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5(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적그리스도(짐승)의 출현에 미칠 영향은?(계9:13~2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PT6RA2jHwGk [또는 https://tv.naver.com/v/42326692]

 

1. 들어가며

  지난 10월 7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중 가자지구를 접수하고 있는 하마스(이슬람 저항 운동)가 갑자기 이스라엘에 포탄 6천 발을 퍼붓고, 직접 가자지구 근방의 이스라엘에 침투하여 사람 수천 명을 사살하고 수백 명을 인질로 잡아가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민가에 침투하여 저지른 죄악은 이스라엘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러자 이스라엘에서는 30만 명의 예비군을 동원하여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인도주의 차원에서 가자지구에 남아 있는 110만 명의 시민들에게 24시간 내에 대피하라는 최후 통첩을 한 상태다. 그렇다면 지금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과연 이 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전쟁은 곧 끝나게 되는 것일까? 특히 이러한 중동전쟁을 바라보는 우리의 입장은 어떠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 전쟁을 바라보아야만 하고, 이때에 우리는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오늘은 성경적인 관점에서 제5차 중동전쟁을 바라보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2.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과연 계속해서 더 확장되는 것일까?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이 터진 지 딱 일주일이 흘렀다. 과연 이 전쟁은 더 확장되는 것일까? 이대로 끝날 것인가? 추측컨대 이 전쟁은 머지 않아 끝날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이 전쟁에 그 누구도 직접적으로 개입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도 현재로서 이 전쟁은 3차 세계대전으로까지 발전할 개연성이 매우 적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전쟁은 인류 최후의 전쟁인 아마겟돈 전쟁 내지는 곡과 마곡의 전쟁으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려면 이미 이 세상에는 적그리스도가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각에 적그리스도는 아직 드러난 상태가 아니다. 그리고 하마스는 절대 적그리스도가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마스는 이슬람을 대표하지도 않고 있으며, 경제로 세계를 잡을 수 있는 실력있는 이슬람 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전쟁을 안일하게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미 일어난 상태에 있는 전쟁과 앞으로 일어날 전쟁과 이 전쟁은 매우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해 3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지금까지 전쟁 중에 있는 것을 보고 있다. 그리고 지난 10월 7일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이슬람 무장 세력) 간에 전쟁이 터졌다. 그리고 앞으로는 중국이 대만을 치려고 대기하고 있으며, 북한도 우리나라를 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그러므로 왜 중국과 북한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가? 그것은 미국의 군사력이 4군데(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대만, 대한민국)를 동시에 다 지켜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전쟁이 빨리 끝나기를 기도해야 한다.

 

3. 제3차 세계대전은 언제 일어나는가?

  과연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어떤 분들은 에스겔 38~39장에 나오는 곡과 마곡의 전쟁을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올바른 판단이 아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2억의 군대가 동원되는 전쟁이 나오는데, 바로 그 전쟁이 제3차 세계대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계9:13~21). 그리고 그때 전쟁으로 죽어갈 사람의 숫자가 나오는데 그것은 인류의 1/3이 죽는다고 되어 있다(계9:15). 그런데 곡과 마곡의 전쟁은 이와 다르다. 이 전쟁은 인류 최후에 일어날 전쟁으로서, 모든 인류가 다 죽어나가는 전쟁이다(계20:7~10). 그러므로 제3차 세계대전과 곡과 마곡의 전쟁은 다른 전쟁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제3차 세계대전은 언제 일어나게 되는가? 요한계시록의 말씀에 따르면, 그 년 월 일 시를 하나님이 정해 놓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계9:15). 그러므로 정확히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사실은 7가지 나팔재앙들 가운데 여섯 번째 나팔재앙 때에 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되어 있다(계9:13~21).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7가지 나팔재앙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과연 여섯째 나팔재앙이 언제 일어나는 것인지를 가늠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때에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4. 여섯째 나팔재앙으로 발생하게 될 제3차 세계대전은 과연 어떠한 전쟁인가?

  A.D.95년경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다가 환상을 보게 된다. 그것이 요한계시록의 말씀이다. 요한계시록은 하늘의 광경과 더불어 미래에 되어질 일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어린양께서 받아 들고 떼시는 것을 기록한 예언서이자 묵시서이다. 그렇다면 장차 되어질 미래의 일을 사도 요한은 어떻게 보았는가? 그것이 바로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재앙이라는 것이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신할 뿐만 아니라 사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그중에 일곱 나팔재앙이 들어 있다. 일곱 나팔재앙은 다시 자연을 치는 앞의 4가지 재앙(땅과 바다와 강과 하늘)과 사람을 치는 뒤의 3가지 재앙으로 구별되어 있다. 그렇다면 자연을 치는 재앙에 이어지게 될 사람 재앙은 과연 누구에게 내리는 재앙인가? 그것은 다섯째 나팔재앙과 여섯째 나팔재앙 그리고 일곱째 나팔재앙을 살펴보면 그 대상이 누군지를 알 수 있다. 이때는 한 마디로 '땅에 거주하고 있는 자들'을 치는 재앙이다(계8:13). 그렇다.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나팔재앙은 이때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치는 재앙인 것이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더 구체적으로 그들이 누군지를 기록하고 있으니, 다섯째 나팔재앙 때에는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아니하는 자들을 치는 재앙으로 나온다(계9:4). 그리고 여섯째 나팔재앙 때에는 유브라데강에 결박된 네 천사들이 놓임으로 인하여 전쟁에 참여하는 자들을 치는 재앙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곱째 나팔재앙은 휴거되지 못한 채 남겨진 그리스도인들과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내리는 재앙이다. 고로 여섯째 나팔재앙으로 발생하는 제3차 세계대전 역시 하나님의 백성들을 치는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을 치는 재앙인 것이다. 

 

5. 여섯째 나팔재앙은 어떤 재앙인가?

  여섯째 나팔재앙은 과연 누구에게 내리는 재앙인가? 그것은 우선 2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그때에 살아 있어 전쟁에 참여하는 땅에 거주하는 자들에게 내리는 재앙이다. 그래서 인류의 1/3이 죽게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유브라데강에 결박된 네 명의 천사가 놓임을 받아 전쟁에 참여케 되는 자들이 죽는 재앙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제3차 세계대전에서 누가 죽어나가는 것인가? 첫째,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죽이고 있는 불신세계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섯째 나팔재앙은 하나님 앞 금 제단의 네 뿔에서 나는 음성을 따라 네 천사가 풀려나서 전쟁을 일으키는 재앙이기 때문이다. 그럼 '하나님 앞 금 제단'이란 어떤 곳인가? 그곳은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장소(계8:3~5)이자, 순교자들이 호소하는 장소다(계6:9~10).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신원해 달라고 하는 기도에 응답으로 내려지는 재앙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재앙은 벌써 다섯째 나팔재앙으로 인하여 땅에서 올라왔던 사탄 마귀가 벌써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였기 때문에, 그들의 원수를 갚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그들은 유브라데강에 결박되어 있는 네 명의 천사들이 놓임을 받은 후에, 전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럼, 유브라데강에 결박되어 있는 네 명의 천사들은 대체 어떤 천사들인가? 그것은 지금까지 유브라데강을 빼앗았던 4개의 대제국들을 묶어 둔 천사들이다. 그러므로 제3차 세계대전은 바로 이 천사들이 묶어 둔 대제국의 후예들이 전쟁하여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그들이 죽는 재앙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브라데강을 빼앗았던 네 개의 대제국의 현주소를 주목해야 한다. 첫째는 앗수르다. 바로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제국이 바로 이 제국이다. 그리고 이 제국의 영토는 지금 시리아와 레바논 사람들이 살고 있다. 둘째는 앗수르를 물리치고 그 땅을 차지한 바벨론이다. 바로 남유다를 쳐서 멸망시켰던 제국 곧 다니엘서에 나오는 느부갓네살왕이 바로 그 제국의 가장 위대한 왕이다. 이 땅에 지금은 이라크 사람들이 살고 있다. 셋째는 바벨론을 무찌르고 올라온 메대와 바사다. 지금 이 땅에는 이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넷째는 서로마를 재패하고 600년간 다스렸던 오스만 투르크(1299~1922)다. 오스만 투르크는 지금은 축소되어서 튀르키예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때는 아프리카 북부 지역(이집트, 리비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지역까지 다스렸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지금 현재 유브라데강을 차지했던 4개 제국의 영토에 사는 사람들이 다 이슬람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차 일어날 제3차 세계대전에서 죽을 사람들은 이슬람 사람들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제3차 세계대전으로 죽을 사람들이 이슬람 사람들이어야 하는가?

 

6.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의 3가지 의의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이슬람 무장 세력인 하마스 간의 전쟁은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전쟁은 앞으로 어떤 결과들을 낳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우선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전망해 본다. 

  첫째, 이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속히 끝날 것으로 전망해 본다. 왜냐하면 지금 약자인 하마스를 직접 와서 도와주는 이슬람 나라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려고 하지만 어느 나라도 공식적으로 하마스에 와서 직접 전쟁을 지원해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만 레바논의 헤즈볼라가 조금 지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정작 이슬람 국가들 곧 이집트나 리비아, 요르단, 튀르키예,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하마스 주변에 있는 이슬람 국가들이 직접 참여할 의사가 없다. 지지선언만 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중에서 서안지구에 위치해 있는 온건파인 파타정부의 지도자가 서로 간에 전쟁하지 말라고 촉구할 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슬람의 강경파인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도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고로 이 전쟁은 탁월한 군사력을 갖춘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나게 될 것이다. 

