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0(주일) 주일낮1부예배

제목: [대강절] 예수님의 족보에 나타난 메시야 탄생의 비밀은 무엇인가?(마1:1)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qHAF7FZbn9o [또는 https://tv.naver.com/v/45416804]

 

1. 들어가며

  예수님은 약속을 따라 이 땅에 들어오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가장 먼저 번의 약속은 구약성경 창세기 3장 15절에 나온다. 그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보내 주실 메시야는 '여자의 씨'로 오실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여자의 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런데 오늘은 이와는 반대로 '남자의 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한다. 그런데 여자의 씨에 비해, 남자의 씨는 마태복음 1장 1절에 의하면 2가지로 표현되어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마1:1). 우리는 사실 마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의 선조들에 대한 족보를 살펴볼 수 있는데, 이 족보는 시작을 아브라함으로 시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마1:2). 그런데 예수님의 선조에는 아브라함 이전에도 19대가 더 있었다. 그런데 마태복음 기자는 아브라함을 예수님의 시조처럼 기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41명의 조상들 가운데, 오직 한 사람 즉 다윗에게만 왕이라는 칭호를 붙여 놓았다. 다윗은 다름이 아니라 '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마태복음 기자는 다윗에게 왕이라는 칭호를 붙여 놓은 것일까? 그래서 오늘은 예수께서 아담의 62대 후손인데, 마태복음 기자가 61명의 예수님의 조상들 가운데 왜 굳이 아브라함과 다윗만을 예수님의 조상들의 대표로 언급하고 있는지를 살펴 보고자 한다. 

 

2.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의 특징은 무엇인가?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예수님의 족보의 시작이 아브라함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담의 20대손이다. 그러므로 만약 예수님의 족보를 제대로 기록하려 했다면 아담부터 기록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아브라함부터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1대 조상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둘째, 예수님의 조상들 가운데 단 한 사람에게만 왕이라는 칭호를 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에 따르면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42대손이다. 그런데 기자는 오직 '다윗'에게만 왕이라는 칭호를 붙여서 기록하였다(마1:6). 이는 예수님의 조상 중에 왕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었을까? 그런데 실은 예수님의 조상들 중에 왕은 다윗부터 시작하여 여호야긴왕까지 18대가 이어졌다. 그런데 오직 유일하게 다윗에게만 왕이라는 직함을 붙여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예수님의 족보를 14대씩 3기로 구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남유다 왕국의 멸망이 있었던 여호야긴왕 때까지 14대, 그리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이후 예수님 대까지 14대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남유다 왕들 중에 생략한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즉 요시야의 아들은 여호야김이었는데, 여호야김을 생략하고 그의 손자인 여고냐(고니야, 여호야긴)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태복음 기자는 굳이 14대로 맞추어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분명 남자들의 족보책인데, 여기에 여자들의 이름을 무려 5명이나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들은 이방 여인이었거나 직업이 비천했거나, 재혼녀였거나 처녀가 자식을 낳은 여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복음 기자는 이 여인들의 이름으로 그녀의 남편과 함께 기록하고 있다. 

 

