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30(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지금 우리는 종말의 어느 시점에 와 있는 것일까?(계7: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8FdGDMsdHW4 [또는 https://tv.naver.com/v/40837242]

1. 들어가며

  전 세계가 폭염으로 들끓고 있다. 중국에서는 섭씨 55도, 미국에서도 섭씨 41도 넘는 폭염이 발생하여 벌써 수만 명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지난 2년 전인 2021~2022년에 코로나 팬데믹을 겪어야 했다. 전염병의 창궐로 인하여 전 세계가 마비되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폭우도 심상치 않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지금은 비가 내리면 한곳에 집중적으로 물 폭탄이 쏟아져 갑작스런 물로 인해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그리고 2년 전에 시작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과 인도의 식량 생산 감소로 인하여 곡물값이 치솟고 있다. 기근 재앙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또한 천 년에 한 번 폭발한다는 백두산 천지가 심상치 않다. 천지의 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만약 이것이 폭발한다면 화산재가 하늘을 덮어 지구의 온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왜 지구가 이렇게 몸살을 앓게 된 것일까?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 현상이 그 원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만 말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현상은 이미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자연 재앙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과연 종말의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갈수록 빨라질 자연 재앙과 인명 재앙으로 인하여 갑자기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 종말의 때와 그 징조에 대해 예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종말의 때와 징조에 관하여 우리 주님께서는 과연 어떻게 말씀해 주셨을까?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계셨을 때였다. 종말의 때와 징조에 관해 제자들이 질문하자 주님께서는 이렇게 3가지로 대답해 주셨다. 그것은 마태복음 24장,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17장과 21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 세계는 주님께서 하신 그 말씀대로 이뤄지고 있다. 첫째, 세상은 자연 재앙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마24:6~7). 난리와 난리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갈 것이고, 민족과 민족 간에 전쟁이 발생하며,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둘째, 마지막 때로 갈수록 사탄의 미혹과 성도들에 대한 핍박이 심화될 것이라고 했다(마24:5,11,24). 자칭 재림 예수가 등장하여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현재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이미 2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서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할 것이라고 했다. 감사하게도 아직은 이러한 능력을 갖춘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우린 머지 않아 이러한 자들을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셋째, 가장 중요한 종말의 징조는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는 것이라고 했다(마24:14). 과거에는 그 누구도 이 말씀에 주목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 이후 모든 믿는 이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을 때에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으며, 영생을 얻어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가르쳐 준 진정한 복음이란 사람이 죽을 때에 그의 영혼이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회개와 천국에 관한 진정한 복음이 신앙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그러면 주님이 오실 때가 다 된 것이다. 

 

3. 요한계시록이 들려주는 종말의 시간표는 어떠한가?

  그렇다면 A.D.95~96년경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보았던 환상이 들려주는 종말의 시간표는 어떠한가? 우리는 종말의 때와 징조에 관하여 사도 요한이 들려주는 계시의 말씀들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요한이 기록한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구약성경에 들려주는 계시들의 종합물이자, 주님께서 직접 사도 요한에게 보여 주고 들려준 환상을 다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종말의 징조는 666표를 찍는 적그리스도에 의하여 순교자의 숫자가 차는 것이다. 이는 후3년 반에 일어날 것인데 그러면 주님께서 오시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때에 있을 대환난의 기간을 전3년 반(1260일, 42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과 후3년 반으로 나누고 있는데, 전3년 반의 대환난의 기간은 일곱 나팔 재앙 중에 앞의 4가지 나팔 재앙이라고 추측된다(계8:6~12). 즉 땅(첫째 나팔)과 바다(둘째 나팔)와 강(셋째 나팔)과 하늘(넷째 나팔)에서 일어나는 자연 재앙을 환난의 전반부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3년 반의 환난은 일곱 나팔 재앙 중에 뒤의 3가지 나팔 재앙으로 본다(계9:1~12,13~21, 11:14~18). 이는 사람을 치는 재앙으로서, 독수리가 날아가면서 '화화화'라고 외쳤던 바로 그 3가지 나팔 재앙을 가리킨다(계8:13). 이는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에 의해 시작되는 다섯째 나팔 재앙(계9:1~11)과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인하여 사람 1/3이 죽임당하는 여섯째 나팔 재앙 그리고 적그리스도 치하에 내려지게 될 일곱 대접 심판으로 구성된 일곱째 나팔 재앙이 그것이다(계16:1~20).

  그렇다면 어린양이 보좌에 앉은 이로부터 건네받은 일곱 인으로 봉인된 두루마리는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 재림 때까지 일어날 모든 일들을 압축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니까 이것을 굳이 재앙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지구와 인류의 역사를 요약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일곱 인은 4대 3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수께서 인을 떼자 앞의 4가지 인의 환상이 먼저 펼쳐지게 되는데(계6:1~8), 이는 흰 말과 붉은 말, 검은 말과 청황색 말과 그 탄 자들에 의한 활동이 나타난다. 이것은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보통 '복음 전파, 전쟁, 기근, 전염병'을 가리킨다고 본다. 그리고 3가지 인이 떼어진다(계6:9~17, 8:1~2). 다섯째 인이 떼어질 때에 사도 요한은 하늘의 실제 광경을 보게 되는데, 이는 제단 아래에 있는 순교자들이 호소하는 것을 본다(계6:9~11). 자기들의 피를 보복해 달라고 요청하는 순교자들의 호소를 요한이 들은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께서 여섯 번째 인을 떼자 해가 검어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고, 별들이 설익은 무화과나무 과실같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계6:12~17). 이는 해와 달과 별들 곧 천체의 이상이 발생할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재림하기 직전의 징조로서 이미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신 것과 똑같다(마24:29~31). 그런데 어린양이 일곱 번째 인을 떼자 일곱 인들의 내용은 일곱 가지의 나팔 재앙이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나팔이 울려퍼지자, 일곱 대접의 재앙이 펼쳐졌다. 고로 우리는 일곱 인과 일곱 나팔 재앙 그리고 일곱 대접 재앙이 순차적으로 진행하되, 나선형처럼 반복적으로 일어날 것이며, 그것이 일어나는 시기가 갈수록 더 빨라지면서 갑작스럽게 지구의 종말이 찾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다.

 

4. 재림의 시점을 알려 주는 이정표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주님의 재림의 시점을 알려주는 이정표는 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그 날짜(date)와 그 시간(hour)은 알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마24:36). 다만 자연 재앙과 사람 재앙을 통하여 그 때가 점점 다가올 것이며, 천국복음이 온 세상에 증거됨으로 인하여 그 때가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 전체가 들려주는 주의 재림의 단서들 가운데, 가장 확실한 단서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크게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순교자의 숫자가 차야 한다는 것이다(계6:9~10). 이것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환상 가운데 본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순교자의 수를 정해 놓으셨다는 사실이다. 주와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일찍 죽임당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수명을 다 채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주와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친 자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죽음을 특별하게 보시는 것이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이들의 숫자가 차면 심판하러 오시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들이 억울하게 죽임당하도록 사주한 사탄과 귀신들 그리고 이들의 사주를 받아 직접 고난에 가담하여 복음 증거자들을 죽였던 핍박자들을 모조리 심판하실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의 재림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혹시 영으로 천국에 가서 순교자들을 아무리 쳐다본다고 한들 그 숫자가 찼는지 안 찼는지 파악할 수 없다. 

