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포기한다. 기도해 봤자 소용이 없더라는 의식이 팽배하다. 혹시 삶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돈벌어서 해결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우리 사회가 확실히 먹고 살기에는 어느정도 부족함이 없는 시대에 되어버린 것일까? 그런데 만약 기도하지 않고서 어떻게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가를 알 수 있을까? 그리고 기도응답을 받아본 일이 없는 자가 어찌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있을까?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즉 기도란 무엇이며, 또한 어떻게 기도를 드려야 하나님이 응답하시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도 기도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할까?

  믿는 자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도하는 것을 목숨 걸고 하지 않는다.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도 기도하지 않는 것일까? 아마도 기도가 절박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도 못살고 못입고 하던 시기가 지나갔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기도에 대한 응답을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 더 큰 이유가 아닐듯 싶다. 기도를 드린다고 해도 과연 기도에 대한 응답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하러 나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기도응답을 받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에 대해 크게 실망하지도 않는 것이 현대인들이다. 왜 이렇게 뜨뜻미지근한 신앙이 되어버렸을까? 그것은 아마도 기도가 왜 필요하며, 어떤 기도를 드려야 제대로 응받받는 기도를 드리는 것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기도는 성도의 가장 기초적인 신앙의 요소이지만 어떤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가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기도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는지를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확인해보고자 한다.

 

2. 왜 성도들은 기도해야 하는가?

  기도는 왜 필요한 것일까? 성도들은 왜 기도해야 하는가? 기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지만 그분과 교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며 비는 기도에 응답해주신다는 것을 믿는 자만이 기도하는 일이다. 또한 기도는 시간과 땀과 눈물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기도도 일종의 노동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일은 육체로 보기에는 약간 피곤한 일이 될 것이며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왠만한 문제라면 그냥 자신이 풀어버리려고 하지 하나님 앞에 일부러 기도하러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무엇으로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시며 그분이 나를 위해 준비해둔 천국이 진짜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때에 비로소 자기에게 확실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가 땀과 눈물을 필요로하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기도는 정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체험하고 천국의 실재를 믿을 수 있는 좋은 도구이자,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통로이기에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3. 기도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는 어떤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가?

  그런데 성도들의 기도에 있어서 가장 큰 관건은 과연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해주실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그것만 확실히 알 수 있다면 많은 성도들이 기도에 뛰어들 것이다. 자, 묻겠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기도를 들으시며 또한 응답해주시는가?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의 산상수훈의 말씀에서 기도에 관한 놀라운 영적 비밀들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있다. 그것은 마7:7~8에 나온다.

마7:7-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가. 기도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기도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지를 말씀하고 있다. 먼저, 기도는 구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구한다'는 뜻은 헬라어로 '아이테오'라는 동사로서 '요청한다. 요구한다'는 뜻이다. 이 동사와 비슷한 단어가 또 있는데 그것은 "기도한다(프로슈코마이)"는 동사와 "부르짖는다(외친다, 소리지른다)(크라조)"는 동사가 있다. 그렇다. 기도는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이며, 그분에게 무엇인가를 바라고 요구하는 것인데, 그냥 구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짖어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귀가 먹으셨는가? 왜 부르짖어 기도해야 응답하실까? 그것은 부르짖는 태도가 기도의 바른 자세이기 때문이리라. 부르짖는 것은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기도를 응답하시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기도를 드려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가? 그것은 동사의 형태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기도한다는 동사들이 거의 전부가 다 현재 명령법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헬라어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용법으로서, 기도는 한 번만 굳게 마음먹고 하는 일이 아니라 계속해서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 동사에 대한 명령법의 형태가 과거 명령형이 아니라, 현재 명령형이기 때문이다. 헬라어 명령법에는 현재 명령법과 과거 명령법이 있는데, 현재 명령법은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행하라는 명령이지만, 과거 명령법은 단호하게 한 번 굳게 마음을 멀고 행하라는 명령이다. 그런데 기도에 관한 명령어는 거의가 다 현재 명령형으로 나온다. 이는 기도는 한 번으로 끝낼 성질이 아니며, 끊임없이 계속해서 해야 할 일임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기도에 관한 교훈을 가르쳐주실 때에, "항상 기도하고 있어야 하고, 낙심하지 말고 있어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해주신 적이 있으셨다(눅18:1). 그것은 억울한 일에 대해 재판을 요청하는 어느 가난한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에 관한 비유에 들어있다. 어떤 도시에 돈만 밝히는 나쁜 재판관이 있었다. 그런데 한 과부가 그에게 찾아가서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나쁜 재판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계속해서 과부가 찾아와서 자기를 괴롭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 재판관이 마음을 바꾸게 된다. 왜냐하면 만약 그녀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면 계속해서 자기를 괴롭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과부의 청을 들어주고 만다. 이것이 예수님의 비유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눅18:7-8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다.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는가?