3. 예수님의 족보에는 어떻게 예수님을 여자의 씨로 표현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족보에는 원래 여자의 이름이 기록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족보는 남자의 이름만 기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태복음 1:1~16에 나오는 족보에는 남자의 씨인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서 예수님을 기록하고 있지만 동시에 여자의 이름도 무려 5명이나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약속의 자손으로 오셨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첫째로, 메시야가 아브라함의 씨와 다윗의 씨로서 보내 주실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기 때문이다(창22:17~18, 삼하7:12~13). 그리고 둘째로, 메시야가 여자의 씨로도 온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창3:15). 그러므로 비록 남자의 족보이기는 하지만 여자들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이 족보가 예수께서 '여자의 씨'를 통해서도 오셨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의 모친이 된 마리아를 제외한 4명의 여자들의 이름이 전부다 도덕적으로 그리 좋지 않은 여자들이라는 점이다. 첫째로, 다말이 나오는데(마1:3), 다말은 원래 유다의 며느리였으나 시아버지를 통해서 아들을 낳았던 여인이다. 듣기에도 좀 민망한 여인이다. 그런데 이 여인은 이방 여인 곧 가나안 여인이었다. 둘째로, 정탐꾼으로 추정되는 살몬과 결혼했던 라합이 나오는데(마1:5), 이 여인은 이방인이었음과 동시에 비천한 신분의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그녀는 여리고 성의 기생이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보아스와 결혼한 룻이 나오는데(마1:5), 이 여인은 이방 여인으로서 모압 여인이었다. 그리고 이 여자는 원래 남편인 말룐이라는 사람과 사별한 여인이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재혼녀였던 것이다. 넷째로, 다윗과 결혼한 밧세바가 나오는데(마1:6), 마태복음의 기자는 그녀를 다윗의 아내라고 기록하지 않고 우리야의 아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녀가 꼭 남편을 버리고 다윗에게 간 사람처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다윗이 우리야를 죽였고 그녀를 빼앗아왔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예수님의 모친이 된 마리아가 나온다. 그런데 마리아는 훌륭한 여인이었다. 다만 처녀로서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그녀가 외간남자를 알아서 임신하지 않았을까 하는 비난을 받을 위험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왜 마태복음의 기자는 이러한 여인들의 이름을 굳이 남자들의 족보에 기록한 것일까? 그것은 오직 단 한 가지다. 창3:15에 따라, 그녀들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메시야를 자신의 태를 통해 낳고자 열망이 매우 강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자기 자신을 통해서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비록 도덕적으로는 부끄러운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보지 않겠다는 뜻이다. 주의 나라를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열망, 하나님께서 대단히 귀중히 보시는 것이다. 

 

4. 왜 굳이 많은 조상들 중에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조상으로 등장하고 있는가?

  왜 예수님의 족보에는 61명이나 되는 많은 조상들의 이름이 있는데, 굳이 아브라함과 다윗이라는 이름만을 머리말에 표제어로 등장시키고 있는 것일까? 거기에는 분명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고자 하는 뜻이 있을 것이다.

  먼저, 왜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61명의 조상들 가운데 예수님의 시조처럼 기록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아브라함은 예수님의 시조가 아니다. 그는 예수님의 42대 조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윗대에도 19대 조상들이 더 있다. 그래서 쭉 올라가 보면 예수님의 시조는 아담이다. 그런데 마태복음 기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고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든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진다면 그도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예수께서 언급하신 사람들 가운데 최초로 천국에 들어갈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마8:11). 그리고 예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낙원인 천국을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눅16:22). 또한 구원받게 된 세리였던 삭개오를 향하여,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눅19:9). 즉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갖게 된다면 누구든지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려면 반드시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결코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다. 마태복음 8장에서 이방인이었던 가버나움의 백부장의 이야기를 통해 믿음만 있다면 동서로부터 많은 이방인들이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8:11).

 

5. 아브라함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아브라함은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었으며, 또한 그가 할례받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방인들의 조상이 될 수가 있었는가? 그가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된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들에게 보이지 않아도 마치 천국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도 그가 살아갈 땅이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땅이 있으니 그 땅으로 가라고 했을 때에,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던 것이다(창12:1~4, 히11:8). 그리고 자기에게 자식 한 명이 없었지만 그의 자식이 많아져서 하늘의 별처럼 된다는 말을 또한 그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밤에 밖으로 데려가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게 하셨다. 그러고는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셨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것을 또한 그대로 믿었다. 그러자 훗날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을 가리켜 그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은 자였다고 간증하였다(롬4:18). 그랬다. 아브라함은 그에게 땅이 보이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 있다고 하니까 그대로 믿었으며, 자식이 한 명도 없었으나, 하늘의 별처럼 많다고 하니까 그대로 믿었던 것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어찌어찌해서 기적적으로 아들 하나를 얻었는데, 그 아들이 장성했을 때에(학자마다 다르다. 25살이었다고 하는 이도 있고, 전통적으로는 37살이었다고 한다) 그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기 때문이다(약2:21).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제 당신의 말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씨를 통해서 대적의 성문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다. 그러고는 더 이상 그를 시험하지 않으셨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아브라함은 할례받은 자들(유대인들)의 조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라가는 자들(이방인들)의 조상도 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롬4:16).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땅과 자식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받아들였을 때는 그가 아직 할례를 받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누구든지 믿음만 있으면 천국에 들어가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으며,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게 되고, 약속대로 하늘의 기업을 물려받는 상속자들이 되는 것이다(갈3:6~7,9,29).

