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2(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인지를 알려주는 생명책의 비밀과 그 진실(계3: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0v6W-l0I-28 [또는 https://tv.naver.com/v/43804088]

 

1. 들어가며

  갑각류와 양서류와 파충류 그리고 곤충 가운데는 탈피를 하는 동물들이 있다. 탈피란 이러한 동물이 성장하기 위해 허물이나 껍질을 벗는 것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외피가 몸이 자란 만큼 같이 자라지 않고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동물들이 탈피를 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탈피를 한다. 하지만 탈피는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뱀의 경우 한 번 허물을 벗을 때 살을 찢는 고통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의 신앙이 성장하는 데에도 역시 탈피의 고통이 뒤따른다. 그러나 자신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교리나 교단의 신학이 신앙 성장에 방해가 된다. 하지만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통과의례다. 그러한 탈피의 하나가 바로 한 번 구원은 영원한가 하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사람의 신앙이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 할 탈피과정의 하나인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인가의 문제를 하늘에 있는 생명책을 통해서 또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 이 말씀을 통하여 놀라운 신앙의 성장이 있기를 바란다. 

 

2.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인가 하나님인가?

  신앙의 성장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예수께서 누군지에 관한 신앙고백이 있다. 보통 신자의 경우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되어진다(마16:16). 그러나 이것은 예수께서 살아 계셨을 당시에 베드로의 입에서 나오는 최고의 신앙고백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이후 제자들의 신앙고백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주의하지 못한다. 그때부터 예수님은 제자들에 의해 "주 하나님"이라고 고백되어졌는데도 말이다(요20:28). 같은 예수님이시지만, 육체를 입고 계실 때의 신앙고백보다 그분이 부활하신 후의 신앙고백이 더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보통 신자의 경우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머물러 있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교리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교리에 따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고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은 삼위일체적인 관점에서 아들의 성육신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 분 하나님께서 아들의 신분으로 이 땅에 오셨다고 하는 것은 그분을 한 분 하나님의 입장에서 신앙고백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것에 대해서 망설이고 주저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교리를 어긴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딤전3:16의 말씀을 보라.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셨다고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다. 예수님은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도 옛날에 우리 선조들이 고백하던 방식만을 고집해서는 아니 된다. 교리를 따라서 믿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성경 66권에 나와 있는 성경 말씀을 따라서 믿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는 성도들은 한 분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말을 한다거나(딤전3:16),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곧 하나님의 피였다고(행20:28) 말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끝까지 삼위일체적인 관점에서만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적으로 예수님을 신앙고백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한 분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온전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다. 그리로 실제적으로 우리가 귀신과의 영적인 싸움을 할 때에, 전능한 주 하나님이신 예수의 이름에 대한 능력을 온전히 경험하고 또한 맛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3. 오늘날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일반적인 구원론과 천국론은 어떠한가?

  회개와 천국복음연구소는 그간 10년에 걸쳐 성경적인 구원론과 천국론을 증거하기 위해 애를 써 왔다. 그러면서 여러 번의 강을 건너야 했다. 때로는 힘들고 오해도 받았고 또한 어려움도 겪었다. 하지만 그것은 탈피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 고통을 이기고 나니, 너무나 명확한 구원론을 정립할 수 있었고 또한 천국론도 정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은 그것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뛰어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10여 년 동안 정립하게 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온전한 구원론과 천국론이 어떤 것일까? 그것을 질문 형식으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 번 구원을 받았으면 영원히 구원을 받은 것인가? 그건 아니다. 왜냐하면 한 번 얻은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으로서 주신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영원히 변치 않는 고정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앙을 가졌다가 탈락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며,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들이 공히 증언하는 바이기 때문이다(딤전1:19~20, 딤후3:1~8, 히6:4~8, 계3:5). 왜냐하면 이미 받은 구원도 얼마든지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님을 믿게 되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다 용서받는 것인가? 이것도 올바른 정의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과거의 죄를 하나님께서 덮어버리시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누구도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지은 죄를 다 자백함으로 용서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면 이 세상 사람치고 구원을 받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에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기를 원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사람의 과거의 죄를 덮어버리신다. 죄없다고 여겨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아 구원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짓고 있는 현재의 죄와 장차 짓게 될 미래의 죄들은 반드시 자백함으로 용서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죄 때문에 구원을 못 받을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셋째, 십자가에서 우리 인간이 받을 저주는 다 처리되었는가? 그것은 원칙론적으로 맞는 것이다(갈3:13). 하지만 그것이 내게 주관적으로 체험되어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회개가 뒤따라야 한다. 왜냐하면 처음에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자백함으로 죄용서를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백하지 않고 용서받은 것 때문에 우리 안에는 여전히 저주를 주는 귀신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죄용서는 하늘에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안에 들어 있는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백해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께서 끝내버린 저주로부터 온전하게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넷째, 내 조상들이 지은 죄들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며 회개를 안 해도 되는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알고 생활하면 우리의 실제적인 삶에서 천국을 경험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귀신들의 80~90%는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귀신들이기 때문이다. 그놈들이 우리 몸안에 들어와 있으면 우리가 병이 들고 가난해지며 앞길이 늘 막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조상죄를 회개하지 않고 지낸다면 우리는 저주로부터 온전한 해방을 경험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열심히 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상숭배의 죄는 자기 대에만 하나님께서 형벌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손 3~4대까지 벌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출20:5). 

  다섯째, 천국은 믿음만 있으면 들어갈 수 있는가? 천국은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믿음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때에 천국에 들어간다고 주께서 직접적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4:17, 막1:15, 계22:14). 고로 믿음만으로 들어간다는 종교 개혁자들이 만들어 낸 일종의 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성경에는 그러한 말씀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여섯째,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라도 지워질 수 있는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그가 천국의 시민권을 확보했다는 뜻이다. 그는 천국에 주민등록증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 중에 대부분의 성도들이 그가 죽을 때에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고 있다. 신앙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지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계3:6). 그리고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라도 그것이 지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구약의 성도들 가운데서도 알고 있는 분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모세(출32:32~33)와 다윗이다(시69:28).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어도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지워버린다고 하셨다. 그리고 의인이 되었어도 계속해서 악을 행하면 그의 이름을 지워버린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일곱째, 천국에 들어가면 모든 성도들이 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가? 천국에 들어가면 모든 성도들이 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은 일종의 바램이다. 그것은 하나의 소망인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것을 사모해야 하는 것이다(벧전1:1~2,9).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 중에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자는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실 천국에서 성도는 크게 섬김을 받는 자와 섬기는 자로 구분한다. 섬김을 받는 자는 144,000명의 성도들을 가리키고(계7:1~8), 섬기는 자는 허다한 무리들을 가리킨다(계7:9~17). 그리고 섬김을 받는 144,000명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종으로써(계7:3, 22:5) 하나님으로부터 인침을 받은 사명자들(계7:4~4)과 처녀로서 신앙의 정절을 지키며,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며 그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계14:1~5)는 천국에서 왕 노릇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은 많지 않다. 

  여덟째, 구원받은 자들 중에서 성밖으로 떨어질 자가 있는가?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라도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자가 많다. 그러므로 구원받아 천국 백성이 되었어도 성밖으로 던져질 자가 많다. 그러한 자들로는 미련한 다섯 처녀들(마25:1~13)과 악하고 게으른 종이 있다(마25:14~30).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십계명을 어겼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두루마기를 빨지 않았던 자도 역시 성밖으로 내던져진다(계22:15). 

 

4. 사람은 과연 어떻게 해서 구원을 얻게 되는가? 

