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강해보완(48)] 사데 교회의 예를 통해서 배우는 이기는 자가 되는 법(계3:1~6)_2023-12-11(월)

https://youtu.be/4UIBLbGGGc8 [또는 https://tv.naver.com/v/45416821]

 

1. 들어가며

  사데 교회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 가운데 다섯 번째로 소개되고 있는 교회다. 그런데 이 교회는 예수님께 칭찬을 듣는 것이 하나가 없는 교회다. 오직 책망만 있는 교회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면 일곱 번째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와 비슷하다. 주님께서는 이 교회는 죽어 있는 교회라고 하셨다. 이 교회에는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는 주의 종이 죽어 있는 교회요, 성도들도 역시 죽어 있는 교회였기 때문이다. 대체 이 교회는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그리고 이러한 교회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 천국에 들어가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사데 도시와 사데교회의 특징은 무엇인가?

  사데 즉 현재 사르디스는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곳에 위치한 도시다. 그래서인지 그 도시는 유사 이래 딱 두 번의 침입을 받았다고 한다. 한 번은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왕 때였고 또 한 번은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 때였다. 그리고 이 도시 옆으로 강이 흘러가고 있었는데 그 강에서는 사금을 채취할 수 있었고, 양털을 가공하여 산업을 육성했기에 부유한 도시였다고 한다. 지금도 터키에 성지순례를 가 보면 18m짜리 거대한 기둥 2개를 만나게 된다. 왜냐하면 B.C.330년 당시 알렉산더가 이 도시의 수호신인 풍요의 여신 시벨레를 없애고 그 자리에 같은 종류의 여신 아데미 신전을 세웠는데, 그것이 파괴되어 기둥 총78개 가운데 2개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교회는 정말 평탄한 교회가 아니었는가 싶다. 왜냐하면 이 도시는 거의 전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대인들이나 로마 황제에 의한 핍박도 없었다. 그리고 에베소교회와 버가모교회가 겪어야 했던 이단적인 가르침인 니골라당의 가르침이나 발람의 가르침도 없었고, 두아디라 교회에 침투한 이세벨의 가르침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데라는 지역이 특성상 돈이 많았고, 음란한 도시였기에 교회도 역시 돈과 쾌락에 물들어 점점 세속화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교회의 문제는 교회의 지도자나 성도들이 자기들이 세속화되어가고 있는지를 도무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의 종이 죽어 있는 교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 시에 말씀하시는 음성도 모르고 있는 교회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교회를 소개하고 있는 예수께서 자신이 누군지를 말씀하셨을 때에 그 음성으로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교회는 예수께서 오른손에 일곱 별들을 쥐고 계시고, 일곱 영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교회는 말은 살아 있다고는 하나 죽어 있는 교회였다. 왜냐하면 온전한 것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세속화된 교회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교회의 주의 종이나 이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자기들 생각으로는 흰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고, 생명책에 자기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천국에 있는 생명책에서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고 있던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대로 계속 있으면 사데교회의 주의 종이나 성도들은 똑같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입성하지 못한 채, 성밖이나 불못에 던져질 것이 뻔했다. 

 

3. 주님께서 이 교회에 대해서 어떤 처방전을 내리셨는가?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셨다. 그것은 3가지였다. 첫째 그들이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를 기억해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둘째, 그때 받았던 것과 그때 들었던 것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단호하게 회개해야 한다고 하셨다. 고로 이 교회의 지도자들이나 성도들은 처음에 이미 사도들에게 들었던 말씀을 잊어버린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고, 그들이 온전한 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도 역시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처음에 사도들로부터 들었던 말씀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예수님의 오리지널 말씀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불순물이 하나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말씀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었고 충성하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세워진 사도들이 바로 그러한 말씀을 증거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본질적인 신앙으로 회복하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자신들이 지금 어떠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그 도시에서 핍박도 받지 않았고 이단에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속화의 길을 걷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 도시가 다산의 여신을 숭배하고 있었고 돈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데에 위치해 있는 교회도 음란에 물들고 있었고 맘몬 신에 물들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이 주는 쾌락과 유흥과 향락마저 주님이 주시는 복이라고 알고 향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4. 소수의 이기는 자들에게 주께서 주시겠다고 하는 상이 말하는 경고는 대체 무엇인가?

