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22) 예수께서는 사람으로 실재하셨던 역사적인 사건이다(02)(계5:5~10)_2022-05-25(수)

https://youtu.be/F4xDeYvzvJc  [혹은 https://tv.naver.com/v/27080433 ]

 

1.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은 어떻게 소개되어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주 하나님이시자 동시에 사람이셨던 분으로 소개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신 후 아버지의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이자(계3:21, 20:11)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계5:6). 그렇다. 지금 예수께서는 원래 하나님이셨던 자리에 되돌아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한때 사람이셨던 적이 있으셨다(계1:17~18). 그분은 지상에서 33년 반의 생애를 사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주 하나님이셨던 그분께서 사람이 되셔야 했던 것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세우신 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그분의 성육신도 그냥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오직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을 위하여 사람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피흘리셨고 그리고 죽으신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이 만세 전에 세우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완성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를 위하여 왕국과 제사장으로 삼는 일이었다(계1:6, 5:10). 고로 만약 우리 인간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온 우주의 창조 목적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며, 예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도 무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성도들은 반드시 천국에 들어가야 하며, 천국에 들어가서 거기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2.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기본적으로 주 하나님으로 계시되어 있다.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마침으로서, 그분은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이시기 때문이다(계1:8, 22:13). 그렇지만 그분은 지상에서 33년 반의 생애를 사신 인간이셨다. 그때 그분은 '나사렛 예수'라고 불리셨다. 왜냐하면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아주 많았기에 나사렛 출신의 예수라는 의미로 '나사렛 예수'로 불리신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도 예수께서 인생을 사셨는지가 나오는 것인가? 그렇다. 아니 너무나도 정확하게 그분의 인생 여정이 고스란히 나온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는 그분의 혈통과 출생, 그분의 공생애, 그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분의 재림까지 총망라되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3.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어떤 혈통과 어떤 출생을 했다고 나오는가?

  요한계시록의 예수님은 그분이 천상에 계시다고 해서 신성만 가지신 주 하나님으로서만 나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분은 신성을 가진 존재이지만 동시에 인성을 지니셨던 존재였음을 증거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요한계시록은 예수께서 유다 지파에서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음을 증거하고 있다(계5:5, 22:16). 왜냐하면 그분은 '유다 지파의 사자(Lion)'이자 '다윗의 자손'이셨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에서도 그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의 12아들들 중에서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왕(사자)이셨다. 그리고 실제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 

계5: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계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그리고 둘째로, 예수께서는 출생의 과정을 거치셨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때 예수께서는 이 땅에 아들로서 태어나셨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께서 사내아이로 태어나셨다고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으니, 그것은 요한계시록 12장에 해를 옷 입은 여인이 사내아이를 출산하는 모습으로 나온다(계12:1~5). 그런데 해를 옷 입은 여자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였던 것이다(계12:5). 그리고 예수께서는 하나님 앞과 그분의 보좌 앞으로 올라가게 된다. 그렇다. 이때 태어난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아이는 예수님을 가킨다(계19:15, 2:27). 이분은 이기는 자의 첫 열매(프로토토코스)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자는 예수님만이 아니다. 예수님을 필두로 이기는 자가 된 자는 천국에 들어가서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계2:26~27).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2:1에 나오는 해를 옷 입은 여자를 예수님을 낳은 모친 단지 '마리아'라고 기록하지 않고 있다. 그녀는 예수님을 필두로 계속해서 이기는 자를 산출하는 모체로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서도 예수께서 유다 지파의 사람이자 다윗의 후손으로 여자에게서 태어난 남자아이(아들)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4.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의 공생애 그리고 죽음과 부활은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요한계시록에는 예수님의 '출생'만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공생애'와 그리고 '죽음'과 '부활'까지도 다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B.C.4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리고 나사렛으로 가서 사셨다. 그리고 30살이 되었을 때에 예수께서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요단강으로 가신 뒤에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3년 반의 공생애를 시작하였다. 그럼 예수께서는 3년 반 공생애 동안 대체 무슨 일을 하셨는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일을 하신 것이다. 천국복음을 증거하신 것이다(마4:23, 9:35). 천국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그분은 회당에서 구약 성경을 가르치셨고, 천국의 실제를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 귀신을 쫓아내셨고 병든 자를 고쳐 주셨다. 그리고는 12명의 제자들을 불러내어 또한 그 일을 행하게 하셨다. 이들이 바로 어린양의 12사도들이라는 자들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는 12사도들의 이름이 나온다. 천국의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 위에 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계21:14). 그렇지만 당시 사도 요한을 제외한 나머지 11명의 사도들은 이미 순교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때 다 천국에 들어와 있었다. 그러므로 어떤 천사가 큰 성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 언급할 때에, 이미 하늘에 있는 사도들을 향하여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을 보고 즐거워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계18:20).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내내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보았던 사도들이 천국에서 예수님의 공생애가 역사적인 사건이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도 증거한다. 즉 예수께서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죽으셨다고 증거하고 있다(계5:6). 이는 그분이 구약의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인류의 죄값을 대신하여 죽으셨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는 두 증인에 대한 증거 가운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어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셨음도 증거하고 있다(계11:8).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의 피를 가지고 우리 죄인들을 산 후에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셨다고 말씀하고 있다(계1:6, 5:9~10). 그리고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신 후에 이제는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가 되셨다고 증거하고 있다(계1:18, 2:8). 즉 예수께서 비록 죽으셨지만 부활하셔서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가 되신 것이다. 

