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04)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03)(계1:8, 17~18)_2022-04-29(금)

https://youtu.be/rSuoxN0mv2k  [혹은 https://tv.naver.com/v/26519317 ]

 

1.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은 어떻게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는가?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을 제자들이 분명하게 알아차린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다. 그 이전까지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 정도였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부활과 제자들 앞에서의 나타남은 제자들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분이 원래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보고 만져 보았던 도마는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 곧 '주 하나님'으로 고백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40일간 부활하신 것을 보여 주신 예수께서는 40일 후에 승천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지금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신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 중에서 가장 나중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진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이 주 하나님이신 것을 증거해 주고 있다. 

 

2.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그분이 지상에 계셨을 때에도 그분은 역시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알려 준다. 지상을 거니시는 하나님이 주 예수님이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느냐?(요14:9)"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으며, "내가 하는 말은 나 스스로가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서 그분의 일을 하고 있으시는 것(요14:10)"이라고 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아버지와 같은 분 곧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둘째, 예수께서는 원래 한 분이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은 영원 전에 아들로 계시던 분이 육신을 입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히 말하면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며(딤전3:16), 아버지로부터 나와서 이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기 때문이다(요16:27~28). 다시 말해, 대부분의 성도들은 예수께서 영원 전부터 아들로 계시다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서로 협의한 끝에, 누가 내려가서 인간을 대신하여 죽을 것인지에 대하여 아들의 자발적인 선택이 있었고 그리하여 아들이 육신을 입고 내려오신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면 영원히 하나님은 세 분이 될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다. 아버지가 아들이 아니고, 아들이 성령이 아니며, 성령은 아버지도 아들도 아니지만 하나님으로서는 같다는 교리적인 생각은 하나님을 세 분으로 만들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한 분이시다. 그러한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을 계시할 때에는 '여호와'라고 계시하신 것이며, 신약 시대에 제자들과 그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는 자신은 '아들'로서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아버지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라고 계시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들이 육신을 입고 예수님이 되신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이 되신 것이라고 해야 한다. 

 

3.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증거를 요한계시록 1:8에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증거는 요한계시록 1장에서부터 나온다. 즉 요한계시록 1장 8절에서 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이렇게 말씀하심으로 자기가 누군지를 알려 주시기 시작하셨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계1:8). 이말은 번역이 조금은 미흡하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이것을 헬라어 원문을 따라 번역하면,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 지금도 계시는 이 그리고 지금까지 계셔 온(아직도 계시는 이) 그리고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는, 전능한 이는"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 하나님'이라든지 '지금도 있고(계시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이며 '전능한 이'는 다 한 분 하나님에 대한 호칭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라는 말은 이것과는 좀 다르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기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요한계시록 끝에 가면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라고 선언하고 계시는 분이 주 예수님이시라는 것이다(계22:13). 고로 우리는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을 하나님의 자기 선언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4.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자기 선언을 하셨는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나님이나 예수께서 "나는 ~이다"라고 말씀하신 자기 선언이 나온다. 나오는 구절은 총 네 구절이다. 이 구절들은 하나님이 누구시며,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자기 선언적으로 말씀하신다. 그것은 총 3가지 종류의 선언들이다. 그러나 의미는 같은 것이다. 우선 그 말씀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자. 

계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계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시작과 마침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요한계시록 1:8에서는 주 하나님이신 이 곧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가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라고 선언하신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1:6에서는 '보좌에 앉으신 이' 곧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 그리고 시작과 마침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17에서는 예수께서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2:13에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 그리고 나는 처음과 마지막이다. 그리고 나는 시작과 마침이다"라고 하셨다. 이 부분을 통해 우리가 정리할 수 있는 것은 한 분 하나님 곧 '주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나는 시작과 마침이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다가 죽고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신 이는 자신을 처음 소개하실 때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고 소개하셨다. 하지만 맨 나중에 가서는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로써 우리는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시며, 한 분 하나님으로서 아들로 오셨던 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와 맞물려 우리가 알아야 할 놀라운 사실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계시하시고 선언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딱 2가지로 선언하셨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3:14)". 그리고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사41:4, 44:6, 48:12)"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비로소 당신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는 표현을 사용하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표현하실 때 이미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 중에서 어느 위격이 단독적으로 말씀하실 때에는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자기를 표현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한 분이신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 혹은 "나는 시작과 마침이다"라고 표현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하나님의 칭호들 가운데,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다'라고 하는 뜻은 대체 무엇인가?

