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강해보완(34)] 요한계시록의 예언의 말씀을 가감하는 자가 받게 될 처벌은?(계22:18~19)_2023-11-23(목)

https://youtu.be/uY3DCDz_jGU [또는 https://tv.naver.com/v/45413284]

 

1. 들어가며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계시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구약성경에 나타난 여러 가지 계시들의 완성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많은 부분들이 환상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제대로 해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은 구약의 계시 선지자들의 기록과 환상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과 이미 이 계시의 말씀을 주석한 교회 역사가와 신학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실제 천국의 상황과 비교하면서 계시의 말씀을 들여다보면 어려운 요한계시록이라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해석이 가능하다. 문제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말씀에 무엇인가를 보태서 전한다면 어떻게 되는가이다. 그리고 이와 반대로 이미 기록된 채 있는 요한계시록의 말씀 중에서 일부를 빼버린 채 전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요한이 마지막으로 경고하고 하는 바, 이 예언의 말씀을 가감하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정확히 살펴보기를 원한다. 

 

2. 사도 요한은 가감해서는 안 된다는 예언의 말씀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을 마무리 하면서 이 예언의 말씀을 가감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감해서는 안 되는 예언의 말씀의 범위는 어떤 것인가? 신구약에 나타난 계시의 말씀들 전체를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요한계시록의 예언의 말씀만을 가리키는 것인가? 그것은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 22장에서 세 번씩이나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이라고 했다(계22:7,10,18~19).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가감해서는 안 된다는 예언의 말씀은 1차적으로는 요한계시록의 말씀 중에서 두루마리에 기록된 채 있는 말씀을 가리킨다. 그것은 일곱 인으로 봉해져 있었던 두루마리 책을 가리킨다. 그래서 어린양이 그것을 받아서 열어 보인 것을 가리킨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6장부터 22장까지 나온 말씀들이다. 그러나 이 예언의 말씀을 좀더 확장한다면, 요한계시록 전체의 말씀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성경 전체에 나오는 예언의 말씀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이라고 규정되어 있기에, 일곱 인으로 봉인되어 있었으나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되신 예수께서 펼쳐 보인 것들로서, 요한계시록 6장부터 22장의 말씀을 '예언의 말씀'으로 볼 것이다. 

 

3.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언의 말씀 외에 다른 계시의 말씀을 더하면 어떻게 되는가?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언의 말씀 곧 요한계시록 6장부터 22장까지의 말씀 외에 다른 말씀을 추가할 경우 어떤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말했는가?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재앙들을 그에게 오히려 더할 것이라고 했다(계22:18).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는 어떤 재앙들이 기록되어 있는가? 그것은 인간에게 내린 화를 가리킨다. 그것은 여섯째 나팔재앙부터 나온다. 여섯째 나팔이 불어질 때 지구상의 사람들 1/3이 죽는다(계9:18). 그리고 인간에게 내린 화는 가뭄과 기근(계11:6), 사람 몸에 받는 상처(계13:3,12,14) 그리고 일곱 대접이 쏟아지면서 적그리스도와 음녀 치하에 내리는 재앙들로서, 악한 종기, 피바다, 피강과 핏물, 태양불에 태워지는 것, 아픈 것과 종기, 전쟁, 큰 지진과 큰 우박 재앙 등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 나오지 않는 다른 예언의 말씀을 하는 자는 처벌이 비교적 약하다. 그는 재앙만 받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성밖으로 내어쫓겨난다는 것이 아니며, 또한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하나님으로부터 전쟁, 기근, 우박, 전염병, 상처 등을 받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보자. "모든 교회는 다 휴거됩니다. 성도는 은혜로 다 휴거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치자. 이것은 사실 요한계시록의 말씀 외에 다른 것을 결합하여 만든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도의 휴거는 알곡성도만의 휴거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계14:14~16).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면 다 왕 같은 제사장 노릇을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는 천국에서 왕 같은 제사장직을 맡을 사람이 극소수라는 것을 계속해서 말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자, 정결한 처녀이자, 철장 권세를 사용할 이긴 자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그의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계14:4~6). 그러므로 이렇게 정확하지 않는 정보를 이용, 자신의 말을 만들어서 요한계시록의 말씀에 뭔가를 보태서 말함으로, 진리와 생명과 구원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조심해야 할 일이다. 