  사람이 구원을 받으려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죽음과 마귀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그분이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해결하셨다는 것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성령을 보내 주신다. 그러면 성령께서 생명주는 영으로 우리 맘속에 들어오시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 태어나게 하신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기록천사들을 시켜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 나의 이름을 기록하게 하신다. 그러고는 즉시 그를 지키고 보호하는 수호천사 2명을 그에게 보내 주신다. 그러므로 그가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그에게 과연 수호천사가 붙어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늘에 올라가서 생명책을 떠들어보아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럴 만한 영적 수준을 갖춘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러므로 우리는 간접적으로 그것을 알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성령충만을 받아서 방언을 말하게 되고, 예배드리고 찬송하는 것이 기쁘고 즐거우며, 천국을 준비하는데 자기의 시간과 물질을 드리는 것이 아깝지 않은 자는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다. 

 

5.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가 알려 주는 구원의 비밀은 무엇인가?

  한 번 구원얻은 사람은 그 구원이 어찌하든지 계속 유지가 되는가 아니면 구원이 취소되기도 하는 것인가? 그것에 대해 알려 주는 놀라운 비유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께서 천국에 관한 비유로 말씀하신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이다(마18:23~35). 여기에 보면 하나님을 의미하는 '주인'이 나오고, 죄인을 의미하는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이 나온다.

  한 종은 자기의 주인에게 일만 달란트의 빚을 졌다. 한 달란트는 일당을 6만원으로 계산하면 3억 6천만원 정도가 된다. 그러니 한 달란트가 아니라, 10 달란트나 100달란트, 1000달란트도 아니라 1만 달란트를 빚졌으니 그는 주인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것이다. 그러자 주인은 그의 몸과 그의 처자와 그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빚을 갚으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빚을 갚겠으니 불쌍히 여겨달라고 엎드려 절을 했다. 그러자 주인이 그 빚을 전부 탕감해 주었다. 그것은 그 빚을 없애버렸다는 뜻이 아니라 그 빚을 덮어버려 그 빚을 당장 갚지 않아도 되게끔 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밖에서 자기에게 아주 쪼금 빚진 자인 100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 그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였다. 그러자 그 동료 종도 엎드려 간구하여 조금만 참아주면 그 빚을 갚겠다고 했다. 그러나 목을 조르던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은 그를 그만 감옥에 처넣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동료 종들이 그것을 지켜보면서 감옥에 들어간 종을 몹시 딱하게 여겨,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을 주인에게 고발해버렸다. 그러자 주인이 그 종을 소환하였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악한 종아, 네가 애원하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더니, 너도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같이 네 동료 종도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면서 그를 빚을 다 갚도록 형벌주는 종들에게 넘겨버렸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빚을 탕감받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빚을 없애주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빚을 덮어버려 없는 것으로 여겨 주었다는 뜻이다. 그때 만약 주인이 그 빚을 안 갚아도 되는 것처럼 해 버렸다면, 주인은 결코 그를 다시 소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다시 소환당하여 빚 곧 그가 지은 죄값을 다시 받게 된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주인이 그 빚을 전부 탕감해 줄 때에 그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종은 주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주인을 분노하게 했다. 그러므로 그는 소환당했다. 이날이 바로 우리가 심판받는 날이다. 우리가 주님께 소환되는 날,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죄를 탕감받은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를 직고해야 할 것이다. 그때 주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신 것에 대해 합당하게 살았다면, 주께서는 탕감을 영원히 유효하게 하셔서 계속해서 그 죄를 덮어버리실 것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죄를 용서받은 후, 그것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했을 경우에는 주인도 그에게 죄값을 물으실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죄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그 죄들이 다 사라진 것이 결코 아니다. 언제라도 다시 꺼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구원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그후로 어떻게 살았느냐가 심판날에 우리의 구원의 당락을 다시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는 날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빌2:12). 주님 보시기에 용서받은 자다운 합당한 열매를 남겨 주님께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그 누구의 책임이 아니라 나 자신의 책임이다. 하나님이 대신 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하려고 할 때에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이다. 고로 우리가 믿음으로 얻은 구원일지라도 심판날에 그 구원을 잃어버릴 사람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6. 생명책을 통해서 살펴보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그런데 우리는 하늘에 있는 생명책을 통해서도 우리가 믿음으로 얻은 구원이 과연 안전한가 아니면 영원한 구원을 얻었지만 그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생명책에 있는 우리의 이름에는 변화가 계속 있기 때문이다. 

  한 번 구원받을 때에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다고 하는 것을 앞서 말씀드렸다. 그렇다면 그 뒤 생명책에 기록된 나의 이름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까? 아니다. 생명책의 내 이름에 많은 변화가 있다.

  첫째로, 긍정적인 변화를 보자. 그것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회개하고 충성하고 섬기며 인내하면서 믿음을 지킨 자에게, 하나님은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을 더욱 더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때마다 그 이름을 더 덧칠하여 그 이름이 더 굵어지게 한다. 그리고 그 이름에서 향기가 나게 한다. 그리고 어떤 이는 이름을 금과 보석으로 장식해 준다. 그리고 자수를 놓아 아름답게 꾸며준다. 그러면 그는 천국에 들어가서도 지위와 신분이 높은 사람이 되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 반대도 있다. 둘째, 부정적인 변화를 보자. 그가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지만 그 후에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으며, 세상 향락과 돈 욕심에 취해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면 생명책에 기록된 그의 이름을 천사가 지우개로 조금씩 지우기 시작한다. 그래서 점점 더 그 이름이 옅어진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이름 중에서 한 글자를 파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지우개로 싹 지워버린다. 그리고 어떤 이는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적힌 종이가 찢어지기도 한다. 그날은 그가 죽는 날이다. 그러면 그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살 수 있는 권한이 없어진다. 그리고 죽은 즉시 성밖으로 간다. 이것은 지금 저 하늘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를 말씀드린 것이다. 

 

7. 한 번 받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한 번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것을 사데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계3:1~6). 그런데 그것의 핵심은 첫째, 지은 죄를 회개해서 자신의 더럽혀진 겉옷을 깨끗이 빨아서 흰 겉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계3:4). 그리고 둘째, 죄를 더 이상 짓지 말고 죄를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계3:5). 예수님을 믿은 후에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는 결코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며(계22:14), 그러면 그때 그는 성밖으로 내던져지거나 불못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계22:15). 그렇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은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낳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영원한 둘째 사망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하늘의 주민등록증을 받게 되었다면 그때부터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하늘의 시민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죽는 날, 천국에 들어가게 될 때에 주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원토록 누리게 될 높은 지위와 신분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설령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우리는 지은 죄를 회개하여 예수님의 피로 흰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그날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우리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고 거기에서 내쫓아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계3:5). 

 

8. 나오며

  사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내가 받은 구원을 유지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스승으로 주신 성령님의 인도를 잘 따라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귀신과 맞서 싸울 수 있도록 예수 이름의 권세도 쥐어 주신다. 그렇지만 이 세상이 좋아서 이 세상의 욕심과 욕망 그리고 육체의 쾌락을 좇아서 살아간다면 그는 성령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럴 때마다 생명책에 기록된 그의 이름도 점차로 흐려질 것이다. 또한 한 번 구원을 받았으면 그 구원을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잘못된 가르침에 속아서, 회개하고 있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그는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심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는 최소 성밖으로 쫓겨나게 될 것이고 죄가 더 클 경우에는 더 바깥 어두운 곳까지 쫓겨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많은 죄를 저질렀다면 그는 불못에도 던져질 수 있다(계21:8).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죽기 전까지 자신의 구원을 장담할 사람은 없다. 최소 우리는 이미 얻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정말 힘써야 한다. 최소한 날마다 회개하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하늘에서 영광스러운 지위와 신분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불철주야 수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우리에게 맡겨 주신 주의 일에 충성하고 다른 지체를 섬기면서, 그리고 인내하면서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완수해야 하는 것이다. 구원은 은혜로 시작된 것이지만 그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고 또한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나의 수고와 헌신과 피와 땀방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열 처녀의 비유처럼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서 여분의 기름을 준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023년 11월 12일(주일)