  사실 '알파'는 헬라어의 첫 글자요, '오메가'는 헬라어의 마지막 글자이다. 그러니까 이 말의 뜻은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뜻이요, 시작과 마침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님에 관한 3종류의 자기 선언은 다 똑같은 뜻에 대한 다른 표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그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분이 시간 밖에서 모든 것을 시작하시고 모든 것을 마치시는 통치자요 전능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그분이야말로 만물의 창조자요, 주관자이시며, 심판자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기 선언인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그분만이 모든 것을 시작하실 수 있고, 그분만이 모든 것을 끝낼 만한 능력을 갖추셨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역시 예수님은 창조주요 주관자이시며 심판자로 믿고 받아들일 수가 있다. 그리고 그분이 시작했던 것을 끝내시는 시점이 우리에게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날을 대비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요, 그날을 대비하는 자가 그때 슬피 울며 통곡하지 않을 것이다. 

 

2022년 04월 29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03)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02)(계1:4~8)_2022-04-28(목)

https://youtu.be/0AtNjqrKXSs  [혹은 https://tv.naver.com/v/26519059 ]

 

1. 요한계시록에 1장 4절에서는 주 하나님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 1장 4절에는 주 하나님을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렇게 소개되고 있는 분이 8절에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전능한 자'라고 소개되어 있다. 그렇다. 주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이시며, 그분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전능한 자이신 것이다. 

 

2.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소개할 때에 지상에 계실 때에 비로소 제자들에게 계시된 예수님의 칭호 이상으로 소개되어 있다. 사실 지상에 계실 때에 그분에 대한 최고의 칭호는 그분이 그리스도이시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었다(마16:16).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그 이상으로 소개된다. 다시 말해, 그분은 지상에 계실 때에 불려졌던 바로 그 칭호 외에도 한층 고양된 칭호가 소개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분이 '주 하나님'이라는 표현인데, 주 하나님이신 그분은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라고 말씀하셨으며, 그분은 "전능자이시며,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에 대해서 줄곧 '주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쓰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그분이 '주 예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계22:20,21). 주 하나님이 곧 주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다"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보좌에 앉으신 이 곧 주 하나님이라고 소개되어 있다(계21:5~6, 19:4). 그런데 요한계시록 맨 마지막에 가면, 주 예수께서는 자기 스스로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마침이다"고 말씀하고 있다(계22:13). 고로 우리는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참고로, 요한복음에서도 주 예수님에 대한 칭호가 한층 더 고양된 형태로 소개되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12제자들 중의 하나였던 사도 도마의 신앙 고백에 나타나 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본 후에 그분에게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다(요20:28).

 

3.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를 성부 하나님에 대한 소개라고만 알고 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그렇게 해석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목회자들도 다 그것을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가 성부 하나님에 대한 칭호라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바로 그 책에서만 표현되어 있는 독특한 하나님의 칭호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칭호이다. 그런데 이 칭호는 구약 시대 때에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서 그분에게서 들었던 하나님에 대한 칭호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계시하셨다(출3:14). 그런데 이 표현은 히브리어로 '아흐예 아쉐르 아흐예'로서, '나는 내가 ~라고 하는 이다'라는 뜻이다. 이것을 헬라어의 70인역에서는 '나는 지금 있는 이이다.'라고 번역해 놓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조금은 암시가 되었다고 할 수는 있으나, 요한계시록에서 비로소 표현된 독특한 하나님의 칭호로 표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4.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대체 누구신가?