 

6.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다윗을 예수님의 조상의 표상으로 기록하게 했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다윗을 예수님의 조상의 표상의 한 명으로 기록하게 한 것일까? 여기에도 놀라운 영적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 중에 누가 과연 왕 노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표로서 다윗을 알려 주시기 위함이다. 사실 다윗은 왕의 아들로 태어나서 왕이 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비천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목동이었다. 또한 그는 정실 자식도 아니었다. 후실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형들에게 늘 왕따를 당하면서 살아야 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아버지도 그를 아들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없는 아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무엘이 사울왕의 뒤를 잇는 왕을 기름붓기 위해 이새에게 찾아왔을 때에도 다윗을 보여 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예수님의 족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기록하게 한 것은 아무리 비천한 신분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다윗처럼 살아간다면 그도 역시 천국에서 왕 노릇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다. 

  그럼, 하나님께서 왜 그를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의 표상으로 삼아주셨는가?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왕이 되었어도 자신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힘썼던 것이다(행13:21~22). 좀더 세부적으로 말씀하자면 첫째로,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소외시켜 목동의 일을 시켰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해 불평 불만을 갖지 않고 언제나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하늘의 질서를 알아서 함부로 윗사람의 권위에 대항하지 않았으며, 윗사람의 잘못에 대한 심판을 자신의 손으로 행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이다. 셋째로, 자신이 왕이 된 후에도 자신의 평안한 삶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골똘히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모실 좋은 집을 지어 드리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감동하셨고 또 감동하셨다. 그리고 그가 왕이 된 후에도 자신의 잘못 때문에 일어난 쿠데타를 기꺼이 받아들였으며, 왕의 자리라도 기꺼이 내려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은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성전을 지을 수 없다고 하자, 그는 성전을 짓지 않고 자신의 아들 솔로몬에게 그 일을 기꺼이 위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일평생 자신이 목숨걸고 전쟁해서 얻은 재물을 하나님의 성전공사를 위해 헌물로 다 내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를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이들의 표상으로 삼아주신 것이다. 

 

7.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무엇이며, 다윗이 받은 복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결국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누가 천국에 들어가는지에 대한 표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가 살 땅이 있고 많은 자식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그대로 믿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또한 나중에는 자신의 자식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장차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를 '나의 벗(친구)'이라고까지 불러 주었던 것이다(약2:23, 사41:8, 대하20:7). 

  그렇다면 다윗이 받은 복은 무엇인가? 다윗은 누가 천국에 들어가서 왕 노릇할 것인지에 대한 표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왕위보다도 하나님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비천한 자신을 왕이 되게 해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보답할 것인가를 항상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천국에서 단 두 사람만 입고 다니는 왕복을 입게 해 주셨다. 그 사람은 다윗과 솔로몬이다. 그런데 다윗은 빛나는 영광스러운 왕복을 입고 있지만, 솔로몬은 초라한 왕복을 입고 있다. 왜냐하면 다윗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지만 솔로몬은 모든 영광을 자신이 받아먹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람이 되신 하나님 곧 예수께서는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다윗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나는 다윗의 뿌리와 자손'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계22:16). 그리고 천국 도성의 이름도 다윗 성의 이름을 따라 '새 예루살렘 성'이라고 일컬으셨던 것이다.  

 

8. 나오며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께서는 '여자의 씨'로 오셨다는 말씀을 드렸다(창3:15). 그리고 우리가 어떠한 여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말씀드렸다. 그것은 천국에서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이기는 자를 산출하는 모체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계12:1,5). 그렇다면 오늘의 메시지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남자의 씨'로 오셨다는 것이다(마1:1).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남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은 남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다윗왕과 같은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그것이 그대로 된다는 것을 믿고 그것이 역시 존재한다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의 족보에 나타난 메시야 탄생의 비밀이기 때문이다. 

 

 

 

2023년 12월 10일(주일)

정보배목사

2023-12-03(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대강절] 여자의 씨로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이기는 자들(창3:1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_gGCBXykWTY [또는 https://tv.naver.com/v/45415409]

 