  둘째, 구원받을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차고 이어서 남은 유대인들의 숫자가 차야 한다는 것이다(롬11:25~26,14).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인류의 숫자를 다 아신다. 머리털까지도 세시는 하나님이 그것을 모르실 리가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순서가 있다. 그것은 먼저는 유대인이요 그리고 이방인들의 순이다. 그러므로 초림의 예수님의 때까지는 구원은 주로 메시야의 조상들인 유대인 중심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예수님의 초림 이후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도 활짝 열려지게 되었다. 그러한 구원의 경륜은 바로 사도 바울을 통해 이뤄진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인하여 언제 종말이 오게 될른지를 기록해 놓았다. 그러므로 로마서에 의하면 유대인의 넘어짐으로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가 구원을 받겠지만, 마지막 때가 되면 유대인들도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의 숫자가 얼마쯤 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숫자가 얼마나 찼는지는 사실상 알 수 없다.

  셋째,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단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요한계시록 7장과 14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144,000명이 채워지는 것이다(계7:1~8, 14:1~5). 다시 말해 이들은 주님께서 정해 놓으신 아주 특별한 사람들로서 144,000명이라는 숫자가 찰 때 주님이 재림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감사한 것은 주님의 때가 언제인지 말씀해 주시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만약 우리가 영안으로 천국의 3층 천에서 예배드리고 있는 광경을 본다면 우리는 지금 주의 재림이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144,000석에 얼마나 사람이 꽉 들어찼는가를 보면 대강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재림의 때를 알려 주는 천국의 예배의 광경이란 어떤 것인가?

  우리는 주님 재림의 날짜와 시간에 대해서는 결코 알 수 없다. 그것은 영원히 비밀이요,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에 속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행1:7). 그것은 아들이신 예수님도 모르고 천사들도 모른다고 했다(마24:36). 그렇다면 그 때가 되었는지 아니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증거들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마24장의 자연 재앙과 인간 재앙의 징조를 통해서 그날이 가까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천국에 들어가서 예배드리는 광경을 볼 수 있다면, 그 때가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대강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의 성도들이 예배드릴 때 144,000석에서 앉아 있는 이들과 서서 예배드리는 이들을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 숫자가 정해져 있는 24장로들과 144,000명의 주의 종들의 숫자가 그것을 알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사실 영안이 열려 지금 천국에서 성도들이 예배드리는 장면을 한번 보라. 천국 성도들은 평소 때에는 둘째 하늘에서 산다. 그러다가 예배드릴 시간이 되면 그들은 셋째 하늘로 올라와서 예배를 드리게 되는데, 하나님의 보좌 맨 앞의 오른쪽에는 24장로들이 맨 처음 두 줄로 앉는다. 참고로 24장로석은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쓸 당시에 이미 다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는 144,000석의 보좌들이 있다. 이 보좌 자리는 주님께서 온 인류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도록 보낸 당신의 종들이 앉을 자리다(계7:1~8). 그리고 그 뒤쪽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무리들이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서서 예배를 드린다(계7:9~17). 이들은 요한계시록 15장에 유리 바닷가에 선 이들과 같다. 이것이 요한계시록 7장의 내용이다. 그럼 144,000석의 뒤쪽에 서 있는 허다한 무리들의 숫자는 사실 얼마나 될까? 그것은 헤아릴 수가 없다. 아마 수억 명이 되리라고 본다. 하지만 144,000석의 보좌자리는 그 자리를 영의 눈으로 볼 수 있다. 그 자리가 얼마나 채워졌는지를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지 말라. 144,000석의 보좌자리의 약 95%가 이미 채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의 때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마도 우리 시대나 우리 다음의 시대에는 주님이 오시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6. 144,000석의 보좌에 앉을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렇다면 144,000석의 보좌에는 과연 누가 앉는 것인가? 사실 144,000명에 대한 해석은 몇 가지가 있다. 가장 일반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이 2가지다.

  첫째, 144,000명은 상징적인 숫자로서 신구약의 구원받을 사람들의 총체를 가리킨다. 이는 144,000이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로 대별되는 신구약의 성도들의 충만한 수라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12 곱하기 12가 144가 되고, 여기에 충만한 수인 1,000을 곱하면 144,000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해석은 옳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천국 성도는 144,000명이라고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7장을 보니 천국 성도는 크게 144,000명과 그 뒤에 서서 예배드리는 셀 수 없는 많은 무리의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144,000명을 문자적으로 보는 해석인데, 세대주의자들은 대환난 시기에 유대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인침을 받고 보호함을 받은 사역자들이라고 해석하고, 이단 사이비에서는 천년왕국으로 들어갈 자기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해석한다. 이들 해석은 문자적인 해석이라는 점에서는 맞기는 하지만 다른 해석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144,000명이 누군지를 알려 주는 요한계시록 7장과 14장의 말씀에 따르면 그들은 첫째, 하나님이 쓰시는 종들이기 때문이다(계7:3). 그리고 둘째, 신구약시대에 걸쳐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여 이 땅에 주의 일을 하라고 내려보낸 종들이기 때문이다(계14:1). 왜냐하면 이들의 이마 위에는 아버지의 이름(여호와)과 어린양의 이름(예수)이 인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마 위에 아버지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이들이 구약시대에 구원받은 성도들을 가리킨다면, 그들의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이들이 신약시대에 구원받은 성도들이라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로, 이들의 숫자는 144,000명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계7:8, 14:3). 넷째로, 이들이 특별한 종들이라는 증거들이 있다(계14:4~5). 그것은 이들이 세상과 짝하지 않고 자신의 순결을 지킨 자들이고, 주님의 말씀이라면 어떤 말씀이든지 순종하는 자들이라고 나와 있다. 그리고 이들은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 첫 번째로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면서, 동시에 그들의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했다. 고로 이들은 하나님께서 신구약시대에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보낸 특별한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7. 지금 우리는 종말의 어느 시점에 와 있는가?

  고로 지금은 종말의 어느 시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은 지금 이 시대는 대환난이 시작되기 바로 일보 직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나팔 재앙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앞의 4개 나팔로 인하여 자연을 치는 재앙이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뒤의 3개의 나팔이 불려지면, 적그리스도가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게 되는 사람 재앙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지금이 어떤 시기인지를 우리더러 알 수 있도록 자연 재앙의 서곡으로서 지금 코로나 전염병을 일으키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곧 있으면 기근 재앙과 화산 재앙이 닥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재앙은 동시다발적으로 그리고 급격하게 빨리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적그리스도)과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거짓 선지자)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666표를 찍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것을 거부하는 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한편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무렵 144,000명의 주의 종들은 천국에 거의 다 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가 되면 구원받을 일반 백성도 그리 많이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144,000명의 숫자가 거의 다 찬 시기가 바로 후3년 반의 대환난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환난의 시기에도 구원받을 성도들이 조금은 있을 것이고 그때에 활동할 주의 종들도 조금은 있을 것이다. 두 증인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의 하나다. 