 

5.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의 재림은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사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예수'라는 사람이 유대인으로서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서 나사렛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사실 하나님께서 사람되신 분이시다. 그러니까 그분의 아버지는 목수였던 '요셉'이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였던 것이다(계1:6, 2:27, 3:21, 14:1).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인자(사람의 아들) 됨으로 인하여 심판하는 권한도 받으셨다(요5:27). 그리하여 심판주로 다시 오시는 것이다. 그렇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께서 꼭 다시 오실 것이라고 연거푸 증거하고 있다. 특히 요한계시록 19장에서는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상세하게 나온다. 거기에 보면 재림하시는 예수께서는 백마를 타고, 천군 천사들과 함께 그리고 이미 천국에서 왕 노릇하고 있던 성도들과 함께 오시고 있다. 그런데 이 일은 아직 성취되지는 않았다. 이 일은 곧 머지 않아 성취될 것이다. 그때 우리가 먼저 죽은 자로 있게 된다면 반드시 백마 타고 오시는 주님의 뒤를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이 일을 끝으로 인간으로 하셔야 하는 모든 일을 다 마치게 되실 것이다. 

 

20222년 05월 25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21) 예수께서는 사람으로 실재하셨던 역사적인 사건이다(1)(계22:16)_2022-05-24(화)

https://youtu.be/1VvsQwULtgI  [혹은 https://tv.naver.com/v/26960999 ]

 

1.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주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동시에 예수님을 사람이셨던 분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 예수님은 100%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100% 사람이셨던 것이다.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은 다 피조물이었던 것이지 그중에 창조주는 없었다. 오직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사람으로 태어나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은 우리 인간들과 모든 세계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다(계3:14). 그래서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신다. 그분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이다(계4:23, 1:8). 그런데 그분이 한 때 우리처럼 인간이셨던 때가 있었다. 그분도 여느 사람처럼 사람으로서 이 땅에서 태어나신 것이다. 그리고서 33년반의 생애를 사시다가 결국은 원래 있던 곳으로 가셨다.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가 예수님을 가리켜 그분이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그는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임에 틀림없다(요이1:7). 반대로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는 결국 구원받을 수도 없을 것이다(행4:12). 하나님이 아닌 피조물인 어떤 존재를 믿어서 천국에 들어갈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둘 다를 알고 믿어야 한다. 그분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셨던 분이라고 말이다. 특히 그분이 사람이 되셔야 했던 이유는 그분이 자신에게 무엇인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직 우리같은 죄많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2. 요한계시록 22:16에서는 부활승천하셔서 보좌에 앉으신 예수께서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 22장 16절에 의하면,예수님은 자신을 "나 예수"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그분은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빛나는) 새별별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요한에게 그동안 계시를 보여주셨던 분이 바로 '나'요 하면서 자신을 '예수'라고 소개하고 있는 분이시다. 