  둘째, 이 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단초는 혹시 될른지 모르겠지만 곧장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해 본다. 왜냐하면 이 전쟁을 바라보는 이슬람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같은 이슬람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각기 종족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하마스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마스의 계산은 잔혹하게 이스라엘 사람들을 살해하면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진격해 들어올 것이고, 그러면 이것을 지켜보는 이슬람 국가들이 자신을 도와주러 올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스라엘과 좋은 협상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깨고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슬람 국가들 중에 누구도 선뜻 하마스를 지원해 주지 못하고 있다. 먼저 이슬람 국가들을 보면, 이질적인 민족들이다. 이슬람 종주국의 하나인 이란(시아파)은 셈족계열의 페르시아의 후손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수니파)는 아랍계의 후손들이다. 그리고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서로 이슬람의 종주국을 자처하면서 서로 싸우는 중이다. 그리고 '뛰르키예'는 야벳인들과 우리나라의 돌궐족이 합쳐져서 생긴 민족이다. 그러므로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같은 팔레스틴 자치 정부 중 서안지구를 차지하고 있는 파타정부도 가자정부인 하마스를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과거 2007년에 서로 나눠져서 원수처럼 지내왔기 때문이다.

  셋째, 그렇더라도 이 전쟁은 이슬람 국가들을 깨워서 번영했던 이슬람 제국을 다시 부활시키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해 줄 단초가 될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하마스를 지원해 주지 못하고 있지만 이슬람을 믿고 있는 자신의 형제 하마스가 죽어 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과거 전 세계를 지배했던 오스만 투르크 시대를 다시 염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지구에서 대전쟁은 두 번 있었다. 하나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으로서, 그때 1천만 명이 죽었다. 그런데 이 전쟁으로 인하여 패전국이었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망하게 되었고(1922년), 여러 나라들로 분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으로서, 그때는 6천만 명이 죽었다. 군인 2천만 명이 죽었고, 민간인이 4천만 명이나 죽었다. 그런데 이 전쟁으로 인하여 지구상에 일천 년 동안이나 존재하지 않던 한 나라가 독립을 하게 되었는데, 그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그래서 지금은 분열된 이슬람 국가들과 하나의 국가로 독립한 이스라엘이 중동의 패권을 다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이스라엘과 이슬람 자치 정부인 하마스 간의 전쟁은 분열된 이슬람 국가들이 하나로 결집시키는 도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전 세계를 지배하는 오스만 투르크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게 될 것이다. 

 

7. 제3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눈여겨보아야 하는가?

  문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이다.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번의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이번 일로 인해 누가 적그리스도로 등장할 것인지를 눈여겨봐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섯째 나팔재앙과 여섯째 나팔재앙 그리고 일곱째 나팔재앙은 사탄이 무저갱에서 풀려나옴으로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쯤이 되면 사탄은 짐승(적그리스도)과 둘째 짐승인 거짓 선지자들을 부추겨,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과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목베어 죽이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후3년 반에 있어질 일이다. 그러면 순교자들이 하늘에 올라가 보좌 앞 제단에서 하나님께 호소함으로 하나님께서 사탄 및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을 따르는 자들을 죽이기 위해 재앙을 내리는 것이 바로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 나팔재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무렵에는 이미 적그리스도가 등장해 있는 것이다. 아마도 다섯째 나팔재앙 때에 사탄이 나와서 짐승을 쓸 것이다. 그가 바로 적그리스도다. 그러면 지금 이쯤에 적그리스도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야 한다. 

 

8. 장차 환난기(다섯째 나팔재앙~일곱째 나팔재앙)에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대체 누구인가?

  하마스가 전쟁에 패하여 다 죽어갈 판인데, 왜 이슬람 국가들이 하마스를 지원하지 않는가? 그것은 더 이상 무력 투쟁으로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 가지 교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마스를 지원했다가는 국제사회에서 왕따를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이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망설이는 국가가 하나 있으니, 그 나라가 바로 사우디아라비아다. 왜냐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세력들 중에서 온건파에 해당한다. 수니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국가와 협력하여 경제 대국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슬람 종교의 종주국이 되는 것만 아니라 경제 대국이 되기 위해 지금 얼마나 미국과 열심히 협력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지 모른다. 최근 들어와서는 심지어 이스라엘과도 협력 체제를 만들려고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터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은 이슬람 조직인 하마스를 지원한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그럴 수만은 없을 것이다. 더욱이 지금 사우디아라비아는 2030년까지 경제를 최첨단 분야로 바꾸기 위한 야심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네홈시티'의 건설이다. 

  네홈시티 건설은 석유 중심의 사우디아라비아를 첨단 미래 산업 국가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다. 총 900만 달러를 투자하여, 엄청난 최첨단 도시를 만들고, 산업 기지와 관광단지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크기는 서울 면적으로 44배의 규모인데, 주거지구인 '더 라인' 프로젝트로 추진하는데, 이는 투명한 유리로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높이는 500m, 길이는 직선으로 약 170Km의 두 채의 건물을 만드는데, 200m의 폭을 두고 나란히 쭉 뻗은 모습으로 지어질 예정이다. 그리고 이 도시의 에너지는 탄소 중립 원칙에 따라, 태양광과 풍력발전으로 친환경적으로 생산한다고 한다. 그리고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가 없고, 하늘을 나는 택시만 운영된다고 한다. 그리고 산업지구인 '옥사곤'은 바이오와 IT분야의 전문메카로 지으려고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친환경 산악 관광단지를 조성하고 있는데, 그 프로젝트는 '트로제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충격받게 되는 것은 이 자리가 바로 최근에 새롭게 밝혀진 진짜 시내산이 있는 지역이라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총리이자 젊은 왕세자(무함마드 빈 살만, 1985년생)가 뭔가를 알아차리고 준비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도 선지자로 인정하는 모세가 율법을 받은 시내산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성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관광단지로 개발하여 유대교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개방하면 엄청난 수입도 올릴 수 있고 유대교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칭찬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그리 쓸모가 없는 예루살렘의 성전 부지마저 이스라엘에게 도로 줘버리면 빈 살만 왕세자는 유대인들에게 메시야로 추앙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9. 적그리스도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상관관계는 어떠한가?

  우리는 요한계시록 13장과 17장을 통해,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으로 등장하고 있는 적그리스도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출현해야 제3차 세계대전도 일어나고, 아마겟돈 전쟁이자 곡과 마곡의 전쟁도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차 지구상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낼 적그리스도는 누가 되는 것일까? 그것은 첫째, 바다를 끼고 있는 대제국에서 나온다고 했다(계13:1). 특히 표범(헬라 제국)과 곰(메대와 페르시아 제국)과 사자(바벨론 제국) 모양을 두루 갖춘 짐승인데, 이 짐승은 열 뿔을 가졌고, 일곱 개의 머리를 가졌다고 했다(계13:1). 뿔이란 권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충분한 수인 열(10) 나라들이 그에게 권세를 몰아줄 것이다. 그리고 머리가 일곱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전 세계를 지배해 왔던 제국인데, 그중 하나가 죽게 된 것 같다가 다시 발흥하여 8번째 제국을 이룬다고 예언되어 있다(계17:7~11). 그렇다면 일곱 번째 머리를 차지했다가, 8번째 머리가 등극한 제국은 어느 제국인가? 그것은 지금까지 지구상에 출현한 7제국을 보면 된다. 그것은 1)애굽 2)앗수르 3)바벨론 4)메데와 바사 5)헬라 6)로마 제국이 있었다. 이때까지가 요한계시록이 쓸 당시다. 그리고 로마를 무너뜨리고 대제국을 형성한 나라가 바로 이슬람 제국을 형성했던 '오스만 투르크'라는 나라다(1299~1922년). 그런데 8번째 제국을 이루게 될 나라는 일곱 중에 속하였다가 다시 나오는 제국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바로 오스만 투르크의 후예들인 것이다. 다시 말해 오스만 투르크의 후예로서 이슬람 국가들이 하나로 뭉쳐 적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고 거기의 수장이 적그리스도가 될 것이다. 둘째, 그는 경제를 통해 전 세계를 지배하면서, 자신을 따르지 않고 경배하지 않는 자들 곧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목베어 죽이는 자라고 하였다(계13:15~18). 이 일은 바로 거짓 선지자가 추진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이 시대에 과연 누가 적그리스도의 국가가 되고 누가 적그리스도가 될 것인지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머지 않은 때 이 세계에 적그리스도가 등장할 것이다. 

 

10. 나오며

  그렇다면 지금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사실 지금의 시간은 제3차 세계대전의 바로 앞이자, 적그리스도의 출현 직전의 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조금 있으면 지금의 이 시대는 사라질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불법이 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고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시기가 이제 영영 사라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약 40년이 지난 2060년이 되면 이슬람 인구가 지구의 절반을 차지하게 되고, 이슬람 제국이 형성될 것이며, 그러한 제국의 대표가 바로 적그리스도가 되어서 이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자신을 신으로 숭배하지 않는 자들 곧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목베어 죽일 것이다. 그때가 되면 매매를 위해서라면 누구라도 적그리스도의 통제 장치인 666표를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받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인데, 그들은 오로지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과 한 분 하나님이신 예수님만을 섬기는 기독교인들이 될 것이다. 고로 지금의 시기야말로, 핍박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최적의 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안 있으면 복음 전파는 불법이 될 것이고, 복음을 전파하면 감옥에 갇히게 되거나 죽임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를 하려면 지금 해야 한다. 복음도 천국에 들어가도록 도와주는 천국복음을 전파해야 하는데, 그러한 천국복음을 전파하려면 지금 전파해야 한다. 그리고 기도해서 능력받고 은사를 받으려면 바로 지금 받아야 한다. 또한 가문의 저주인 귀신들을 몰아내려 한다면, 회개는 지금 해야 하는 것이다. 복음전파를 위한 황금 시간대가 이제 우리에게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3년 10월 15일(주일)

정보배목사

 

 

 

 

 

 

 

 

 

 

2023-10-08(주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귀신을 내쫓는 축사 속에 담긴 말과 사람의 비밀(행19:10~2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W-BOWxDtqs [또는 https://tv.naver.com/v/42326141]

 

1. 들어가며

  오늘날 성도들은 마가복음 16:17의 말씀에 의거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에게 나갈 것을 요구하고 명령한다. 그런데도 귀신들은 잘 나가지 않는다. 왜 귀신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함에도 불구하고 꼼짝하지 않으며 또한 나가지도 아니 하는가? 대체 무엇이 문제라는 말인가? 예수님의 이름에 문제라도 있다는 말인가? 정말로 예수의 이름이 아무 효력도 주지 못하는 이름이라는 것인가?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명령하셨을 때에 단 한 번도 예수님의 명령을 거부한 귀신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귀신이 예수님께 달려와서 사정사정하였다는 것이다. 어떤 귀신은 예수님께 애원하기를 제발 자신을 내보내시려면 돼지떼에게라도 들어가게 해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하였다. 그렇다. 우리가 귀신을 쫓아낼 때에 우리의 영적 수준은 귀신들이 애걸하는 수준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삶에서 우리들이 귀신에게 나가라고 명령했을 때, 우리들에게 잘 복종하지 않는다. 왜 그런 것일까? 왜 귀신들은 우리의 말을 잘 듣지 않으려 하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실제적으로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귀신을 복종케 하는 능력으로 무장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과연 귀신이 쫓겨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예수의 이름의 표현(말) 때문인가 아니면, 귀신더러 나갈 것을 명령하고 있는 우리 자신이 그들보다 영적으로 더 강해서 그런 것인가?

