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강해보완(43)] 어떻게 하면 교회의 강한 부분 곧 이긴 자가 될 수 있는가?(계12:10~11)_2023-12-05(화)

https://youtu.be/7UIXmf0ARb4 [또는 https://tv.naver.com/v/45416759]

 

1. 들어가며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긴 자가 될 수 있는가? 여기서 이긴 자가 된다는 말은 이 땅에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혜택은 천국에서 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긴 자가 된다는 것은 하늘의 복을 사모하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어제는 이긴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며, 성도들이 이기는 자가 되려고 할 때에 싸움의 대상이 누군지를 살펴보았다. 성도들이 이기는 자가 된다는 것은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요, 대적을 패배시키는 것이요, 대적보다 더 강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의 싸워야 할 영적인 대상은 이 세상의 통치자인 사탄 마귀다. 그리고 사탄 마귀가 지배하는 이 세상이요, 사탄 마귀의 하수들인 귀신들이 들어 있는 사람의 육체이자 생각이다. 그런데 사탄 마귀는 십자가에서 패배자가 되어 지금까지 무저갱에 갇혀 있다. 다만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이 올라와서 이 땅에서 마귀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실제적으로 싸우게 되는 대상은 귀신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긴 자가 된다는 것은 귀신을 물리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귀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2. 성도들은 어떻게 하면 귀신들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가?

 귀신들이 비록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때에 무장해제당해서 계급장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던 고유의 능력까지 다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능력들은 고스란히 그대로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귀신을 상대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들은 우리들보다 더 지혜가 있으며 능력이 있고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적어도 2,000살 이상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그러한 귀신과 상대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 이겨야만이 나중에 둘째 사망의 해도 받지 아니하고, 열두 진주문을 지나서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서 생명나무의 열매도 따먹고 거기에서 철장 권세로 왕 노릇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어떻게 하면 귀신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가? 그것을 요약하면,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영적 싸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도구들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으며,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까지 말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계12:10~11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3. 성도들이 영적인 싸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렇다면 성도들이 귀신들과 영적인 싸움을 할 때에 사용할 수 있는 영적인 무기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사도 요한은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사탄 마귀와 싸워 이겼는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는데, 그것은 어떤 영적인 무기들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즉 믿음의 선배들이 영적인 싸움을 할 때에 맨손으로 싸운 것이 아니라 영적인 무기들을 사용해서 사탄 마귀를 물리쳤다는 것이다.

  그때 그들이 사용했던 영적인 무기들은 최소 2가지였다. 하나는 '어린양의 피'였고 또 하나는 그들이 증언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렇다. 그들은 어린양의 피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싸운 것이다. 여기서 '피'란 예수님의 피를 귀신을 쫓고 대적하는 무기로 사용했다는 뜻이다. 그렇다. 예수님의 피는 귀신을 물리치거나 달라붙지 못하게 하는 데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자신들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무기로 삼았다. 즉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칼로 삼아서 귀신을 공격하고 무찌르는데 사용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 싸움에서 칼이 되기 때문이다. 곧 영적 싸움에서 사용하는 성령의 칼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엡6:17, 요일2:14). 

  그러나 영적인 무기들로서 사용할 수 있는 것들로 '어린양의 피'와 '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령 안에서는 무엇이든지 영적인 무기로 사용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귀신을 내쫓는 데에 '불'을 사용할 수 있고, '전기'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연자 맷돌'을 사용하여 그들을 갈아버릴 수도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14:12)라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다. 

 

4.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게 해 주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 성도들이 귀신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어린양의 피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할 수 있는가?