  우리는 과연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는가? 그것은 그분이 들어줄 때까지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분께 요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야 한다(마7:7~8). 한 번만 기도드리고 끝낼 성질의 것이 아니다. 왜나하면, "구하라"는 동사가 현재 명령형 형태이며,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라는 동사가 미래 수동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기도는 계속해서 해야 할 일이며, 기도에 응답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있을 것인데 그 시기는 우리가 정할 수 없고 하나님이 정하신다는 뜻이다. 특히 기도응답구문은 능동태구문이 아니다. 이는 '그것이 주어질 것이다'는 수동태 문장으로서, 하나님에 의해 기도가 끝마쳐질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 우리가 기도는 시작하지만 기도를 끝내시는 분은 오직 그분이다. 기도응답의 주권은 우리에게 있지 않다. 그분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번 기도를 시작했으면 계속해서 기도해야 한다. 그분으로부터 기도응답이 주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4. 기도는 한 번으로 끝낼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계속해서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하셨을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불의한 재판관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불의한 재판관에게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한 번만 드려도 기도에 응답해주시면 참 좋을텐데, 왜 계속해서 끊임없이 요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를 드리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렇다. 초신자 때에 하나님은 기도에 금방 응답해주신다. 왜냐하면 그래야 그가 하나님이 살아계신지를 알고 하나님을 믿고 붙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계속해서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한 번의 기도에 즉각즉각 응답하시는 경우는 흔지 않다. 끊임없이 쉬지 않고 요청하고 찾고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우리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신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해주고 싶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정말 하나님만을 찾고 의지하는지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시기 위함이다(눅18:8). 그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정말 있으면 그 사람은 기도를 쉬지 않을 것이다. 기도하다가 낙심하지도 않을 것이며 중도에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자신의 기도를 듣고 계시며, 응답해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다.

 

5.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

  그렇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분이시다(시65:2). 그분은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이시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소리를 들으신다. 사실 그분은 우리 지구로부터 이억만리 떨어진 머나먼 셋째하늘에 계신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수 있을까? 우리는 옆집에서 말하는 소리도 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은 이억만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 기도하는 우리 인간의 기도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지구에는 수만명의 기독교인들이 동시에 기도할텐데 어떻게 기도를 들으실 수 있을까? 그러니까 하나님은 전능자이심을 알 수 있다(창17:1). 그분은 시공간에 제한을 받는 피조물이 결코 아니시다. 그분은 창조주요 절대자요 전능자이시다. 그래서 신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다. 이 우주 가운데 오직 그분만이 신이시다. 그분만이 우리의 기도를 동시에 들으실 수 있고 동시에 응답하실 수가 있다. 어떤 이는 우리 성도들이 기도하면 천사가 그 기도를 받아서 하나님께 보고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다 맞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 천사는 하나님이 아니기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사가 우리의 기도를 받아서 하나님께서 보고할 때에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금향로에 담을 수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무소부재하신 신이므로 동시에 우리의 기도를 다 각각 따로 들으시고 동시에 응답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기도만큼은 하나님께서 직접 당신의 귀로 들으신다(시18:6, 6:9). 다만 천사가 중간에 하나님의 심부름을 받고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도를 다 천사가 담아서 하나님께서 바친다는 것을 불가능한 것임을 알라. 천사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약시대 참 신앙의 인물들은 자신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직접 듣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히스기야왕을 보라. 그는 자신이 드린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인물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의 힘을 벗어나는 일에 부딪혔을 때에 하나님 앞에 가서 엎드렸다(왕하19:20, 20:5). 그렇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전능한 창조주이며 절대자이신 것이다.