 

2.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인가?

  이제는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던 근거가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자.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예수께서 귀신에게 말하기를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하셨던 그 명령에 근거한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명령하고 있는 예수님의 권위 때문인가? 즉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가게 된 것은 단지 예수님의 말 자체에 권위가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 자신에게 어떤 능력이 있었던 것인가? 그 이유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 속에서 그 대답을 찾아낼 수가 있다. 그것은 마가복음 5장에 나온 거라사인 지방의 무덤 사이에 있던 귀신들린 자의 축사 과정 속에도 나온다. 그때 귀신은 어떻게 예수님께 사정했는가? 그때 귀신은 예수님을 보더니 달려와서는 예수께 절하면서 큰 소리로 부르짖어 말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고통스럽게 하지, 고문하지) 마옵소서"(막5:7)

  그럼 왜 귀신은 예수님께 자신에게 고문하지 말라고 부탁했던 것일까? 그것은 이미 예수께서 그 귀신에게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막5:8)"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자 견디기 힘들었던 귀신은 예수님에게 자신을 보내려고 한다면 제발 돼지떼에게라도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왜냐하면 그 귀신은 더이상 사람 속에 계속해서 남아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남아 있을수록 자신에게 고문이 가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때 귀신이 나간 것은 단지 예수님께서 그에게 던진 말 때문이었는가 아니면 그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귀신에게 고문을 주었기 때문이었는가? 그렇다. 귀신이 그때에 예수님께 사정사정하면서 떠나겠다고 말한 것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던진 말과 더불어서 그 귀신더러 나가도록 고문하는 어떤 행동이 주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도 귀신을 불로 태우셨든지, 아니면 칼로 찌르셨든지, 아니면 쇠망치로 머리를 박살내고 있었든지 했을 것이다. 아니면 하늘의 군대천사들을 불러서 그것들을 쇠사슬로 결박을 하고 끌어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들은 예수께 살려달라고 애걸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던 근거가 단지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던 실제적인 2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던 실제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2가지다. 하나는 예수께서 귀신들의 왕인 바알세불과 싸워서 이겼기 때문이다(마12:29). 당시 예수께서 귀신들을 쫓아내자,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하고 있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자신이 귀신을 쫓아내고 있는 것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 곧 마귀를 이미 이기고 결박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의 세간을 강탈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귀신들의 왕인 사탄 마귀와 맞붙어 싸워서 3대 0으로 판정승을 거두셨기 때문이다(마4:12~11).  

  그리고 또 하나는 단지 예수께서 귀신들의 왕을 이겨서만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도 날마다 성령과 능력으로 무장하셨기 때문인 것이다(행10:38). 이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던 베드로가,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부으셨다고 말했기 때문이다(행10:38). 그렇다. 예수께서 마귀를 이길 수 있었고 마귀를 결박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도 역시 날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공급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마귀를 이겼다는 사실 자체를 주장해서만 쫓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날마다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공급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귀신을 쫓아내되 안 나가려는 귀신이 있다면 강제로라도 추방해야 하는 것이다. 

 

4.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면 귀신이 다 떠나가는가?

  그런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예수께서 마가복음 16:17의 말씀에 의거하여,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들이 뒤따를 것인데, 그것은 바로 믿는 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는 말씀에 따라 귀신을 쫓아내려고 시도한다. 그런데 실상은 귀신이 잘 안 나간다. 왜 그런가? 그럼 마가복음 16:17의 말씀은 틀린 말인가? 아니다. 그 말씀은 결코 잘못된 말이 아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근거는 예수께서 마귀와 싸워서 이미 이기셨기 때문이요, 예수께서도 그 이름을 사용하라고 우리에게 권세를 위임해 주셨기 때문이다(막16:17).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우리들이 귀신을 쫓아낼 수 있겠는가?

  그런데 정작 문제는 모든 귀신이 우리의 말을 듣고 잘 떠나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떤 귀신은 버티기도 하고, 꿈쩍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우리에게 위임해 주신 예수님의 이름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인가?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사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예수님은 마귀와 싸워 이기셨기 때문에, 예수라는 이름은 곧 이긴 자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싸움의 승리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 귀신에게 명령할 수 있다. 이때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너희들의 왕인 사탄 마귀는 2천 년 전에 이미 예수님에게 졌다. 너희들의 왕인 사탄 마귀는 진 자요, 우리의 주인되신 예수님은 이긴 자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너희들은 우리들의 주인인 예수님에게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우리에게 그 이름을 위임해 주셨으니, 너희들도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할 때 순종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귀신들은 끝까지 버티려 하며, 어떤 귀신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귀신들은 우리들에게 어떤 위협을 가하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그렇게 귀신이 우리에게 대항할 때에, 우리에게는 귀신을 제압할 수 있는 어떤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가 귀신을 쫓아내려면 예수의 이름만 가지고 있어서는 아니 된다. 만약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했을 때 그 명령을 듣지 않는 귀신이 있다면, 그것을 강제로 추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귀신들이 우리의 말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5. 귀신을 축사할 때 꼭 필요한 2가지 요소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귀신에게 명령할 때 귀신이 순종하고 떠나가게 하려면 진짜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 당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던 예수님의 9명의 제자들을 통해서 그 비밀을 알 수 있다. 그때에 제자들은 어떻게 되어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는가? 그때 예수께서는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2가지로 말씀해 주셨다.

  첫째, 마태복음 17장에서는 그것은 제자들이 '믿음이 작아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17:20). 사실 그때 9명의 제자들에게 쫓아달라고 했던 귀신은 아들에게 간질병을 일으킨 귀신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귀신은 조금 계급이 높고 그리고 쎈 귀신에 속한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명령했을 때에 버티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제자들에게 더 큰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 귀신은 떠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제자들은 자기들보다 더 쎈 귀신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만 주눅이 들었는지 그 귀신을 제압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더 큰 믿음을 갖고 있었다면 귀신은 그때 어떤 반응을 보였던 것일까?

  둘째, 똑같은 사건에 대해서 마가복음 9장에서는 제자들이 '기도가 부족했다'고 말씀하셨다(눅9:29). 왜냐하면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제자들이 좀더 기도를 했더라면 그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을텐데 기도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럼 제자들이 더 기도를 했더라면 그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결국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큰 믿음을 갖게 되든지 그리고 기도를 많이 하게 된다면, 귀신들이 버틴다고 할지라도 그 귀신들을 제압할 수 있는 어떤 능력이 주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믿음이 커졌을 때 제자들에게 공급되는 실체는 대체 무엇이며, 기도를 더 많이 했을 때에 제자들에게 공급되는 실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6.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A.D.54년경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하고 있었을 때였다. 에베소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바울이 전파한 복음이 능력 있게 전파되도록 하나님께서 엄청난 역사를 일으키셨기 때문이다. 그때 바울은 두란노 서원이라는 어떤 건물을 빌려서 당시 소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게 하였다. 그것은 아마도 병든 자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손을 얹게 되자(안수하자) 귀신이 떠나가면서 병이 나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자 사람들이 심지어 바울의 몸에서, 그가 땀을 닦을 때에 사용하던 손수건과 일할 때 쓰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어 놓았다. 그러자 곧 병이 떠나갔고, 악한 영들이 떠나가는 것이었다(행19:12). 그런데 그 현장에는 바울도 없었고, 그들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이것을 지켜보던, 그래서 돌아다니면서 귀신을 쫓아주던 어떤 유대인들이 바울의 흉내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전까지 유대인들은 귀신을 쫓아낼 때에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었다. 단지 솔로몬의 이름이라든지 아니면 아브라함의 이름을 사용해서 귀신을 쫓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것이 관례였던 것이다. 그런데 에베소에서는 귀신에게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자, 귀신들이 예수의 이름을 듣고 또한 바울의 능력을 알았기에 떠나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도 이제 시험받아 주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에게 떠나갈 것을 명령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유대의 제사장 가문인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완전히 딴판이 되고 말았다. 귀신들린 한 사람이 일곱 명의 아들들에게 뛰어올라서, 오히려 그들을 눌러 이기고 그들에게 상해를 입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자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은 혼비백산하여 옷도 내버려 둔 채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렇다면 왜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은 분명히 주 예수의 이름을 사용해 귀신을 축사했는데도 불구하고 귀신이 떠나가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 떠나가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귀신들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상해를 입힐 수가 있었던 것인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그들이 비록 축사에 예수의 이름을 사용했지만 그들 속에는 정작 예수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귀신은 말했다. "나는 예수님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으며, 바울도 어느 정도는 안면이 있는 사이인데, 너희들은 대체 어떤 놈들이냐?(행19:15)" 그랬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있지도 않으면서 단지 주문으로만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자 귀신들은 그들 속에 예수님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오히려 덤벼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위임된 예수의 이름이 전혀 주어진 채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험한 꼴을 맛보아야 했던 것이다. 둘째, 그들이 비록 축사에 예수의 이름을 사용해 명령했지만 그들 모두 각자 개인적으로 귀신들을 제압할 만한 능력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들 누구에게도 성령과 능력이 주어진 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 중에는 어떤 자도 귀신을 제압할 수 있는 영권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귀신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7. 영권이 무엇이며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영권'이란 무엇인가? 영권이란 영적인 세계에서 통하는 권세로서, 그러한 권세를 영에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 곧 영들을 제압하고 영들에게 명령할 때에 그대로 움직이게 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이러한 영권은 사실 축사와 치유사역에 매우 중요하게 쓰인다는 사실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나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때 귀신을 쫓아내었다. 그 이유는 제자들에게 이미 예수 이름에 대한 권세가 주어진 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권세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은 그 권세를 실행하고 그것에 순종하지 않았을 경우, 그것을 강제로 집행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귀신을 쫓아낼 뿐만 아니라, 반항하는 귀신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위임받은 권세만 갖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강제로 집행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눅9:1~2). 권세와 능력, 둘 다가 있을 때에 귀신들을 확실히 쫓아낼 수 있고, 또한 그들이 대들면 그놈들을 제압할 수가 있는 것이다. 