  그것은 첫째로, 믿음이다. 믿음을 사용해서 하늘의 영적인 무기들은 이 땅으로 끌어와서 쓸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믿음을 통하여, 하늘의 영적인 무기들을 가져와서 귀신을 공격하고 내쫓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믿음이란 첫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이미 사탄 마귀와 싸워서 이기셨다는 것을 신뢰하는 것이다(요16:33). 그래서 우리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암행어사가 사용할 수 있는 마패를 주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사탄을 이겨 그가 가진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취하셨고(계1:17~18),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권세를 가지셨는데(마28:18~20), 이제는 믿는 이들에게 그러한 권세를 주셨기 때문이다(막16:17~18).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요일5:4~5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과 세상에 속한 사람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믿음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우리에게 영적인 무기들을 주셨고 그것에 대한 사용 승인을 내주셨다는 것을 믿고 그것을 직접 영적인 싸움에서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믿음을 사용할 때에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의 '담대함'이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예수의 이름과 권세를 주셨다는 것을 믿고 마귀와 당당히 맞서는 것이다. 그럴려면 담대함이 필요하다(요16:33).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떠난 빈 자리를 이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그렇게 요청했던 것이다. 

  둘째는 회개다. 요한계시록 2~3장을 보면,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이 나오는데,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이기는 자들이 받을 상을 각 교회마다 언급해 주셨다. 그런데 그때에 칭찬해 주셨던 서머나교회에 고난과 핍박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하셨으며(계2:10), 빌라델비아교회에도 역시 적은 능력을 가졌을지라도 끝까지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책망만 들었던 나머지 다섯 교회를 향하여는 전부다 동일하게 회개할 것을 명령하셨다. 그래야 그들이 비로소 이기는 자들이 될 수 있으니, 각 교회들마다 회개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귀신을 상대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면 말한대로 그대로 이뤄진다는 하나님의 믿음을 갖고서 명령해야 한다(막11:23~24). 이것이야말로 귀신과 싸우는 적극적인 방법의 하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회개도 필요하다. 회개없이는 귀신이 내 몸에서 떠나가지도 않을 뿐더러, 다른 사람 속에 있는 악한 영들을 쫓아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개는 소극적인 방법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5. 나오며

  그렇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 거듭난 자들은 누구든지 귀신들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있다(요일5:5).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귀신과 싸우려하지 않는다. 어쩌다가 한 대 얻어터지면 그때부터는 귀신과 싸우는 것을 아예 멈춰버린다. 무섭기도 하고 얼마나 더 오랫동안 싸워야 할지 걱정이 사뭇 앞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신과의 싸움을 멈춰버린 자는 결국 이기는 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기는 자가 되지 못하면, 사실 천국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천국에 들어가서도 주님께로부터 받을 것도 하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연적으로 귀신과 싸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이기는 자들로 인정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믿음'과 '회개'가 필요하다. 믿음도 단순히 '구원얻는 믿음'에서 귀신도 쫓아내는 '역사하는 믿음'으로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 그리고 '회개'도 자신의 자범죄를 사함받는 회개도 해야 하겠지만, 귀신을 떠나보내기 위한 회개를 하려면, 보다 더 적극적인 회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으로 귀신이 떠나갈 것을 관철시키려 할 때에는 반드시 우리에게도 영적인 무기들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영적 무기들을 통해 귀신들이 뜨거운 맛을 보기 전까지는 그들도 잘 안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영적인 싸움을 하려면, 기존의 영적인 무기를 잘 받아서 귀신들이 떠나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우리 성도들도 교회의 강한 부분이 되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귀신과의 영적인 싸움은 어린이나 노인이 할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강한 젊은 이들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요일2:14).

 

2023년 12월 05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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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강해보완(42)] 예수께서 소아시아의 일곱교회에게 주신 말씀의 핵심은 무엇인가?(계2:7)_2023-12-04(월)

https://youtu.be/AcS5RQFUMeI [또는 https://tv.naver.com/v/45416754]

 

1. 들어가며

  A.D.95~96년경 사도 요한은 유배된 밧모섬에 있을 때 환상을 보게 된다. 그때 그의 영은 하늘로 올라갔고 그는 천상에 계신 예수님을 보게 된다. 그는 예수님에게 엎드렸고 주님으로부터 위로의 말씀과 더불어 그가 해야 할 일이 주어진다. 그것은 그가 예수님을 본 것과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들려준 말씀과 장차 미래에 되어질 일을 기록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사도 요한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받아 적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의 핵심은 무엇일까?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에게 보낸 말씀의 핵심은 대체 무엇인가? 