  그런데 이 사데 교회 안에는 소수이지만 또 한 부류의 성도들이 있었다. 사데 교회 안에 또 다른 작은 교회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순종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교회가 원래 받았던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날마다 회개하면서 자신의 겉옷을 빨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흰 겉옷을 입고 있었다(계3:4).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만, 참된 신앙의 길을 걷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격려해 주셨다. 그리고 이들이 장차 죽으면 그들은 흰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걸어다닐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끝까지 이기는 자들이 되라고 격려하셨다. 그리고 이기는 자들이 받을 복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그런데 이기는 자들에 대한 주님의 축복이 의미심장하기만 하다. 왜냐하면 이것을 거꾸로 적용한다면, 지금 사데교회 안에 있는 대부분의 성도들은 지고 있었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끝까지 이기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3가지 복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로, 죽은 후에 흰옷을 입게 될 것이라고 했다(계3:5a). 둘째로,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계3:5b). 셋째로, 그들의 이름이 심판대 앞에서 의로운 자로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계3:5c). 그런데 처음에 받았던 대로 지키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첫째로, 그들의 옷은 더럽혀진 채 있을 것이다. 둘째, 죽는 날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고 말 것이다. 셋째, 심판대 앞에서 그들의 의로움이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5. 사데교회는 지금 한국 교회의 현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한국 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아마도 주님께서 지금 우리 가운데 나타나신다면 우리에게도 동일한 책망을 하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잘 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가 지금 선포하고 있고 알고 있는 사실들은 종교개혁의 전통 가운데 서 있는 교리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교리들 중에 약점들이 있다. 그러므로 이것만을 추구해서는 아니 된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했는지를 중심으로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도들이 어떻게 말씀했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에 반한 것들은 과감히 제거하는 수술을 단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닌데 영원한 구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종교 개혁자 루터의 외침처럼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처음에는 믿음과 지속적인 회개가 있어야 구원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야고보의 각르침을을 거부한 것이다. 왜냐하면 루터는 중세시대의 공로 사상이 너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믿음을 강조하다 보니 놓친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믿음에 따른 행위가 뒤따라와야 제대로 된 믿음이라는 것을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그의 뒤를 이은 칼빈은 어거스틴이 주장했던 절대적인 작정에 의한 구원관을 들고 나온다.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예정에 따라 되어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예정론은 절대 구원과 절대 멸망을 함께 말하는 '이중예정론'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느 교회에서도 절대적인 멸망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목회자는 없다. 절대 구원만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절대 구원의 측면만을 강조하다 보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은 강조될 것이다. 하지만 절대 멸망을 선포하면, 하나님의 잔인함과 난폭성도 함께 부각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중예정론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이러한 폭군이 절대 아니시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중예정론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단지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구원에 관한 모든 준비를 완성해 놓으시고 우리를 구원 안으로 초청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잘못 가르쳐지고 있는 가르침과 교리들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무엇이 처음으로부터 멀어져 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처음과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죽었을 때에, 하늘의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서 그날 성밖이나 불못에 떨어진 채 슬피 우는 일이 없어야 한다. 

 

 

2023년 12월 11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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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강해보완(46)] 버가모 교회의 예를 통해서 배우는 이기는 자가 되는 법(계2:12~17)_2023-12-08(금)

https://youtu.be/Hp-cS2zpvjQ [또는 https://tv.naver.com/v/45416785]

 

1. 들어가며

  우리가 이 땅에서 이기는 자가 되어 천국에서 왕 노릇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요한계시록 전체를 통해서 알려 주는 것은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귀신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귀신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예수님의 피와 예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이다(계12:11). 그리고 회개를 하는 것이다(계2:5,16,21~23, 3:3,19). 그런데 우리 주 예수께서는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각 교회들마다 이기는 자들이 누군지를 알려 주셨다. 다시 말해 각 교회마다 이기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며, 그들의 특성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 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시간을 통해 에베소 교회의 이기는 자들과 서머나 교회의 이기는 자들의 특성을 함께 살펴보았다. 오늘은 그 세 번째 시간으로서 버가모 교회의 이기는 자들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어떤 사람이 과연 이기는 자들이 되는가? 