 

4.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언의 말씀들 중에 일부를 빼버린다면 어떤 결과가 뒤따르게 되는가?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언의 말씀들 중에 일부를 빼놓고 전하지 않고 있거나, 아예 없는 것처럼 전하지 않는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과연 어떤 조치를 취하실까? 그러면 주님께서는 그에게서 생명나무의 분깃을 제거시키신다고 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로 하여금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누리게 될 복으로부터 제외시킨다고 말씀하셨다. 이는 그들은 성밖으로 떨어진다거나 더 나쁠 경우에는 더 바깥쪽 어두운 데에 떨어지고, 더 나빠지면 불못에도 떨어질 것이 뻔하다. 왜냐하면 전해야 할 말씀인데 성도들이 싫어할까봐 어떤 말씀은 아예 빼버리고 그 말씀을 전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살아가면 결국 성밖에 남겨지거나 불못에 들어가 불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요한계시록에서는 분명하게 생명책에서 기록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계3:5). 그러나 일반 교회에서는 이러한 말씀을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사람들 곧 죄를 지었지만 회개하지 않아서 생명책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계3:5). 그래서 죄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성밖에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계22:15). 그러나 이것을 전하지 않는 교회는 이 나라에도 아주 많다. 그리고 예수님이 주 하나님으로서 그분이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는 것을 전하지 않는 교회도 많다. 더욱이 예수님의 보좌가 따로 하나님 우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좌가 곧 한 개밖에 없는 아버지의 보좌라는 것을 알려 주는 교회도 많지 않다. 그러면 그러한 교회와 그러한 주의 종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채 거기에서 쫓겨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예언의 말씀을 더하는 것보다는 빼는 것이 그 벌이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예언의 말씀을 빼버린 자는 결국 불못에도 던져질 수 있기 때문이다. 

 

5. 요한계시록 22:18~19의 말씀은 건전한 성경 해석을 하지 말라는 뜻인가?

  오늘날에 들어와서 이단의 문제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보태거나 거기에서 무엇인가를 빼버린 문제라기 보다는 성경 해석을 잘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질을 왜곡하여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한 해석 방법에는 알레고리적 성경 해석 방법이 있는데, 초기 교부시대에 있었다가 사라진 성경 해석법이다. 그런데 21세기에 그것이 한국적인 상황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비유풀이와 짝풀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오리겐의 알레고리적 성경 해석법을 한층 더 발전시킨 것으로, 이것을 잘못 사용함으로 오히려 이단의 괴수만을 더 양산해 내는 결과를 낳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해석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사항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성경 해석은 문맥으로, 성경 기록의 배경으로 한다. 둘째, 히브리어나 헬라어 원어를 동원하여 해석한다. 셋째, 구약은 모형으로 신약은 실제로 해석한다. 넷째, 개인적인 해석도 중요하지만 교회사적인 해석도 충분히 견지하면서 해석한다. 그런데 신천지는 단어와 단어에 짝을 지어 해석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개역성경을 개역개정성경으로 바꿀 수 없다. 이들은 한글 성경으로 짝을 맞춰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경 해석법은 무지몽매한 사람을 양성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제대로 해석하는 자를 찾아내야 하고 제대로 분별을 해 보아야 한다. 