1. 들어가며

  오늘은 대강절(대림절) 첫째 주일이다. '대강절'이란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성탄절 전의 4주간의 절기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것은 교회 절기상으로 볼 때는 새해에 해당한다. 그리고 한자어로 대강절이란 '기다릴 대'자에 '내릴 강'자에, 절은 절기의 약자다. 이는 곧 아기 예수로 이 땅에 강림하신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절기가 대강절(대림절)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왜 이 땅에 오셔야 했는가? 아니, 이 땅에 오시되 예수께서는 왜 사람으로 태어나셔야 했는가? 우리는 대강절을 맞이하여 예수께서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3가지 관점으로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강림의 풍성한 은혜를 우리 성도들이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3가지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 이것은 우리가 수도 없이 물어왔고 또 물어야 할 질문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말은 창조주가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왔다는 뜻인데, 이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성도들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인간 구원'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맞다. 예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못 하실 것이 없으시고, 또한 그분이 하면 그것이 법이 되는데, 왜 굳이 그분은 인간의 형상을 입고 오셔야 했던 것인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인류를 구원하실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것은 그만큼 하나님께서 인류를 극진히 사랑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신 것일까? 그것은 성육신의 방법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2가지 방식을 사용하셨다. 첫째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것이다(막10:45).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속죄'의 방법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둘째,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신 후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을 해방하여 성령을 통해 믿는 자들에게 그 생명을 주심으로 사람들을 구원하신 것이다(요10:10, 12:24). 이것을 가리켜 '생명분배'의 방법이라고 부른다. 찬찬히 살펴보면 두 번째 방법은 에덴동산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도록 하신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방법은 첫사람 아담이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기 전에 선악과를 먼저 먹은 죄값을 대신 치르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우리 대신 첫 사람 아담의 범죄의 댓가를 대신 지불하신 후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해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세 번째 목적을 소개해 주고 있다. 그것은 사도 요한이 알려 준 것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는 것이다(요일3:8). 그런데 마귀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을 죄짓게 하여 사망으로 끌어가는 일인데 그것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하려고 예수께서 오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사탄 마귀의 머리를 박살냄으로 더 이상 그 일을 못하게 하신 것이다. 

 

3. 창세기 3장 15절의 말씀은 '여자의 씨'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세 번째 이유를 인류의 범죄 직후에 주님께서 먼저 말씀해 주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창세기 3장 15절의 말씀에 나온다. 이 말씀을 히브리어 원문을 따라서 직역해 보면 다음과 같다. 

창3:15[히브리어 직역] 그리고 내(여호와)가 너(뱀)와 여자(하와) 사이에 적대감(적개심, 증오심)을 놓아둘 것이며, 너희 씨와 여자의 씨 사이에도 적대감을 놓아둘 것이다. 여자의 씨는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고,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그때 범죄한 하와와 죄를 범하도록 꾄 뱀이 서로 적대감을 갖게 하셨다. 둘이 하나되어서 죄를 범했기 때문에, 둘이 더 이상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하와가 뱀의 말을 듣고 더 이상 죄를 범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의도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뱀과 하와를 서로 분리시키려는 뜻에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뱀'은 사탄 마귀 곧 타락한 천사를 상징하고, '여자'는 사람 곧 온 인류를 상징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타락한 천사들과 범죄한 인류들을 결코 함께 처벌하기를 원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타락한 천사들은 처벌하기 위해 불타는 지옥을 만드신 것이지, 결코 범죄한 인류에게 형벌을 주실 목적으로 지옥을 만든 것이 아니다(마25:41).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타락한 천사들과 범죄한 인류를 서로 분리시키실 작정이셨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여자의 씨를 통해서 뱀의 머리를 박살내는 일이었다. 이것이 바로 창3:15에서 주님께서 공개하신 영적인 비밀이다. 

 

4. '여자'와 '여자의 씨' 그리고 '뱀'과 '뱀의 씨'는 누구를 뜻하는가?

  그렇다면, 창세기 3장 15절에 나오는 '여자'와 '여자의 씨' 그리고 '뱀'과 '뱀의 씨'는 무엇을 뜻하는가?

  먼저, '여자'와 '여자의 씨'는 누구를 지칭하는가? 먼저 여기서 '여자'는 '하와'를 뜻한다는 것은 문맥상 바로 알 수 있다. 그런데 '하와'라고 지정하지 않고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여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슨 뜻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하와가 뱀의 머리를 박살낼 자손을 낳지 않을 것임을 하나님께서 잘 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와는 자신의 첫 번째 자식이 그 일을 해 줄 줄 알았다. 그래서 그녀가 얻은 첫째 아들의 이름을 '얻음'이라고 지었다. 그것이 바로 '가인'이라는 이름이다. 하지만 장자로 태어난 '가인'이 그럴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것을 그녀는 곧 알게 되었다. 그러자 둘째 아들을 낳고는 '허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가 바로 둘째 아들 '아벨'이다.