  예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편지를 써 보내라고 말씀하시면서, 결국 누가 이기는 자들이 되는지를 알려 주셨다. 기본적인 것으로는 악한 영들과 싸워야 하고 그리고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다. 각 교회들마다 이기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일곱 교회들의 특성들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먼저 앞선 두 개 교회들의 이기는 자의 특성과 함께 버가모교회의 특성이 무엇인지 간단히 정리해 보자.

  첫째, 에베소 교회의 이기는 자들은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을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사랑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씀 사역자들은 예수님을 대신하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에베소 교회의 첫째가는 사랑이란 주의 종을 주님처럼 사랑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둘째, 서머나 교회의 이기는 자들은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자기 앞에 놓여진 고난을 잘 이겨냈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기 목숨을 내어놓기까지 하였다. 그렇다. 우리도 이기는 자들이 되려면 자기의 목숨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의 이름 때문에 어떠한 고난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기꺼이 그 고난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셋째, 그럼 버가모 교회는 과연 어떤 자들이 이기는 자들이 되었는가? 그것은 3가지다(계2:13~14). 첫째는 사탄이 죽이려고 하는 상황에서도 주님을 믿는 믿음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계2:13). 둘째는 자기 앞에 어떤 걸림돌이 있든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결코 먹지 않았다는 것이다(계2:14a). 셋째는 음행을 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계2:14b). 결국 이것들은 한 마디로 그들이 신앙의 지조를 지켰다는 것이며, 영적 육적인 신앙의 정절을 지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3. 주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가?

  부활하신 우리 주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만약 우리가 그것에 주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천국에 못 들어갈 수도 있으며,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다손치더라도 주님의 보좌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신앙의 지조을 저버리는 것이다. 자기를 세속에 물들이거나 더럽히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기뻐하는 것은 바로 영적인 그리고 육적인 순결을 지켜내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한 번 주님을 알고 그분을 믿기로 결단했다면, 죽기를 각오하고 믿음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믿음 때문에 조금 힘들다고 해서 다른 신을 찾아가서 물어보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한 남편을 만나 결혼했으면 그 남편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것이지 다른 남편을 좋아해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 만약 다른 남편을 마음에 품고 있다면 그것은 엄연히 음행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어찌하든지 육적인 순결도 함께 지켜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인 순결을 지켜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성도들은 영적인 순결을 지키고 또한 육적인 순결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잘 안 풀릴 때 성도들은 어떻게 하는가? 어떤 이들은 무당에게 찾아가서 물어본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금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신전 창기들과 음행을 저지르는 것도 금해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만약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주님께서 속히 오셔서 전쟁에 쓰는 기다란 칼('롬파이아')로 그를 베어버리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2:16). 여기서 주님께서 언급하신 '칼'이란 '롬파이아'라고 불리는 칼로서, 전쟁에서 사용하는 양쪽에 날이 선 긴 칼을 말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전쟁에서 상대방을 베어서 죽이거나 찔러서 죽일 때 쓰는 도구를 우상숭배자들과 음행자들을 치는 도구로 사용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신도 함께 섬기면서 천국에 들어갈 자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머나 교회에게 보낸 편지의 서두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소개하실 때에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라고 소개하고 계신다(계2:12).

 

4. 소아시아의 버가모 교회는 어떤 교회였는가?