 

 

2023년 11월 23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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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계시록강해보완(33)]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시작단계와 최종단계는 무엇인가?(계22:14,19)_2023-11-22(수)

https://youtu.be/UVuvU4IYZnA [또는 https://tv.naver.com/v/45413263]

 

1. 들어가며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내리는 생명수를 먹고 과실을 맺는 셋째 하늘에 있는 나무다. 그러므로 이 나무가 맺는 열매는 '생명'이라는 열매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러한 생명나무 한 그루를 에덴동산의 한가운데에 갖다 두셨다. 그리고 그것을 아담에게 선물로 주셨다. 하지만 아담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기 전에 선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먼저 먹고 말았다. 그리하여 사망이 이 세상 안에 들어왔다. 왜냐하면 아담의 범죄는 사망을 가져오는 불순종의 죄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쫓아내셨다. 그리고 생명나무는 셋째 하늘로 도로 가져가셨다. 그래서 생명나무는 지금 천국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에는 어떻게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으며, 우리가 죽어서는 어떻게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는가?

 

2. 생명나무가 사라진 이후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생명을 얻을 수 있는가?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가 사라진 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다른 방법으로 생명을 주시기를 기뻐하셨다. 그것은 그의 아들에게 당신의 생명을 주어서 이 땅에 보내시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다시 이 땅에 생명나무가 인격적인 형태로 존재하게 되었다(요14:6, 15:5). 고로 아들만 아버지의 생명을 가지고 있었을 때, 예수님은 독생자였다. 그러나 그 생명은 예수님 혼자서만 갖고 있으라고 주신 생명은 아니었다. 그 생명은 모든 사람들이 가져야 할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그 생명을 해방시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시기 위해 죽음의 과정을 통과하였다. 그리고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고전15:45). 그러나 인간에게는 이미 범죄가 있었기에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피 흘리는 죽는 죽음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인류의 죄 문제를 처리하셨다.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셋째 하늘에 오르신 우리 주 예수께서는 생명주는 영이신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성령께서 생명을 가지고 이 땅에 내려오셨다. 그리하여 모든 믿는 자들은 믿음을 통해 성령께서 주시는 생명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게 되었다.

 

3. 한 번 받은 생명일지라도 잃어버릴 수가 없는가?

  그렇다면, 믿음을 통해서 한 번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는 그 생명을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고 간직하게 되는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요한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한 번 받은 생명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요10:28, 14:16). 왜냐하면 한글성경이 한 번 생명을 받으면 그 생명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것처럼 번역해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한복음에 나오는 해당 본문을 헬라어 원문 성경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된다. 더욱이 요한계시록의 말씀에 보면, 한 번 얻은 생명이라도 그 생명을 얼마든지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경고가 여러 차례 나온다(계2:7, 3:5, 22:14~15,19).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이 가르치는 말씀 중에 서로 충돌되는 듯한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런데 이 문제의 해결은 오히려 매우 간단하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에 나오는 말씀을 똑바르게 번역하면 되기 때문이다. 먼저, 요한복음 10:28에 나오는 말씀 곧 영생을 받은 자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바로잡으면 된다. 그리고 예수께서 보내 주실 성령은 '영원토록' 믿는 이들과 함께 하신다는 말씀에 대한 번역도 같이 바로 잡으면 된다. 왜냐하면 헬라어 원문에 '영원히' 혹은 '영원토록'이라는 말씀은 실로 '에이스 톤 아이오나'라는 부사구이어서 '그 시대까지(for the abe), 그 세대 동안(fot the generation)'이라고 번역을 해야 바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 시간이 진짜 끝없이 지속되는 무궁한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성경 기자는 '에이스 톤 아이오나'라는 부사구를 '에이스 투스 에이오나스 톤 아이오논(세대들의 세대들까지)'이라는 부사구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요10:28이나 요16:17의 말씀에 나오는 '영원히' 혹은 '영원토록'이라는 말씀은 '그 시대까지(그 시대 동안)'로 고정되어 있다. 즉 성령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시대 동안에만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가 죽는 날에는 떠나가실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4. 생명에 관해 말씀하고 있는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말씀의 차이는 무엇인가?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은 둘 다 생명에 관해 언급하는 요한이 성령의 감동으로 쓴 책이지만, 이 두 책은 약간 강조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첫째로, 요한복음은 생명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책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생명을 얻는 방법도 같이 소개해 주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믿음'을 통해서다(요3:15~16). 어떤 죄인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에게는 성령을 통해 생명이 수여된다는 것이 핵심 요지다. 그래서 그 순간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사실 그의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이 된다. 