  그렇다면, 뱀의 머리를 박살낼 '여자의 후손(씨)'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가? 마태복음 1장의 기사를 보면, 그분은 바로 동정녀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나신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마1:18). 그러니까 창3:15에 언급하고 있는 첫 번째 여자는 '하와'를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마지막 여자는 바로 '마리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사도 바울도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낳은 예수님이 바로 '약속의 씨'라고 분명히 언급을 하였다(갈3:16,19).

  왜 예수께서 여자의 씨인지는 조금 있다가 더 살펴보기로 하고 둘째로, '뱀'과 '뱀의 씨'가 누구를 뜻하는지도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뱀'은 요한계시록 12:9에 의하면, 그가 바로 마귀와 사탄이요 온 천하를 꾀는 자인 것을 알 수 있다. 즉 사탄 마귀가 들짐승이었던 뱀 속에 들어가서 하와를 속여 죄를 짓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요8:44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는데, 그가 바로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다고 언급하셨다. 그렇다면 '여자의 씨'와 적개심을 갖게 되는 '뱀의 씨'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것은 뱀의 말을 듣고 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계속해서 사탄 마귀에게 속아 죄를 지음으로 짐승의 표를 받아온 자들을 가리킨다. 예수님 당시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뱀의 후손이었다(마23:33, 요8:33).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나중에 사탄의 타락에 동참하여 사탄의 부하들이 되었던 귀신들도 뱀의 씨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들도 뱀의 말에 순종하여 뱀의 뜻을 따라갈 자들이기 때문이다. 

 

5. 여자의 씨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며, 뱀이 여자의 씨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와를 꾀어 범죄케 한 뱀을 책망하실 때에 2가지 징계를 그에게 내렸다. 하나는 그가 모든 짐승들보다 더 저주를 받아서 배로 다니게 되리라고 하셨다(창3:14), 그리고 또 하나는 그의 머리가 여자의 후손(씨)에 의해서 머리가 상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창3:15). 여기서 '상하게 된다('슈트')'는 말의 뜻은 '박살나다, 깨지다, 짓뭉개지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이는 여자의 씨에 의해서 뱀의 머리가 깨져서 더 이상 뱀이 자신의 일을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뱀 곧 사탄 마귀의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 속에 귀신을 투입시켜 사람의 건강과 믿음과 재산을 도둑질하며 속이다가 나중에는 사람을 죽여 음부로 끌어가는 일이다(요10:10). 그 일을 더 이상 못하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일은 십자가 상에서 성취되었다. 왜냐하면 사탄 마귀가 자신이 가진 사망 권세를 사용하여 예수님을 죽이고 말았는데, 그것은 그가 저지른 죄악의 실수이자 불법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탄 마귀는 범죄한 사람만 죽일 수 있을 뿐 범죄하지 않는 자를 죽일 수는 없었는데, 죄없으신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이다(롬6:23). 그런데 지금도 사탄 마귀가 범죄하지 않은 자를 죽이기도 하는데(이를 '순교'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는 자신이 이 세상의 통치자 노릇을 하는 기간이 짧아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죽이고 말았으니, 그 일로 인해 오히려 자신이 가진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빼앗기고 만다(계1:17~18). 그것이 바로 뱀의 머리가 상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날 마귀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빼앗겼으며,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는 하늘에서 쫓겨나 지옥에서 지금까지 갇혀 지내고 있다(계12:7~9). 대신 자신의 졸개들인 귀신들을 올려보내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뱀이 여자의 씨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바로 사탄 마귀가 예수님의 육체에 상처를 입힌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실 때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셨다. 그런데 그때 흘리신 피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속죄를 위한 피가 되었으니, 사탄 마귀는 오히려 예수님에게 상처를 줌으로서 인류의 속죄를 돕는 꼴이 되고 말았다. 

 

6. 왜 뱀의 머리를 박살내는 존재는 '여자의 씨'여야만 하고, 그것은 '자손'이 아니라 '씨'여야 하는가?