 

2.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에 보내라고 한 편지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에 보내라고 한 각각의 편지는 총 7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첫째는 수신자인 일곱 교회들이 나오고 둘째는 편지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리고 셋째는 편지의 발신자이신 예수님이 누군지를 말씀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예수님은 계1:9~20에 나오는 '인자 같은 이'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각각 나누어 말씀하신다. 넷째는 각 교회에 대한 칭찬과 격려의 말씀이 나온다. 다섯째는 책망과 꾸중과 경고가 나온다. 여섯째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는 권면이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곱째는, 각 교회에게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이 나온다. 결국 이 편지의 핵심은 각 교회들마다 이기는 자들이 되라는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각 교회가 어떤 형편에 처해 있든지 이기는 자들이 되어서,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아 누리는 자가 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3. '이기는 자들이 되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요한계시록에서는 '이기다'라고 번역된 동사로서 '니카오'가 무려 18번이나 나온다. 그런데 성경 구절로는 총 15구절이다. 그런데 이러한 빈도는 신약성경에서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에는 '니카오'라는 동사가 총 28번 밖에 안 나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기다'는 동사는 요한계시록에 집중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동사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보낸 편지의 말미에 나온다. 그럼 이 동사는 어떤 뜻을 지지고 있을까? 그것은 크게 3가지다. 첫째는, '이기다, 승리하다, 정복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둘째, '[적을] 패배시키다, 굴복시키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셋째, '더 강하게 되다, 우세하다, 능가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문맥에 따라서 '니카오'는 약간씩 다르게 번역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단어가 사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상은 바로 '적' 혹은 '대적'이다. 곧 대적하는 자가 존재해야 이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기는 자들이 된다'는 말은 대적인 원수와 싸워서 승리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원수 대적을 패배시키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해서 자신은 최소 적보다는 우세해야 하는 것이다. 

 

4. 주님께서 각 교회의 이기는 자들에게 복으로 주시마 약속하신 말씀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먼저, 주님께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계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에베소 교회)

계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서머나 교회)

계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버가모 교회)

계2:26~28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두아디라 교회)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사데 교회)

계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빌라델비아 교회)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라오디게아 교회).

  이상의 말씀을 살펴보면,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에는 다음과 같은 3가지 특징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이 모든 복이 다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에서 받게 될 복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이 복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거나 혹은 그 성 안에서 받게 되는 복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이 복은 우리 육체가 받을 복이 아니라 영이 받을 영적인 축복이라는 것이다. 셋째, 이 복은 우리가 살아 있을 때 받을 복이 아니라 죽은 다음에 받게 될 복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이 땅의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삶의 목표를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잘 쉬는 것에 목표를 두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하늘나라에 들어갔을 때에 받을 복에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5. 우리 성도들은 오늘날 누구 혹은 무엇으로부터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누구 혹은 무엇으로부터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결국 악한 자인 사탄 마귀로부터 이기는 것이다(요일2:13~14, 4:4). 사단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이겨야 하고 반드시 패배시켜야 할 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우리가 이겨야 할 대상으로서 몇 가지를 더 언급하고 있다. 

  첫째는 마귀의 지배하에 있는 이 세상으로부터 이겨야 한다(요일5:4~5, 2:15~16).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세상의 것을 사랑하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빠지기가 쉽기 때문이다. 둘째는 사람의 육체를 이겨야 한다(갈5:16~17). 왜냐하면 사람의 육체 안에는 육체의 소욕이 들어 있는데, 성도들이 그만 이 소욕을 버리지 못한 채 육체를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그가 육체를 따라가서 육체의 열매를 맺게 된다면, 그는 반드시 불못에 던져지고 말 것이다. 셋째는 사람의 악한 생각들이다(막7:21~23). 예수께서는 사람의 악한 생각들에는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넷째는 죄된 본성으로서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귀신들을 이겨야 한다(눅11:22). 귀신을 이겨서 그것들을 쫓아내야 상태적인 천국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사망을 잡아야 한다(히2:14, 계12:11). 이때 사망은 사망의 영인 사탄이 주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망을 패배시킨다는 말은 곧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없이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마귀와 싸워서 승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2023년 12월 04일(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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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강해보완(40)] 요한계시록에서 예수그리스도는 두번째 신인가 한 분 하나님이신가?(계1:4~6)_2023-12-01(금)

https://youtu.be/fn9jqHs9clY [또는 https://tv.naver.com/v/45415378]