 

8. 지금 우리 성도들은 무엇을 준비할 때인가?

  고로 지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 때인가? 그것은 첫째, 먼저는 자신이 회개해야 한다. 회개해야 천국에도 들어갈 수 있고 온갖 저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기도와 말씀으로 단단히 무장할 때다. 왜냐하면 대환난의 때가 찾아오면 말씀을 제대로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는 방송을 장악하여 복음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는 것을 막을 것이며, 참된 주의 종들을 잡아다가 가두고 죽일 것이다. 고로 말씀을 배우려고 한다면 지금 배워야 하며, 기도를 하려면 지금 기도를 해서 성령의 은사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때에 안전하게 도망다니려면 사실 꿈과 환상과 예언의 은사가 필요하다. 셋째, 한 사람에게라도 더 천국복음을 전해 주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왜냐하면 환난 치하에서는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해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9. 나오며

  아마도 우리에게 자연 재앙은 속히 다가올 것이다. 내년부터는 지구의 열대화로 인하여 지구가 올해보다 훨씬 더 펄펄 끓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전염병이 창궐하여 전 세계를 뒤덮을 것이며, 기근 재앙과 더불어 전쟁에 대한 소문은 갈수록 더 가속화될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이러한 재연 재앙에 이어서 예수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잡아 죽이는 일이 실제로 발생할 것이다. 그러면 주님이 오시게 된다. 왜냐하면 적그리스도에 의한 핍박으로 순교자의 숫자가 채워지면서 144,000명이 다 채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날은 우리에게 멀지 않다. 이 일이 몇 년에서 수십 년 안에 일어날지도 모른다. 대환난의 날이 되면 그때 자신의 신앙을 끌어올릴 방법은 거의 없다. 고로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여 하늘의 상을 준비할 기간이 우리에게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지금이 지나가면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운 때가 올 것이다. 고로 기도하려면 지금 기도하라. 회개하려면 지금 회개하라. 성령충만받고 은사받으려면 지금 받으라. 천국복음을 전하려면 지금 전하라. 회개하여 깨끗한 자가 되고 복음 전하는 일에 충성하여 하늘의 상을 받을 때는 바로 지금인 것이다. 지금 시기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황금 추수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2023년 07월 30일(주일)

정보배목사

2023-07-16(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바울의 부르심이 여느 부르심과 다른 이유는(행9:10~2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Y7xotKHxE1w [또는 https://tv.naver.com/v/38328913]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어느 날 불러 쓰신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일은 아무나 쓰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기 위해 이 땅에 내려보내신 그 사람만을 찾아서 꼭 그 사람을 쓰신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신이 제자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을 불러서 제자로 삼으신 적이 없었다. 오직 예수께서 그 사람을 불러서 그를 제자로 삼으셨고 또한 사도로 파송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12제자로 선택받은 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부름을 받아 사도로 쓰임받은 사람이 한 명 있다. 그는 바로 '바울'이다. 원래 이름은 '사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대체 무슨 이유로 사울을 부르셨을까? 먼저 부름을 받았던 사도 베드로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사도 바울의 부르심은 여느 사람과 다른 부르심의 측면이 있었던 것인가? 그래서 오늘은 사도 바울의 부르심이 가진 특별한 점을 한 번 들여다보고, 그 부르심과 아울러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 및 교회 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서로 비교하여 그 연관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3가지 목적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아무나 제자로 삼지 않으셨다. 주께서는 자신이 원하시는 자들을 불러서 그러한 자들을 제자로 삼으셨기 때문이다(막3:13). 왜냐하면 3년 반이 지나면 대를 이어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받아 그 일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러한 일을 감당하다가 중간에 그만 둔다거나 혹은 잘못된 길로 가서는 절대 안 되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할 일은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천국복음을 증언하는 일이었고, 그래서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제자들을 부르셨던 것일까? 그것은 3가지 이유에서였다(막3:14~15). 첫째로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이는 예수께서 하시는 것을 제자들이 잘 보고 훗날 그대로 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둘째,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송하여 천국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함이었다셋째, 귀신들을 쫓는 권세를 제자들에게 주려 함이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나가서 해야 할 일은 마귀에게 눌려 있는 사람을 건져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이후 주께서는 한 명의 사명자를 따로 더 불러내셨다. 그리고 그에게 아주 특별한 사명을 맡기셨다. 그것은 이전에 12사도들이 감당하던 사역에서 한층 더 발전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의 부르심은 아주 특별하고도 특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3. 사도 바울은 대체 어떤 인물인가?

  사도 바울은 베드로와 나이가 거의 같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성경 어디에서도 그의 나이를 밝히고 있는 대목이 없기 때문에 그의 나이에 대한 견해는 학자마다 다르지만, 추측컨대 A.D.5~10년경에 태어났을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는 유대 본토에서 태어나지는 않았다. 로마의 속주였던 길리기아의 다소 성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그는 헬라파 유대인이다. 그런데 그는 어렸을 적에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가서 '가말리엘'이라는 석학의 문하생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율법의 엄한 교훈을 가르치는 바리새파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그에게 한 명의 누나가 있었는데, 그녀는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고 그녀에게는 아들도 있었다. 그때 바울은 자신의 출세를 위하는 일이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야심찬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대제사장에게 가서, 당시 나사렛 이단이라고 불리는 자들 곧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야로 믿는 이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처넣는 일에 앞장섰다. 그러다가 스데반을 만났다. 그러자 그는 그가 설교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를 돌로 쳐죽이는 일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리고 스데반을 죽일 때에 자기 친구들의 겉옷을 맡은 자가 되었다. 그래도 직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사울은 박해를 피해 다메섹으로 도망쳤던 성도들까지 잡아오려고, 대제사장에게 허가를 받아 다메섹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늘로부터 갑자기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을 보았다. 그래서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그것이 예수님과의 첫 만남이자 그의 부르심의 시작이었다. 

 

4. 사도 바울의 부르심은 어떤 면에서 특별한가?

  사실 사도 바울의 부르심은 12제자들의 부르심과 약간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다른 여느 사도들과 똑같은 부르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의 부르심이 다른 사도들과 같은 부르심이었다면 주께서는 굳이 베드로와 거의 대등한 나이를 가졌으며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바울을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대체 어떻게 부르심을 받았으며, 그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부르심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첫째, 사도 바울은 여느 사역자들처럼 주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되 개인적으로 따로 부르심을 받은 인물이었다. 사실 성경에 등장하는 주님의 사역자들 가운데 주님께서 간접적으로 사명자를 불러내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 구약시대 때에는 여호와께서 직접 사명자를 부르셨으며, 신약시대 때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셨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다. 그러나 그도 여느 사역자처럼 개인적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그런데 그때 주님께서는 빛 가운데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이것이 바울과 예수님의 첫 만남이었다. 