  그렇다면, 왜 뱀의 머리를 박살내는 존재가 '남자의 자손'이 아니라 '여자의 씨'여야 하는가? 그것은 첫째, 여자가 죄를 지었으니 여자로 하여금 다시 그것을 처리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다. 여자인 하와가 남자인 아담보다 먼저 죄를 지었으니 여자가 해산의 수고를 통해서 뱀의 머리를 박살내는 존재를 낳게 하려는 것이다. 둘째, 여자가 씨를 낳아야 죄인이 아니라 속죄제물로서 흠없는 사람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자의 씨를 낳을 존재가 하와는 될 수 없고 마리아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성경 기록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사실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하와의 몸에는 창3:14의 말씀에 따라 뱀이 치고 들어오게 되었다. 그래서 하와의 몸에는 이미 뱀들이 들어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았으니, 당연히 가인 속에는 귀신들이 들어 있는 상태에서 출생하였다. 그러니 그가 회개를 모른 채 혈기 분노를 가득 갖고 있다가 동생 아벨을 쳐 죽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와는 씨를 낳는 존재만 되어 주었다. 즉 뱀의 머리를 상할 아들을 낳아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하와가 또 셋을 낳고 셋은 에노스를 낳고 에노스는 게난을 낳았다. 그리고 후에 그 혈통에서 노아가 나오고 아브라함도 나오고 다윗도 나왔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42대손으로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님은 흠없는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었는가? 그것은 사람이 어떻게 죄인이 되는지를 영안을 열어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은 사실 임신이 된 이후 2~3개월이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육체 속에 하늘에서 영혼을 보내어 사람이 되게 한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사람의 육체 속에 영혼이 들어오기 전에 귀신이 자궁에 있다가 그 태아 속에 먼처 치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태어나면서 귀신을 갖고 태어나는데, 이것을 원죄라고 부르는 것이다. 고로 죄된 본성이란 태아 때부터 들어온 귀신들이 바로 그 실체인 것이다. 그런데 이때 여자의 자궁 속에 들어오는 영들은 여자의 부모로부터 내려온 영들도 있지만 잠자리를 통해 남자로부터도 받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마리아의 자궁에 남자의 씨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단하셨다. 그리고 자궁 안에 있는 악한 영들을 제거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녀 전체를 덮어버렸다(눅1:34~35). 그리고 성령이 그녀에게 내려옴으로 임신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육체에는 귀신이 한 마리도 들어가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남자의 씨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성령으로만 잉태되었으며,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보호하심으로 귀신이 공격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예수님을 잉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최초로 뱀의 머리를 박살낼 수 있는 흠없는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예수님을 '여자의 자손(아들)'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여자의 씨'라고 말씀하신 것일까? 그것은 '자손(아들=휘오스, son)'은 동물들이 후손을 전하는 방법이지만, '씨(씨앗=스페르마, seed)'는 식물이 후손을 전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물들이 후손을 남기는 방법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한 번에 많이 낳을 수도 없다. 그러나 식물이 씨앗을 남기는 것은 시간도 적게 걸리고 한 번에 엄청나게 많이 남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동물 중에서 가장 많은 새끼를 낳는 돼지라도 18마리만 낳을 수 있지만, 해바라기는 100~1,800개까지도 씨앗을 남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여자의 씨로서 첫 열매가 되신 이후부터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를 많이 낳게 하겠다는 의미에서 '자손'보다는 '씨'가 더 효과적인 표현 수단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여자의 씨'라고 표현하신 것이다. 


7. 요한계시록에서는 '여자의 씨'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그런데 우리는 인류를 향한 최종적인 계시인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서 '여자의 씨'가 한 사람인 사내 아들로서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더 많이 산출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계2:26~27). 왜냐하면 창3:15에 나오는 '여자'가 요한계시록에서는 '해를 옷 입은 여자'로 표현되고 있는데(계12:1). 이 여자가 낳은 사내 아들은 우리 주 예수님이 첫 번째이지만, 이후로도 이기는 자들이 계속해서 산출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사내 아들 곧 여자의 씨에 해당한다(계12:5). 그런데 해를 옷 입은 여자는 사내 아들인 예수님 혼자만을 낳는 존재가 아니다. 그녀는 광야로 이동하여 계속해서 또 다른 이기는 자들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서 왕 노릇을 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8.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성도가 되려면?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천국에서 들어가서 왕 노릇하는 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자의 씨로서 이기는 자였던 예수님을 닮아서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그래야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철장 권세를 사용하는 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계12:5, 19:15). 요한계시록에서는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들을 결코 예수님 한 분만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고로 누구든지 예수님처럼 이 세상에서 이기는 자가 된다면 그도 얼마든지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계2:26~27). 여기서 '이기는 자들'이란 요한계시록 2~3장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보다 더 강한 부분을 가리킨다. 이는 사탄 마귀와 싸워서 이기는 자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자신의 육체 그리고 귀신들과 싸워 이기는 자들이다. 이들은 해를 옷 입은 여자가 낳은 자들 중에 이기는 쪽에 속한 자들이 될 것이고, 이들도 역시 철장 권세를 받아서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자들이 되려면 이 땅에서 사탄 마귀와 싸우는 전사가 되어야 한다. 이 땅에서 귀신과의 영적 싸움을 하지 않은 자가 천국에서 왕 노릇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귀신을 상징하는 가나안 땅의 일곱 족속과 싸웠던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사는 것이다. 누가 과연 천국을 상징하는 가나안 땅에서 왕 노릇을 할 것인가? 그는 귀신과 싸워서 귀신을 쫓아내는 자다. 그래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왕국이 도래하게 될 것이고 천국에 들어가서도 왕 노릇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9. 나오며