 

8. 능력의 실체 2가지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귀신을 제압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귀신들이 꼼짝 못하고 살살 기면서 살려달라고 애걸하게 만드는 어떤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것은 믿음이 큰 자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라고 말씀하셨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기도를 통해서만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고로 우리가 이러한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들은 먼저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의 이름의 권세를 위임하셨다는 것을 믿는 강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기도로 능력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귀신을 제압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의 실체란 대체 어떤 것인가? 그것은 2가지다. 그것의 하나는 하늘의 천사를 부릴 수 있는 힘이다. 왜냐하면 천사들 모두가 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수 있도록 능력 있는 존재로 창조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시103:20~22). 그러므로 귀신을 제압하려면 계급이 높은 천사들을 부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예수의 이름에 복종하지 않으려는 귀신을 제압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실 모든 영적인 존재는 다 영적인 계급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별 2개짜리 영적 계급을 가지고 있다면 내게 붙여진 천사의 총사령관의 계급은 나보다 한 단계 낮은 별 1개짜리이다. 그리고 그 밑에는 그 천사보다 한 단계 낮은 계급의 천사 곧 무궁화 3개짜리 천사 두 명이 포진하고 있다. 그 밑에도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천사들이 포진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영적인 계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만큼 더 귀신들을 더 잘 제압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실 귀신들도 영적 계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내가 가진 계급보다 더 높다면, 내가 아무리 명령해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귀신들과 싸워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영적인 계급을 높여가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힘입어 귀신들과 싸우려는 자들에게 주시는 영적인 무기들이 능력인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귀신과 싸울 때에 귀신들이 나의 명령을 듣고도 복종하지 않았을 때에,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무기들이 능력인 것이다. 그래야 귀신들도 내 명령에 복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귀신들을 쫓거나, 귀신들과 싸우려 할 때에는 반드시 어떤 영적 무기들을 장착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싸움에서 악한 영들을 무찌르고 고통을 주고 고문도 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영적인 싸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것에는 '성령의 불'이 있으며(마3:11). '성령의 칼'도 있다(엡6:17). 그리고 '성령의 쇠지팡이나 방망이(망치)'도 있다(계2:27, 렘23:29). 이런 종류의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을 때에 우리가 귀신에게도 능력을 행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영으로 살펴보면, 우리가 이러한 무기를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있다.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의 손에 이러한 무기들을 들려주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러한 영적인 무기들을 장착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좀 전에 말씀했듯이 기도해서 구해야 한다. 기도하는 자에게 이러한 영적인 무기들이 순식간에 장착되기 때문이다. 이때 무기들은 다 하늘에서 내려온다. 그것도 0.1초가 되기 전에 내 손에 번개같이 주어진다. 그러므로 귀신과 싸워서 귀신을 이기려면 우리는 날마다 주님께 기도하여, 나에게도 영적인 무기들을 장착해 달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언제라도 그 무기를 꺼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 무기들을 사용하려면 우리는 낮이고 밤이고 가릴 것 없이, 그것이 내게 진정한 필요한 것이라고 날마다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야 한다. 경험상 보면, 한 3달 정도는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작은 것일지라도 이러한 무기들을 주실 것이다. 영안이 열려서 보는 사람에게 한 번 물어보라. 지금 내 손에 어떤 무기가 들려져 있는지를 말이다. 

 

9. 어떻게 하면 능력으로 무장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능력으로 무장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나를 돕는 천사들을 더 부릴 수가 있고, 나의 손에 영적인 무기들을 장착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4가지를 통해서 영권을 확보해야 한다.

  첫째, 우선 기본적으로 성령세례를 받고 그리고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해져야 한다(행10:38, 1:8). 내주하시는 보혜사 성령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게 부어지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 그러면 능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행1:8).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시려고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며 또한 그렇게 성령세례를 받는 자들에게 선물로서 능력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이다. 

  둘째, 회개해야 한다. 그래서 내 몸에 들어 있거나 붙어 있는 귀신들을 많이 제거해야 한다(막6:12~13). 내 속에 악한 영들이 많이 들어 있으면, 내가 쫓으려 하는 귀신들이 상대방의 귀신과 서로 내통하여 짜고 숨어버리거나 잠잠해져서 우리를 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무장하려면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많이 회개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지은 죄로 내 몸속에 들어와 있는 귀신과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해 내 몸에 내려와 있는 귀신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면 귀신을 쫓아낸 후에 병든 것도 치료할 수가 있다. 

  셋째, 기도해야 한다(마7:7, 눅11:13, 막9:29, 고전12:31). 하나님께 우리에게도 영적인 무기들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무기들을 우리에게 장착시켜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영적인 더 큰 은사를 주시어 귀신들을 분별하고 판단할 수가 있게 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 곧 성령의 어떤 것을 주시며(눅11:13), 사모하는 자에게 더 좋은 은사를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고전12:31).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필요할 때 사용하실 수 있도록, 더 날카롭게 커다란 칼을 주시기도 하시고, 더 크고 강한 불을 주시기도 하신다. 그리고 귀신들의 머리를 박살 낼 수 있는 성령의 망치를 주시기도 하신다. 

  넷째, 귀신과의 영적 싸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적 싸움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엡6:11~12, 약4:7). 귀신이 나를 공격한다고 적당히 타협하거나 귀신이 공격한다고 귀신과 싸움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 결코 영적 계급을 높여갈 수 없다. 우리가 때로는 계급이 낮아서 귀신에게 얻어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한다.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 귀신에게 떠나갈 것을 명령해야 한다. 그래서 혹시 내가 귀신에게 얻어터지면 내 속에 들어와 계시는 성령님께서 그것을 보고만 있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즉시 천사를 더 보내게끔 조치를 취하여 나의 영적 계급을 높여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더 많은 천사들을 부릴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영적 계급은 올라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능력 있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럴수록 능력 있는 천사들이 더 많이 달라붙기 때문이다. 

 

10. 나오며

  성경 말씀은 사실 진리의 말씀들이다. 한 마디로 진리인 것이다. 아니 영적으로 볼 때 실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본뜻을 깨닫고 그대로 순종한다면 우리의 삶에 말씀은 그대로 성취된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성경 말씀에 더욱더 주목해서 읽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귀신을 축사할 때에는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사도들은 대체 어떻게 했는지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서 그분이 하던 방식대로 혹은 그분이 명령하신 말씀을 따라 실천하면 된다. 특히 귀신을 쫓아내려 할 때에는 우선 첫째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권세 있는 이름 곧 예수의 이름을 위임해 주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막16:17~18). 고로 우리가 귀신을 쫓아낼 때에는 반드시 예수의 이름으로 쫓아내야 한다. 우리보다 귀신이 더 힘이 쎌 수 있지만 모든 영물의 왕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계17:14, 19:16). 그분은 지금도 하늘에서 하늘과 땅에 속한 모든 권세를 다 갖고 계시며(마28:18), 사망과 음부의 열쇠도 쥐고 계신다(계1:18).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존재들과 땅 위에 사는 존재들과 땅 아래에 있는 존재들이 다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빌2:10~11). 그러므로 우리가 귀신을 쫓아낼 때에는 나보다 높은 계급을 가진 귀신일지라도 그에게 단호하게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해야 한다. 그리고 둘째로, 우리도 성령과 능력으로 무장해야 한다(행10:38). 그래서 귀신이 내 말을 듣지 않을 경우 능력을 사용해서 그것들을 강제로 내쫓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천사들을 부릴 수 있는 영적인 계급을 높여야 한다. 그리고 언제라도 영적 싸움에 사용할 수 있도록, 영적인 무기들을 장착하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회개하면서 동시에 영적인 무기들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방언으로 기도해서 자신의 영이 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영적인 싸움에 기꺼이 나서야 한다. 그래야 악한 자 안에 놓여 있는 영혼들을 마귀로부터 꺼내올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들을 천국에 들여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 살아 있어야 하고 존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2023년 10월 08일(주일)

정보배목사

2023-10-03(화) 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 설립예배

제목: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는 복음을 전파하라(마8:1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CCr2O_fVqvQ [또는 https://tv.naver.com/v/42326133]

 

1. 들어가며

  우리는 이제 마지막 시대에 접어들었다. 왜냐하면 천국에 있는 144,000석의 보좌에 성도들이 거의 다 그 자리를 채웠기 때문이다. 만약 144,000석의 보좌자리가 차게 된다면 그때 주님은 재림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어느 시대보다 정신을 차리고 주님을 섬겨야 할 때다. 그런데 현재 믿는 성도들 가운데 많이 이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밖으로 내던져지거나 불못에 던져지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우리가 듣고 붙들어야 할 참된 복음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시대 가운데 우리가 들어야할 복음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 그리고 복음의 핵심적인 2가지 요소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우리는 과연 구원에 필요한 요소 가운데 무엇을 잃어버린 채 있는가? 그래서 오늘은 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 설립예배를 드리면서, 우리가 진짜 들어야 할 복음이자 우리가 전해주어야 할 진짜 복음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우리가 전해주어야 할 이 시대의 진짜 복음은 대체 무엇인가?