  둘째, 그런데 사도 바울의 사명 전달 방식은 이전에 있었던 모든 전례를 깨는 아주 특별한 전달 방식이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쓰시겠다고 하셨던 사람들은 전부다 하나님께서 직접 불러내셨고, 또한 그에게 어떤 사명을 알려 주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바울에게 직접 나타나기는 하셨지만, 그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직접 일러주시지 않으시고,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맡기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명 전달 방식은 사실 전례가 없었다. 그런데 그 일은 다메섹 도성에 살고 있는 무명의 아나니아라고 하는 형제로부터, 안수와 예언을 통해 전달하는 방식이었다. 

 

5. 왜 바울은 무명의 아나니아로부터 사명을 전달받아야 했던 것일까?

  바울이 다메섹 노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는 그의 시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다메섹 도성의 직가라고 하는 동네의 유다의 집에 들어가 식음을 전폐하고 금식하면서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하나의 환상이 보였다. 어떤 사람이 들어오더니 자기의 머리 위에 안수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자기의 눈이 밝아지는 것이었다. 그 시각, 다메섹 도성에는 아나니아라고 하는 제자가 살고 있었다. 이제 주님께서는 그를 찾아가셔서 사울을 찾아 안수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자 사울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아나니아에게 예수께서는 이렇게 알려주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다(행9:15)" 그러자 아나니아가 주님의 명령을 받고 사울을 찾아가서 그에게 안수하였다. 그러자 그의 눈에서 비늘들이 벗겨지면서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는 바울이 해야 할 사명을 직접 말씀하시지 아니하시고, 굳이 무명의 사람인 아나니아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일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사울 곧 바울이 맡아서 해야 할 일이 너무나 큰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베드로처럼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왕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타 민족인 이방인들에게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세상 사람치고 바울과 같은 거대한 사명을 받은 자가 익히 없었다. 그리고 바울은 지금 천국에 있는데, 천국에서 바울처럼 영광스러운 지위와 영예를 얻은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그가 주님을 직접 만난 이후, 주님으로부터 사명까지 직접 받았다면, 아마도 그는 자신을 실로 매우 대단한 존재라고 여겨 교만해질까 봐, 주님께서는 무명의 사람에게 안수를 받으라고 하셨고 그에게 사명까지 받으라고 하신 것이다.

  둘째, 바울이 감당해야 할 사명은 혼자가 감당할 수 있는 사명이 아니라 다른 지체들과 연합하여 감당해야 할 사명 곧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처음부터 협력하는 것을 배워야 했다. 그래서 바울에게 처음부터 조력자를 붙여 준 것이다. 그렇지만 아나니아는 결코 바울보다 큰 사명을 가진 자가 아니다. 그의 이름이 단 한 번 이 사건에서만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주께서는 무명의 아나니아를 통해 바울더러 자신의 눈을 고침받고 그리고 그에게서 사명을 받으라고 하셨다. 이는 바울이 결코 자기 힘으로 사명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사명자가 되는 것이며, 또한 그가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나 커서 도무지 혼자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처음부터 함께 사명을 이뤄가는 것을 배우라고 그에게 아나니아를 붙여 준 것이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결코 혼자서 사역하지 않았다. 그는 가장 먼저 떠났던 1차 전도여행 때에는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서 바나바 및 마가 요한과 함께 전도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2차 전도여행 때에는 선지자인 실라와 함께 떠났으며, 중간에 루스드라에서는 디모데와 합류하게 되었고, 드로아에서는 의사 누가와 합류하게 되었다. 그리고 빌립보에 갔을 때는 선교자금도 떨어지고 말았는데, 그때 자주장사 루디아를 만나 선교자금을 조금이나마 충당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고린도에 가서는 텐트 만드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그런데 그때 그가 취직한 공장의 주인이 누구였는지 아는가? 그 부부는 유대인들이었다. 그리고 바울에게 복음을 들은 이들은 바울의 아르바이트를 중단시키고 바울의 선교자금을 대기 시작하였다. 그들 부부가 바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다. 이 부부는 바울이 로마에 가서 선교하다가 네로 황제에게 순교하는 날까지 선교자금을 보내 준 사람들이다. 그리고 3차 전도여행 때에는 새로운 선교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그것은 에베소에서 3년간 머물면서 각지에 가서 교회를 세울 지도자를 양성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아시아와 유럽 등지에 지도자를 파송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바울의 대를 이어 충성할 목회자를 양성하고 선교사를 훈련시켜 파송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바울더러 "너는 다른 사람들과 동역함으로 너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는 것을 평생 간직하고 있으라"는 뜻에서, 처음부터 아나니아를 그에게 붙여 준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동역자들과 함께 그리고 선교자금을 지원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천국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셋째,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할 자로 바울에게만 그 사명을 맡기지 아니하시고 그와 함께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에게도 많은 상을 안겨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사실 바울을 제외한 대부분의 하나님의 종들은 자기만의 특수한 사역이 있었고 그것을 혼자서 일평생 짊어져야 했다. 베드로도 초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혼자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베드로만 하늘에서 상을 받게 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바울에게는 바울만 하늘에서 상을 받을 것이 아니라, 그와 협력하여 함께 일하는 자들도 함께 상을 받도록 그에게 여러 사람을 붙여 주셨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만 몽땅 상을 받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 누구든지 주의 일에 충성하여 모두가 다 상 받기를 바라신다. 고로 바울 뿐만 아니라 아나니아도, 의사 누가와 디모데도, 자주장사 루디아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상을 받기 바라셨기에 그들을 바울에게 동역자로 붙여 주신 것이다. 

  

6. 바울과 함께 복음 전파에 힘썼던 자들은 대체 어떤 복을 받았을까?

  그렇다면 바울과 함께 동역하여 복음 전파에 수고하였던 자들은 대체 어떤 복을 받았을까? 그들은 다음과 같이 3가지 복을 받았다.

  첫째,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축복을 받았다(빌4:2~3).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생을 지으신 목적이 천국에 들어오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을 감당하라고 당신이 선택한 사람을 이 땅에 내려보낸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사명자를 도와 천국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모른 채 하시겠는가? 그런 자들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지 아니하시겠는가?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개척했던 빌립보교회를 위해 힘썼던 자들인 유오디아와 순두게 및 글레멘드와 동역자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 

  둘째, 그들이 죽은 다음에는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딤후4:18). 사도 바울도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너무나 힘든 일들을 많이 겪었다. 하지만 그러한 고비를 다 견뎌내고 천국 안으로 들어가는 구원을 받았다. 고로 그를 도와 함께 협력했던 자들도 주님께서는 하늘에 성을 예비하여 맞아 주실 것이다. 