  예수 그리스도는 여자의 씨로 오신 약속의 후손(씨)이시다. 왜냐하면 그분이 사탄의 머리를 박살냈기 때문이다(골2:15, 히2:14). 그리고 사탄은 그 뒤에 무저갱에 감금된 채 있다. 그리고 마지막 때 다섯째 나팔이 불어질 때에 무저갱에서 올라올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 성도들은 이제 사탄의 졸개들인 귀신들과 싸워야 한다. 왜냐하면 귀신들이 우리 몸에 들어 있으면 우리가 계속해서 그놈들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또한 귀신이 주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연적으로 귀신과 싸움을 싸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 몸속에 들어 있는 귀신을 쫓아내야 하고 또한 다른 사람의 속에 역사하고 있는 귀신을 쫓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도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 이기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계2~3장). 다시 말해, 예수님의 뒤를 이은 또 다른 여자의 씨가 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이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철장 권세를 받게 된다. 그러면 그가 만국 위에서 왕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성도들이여, 지금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의 은혜를 부어 주시는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도 이제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 여자의 강한 부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들의 머리를 박살내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오직 회개를 통해서 내 속에 있는 귀신들이 떠나갈 준비를 시키고, 이어서 십자가 세우기나 축사 같은 방법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도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세 번째 목적을 이루는 자들이 되는 것이다. 

 

 

2023년 12월 03일(주일)

정보배목사

2023-11-26(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요한계시록이 들려주는 예수님의 피의 4가지 효능은 무엇인가?(계1:5~6)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841lSZflm_E [또는 https://tv.naver.com/v/45413315]

 

1. 들어가며

  예수께서는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으로 오신 분이다. 그분은 우리와 똑같이 살과 피를 입으신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인류를 위해 속죄제물이 되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는 어떤 효능을 가진 것일까? 보통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있는 예수님의 피는 죄를 씻어 주고 용서해 주는 속죄의 기능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피는 속죄의 기능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피는 그 외에도 3가지 기능을 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예수님의 피가 가진 4가지 효능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2. 요한계시록 1장 5~6절에서 소개하고 있는 예수님은 누구신가?

  요한계시록 서문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누군지를 소개한다(계1:5). 그것은 첫째, 예수께서는 신실한 증인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아버지로부터 보고 들었던 것을 신실하게 증언하신 분이셨기 때문이다(요8:38,26). 이것은 예수께서 아버지와 친밀하게 소통을 하셨다는 뜻이다. 둘째,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 곧 부활의 첫 열매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최초로 부활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이다. 이는 그분이 공생애 가운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성실히 수행하여 차질없이 잘 수행했다는 것이다. 만약 예수께서 행여나 공생애를 사시면서 실수하거나 아담처럼 범죄를 했다고 한다면 그분은 부활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고로 그분의 부활은 그분의 공생애가 성공적으로 마쳐지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예수께서는 땅의 왕들의 통치자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늘에 오르시어 왕이 되셨다. 그것도 하늘에서 왕 노릇하는 이들의 통치자로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신 것이다. 이 세 가지는 결국 예수께서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임무를 잘 완성하셔서 하늘에 올라가실 수 있었고, 하늘의 왕들의 통치자가 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이 땅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아버지의 신실한 증인으로 살다가, 자신의 사명을 잘 완수해야 한다. 그리고 하늘에 올라가 예수님의 뒤를 이어 왕 노릇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3. 예수께서 사람이 되시어 행하신 일 2가지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사람이 되시어 이 땅에서 행하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을 사도 요한은 2가지로 설명한다(계1:6).