  당시 '버가모'라는 도시는 황제숭배와 우상숭배가 가득한 도시였다. 그리고 이 도시의 수호신은 '아스클레피우스'라고 하는 뱀신이었다. 그리고 아스클레피우스 말고도 제우스 신, 아테네 신, 디오니소스(술의 신, 로마의 박카스 신) 신도 섬기고 있었다. 그리고 살아 있는 로마의 황제를 '주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섬기고 있었다. 그러니까 로마의 초기부터 이 도시는 아우구스투스의 신전을 만들어 놓고 섬긴 것이다. 그리고 사도 요한이 이 편지를 쓰고 있을 때 로마 황제가 도미시안이었는데, 이때도 버가모 시민들은 도미시안 황제를 '주 하나님'으로 섬겼다. 그러므로 이 교회의 지도자였던 안디바는 도미시안 황제를 주 하나님으로 섬기기를 거부하였다. 그러다가 그만 불에 달군 놋쇠 황소 안에서 불에 타져서 죽임당하고 말았다. 그때가 바로 A.D.92년경이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이 이 편지를 기록하기 4~5년 전에 안디바가 황제숭배를 거부하다가 그만 처형당한 것이다. 그러니까 천상에 계신 주님께서도 이 도시를 가리켜, '사탄의 보좌'가 있는 도시라고 하셨고, 사탄이 거주하는 도시라고 말씀하셨다(계2:13). 그러나 안디바는 주님의 이름을 굳게 붙잡았다. 그리고 예수님만을 자신의 주이자 하나님으로 섬기다가 결국 주님 앞으로 갔던 것이다. 

  그럼, 버가모 교회는 어떠했을까? 버가모교회는 안디바가 사역하고 있을 때까지 우상숭배나 황제숭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디바가 순교하자 이 교회는 금방 두 개로 갈리었다. 주의 종이 가르쳤던 말씀대로 따라가자고 하는 성도들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자들도 생겨났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은 안디바의 가르침에 순종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중에 몇몇 이들이 자신들의 세상적인 이익을 위해서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신전 창기와의 음행를 저지르는 것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러한 문제들을 문화적인 차원으로 이해하려 시도한 것이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셨다. 빨리 가서 싸워서 그들을 처리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계2:16).

  그렇다면 이들은 대체 누구였는가? 이들이 바로 '발람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자들이다.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괜찮고, 음행을 한다 해도 자신의 영혼에는 별 상관없다고 가르쳤고 그 가르침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가르침으로 인하여 몇몇의 성도들은 세속적인 사람들로 바뀌고 있었고, 신앙의 지조와 정결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이러한 가르침을 따라가는 자는 소수였다(계2:14).

 

5. 주님께서는 이기는 버가모 교회 성도들에게는 어떤 상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가? 

  그러자 우리 주님께서는 이기는 자들에게 2가지를 약속해 주셨다. 첫째, 감추어진 채 있는 만나를 주시겠다고 하셨다(계2:17). 그리고 둘째로, 한 분 하나님의 새 이름이 기록된 판정 조약돌인 흰 돌을 주시겠다고 하셨다(계2:17). 먼저, 감추어진 만나를 주시겠다는 것은 천국에서 마음껏 음식을 먹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당시 버가모 교회 성도들은 우상숭배와 음행을 행하는 도시의 축제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 도시는 이러한 성도들에게 장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아니했다. 그러자 성도들은 극도의 궁핍함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신앙의 지조를 지켰다. 두 번째로 주님께서는 이들이 예수님을 '주 하나님'으로 섬긴다는 이유 때문에 비록 버가모 도시 사람들로부터 비록 왕따를 당하고 있었고 범죄자 취급을 당하고 있다 할지라도, 천국에서는 죄인이 아니라고 인정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오히려 한 분 하나님의 새 이름인 '예수'라는 이름이 새긴 흰 돌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여기서 '흰 돌'이란 대제사장들이 재판할 때 사용하는 도구로서, 가슴에 있는 의의 흉배 안쪽 주머니 속에 있는 두 개의 조약돌 가운데 하나였다. 만약 조약돌 중에 검은 돌이 뽑히면 죄인이 되는 것이고, 흰 돌이 뽑히면 무죄로 석방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버가모 교회 성도들의 대부분은 이 세상에서는 비록 불법자이자, 범죄자로 취급받았지만 천국에 들어가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의인이라고 칭해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2023년 12월 08일(금)

정보배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강해보완(45)] 서머나 교회의 예를 통해서 배우는 이기는 자가 되는 법(계2:8~11)_2023-12-07(목)

https://youtu.be/z3595SgMVho [또는 https://tv.naver.com/v/45416773]

 

1. 들어가며

  우리 주 예수께서는 교회의 성도들이 이기는 자가 되기를 바라신다. 그래야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수 있으며, 또한 거기에서 왕 노릇하는 신분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진정 바라시는 이기는 자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때 이기는 자들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당시 소아시아 일곱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 속에 들어 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서 서머나 교회를 통해서 이기는 자는 어떤 자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서머나 교회는 어떤 교회였는가?