  우리가 이 시대에 알아야 하고 또 후대에 전해주어야 할 진짜 복음은 대체 무엇인가? 과거에 우리는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 by faith)의 복음에 대해 많이 들어보았다. 그것은 중세시대 사람들이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강조하다 보니까, 종교개혁자들은 그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는 오늘날 성도들은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전파된 이신칭의의 복음을 그만 구원의 완성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결코 이신칭의의 복음을 구원의 완성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구원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로마서 5:9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는 그후에 더욱 더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오히려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구원의 여정 가운데 이신칭의는 이제 구원의 첫 출발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개신교인들은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면, 자신의 구원은 완성된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사실 당시 종교개혁자 루터도 역시, 행위로 의롭다하심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야고보의 말씀을 무시했다. 그래서 루터는 야고보서는 결코 정경에 포함될 수 없다고 주장했고, 그 이유는 그 내용이 이신칭의의 복음과 반대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야고버서는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예수님께서도 역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판단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비록 어떤 성도가 믿음의 시작 단계에는 아무런 열매가 없어도, 그가 달려갈 길을 다 마칠 때 쯤이 되면 그에게서 반드시 열매가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때에 가서도 아무런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면, 야고보의 말처럼 그의 믿음은 사실상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자가 구원을 받을 리가 없을 것이다. 

롬5:9 그러면(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안에서) [더욱더 많이]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의롭게 된 후에), [우리는] 더욱 그[분으]로 말미암아(통하여) [그] 진노하심에서[부터] [장차] 구원을 받을(받게 될) 것이니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아야 할 복음으로서 주님께서 가르쳐준 진짜 복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는 복음이라야 한다(마8:11).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같은 언약백성만이 천국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동서로부터 많은 이방인들이 천국의 잔치에 참여할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지막 때에 들어야 할 진짜 복음은 천국복음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전파하신 천국복음이 온 거주지 안에 전파될 때에 비로소 끝(종말)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24:14).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의 복음전파 초기에는 이신칭의의 복음을 분명하게 강조했지만 그가 죽기 전에는 천국에 들어가도록 해주는 복음이 참된 복음이라고 언급하였던 것이다(딤후4:18). 

마8:11 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장차] 동서[들]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르러(다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서] [장차] [비스듬히] 앉으려니와(앉을 것이다)

마24:14 이 천국(왕국의)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거주자 안)에 [장차] 전파되리니, [그러면] 그제야(그때에) 끝이 [장차] 오리라(다다를 것이다)

딤후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부터] [장차] 건져내시고(구해내실 것이다) 또 [그분이] 그의 천국에 (하늘에 속한 왕국 안으로) 들어가도록 [장차] 구원하시리니, 그[분]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3. 사람은 장차 들어갈 천국은 어디를 가리키는 것이며 그곳에는 어떤 자가 들어갈 수 있는가?

  그렇다면 장차 구원받아 들어가야 할 천국은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가? 그곳은 바로 '새 예루살렘 성 안'이다.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서 영원히 사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세상에서도 누릴 수 있는 상태적인 천국은 궁극적인 천국은 아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맛보기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장차 부활의 몸이 들어가서 거할 바로 천국, 우리가 장차 장소적으로 이동해서 들어가는 천국, 하나님의 보좌가 놓여 있는 천국은 바로 새 예루살렘 성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아야 할 구원은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과연 구원받아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게 살게 되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이다(계21:27). 반대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는 결코 그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렇다면, 누가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이 되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그가 올바른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 거듭난 자이다. 거듭난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요3:5).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한 번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기만 하면 만고불변인 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한 번 구원을 받았다면 영원히 구원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예수께서는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라도 이기지 못하는 자는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진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3:5). 그러므로 이미 믿음을 가진 자가 결국 어린양의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 날마다 자기의 두루마기(겉옷)을 예수님의 피로 빠는 자라야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 안으로 들어갈 권세가 주어지기 때문이다(계22:14).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는 최종적인 관문은 역시 회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거짓말을 지어내고 있는) 자는 결코 그리로(그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계22:14 자기[들의] 두루마기(겉옷)[들]를 빠는(빨고 있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그] 성에(안으로) 들어갈 권세를 [장차] 받으려 함이로다

 

4. 과연 우리는 어떻게 거듭나게 되며,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이 되는 것일까?

  우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려면 우리는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반드시 죄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 치고 죄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만약 자신의 죄를 다 회개해서 깨끗하게 된 자라야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수 있다면, 아마도 이 세상 사람 중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그것은 바로 그에게 죄가 있지만 그를 죄가 없는 사람처럼 여겨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은 은혜로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진정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방법 곧 예수님을 통한 대속의 방법만으로 자신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자에게 주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죄를 덮어버리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로 죄를 덮어버려서 그가 죄인이지만 죄가 없는 것처럼 여겨주시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성령께서도 죄인이지만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그 사람 마음 속으로 들어올 수가 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다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 결코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하늘에 기록된 죄목들을 예수님의 피로 덮여진 채 있는 사람은 이제 죄인이 아니라 칭의인이라 불려진다. 그리고 그때에 생명을 가지고 들어온 성령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생명주는 영이 되셔서 회개하는 죄인 속에 들어오시기 때문이다(고전15:45). 그러면 그가 그 순간에 그가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을 '중생'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하늘에 있는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기록된다. 그러면 그도 이제 천국에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5.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예수님에 대해 가져야 할 올바른 믿음이란 대체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가?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갖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 2가지 믿음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여기서 '주'라는 말은 '주 하나님'이라는 말을 압축한 것이요, '그리스도'라는 말은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압축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가져야 할 믿음은 그분은 주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그분은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해 믿어야할 첫 번째 믿음은 그분이 주님이자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요20:28). 오늘날에 성도들 중에는 예수님을 끝까지 하나님의 아들로만 믿는 자들이 있는데, 이것은 올바른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스스로 계신 분'(자존자)(요8:24,28,58)이라고 직접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은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이자,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끝이라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계22:13). 그러므로 그분은 창조자이시자 전능자이신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부활 이후, 문이 닫혔는데도 나타나셔서, 자신의 손과 발 그리고 옆구리의 상처에 도마에게 보여주셨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으로 집어넣어보아서 믿음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때 도마가 비로소 '당신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는 위대한 신앙고백을 하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셨는데, 우리 인류를 구원하려고 아들이자 아기로 오셨기 때문이다(사9:6). 다른 말로 말한다면, 구약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로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이기 이전에 그분은 먼저 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실은 예수께서 부활하시자 비로소 확증되었다.

요20:28 도마가 대답하여 [그분에게]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그리고]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어야 할 예수님에 대한 두 번째 믿음은 그분이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이다(마16:16). 이것은 3년반을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베드로가 아버지의 성령의 감동을 받아 고백한 것으로서,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성경에 예언된 바로 그리스도(메시야)이시며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아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그리스도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여기서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은 예수께서 왕의 직무와 제사장의 직무와 선지자의 직무를 담당하시려 오셨다는 뜻이다. 사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이 세상의 임금은 마귀였다(요13:31, 14:30, 16:11).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마귀를 이기고 마귀가 가진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되찾기 위함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분이 수행하신 왕의 직무다. 그리고 그분은 제사장으로도 사역하셨다. 그것도 영원히 그 직무가 갈리지 않는, 멜기세렉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으로 사역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동시에 모든 인류의 죄를 속죄할 흠없는 속죄양이 되셨다(요1:29). 그래서 그분은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골고다 언덕에서 대속죄일 제사를 드리신 것이다. 자신을 모든 인류의 속죄를 위해 대속제물로 내어주셨고 친히 대제사장이 되셔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날 골고다 언덕에서 속죄제사가 치러진 것이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께서 대신 치르신 속죄일 제사로 인하여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선지자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온전히 아시는 분은 오직 아들로 오신 예수님 뿐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이 하는 말은 그분이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그분의 일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말씀만이 진리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분이 자신을 대신하여 보내신 보혜사 성령이 곧 진리만을 증거하는 진리의 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예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이 땅에 보내어진 존재라는 의미로 낮추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때 인성을 취하셨으니, 그분은 자신을 '사람의 아들' 혹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하신 것이다. 비록 그분이 사람이었던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기에 그분 자신을 인자(사람의 아들)이라고 칭하셨지만, 그분은 사람의 씨를 취하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셨기에 그분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한 것이다. 비록 그분이 사람의 태를 빌려 태어난 것은 맞지만 그분은 그때 창조된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다. 고로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의 3가지 직무를 수행하러 오신 분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때에 세상을 이길 수가 있으며, 그리고 죽을 때에 이 세상을 탈출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 

마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당신)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6. 우리는 대체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일평생 어떤 회개를 하고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의 회개는 사실상 2가지다. 왜냐하면 하나는 구원얻기 위한 회개로서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해야 하고(눅5:8), 또 하나는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회개로서 '자백함으로서의 회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요일1:9).

눅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계속] 자백하면(한다면), 그[분]는 미쁘시고(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에게] 죄[들]를 사하시며(용서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부터]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사람이 가장 먼저 회개해야 할 회개는 구원얻기 위한 회개로서,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지은 죄가 탕감을 받아 예수님의 피로 덮여지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5장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 그러한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한다. 그는 자신은 죄인이기에 주님과 함께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눅5:8). 그것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철저히 인식한 것이었다. 그리고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아버의 곁을 떠나 허랑방탕하게 지내다가 거지가 되어 굶어죽게 된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오는 회개의 장면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잘 말해준다. 그때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의 과거의 죄를 묻지 않으신다. 그냥 덮어버린다. 그리고 오직 그가 돌아온 것에 대하여 넘치도록 복을 주신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이렇듯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통해 구원의 여정에 첫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자신이 그 이후로 짓는 죄들을 회개하면 된다. 만약 그때부터 짓는 죄들 가운데 회개하지 못한 죄가 있다면, 그 사람의 구원은 위태로워진다. 왜냐하면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을 때에는 마지막 날에 그가 성밖으로 내던져질 수 있고(계22:15), 더 심하면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도 던져질 수 있기 때문이다(계21:8). 