정보배목사

2023-11-05(주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요한계시록강해보완(17)] 마지막 때에 있을 성도들의 휴거에 대한 오해와 진실(계14:14~1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fFbryO_izc [또는 https://tv.naver.com/v/43802502]

 

1. 들어가며

  '휴거'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휴거란 예수께서 오실 때에 성도들이 공중으로 낚아채지듯 올라가는 것을 가리키는 특별한 기독교적 용어다. 휴거는 '천년왕국'이라는 단어처럼 성경에서 명사적으로 표현된 적은 없다. 하지만 마11:12, 12:29, 13:19, 요5:15, 10:12, 10:28, 행8:39, 23:10, 고후12:2,4, 살전4:17, 유1:13, 계12:5에서 총14번에 걸쳐 동사로 나온다. 그 동사는 바로 '하르파죠'이다. 이 단어를 번역하면 '훔치다, 잡아채다, 데려가다, 낚아채다, 채여 올라가다, 이끌려 올라가다' 뜻인데, 살전4:17에서는 '끌어 올려'라는 말로 번역하였다. 그래서 이것을 한자어로, '이끌 휴, 들 거'라는 단어를 써서 '휴거'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휴거는 과연 언제 일어나는가? 그것은 환난 전인가 환난 중간인가 환난 후인가? 그리고 휴거의 대상은 대체 누구인가? 모든 성도들인가 아니면 일부의 성도들인가? 그리고 만약 성도들에게 휴거가 일어난다면 우리 성도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러나 휴거에 대한 이러한 궁금증을 모두 해소하기에는 그리 쉽지 않다. 왜냐하면 휴거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과 학설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깝다 보니, 온전하지는 않아도 누군가는 정리를 해 줄 필요가 있기에 그동안 알려진 천국의 실상과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한다. 이 문제를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모든 성도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2. 휴거의 문제를 언급할 때 꼭 알고 있어야 할 용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우리가 휴거의 문제를 언급할 때 먼저 알아 두어야 할 개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재림과 휴거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 재림이란 주님께서 하늘로부터 출발하여 이 세상으로 강림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그런데 성도의 휴거란 성도가 주님의 강림시에 주님이 계시는 하늘의 영역으로 올라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주님만이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도 공중으로 올라가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다(살후2:1). 그러므로 휴거라는 단어는 우리 인간편에서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또 다른 용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부활과 휴거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성도가 부활하는 것과 성도가 휴거하는 것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사실 부활이란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죽은 자가 살아나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부활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휴거가 일어나는 것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육체가 살아 있는 사람이 갑자기 변화체를 입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휴거가 산 사람의 변화를 가리킨다면, 부활은 죽은 자의 변화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부활이라는 단어가 산 사람의 변화까지도 포함할 수 있는 폭넓은 개념이기에, 부활이 휴거보다 좀더 큰 개념으로서 휴거까지 포함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휴거는 좁은 의미로서, 살아 있는 사람이 갑자기 변화체를 입고 사라지는 것을 가리키는 특별한 용어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3. 휴거는 언제 일어나는가?

  그렇다면 성도들에게 휴거는 언제 일어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강림(파루시아=임함, 오심, 도착) 때에 일어난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살펴보겠지만 그리스도의 오심은 두 가지 방면이 있다. 하나는 구름 속으로 오시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상으로 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휴거는 아직까지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휴거는 산 자들이 홀연히 변화되어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이 갑자기 휴거될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산 자들이 휴거되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구약의 성도 가운데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않고 휴거되어 올라간 성도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에녹이고 또 한 사람은 엘리야다. 그러므로 평소 때 사람이 죽어서 부활체를 입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휴거가 아니다. 그것은 부활인 것이다(정확히는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에 살아 있는 성도들이 홀연히 변화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휴거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휴거는 주님의 재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휴거가 언제 있는가 하는 문제는 거꾸로 보면, 주님의 재림이 언제 있는가라는 질문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주님의 재림은 과연 언제 있는가?

  주님의 재림은 언제 있는가? 주님의 재림의 시기에 대해서 많은 학설들이 있다. 그 때가 '환난 전'이라는 사람도 있고 '환난 중간'이라는 사람도 있고, '환난 후'라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학설들에는 각기 성경적인 근거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느 것이 보다 더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알려면 분별력이 조금 필요하다. 이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어떻게 주님의 재림에 대해 혹은 성도들의 휴거에 대해 말씀하셨는가?

  첫째, 예수께서는 그 때가 대환난의 어느 경점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마24:22). 왜냐하면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주님이 적그리스도에 의한 대환난의 날을 단축시켜 주지 않는다면, 육체를 가진 상태에서는 구원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리고 또한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대환난의 날을 단축시켜 주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성도들이라도 어느 정도까지는 대환난의 날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둘째, 예수께서는 그 때가 대환난의 끝은 아닐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마24:40~42).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그날이 도둑 같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만약 대환난을 마치고 주님이 오시게 된다면, 그날은 적그리스도가 출현하여 약 42달 동안 활동한 후가 될 것이다(계13:5). 그러면 그날을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성립되기가 어렵다. 

  고로 우리는 이 두 가지 사실에 비추어, 우리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성도들은 환난을 전혀 받지 않은 채 7년 대환난이 있기 전에 휴거되어 올라간다고 하는 말에 미혹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모든 성도들은 대환난을 다 통과한 후에 주님이 오신다는 말에도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대환난기의 어느 경점에 갑자기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날짜와 그 시간을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만약 우리가 그 날짜와 시간을 알 수 있다면, 주께서 아무도 모르게 오신다는 말씀이 성취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5.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도들의 휴거에 대해 어떠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가?

  그렇다면, 종말의 때를 언급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도들의 휴거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한 가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강림과 성도들의 휴거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복음서의 기록들에서도 그 때가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에서도 그 때가 언제인지가 감추어진 채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대강 짐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도들의 휴거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종합해 보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총 2번의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요한계시록에서는 일곱 번째 나팔이 울려퍼지고 일곱 대접재앙들이 쏟아지기 전 어느 시점에 예수께서 구름 속으로 오셔서 익은 곡식을 추수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계14:14~16). 그 말씀을 헬라어에서 직접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계14:14~16[헬라어 직역]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스스로] 앉으셨는데, 그[의]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의]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스스로]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추수하소서) [왜냐하면]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왔기 때문)이니이다 하니 16 구름 위에 [스스로] 앉으신 이가 [그분의] 낫을 땅[위]에 휘두르매(던지니),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추수가 되었다)

  그렇다. 요한계시록에서는 구름 가운데 오신 예수께서 성도들을 추수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이때 추수되는 성도는 땅의 익은 곡식이다. 그리고 주님께서 당신의 낫으로 추수를 하시는데, 이 낫은 천사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라고 추정된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구름 속으로 오셔서 일부의 성도들을 휴거시킬 것인데, 이때는 익은 곡식만, 곧 성숙한 성도들만 공중으로 휴거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때는 과연 언제인가? 이때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혹은 보좌 앞에서 내려와 공중의 구름 속으로 오시는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때는 일곱째 나팔이 울려퍼진 후(계11:15)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일곱째 나팔이 울려퍼지기 전까지 예수께서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로서 언급되어졌으며, 또한 일곱 인들을 떼시고 있는 분이지만, 이제는 두루마리를 어떤 힘센 다른 천사에게 넘겨주시고, 구름 속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요한계시록 10장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일곱째 나팔이 울려퍼진 후 하나님에 대한 호칭은 이제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는 이"로 바뀌신다(계11:18). '장차 오실 이'가 구름 속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한편 이때 예수께서는 대다수의 믿는 이들을 추수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 진실한 성도들 전부를 빼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은 그때에 거의 다 추수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때가 되면 어떤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가? 그 상황은 예수께서 마24장과 눅17장에서 말씀해 주셨다.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지만 또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마24:40~41). 그 상황이 어느 나라에서는 낮에 일어나는 상황이겠지만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에게는 밤의 상황에 일어날 것이다(눅17:34~35). 