  그렇다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대체 누구신가? 많은 주석학자들이 해설하고 있듯이 이 칭호는 성부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인가? 아니면 다른 칭호이기도 하는가? 얼핏 보기에는 이 표현이 성부 하나님에 대한 표현처럼 보인다. 아니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만 보아서는 아니된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하나님 칭호는 성부 하나님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칭호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표현이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지칭하는 표현으로도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칭호는 요한계시록에서 딱 3번 나올 뿐이다. 요한계시록 1:4,8과 그리고 4:8이 그것이다. 1:4과 1:8에서는 동일한 표현으로 나오고, 4:8에서는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라고 하여서 첫째와 둘째가 순서가 뒤바뀌어서 나오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문구의 순서에 있어서만 차이가 있을 뿐 다 동일한 표현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1장과 16장에서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하나님에 대한 칭호가 축소되어서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는 이'라고 나온다(계11:17, 16:5). 즉 '장차 오실 이'라는 부분이 삭제되어 나타나 있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된 것인가? 사도 요한이 모른 채 빠뜨리고 기록한 것인가? 아니다. 성경은 함부로 실수한 것을 기록해 놓은 책이 아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표현들에는 의미가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럼 왜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재림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그때는 언제인가? 그것은 일곱 번째 나팔 소리가 날 때다(계11:15). 이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주님께서 공중으로 강림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일을 위해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표현된 예수께서는 이제 두루마리를 사도 요한에게 넘겨주시고 재림하신 것이다. 즉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으로부터 큰 두루마리를 취했던 예수께서는 일곱 인들 중에서 여섯째 인까지 떼시고 또한 일곱째 인을 떼신 후에 여섯째 나팔까지 주관하셨다. 그리고 이제 그분이 재림하셔야 하니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예언의 말씀인 두루마리(그래서 작은 두루마리가 됨)를 사도 요한에게 넘겨주신 것이다. 이것이 요한계시록 10장에 막간 계시로서 나온다. 그렇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은 성부 하나님에 대한 칭호가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 모두를 지칭하는 칭호였던 것이다. 정리한다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칭호는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칭호인 것이다. 

 

5.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는 성경 전체의 기록을 통하여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단지 성자 하나님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은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성자 하나님이시다'는 말과 그분이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이다'라는 말은 어떻게 차이가 나는가? 만약 우리가 그분을 성자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면, 그분은 더 이상 성부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이며 성령 하나님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내용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신앙 고백으로 알려지고 있는 벨직 신앙고백에 고스란히 나온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100%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겠지만(왜냐하면 아들은 아버지와 서로 구별되시기 때문이다), 100% 맞다고도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라기보다는 그분은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 곧 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창세기와 이사야와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의 놀라운 자기 선언이 나온다. 그분은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무려 3번씩이나 "나는 ~이다"라고 말씀하셨다(요8:24,28,58). 이는 예수께서 출애굽기 3:14에 나오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표현을 직접 자신에게 적용하신 사례이다. 그러자 난리가 났다. 유대인들이 그만 예수님을 귀신이 들렸다고 몰아붙이면서 네가 아브라함보다도 크냐고 질문을 던진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다"고 대답하신다(요8:56). 그러자 유대인들은 "네 나이가 아직 50도 아니 되었는데 어떻게 아브라함을 보았느냐"고 말한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8:58).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예수님은 "나는 ~이다"라고 하는 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심을 의미한다. 즉 예수께서는 이제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주 하나님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실로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까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진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탄생하실 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서로 협의를 하여 성자가 아들로 내려오셨다고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리에만 나올 뿐 실제 성경에는 나오지 않는 표현이다. 성경에서는 단지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그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당시 여호와 하나님으로 계시되었던 한 분 하나님께서 훗날 인간에게 다시 오실 때에는 아들의 신분으로 오신다는 것을 말씀한 것이다. 그렇다.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이다. 예수께서 만세 전부터 아들로 따로 있다가 아버지와 협의를 한 후 스스로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 아니다. 그분은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될 때에 비로소 아버지에게서 나와서 이 땅에 들어오신 것이다. 그분은 결코 아버지로부터 독립되어 따로 나타나 있다가 아들로 오신 것이 아닌 것이다(요16:27~28).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 곧 주 하나님의 체현이시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품속에 있다가 드디어 나타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아기이자 아들로 오실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자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말씀한다(사9:6). 고로 만약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28:19)"고 하셨던 예수님의 명령을 제자들이 모두 "예수의 이름으로(행2:38, 8:16, 10:48, 19:5)" 바꾸어서 세례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라는 이름은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도 되고, 아들의 이름도 되고 성령의 이름도 되는 것이지만 그분이 우리에게는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기에 우리가 예수라는 이름을 아들의 이름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이 세례를 줄 때 어느 누구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일이 없고, 모두가 다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문구로 세례를 주었다고 나온다. 이는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2022년 04월 28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02)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이유는 무엇인가?(01)(계1:4~8)_2022-04-27(수)