  그러나 우리는 회심으로서의 회개만으로 회개를 끝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회심으로서의 회개를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저주 가운데서 못 벗어나기 때문이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들을 자백하는 회개를 안 했기 때문이다. 과거에 지은 죄를 자백하는 회개를 하면,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은혜를 베푸시는데,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을 모든 불의에서부터 깨끗하게 해주시는 것이다(요일1:9). 이것은 과거에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에 우리 안에 합법적으로 들어온 귀신들을 내쫓을 수 있게 해주는 회개다. 그리하여 우리를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 깨끗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서 과거에 지은 죄를 전부 탕감받은 자라도, 과거에 지은 죄를 회개할 때에 귀신을 우리 몸에서 내보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귀신이 우리 몸에서 나가면서 동시에 가난과 질병과 막힘의 저주를 가지고 떠나간다. 이를 통해서 믿는 자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가난하게 살고 병들게 되고 형통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지를 우리는 알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믿기 전에 우상숭배한 죄를 지었던 것과 생활 속에 지었던 죄들을 회개 안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자백함으로 회개를 하면 우리는 온갖 저주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7. 우리가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회개해야 할 죄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온갖 저주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해 회개해야 할 죄들에는 어떤 죄들이 있는가? 그것은 자신이 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처음 회개할 때에는 우선 자신이 지은 과거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사람이 지은 죄가 아니가 자신이 지은 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예수믿는 사람이 되어서 구원의 여정에 들어섰다면, 그 후로 짓는 죄들에 대해서도 회개해야 하겠지만, 우리가 저주에서 벗어나 형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과거에 지었던 죄들, 예수믿기 전에 지었던 죄들까지 회개해야 한다. 이때 우리는 내가 과거에 지었던 죄들을 자백함의 방법으로 회개해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해준다. 왜냐하면 내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지었던 과거의 죄들을 다 용서받았을 뿐, 우리가 깨끗함을 받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더렵혀진 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에 죄를 지었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더럽혀지게 되었는가? 그것은 귀신이 내 몸에 들어옴으로 더럽혀지게 된 것이다. 그 이유는 귀신은 더러운 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에 우리 몸 속에 들어와 있는 귀신을 내 몸에서 쫓아보내야 한다. 그것은 과거에 자신이 지었던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둘째로 또 하나의 회개해야할 죄가 하나 더 있으니 그것은 '조상죄'다. 조상들이 지은 죄다(출20:5). 그러면 어떤 사람들을 말할 것이다. 내가 짓지도 하니한 조상이 지은 죄를 왜 내가 회개해야 하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는 알고 있지만 둘은 모르는 처사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가 어떻게 자기와 자기의 후손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들 중에서도 우상숭배하는 죄를 매우 싫어하셨다. 그것은 결국 둘째사망 곧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의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상숭배의 죄값을 더 크게 하셨다. 그래서 그 죄값을 받는 동안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의 죄값은 당대에 자신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그죄에 대해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의 후손들 3~4대까지도 받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십계명에 나와 있은 말씀이다. 천지는 없어져도 절대 없어지지 아니할 율법말씀이자 십계명의 말씀이다. 십계명 중에 제2계명에 나와있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조상들이 죄를 지었을 때, 그 조상들에게 들어온 귀신들은 그 조상이 회개하지 않고 죽었을 경우 고스란히 그의 후손에게 내려간다. 바로 아들 딸에게 내려간다. 그런데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손자 손녀에게로 내려가고, 증손이나 고손에게 내려간다.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나면서 맹인된 자는 자기가 지은 죄로 맹인이 된 것도 아니며,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었다. 그의 증조와 고조 대에서 죄를 지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죄값으로 그가 맹인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자백함으로 회개해야 할 죄에는 자기이 지은 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조상들이 지은 죄까지도 회개해야 한다. 그런데 조상들의 죄도 회개하되, 3~4대 조상들이 지은 죄만 회개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3~4대까지 내려온 귀신들도 그 죽은 자의 후손들이 조상들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있다면, 3~4대까지 내려가고 또 3~4대까지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에게는 500년, 700년된 귀신들이 들어있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천년이상되는 귀신들도 들어있기도 한다. 그리고 직접 회개해봐서 알게 된 사실은 내 몸 속에 들어와있는 귀신들은 내가 죄를 지어서 들어온 귀신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조상들이 지은 죄 때문에 들어와 있는데, 그때 들어와서 내려온 귀신들의 숫자가 내가 죄를 지어 들어온 귀신들의 숫자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아니, 조상들이 지은 죄로 내려온 귀신들이 약 80~90%가량되고, 내가 지은 죄로 들어온 귀신들이 약 20~10%정도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말 우리가 뼈져리게 회개해야할 죄는 조상죄라고 할 수 있다. 

출20:5 그것들(우상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벌하시되) 아버지로부터(아버지들의 죄악을) 아들[들]에게로(아들들과) 삼사 대까지 이르게(벌할) 하거니와
 

8. '회개기도문'과 '우상숭배회개기도문'의 유익은 무엇인가?

  그런데 놀랍게도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자신이 과거에 지었던 모든 죄를 다 용서받았다고 믿기 때문에(그건 사실이다) 과거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 자기 몸에 들어와 있는 귀신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더욱이 안타까운 일은 조상들이 지은 죄들에 대해서는 전혀 회개하지 않는다. 조상들이 지은 죄와 자신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다. 조상들이 죄를 지었을 때 들어왔던 귀신들이 조상들이 죽으면 곧바로 그의 후손에게 내려간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출20:5) 악한 영들은 때로는 한 세대를 뛰어넘고 두 세대를 뛰어넘어서 내려가기도 한다. 왜냐하면 아직 그 누구도 조상들의 죄에 대해서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과거에 지은 죄와 조상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 해도 놀라운 발전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다고 할지라도 본인이 실제로 그 죄를 회개하기까지는 상당히 시일이 소요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회개를 잘 안 해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과 자신의 조상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도 잘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자신에게 온갖 저주가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은 실은 자신이 과거에 지은 죄 때문이요 조상들이 지은 죄 때문이이에 우리는 반드시 그 죄를 찾아서 회개를 해야 한다. 그래야 그때 조상들에게 들어왔다가 나에게까지 들어온 귀신들이 떠나가게 된다. 귀신들은 들어올 때에도 합법적으로 우리 몸에 들어왔으니, 나갈 때에도 합법적으로 회개해야 떠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귀신이 합법적으로 우리 몸에서 떠나가도록, 날마다 자신이 지은 과거의 죄와 조상들이 지었던 죄들을 낱낱이 회개해야 한다. 한 번에 한 명의 귀신이 들어왔다면 나갈 때에도 한 번 회개하면 한 명의 영이 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의 횟수만큼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 번의 회개로 내 속에 있는 모든 악한 영들은 한 번에 다 내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지었던 과거의 죄들 뿐만 아니라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들을 우리는 낱낱이 알고 회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여러 사람들이 달라붙어 과거에 지은 자신의 죄와 조상죄에 대해 연구하여 그 죄목들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만든 것이 벌써 20년이 되었다. 그래서 나온 책이 지금 우리가 회개할 때 사용하고 있는 '회개기도문'이라는 책이다. 회개기도문이 좋은 것은 죄의 목록들이 자세하게 다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나의 죄를 찾기가 훨씬 수월하다. 무엇보다도 조상들이 지었던 죄목들이 거의 다 조목조목 나열되어 있기에 죄를 찾기도 좋고, 죄를 회개하기도 좋다. 이렇게 죄를 회개하면서 자기축사방법인 '십자가세우기'를 겸하여 실행한다면, 우리는 우리 몸 속에 들어있는 귀신들을 하나씩 둘씩 다 좇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나가지 않고 버티는 큰 영들이나 많은 영들은 계급이 높은 축사자들이나 사역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쫓아내기만 하면 된다. 

 

9. 자신이 과거에 지은 죄와 조상죄를 회개하면 자신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가?

  오늘날 예수믿는 사람들은 자기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잠깐 회개했던 것 외에는 거의 회개하는 일이 없다. 오히려 회개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예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주었는데, 그것을 믿지 못하니 회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절반만 알고 절반은 틀린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믿기전에 지은 죄들은 분명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할 때에 다 용서를 받았지만 내 속에 이미 들어와있는 더러운 영들은 처리되지 않고 여전히 남아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의 죄를 자백함으로 우리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들을 내보냄으로 깨끗함을 받아야 한다. 내 몸이 깨끗해지는 것은 자백할 때에 예수님의 피로 인해 더러운 악한 영들이 우리의 몸에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면 귀신이 떠나감에 동시에 우리에는 다음과 같은 3가지 축복이 뒤따라온다.

  첫째, 귀신이 가져다 주었던 온갖 저주들이 하나씩 둘씩 떠나가는 것이다(출23:25~26). 그래서 우리가 비로소 저주에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저주에는 가난의 저주, 질병의 저주, 온갖 막힘의 저주 등이 있다. 

출23:25~26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1)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2)너희 중에서 병을 제[거]하리니  26 3)네 나라에 낙태하는 자가 없고 임신하지 못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 내가 너의 날 수를 채우리라
  둘째, 귀신이 떠나감에 따라 우리 속에 눌려있던 은사들이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딤후1:6).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은사에는 이미 믿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은사도 있고, 내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선물로 받은 은사도 있으며, 우리가 기도함으로 받은 은사도 있다. 그런데 워낙 귀신들이 많으면 우리들이 밖으로 나오지를 못한다. 밑에 깔려있고 눌려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은사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회개를 해서 귀신들을 내보내야 한다. 그러면 숨겨져 있는 나의 은사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여, 그것을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딤후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셋째, 은사가 나타남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실 때에 주셨던 사명을 되찾게 되는 것이다(딤후2:20~21). 왜냐하면 귀신이 떠나감으로 우리에게 활성화된 은사들을 보면, 우리가 이 땅에 어떤 목적으로 보냄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고 살아가는 성도들들은 날마다 살아가는 것이 매우 기쁘다. 그리고 아니 날마다 기대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나의 신분과 지위를 결정하게 되기 때문이며, 내가 수고한 모든 것들이 나에게 상으로 다시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딤후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10. 왜 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를 세우려고 하는 것인가?