 

1. 들어가며

  요한계시록은 인류의 미래를 예언하는 예언의 책이며, 또한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려 주는 계시의 책이다. 비록 이 책이 편지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요한계시록은 실제로는 예언과 계시의 책인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우리는 지난 몇 시간을 통해 성부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세 번째 시간으로서 성자 예수님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과연 삼위일체의 제2위격인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을까 아니면 한 분 하나님의 존재 안에 예수님을 포함시키고 있는 것인가?

 

2. 예수께는 과연 제2위의 신 곧 두 번째 신인가?

  신약성경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아들로서 제2위격인 두 번째 신인 것인가? 맞다. 그런데 이렇게만 알고 있으면 안 된다. 그러면 잘못하다가는 삼신론적인 신관을 갖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삼위일체의 헛점을 노리는 이단들에 의해 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알려 주는 신관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삼위의 한 분으로서 예배의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고 한 분 하나님의 존재 안에 예수님을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정의는 사실 영국의 신약학자였던 리차드 보컴교수가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가 옳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 한 분 하나님의 입장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제2위격의 하나님으로 나오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존재 안에 들어 있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소개 속에 예수님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님에게 드려지는 예배를 보니, 그분이 한 분 하나님이심을 증언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 결국 예수님에 의해 수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4.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신 첫 번째 증거는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두 번째 신으로 표현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그분을 한 분 하나님의 존재 속에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 증거는 바로 그분에 대한 명칭이자 소개 속에 나타나 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의 인사말에 등장하는 하나님에 대한 소개가 단지 성부 하나님에 대한 소개가 아니라 그 소개 안에는 성령도 들어 있고 또한 예수님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가리켜 '이제도 계시고(지금도 계시는 이), 전에도 계셨고(아직도 계시는 이), 장차 오실 이(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라고 소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제도 계시는 이는 성령 하나님을 가리키며, 아직도 계시는 이는 여호와를 가리키며, 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는 아들 예수님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11:15에 보면, 일곱 번째 나팔 소리가 나자 이제 이 세상 나라가 우리의 주님과 그분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다고 선포된다. 이때 예수께서 공중으로 오신다. 그러자 하나님에 대한 명칭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에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던 이'로만 나오고, '장차 오실 이(지금도 오고 계시는 이)'라는 부분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요11:17, 16:5). 

 

5.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신 두 번째 증거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신 두 번째 증거는 모든 존재들(사람들, 천사들, 피조물)이 전부다 예수님에게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분에게 찬송을 올려드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배는 유일하신 하나님에게 드려질 수가 있는 것이다. 이는 창조주와 구속주이신 하나님 곧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에게 돌려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란 창조주 하나님과 그분이 창조하신 피조물의 차이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그러나 성경 어디를 보더라도, 예배는 오직 한 분 하나님께만 드리게 되어 있다. 만약 하나님 이외에 다른 존재에게 예배를 드리면 그것이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로서,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어기는 범죄 행위가 된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예배를 예수님에게 드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은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으로 표현되어 있는 예수님에게 모든 만물이 첫째로, 엎드렸고 둘째로, 찬양을 드렸으며, 셋째로, 절을 하였(경배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요한계시록이 예수님을 삼위의 한 분으로 예배의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고, 한 분 하나님의 존재 안에 예수님을 포함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계5:8, 9~10,12,14). 그렇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곁에서 대신 예배를 받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돌려져야 할 영광과 찬송의 대상에 예수께서 참여하시고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 

계5: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5:14 네 생물이 이르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계5:9 그들(24장로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계5:12 [수많은 천사들이]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계5: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6.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이신 세 번째 증거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한 분 하나님 안에 포함된 하나님이라는 것은 그분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행하시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데, 실제로는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온 우주에서 일어날 일을 주관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오른손에 일곱 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가 있었는데, 그것을 어린양이신 예수께서 열어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왕으로 오실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께서 재림하시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예수님의 오심이 하나님의 오심인 것이다. 그리고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한 개뿐인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서 통치하시며 심판하고 계시지만,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께서 하나뿐인 하나님의 보좌에 앉아서 통치하시며 심판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곧 예수님의 심판하심이 하나님의 심판하심인 것이다. 