https://youtu.be/g9j2_mo-Vps  [혹은 https://tv.naver.com/v/26518369 ]

 

1.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 하나님'으로 고백한 자는 누구인가?

  예수님의 12제자의 하나였던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보고는 그분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된다(요20:28). 그런데 이것을 두고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원래는 하나의 인간이었는데 제자들이 그분을 주 하나님으로 고백함으로서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 되셨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 되실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그분을 그렇게 고백함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참으로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고 계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어떤 분이라고 고백할 때에 비로소 그렇게 되는 분인가? 절대 아니다. 그분은 우리가 어떤 칭호로 부르던지 그분은 처음부터 그랬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12제자의 하나였던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본 후 비로소 그분을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다. 그렇지만 도마가 이런 고백을 하기 전에도 이미 예수님은 주 하나님이셨던 것이다(요20:28). 그러나 예수님을 신앙 고백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계속해서 주님을 고백의 산물로만 보려고 시도한다. 그분을 직접 만나 보면 아마도 자신의 입술을 손으로 피나게 때리고 싶어질 텐데 말이다. 

 

2.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인가?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그분의 칭호에 불과한 것인가? 다시 말해, 실제로는 그렇지 아니한데 그렇게 불러 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인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부동산 중개소에 들어가기만 하면 누구나 남자이면 '사장님'이라고 칭하며, 여자이면 '사모님'이라고 칭한다. 그렇다면 부동산 중개업자가 그 사람을 '사장님'이라고 불렀으니 그냥 사장님이 되는 것이고, '사모님'이라고 불렀으니 그냥 사모님이 되는 것인가? 아니다. 고로 예수님을 가리켜 도마가 '주 하나님'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그때부터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 되시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누가 그렇게 칭하기 전에 이미 '주 하나님'이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라고 불리려면, 어떤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가? 그것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예수께서 존재론적으로 주 하나님이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분은 사역적으로도 주 하나님이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분이 존재론적으로 하나님이시다는 말은 그분이 자존하시며 무소부재(=동시존재)하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분이 사역적으로 하나님이셔야 한다는 말은 그분은 전지전능하시고 영원불변하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존재론적으로 그리고 사역적으로도 하나님이신 것은 요한계시록에서 게속 발견된다. 

 

3. 초기 교회 시대에 영지주의는 왜 이단이 되었는가?