계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그렇다면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켜 "나 예수"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사실 신구약 성경을 통틀어서 "나 예수"라고 하는 표현은 오직 이곳에서 단 한 번 발견된다. 그런데 이 표현을 분석해 보면, '나'라는 1인칭 대명사에다가, 그분의 이름인 '예수'라는 말을 결합한 표현이다. 이는 '나 자신은 다른 누구가 아니라 바로 예수라고 하는 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나'라고 소개하신 분은 자신의 이름이 '예수'이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나 예수'라는 주어의 사용은 어디에서 기원하는 표현인가? 그것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자기자신을 소개할 때 사용했던 표현이다. 그러니까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이 누군지를 분명하고 밝히고 싶을 때에 그분께서 자기자신을 '나 여호와'라고 표현하신 것이다. 그것들 중에서 몇 가지 표현을 빌려오면 다음과 같다. 

사43:10-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사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 

 

3. 예수께서 자신을 '나 예수'라고 표현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요한계시록의 결론부분에 가서 자기자신을 '나 예수'라고 밝히셨다(22:16). 그렇다면 이 표현은 대체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구약시대에 오직 홀로 한 분이셨던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여호와라고 밝히신 것과 같다. 그분은 종종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고 말씀하셨다. 이 표현은 자신이 다른 누구가 아니라 곧 나를 여호와라고 계시하신 바로 그이가 말씀하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구약의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나 여호와'라고 하셨을 때에는 그분만이 홀로 한 분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홀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으로서, 그분만이 온 인류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을 밝히시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나 예수'도 역시 그분만이 홀로 한 분이시며, 그분이 모든 만물을 창조한 창조주이시며, 그분이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셨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승천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4. 요한계시록에서 예수께서 사람이셨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호칭이나 표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께서 사람이셨다고 하는 것을 표현하는 호칭이나 표현들이 여럿 등장한다. 그것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예수(1:1,5, 22:16,20~21)', '그리스도(1:2,5, 11:15, 12:10, 20:4,6)', '하나님의 아들'(2:18), '어린 양'(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 양), '주'(님)(11:15, 14:13, 22:20~21), '남자(사내)아이'(12:5), '인자'(사람의 아들)(1:13, 14:14),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5:5, 22:16), '유다지파의 사자'(유대인의 왕)(5:5) 그리고 '재림주'(2:25, 16:15, 22:7,12, 22:20), '십자가에 못박힌 분'(11:8) 등이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고 있는 사람이셨던 예수님의 칭호가 곧 천상에 계시는 예수님에 대한 칭호가 사실은 그분이 지상에 계실 때에 사용된 칭호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 사람들은 그를 "주(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다윗의 자손",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등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칭호들이 요한계시록에도 고스란히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5. 예수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피조물인 우리같은 사람들과는 어떻게 다른가?

  그렇다면 사람으로 오셨던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들과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우선 그분이 우리들처럼 사람의 인성을 지녔다는 것은 똑같다. 눈과 코와 입이 하나인 것도 같고, 먹어야 살고 피곤하기도 하고, 화장실도 이용하셨다. 무엇보다도 그분도 역시 여자의 자궁에서 10달동안 살다가 세상으로 나온 것도 역시 똑같다. 다만 다른 점은 그분 안에는 죄가 없으시다는 것이다(요일3:5,히4:15). 그분은 죄를 알지도(경험하지도) 못하신 분이셨다(고후5:21). 그러므로 이제야 우리는 예수님이 육체를 지니신 사람이셨지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명확히 알게 되었다. 사실 우리 인간은 흙이 육신을 입은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떠한가? 그분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그분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분이시다. 우리들 모두는 타락한 아담의 후손으로서, 모친의 모태 속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귀신(악한 영들 곧 뱀들)의 공격을 받는다. 그래서 태어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자기 속에 선한 것만 거하는 것은 아니며 악한 본성도 함께 갖고 있거 그것을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만이 죄가 없으신 상태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그리고 철저한 하나님의 보호하심 하에 귀신들이 하나도 예수님의 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잌럴어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를 위하여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으로 자신을 희생하신 주님께 항상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2022년 05월 24일(화)