 

 

2023년 12월 01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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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강해보완(39)]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성령의 특별한 명칭 3가지는 무엇인가?(계4:5, 5:6)_2023-11-30(목)

https://youtu.be/ctRzUtIl1kQ [또는 https://tv.naver.com/v/45415372]

 

1. 들어가며

  요한계시록에는 성령에 대한 명칭이 크게 2가지로 나온다. 하나는 요한계시록이 쓰여지기 이전에 사용되고 있던 명칭이고, 또 하나는 요한계시록에서만 말씀하고 있는 명칭이다. 요한계시록이 쓰여지기 전부터 사용되던 명칭으로는 '그 영(The Spirit)'이 있다(계2:7,11,29, 3:6,13,22, 14:13, 22:17).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특별 명칭으로는 3가지 것들이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요한계시록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성령의 특별 명칭을 통해서 성령께서 누구신지를 살펴보기를 원한다. 요한계시록이 모든 계시의 완성이니만큼 우리는 다른 성경에서는 말해 주지 않는 놀라운 영적 비밀을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살펴볼 수가 있을 것이다. 

 

2. 요한계시록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성령의 명칭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령에 대한 놀라운 명칭들이 등장한다. 그것은 3가지다. 첫째는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다(계4:5, 5:6). 이 일곱 영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다(계1:14). 둘째는 일곱 등들이다. 이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불켜진 채 있는 불의 일곱 등들을 가리킨다(계4:5). 이러한 일곱 등들은 일곱 금 촛대 위에 있다. 셋째는 어린양의 일곱 눈들이다(계5:6). 그런데 이것은 여호와의 눈들로서 그 예표가 스가랴 4:10에 나온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에서 성령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자, 보좌 앞에 일곱 금촛대 안에 있는 일곱 등들이며 그리고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일곱 눈들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계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과 

계4: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불의 일곱 등들)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라 

계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들]과 일곱 눈[들]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더라 
 

3. 요한계시록에서 사용되고 있는 성령의 특별 명칭이 알려 주는 놀라운 3가지 사실은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에서 사용되고 있는 성령의 특별 명칭이 알려 주는 놀라운 3가지 사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3가지다.

  첫째, 성령의 특별 명칭에는 전부다 '일곱'이라는 숫자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성령께서 완전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이 땅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참고로 하늘에서 완전수는 '12'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성령은 어떻게 나오는가? 그것은 '일곱 영들'이요, '일곱 등들'이자, '일곱 눈들'로 나온다. 그러므로 성령의 관심은 항상 이 땅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록 성령께서 천국에서 일곱 등들로 형상화되어 있고, 일곱 금촛대 위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지만, 성령의 관심은 항상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직접 역사하여 활동하고 계시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사실 천국에 있는 모든 것은 '12'라는 숫자에 맞추어져 있다. 그런데 천국에 있는 것들 중에서도 '7'이라는 숫자가 가끔씩 나오는데, 그것으로서 예수님의 일곱 눈들과 일곱 뿔들이 있다. 또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일곱 금촛대들이 있고, 그 안에는 일곱 등들이 있다. 그리고 그 일곱 등들 안에는 일곱 개의 불들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양이신 우리 주 예수님과 보혜사 성령님은 늘 이 세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이 세상 사람들을 구출하여 천국에 데려가는 일을 직접적으로 행하셨던 분이시며, 지금도 그 일을 돕고 계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둘째, '등불'과 '눈들'을 통해서 성령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감찰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환히 밝혀주는 '등불들'과 지켜보는 '눈들'이라는 명칭에 일곱이라는 숫자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것은 성령을 '어린양의 일곱 눈들'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계5:6). 이는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께서 지금은 천국에 올라가 계신 상태이지만, 거기에서 이 땅에 보낸 성령을 통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지켜보고 감찰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가운데, 두아디라 교회에게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그의 눈이 불꽃 같은 이'라고 소개하시는데(계2:18), 그분은 사람의 뜻과 마음을 감찰하고 계시다고 하셨다(계2:23). 