마24:40~41 그 때에 두 사람(남자)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눅17:34~35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둘째, 요한계시록에서는 마지막 추수를 위한 휴거가 한 번 더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계:19:11~16). 이때는 그리스도께서 백마를 타시고 아마겟돈 전쟁에서 악의 무리를 처단하시러 오시는 그런 때이다. 그런데 이때 예수께서는 백마를 타고서 자신을 따르는 거룩한 자들과 함께 오실 것이다. 뒤따르는 무리는 한편으로는 거룩한 천사들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거룩한 성도들일 것이다(살전3:13). 이때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은 이미 천국에 들어가서 왕 노릇하는 성도들도 있을 것이고, 대환난의 어느 경점에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간 익은 곡식 성도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아마겟돈 전쟁에서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끝내실 것이기 때문에, 그때에 죽은 성도들과 그때까지 살아 있고 남아 있는 성도들도 주님을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날에 있을 휴거는 이삭 추수라고 정의할 수 있다. 왜냐하면 대환난의 때에 대다수의 믿는 이들은 익은 곡식이 되어 이미 공중으로 올라간 상태이고, 나머지만 조금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는 적그리스도의 대환난의 막바지이기 때문에 신앙을 간직하기도 어렵고 신앙을 새로 갖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고로 숫자는 적겠지만,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도 또 한 번의 휴거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러한 상황을 사도 바울이 성경에 기록하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고전15:51~52의 말씀과 살전4:16~17의 말씀이다. 

고전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살전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6. 주님의 재림과 성도들의 휴거에 있어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오해와 진실은 무엇인가?

  이상의 사실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재림과 성도들의 휴거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오해를 바로잡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오해에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영역이 있다. 

  첫째, 환난 전에 모든 성도들이 다 휴거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건 아니다. 대다수 성도들의 휴거는 대환난의 어느 경점에 있을 것이고, 그때의 휴거는 익은 곡식만 휴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대주의적 전천년론자들은 7년 대환난 전에 성도(교회)가 다 휴거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때는 은혜로 모든 성도가 휴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때는 이기는 자들로서 익은 곡식만 휴거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휴거는 한 번만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도 올바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믿는 이들의 휴거는 대환난의 어느 경점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겨진 자들의 휴거와 부활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인 인류 맨 마지막 때 곧 아마겟돈 전쟁 직전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 전천년주의자들은 휴거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 한 번만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셋째, 모든 성도들이 대환난을 통과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대환난의 어느 경점에 성도들 중 익은 곡식이 먼저 휴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의 추수는 대다수 성도들의 추수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다 대환난을 통과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일부의 뜨뜻미지근한 성도들만이 남겨져서 대환난의 시기를 통과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절망하지는 말라. 이들을 위한 사명자들이 지금 지구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성도들은 날마다 휴거가 일어나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려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대환난이 오기 전에 죽은 성도들은 천국에 들어가서 왕 노릇할 자는 왕 노릇을 하며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굳이 대환난 치하에 남겨져서, 그 어려운 대환난의 날을 통과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지금 이기는 성도가 되면 되기 때문이다. 지금 익은 곡식이 되면 되기 때문이다. 고로 지금이 중요하다. 지금 죽어도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면, 대환난의 날이 속히 오라고 일부러 기도할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환난의 날은 고통이 아주 극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체를 가진 상태에서 구원받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7. 성도들이 휴거를 받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지금 우리 성도들에게 만약 대환난의 때에 휴거를 받아야 할 상황이 발생한다면, 익은 곡식이 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가? 그것은 다음 네 가지 것에 주의하기를 바란다.

  첫째, 그날까지 죄를 짓고 있다가 주님의 재림을 갑자기 맞이하는 성도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눅21:34~36). 그날까지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에 휩싸여서 그날을 준비하지 못한 채 그날을 맞이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러면 대다수 믿는 이들의 휴거 때에 그 사람은 남겨지고 말 것이다. 그러면 대환난의 날에는 순교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날마다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 귀신이 우리와 함께 있는 한 우리는 죄를 짓지 아니하고 살 수는 없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날마다 자기의 두루마기를 빨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계22:14). 이는 회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생명책에 기록된 자기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날이 될 때 들림 받는 성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있는 성도는 귀신이 많이 들어 있기에 그날 휴거를 받지 못할 것이다. 

  셋째, 내게 주어진 일과 사명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이 땅에 어느 일과 사명이 주어진 채 보내어졌다. 그러므로 진정 회개를 충분히 했다면, 그는 은사를 되찾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충성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내가 지금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의 경우라면, 그때는 때를 따라 돕는 양식을 성도들에게 공급해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마24:45~47). 그래야만 주님이 오셔서 그에게 상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어떤 댓가를 치러서라도 주님을 맞이할 기름을 잘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련한 다섯 처녀가 되지 말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에 의하면, 신랑을 맞을 준비 하다가 혼인잔치의 때를 맞이하는 처녀들의 비유가 나온다(마25:1~13). 이들은 모두 처녀들이었다. 하지만 이들 중에 한 무리인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충분한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리고 신랑의 도착이 지연되자 다 졸며 자게 되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신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열 처녀가 깨어났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의 등잔에는 기름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자 슬기로운 처녀에게 기름을 좀 나눠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둘이 쓰기에는 부족할까 하니 가서 기름을 사 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기름을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도착하였고 슬기로운 처녀가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렇다. 혼인잔치에 참여하려면 충분한 기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기름은 댓가를 지불하고 사는 것이다. 그냥 주어지는 은혜가 결코 아니다. 이처럼 그날을 준비하는 데에는 땀과 피와 정성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그때에 충분한 기름이 준비되지 못한 자는 들림받지 못하고 이 땅에 남겨지게 될 것이다. 

 

8. 나오며

  그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회개하고 충성하여 이기는 자들이 되어 있어야 한다. 이기는 자들만이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할 것이며(계2:26~27), 아마겟돈 전쟁에서 그리스도의 군대가 되어 전쟁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이다(계19:11~16). 이기는 자들이 된다는 것은 주님께서 언제 추수를 한다고 할지라도 추수의 대상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만약 그날이 주님께서 공중으로 오시는 그때가 아니라면, 우리는 지금 죽으면 죽은 즉시 천국에 들어갈 것이고, 그곳에서 왕 노릇을 할 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기는 자들이 되지 못한다면, 그날에 환난 치하에 남겨지고 말 것이다. 그러면 그때는 목숨으로서 자신의 신앙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혹독한 날이 될 것이다(마24:22). 그러므로 그때에 남겨져서 비로소 익을 것이 아니라 지금 익은 곡식이 되어야 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회개하는 성도, 맡겨 주신 일에 충성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가족부터 생명의 천국복음을 전해 주어서 저 하늘에 있는 생명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게 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는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게 된다면 그때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알라. 회개하려면 지금 하라. 충성하려면 지금 하라. 기름을 준비하려면 지금 준비하라. 전도하려면 지금 해야 한다. 

 

 

2023년 11월 05일(주일)

정보배목사

2023-10-29(주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이 기쁜 추수감사주일에 우리가 감사해야 할 7가지 것들(골1:9~12)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55p50m2n_2E [또는 https://tv.naver.com/v/43708328]

 

1. 들어가며

  오늘은 교회가 추수감사주일로 지키는 기쁜 날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을 추수를 마치고 장막절을 지켰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추수를 마치면 추수감사주일을 지킨다. 하지만 지금은 농사를 하는 곳이 많지 않다. 그러므로 도시에 사는 분들은 농사를 짓지 아니하므로 한 해 동안 영적인 농사를 어떻게 잘했는지를 돌아보면서 감사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과연 영적으로 어떤 진보를 이루게 되었을까?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도 중요한 한 해였다. 왜냐하면 올해 드디어 회개와천국복음 연구소 설립예배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우리 교회는 부지런히 달려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회개의 축복을 2가지나 더 주셨다. 그래서 올해 감사예배는 더욱더 기쁘고 행복한 추수감사주일을 지키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영적인 진보를 이루어야 할까? 그래서 어떤 복을 받아야 하나님께 진정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받을 영적인 복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나는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확인해 보고자 한다. 그래서 내년에 드릴 추수감사예배 때에는 어떤 것을 드려야 하는지를 점검해 보고자 한다. 