정병진목사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것은 우리가 평생 알아야 하고 배워야할 것이다. 왜나하면 우리는 그분이 누군지를 아는 만큼 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분이 누군지를 잘 모르면 그분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어도 혜택을 모르기에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라고 증거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분이 사람으로 오셨던 하나님이심을 증거한다. 그렇다면 그분은 왜 사람으로 오셔야 했는가? 그리고 대체 사람으로부터 그분은 무슨 일을 하신 것인가? 그리고 지금은 하늘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가? 여기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이 들어 있다.

 

2022-05-22(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20) 예수께서는 사람으로 오셨던 한 분 하나님이시다(2)(계1:4~7)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PU8BGAdxQ5Y [혹은 https://tv.naver.com/v/26960789 ]

 

1. 들어가며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신가?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물음이자 꼭 알아야 할 질문이다. 왜냐하면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주님이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17:2).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실 구원자이시기 때문이요, 그분을 위하여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기 때문이요, 장차 그분이 우리를 심판할 심판주가 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과연 어떤 분으로 소개하고 있을까? 얼핏 보기에 요한계시록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계시한 책인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함께 소개하는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볼 때에는 일곱 교회 및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 재앙만을 연구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다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면, 오직 요한계시록에서만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계신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18번의 시간을 통하여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시다는 것과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지난 번부터는 예수께서 사람이셨다는 사실에 대해 찾아보고 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지난 번에 이어서 예수님은 사람으로 오셨던 하나님이심에 대하여 그분의 존재론적 측면과 아울러 그분의 신분적인 측면 그리고 사역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2. 요한계시록 서문에서 예수님은 존재론적 측면에서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의 서론에서 소개하고 있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한 분 하나님이신가? 얼핏 보기에는 성부와 성령과 성자예수님을 소개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선 본문을 살펴보자. 

계1:4-6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소개인 것을 살펴보았다. 이것은 성부 하나님에 대한 소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도 계시는 이는 성령 하나님을 가리키고, 전에도 계셨던 이(원문: 아직도 계시는 이)는 성부 하나님을, 장차 오실 이(원문' 지금고 오고 계시는 이)는 성자 하나님을 가리키기 때문이댜. 그리고 "그분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은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어린양의 일곱 눈들이요(계5:6), 또한 여호와의 눈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슥4:10). 고로 존재론적 측면에서 예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예수께서 이땅에 육신을 입고 아들로 존재하실 때에는 아버지와 성령께서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두번째로 성령을 소개하였다. 이는 예수님에 대한 소개가 많기 때문에 그렇게 배치할 수도 있지만, 한 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계시된 순서로 적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 분 하나님께서 홀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지만(사44:24) 한 분 하나님은 당신의 영인 이 세상에 성령을 보내어 이 세상을 두루 관찰하시고 운행하시며 섭리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분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오 이 땅으로 오셨다. 이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아들이 다른 곳에 있다가 육신을 입은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아들이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다른 표현으로서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분이라고 하였으며(요1;14),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낸 바 되신 분이라고 증거하였다(딤전3:16). 고로 우리는 요한계시록 1:4~6의 말씀은 한 분 하나님의 활동에 대한 순서적인 소개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3. 요한계시록 서문에서 예수님은 신분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가? 

  사도요한이 소개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살펴보자.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할 때 2가지 방면으로 소개한다. 하나는 그분을 신분적인 측면에서 소개하고 있고(계1:5a) 그리고 또 하나는 그분을 사역적인 측면에서 소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계1:5b~6). 그럼, 먼저 예수님을 신분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자.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분적으로 세 방면을 소개하고 있다. 