계2: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의] 눈[들]이 불꽃 같고 그[의] 발[들]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계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지금도 이 세상에 모든 것을 다 지켜보시고 감찰하시는 분은 누구신가? 그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하늘에서 파견된 천사들은 우리들 곁에 있다. 그래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말과 행동을 하늘에 보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천사들은 우리의 마음까지도 다 알고 천국에 보고하고 있을까? 그건 아니다. 천사들은 인간의 말과 행동만을 보고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인간의 마음까지 헤아리지는 못하는 존재들이다. 그럼, 누가 우리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 그것은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신 성령이시다. 성령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까 인간의 마음까지 다 헤아리는 것이 가능하다. 

  셋째, 성령의 특별 명칭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라는 수식어와 '어린양의'이라는 수식어가 있다는 것을 통해서, 성령께서는 경륜적인 영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시고, 자신을 더 확장시켜 나가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령을 '하나님의 일곱 영들' 그리고 '어린양의 일곱 눈들'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성령의 특별 명칭인 '어린양의 일곱 눈들'에 대한 구약의 예표가 있는가?

  성령의 특별 명칭인 '어린양의 일곱 눈들'에 대한 구약의 예표가 있는가? 있다. 그것은 스가랴서에 나온다. B.C.520년 구약시대 스가랴 선지자는 성령을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성령께서는 '여호와의 일곱 눈들'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무엇을 뜻하는가? 사실 구약시대에 한 분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라고 계시하셨다. 그러다가 신약시대에 들어와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아들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며, 아들의 말을 들은 것은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라고 말씀하솄다(요10:30). 그러므로 어린양의 일곱눈들은 곧 여호와의 일곱 눈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우리가 살았더라면 성령은 '여호와의 일곱 눈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어린양께서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령이 구약시대에는 '여호와의 일곱 눈들'이었다면, 신약시대에는 '어린양의 일곱 눈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시기 때문이다. 

슥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들]이라 하니라 
 

5. 성령의 명칭이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나 일곱 등불이며 어린양의 일곱 눈들이라는 표현이 들려주는 영적 비밀은 무엇인가?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 속에 들어오시는 보혜사 성령의 시대에 태어났고 또한 그러한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경륜적으로 성령께서 사람들 속에 들어오시는 시대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쓰시는 몇몇의 특별한 사람들 위에 머물러 계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생애를 사셨던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부터 성령께서는 사람들 속에 들어오시기 시작했다(요14:16~17). 그래서 믿는 이들 안에 내주하시어 그들을 가르치시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또한 장래의 일도 알려 주신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성령님의 인도를 잘 따라가야 한다. 그래야 성령의 은혜를 받고 사는 복 있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새 예루살렘 안에까지 들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계22:17).

  그런데 오늘날 안타깝게도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그것을 외면하면서 살거나 아니면 성령의 위대한 사역들 곧 치유와 기적의 역사를 아주 무시하거나 제한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을 무시하면 결국 자신이 죽을 때에 성령께서 그 사람을 떠나가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지금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어도 우리를 책망하시나 징계를 내리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분은 결코 우리를 결코 강제로 강요하시지 않는 매우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은 누구신가? 그분은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인도를 잘 따라가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 날 우리는 매우 후회하게 될 것이다(롬8:14). 고로 우리 성도들은 그분을 근심하게 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성령께서는 점점 당신의 활동을 하지 않으시다가 그만 우리가 죽는 그날에 우리를 떠나가실 것이기 때문이다(엡4:30). 참된 믿음을 가진 자일수록 성령을 존중해드려야 하는 것이다.

 

2023년 11월 30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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