 

6. 나오며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으리라고 다짐했던 사무엘선지자처럼 기도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믿음으로 드린 기도는 결코 없어지지 아니한다. 하늘에 향처럼 연기가 되어 올라가기 때문이다(계8:3~5). 그래서 하나님께 전달된다. 그러나 기도는 한 번으로 끝낼 성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도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며, 상당히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하는 봉사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면, 기도도 일종의 자신의 상급이 되어 천국집을 멋지게 꾸민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힘들지만 자기의 주변을 둘러보라. 의외로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라와 민족이, 내 집안과 친척과 동료가, 내 교회와 내가 속한 공동체에게 기도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 보여질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기도를 일삼아 하기를 바라며, 항상 기도하되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도가 많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훨씬 더 강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건투를 빈다.

 

 

에베소교회, 첫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라고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 교회가 잃어버렸다고 알려진 '처음 사랑'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보통은 그것이 예수님을 처음으로 믿게 되었을 때 주님을 만나서 감격하고 고마워하고 눈물로 찬양하던 일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주님이 말씀하신 것이 그러한 의미였을까? 헬라어원문을 통해 살펴보는 에베소교회의 상태, 그것은 교회가 없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나의 상태는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1. 들어가며

  이 땅 위에는 과연 어떤 교회들이 세워지고 있을까? 그리고 사라지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어떤 교회를 칭찬해주시고 격려해주실까? 또한 우리 주님께서는 어떤 교회를 책망하시고 꾸중하실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죄와 죽음과 사탄마귀를 이기어 승리하는 자들이 된다면,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떤 복을 주시는 것일까? 그 이야기가 바로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나온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요한계시록에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게 주신 말씀(계2~3장)을 차례차례 공부해보고자 한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소아시아교회 가운데 첫번째 교회로 언급되고 있는 에베소교회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계2:1~7)에 대해 공부해보고자 한다.

 

2. 천상에 계신 예수님은 어떤 모습을 지니셨으며,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가?

  먼저, 천상에 계신 예수께서는 어떤 모습으로 거기에 계시며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다시 말해 부활승천하사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요한계시록 1:9~20에 의하면, 그분의 모습은 곧 하나님의 모습이며, 그분은 거기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다. 그것은 그분의 오른속에 일곱 별들을 꽉 쥔 채로,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시다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일곱별과 일곱 금촛대는 무엇인가? 일곱 별은 일곱교회의 사자(앙겔로스)를 가리키며, 일곱 금촛대는 일곱교회를 가리킨다(계1:20).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러한 것이라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계1:20). 그렇다. 승천하사 하늘 위에 계신 예수님의 제일 큰 관심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분은 항상 교회에게 관심이 있으며, 더욱이 그 교회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사자(메신저)에게 관심이 있음을 알 수 있다.