  셋째, 마지막으로 바울처럼 끝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성한 자들에게 면류관을 얻게 하실 것이다(딤후4:8). 사실 천국에 있는 면류관은 사도 바울만 받도록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충성했던 자들로서 사도 바울뿐만 아니라 주님의 일에 힘쓰는 모든 자에게도 그러한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7. 앞으로 동탄명성교회와 더불어 "회개와 천국복음연구소"가 담당해야 할 사명은 무엇인가?

  그래서 지금 동탄명성교회를 마중물로 하여 "회개와 천국복음연구소"가 세워지고 있다. 이 일은 하나의 교회가 담당할 수 있는 작은 사명이 아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동역하여 해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이 연구소가 세워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사역을 하도록 주님께서 맡겨 주셨기 때문이다.

  첫째로는 서적 출판을 통한 선교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 문서로 작성된 것을 책으로 낸다고 해도 수십 권의 책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을 교정하고 또한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여 출판해야 한다. 둘째는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한 방송 선교를 감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영상 자막을 체크하고, 영어 자막으로 변환하고, 또한 짧은 영상을 제작하는 등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그리고 셋째는 목회자들과 평신도를 훈련하고 신학교를 운영해야 한다. 고로 이러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전문 인력이 정말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물질도 필요하다. 특히 목회자들의 훈련을 위해서 지방에서 올라오는 분들을 위한 기숙 시설을 갖춘 예배 처소도 정말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것을 놓고 지금 기도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에는 사실 기도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지도자가 영권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한 마디로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기도와 영권이 없이는 이 일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고로 이 사역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초대교회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 곧 귀신을 제압하고 병든 자를 치료하며, 여러 은사들을 풀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영육 간의 치료가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될 것이며, 그러면 그들을 천국으로 잘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8. 나오며

  이 세상에 우리가 태어난 것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과 놀라운 계획이 있어서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를 태어나게 하셨고, 회개와 천국복음을 접하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준비되지 않은 자를 쓰지 않으신다. 모세를 보라. 모세가 압제당하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어떻게 했는가? 그는 혈기 왕성한 40세 때에 그 일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는 실패하고 말았다. 아직도 그의 성품이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40년 동안 무명의 사람으로 광야에서 훈련시켰다. 그리고 80세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가시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불러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렇다. 큰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일수록 더 강도높은 훈련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 그날이 우리에게도 다가오고 있다. 더 기도하고 더 준비해야 한다. 그러면 때가 되었을 때 주님께서 바울에게 바나바와 실라, 디모데와 누가, 자주장사 루디아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같은 자를 붙여 주시어 함께 협력하여 선교하게 하셨듯이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로 하여금 이 마지막 시대에 꼭 전해야 할 회개와 천국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게 하실 것이다. 

 

 

2023년 07월 16일(주일)

정보배목사

2023-07-09(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부르심(1)] 주께서 나를 부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마4:18~2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lwHcOYyRPuY [또는 https://tv.naver.com/v/38328293]

1. 들어가며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주의 나라를 위한 일꾼으로서 사역자를 부르시고 있다. 그렇다면 주께서 과연 나를 주의 나라를 위한 사역자로 부르시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실 주님께서는 주의 사역을 이해하고, 자신을 도와서 천국복음을 전파하며, 이 땅에 주께서 행하신 사역을 계속해서 계승할 사람을 찾고 계신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서 거룩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이며, 그러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대체 어떤 것인가?

 

2.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역의 계승자로서 첫 네 명의 제자들을 어떻게 부르셨는가?

  예수께서 30세가 되셨을 때 그분은 세례 요한에게 가셨다. 그리고 그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성령을 받아서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셨다. 그런데 그분이 사역을 시작하신 곳은 유대 나라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아니었다. 그분은 갈릴리의 가버나움으로 가셨다. 그리고 거기에서 조금 머무르신 후에 당신의 사역을 계승할 사람을 찾으셨다. 그런데 그분의 첫 제자들은 다름 아닌 어부들이었다. 

  먼저,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있을 때에 그들을 부르셨다. 그리고 그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들이 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베드로와 안드레는 즉시 배를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갔다(마4:18~19). 그리고 조금 더 가시다가 이번에는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배 안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것을 보셨다. 또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안드레와 요한도 역시 배와 부친을 배에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갔다(마4:21~22). 그런데 당시 베드로나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의 부르심에 즉각 응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즉각적으로 응답을 한다.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3. 주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당신의 일꾼으로 부르시는가?

  왜 주님께서는 할 일이 없어 빈둥빈둥 놀고 있는 사람을 부르시지 않고, 자신의 생업에 열중하고 있는 자를 당신의 제자로 부르신 것인가? 그리고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당시,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을 굳이 불러내셨는가? 당시 베드로는 가장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장남 야고보는 부모를 잘 공경하고 있었다. 결국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려 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게으른 자를 결코 당신의 사역자로 쓰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부지런한 자, 자신의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그 일을 감당하는 자를 쓰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역자는 앞으로 교회를 세워야 하고, 천국복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병든 자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말씀을 잘 가르치는 자를 쓰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자는 결코 게을러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오늘도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를 불러내신다는 것을 꼭 기억하자. 

 

4. 예수께서는 왜 가버나움을 3년 반 공생애의 근거지로 사용하셨는가?

  예수께서는 어부가 아니셨다. 그리고 갈릴리 바닷가의 가버나움이 그분의 고향도 아니셨다. 그리고 장차 그분이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셔야 할 곳은 갈릴리가 아니라 예루살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공생애의 근거지를 갈릴리의 가버나움으로 삼으시기 위해 그리로 가셨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당신의 첫 제자들로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절반 이상의 제자들이 살고 있는 장소가 바로 갈릴리 가버나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가버나움으로 이사 가신 것은 그곳에서 살고 있는 제자들을 불러내셔서, 그들을 당신의 계승자로 삼기 위해서였다. 좀 더 근원적으로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을 예수님의 계승자로서 정하시고 이 땅에 보내셨기 때문에, 그들을 사역자로 불러내서 쓰시기 위해 예수께서 가버나움으로 가신 것이다. 

