠으며, 그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아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할 때 무조건 고난이 떠나가게 해 달라고 요청하지 말라. 오히려 그것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거기에 합당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를 바란다. 고난은 나를 더 거룩하고 경건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를 돌아보아 겸손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그것에 충성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결국 정금같은 믿음을 가진 자가 되게 해주어 천국에까지 들어가게 해 주는 유용한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편119편의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다.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명령과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고난은 어떤 고난이라도 내게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고난은 나를 더 거룩하고 온전한 자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고난은 나를 돌아보아 더욱 겸손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고난은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고난은 자신의 사명에 더 충성하는 자는 만들어 주기 때문에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고난이 닥쳐와도 감사하겠나니다.

주여, 이제는 고난이 닥쳐와도 기뻐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고난을 잘 견디어 내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고난 앞에서 죄를 회개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고난이 오면 나부터 돌아보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고난 앞에서 맨날 불평하고 원망하게 조장한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고난이 주는 유익을 보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고난 앞에서 인내할지어다. 회개할지어다. 자신을 돌아볼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모든 고난은 어떤 종류이든 내게 유익한 것이로구나.

2. 고난에는 사탄이 주는 핍박과 인간이 범죄로 인한 징계와 하나님의 뜻으로 인한 고난이 있구나.

3. 사탄이 핍박하는 고난은 견디어내거나 도망쳐야 하는구나.

4. 자신의 범죄로 인한 고난에는 회개부터 시작해야 하는구나.

5.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는 고난을 만나게 되면 먼저 하나님께 엎드려야 하는구나.

6. 내가 고난을 받으면 기뻐할 일이요 감사해야 할 일일 뿐, 결코 원망하고 불평해서는 아니 되는구나.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