  첫째, 예수님은 신실하신(충성된) 증인이시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본체가 하나님이시지만 그분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을 때부터 그분은 오직 아버지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셨다. 특히 그분이 보여주신 것을 이 땅에서 행하셨으며(요5:19~20, 8:38), 그분이 들려주신 말씀을 이 세상에서 그대로 증거하신 것이다(요8:26, 28, 40, 12:50, 14:10, 24). 그러므로 그분이 하신 모든 말씀은 아들 스스로가 만들어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아버지께로부터 들은 그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이해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그분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요12:49~50). 특별히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증인'이라고 하신 것은 예수께서 결코 본 적이 없거나 말씀하지 않은 것을 행동에 옮기거나 말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예수님은 죽은 자들의 '먼저 나신 이(프로토토코스)'이시라고 하였다. 이는 예수께서 부활의 영광스러운 첫 열매이신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먼저 나오신 분이셨다. 왜냐하면 그분을 통하여 그리고 그분을 위하여 그리고 그분 안에서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인간이 되어 오셨다. 그리고 그분은 인간으로서 최소의 부활체를 입으신 분이 되셨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먼저 나신 이'라고 말하였다. '먼저 나신 이'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프로토토코스'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동물 가운데 먼저 난 것 곧 맏배라는 뜻이며, 사람으로 치자면 장자라고 할 수 있으나, 예수님은 피조물이 아니시기 때문에 다른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먼저 나신 이'는 만물 중에서 최고의 으뜸이신 분, 부활체로서의 최고의 열매가 되신 분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필두로 모든 구원받은 성도가 부활체를 입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성도는 예수께서 먼저 나신 이가 되시고 나서 곧바로 한꺼번에 부활체를 입은 것이며, 그때부터 모든 성도들은 죽은 즉시 부활체를 입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예수님은 땅의 왕들의 통치자(아르콘)이시라고 하였다. 이는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뒤에 천국에 있는 땅의 왕들의 최고수장(통치자)이 되셨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이는 천국에 있는 성도들 중에서 땅에서 왕노릇하고 있는 이들의 통치자가 예수님이라는 것이다(계5:10,21:24,26, 계16:14, 17:18, 19:19).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천국에 있는 성도들 가운데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이시다. 어떤 이는 예수께서 땅의 왕들의 통치자라고 하니까, 이 지상에 있는 땅의 왕들(짐승의 지배를 받고 있는 통치자들)의 통치자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 땅의 왕들의 통치자는 사탄마귀라고도 할 수 있다(요12:31,14:40,16:11). 물론 사탄마귀가 이 지상에 있는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기도 하지만, 사탄마귀도 역시 예수님의 통치를 받고 있는 피조물에 불과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땅의 왕들의 통치자라는 말은 하늘과 땅의 모든 왕들의 지배자라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특별히 그분이 이 지상에 사실 때에 아버지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그 뒤 하늘에 오르시어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성도들의 우두머리(지배자)가 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하겠다. 

 

4. 요한계시록의 서문에서 예수님은 사역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가?

  이어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서 한 번 더 소개한다. 이로써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신분적인 측면에서 소개하고 사역적인 면에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사람으로 사실 때에 그리고 지금 천국에서 어떤 일을 수행하시고 있는가?

  첫째, 예수님은 우리를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계신다. 이것은 현재의 일이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위하여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뒤에 사람들의 죄값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로써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하신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계시며, 우리가 혹시 죄를 지었을 때에는 그분이 흘리셨던 그 피로 우리를 죄로부터 속량해주신다. 그분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님은 그분의 피 안에서 우리를 우리의 죄로부터 해방하셨다. 이것은 과거의 일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대속의 죽음을 통해 우리 모든 인류의 죄값을 대신하셨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죄로부터 건져내어 해방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죄로부터 해방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자신이 지은 죄들을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고로 만약 그분의 십자가 사건이 없었다면 모든 인류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구약의 율법의 규정을 따라 유월절의 어린양이자 속죄양으로서 이 땅에 오셨으며,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가운데서부터 해방시키신 것이다. 