  우리가 이렇게 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를 세우려는 목적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영적으로 무지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나누었던 놀라운 영적인 진리들을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고통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기 위함이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는 자신은 이미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모르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 연구소는 이러한 자들을 영적 무지로부터 해방시킴으로서 하나님이 그에게 주시고자 하는 영육간의 축복을 받는 것을 도와주고 싶은 것이다. 아니 그들을 도와주라고 주님께서 명령을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차적인 것이자 궁극적인 것으로는 모든 믿는 자들로 하여금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갈 사람들이 되도록 도와주는 사역을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를 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회개와 천국복음이야말로 이 마지막 시대에 사는 사람들을 천국에 들여보내는 가장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수적인 것이지만 두번째 이유로는 구원받은 회개와 더불어서 자백하는 회개를 통해 저주받은 삶에서도 성도들이 벗어나도록 도와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변화받고 축복받았던 모습을 딴 사람들이 보고 그들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인도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자연스럽게 전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 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에서는 지금까지 체험하고 준비해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전수해주고자 한다. 첫째, 방송선교를 통해서 이 일을 추진할 것이다. 특히 유튜브와 홈페이지를 통해 이 일을 추진할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이후 유튜브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유튜브를 통해 정보를 입수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홈페이지를 내용이 알찬 내용들로 구성하여 누구든지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귀한 정보를 기꺼이 제공하고자 한다. 둘째, 문서 선교의 방법을 병행할 것이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유튜브 선교가 차단 당할 때가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때를 대비하여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깨달은 영적인 보고를 책으로 출간하고자 한다. 아마도 100권은 나오게 될 것이다. 이는 누구든지 영적인 세계를 알고 천국을 준비하는데 도움을 드리고자 함이다. 그래서 회개와천국복음선교회가 창립되면 곧바로 출판사를 낼 예정이다. 그리고 셋째로, 세미나 및 교육선교를 계속할 것이다. 우선 평신도반과 목회자반을 만들어 누구든지 배우고자 하는 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훈련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한다. 이름하여, 방언열기 반, 방언통역 반, 예언 반, 환상보기 반, 하나님의 음성듣기 반, 귀신축사반, 치유사역자 반, 회개시작하기 반, 천국복음 반, 회개와천국복음 최고지도자반 등등을 말이다. 넷째로, 그리고 수 년 안에 신학교를 운영하여, 이미 우리 연구소를 통해 배운 분들의 성도나 교회의 청년들이 와서 목회자로 훈련받을 수 있도록 신학교를 세워 후배들을 양성하고자 한다. 

 

11. 나오며

  그러므로 회개와천국복음연구소를 세우는 일은 시대적인 사명인 것이다. 왜냐하면 주께서 재림하기 전에 들어야할 복음이 바로 천국복음이요, 천국에 들어가려면 또한 반드시 회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불어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거에 자신이 지은 죄와 조상의 죄도 반드시 회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성도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판단에 너무나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인지 영적으로 바르게 가르쳐주는 말씀을 기뻐하지 않는다. 조금만 이상해도 이단이니 혹은 삼단이니 라고 말하거나, 신비주의에 빠졌다거나 이상한 데 빠졌다고 말하기 일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주께서 알려주실 것이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지금 우리를 깨우쳐주시어 진정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이끌어주실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는 회개와천국복음 메시지가 귀에 들릴 것이다. 처음엔 잘 들리지 않아도 중보기도자가 옆에 있으면, 언젠가 그의 귀도 열려지게 될 것이다. 오죽 사람이 잘 안 들으려고 했으면, 주께서도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셨겠는가! 왜냐하면 이 세상 사람 가운데 귀를 갖지 않는 자는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그만큼 들을 귀를 가진 자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명을 주어 보내어진 자들은 이 말씀을 들을 때에 귀가 번쩍 뜨일 것이다. 그리고 이 말씀이야말로 바로 생명의 말씀이요, 지금 꼭 들어야 할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도 때를 따라 돕는 양식을 나눠줄 자를 통해 다른 사람을 깨우치도록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 오실 때가 얼마 안 남은 것 같이 느껴진다. 고로 어서 이 소식을 듣는 자는 깨어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천국을 준비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회개를 많이 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은사와 능력도 받기 바란다. 그리고 은사와 능력을 사용하여 이 천국복음을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그가 하늘에 올가서는 하나님 앞에 위대한 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요, 천국에서 누릴 상이 아주 많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023년 10월 03일(화)

정보배목사

2023-10-01(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그리스도인으로서 추석날 드리는 감사예배, 과연 괜찮은가?(신16:13~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pXeiVxTZRQA [또는 https://tv.naver.com/v/42326128]

 

1. 들어가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추석 명절이 되면 대부분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혹시 추석 감사예배가 우상숭배 행위가 되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확신이 없고 또한 우상숭배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만약 추도예배나 장례예배가 우상숭배 행위가 분명하다면, 명절예배 역시 우상숭배에 해당하지 않을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왜 그러한가? 그 이유는 추도예배와 장례예배가 우상숭배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날과 추석이 되면 불신자들은 지금도 자기의 조상신에게 차례제사를 드리고 있다. 그러므로 차례제사를 기독교식으로 바꾸어서 설 감사예배와 추석 감사예배로 드린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상숭배가 된다면 매우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 설 감사예배와 추석 감사예배는 우상숭배에 속하는 것일까? 만약 그것이 우상숭배 행위라고 한다면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이라고 할 수 있는가? 혹 그것이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설이나 추석 감사예배가 우상숭배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명절의 하나인 초막절을 어떻게 지키라고 명령하셨는가?

  이스라엘도 우리나라처럼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명절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무교절, 초실절, 수장절은 이스라엘의 3대 명절에 속하는 절기들이다(출23:14~17).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절기들 중에서 초막절이 되면 다음과 같은 3가지를 꼭 지키라고 명령을 하셨다.

  첫째, 그날에는 쉬라고 하셨다(레23:34~35). 절대 일하지 말고 또한 일을 시키지도 말라는 것이다. 심지어 그날에는 집안의 노비까지 다 쉬게 하라고 하셨다. 둘째, 성인 남자는 성전으로 올라가서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셨다(레23:37). 그러므로 이스라엘 남자들 중에 20세 이상 된 성인들은 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제사를 드렸다. 그래서 예루살렘 사방 32km이내에 사는 모든 성인들은 다 성전으로 올라가서 예배를 드렸다. 셋째는 이웃과 가난한 자들과 더불어 음식을 나눠 먹으며 기뻐하라고 하셨다(레23:40). 주님께서는 객과 고아와 과부 그리고 레위인은 농사를 지은 것이 없으니, 농사를 지은 자들이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서 그날에는 그들도 잘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라고 한 것이다. 

 

3. 우리나라의 4대 명절은 무엇이며, 우리는 명절을 어떻게 지켰는가?

  우리나라의 경우 4대 명절이 있는데, 그것은 설날과 한식, 단오와 추석이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한식과 단오는 점차 명절에서 사라지고, 설날과 추석만 남아서 오늘날에 명절로 지키고 있다. 그런데 설날이나 추석 명절을 지키는 풍습이 많이 달라졌다. 왜냐하면 더 오래 전에는 설날이나 추석이 되었을 때에 지금처럼 자기의 죽은 조상들에게 차례제사를 지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명절에 조상들에게 차례제사를 드리는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조선 중기 및 후기에 들어와서 비로소 오늘날처럼 조상들에게 차례제사를 지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례제사를 지내기 전에 우리 민족은 설날이나 추석 명절을 어떻게 보내었을까? 더 오래된 우리 선조들은 설날이나 추석이 되면 서로 음식을 만들어서 나눠 먹고 또한 하늘의 상제이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것을 순우리말로 '제천의식'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은 자기의 죽은 조상을 섬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특히 추석 한가위의 경우 그 기원은 지금과는 매우 달랐다. 첫째, 여자들이 두 패로 길쌈을 하여 진 편에서 이긴 편에게 떡과 술로 대접을 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둘째, 농경 문화에 젖어온 우리 민족의 선조들이 농작물을 수확하고 나서 이에 하늘의 상제에게 감사의 제사를 드리던 제천의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조선 때만 해도 왕이 하늘의 상제에게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때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씨 뿌린 뒤에 하늘에 풍요를 기원하고, 곡식을 거둬들인 후에 하늘의 상제에게 감사드리는 의식이 제천의식이 되었음을 말해 준다. 그래서 나중에 이것이 제천의식으로 발전하였으니,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고려의 팔관회, 조선의 원구제 등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그렇다. 추석이나 설날은 조상들을 섬기는 의식이 아니라, 원래 하늘의 하나님을 섬기는 의식이었던 것이다. 

 

4. 제천의식이 어떻게 되어서 각 가정에서 차례제사 드리는 형태로 바뀌게 되었는가?

   우리 민족은 먼 옛날부터 하늘의 하나님을 섬기던 민족이었다. 그런데 고려시대 말과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명절에 조상에게 제사 드리는 다른 형태로 발전하게 되어버렸다그것은 고려 말에 중국에서 실시하고 있던 조상제사의 풍습이 우리나라에 도입되기 시작한 탓이다. 고려 말에 우리나라는 중국의 주자가 쓴 '주자가례(1170년)'가 도입되었다. 이 책에 보면 누가 제사를 드릴 수 있는지가 나온다. 중국은 원래 4종류의 계급사회였다. 왕족과 제후족 그리고 사대부와 서민 계급이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왕족만이 제사를 드려왔다. 그것도 자신의 조상들이 아니라 하늘의 상제이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러다가 중국도 점차로 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의 뒤를 이어 조선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자 숭유억불 정책이 시행되기 시작되었고, 공자의 유교사상이 한층 더 강화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사상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게 된다. 그런데 조선조 7대 왕이었던 세조 때에 하늘의 상제에게 제사드리는 의식을 그치게 된다. 왜냐하면 중국에서 어찌 제후국이 하늘의 상제에게 제사를 드릴 수 있느냐고 하면서 트집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하늘의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의식이 사라져 버렸다. 대신 자신의 선조들에게 제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자신의 선조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방법까지 알려 주게 되었으니, 그것이 경국대전(1585년)에 나와 있다. 경국대전은 조선조 7대 왕이었던 세조가 편찬하기 시작하여, 조선조 9대 왕이었던 예종에 가서야 완성되었는데, 거기에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어떻게 제사를 드릴 수 있는지 그 규정이 나온다. 먼저 왕족은 4대 조상까지 제사를 드릴 수 있으나, 6품 이상은 3대 조상까지만 제사를 드리라고 했다. 그리고 7품 이하는 2대 조상까지만 제사를 드릴 수 있고, 일반 서민은 자신의 부모에게만 제사 드릴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그러므로 조선 중반을 넘어서부터는 여러 윗대까지 제사를 드리는 것은 마치 자기 가문이 뼈대 있는 가문이라는 것을 알리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제사를 드릴 남자가 필요했으니 남아 선호 사상이 점차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장남에게는 제사를 드릴 사람이라고 하여 재산도 더 많이 주었다. 그러다가 조선 말 신분제 철폐를 주장하는 갑오개혁이 실행됨에 따라, 일반 서민도 양반처럼 행세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래서 부자가 된 일반 서민들이 양반 족보를 사서 자신도 양반집입네 하고 자랑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의 핵심은 과연 위로 몇 대까지 제사를 드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조선 말이 되어서는 자기의 조상의 기일에만 제사를 드리던 풍습이 이제는 명절 때에 자기 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변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명절제사에 죽은 조상들이 끼어 들어오게 된 것이다. 