  서머나 교회는 한 마디로 고난받고 핍박받는 교회였다. 이 교회는 A.D.155년 당시 이 교회의 지도자였던 폴리갑이 12번째로 순교를 했다. 그러니까 이 교회는 교회가 생긴 이래로 계속해서 순교자를 배출해 온 교회였던 것이다.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그러한 은혜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주와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지도자들을 계속 배출하고 있던 교회였다. 그래서인지 이 교회에는 책망이 없다. 요한계시록 2~3장에 기록된 교회 가운데 칭찬만 있는 교회가 있는데, 그러한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 둘 뿐이었다. 이 두 교회는 책망은 없고 칭찬만 있는 교회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칭찬은 없고 책망만 받은 교회도 있었다. 그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였다. 라오디게아교회는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는 교회였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를 당신의 입에서 토해버리고 싶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이 교회는 뜨겁지 않고 차갑지도 않은 교회였기 때문이다(계3:15~16). 그런데 서머나 교회는 이와는 정반대의 교회였다. 서머나교회는 주 예수님에 대한 올곧은 신앙고백으로 인하여 환난과 궁핍이 있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들이 가난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이 교회는 부요한 교회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주님의 기준은 이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늘의 기준으로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이 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교회를 판단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하늘의 기준으로 성도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3. 서머나 교회에게 예수님은 당신을 누구라고 소개하셨는가?

  서머나 교회에게 예수님은 당신을 2가지로 소개하셨다. 먼저 첫째는 당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이라고 소개하셨다(계2:8). 즉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알파와 오메가이시고, 시작과 마침이신 이라고 소개하셨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그분이 모든 일의 주관자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람이 죽고 사는 모든 문제를 주님께서 주관하고 계시다는 뜻이다. 고로 이 교회에서 계속해서 순교자가 생겨난 것도 다 주님의 뜻 안에서 되어진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사화복이 주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의 허락하심이 없이는 순교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고로 지금 주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일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주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그 길을 꾸준히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당신은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신 이라고 소개하셨다. 그러니까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부활하게 될 터인데, 이것을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선취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그것을 경험케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드러내신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당신은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신 이라고 소개하신 것은 누군가가 순교를 통해 보다 더 일찍 죽었다고 해서 그것을 비참한 죽음이라고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판단 기준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죽은 후에 새로 나는 부활생명은 주님께서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와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자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주시기만 하시는 것인가? 아니다. 이들에게는 주님께서 천국에서 엄청난 상을 내리실 것이다. 

 

4. 서머나 교회는 교회사적으로 볼 때 어느 위치에 속해 있던 교회였는가?

  서머나 교회는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소아시아의 두 번째 교회다. 그렇다면 소아시아에는 단지 일곱 교회들만 있었을까? 아니었다. 고로 일곱 교회들은 아마도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 가운데 주님께서 선별하여 말씀하신 교회인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순서를 언급하실 때에도 의도성이 그대로 들어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가 시계 방향의 순서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어떤 의도성을 가지고 소아시아에 있는 여러 교회들 가운데 선별하여 그 교회들을 언급한 것이다.