  셋째, 예수님은 우리를 왕국과 하나님이신 그의 아버지에게 제사장으로 만드셨다. 이것도 역시 과거의 일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이미 과거에 이 일을 행하셨으며, 시간 밖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이미 완성된 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 일은 성취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만약 지금 죽는다면 우리도 역시 하나님이신 아버지에게 왕국과 제사장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에게 '왕'과 '제사장'이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왕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분의 왕국에 안으로 들어가서 어떤 이는 왕이 되는 자도 있지만, 어떤 이는 왕의 통치를 받는 신하같은 자나 혹은 백성 그리고 혹은 왕을 섬기는 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모든 성도는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다 제사장이 된다. 한편 여기서 말하는 '제사장'이란 천국에서 예배드리는 자가 된다는 뜻이며, 또한 예배를 인도하는 자가 된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천국에 들어가면 모든 성도는 24반차를 따라 각기 24장로들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마을에 들어가서 살게 되기 때문이다. 이때 왕노릇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 더 가까이에 집을 짓고 살게 되며, 그렇지 않은 자는 점점 보좌로부터 먼 곳에 집을 짓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때가 되면 24반차의 순서를 따라 각 반차들이 올라와서예배의 인도자가 되어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이 된다는 말은 옳은 것이다. 

 

5. 나오며

  예수님은 한 때 인간이셨던 분이셨다. 그분이 이 세상으로 들어오실 때에는 아버지로부터 나오셨다(요16:28). 그러므로 그분은 아버지로부터 나오신 하나님이요 또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런데 그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셨다는 말은 없던 것이 창조되는 출생의 과정을 거치셨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결코 피조물이 아니시다. 한 마디로 그분은 한 분 하나님의 '프로토토코스('먼저 나신 이')'이시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그분이야말로 전능하신 한 분 하나님의 첫번째 표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을 통하지 않고 지어진 것들은 온 우주에 하나도 없으며, 모든 만물은 다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골1:15~16). 그런데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출하시어 천국에서 왕국와 제사장이 되게 하시려고,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다. 이것을 '성육신'이라고 부른다(요1:14). 즉 아들이 성육신하신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 성육신하여 아들이 되신 것이다. 그래도 그분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계실 때에는 항상 아버지의 말씀에 철저히 순복하셨다. 그를 보내셨던 아버지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따라 그대로 그것을 말씀하셨고 행하셨다. 그리고 그분이 보여주신 것을 그분도 그대로 이 땅에서 재현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이 이 땅에 인간으로 계셨을 때에는 그분을 가리켜 '충성된 증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분은 철저히 아버지의 말씀에 순복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리하여 인류의 대속사역이 완성될 수 있었다. 그리고는 그분은 또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그리고 하늘에 오르시어 지금까지 천국에 있는 땅의 왕들의 통치자가 되시어, 천국에서 다스리고 계신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세상에 심판주로 오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목숨을 버리신 우리 주 예수님을 우리는 영원히 찬양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한 분 하나님의 이러한 놀라운 일들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왕이면 그분에게 왕이 되어 그분이 창조목적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도 이 땅에 살 때에는 그분의 충성된 증인이 되어야 하겠으며, 이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하여 천국에서 그분에게 왕노릇하는 제사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도 그러한 사람이 꼭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2년 05월 22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19) 예수께서는 사람으로 오셨던 한 분 하나님이시다(1)(계1:4~7)_2022-05-20(금)

https://youtu.be/MkQ-uO2JXNk  [혹은 https://tv.naver.com/v/26940566 ]

 

1. 요한계시록의 서두의 인사말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 1장의 서두의 인사말(계1:4~6)에서 예수님은 어떤 분으로 소개되어 있는가? 요한계시록은 사실 계시의 책이자 묵시의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은 예언의 책이자 또한 편지의 책이다. 그러므로 형식으로 보면 요한계시록은 편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것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부분은 바로 요한계시록 1:4~6이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의 서두의 인사말에서 누가 누구에게 편지하는지를 밝힌다. 그것은 요한이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편지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요한은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순서로서, 교회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하고 있다. 이때 요한은 성자 예수님이 누구시며 또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이 편지를 쓰고 있다. 