  그렇다면 베드로와 안드레는 처음부터 가버나움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는가? 그런 건 아니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가버나움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지역인, 갈릴리의 벳새다 출신의 어부들이었다. 하지만 어떤 필요에 따라 베드로와 안드레가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간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어떤 장소에서 어떤 장소로 이사가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코로나로 인하여 회개와 천국복음을 접하게 된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이다. 주님께서는 누가 자신을 계승하여 이 땅에 교회를 세우고 천국복음을 전파해야 하는지를 생각하시고, 그러한 영혼을 이 땅에 보내시고 있다. 고로 예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찾아내서 자신의 제자로 삼기 위해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야고보와 요한은 왜 가버나움에서 살고 있었던 것일까? 그건 그들의 아버지인 세베대가 그 비밀을 알려 준다. 예수께서 그 많고 많은 마을들 가운데 3년간의 거점을 가버나움으로 정하신 이유 중의 하나는, 그곳에 자신의 이모부와 이모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수님의 이모부는 세베대를 가리키며, 이모는 살로메를 가리킨다(막15:40, 요19:25). 고로 야고보와 요한은 이모 아들들로서 외사촌동생들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천국에서 야고보와 요한은 가장 존귀한 자의 반열에 들어 있는 자들이다. 아니 그렇게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이 땅에 보내신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 때에, 가족관계도 매우 깊은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5.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이 땅에 보내어진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을 하려고 이 땅에 보내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사실 하나님의 이러한 목적을 따라 이 땅에 보내어진 특별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만약 믿는 가정에서 태어난 자가 아니라면, 자신이 누군지를 깨닫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더라도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목적으로 이 땅에 보내어졌는지를 반드시 알게 될 날이 찾아온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를 깨우시고 불러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었던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나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이 땅에 보내어진 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첫 네 명의 제자의 경우를 들어서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자신의 관심은 이 땅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일 곧 영적인 것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할 사역자로 보내어진 특별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땅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때가 되면 그들은 자신의 본연의 직무를 찾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때가 바로 예수님이 그곳에 이사가신 때였던 것이다. 그 일은 바로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들 네 명은 어부의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거기에 만족하며 살고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시 보다 더 가정에 책임이 적었던 동생들 곧 안드레와 요한이 먼저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기 위해 여기저기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어느 날에는 예루살렘 근방에 갔다. 왜냐하면 소문에 메시야가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을 만나 보니, 그는 선지자로서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을 굴복시키며 하늘나라의 일을 전파하는 놀라운 사람이었다. 그러자 안드레와 요한은 곧바로 세례 요한의 제자가 된다. 

  둘째, 하나님께서 더 크게 쓰시는 자는 자신의 영적인 갈급함을 더 채워주는 스승을 갈망하게 되고 결국 그를 찾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먼저 세례 요한의 제자가 되어 가르침을 받았던 안드레와 요한은 어느 날 세례 요한으로부터 놀라운 증언을 듣게 된다. 그것은 자신은 메시야가 아니며, 자신은 그분의 신발끈을 풀기에도 감당하지 못할 자라고 하면서, 진정 자신의 제자들이 따라갈 분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이라고 했다. 그러자 안드레와 요한은 예수님을 찾아간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 본 후, 동생 안드레는 자신의 형인 베드로를 데려가서 예수님을 만나게 해 준다. 그러자 그때 예수께서 베드로를 보신 후에 그의 이름을 '시몬'에서 '베드로'라고 바꿔주신다. 결국 이후 안드레와 요한은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되었으며, 그의 형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되었다. 

  셋째, 주님께서 쓰실 사람들은 어느 날 주님께서 직접 그들을 불러내시는데, 그러면 그 사람은 즉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주님을 따라가게 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누군가의 제자가 되는 일은 사실 본인이 결정하여 스승을 찾아가서 부탁하면 된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아 제자가 되는 것은 우리 인간의 소관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은 성공해도 되고 실패해도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맡기실 때에는, 이미 하늘에서 정한 사람을 이 땅에 내려보내신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를 불러서 그 일을 맡기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쓰시는 특별한 사역자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사람이다. 고로 그러한 자가 아님에도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자로 쓰임받을 일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이 세상에 보내어진 사람은 세상일을 잘 한다고 해도 그 일이 그리 기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베드로가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와서 고기잡이 전문가가 되었고, 또한 안드레가 어업을 통해 예루살렘에 집을 갖고 있으면서 생선 판매망을 이용하여 부자로 살고 있었어도, 그들은 결코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래 그들을 이 땅에 고기잡이로서 내려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그들을 불러내시자, 그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즉시 주님을 따라나설 수가 있었던 것이다. 

 

6.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나를 쓰시려고 불러내셨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사실 모든 사람이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들은 수백 억의 인류 가운데 하나님께서 일부러 이 땅에 보낸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이러한 자들의 힘만으로 되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도와서 함께 일할 사람도 역시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며 또한 누가 과연 하나님의 사역자를 도와서 그 일을 감당할까? 

  첫째, 현재 자신에게 어떠한 풍족한 삶이 주어졌다고 할지라도 천국에 관한 것, 영적인 일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만족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선택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영적인 갈급함은 대단하다. 둘째, 주님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맡겨 주신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지금 당장 내려놓는다 할지라도 그것에 미련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그 일만큼 소중한 일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셋째, 이 세상에서 시대적으로 하나님이 쓰실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들은 일반적인 부르심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개인적 부르심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의 경우를 보자. 그는 자신이 깨달아서 위대한 사도가 된 것이 아니다. 그러한 사도로서 예정하여 이 땅에 보내어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메섹 도상에서 주께서는 그를 개인적으로 따로 만나셨고 또한 부르셨다. 넷째, 이 땅에 사는 자들 중에는 주님께서 쓰시는 사역자를 돕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그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자도 있다는 것이다. 이 땅에는 자신이 직접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사역자를 돕는 것을 매우 기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귀한 물질, 은사와 달란트 그리고 시간을 하나님의 사역에 기꺼이 내어놓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상을 주신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은 그에게 의무 사항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원함으로 그 일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선지자를 영접하면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을 영접하면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10:41~42). 그러므로 천국에 가보면, 사도 바울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을 도왔던 자들로서, 바나바와 실라, 디모데와 누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등은 매우 큰 상을 받은 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7. 나오며

  큰 교회를 목회하다가 성도들을 지옥 보낸 주의 종들이 있다. 만약 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여 간신히 천국에 들어갔다고 치자, 과연 이들의 이름이 천국에서 빛나게 될까?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천국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한 자가 가기 때문에,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예수님을 끝까지 믿고 회개하면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천국에서 누릴 상은 그에게 없는 것이다. 남들을 지옥가게 했던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서 어떻게 영광스런 지위를 누릴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러한 종들은 거의 성밖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면서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다. 작은 일일지라도 주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자라면, 그러한 자가 오히려 천국에서 큰 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일반 성도들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시대적인 사람으로 하나님께 선택받지 않았어도, 자신이 가진 은사와 달란트 그리고 물질을 사용하여 주의 나라를 위해 힘쓰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어마어마한 상을 내리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작은 것일지라도 주의 나라를 위해 자신의 것을 주님께 드리는 자는 천국에서 큰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책망할 것이 없는데, 주님의 나라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물질과 시간, 은사와 달란트를 드렸기 때문이다. 주님의 부르심으로 자신의 사명의 때를 알아차린 네 명의 제자, 그들은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을 따라갔다. 그래서 저 하늘에서 위대한 사람들이 된 것이다. 사실 모든 사람이 다 이러한 제자들처럼 살 수는 없지만, 자신의 삶을 드려 하나님의 사역자를 돕는다면, 그는 사도 바울을 도왔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천국에서 정말 큰 상을 받은 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2023년 07월 09일(주일)