 

2. 성도들이 이 땅에 살면서 받아야 할 복은 무엇인가? 

  성도들이 이 땅에 살아가면서 받아야 할 복에는 어떤 복이 있는가? 그것은 2가지다. 그것은 곧 하늘의 복이요 땅의 복이다. 우리가 하늘의 복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 땅에 보내어진 목적이 하늘의 복을 받게 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땅의 복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여 내 가족과 친족과 이웃을 전도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성도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러한 복을 받는가? 그것은 크게 2가지 형태가 있다. 구약의 성도들(이스라엘 백성들)은 먼저 이 땅의 복을 받았고 이어서 하늘의 복을 받았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들(교회)은 하늘의 복을 받은 후에 이 땅의 복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신약의 성도들 대부분은 자신이 하늘의 복을 받았다고 말은 하지만 십중팔구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또한 이 땅의 복을 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이유는 하늘의 복이 진정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며, 이 땅에서 복을 받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회개를 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얻을 수가 없는데, 그것을 잘 모른다. 그래서 회개를 하지 않음으로 이 땅의 복을 받지 못한 채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더 문제가 되는 것은 하늘의 복을 받은 자라도 이 땅의 복을 받지 못하면, 가족 전도가 아주 어렵다는 것이다. 내 자녀들이 비록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 신앙생활을 해 보지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자신의 눈으로 본 적이 없기에, 자신의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이 진정 살아 계시며 전능하신 분인지를 잘 모르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성도들의 많은 자녀들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진정 먼저 믿음으로 하늘의 복을 받았으면, 이제는 회개를 통하여 이 땅의 복을 받기를 애써야 한다. 그래서 가장 먼저 가족을 전도해야 한다. 

 

3.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왜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을까?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들이 어떤 복을 받았는지를 언급한다. 그들이 받았던 복은 크게 다섯 가지다.

  그것은  첫째로,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9절). 둘째,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자라게 되었다는 것이다(10절). 셋째, 그분의 영광의 능력으로 능력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11절). 넷째, 견디고 오래 참는 것도 기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11절). 마지막으로,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자기들에게 할당된 땅이자 기업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12절).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의 다른 서신서들을 통하여, 성도들이 받아야 할 복을 총 7가지로 언급한다. 그러니 우리도 이 세상에 살면서 사도 바울이 언급했던 이 7가지 복을 다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4. 성도들은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가?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먼저 자신이 받은 복을 두고서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지를 2가지로 언급한다. 

  첫째, 우리는 하늘 아버지께 감사해야 한다(골1:12). 우리 성도들에게는 두 분의 아버지가 계신다. 먼저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이 땅의 아버지가 있다. 우리는 나를 존재하는데 애쓰신 부모님을 공경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아버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는 없다. 그러나 또 하나의 아버지가 있다. 그분은 하늘에 계신다. 그분은 우리의 영의 아버지다.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늘의 아버지는 우리 육신의 아버지와는 달리 못 하실 것이 없으시며, 못 아시는 것도 없으시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여 모시게 된 하늘 아버지를 영원히 공경하고 그분께 감사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주 예수님에게 감사해야 한다(딤전1:12). 사실 우리에게 속죄의 은총을 주시고, 질병에서 우리를 고쳐 주시고, 귀신도 쫓아 주시는 분은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 문제를 해결받게 되었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아도 되고, 마귀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베푸신 은총을 실제적으로 나에게 유효케 하셨던 주 예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분이 실제로 사람이 되시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받을 은혜가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5. 성도들은 무엇에 감사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어떤 복을 받았음에 감사해야 하는가?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들이 받게 될 복을 2가지로 소개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두 가지 것을 받았다면 우리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 성도들이 받을 2가지 복은 육체의 복이자, 영혼의 복이다. 특히 육체의 복은 한 가지이지만 우리의 영혼이 받을 복은 6가지인 만큼 우리는 이러한 7가지 복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감사해야 할 7가지 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첫째, 육체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막6:41, 빌4:19).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사실 귀신만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는 날마다 풍성한 삶을 살 수가 있다. 

  둘째, 영적인 필요를 채워 주시는 것에 더욱 감사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아야 할 영적인 복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인데, 앞의 2가지는 믿음만 있으면 받게 되는 복이다. 하지만 나머지 4가지 복은 믿음도 있어야 하고 우리의 회개도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머지 4개의 복은 회개와 그리고 충성됨이 없이는 받지 못하는 복들이기 때문이다. 

  첫째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에 감사해야 한다(살후2:13). 우리 사람들은 주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았으며,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의 역사를 통해 거듭났으며,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순전히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게 되었음에 감사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가 믿음으로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고전1:4). 또한 우리는 우리가 믿음으로 받는 예수님을 통해 주어지는 값없는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을 때에 칭의를 받고, 아무런 조건없이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늘나라의 상속자로서 자격도 취득하게 된다.  

  셋째로, 우리가 회개함으로 죽음을 귀신을 이기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전15:55~57, 고후2:14). 그리고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이러한 회개는 누가 대신 해 줄 수 없다. 우리가 담당해야 할 몫이다. 그렇다면 회개를 했을 때에 우리는 어떤 복을 받을 수 있는가? 그것은 둘째 사망의 해를 이길 수 있다. 이는 육신이 비록 죽는다고 해도 영원한 멸망의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힘으로 절대 이길 수 없는 귀신을 주 예수께서 위임해 주신 이름으로 이기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사실 귀신의 힘과 지혜 그리고 능력은 탁월하다(시103:20~22, 벧후2:11).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지혜와 힘과 능력으로는 귀신을 이길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이시다. 그리고 그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지혜와 힘과 능력을 위임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귀신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바로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위임해 주신 권세와 능력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받아서 죽음과 귀신을 이기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가 회개함으로 성령의 은사를 받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후9:15). 우리가 감사해야 할 여섯 번째 항목은 우리가 회개를 통해서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방언의 은사를 필두로, 영 분별의 은사, 영 판단의 은사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능력의 은사, 방언 통역의 은사, 예언의 은사도 받게 된다. 이것은 진정 회개를 제대로 행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보너스 축복이다. 

  다섯째, 우리가 충성함으로 하늘의 직분을 받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한다(딤전1:12).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부족하디 부족한 우리들을 충성되이 여기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영역 곧 직분까지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한다. 

  여섯째, 우리가 회개함과 충성함으로 천국을 기업으로 받게 해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한다(골1:12). 마지막으로 우리가 회개하고 또한 맡겨진 일에 충성할 때에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우리가 차지할 영구한 상속분인 기업이 주어지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6. 성도들은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가?

  성도들은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 신약성경은 성도들이 우리 하나님께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3가지로 말씀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을 찬양으로 높여 드려 감사하는 것이다(골3:16). 하나님께 가장 영광이 되게 하는 것은 역시 그분과 그분이 하신 일을 찬양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림으로 감사하는 것이다(딤전2:1). 또한 우리는 마음을 모아 감사하는 기도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수가 있다. 

  셋째, 그분에게 고마운 마음을 예물을 드림으로 감사하는 것이다(고후9:11, 빌4:18).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정성을 마음에 담아 하나님께 바칠 때에 그것을 매우 기뻐하신다. 그것은 주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사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찬조를 하고, 장식을 하고, 여러 종류의 과일을 감사함으로 헌물하는 자에게 하늘의 상이 있는 것이다. 

 

7. 올해도 우리 성도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인가?