요3:15~16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둘째로, 한편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한 번 얻은 생명이라도 그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과 또한 생명을 보존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계2:7, 3:5, 22:14,19).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던 자라도, 죄를 지은 후 자기의 겉옷을 빨지 않는 자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성밖에 남겨지거나 던져지게 됨을 알 수 있다. 즉 죄에게 졌으나 회개하지 않는 자는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성 안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없는 것이다. 

계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22:14~15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계22: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5.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하여 한 번 얻은 생명을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에 대해 소개해 주고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자신이 더럽혀진 옷을 깨끗이 빨아야 한다는 것이다(계22:14). 자신의 더럽혀진 마음과 말과 행위를 회개를 통하여 예수님의 피로 깨끗이 씻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죽는 날에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기 때문이다(계2:7). 그러면 그 사람은 원래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 예루살렘 성 안의 시민증을 받은 상태였지만, 그가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음으로 죽는 날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성밖으로 쫓겨나거나(계22:15),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게 될 것이다(계21:8). 고로 한 번 얻은 생명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날마다 자신의 더럽혀진 옷을 빨아야 한다. 자신의 더럽혀진 행실을 회개함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되고, 회개를 통해서 그 받은 생명을 보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시작 단계는 예수님을 믿어 생명을 얻는 단계이며,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최종 단계는 성령의 음성을 쫓아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단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23년 11월 22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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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강해보완(32)] 어떻게 하면 나도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는가?(계22:14,19)_2023-11-21(화)

https://youtu.be/WXRt_onnutw [또는 https://tv.naver.com/v/45413258]

 

1. 들어가며

  이 세상의 생명체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독특한 생명들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식물은 식물의 생명을 가지고 있고, 동물은 동물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맨드라미는 맨드라미의 생명을 가지고 있고, 뻐꾸기는 뻐꾸기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떠한가? 사람은 역시 다른 존재들처럼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생명이 더 필요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창1:26~27).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와야 진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사실 엄마와 아빠로부터 사람의 생명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의 영 속에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들여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육체와 영혼을 지닌 존재로서, 육체는 자신의 부모로부터 사람의 생명을 물려받았지만 또한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새의 생명이 있어야 하고, 사자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사자의 생명이 있어야 하듯,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생명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세우셨던 구원 경륜이란 어떤 것인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는 무턱대고 지은 것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계획 가운데 창조를 시작하셨다. 그런 각도에서 성경을 보면, 우주의 창조의 중심은 지구이며, 지구의 중심은 사람이라는 것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의 첫 시작이 바로 하늘늘과 '지구'였으며(창1:1), 창조의 맨 마지막이 인간 창조였기 때문이다(창1:26~27).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첫째 날에 지구를 만드시고 넷째 날에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셨다. 그리고 여섯째 날 마지막 해질 무렵에 인간을 창조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인간으로 하여금 누리고 살 수 있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존재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사탄이 된 하늘의 천사장 루시퍼였다. 루시퍼는 하나님의 창조를 지켜보면서, 결국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상속자로 만드시어 이 우주와 은하계를 인간에게 주시려고 한다는 것을 간파하였다. 그러자 시기 질투심이 발동했다. 그리하여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를 속여서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게 함으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지 못하도록 시도하였다. 그러자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씨를 통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여자의 씨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 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진짜로 아들을 보내 주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영접하면 죄사함을 받게 됨과 동시에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리고 여러 훈련과 연단을 통과하게 되면, 그도 역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구원 경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인가?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 경륜의 핵심은 '생명'에 있다. 즉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명을 사람에게 주시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게 하는데 그 핵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반드시 자기가 이 세상에서 육체가 살아 있을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이요, 아버지의 생명이요, 파괴시킬 수 없는 생명을 받아서 그 생명을 취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당신의 생명을 주려고 하셨을까? 그것은 먹기 좋은 형태인 나무의 열매로서 생명을 주려고 하셨다(창2:9).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물을 먹고 있는 생명나무 한 그루를 이 지구의 동쪽 에덴이라는 동산 중앙 한가운데로 가져다가 심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에게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그들도 가질 수 있게 하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기 전에, 사탄이 뱀으로 가장하여 선악나무에서 하와를 유혹하여 넘어뜨리고 말았다.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유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하와는 선악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이야기를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듣지 않았기에, 뱀의 말에 귀가 솔깃하여 그만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먹고 만다. 그리고 그 열매를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함으로서 둘 다 죄를 짓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 지구에 사망이 들어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망이 임하기 전에 그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셨으니, 그것은 흠없는 속죄제물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게 된다면 인간의 모든 죄들도 속함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속죄제물로 이 땅에 들어오셨고, 세상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담당하신다. 그리고 승천하셔서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령을 보내주신다. 그래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원하는 자에게 성령을 받게 하신다. 그러면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생명을 주신다. 