  그런데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은 위치상으로 볼 때 시계 방향으로 기록된 채 있지만 또한 교회사적으로 볼 때에도 그 시기가 순서대로 언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먼저 에베소 교회는 첫째가는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로서 A.D.30~96년경 초대 교회 시절의 교회를 대표하고 있다. 둘째로, 서머나 교회는 로마의 황제숭배 강요 때부터 기독교가 로마의 공식 종교가 될 때까지의 시기 곧 A.D.96~313년 어간의 교회상을 그대로 반영해 주고 있다 하겠다. 그리고 세 번째는 버가모 교회로서 기독교 공인 이후 세상과 타협하는 타락한 교회를 지칭한다. 이때는 A.D.313~590년까지의 기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넷째로 사데 교회는 1517년 종교개혁 이후 1,700년까지의 교회상으로서 서류상으로 살아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죽어 있는 교회를 가리킨다. 그리고 그 다음 다섯 번째로는 복음 전파의 가속도가 붙은 시기의 교회 시대를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빌라델비아 교회'의 시대이다. 이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졌지만 말씀을 순수하게 보존하였고, 갖은 핍박 속에서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았던 교회였다. 그리로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 라오디게아 교회의 유형이 있다. 이 교회는 말세지말의 교회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 보이며, 이때는 물질적으로 풍성하지만 영혼이 죽어 있는 교회를 가리킨다. 고로 각 시대별 교회의 유형 가운데 서머나 교회는 로마의 황제숭배 강요 때부터 기독교가 공식적인 종교로 인정받았던 시기에 있던 교회의 대표로 언급된 교회인 것 같다. 

 

5. 서머나 교회의 이기는 자들은 대체 누구며 그들에게는 어떤 축복이 기다리고 있었는가?

  서머나 교회는 이기는 자들이 따로 있고 지는 자들이 각각 따로 존재하는 교회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교회는 계속해서 이기고 있는 성도들로만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교회의 사역자들이 다 순교의 길을 걸어갔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교회는 그만큼 지도자가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이미 완성된 채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러한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기는 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주님께서는 2가지를 말씀하셨다. 첫째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계2:10a). 왜냐하면 고난이 사실은 두려운 것이지만, 아무리 마귀가 서머나 교회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 넣는다고 한들 열흘 동안만 시험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마귀에 의해 핍박을 당하는 사람이 받을 환난의 기간은 매우 짧다. 그것은 열흘이기 때문이다. 사실 10이라는 숫자는 충분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숫자다. 하지만 100이나 1,000 혹은 10,000에 비하면 가장 작은 숫자에 불과하다. 둘째는 죽기까지 신실하게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계2:10b). 지조 있는 믿음으로 자신의 신앙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믿음은 자신의 목숨을 주와 복음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는 일이다.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렇듯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주와 복음을 위해 내어놓는 사람이 받을 축복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모두 다 이 다음 세상에서 받게 될 것들로서 2가지다. 첫째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다(계2:10b). 왜냐하면 생명의 면류관은 주와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았던 사람들만이 받을 수 있는 면류관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계2:11). 이는 주님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자들은 결코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이렇듯 고난과 핍박을 견뎌내면서 자신의 신앙을 지켜낸 이는 하늘나라에서 커다란 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어찌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2023년 12월 07일(목)

정보배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강해보완(44)] 에베소 교회의 예를 통해서 배우는 이기는 자가 되는 법(계2:1~7)_2023-12-06(수)

https://youtu.be/MmIRakMTSuk [또는 https://tv.naver.com/v/45416761]

 

1. 들어가며

  요한계시록의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사실 중의 하나는 주님께서는 교회의 성도들이 다 이기는 자들이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은 이기는 자들이 들어가는 곳이며, 결국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 주께서 내어 주시는 보좌에 앉을 수 있으며, 만국 위에 왕으로 통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천국에서 자신이 갖는 신분 자체가 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기는 자들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마귀를 패배시켜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믿음과 회개를 통해 죄사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러나 그후에는 영적 싸움을 싸워서 승리해야 한다. 그것이 이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각 교회들마다 이기는 자들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는데, 그중에서 에베소 교회는 어떤 사람이 될 때 이기는 자들이 될 수 있는가?

 

2. 에베소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에베소교회는 A.D.54년경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에 개척한 교회였다(행19:1~20). 바울은 거기에서 두란노 서원을 빌려 3년 동안 가르쳤다. 그리고 훗날 그 교회에 디모데를 파송하였다. 그러나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디모데는 거기에 있을 때에 순교하였다. 그리고 더 훗날 그곳에 사도 요한이 가서 목회하였다. 요한계시록은 그가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붙들려 밧모 섬에 유배된 채 있을 때에 쓴 책이다. 또한 에베소 교회는 다른 교회와는 달리 목회자를 훈련시켜 지역에 파송하는 역할을 하는 그러한 교회였다. 그러므로 이 교회는 교회의 존재 목적 자체가 다른 교회와는 조금 달랐다. 