정보배목사

2023-07-02(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한 해의 절반을 마감하며 우리가 주께 드려야 할 감사는?(시136:1~2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BI08jcW2ABo [또는 https://tv.naver.com/v/38327860]

1. 들어가며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이다. 보리 추수를 마치고 밀 추수를 시작하는 시기에 드리는 감사의 절기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맥추절은 구원의 절기가 아니라 농사의 절기로서, 초실절이 있은 후 약 50일째 되는 날에 지키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있어서 농사의 절기는 초실절과 맥추절 외에도 수장절이라는 절기가 하나 더 있다. 초실절(1월 16일)과 맥추절(3월 5일경)이 봄 추수의 절기라고 한다면, 수장절은 가을 추수의 절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초실절은 보리의 첫 추수를 시작할 때에 지키는 절기요, 맥추절은 보리의 마지막 추수를 마치고 밀 추수를 시작하며 지키는 절기다. 그리고 수장절은 가을에 각종 과일들 곧 포도와 석류와 무화과를 거두어들이고 감람나무의 기름을 거두어들인 후에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절기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적인 상황의 경우, 농사의 일을 하고 사는 성도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므로 오늘날 도시에서 맥추절을 지킬 때에는 농사의 절기로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절기로서 지키는 것이 더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지난 6개월 동안 영적으로 이루신 일들에 감사하는 절기로 맥추절을 지키는 것이다. 또한 날짜로 볼 때에도 맥추 감사주일이 하반기가 시작되는 7월 첫 주에 지키는 것이니만큼 상반기를 되돌아보면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고, 새로운 하반기에 재도전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2. 맥추절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지키는 절기인가?

  이스라엘에 있어서 곡식 추수의 절기로서 맥추절은 감사의 절기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이날에는 일하지 않는다(레23:21).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었던 시편 136편은 이스라엘의 3대 절기의 하나인 맥추절에 공식 찬송으로 사용하는 예배 찬양시에 사용하는 말씀이다. 이 말씀에 따르면, 감사하는 자는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첫째,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가? 맥추절은 보리와 밀의 추수를 할 수 있도록 은혜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 그리고 신들 중의 신이시며, 주들 중의 주이자,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시136:1~3,26).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만이 감사와 찬양과 예물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 이외에 다른 피조물들은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포함한다. 

  둘째, 무엇에 감사해야 하는가? 맥추절은 무엇에 감사해야 하는가? 그것에 대해 시편 기자는 3가지 것을 말했다. 첫째는 창조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어 곡식을 거두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였다(4~9절). 그리고 둘째는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되, 과거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에서부터 건져내어 주셨고, 광야를 거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나눠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였다(10~22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는 이때 찬송을 부르고 있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베푸신 은총에 감사하라고 하였다(23~25절). 그것은 그들의 조상들이 우상을 숭배함으로 이방 나라인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는데, 비천한 가운데 놓여 있는 그들을 기억하사 다시 고향 땅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들의 원수들로부터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지금 현재도 그들 사람들에게 떡을 주고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셋째,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가? 그럼, 어떻게 감사하는 것이 감사의 절기를 지키는 것인가? 첫째는 감사의 절기를 지키도록 창조의 은총과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하게 자기들 공동체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찬양하라고 권면하고 있다(시135:21). 왜냐하면 히브리어 성경에서 시편 136편의 표제어가 시편 135편 마지막 절 끝에 나오는 '할렐루야'이기 때문이다. '할렐루야'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으로, 절기를 지키는 모든 이들이 다 하나님께 찬양할 것을 권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맥추절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교창을 한다. 먼저 인도자가 왜 감사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선창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후창으로 '그분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찬양을 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 본문에는 나오지는 않았지만 율법의 규정에 따라, 빈 손으로 하나님께 나오지 말고 감사의 예물을 준비하여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다(신16:10,16~17). 즉 하나님께서 감사의 예물을 바치는 것이다. 

 

3. 감사의 절기에 우리 성도들은 무슨 예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시편136편의 말씀과 모세의 율법인 레위기 23장을 통하여, 감사의 절기에 꼭 바쳐야 할 2가지 예물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았다. 그것은 첫째로, 찬양을 올려 드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둘째로, 예물을 올려 드리는 것이었다. 그럼, 이때 올려 드리는 예물은 무엇인가? 그것에 관하여는 레위기 23장에 아주 자세히 나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선적으로 두 덩이의 떡을 새 소제로 드리라고 했다(레23:16~17). 이때 드릴 떡은 누룩을 넣어서 예쁘게 구운 다음, 그것을 흔드는 요제로 바치라고 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오랜만에 성인 남자들이 성전에 와서 예물을 드리는 만큼, 번제와 속죄제 그리고 화목제도 같이 드리라고 하였다(레23:18~19).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드려야 할 예물에는 이것 말고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왜냐하면 이제는 농사도 하지 않고, 제사도 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감사의 절기에 우리가 주님께 드려야 할 진정한 예물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총 가운데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영적인 산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에게 영적으로 은총을 베풀어 주심으로, 주님께 드릴 결과물을 가지고 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받은 영적인 은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예물로 드려야 하는 것이다. 고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맥추절에 바칠 예물에는 찬양과 곡식 예물 이외에도 진정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적인 결과물들이 있는 것이다.

 

4. 올 상반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는 무엇인가?

  올 상반기 동안 하나님께서 회개와 천국복음을 외치고 있는 동탄명성교회와 회개와 천국복음연구소에 베푸신 은혜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놀라운 영적인 은혜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 올해 상반기에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귀신들이 왜 떠나가지 않는지 그리고 떠나지 않으려는 귀신들을 어떻게 강제로 내보낼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귀신들의 완전한 소탕은 어떻게 이뤄지는지까지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지난 10년 동안 우리에게 매우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첫째, 지난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약 7년 동안 회개를 통한 천국 입성에 대해 알려 주셨다. 그리하여 믿음만 가지고서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회개를 다시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한 번 얻은 구원이라도 얼마든지 잃어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구원을 받는 데에는 한번 가졌던 믿음을 끝까지 지켜야 하며, 죄를 지었으면 즉시 회개하여 범죄가 구원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지난 2020년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약 3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회개의 방면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하셨다. 왜냐하면 그동안에는 '구원받는 회개'를 배우고 그것을 실천했다면, 이제는 '저주로부터 해방받는 회개'를 배울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의 핵심은 조상 죄를 회개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는 그냥 조상들이 지옥가는 것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악한 영들도 물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출20:5). 그러므로 후손들은 본의 아니게 악한 영들을 물려받아 온갖 저주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여도 여전히 병들어 살고, 가난하게 살며, 자녀들의 앞길이 막히는 일들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도 그 어떤 진보도 이루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이다. 그것은 조상들이 우상숭배의 죄를 범함으로 우리에게 내려온 악한 영들의 영향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지은 자범죄까지 통째로 회개하기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들이 우리에게 나타났다. 그것은 첫째로, 건강이 좋아지고 회복되더라는 것이다. 시력이 좋아지고, 관절염이 고쳐지고, 우울증이 사라지고, 두통에서 해방되고, 불면증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둘째로, 재정이 회복되더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며느리가 집을 샀으며, 어떤 아들은 빌딩을 사기도 했다. 마이너스 재정에서 플러스 재정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셋째로, 자녀들의 문제가 풀리더라는 것이다. 자녀들의 앞길이 열리고, 취직이 되며, 교회를 떠났던 자식들이 주께 돌아오고, 자녀들의 질병이 치료되더라는 것이다. 