 

4. 에덴동산에 있던 생명나무와 선악과의 진실은 무엇인가? 

   이 세상 만물 가운데에는 생명체들이 있다. 크게는 식물 생명체와 동물 생명체로 나뉜다. 그런데 이들의 특징은 씨를 남김으로 또 다른 생명을 낳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에덴동산 한가운데 있었던 생명나무와 선악의 지식의 나무의 열매에는 과연 씨가 있었을까? 무심코 넘겨버릴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질문은 우리에게 상당히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식물치고 하나님의 생명을 줄 수 있는 실과는 하나도 없으며 선과 악을 줄 수 있는 실과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에덴동산의 모든 나무들은 셋째 날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지만,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시는 지식의 나무는 창조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최초 생명나무는 셋째 하늘에서 가져다가 에덴동산에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2:7과 고후12:2,4에 의하면,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낙원 곧 셋째 하늘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창세기 2:9에 의하면, 생명나무는 에덴동산에 그냥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악나무는 어떻게 되어서 에덴동산에 있게 되었을까? 그것에 대해서는 영안이 확실히 열린 분이 그 장면을 보니, 사탄이 그곳에 선악나무를 가져다 놓았다고 한다. 그것이 확실한 사실인지는 나중에 천국에 가 보면 알게 되겠지만, 상당히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생명나무나 선악나무는 이 세상의 모든 나무와는 달리 열매에 씨가 없는 나무라고 추측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나무들은 열매가 떨어져서 그 속에 있는 씨앗으로서 어린 묘목을 재생산하는 나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5. 생명나무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 땅에 심겨진 생명나무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생명나무의 열매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 있었는데,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생명나무에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고 차단되었으며, 대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인류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시고 하늘로 오르신 후에 생명주는 영이신 성령을 대신 보내 주심으로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나눠주시고 있기 때문이다(고전15:45). 어떤 분이 영안을 열어서 보니, 아담의 범죄 이후 생명나무는 그룹들과 화염검으로 보호를 받다가, 노아 홍수 이전에 다시 하늘로 올라가버렸다고 한다. 사실 예수께서도 공생애 기간에 당신이 생명이라는 것을 누누이 말씀해 주셨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다음의 말씀에 주목을 해 보라. 