 

3. 에베소 교회가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은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에베소 교회는 칭찬도 듣고 책망도 받은 교회였다. 그들이 칭찬을 받게 된 이유는 이 교회 성도들이 수고했고 인내했기 때문이다. 또한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자칭 사도라고 스스로 말해도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의 거짓된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수준의 교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교회는 잘 참았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어 냈으며, 또한 지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이 교회는 주님께로부터 엄한 책망을 듣게 된다. 그들의 잘못은 그냥 잘못한 수준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 교회를 버려야할 수준이었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이 그들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는다면 촛대(금등대)를 옮겨버리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2:5). 주님께서 운행하는 교회에서 그 교회를 제외시켜 버리겠다고 하신 것이다. 주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교회가 되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실로 무서운 말씀이다. 그럼 그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주님은 먼저 그들을 칭찬하셨다. 하지만 한 가지가 그 교회의 존립 자체를 건드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처음의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처음'이라는 말은 '프로토스'라는 말로서, '첫째가는, 제일 좋은, 제일 자랑할 만한, 제일 잘 하는'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이 교회는 이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첫째가는 사랑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교회가 첫째가는 사랑을 저버렸기에 주님께서 책망하셨고 심지어 이 교회를 버리실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은 이 교회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4. 오늘날에도 교회가 없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코로나 이후 교회가 많이 없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가 없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주님께서 그 교회가 존재해야 할 이유와 사명을 함께 주셨는데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없어지는 것은 교회가 전도를 안해서도 아니며, 교회가 기도를 안해서도 아니며, 교회가 성경공부를 안해서도 아니다. 오늘날에도 교회가 없어지는 것은 그 교회에게 주신 사명 곧 이 땅에 그 교회를 세워주신 주님의 목적과 반대되는  길을 걸어가기 때문이다. 이 땅에 세워진 모든 교회는 다 자기만의 걸어가야 할 길이 있다. 그것을 망각하면 안 된다. 그런데 에베소교회는 그것을 망각해 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제일 잘해왔던 것 곧 첫째가는 사랑을 저버린 것이었다. 교회가 없어지는 이유는 그 교회를 이 땅에 세워주신 주님의 뜻을 교회가 망각하기 때문이다. 

 

5. 에베소 교회의 첫째가는 사랑이란 대체 무엇일까?

  에베소 교회의 첫째가는 사랑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말씀을 전달하는 사역자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물론 주의 이름으로 말씀사역자 곧 주의 종을 사랑한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 주님께서는 일곱 금촛대로 비유되는 교회들을 운행하시며, 또한 당신의 오른손으로 일곱 별인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붙들고 계시는데, 에베소 교회 역시 그와 같았기 때문이다(1절). 둘째, 주의 종이 참된 진리의 말씀을 증언해야 그 교회 성도들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데, 에베소 교회 역시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 준 주의 종을 진실로 사랑했기 때문이다(2~4절). 그러므로 에베소 교회를 주님이 책망하신 이유는 이러한 첫째가는 사랑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아닌 다른 사역자가 왔을 때에 그들이 진정한 주님의 종인지를 구별하는 일을 하다가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새로운 주의 종들이 오면, 그를 판단하고 분별하는 일에 열중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전달자인 주의 종을 처음의 경우처럼 생명처럼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주의 종들로 인하여 한 교회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는 것을 잊어버린 결과였던 것이다. 사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정말 참된 주의 종들을 많이 사랑했다. 심지어 자신들의 먹을 것을 아껴서 주의 종을 대접하는데 사용했고 그것을 기쁨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천국에 들어갔을 때, 에베소 교회와 같은 유형의 성도들에게는 천국에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서 먹게 하시겠다고 약속한 것이다(7절).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주의 종을 대하는 성도들의 태도를 기억하고 실천해야 한다. 

마10:40~42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023년 12월 06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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