  우리 동탄명성교회와 회개와천국복음 연구소는 많은 은혜를 받았다. 영적으로 어마어마한 진보를 이뤘기 때문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우리는 회개의 축복이 2개뿐인 줄 알았다. 그것은 회개를 통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며, 저주에서 해방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와 회개의 축복이 2가지가 더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는 회개를 하면 은사를 받아 사명을 감당하게 되어 하늘에서 누릴 지위와 신분이 올라가고 상급이 쌓인다는 것이다. 회개를 했더니 없었던 은사가 나타나고 기저에 있었던 은사들이 위로 솟구쳐 올라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회개하는 자는 마지막 환난의 때에 귀신들의 공격을 받지 않고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대환난의 후반부에 가서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홀연히 휴거를 받아 온전한 보호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동탄명성교회와 회개와천국복음 연구소는 올해 큰일을 치렀다. 그것은 지난 10월 3일에 회개와천국복음 연구소 설립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회개와천국복음 선교회가 정식으로 출범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영상선교, 문서선교, 교육선교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꾼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건물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이 일을 행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갖추야 하는데 거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께서 열어 주셨다. 그러므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의 시기에 한마음이 되어 이 일을 수행한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이 마지막 시대를 알차고 행복하게 보낼 수가 있는 것이다. 

 

8. 나오며

 

우리 동탄명성교회와 회개와천국복음 연구소는 많은 은혜를 받았다. 영적으로 어마어마한 진보를 이뤘기 때문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우리는 회개의 축복이 2개뿐인 줄 알았다. 그것은 회개를 통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며, 저주에서 해방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와 회개의 축복이 2가지가 더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는 회개를 하면 은사를 받아 사명을 감당하게 되어 하늘에서 누릴 지위와 신분이 올라가고 상급이 쌓인다는 것이다. 회개를 했더니 없었던 은사가 나타나고 기저에 있었던 은사들이 위로 솟구쳐 올라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회개하는 자는 마지막 환난의 때에 귀신들의 공격을 받지 않고 보호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대환난의 후반부에 가서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홀연히 휴거를 받아 온전한 보호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동탄명성교회와 회개와천국복음 연구소는 올해 큰일을 치렀다. 그것은 지난 10월 3일에 회개와천국복음 연구소 설립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회개와천국복음 선교회가 정식으로 출범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영상선교, 문서선교, 교육선교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꾼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건물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이 일을 행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거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께서 열어 주셨다. 그러므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의 시기에 한마음이 되어 이 일을 수행한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이 마지막 시대를 알차고 행복하게 보낼 수가 있는 것이다. 

 

2023년 10월 29일(주일)

정보배목사

2023-10-22(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회개하는 자가 마지막 환난의 때에 받게 될 축복(계11:14~18)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hDguwA_0Yuw [또는 https://tv.naver.com/v/42328097]

 

1. 들어가며

  회개하는 성도는 사실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 결국 성밖에 내던져지거나 불못에 떨어지는 성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고로 믿는 자라 할지라도 구원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가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 회개가 없다면 이미 받은 구원이라 잃어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자기 안에 성령을 모시고 있다고 할지라도 누구든지 언제나 죄에 노출되어 있어 다시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를 지었을 경우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회개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회개를 통해서 비로소 구원을 완성해 갈 수 있는 것이다. 구원의 최종적인 관문이 곧 회개인 것이다. 그런데 회개는 이렇듯 구원의 완성을 위해 꼭 필요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여러 가지 축복들을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 그런데 우리가 만약 지금 마지막 시대를 살아간다고 했을 때에 그때도 회개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회개하는 자가 마지막 때에 받을 수 있는 축복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회개의 또 다른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2. 회개하는 자가 받게 될 축복에는 어떠어떠한 것이 있는가?

  회개하는 자가 받게 될 축복은 크게 3가지다. 첫째는 천국 곧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마4:17, 계22:14, 막1:15). 일명 '천국 입성'의 복이다. 왜냐하면 천국은 믿음 뿐만이 아니라 회개를 통해서 입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마4:17, 막1:15). 종교 개혁자들은 우리에게 구원의 조건으로서 믿음에 대해 일깨워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회개를 전수해 주지 않았다. 특히 종교개혁이 예정론으로 흘러감에 따라 회개는 더욱더 멀어져 갔다. 그래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가 가까운 이 때에 우리는 주 예수님의 말씀에 주목해 보지 아니 할 수 없다.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첫 번째로 외친 말씀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이것이었다. "회개하라. 왜냐하면 천국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마4:18)" 그리고 부활 승천하신 후 사도 요한에게 요한계시록을 쓰게 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은 "자기의 두루마기를 빨아야 복이 있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그래야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 안으로 들어갈 권세를 받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계22:14). 고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반드시 회개하여 12진주문을 통하여 성 안으로 들어가서 성 안에서 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둘째는 귀신이 주는 온갖 저주로부터 해방을 받는다 것이다(요10:10, 고후8:9, 출15:26). 일명 '저주 해방'의 복이다. 회개는 기본적으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회개를 하다 보면 회개의 또 다른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회개하면 귀신을 내 몸에서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귀신은 사실 우리에게 저주를 가져다 주는 존재다. 그는 우리의 건강과 물질을 도둑질해 간다. 그리고 믿음과 소망도 도둑질해 간다. 그러다가 결국 우리를 죽인다. 고로 우리가 진정 하나님이 주신 축복들을 이 땅에서 누리고 살아가려면 우리는 회개를 해야 한다. 그런데 회개를 하는 죄들도 내가 지은 죄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지은 죄도 회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고통받고 있는 저주의 80~90%는 조상들이 지은 죄로 인해 내게 내려와 있는 귀신들 때문에 발생하기 때문이다(출20:5). 고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후에 온전한 축복을 이 땅에서 누리기를 원한다면 꼭 자신이 지은 죄와 조상들이 지은 죄를 자백해야 한다(요일1:9). 그러면 귀신이 떠나간다. 그래서 귀신이 떠나가면 우리는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막힘의 길에서 형통의 길로 나오게 되며,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셋째는 귀신이 떠나가면서 동시에 은사가 발견되고 활성화되기 때문에,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낸 사명을 수행하게 되어 하늘에서 받을 지위와 신분을 이 땅에서 준비하는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딤후2:20~21). 일명 '사명 감당'의 복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의 영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셔서 어머니의 자궁 속에 넣어 준 것이다. 고로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일종의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보내어진 것이다. 그것을 이 땅에서 이룬 자는 천국에서 그를 위해 준비된 놀라운 복을 받게 된다. 그것은 천국에서 놀라운 지위와 신분을 갖게 되는 것이며, 좋은 천국집을 소유하고 각종 면류관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귀신이 몸에 가득 들어 있으면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기 힘들다. 특히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하라고 주신 일을 수행하도록 주신 은사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귀신에 의해 덮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우리는 회개하여 귀신을 쫓아낸 후 자신의 사명을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명 수행을 위해 선물로 주신 은사들을 발견하고 또한 그것을 활성화시켜야만 한다. 그것은 오직 자신의 죄를 열심히 회개함으로서만 가능하다. 그래야 우리가 이 땅에서 귀한 그릇으로 쓰임받게 되기 때문이다(딤후2:20~21). 

  그런데 놀라지 말라. 회개의 축복에는 이러한 3가지 축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말세를 살아가는 자에게 또 다른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오늘 함께 나눠보고자 한다. 

 

3. 마지막 때는 어느 때를 가리키는가?