요1: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아들 예수님에게만 생명을 주셨다(요5:26). 그래서 예수님만이 독생자이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먼저는 속죄(죄사함)에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명을 해방하여 자신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나눠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요12:24).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성령께서 오셔서 지금도 믿는 자들 속에 하나님의 생명을 나눠주시고 계시는 것이다(고전15:45). 그런데 요한복음 15:1,5의 말씀을 따르면, 예수님을 포도나무라고 말씀하고 있다. 왜냐하면 포도나무는 그 특징이 많은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생명이시고 그분이 포도나무라는 것을 합쳐본다면, 예수님이 곧 생명나무이신 것이다. 아담의 범죄 이후 그리로 가는 것이 차단되었던 생명나무 그리고 노아 홍수 이전에 하늘로 올라가버렸던 생명나무가 바로 인격이 되어 예수님으로서 이 땅에 다시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생명을 얻을 수 없으며,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저 생명의 나라인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분만이 생명나무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이시기 때문이다(요10:7,9).

요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요10:9~10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6. 나오며

  예수님은 아담이 잃어버렸던 바로 그 생명나무이신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나무가 에덴동산에 심어졌던 목적은 아담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통하여서 그 생명을 다시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어서 먼저 죄사함을 받고 그리고 생명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하나님의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2023년 11월 21일(화)

정보배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강해보완(31)]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수님은 자신을 과연 누구라고 하셨는가?(계22:13,16)_2023-11-20(월)

https://youtu.be/NyeLWfzm7fQ [또는 https://tv.naver.com/v/45413238]

 

1. 들어가며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다. 우리가 그분을 믿어서 죄사함을 받고 영생도 얻고 하나님의 자녀도 되며 천국에도 들어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잘 알고 믿어야 한다. 그분이 누군지도 모른 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풍성을 놓치고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분이 누군지를 잘못 알게 되면 이단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알되 힘써서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누군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는데, 하나는 그분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있을 때와 그리고 또 하나는 그분이 죽고 부활 승천하여 하늘에 계실 때로 구분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지상에 계실 때에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통해서 당신 자신이 그리스도이자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계시하셨다. 그렇다면 부활 승천 후 천상에 계신 예수님은 여전히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뿐이신가? 아니다. 그것 이상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제 하늘에 오르시어 신성만을 취하신 분이 되셨기 때문이다. 그럼 그분은 대체 누구신가? 지금도 여전히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로만 존재하시는가? 아니다. 지금 천상에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있을 때에 계시된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그것이 요한계시록에 나타나 있는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2.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수님은 누구신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살펴보면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소개해 주는 책같이 느껴질 정도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의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소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을 다 조사해 보면, 그분은 약 30가지 정도의 명칭으로 불린다. 그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분은 먼저 '인자 같은 이'시다(1:12~13, 14:14). 왜냐하면 천국에서 그분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은 '유다 지파의 사자이자 다윗의 뿌리'이자(계4:5),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 양'(계4:5)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계17:14, 19:16)이시며, '심판주'(계20:11)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보좌에 앉아 계신 이'(계21:5)시다. 또한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계2:18), '그리스도'이시다(계1:1,2,5, 11:15, 12:10, 20:4,6). 그런데 요한계시록에는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매우 독특한 표현이 등장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는 ~이다"라고 표현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으로는 총 5가지가 있다(계22:13,16). 

 

3. 요한계시록에는 예수께서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요한계시록을 보면,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가리켜 "나는~이다"라고 말씀하신 대목이 여러 번 나온다. 그런데 그분은 항상 현재의 시간에 존재하고 계시기 때문에 스스로를 가리켜 "나는 ~이다"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으시다. 그런데 그러한 자기 선언은 우리를 충격에 빠뜨리게 한다. 왜냐하면 첫째로, 예수님의 자기 선언에는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혹은 "나는 그리스도다"라는 표현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하면, 예수께서 자기 스스로를 가리켜 "나는 ~이다"라고 선언하신 표현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것은 크게 3가지다. 하나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다"라는 것이다(계22;13). 그리고 또 하나는 "나는 다윗의 뿌리요 종족이다"(계22:16)라는 것이며, 마지막 하나는 "나는 광명한(빛나는) 새벽별이다"다(계22:16). 