 

5. 과연 무엇이 우상숭배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가?

  그렇다면 과연 지금 우리나라에서 믿는 자들이 설날이나 추석에 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할 수가 있을까? 과연 그것이 우상숭배가 되는지 아니 되는지, 그 기준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날 하나님께서 와서 그 예배를 받으시느냐 아니면 귀신이 와서 그 예배를 받느냐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아무리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말할지라도 그날 예배를 드리는데, 귀신들이 그 예배에 찾아와 받으면 그것은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다. 사실 어떤 행위가 우상숭배가 되려면 다음과 같은 2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자신이 경배하는 대상을 과연 신적 존재로 인식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자신이 경배하는 대상이 복을 준다고 믿고 있느냐를 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우리나라에서 자기의 조상들에게 제사 드리는 것은 분명히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조상들에게 제사를 드리면, 그날 조상들이 영으로 와서 제사를 받고 복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기의 조상들에게 죽은 기일에 제사를 드린다거나 혹은 명절이 되어서 자기 조상들에게 차례제사를 드리는 것은 분명한 우상숭배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날에 귀신들이 와서 그 제사들을 다 받아먹기 때문이다. 불신자들에게 있어서 그날은 귀신들의 잔칫날인 것이다. 

 

6. 장례예배와 추도예배는 왜 우상숭배가 되는가?

  그렇다면 믿는 자들이 사람이 죽을 때에 행하는 장례예배와 죽은 조상들의 기일에 드리는 추도예배를 과연 우상숭배라고 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비록 우리 믿는 자들이 장례예배를 드리거나 추도예배를 드리지만 그때에 귀신이 오기 때문이다. 그렇다. 믿는 자들이 원하지 않을지라도, 장례예배와 추도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그 예배를 받는 것이 아니다. 귀신들이 와서 그 예배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례예배와 추도예배는 100% 우상숭배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장례식 때에는 죽은 시체 속에 들어 있는 귀신이 밖으로 나와서 예배를 대신 받기 때문이요, 제삿날에는 죽은 자 속에 있는 귀신들이 시체에서 나오거나 공중에서 내려와서 그 예배를 받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제사 때에 절을 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제사 때에 음식을 만들거나 그것을 먹으면 그것 역시 귀신이 우리 몸속에 들어오는 것이 된다.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며(고전10:20), 제사음식을 먹는 것 역시 우상의 제단에 참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계2:20, 고전10:18).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분노를 일으키셨고, 재앙을 내리셨다는 기록이 있다(시106:28~29). 그것이 바로 출애굽 2세대들이 모압 평지에서 모압의 제사의식에 참여함으로,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의 그모스 신에게 절은 하지 않았어도 그때 제사 음식을 먹음으로 바알의 브올에게 부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 하나님이 치신 전염병으로 인해 이스라엘 남자들이 무려 2만 4천 명이나 죽어야 했다(민25:1~9). 

 

7. 믿는 자들이 추석이나 설날에 감사예배를 드리면 과연 귀신들이 달라붙는가?

  문제는 과연 추석이나 설날에 믿는 자들이 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이 과연 우상숭배가 되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추석이나 설날에 믿는 자들이 드리는 감사예배에 귀신들이 온다면 그 예배는 드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 역시 우상숭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믿는 자들이 명절에 함께 모여 감사예배를 드릴 때에 귀신들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장례예배나 추도예배는 죽은 자를 기억하며 드리는 예배이지만, 명절예배는 죽은 자를 기념하기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설날에 드리는 감사예배는 새해가 밝았음을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고, 추석 감사예배는 풍성한 곡식과 과일을 주신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 드리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조상들은 명절에 자기 조상에게 차례제사를 드리기 전부터 이미 명절을 지켰는데, 먼 옛날에는 왕이 하늘의 상제이신 하나님께 감사하던 의식이 명절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조선 중기 이후 제사 드리는 대상을 하늘의 하나님에게서 자신의 조상들로 바꿔치기한 것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성도들이 새해를 주신 하나님, 결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은 원래 우리 민족이 드렸던 감사 의식을 되찾아오는 것이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올바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명절에 떡꾹을 먹고 송편을 먹는다고 해도 귀신은 오지 않는다. 하지만 명절에 떡꾹을 끓여서 자기 조상신에게 바치거나, 송편을 만들어 조상들에게 바친 후에 그것을 먹으면 당연히 귀신이 달라붙어 자기 몸속에 귀신이 들어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닌 죽은 조상들을 신처럼 생각하거나, 그것을 숭배하는 의식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조상에게 음식을 해서 바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곧바로 귀신이 치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은 조상을 기념하기 위해 모여도 곧바로 귀신이 치고 들어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죽은 조상에게 붙어 있었던 귀신들은 언제 그 후손들에게 들어갈 것인지를 엿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령 믿는 자들이 설날과 추석이 되어 예배를 드린다고 하여도, 죽은 조상들의 이야기를 오르내리게 되면 곧바로 귀신이 치고 들어온다. 

 

8. 설날과 추석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믿는 자들의 생각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조상들이 죽은 날에 무엇인가를 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그날이 되면 귀신들이 우리 몸속에 들어오기 위해 대기하면서 서성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제사 형식을 예배의 형태로 바꾸어서 예배를 드린다고 할지라도, 죽은 조상들의 기일에는 예배를 드려서는 아니 된다. 그날은 귀신들이 오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오셔서 예배를 받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절은 이와 성격이 다르다. 원래 명절은 귀신에게 감사하는 의식이 아니라, 하늘의 상제이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의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에 우리 조상들은 쉬면서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었다. 그러고 보니 이것은 꼭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킨 절기와 똑같다. 그러므로 이제 온 가족이 다 예수님을 믿게 되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가족이 되었다면, 원래 우리 민족이 섬겼으나 제대로 섬기지 못해 잃어버린 하늘의 하나님께 드린 감사의 예배를 되찾아와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해와 곡식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즉 우리에게 해를 주셔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식물을 자라게 하실 뿐만 아니라, 낮에 활동할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달은 밤을 주관하게 하셔서 어두움을 비치게 하고 사람들에게는 쉬도록 시간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날에 새로운 한 해를 주셔서 새 출발을 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고, 추석에는 햇빛과 비를 주셔서 한 해의 농작물을 수확하게 하시고 과실을 거둬들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합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나라 성도들도 명절이 되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멀뚱멀뚱 지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절기에 있어서도 그 핵심이 바로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지금 현 상황은 어떠한가? 그날에 예배를 드리면 혹시 그것이 우상숭배가 되지 않을까 하여 선뜻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그것이 아예 우상숭배라고 생각하여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 안 된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이를 위해 아직도 자기 가족 중에 믿지 않는 가족이 있다면 하루 빨리 전도하여 온 가족이 하나님만 섬기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온 가족이 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면, 더이상 조상들에게 차례제사를 지내지 말고, 새해를 주시고 한 해에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해 주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9. 나오며

  그렇다. 이에 우리도 추석에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림으로 원래 의미의 명절을 회복할 때가 되었다. 이제 명절에 드리는 차례제사는 원래 하늘의 하나님께 드린 감사의 제사로 회복되어야 하는 것이다. 조선 중기 이후 주자가례와 경국대전의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는 죽은 조상들에게 명절을 빼앗겨 버렸다. 아니다. 이제는 하늘의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제사를 회복할 때가 된 것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나라의 명절제사도 원래는 하늘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던 의식이 아니었던가! 그렇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명절처럼 우리나라도 이제는 하늘의 하나님께 명절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설이나 추석 명절에 3일간을 쉬도록 법제화해 놓고 있지 아니한가! 이 어찌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있는가? 이스라엘의 3대 절기를 보라. 그중에 무교절에는 7일간 쉬었다. 그리고 초막절 역시 7일간 쉬면서 절기를 지켰다. 심지어 절기 때에는 자신의 노비까지도 일을 시키지 말라고 명하셨다. 그렇다. 이제 이것도 온전히 회복되어야 한다. 고로 내가 만약 예수믿는 사람으로서 회사의 경영자라고 한다면, 명절에는 자기만 쉴 것이 아니라 모든 직원도 다 함께 쉬게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명절 당일에는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래서 우선 나부터라도 설이나 추석 명절이 되면, 11시에 온라인으로 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이 옳은 것이다. 성탄절이 되면 그날 특별히 성탄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명절이 되면 그날에 명절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이때 교회 가까이 있는 성도들은 성전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면 될 것이고, 멀리 떨어져 고향에 가 계신 성도들이라면 그날 온라인으로 예배에 참여하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명절의 기쁨을 귀신들에게 내어주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특히 자기의 조상들을 가장한 귀신들에게 내어주면 아니 될 것이다. 명절은 오직 하나님만 높이고 하나님께만 예배하기에 합당한 날이기 때문이다. 

 

2023년 10월 01일(주일)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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