 

3.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는 어떤 교회들이며,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는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일곱교회만을 향하여 편지를 쓰라고 하셨을까? 다시 말해, 왜 일곱교회를 언급한 것인가? 당시 소아시아에는 요한계시록 2~3장에 등장하는 일곱교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교회들이 실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주 예수께서는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 가운데 딱 일곱 교회만을 선별하시어 그 교회에 편지를 써 보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항상 말미쪽에 가서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말씀하셨다. 이는 우리 주님께서 어떤 특정한 교회를 지정해서 편지를 쓰라고 하신 것이기는 하지만, 그 내용들은 모든 교회들가 다 알아야 할 말씀인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곱교회에게 보내라고 명령하신 편지의 내용들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그것은 대체로 7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누구에게 보내는가이다. 예를 들어, 에베소교회의 경우는 "에베소교회의 사자들에게"라고 되어 있다. 둘째, 뭐라고 명령을 하신다. "편지를 쓰라" 셋째, 누가 보내는가이다. 이때 예수님은 자신을 여러가지 모습으로 계시하는데, 그분의 모습과 활동들은 요한계시록 1:9~20에 나오는 인자같은 이이신 예수님 곧 하나님이신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넷째, 칭찬과 격려의 말씀이 나온다. 이어서 다섯째, 책망하고 꾸중하시며 경고하시는 말씀이 나온다. 그리고 여섯째,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청종하라는 권면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일곱째, 각 교회의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 나온다. 이 약속의 말씀 또한 각기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데, 모두가 다 천국에 들어가서 왕노릇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씀하시는 것들이다.

 

4. 각 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제, 예수께서 써 보내라고 했던 말씀 중에서, 에베소교회에게 써 보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사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석방법일 것이다. 그래서 각 교회에게 주신 예수님의 말씀도 성경의 원문대로 읽어보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에베소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께서 에베소교회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가장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잃어버린 '처음 사랑'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자칭 사도'와 '니골라당의 행위들'도 같이 살펴봐야 한다. 만약 이 의미들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교회가 어떻게 되어서 사라지게 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사실 일곱교회 가운데 교회를 없애버리시겠다고 한 것은 에베소교회 뿐인데, 그들이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회개하지 않고, 처음 행위들을 행하지 않을 때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5. 에베소교회에게 주신 말씀은 무엇인가?

  자, 그렇다면, 헬라어 원문상으로 에베소교회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이었는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1절) 에베소 교회 안에 있는 전달자(앙겔로스)에게 써라. 그의 오른손 안에 일곱 별들을 붙잡고 계시는 이, 일곱 금 등잔대 가운데 안에 거니시는 이가 이것들을 말씀하신다.

(2절) [내가] 너의 행위들을 알아왔다. 그리고 수고를 그리고 너의 인내를. 그리고 네가 악한 이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을 그리고 [너는] [자칭] 사도들이라고 [계속해서] 말하는 자들을 시험했다. 그리고 아닌 것을. 그리고 [너는] 그들이 거짓되다는 것을 드러내었다(밝혀내었다).

(3절) 그리고 [너는] 참았다. 그리고 네가 견딤을 가지고 있다. 나의 이름을 위하여 수고해왔다. 그리고 지치지도 아니해왔다.

그리고 에베소교회의 전달자는 참았고 견디어냈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위하여 수고했으며 또한 예수님의 이름 곧 예수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에 지치지도 않고 일했다.

(4절) 그러나 [내가] 너를 대항할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네가 너의 처음의 사랑(아가페)을 버렸다는 것을

(5절)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진 채 있었는지를 [계속해서] 기억해보라. 그리고 [단호하게] 회개하라. 그리고 여 처음의 행위들[즉각] 행하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에게 간다. 그리고 만일 네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의 등잔대를 그것의 자리에서 옮겨버릴 것이다.

(6절) 그러나 [네가] 이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들을 미워하는 것이다. 나도 도한 이것을 미워한다.

(7절) [현재] 귀를 가지고 있는 자는 그 영이 교회들에게 [현재] 말씀하고 있는 것을 [단호하게] 들어라. [현재] 이기고 있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낙원의 가운데 안에 [지금] 있는 생명나무로부터 먹도록 그에게 줄 것이다.’