  셋째, 그리고 올 상반기에는 귀신축사에 관한 놀라운 진보를 이루게 되었다. 사실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하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귀신들과의 영적 싸움이다. 왜냐하면 불신자들은 처음부터 다 귀신의 소유였기 때문에, 불신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해 천국에 들어가도록 도우려고 하면, 귀신들이 가만히 있지를 않고 반드시 반격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복음 전파를 위해서는 반드시 귀신을 내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귀신들이 나가라고 한다고 해서 그냥 호락호락하게 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귀신이 잘 떠나가지 않는 데에는 2가지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첫째로, 분명히 우상숭배의 죄와 자범죄를 회개했는데도 불구하고 귀신이 끝까지 버티고 안 나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기들도 쫓겨나서 음부에 떨어지면 고문을 받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이런 경우에는 귀신들을 강제로 내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때에는 귀신들을 쫓겨나가게 하는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강력한 무기에는 성령의 칼, 성령의 불, 성령의 쇠방망이(철장) 그리고 진노의 포도주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무기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역시 '성령의 불'이다(히12:29, 렘23:29). 성령의 불은 귀신들도 고통을 받게 하기 때문이다(계20:10). 그러므로 귀신을 온전히 쫓아내려면 우리도 성령의 불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둘째는 우리 몸속에 대대로 내려온 높은 계급의 영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려온 귀신들에는 한두 해, 몇십 년이 아니라 몇백 년 된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의 계급은 대체로 매우 높다. 그러므로 영적인 계급이 낮은 성도들이 그것들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영적인 세계는 군대 체계와 같아서 서열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라도 자기보다 높은 계급의 귀신들을 내보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의 영적인 계급을 높여야 한다. 그럴려면 첫째로, 회개를 많이 하여 악한 영들의 힘을 축소시켜야 한다(요일1:9). 그리고 둘째로, 비록 자신이 계급이 낮더라도 영적인 싸움을 시작해 보는 것이다(엡6:12~13).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귀신에게 지고 사는 당신의 자녀들을 그냥 지켜보지만은 않으시기 때문이다.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셋째로, 방언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방언기도는 자신의 영의 기초를 단단히 잡아 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고전14:4). 그러면 나의 영적인 계급이 점점 올라간다. 그러면 나중에는 하늘의 천사들도 부릴 수가 있는 것이다. 참고로 하늘의 천사들을 부릴려면 대령 계급 정도는 되어야 하며, 적어도 별 1~2개 정도는 되어야 좀 높은 계급의 악한 영들을 제어할 수가 있다. 

 

5. 시편 136편은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어떤 정보를 알려 주는가? 

  우리는 감사의 찬양시인 시편 136편의 말씀을 통하여, 적어도 다음과 같은 2가지 영적인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첫째,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한 분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긴다면 그는 우상숭배자가 된다는 것이다(시136:1~3,26). 그런데 우상숭배자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계21:8). 다시 말해 십계명을 어긴 자는 천국에 못 들어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상숭배의 죄값을 그의 후손 3~4대까지 받게 되는 것이다(출20:5).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내 부모와 내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인 것이다(조상제사의 죄, 부처 불교의 죄, 무당 점쟁이의 죄, 미신 잡신의 죄). 둘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려 한다면, 반드시 그 땅의 큰 왕들과 작은 왕들을 쳐서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다(시136:17~22). 가나안 땅의 왕들과 원주민들은 영적으로 보면, 높은 계급의 귀신들과 작은 귀신들을 상징한다. 이것들을 내보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 몸은 바로 가나안 땅과 똑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부터 귀신은 이미 우리 몸에서 주인 노릇을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다는 이유 때문에 귀신들이 순순히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로 우리가 그들과 영적 싸움을 하여 그들을 우리 몸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일평생 귀신이 가져다주는 저주와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영적 싸움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놈들을 우리 몸에서 내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첫째로, 귀신들이 우리 몸에 붙어 있을 근거를 상실하도록 회개를 열심히 해야 한다. 나와 내 부모와 조상들이 지은 죄를 회개함으로, 그들이 떠나갈 준비를 시키는 것이다. 둘째로, 십자가 세우기나 축사를 통해서 귀신이 우리 몸에서 떠나가도록 명령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의 명령에 이놈들이 복종하지 않으면, 성령의 강력한 무기인 불을 사용하여 그들을 태워버려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고문을 견디다 못해 떠나가는 것이다. 셋째로, 그리고 잘 떠나가지 않는 귀신들 즉 오래되었고 내려온 귀신들과 높은 계급의 귀신들은 하늘의 귀신잡는 군대천사를 불러서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려면 우리는 반드시 영적 계급을 높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부릴 수 있는 천사들이란 우리가 가진 계급보다 한 단계 더 낮은 계급의 천사들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6. 나오며

  누구든지 죄를 짓게 되면 마귀에게 속하게 된다(요일3:8). 우리가 죄를 지었다면 귀신들이 우리 몸을 치고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알라.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귀신은 얼마든지 우리 몸에 들어와 자기의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마12:43~45). 그러므로 우리들의 영적인 싸움은 귀신을 쫓아내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귀신의 집을 파괴해야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귀신의 집을 파괴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귀신의 집의 재료가 흙이나 나무라면 그냥 불로도 태워버릴 수 있다. 하지만 돌로 된 집이나, 쇠로 된 집, 그리고 놋으로 된 집은 그 정도로는 어렵다. 이러한 집은 특수하게 제작된 드릴 같은 기계로 파괴해서 깨뜨려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귀신의 집이 비록 우리의 몸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영적인 세계에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귀신의 집을 허물어 뜨리려면 영적인 세계의 능력자이자 수종자인 하늘의 천사들을 부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높은 계급의 천사들이 와야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보다 높은 계급의 천사들에게 우리가 명령한다고 그들이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년의 맥추감사절이나, 신년주일을 맞이할 때에는 지금보다는 한 단계 높아진 계급장을 예물로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고 계급이 높아지는 것을 매우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와 귀신들을 쫓아보내고 그들의 집을 파괴하는 것을 당신의 일로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회개하고 기도에 열중하기를 바란다. 또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오늘보다는 내일, 더 많은 귀신들을 내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우리도 언젠가는 귀신집까지라도 피괴시킬 수 있는 천사들을 부릴 수 있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2023년 07월 02일(주일)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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