  초기 교회 시대에 영지주의는 철학이 기독교내에 침투하여 만들어 낸 이단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영지주의에서는 예수님의 성육신과 예수님의 죽음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고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부정하고 있는 영지주의는 완전 이단인 셈이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사람이 되셨는가? 무엇 때문에 삽자가에서 죽으셨는가? 그리고 어떤 이유로 인해 다시 부활할 수 있었는가? 사실 이 모두는 복음의 핵심 사항이다. 그렇다. 이것은 전부 우리 죄많은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다. 우리 죄인들을 살려 내고 천국에 데려가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직접 행하신 일이 바로 예수님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 사건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복음 안에 이 3가지 요소가 빠져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다. 그러므로 영지주의는 기독교가 아닌 것이다. 기독교를 가장한 가짜 기독교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영지주의자들이 자기들의 경전처럼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도마복음'이다. 도마복음은 일종의 예수님의 어록이 수록된 책이다. 배경이나 나레이션 없이 그냥 예수님의 말씀이나 예수께서 제자들과 대화하시는 말씀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책에서 예수님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은 단 한 구절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이 깨달은 지식 곧 영지를 통하여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람이 지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서 다시 가는 데에 그리스도의 피흘림이 전혀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그냥 깨달아지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지주의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이 하나 있다. 그것은 영지주의에서는 예수님을 주 하나님으로 본다는 것이다.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육신을 입은 모습으로 보인 것은 그렇게 보인 것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는 사람의 몸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영지주의 분파에서는 그리스도가 예수라는 육체를 잠시 동안 빌리셨다가 죽기 전에 탈출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고로 영지주의는 신성이 육체 안에 거하신 놀라운 신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대단히 큰 이단 세력인 것이다. 

 

4. 예수님은 하나님인가 사람인가?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인가 사람인가? 예수님은 한 마디로 100%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100% 인간이시다. 예수께서는 한 분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과거에나 현재나 미래에나 역시 하나님으로 계신다. 그런데 그분도 한 때는 사람으로 사신 적이 있으셨다. 예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에 유대 땅에서 육체를 입고 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 걸어다니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공생애를 사셨던 예수님은 '지상을 거니시는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예수께서 100% 하나님이시며, 100% 인간이셔야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그래야만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실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선각자들이나 성인들은 단지 사람일 뿐 하나님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이들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할 수는 없다. 이들 누구도 인간의 죄와 죽음과 사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이셨던 분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그분이 사람이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속죄 때문이었다. 죄의 값인 사망의 값을 지불하시기 위해 창조주가 사람이 되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죽음으로 인하여 세상 임금인 사탄 마귀를 때려잡을 수가 있었다. 만약 그분이 사람이 아니셨다고 한다면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영원히 열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분은 사람으로 오셔서 죄값을 지불하시고 사망 안으로 걸어 들어가셨으며, 동시에 이때 죄없는 예수님을 사망 권세로 죽임으로 불법을 저지른 사탄 마귀의 사망 권세를 빼앗으실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때 이후 계속해서 예수께서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갖고 계신다. 그래서 그분을 믿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는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5. 요한계시록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칭호로 보나 혹은 존재론적으로나 보나 그리고 사역적으로 볼 때 가장 잘 표현된 말씀은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표현해 주고 있는 문구들이 많이 나온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를 고르라면 우리는 요한계시록 1장 8절 말씀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한 구절에는 한 분 하나님이시자 예수님이신 그분이 누구신지를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은 칭호로서도 하나님이시고 또한 존재론적으로 보나 사역적으로도 보나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언해주고 있다. 

계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잘 대변해 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동시에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까지 알려 주는 매우 귀중한 말씀이다. 왜냐하면 첫째, 요한계시록의 끝부분으로 가면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고 직접 말씀하신 분이 나오는데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계22:13). 둘째, '장차 올 자'라는 표현은 분명히 예수님의 재림을 염두에 두고 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1:8에서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예수님이 누군지를 어떻게 표현해 주고 있는가? 그것은 첫째, 예수님이 '주 하나님'이신 것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호칭으로도 '주 하나님'이신 것을 잘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요20:28). 둘째, 예수님이야말로 '알파와 오메가이신' 것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분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오실 이'인 것을 잘 표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께서 존재론적으로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이 증명된다. 왜냐하면 존재론적으로 볼 때에 그분은 주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는 자존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여기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는 표현 속에 다 들어가 있다. 그리고 그분이 존재론적으로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은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라는 표현 속에 완전히 녹아 들어가 있다. 또한 그분이 사역적으로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그분은 전지전능하셔야 하고 영원불변하셔야 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그분의 전능성인데, 요한계시록 1:8에서는 그분이 '전능하신 이'로 소개되어 있다. 앞으로 계속 더 살펴보겠지만 예수께서는 호칭면에서나, 존재론적으로 그리고 사역적으로 하나님이신 것이 분명하다. 