 

가. 수신자로서 에베소교회의 사자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예수께서는 누구에게 편지를 쓰라고 하셨는가? 1절에 보니, 에베소교회의 사자라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사자'라는 말은 헬라어로 '앙겔로스'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대부분 천사로 번역되어 있다. 하지만 이 단어가 '사자' 즉 '전달자' 내지는 '메신저'라고 번역되는 곳도 있다. 원래 이 단어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자'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대부분 천사라고 번역되어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는 천사일까 사람일까? 천사는 아니다. 왜냐하면 서머나교회와 버가모교회의 경우에 보면,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죽기까지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천사는 죽을 수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 나오는 '사자'라는 것은 각 교회들의 메시지 전달자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각 교회의 주의 종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천상에 계시지만 교회에 관심이 가장 많으시다. 그렇지만 교회의 구성원 중에서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의 종들에게 가장 관심이 많으시다.

 

나. 송신자로서 예수님은 자신을 누구라고 소개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은 에베소교회의 말씀전달자에게 자신을 무엇이라고 소개하고 있는가?(2절) 그것은 첫째,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시다고 하셨다. 일곱별은 일곱교회의 말씀전달자이고, 오른손은 권세와 능력과 승리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예수님께서는 능력으로 교회의 말씀전달자를 붙들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둘째,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신다고 하셨다. 이는 예수께서 비록 천상에 계시지만 이 땅의 교회를 감찰하시고 돌보신다는 말해준다.

  한편 천상의 예수님은 에베소교회의 말씀전달자의 행위들을 다 알고 있다고 하셨다(3절). 여기서 '아신다'는 말은 배워서 아는 '기노스코'가 아니라, 초자연적으로 절대적으로 안다는 '오이다'라는 뜻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모든 교회의 형편과 모든 교회의 목회자들을 다 직감적으로 다 아시고 있다. 특히 '아신다'는 단어가 직설법, 완료, 능동태 구문인 것은 그분은 오래전부터 그 교회의 모든 것을 알아오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신다'는 내용이 이 교회를 칭찬하려는 것이라면 참 좋겠지만 이 교회를 책망하는 것이라면 주님은 곧 심판자로서 임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행히도 에베소교회는 주님이 아신다고 하는 내용이 칭찬히 상당히 많이 있고 이어서 책망이 나온다. 그런데,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두아디라교회는 칭찬할만한 것을 아신다는 것이 아니라 책망할 것을 아신다는 뜻으로 나오니, 얼마나 예수님이 두려운 분이신가?

 

다. 에베소교회가 들었던 칭찬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에베소교회의 말씀전파자는 무엇 때문에 칭찬을 들었던 것일까? 그것은 2~3절에 나온다. 예수님은 그 교회의 사자의 수고함과 참고 견디어낸 것을 아시고 있었다. 특히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고 말을 하고 다니지만 그들을 시험하여 그들 중에 어떤 이는 거짓사도인 것을 드러낸 것을 주님은 아시고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에베소교의 사자는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수고해왔다. 그러나 지치지도 아니한채 끊임없이 그 일들을 해온 것이다.

 

라. 에베소교회가 들었던 책망은 무엇인가?

  그런데 에베소교회는 책망받을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치명적인 것이었다. 만약 그것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그 교회의 촛대를 옮겨버리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교회는 사라지고 다른 교회가 그 자리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교회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과거에 행했던 처음의 사랑이다(4절). 

 

마. 에베소교회가 잃어버렸던 "처음 사랑"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렇다면, 에베소교회의 처음 사랑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많은 학자들은 에베소교회가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라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 처음으로 예수님을 알게 된 후 감격적으로 그분을 만나서 감사하고 감격했던 그분과의 사랑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본문에서 그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교회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때에 실천해왔던 희생적인 사랑(아가페)를 가리킨다. 그것은 결코 감정이 아니며,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행위들이었다. 그것은 5절에서,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방법을 일러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확실하게 나온다. 5절을 읽어보자.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진 채 있었는지를 [계속해서] 기억해보라. 그리고 [단호하게] 회개하라. 그리하여 처음의 행위들을 [즉각] 행하라(실천하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에게로 [지금] 간다. 그리고 만일 네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의 등잔대를 그것의 자리에서 옮겨버릴 것이다." 그렇다. 에베소교회의 사자 내지는 에베소교회는 처음의 행위들로 인해 주님을 기쁘시게 했으며, 그것 때문에 에베소교회가 존재할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언젠부턴가 그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6절에 나오는 니골라당의 행위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7절에 나오는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1절에 나오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소개하고 있는 부분과도 관련되어 있으며, 2절에 나오는 자칭 사도라 말을 하는 자가 있었지만 그가 거짓된 자인 것을 드러낸 것과도 관련이 있다.