계1:4~6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

 

2. 요한계시록의 서두의 인사말에서 사도 요한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언뜻 보기에는 요한은 요한계시록의 서두의 인사말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삼위일체 하나님을 통한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자신의 편지들을 쓸 때에도 이와 비슷한 형식을 취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사도 바울의 편지들과 다르다. 다른 이유는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중에 첫째로, 사도 요한은 편지의 수신자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는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기원할 뿐이다. 그리고 이때 사용된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한 표현도 사실은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에 해당한다. 둘째, 요한이 교회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는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순서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순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는데, 사도 바울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성령'하나님을 통한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사도 바울도 편지에서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지만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있기만을 기원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편지의 인사말에 바울의 편지 속에는 결코 성령 하나님이 들어 있지 않는 데에 비해, 사도 요한의 편지인 요한계시록에서는 그것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3.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의 서두 인사말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를 소개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 1:3~4에서 사도 요한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분의 보좌 앞에 일곱 영"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한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표현은 성부와 성령과 성자에 관한 표현인가?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가? 얼핏 보기에는 성부와 성령과 성자에 관한 표현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렇다고 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처음에 표현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것은 성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표현 속에 들어 있는 '장차 오실 이'는 분명히 다시 오실 예수님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 근거가 바로 7절에 나온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1:7 )" 이 말씀에 나오는 '그'는 분명 그 앞 구절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표현인 것이지 성부에 대한 소개가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이라는 표현도 성령 하나님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 이 표현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어린양의 일곱 눈들'을 가리키며(계5:6), 구약 시대로 치자면 이 표현은 땅에 두루 돌아다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곱 눈들'을 가리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슥4:10). 다시 말해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은 예수님을 지칭하는 표현이자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하는 표현으로서 모든 것들을 감찰하는 분이 곧 하나님이신을 것을 드러내 주고 있다. 

 

4. 요한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소개를 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순서가 아니라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순서로 말씀하고 있는가?

  사도 요한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소개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순서로 말하지 않고 있다. 성자와 성령의 순서가 앞뒤가 서로 바뀐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2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성자에 대한 소개가 너무나 길어질 것 같으니까 먼저 간단하게 성령에 대해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적인 이유가 될른지를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 표현의 실제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을 둘째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표현하시고 나타내시어 일하시는 순서를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싶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는 한 분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홀로 창조하셨다(사44:24). 그분은 성자와 성령과 협의하거나 회의하지 않으시고, 홀로 하늘을 펼쳤으며 그와 함께 한 자가 없이 홀로 땅을 펼치셨다. 그리고 당신의 영을 이 땅에 보내셨다. 그리고 다시 4,000년이 지난 후에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 그러나 이때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나온 것이다(요16:27~28). 그러므로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신 것이지 처음부터 따로 있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 아니다. 단지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 것이다. 고로 요한계시록 1장의 서두 인사말에 나오는 예수님에 대해 소개하는 한 분 하나님이 아들로 오셨는데 그분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5. 요한계시록의 서두의 인사말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가?

  요한계시록의 서두의 인사말에서 예수님은 3가지 신분을 가진 자이자, 3가지 활동을 하시고 계시는 분으로 소개되어 있다. 첫째, 그분은 세 가지 신분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것은 그분이 '참된 증인'이자, '죽은 자들의 먼저 나신 이(첫 열매, 원형)'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시다. 둘째, 그분은 세 가지 활동가로서 표현되어 있다. 그것은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고 있는 분'이자, '우리를 그분의 피 안에서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셨던 이'이시다. 그리고 더불어 그분은 '우리를 왕국으로, 하나님이신 그의 아버지에게 제사장들로 만드신 이'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고 있는 일은 현재의 일이며, 그분이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시켰던 것은 실은 과거의 일이며, 더불어 우리를 왕국과 제사장들로 만들고 있는 일은 과거에 이미 시작되었으나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에 있는 것이며 그 일은 아마도 주님의 재림 때까지 있을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께서 어떤 분인지가 그분의 신성과 인성이 복합적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예수님은 과거에 인간이셨던 적이 있었지만 그것만이 따로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분은 말씀이 육신을 입으셨기에, 그분이 인성을 취하실 때에 신성이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육체로 임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도 예수님을 인성을 배재한 분으로 소개할 수 없으며, 또한 그분을 신성만을 가진 분으로도 소개할 수는 없다. 그분은 한 분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분이자 신성과 인성이 하나가 되신 분이기 때문이다. 

 

2022년 05월 20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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