  마지막 때란 어느 때를 가리키는가? 사실 주님께서 승천하신 이후부터 마지막 때는 이미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다시 오실 주께서는 도둑 같이 갑자기 오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특히 사도 요한은 마지막 때는 적그리스도가 출현하는 바로 그때라고 말했다(요일2:18). 그렇다면 적그리스도라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사도 요한은 적그리스도에 대해 정의하기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이며(요일2:22), 예수께서 육체로 오셨다는 것을 부인하는 자(요이1:7)라고 했다. 그러므로 예수님 승천 이후 계속해서 적그리스도는 있어 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을 읽어 보면, 정말 마지막 때에 나타날 '바로 그 적그리스도'가 있다. 그는 예수 재림 직전에 이 땅에서 활동할 적그리스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고로 마지막 때라는 것은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 바로 그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활동하는 때를 가리키는 것다(계13:1~10). 고로 지금 이 때가 바로 그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4. 주님은 과연 언제 오시는가?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과연 언제 오시는가? 주님께서 오시는 때를 아는 자는 없다. 아무도 모른다고 했기 때문이다(마24:36). 천사도 모르고 심지어 아들 자신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왜냐하면 때와 시기는 아버지의 권한에 있기 때문이다(행1:7). 하지만 주께서는 여러 가지 현상과 징조를 통해서 그날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또한 종말의 때를 기록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주님께서 언제 오시는지에 대해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때와 시간은 모른다고 할지라도 분명한 것으로서, 주님께서는 일곱 번째 나팔 소리와 함께 오신다는 것이다(계11:15). 그리하면 이 세상 나라는 이제 우리 주님과 그분의 그리스도 나라가 되고 그분이 다스리시기 시작하실 것이다.

  그런데 공관복음서에 보 예수께서 오시는 때가 되면, 큰 나팔 소리가 날 것이라 했다(마24:31). 그리고 사도 바울에 의하면, 그때는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나는 때라고 했다(고전15:51). 고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과연 언제 그러한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나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때는 언제인가? 바로 그때는 일곱 번째 나팔 소리가 나는 때다(계11:15). 고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말씀 중에서 일곱 번째 나팔 소리 더욱 주목해 보아야 한다. 그 나팔 소리와 함께 주님께서 오시기 때문이다. 

 

5. 일곱 번째 나팔 소리는 축복의 나팔 소리인가 재앙의 나팔 소리인가?

  그렇다면 나팔 가진 천사가 일곱 번째 나팔 소리를 내면 그것은 축복의 나팔 소리인가 아니면 재앙받는 저주의 나팔 소리인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요한계시록의 구조에 대해 조금 알 필요가 있다.

  요한계시록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그것을 요한계시록 1장 19절의 말씀에 따라 구분한다면, '사도 요한이 본 것'은 1장에 나온다. 그것이 바로 '인자 같은 이'에 대한 말씀이다. 그리고 '지금 있는 일'은 2~3장에 나오는데, 그것은 일곱 교에 주신 말씀들이다. 그리고 '장차 될 일'은 4~22장까지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천상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는 4~5장과 새 하늘과 새 땅을 소개해 주고 있는 21~22장을 제외한다면, 일곱 인(6장~7장)과 일곱 나팔재앙(8장~15장)과 일곱 대접재앙(16~2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주님이 오시는 일곱 번째 나팔 소리는 일곱 나팔재앙 중에 일곱 번째 나팔재앙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곱 번째 나팔 소리가 울려퍼지면 이 세상 사람들은 딱 두 부류로 나눠진다는 것이다. 하나는 알곡 성도들로서, 이들은 휴거되어 구름 속으로 끌어져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계14:14~16, 15:2~4). 하지만 나머지는 온 세상 사람들로서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불신자들과 적그리스도를 따라서 세상과 짝하며 살아 가고 있는 음녀 성도들이다. 이들은 세상에 남겨져서 일곱 가지의 대접재앙을 받게 될 것이다(계16:1~21). 고로 천사가 부는 일곱 번째 나팔 소리는 공중에 휴거되어 올라가는 자에는 축복의 나팔 소리가 되겠지만, 이 땅에 남겨진 불신자들과 음녀 성도들에게는 저주의 재앙 나팔 소리가 될 것이다. 

 

6. 하나님께서 사람을 치는 재앙이란 대체 무엇이며, 그 일은 언제 일어나는가?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본론부에서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온 인류의 역사는 사실 일곱 인으로 봉해진 두루마리에 기록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께서 떼시기 시작하신다. 그러면 하나의 인을 뗄 때마다 온 인류의 역사가 펼쳐지기를 시작한다. 그중에 마지막 인인 일곱 번째 인을 뗄 때부터는 이 세상에 본격적인 재앙이 임하기 시작한다. 그것을 가리켜 '일곱 나팔재앙'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일곱 번째 인 속에 일곱 가지의 나팔재앙이 들어 있는 것이다.

  다시 일곱 나팔재앙은 7가지의 재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구조를 보면 일곱 인의 구조처럼 4 대 3이라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중 앞의 4가지 나팔 때에는 자연에 재앙이 임하고, 뒤의 3가지 나팔 때에는 사람에게 재앙이 임한다. 고로 일곱 나팔재앙은 자연 재앙(1~4나팔)과 사람 재앙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을 치는 재앙은 다섯 번째 나팔과 여섯 번째 나팔과 일곱 번째 나팔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누가 과연 일곱 가지 재앙을 받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자연을 치는 재앙(1~4 나팔재앙)은 모든 사람이 다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치는 재앙(5~7 나팔재앙)은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만 치는 재앙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적그리스도에 의해 믿는 자들이 핍박을 받고 환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순교자가 되어 하늘에 있는 제단에서 호소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와 그에게 속한 사람들에게 재앙 내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다섯째 나팔, 여섯째 나팔, 일곱째 나팔재앙인 것이다. 

 

7. 성도들의 휴거는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가?

  그러면 성도들의 휴거는 언제 일어나는가?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성도들의 휴거는 일곱 번째 나팔이 불질 때에 일어난다는 것이다(계11:15).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라도 다섯 번째 나팔재앙과 여섯 번째 나팔재앙 때에는 여전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곱 번째 나팔 소리가 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놀라운 일이 생기는데, 그것은 성도들 중에서 알곡 성도들만이 공중으로 휴거되어 올라가는 것이다. 공중으로 휴거되어 구름 속에 계시는 주님께로 가는 것이다.

  그러면 지상에는 어떤 일이 있는가? 고로 일곱 번째 나팔 소리가 나면 알곡 성도들은 공중으로 휴거되어 올라가겠지만, 나머지 성도들은 이 땅에 불신자들과 함께 남겨지는 것이다. 그때 이 땅에 남겨지는 성도들은 이제 쭉정이 성도들일 것이며 또한 음녀 성도들이다. 음녀 성도란 적그리스도와 결탁하여 세상의 돈과 쾌락을 추구하던 성도들을 가리킨다. 이미 신랑은 예수님인데, 바람난 성도들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성도들은 다 이 땅에 남겨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일곱 번째 나팔 이후에 이 땅에 남겨진 그리스도인들은 적그리스도와 그에게 속한 사람을 치는 일곱 번째 나팔재앙 곧 일곱 대접재앙들을 고스란히 다 받게 될 것이다. 

 

8. 사람을 치는 다섯째 나팔재앙과 여섯째 나팔재앙과 일곱째 나팔재앙은 어떠한 것인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핍박하여 죽이는 것으로 인하여 짐승(적그리스도) 그에게 속한 자들(불신자들과 음녀들)을 치는 재앙이 바로 사람을 치는 재앙인 다섯째 나팔재앙과 여섯째 나팔재앙과 일곱째 나팔재앙이다. 그렇다면 이 재앙들은 과연 누가 받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적그리스도와 그에게 속한 자들이 받는 것이다. 그러면 이 재앙은 어떤 재앙들인가?

  첫째로, 다섯째 재앙은 황충 재앙이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었던 무저갱의 왕 사탄에게 무저갱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주어지자, 사탄 마귀가 무저갱을 열어젖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따라서 황충들이 올라온다. 그런데 황충들을 보니, 사람 같은 얼굴에 날개를 달고 있으며, 전갈 같은 꼬리로 사람들을 쏘고 있었다. 뱀과 전갈은 귀신들을 지칭하는 용어다(눅10:18). 고로 다섯째 나팔재앙은 귀신들이 사람을 치는 재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때는 사람을 치는 예고편에 속한다. 왜냐하면 이때 귀신들로부터 공격을 받아도 다섯 달 동안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것은 여섯째 나팔재앙 때다. 