  먼저, 6절에 나오는 니골라당의 행위들에 대해 살펴보자. 니골라당의 행위들에 대한 해석을 보면, 어떤 이는 평신도 위에 어떤 지배층이 군림하는 것이란 해석을 내놓고 있는데,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빗나간 해석이다. 왜냐하면 니골라당이 다른 교회에서는 주님께서 책망하는 문맥에서 나오고 있는데, 그 행위가 발람의 교훈(버가모교회)과도 비슷하며, 이세벨의 가르침(두아디라교회)과도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회의 지도자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음행을 저지르는 행위를 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가르치는 것이었다(이것은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고로, 니골라당의 행위들이란 에베소교회에 찾아온 어떤 지도자가 당을 지어 우상숭배와 음행이 죄가 되지 아니한다고 하면서 허용한 것을 가리킨다. 이것을 주님께서 미워하신다고 하셨고, 이것을 에베소교회도 미워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6절). 또한 7절에서 예수께서는 에베소교회의 이기는 자들에게 복을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낙원 가운데 안에 있는 생명나무로부터 먹을 수 있도록 그것을 주신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기는 자들로 하여금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도록 하신다는 뜻이다. 그리고 1절에 예수께서 당신을 소개하실 때에 자신을 '일곱별을 붙들고 계시는 이"라고 하셨다. 또한 2절에 보면, 에베소교회에 어떤 사도가 왔는데, 그가 거짓 사도인 것이 발각되어 쫓겨나게 되었음을 말해준다. 결국, 에베소교회가 잃어버렸언 '처음 사랑'이란 곧 주의 종을 환대하여 그 사람들을 주님이 반기듯 극진히 대접하고 그들의 말에 순종했던 것을 의미한다. 에베소교회의 원래 가장 큰 자랑은 사도들과 같은 말씀전달자들을 주님처럼 잘 대접한 것에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말씀사역자들이 자기 교회를 찾아올 때마다 극진히 대접했던 것이다. 잔치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때에는 거짓 사도가 와서 거짓된 가르침 곧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전파했던 것이다. 그러자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에베소교회는 그가 진짜 사도인가를 시험해보았던 것이다. 그랬더니 아니가 다를까 그는 잘못된 가르침을 가르치는 가짜 사도였던 것이다. 그리로 그러한 일들을 여러 번 경험하다보니, 에베소교회의 사자와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이제는 무조건 환영하던 처음 행위들을 잃어버리고 무조건 그가 가짜인지부터 시험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도 공생애기간에 자신의 제자들을 보내면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마10:40-42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그랬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은 것을 먹으라(눅10:8)." 그런데 에베소교회는 유별나게 주의 종들을 잘 섬기고 대접했던 것이다. 아마도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사르밧과부처럼 섬겼는지 모른다. 하지만 말씀전달자들 중에 가짜가 더러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사도라 해서 사도라고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시험해보고 분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어찌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에게서 섬기는 희생적인 사랑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전부 뱁새 눈을 뜨고 지켜보게 된 것이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 교회의 아름다운 미덕을 다시 회복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그동안 말씀사역자들을 소홀히 대접하고 홀대했던 것을 회개하고 그들을 예수님을 맞이하듯 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를 없애버리시겠다고 하셨다. 교회는 말씀사역자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6. 나오며