 

2022년 04월 27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의 기독론(01)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예수님은 주 하나님이시다(01)(계1:1~8)_2022-04-26(화)

https://youtu.be/DmISlHynFz0  [혹은 https://tv.naver.com/v/26518040 ]

 

1. 우리는 왜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가?

  우리가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는 크게는 2가지다. 하나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하고 믿음을 가져야 하는데, 이때 회심으로서 회개를 하고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누구시며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모른다면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우리로 하여금 그 길을 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과 끝까지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상은 사탄 마귀와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들은 지혜와 능력이 출중하여 인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상대할 때에는 그것들보다 더 뛰어난 지혜와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때 그분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며 섭리하시는 오직 하나님 밖에 없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2. 지상을 거니셨던 예수님 곧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공관복음에 나온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예수께서 누구신가?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은 구약 성경만을 믿기 때문에 그들에게 예수님은 선지자들 중의 한 사람 정도일 뿐이다. 좀더 말하자면 기적을 행하던 선지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셨을 때에 그를 믿고 따르던 제자들은 그분을 어떻게 믿었을까? 처음에 그들은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시는 뛰어난 선생님(랍비)이나 혹은 로마의 식민지로부터 민족을 구원해 주신 분, 그리고 귀신을 쫓아낼 수 있고 병든 자를 치료하실 수 있는 분으로 믿었다. 하지만 그분의 공생애 기간이 다 끝날 무렵에 그들에게 예수님은 더 이상 훌륭한 선생님이나 선지자 정도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은 제자들의 신앙 고백 가운데 매우 중요하다. 그때 베드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계시를 받아서 예수님을 "당신은 그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라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백은 매우 탁월한 고백으로서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이유와 그분의 신분에 대한 계시적인 고백이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구약의 약속의 말씀을 따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이셨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 이 땅에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이다. 

 

3.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실로 엄청나다. 왜냐하면 그런 자들에게는 최소 2가지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는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권세가 주어지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천국 열쇠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마16:18~19). 이 중에서 '음부의 권세'를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음부의 문들'이다. 그럼, 음부는 무엇인가? 사람이 죄값으로 인하여 죽게 될 때에 죽은 영혼을 빨아 당기는 세력 있는 문들이다. 이 문들은 지구의 곳곳에 있기에 복수로 나와 있다. 그런데 우리가 육체를 벗을 때면 사망이 죽은 사람의 영혼의 뒤를 따라가면서 그의 영혼을 집어 삼키는데,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들은 그 권세가 더 이상 그 영혼을 이기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그런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는 것이다(계2:11). 그렇다면 '둘째 사망의 해'란 대체 무엇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곧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던져지는 것'을 가리킨다(계21:8). 그러므로 누군가가 예수님을 진실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되었다면 그의 영혼은 최소한 둘째 사망의 해 곧 불못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을 믿었던 자라도 실제로 천국에 가 보면 천국에 진짜 들어오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 많지 않으며, 대부분은 성밖 곧 새 예루살렘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성밖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불못에 던져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살아갈 것이다(가 보면 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면 천국 열쇠를 받는 복을 받게 된다. 자신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질 뿐만 아니라 남들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것이다. 

 

4. 요한계시록에서 계시하고 있는 예수님 곧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누구신가?