 

4. 예수님의 첫 번째 자기 선언은 그분이 누구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는가?

  예수님의 첫 번째 자기 선언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나는 시작과 마침이다"라는 것이다(계22:13). 그런데 이 3가지 표현은 다르지만 뜻은 같다. 그렇다면 주님의 이 세 가지 자기 선언은 그분이 누구라는 것을 말해 주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예수님이 바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이다. 이는 곧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표현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예수께서는 자신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나는 ~이다"라고 하신 표현을 일곱 번이나 사용하셨다. 그러한 자기 선언에는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8:12)", "나는 양의 문이다(요10:7)", "나는 선한 목자다(요10: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14:6)", "나는 포도나무다(요15:1)"라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이 들려주는 예수님의 자기 선언은 이와는 아예 차원 자체가 다르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분이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을 그대로 표현해 주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표현은 "내가 모든 것을 쥐고 있어! 내가 시작하고 내가 마치는 거야! 내가 모든 것을 시작했던 창조주이며 내가 앞으로 모든 것을 마칠 심판주라는 것이야! 내가 이 모든 것의 유일한 주관자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로 알려 주신 분은 다름이 아니라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 자신이기 때문이다(계1:8).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인자 같은 이로서 사도 요한에게 자기 자신을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계시하신 것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에는 여호와께서 자기 자신을 가리켜,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사41:4, 44:6, 48:12). 이러한 두 가지 내용만 살펴보더라도, 우리는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그분만이 유일한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5. 예수님의 두 번째 자기 선언은 그분이 누구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는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두 번째 자기 선언은 '나는 다윗의 뿌리요 종족(자손, 가족, 가계, 종류, 종족)이다'라는 표현이다(계22:16). 이는 실로 놀라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당신 자신도 인간이셨다는 것을 강조해서 표현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사실 때에도 이와 비슷한 표현을 사람들로부터 들으셨다. 예를 들어, 두 맹인이 자신의 눈을 고쳐 달라면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마9:27, 20:30). 그리고 수로보니게 여인도 자신의 귀신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예수님을 부를 때에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마15:22). 그리고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도 사람들이 앞서가고 뒤서가며 외치기를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기 때문이다(마21:9,15). 이는 예수님이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라는 것을 사람이 인정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지상 생애 가운데 불려진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을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천상의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표현과는 다르다. 지상 생애 가운데 사용된 '다윗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다윗의 아들('휘오스')'로서, '다윗의 후손'이라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상에 계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 직접 자기 자신을 가리켜 '다윗의 뿌리이자 자손'이라고 말씀하실 때에는 '나는 다윗의 뿌리이자 종족('게노스')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분은 피조물이었던 인간의 종족이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씀하신 것이다. 실로 황망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이 누군지를 말씀하실 때에 '다윗'이라는 인간의 이름을 사용하실 것일까? 그것은 그만큼 다윗이 하나님을 감동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여호와께서 당신 자신을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분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셨다(출3:6). 이는 하나님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일하신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이름을 거론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신약에 들어와서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당신의 칭호에 '다윗'이라는 인간의 이름을 또 사용하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윗'을 알아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사실 이 세상 사람 가운데 단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다(행13:22~23). 그 인물이 바로 '다윗'이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감동을 받으셨으면, 그의 궁궐이 있는 시온산의 이름을 천국에 있는 산의 이름으로 부르셨을까? 그 이름은 바로 '시온산'이다(계14:1).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가 살고 있는 도시의 이름을 따서 하늘에 있는 도시를 '새 예루살렘'이라고 명명하셨다(계21:2). 이는 다윗이 그만큼 하나님을 감동시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윗의 어떠한 점이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그토록 감동시켰던 것일까? 그것은 다윗이 항상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찬양했던 인물이었다는 것도 한 몫은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윗이 일평생 동안 오직 하나님만을 위하고 높이며 살았던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왕이 되어서 최초로 한 일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시온산성으로 옮기는 일이었고, 또한 법궤를 안치할 성전을 지어 드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피를 많이 흘렸으니 그의 아들인 평화의 왕이 성전을 지어야 한다면서 말리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의 그러한 기특한 마음을 깊이 간직하셨다. 그리고 선왕이었던 사울과는 달리 그의 자손들 20명을 계속해서 왕 위에 앉게 해 주셨다. 그리고 마태복음 1장의 메시야의 족보에서도 오직 한 사람 다윗에게만 왕이라는 칭호를 붙여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마1:6). 또한 다윗은 이 땅에 살았을 때에 가장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의 하나였다. 그래서 그는 환상 중에 하늘에 있는 생명책도 볼 수 있었으며(시69:28), 장차 오실 메시야가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을 것이라는 사실도 1,000년 전에 미리 내다보았다(시110:1). 또한 그가 비록 성전을 직접 짓지는 못했지만 성전 설계도를 미리 얻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손이 환상 중에 나타나 그것을 그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도 회개의 비밀도 깨달은 자였다.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에 달랑 짐승만 가져다가 그 피로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죄가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진정한 상한 심령으로서, 하나님께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진정 제물로 받으신다는 것을 알았었기 때문이다(시51:16~17). 