  에베소교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였다. 이 교회는 칭찬과 있었고 책망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 매우 중대했다. 그것은 처음에 그들이 목회자들에게 했던 희생적인 섬김의 행위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은 거짓교리나 이단의 가르침을 분별해내려고 하다가 나타난 부득불의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된다고 말씀하신다. 물론 주님께서는 어떤 사도가 가짜인지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내었고, 니골라당의 행위들을 미워하는 것에 대해 칭찬하셨다. 하지만 항상 이렇게 해서는 아니 된다. 주의 종을 존중하지 않는데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주의 종을 섬기지 않는데 어찌 이 땅에 물질의 축복을 받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도 이제는 처음 사랑을 잃버리고 실천하지 않고 있는 것을 회개하자.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없어지고 말아서 더이상 신앙생활을 할 곳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제1부 예수 안에서 '칠전팔기'
"전도나 책 세일은 처음부터 거절되고, 거부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1. 첫 이력서
2. 기쁜 소식을 함께 판다
3. 전 세계 서적 판매왕
4. 빅 세일즈맨으로 우뚝 서다
5. 예수에 중독되다

 

 

 

제2부 성공으로 향한 비전
"세상만사가 해가 뜰 때가 있으면 해가 질 때가 있는 법이더라."

 

1. 성공하는 사람
2. 아버지, 나의 아버지
3. 금의환향
4. 전쟁의 포화 속에서
5. 부잣집 도련님
6. 내 생애 첫 번째 위기
7. 학보병 가다
8. 고진감래

 

 

 

제3부 절망을 딛고 희망으로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것이 내 승리의 신념이 되었다."

 

1. 집안을 일으키리라
2. 자전거 배달부
3. 뒷주머니 속 영어사전
4. 약도매상 시작하다
5. 6년 만에 꿈을 이루다
6. 100% 된다는 신념으로
7. 두 번의 자살기도

 

 

 

제4부 푯대를 향하여
"낮아지며 봉사하며 섬길 때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은혜!"

 

1. 기도원으로 숨어들다
2. 하나님께로 인도한 아내
3. 기도원의 심부름꾼으로
4. 3년 반의 기도원 생활
5. 기도원의 해결사?
6. 모든 것 주께 맡기니

 

 

 

제5부 최악에서 최고로
"불가능한 조건들을 선한 도구로 가능케 사용하신 하나님"

 

1, 원인 모를 40도의 고열
2. 택시운전사로 복음 전하다
3. 공짜가 없으신 하나님
4. 지하 단칸방의 축복
5. 자녀들을 통한 북방선교
6. 예수 안의 '칠전팔기'

 

제1부 예수 안에서 '칠전팔기'
"전도나 책 세일은 처음부터 거절되고, 거부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1. 첫 이력서
2. 기쁜 소식을 함께 판다
3. 전 세계 서적 판매왕
4. 빅 세일즈맨으로 우뚝 서다
5. 예수에 중독되다

 

 

 

제2부 성공으로 향한 비전
"세상만사가 해가 뜰 때가 있으면 해가 질 때가 있는 법이더라."

 

1. 성공하는 사람
2. 아버지, 나의 아버지
3. 금의환향
4. 전쟁의 포화 속에서
5. 부잣집 도련님
6. 내 생애 첫 번째 위기
7. 학보병 가다
8. 고진감래

 

 

 

제3부 절망을 딛고 희망으로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것이 내 승리의 신념이 되었다."

 

1. 집안을 일으키리라
2. 자전거 배달부
3. 뒷주머니 속 영어사전
4. 약도매상 시작하다
5. 6년 만에 꿈을 이루다
6. 100% 된다는 신념으로
7. 두 번의 자살기도

 

 

 

제4부 푯대를 향하여
"낮아지며 봉사하며 섬길 때 나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은혜!"

 

1. 기도원으로 숨어들다
2. 하나님께로 인도한 아내
3. 기도원의 심부름꾼으로
4. 3년 반의 기도원 생활
5. 기도원의 해결사?
6. 모든 것 주께 맡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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