  둘째로, 여섯째 재앙은 말 탄 자의 재앙이다. 한 천사가 여섯 번째 나팔을 불자,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된 채 있는 네 천사(큰 천사로 계급이 높은 천사)가 놓임을 받는다. 그러자 마병대(기병대) 이만 만(셀 수 없는 많은 수의 두 배)의 말 탄 자들이 그 네 천사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말 탄 자의 입에서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와서 사람을 죽였다. 참고로 '불과 연기와 유황'은 지옥에서 올라오는 것들이다(계14:10~11). 그리고 이들의 모습은 뱀들의 형상이었는데, 머리에 꼬리가 붙어 있었다. 뱀이 앞의 뱀의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사람을 죽였는데, 땅에 거주하는 사람들 1/3을 죽였다. 그러므로 말 탄 자들도 다 귀신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섯째 재앙도 역시 다섯째 나팔재앙처럼 귀신들이 사람을 죽이는 재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섯째 나팔재앙이 귀신들이 직접 사람을 치는 재앙이었다면, 여섯째 나팔재앙은 귀신들 2만 만이 적그리스도의 사람들 속에 들어가 적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자들을 죽이는 재앙인 것이다. 

  셋째, 마지막 일곱째 나팔재앙은 일곱 대접들의 재앙이다. 왜냐하면 일곱째 나팔재앙은 일곱 대접을 쏟아붓는 재앙이기 때문이다. 그 누가 누구에게 이 재앙을 쏟아붓는가? 그것은 대접을 들고 있는 천사들이 한다. 그리고 그 재앙들을 보면, 첫째로 질병을 들붓는 것이다. 그러자 짐승의 표를 받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아픈 데가 생겨났고 종기가 생겨났다. 그것이 첫째 대접재앙이요(계16:2) 다섯째 재앙이다(계16:10~11). 단지 붓는 장소가 다르다. 첫째 대접은 땅에 쏟아붓는 것이라면, 다섯째 대접은 짐승의 보좌에 쏟아붓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그것은 음식에 대한 재앙이었다. 그것은 셋째, 넷째, 다섯째 대접을 붓자 나타는 것이다. 셋째 대접은 바다에 부었는데 그러자 바닷물이 피가 되었고, 그리고 넷째 대접은 강에 부었는데 그러자 역시 강물이 피가 되었다. 그러자 바다 생물이 죽어서 먹을거리가 사라지 시작했다. 강물이 피가 되어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다섯째 대접을 해에 붓자 해가 뜨거워져서 사람을 태웠다. 그러니 식물 남아나지를 않게 되었다. 셋째로 그것은 음녀에 대한 재앙이었다(계16:17~21). 여섯째 대접은 아마겟돈 준비에 불과한 것이고(계16:12~14), 일곱째 대접을 공중에 붓자, 큰 성 바벨론이 다른 성들과 함께 큰 지진이 나서 무너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무게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쏟아졌다. 그러자 사람들이 죽었다. 그런데 그때 무너진 큰 성 바벨론은 음녀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다(계17~18장). 고로 일곱째 대접재앙은 음녀를 죽이는 재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음녀는 과연 누가 죽여 없애버리는가? 그것은 짐승(적그리스도)이다. 지금까지 짐승과 음녀 한통속이었는데, 짐승이 갑자기 돌변하여 음녀를 미워하고 그녀를 죽이는 것이다(계17:16). 잘 써먹다가 버리는 것 같다.  

 

9. 왜 하나님께서는 3가지 나팔재앙을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내리는 것인가?

  그 하나님께서는 왜 다섯, 여섯, 일곱째 나팔재앙을 통하여 이 땅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자들(불신자들과 음녀들)을 심판하시는가?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그것은 짐승(적그리스도) 믿는 성도들로서 하나님 믿는 자들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옥에 가두고 핍박하고 목을 잘라서 죽였기 때문이다(계13:10, 16:6, 18:24, 20:4). 특히 주님의 선지자들인 사명자들과 거룩한 성도들을 잔인하게 죽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죄값을 받게 하는 것이다. 적그리스도도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성도들을 죽여왔으며, 대표적인 음녀인 로마 카톨릭도 중세 1,0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죽여왔는가? 중세 교황들이 1,000년 동안 6,000만 명이나 되는 성도들을 죽였다는 통계가 있다. 

  둘째, 그것은 아무리 재앙을 내려도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더 하나님을 대적하고 비방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고 더욱더 귀신들을 섬기고 우상들을 만들어 숭배하였기 때문이다(계9:20~21, 16:10~11). 그렇다. 다섯째 나팔이 울려퍼지면 무저갱에 갇혀 있는 귀신들까지 올라온다. 이들은 더욱더 잔인한 천사들인데, 이 타락한 천사들이 올라와서 사람들을 장악하니 이들은 회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럴수록 더욱더 귀신을 섬기고 만든 우상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비방하고 대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려면 지금 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면 지금 믿어야 하는 것이다.  

 

10. 마지막 환난의 때에 재앙을 받지 않고 축복을 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누가 과연 사람을 치는 3가지 재앙에서 살아남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날마다 회개하면서 신실하게 주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 곧 알곡 성도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황충 재앙과 말 탄 자의 재앙은 귀신들이 사람을 해치는 재앙인데, 그것은 첫째로, 다섯째 나팔재앙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아니하는 자만을 해치는 재앙이요, 여섯째 나팔재앙은 성도들을 핍박하여 죽인 자를 심판하는 재앙이기 때문이다. 고로 다섯째 나팔재앙과 여섯째 나팔재앙 때에도 회개해 온 신실한 성도들은 재앙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된다. 즉 그러한 성도들은 귀신들로부터 공격을 받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회개했으니 자기 안에 귀신이 없어 다른 귀신들을 불러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요, 성령이 충만하니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환상과 꿈으로 알려 주시어 피하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 일곱 대접들 심판 때에는 아예 알곡 성도들은 공중의 구름 속으로 휴거시켜 데려가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알곡 성도들은 더 이상 환란 치하(자연 재앙과 적그리스도에 의한 핍박과 죽임 재앙)에 남겨두지 않고 공중으로 불러 리시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하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 때 살아가는 성도들 중에 회개하는 자 그리고 신실하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가 받게 될 축복이다. 

 

11. 나오며

  우리는 마태복음 24장의 말씀을 통하여, 주의 오심과 세상 끝날의 징조에 대해서 들어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보니, 마지막 적그리스도(이슬람 세력의 지도자)가 출현하여 활동할 때에는 얼마나 잔인하게 사람들을 해치는지 그 고통을 견디기가 매우 어렵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때의 대환난은 창세 이후로 한 번도 유례가 없는 전무후무한 환난이라고 하셨다(마24:21).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환난의 날들을 감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마24:22). 그것이 환난을 받고 있는 알곡 성도들은 어느 순간에 휴거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말세를 사는 성도들이 받아야 할 복으로는 적그리스도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도 환난의 전반부에서는 '보호'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 대환난의 후반부에서는 공중으로 휴거되어 올라가는 것이다. 곧 환난의 전반부인 다섯째 나팔과 여섯째 나팔재앙 때에는 그 재앙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이며, 환난의 후반부인 일곱째 나팔재앙 곧 일곱 대접들 재앙 때에는 휴거되어 공중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고로 진짜 알곡 성도들은 대환난의 후반부가 되면 더 이상 이 땅에 있지 않을 것이다. 공중으로 휴거되어 올라가 구름 속에서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알곡 성도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의 지조를 지켜 왔고, 또 회개를 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은 다 알곡 성도들이 되어 그날에 보호받다가 하늘로 들림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2023년 10월 22일(주일)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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