  요한계시록에서 계시하고 있는 예수님은 육체를 입고 지상을 거니셨던 바로 그 예수님 수준이 아니다. 다시 말해 그분은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신 것이다. 그분은 죽고 부활하신 후에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 계시기 때문이다(계3:21). 다시 말해 그분은 '보좌에 앉아 계신 이'인 것이다. 그것은 그분이 누구라는 것을 말해 주는가? 그것은 그분이 '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천국에 올라가셔서 보좌에 앉아 계시는 때부터 그분은 주 하나님이신 것은 아니었다. 그분은 본래부터 주 하나님이셨다. 다만 육체를 입고 계실 때에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다시 말해 육체를 입고 오셔서 목수로 30년 동안 사시고 3년 반 동안 공생애를 사실 때에도 그분은 여전히 주 하나님이셨다. 다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셨을 뿐이다. 그럼, 언제 그분이 주 하나님이신 것을 드러내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분의 부활 사건이다. 그분이 죽고 난 이후에 그분을 믿고 따르던 제자부터 시작하여 그분을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사실 제자들도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그분이 진짜 누군지를 잘 몰랐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정도로 생각했다(눅24:19). 만약 제자들이 진짜로 예수님을 '주 하나님'으로 알고 있었다면 예수님이 잡혀가실 때에 다 도망갈 리가 없었을 것이요, 풀이 죽어 마가 다락방에 숨어 지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활 사건 이후에 그분이 '주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게 된다. 왜냐하면 문을 닫아 놓았는데 그분이 그냥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또한 분명 그분은 죽고 무덤에 묻히셨었는데 살아서 다시 돌아오셨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절대 다시 못 오는데 그분이 오신 것이다. 그때부터 제자들은 예수께서 사람이셨지만 사람만이 아니셨다는 것을 알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중요하고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주님의 부활은 그분의 죽음이 자신이 죄가 있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지만, 더욱이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이야말로 그분이 주 하나님이신 것을 드러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그들은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리고 40일 동안 그분을 여러 번 뵈온 후에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마가 다락방에 모여 성령받기를 간절히 기도하였고 오순절날에 성령을 받게 되자 그때부터 그들은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은 채 복음을 증거하였던 것이다. 

 

5.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에 대한 최초의 고백은 누가 고백한 것이었으며, 요한계시록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나타나 있는가?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신 것에 대한 최초의 신앙 고백은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하나였던 '디두모(쌍둥이)'라 불리는 도마였다. 도마는 예수께서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거기에 있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자기를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그 사실을 믿지를 않았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이 흐르자 주님께서 일부러 제자들을 찾아오셨다. 그때도 역시 출입문은 닫혀 있었다. 그런데 주님이 안으로 들어오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에게 평안을 빌었다. 그때였다. 주님께서는 일부러 의심 많은 도마에게 가시더니 말씀하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 그러자 즉시 도마가 대답하였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 이것을 헬라어로 보면, "나의 그 주님이시요 그리고 나의 그 하나님이십니다(혹은 '나의 유일한 주님이시요 그리고 나의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라고도 번역할 수 있음)"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나의'라는 말을 뺀다면, 그분은 '주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것도 둘 다 정관사가 붙어 있다. "호 퀴리오스 무 카이 호 데오스 무(The my Lord and The my God)". 참고로, 요한복음에서 '주'라는 호칭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쓰이며,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는 '주'라는 용어 앞에 정관사('호')가 붙지 않지만, 부활 후에는 '주'라는 용어 앞에 정관사('호')가 붙는다. 이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는 그분이 유일한 주가 되시며 유일한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오직 한 분 하나님에게 '주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계속해서 사용한다. 그러다가, 맨 마지막으로 22장에 가서 '주 하나님'(1:8, 4:8,11, 11:17, 15:3, 16:7, 18:8, 19:6, 21:22, 22:5,6)이라는 용어를 '주 예수'(계22:20,21)라는 용어로 대체한다. 예수님이 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볼 것이다. 

 

2022년 04월 26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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