 

6. 예수님의 세 번째 자기 선언은 그분이 누구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는가?

  마지막으로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세 번째로 '나는 광명한 새벽별이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그분이 '빛나는 새벽의 별'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그분은 모든 별들을 이끌어 가는 새벽의 가장 빛난 별이시다. 사실 새벽이 되면 하루 가운데 가장 어두워지는데, 그때에 칠흑같은 밤이 찾아온다. 그때 밤 하늘에 가장 빛나는 별이 하나 있으니 그 별이 바로 새벽별 곧 샛별이다. 새벽을 밝히는 별이 그 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빛나는 새벽별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첫째로, 그분이 모든 어둠을 끝내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둘째로, 그분이 모든 별들을 이끌어 가는 인도자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분이야말로 수많은 별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이끌어 주는 진정한 인도자 별이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침의 영롱한 빛으로 우리가 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어둠이 하나도 없으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있는 어둠을 없애시고 새 아침을 여시기 위해 어둠의 공간인 이 세상으로 들어오신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아침 여명을 밝히셨다.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그분만을 따라가면 된다. 그분이 빛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캄캄한 가운데에서도 이끌어 가는 인도자 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도 언젠가는 빛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7. 나오며

  요한계시록에서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나는 ~이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시어 당신이 누군지를 정확히 계시해 주셨다. 그것은 한마디로 예수께서 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인간이셨다는 것과 인간 다윗을 매우 사랑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어둠을 끝내시고 빛의 나라인 천국으로 인도하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셨다가 우리들을 위해 사람이 되셨던 이, 곧 인자 같으신 이이신 예수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분만을 찬양해야 한다. 그분이 모든 것이요 그분이야말로 표현된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없었다면 우리는 영원한 죄 가운데 빠져서, 영원한 형벌 속에 오직 어둠만이 가득한 불못 속에 떨어져 영원한 고통을 받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되신 하나님께서 오셔서 우리 대신 죽으시고 우리 대신 음부에까지 내려가셨다. 그리고 다시 부활하셨다. 그리고 새벽을 밝히시며 모든 별들을 이끌어 가는 인도자가 되어 주셨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의 평생의 소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주 예수님을 자랑하고 그분을 높여드리며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분을 믿어서 천국에 들어가도록 도와주는 일이어야 하는 것이다. 

 

 

2023년 11월 20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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