  첫째, 예수께서는 자신의 피로 우리가 지은 죄들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셨다고 했다. 그분이 자신의 피를 가지고 행하셨던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조금 있다가 살펴보겠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그것을 4가지로 소개한다. 그것의 기본은 우리를 위하여 그분이 친히 속죄제물이 되신 것이다. 그리하여 둘째, 그분은 우리를 하나님에게 왕국과 제사장이 되게 하셨다고 했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죄인인 인간들을 죄들로부터 사셔서 해방하신 후에 우리를 하나님에게 왕국이 되게 하고 제사장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시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상속자가 되되, 하늘나라의 땅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4. 예수께서 인간을 위한 속죄제물이 되시기 위해 선택하신 4가지 사항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죄인된 인간을 구속하기 위한 속죄제물이 되시기 위해 선택하신 4가지 사항은 무엇인가? 

  첫째, 그분은 죄인된 인류를 위해 자신이 죄가 되시기로 결정하셨다(요1:29). 그분은 죄가 없는 분이요, 죄를 짓지도 아니하신 분일 뿐만 아니라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셨다(고후5: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 친히 자신이 죄가 되셨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을 뿐만 아니라 친히 죄를 짊어지셨기 때문이다. 

  둘째, 그분은 죄인된 인류를 위해 자신이 대신 죽기로 결정하셨다(마26:39).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인류를 위한 대속제물로 대신 죽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인데, 그러면 인간은 영영 하나님과 단절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우리 대신 하나님과 단절되실 것을 결정하신 뒤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셨다(요10:18). 고로 그분이 죽으신 것은 그분이 죄가 있어서 죽은 것이 아니요, 그분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다. 

  셋째,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 대신 저주가 되시기로 결정하셨다(갈3:13). 우리 인간이 죄를 지었고 또한 그것으로 인하여 저주를 가지고 들어왔는데, 예수께서 대신 저주가 되신 것이다. 그래서 저주의 값을 대신 치르신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질병을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 채찍에 맞으셨다. 그리고 우리의 가난을 대신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어떤 것을 취하는 것도 거절하셨다. 그렇다. 그분이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속량하기 위해 친히 저주가 되어 주신 것이다.

  넷째, 그분은 모든 인류를 위해 대신 아버지로부터 버림당하기로 결정하셨다(마27:46). 사실 둘째 사망이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으신 것이다. 그때 그분이 외치신 것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였다. 그분이 구약의 대속죄일 제사 때 광야에 버린 아사셀 양처럼 친히 버림당하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인류가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둘째 사망의 해를 입지 아니하며, 저주를 받지 않아도 되고, 아버지로부터 영원한 분리를 경험하지 않아도 되기에 이르렀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5. 예수님의 피가 가진 4가지 효능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께서 골고다에서 흘리신 피는 대체 인류에게 어떤 유익을 주고 있는가? 그것에 대해 사도 요한은 4가지 것으로 증언하였다.

  첫째, 예수님의 피는 죄로부터 해방시켜 준다는 것이다(계1:5). 여기서 죄로부터 해방시켜 준다는 말은 사람을 죄로부터 풀어 준다는 의미로서, 더 이상 죄값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며, 또한 죄가 가져다 준 결과로서 저주로부터의 해방을 받게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값으로서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할 것이다. 그리고 죄의 결과인 저주로부터도 해방을 받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피가 저주의 실체인 귀신들을 내 몸에서 떠나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해 준다는 것이다(계5:9). 왜냐하면 예수님의 피로 사람들을 사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셨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고라조'라는 단어로서, 이는 '사다, 구매하다'는 뜻이다. 그렇다. 예수께서 피흘리신 것은 우리 인류를 구매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소유가 되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하려고 예수께서 우리를 사신 것이다. 그런데 그때 치르신 값은 예수님의 목숨값이었다(고전7:23).

  셋째,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씻어 깨끗하게 하고 죄를 용서해 준다는 것이다(계7:14, 22:14). 인간이 지은 죄는 과연 어떻게 깨끗해질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님의 피 뿐이다. 예수님의 피가 죄를 덮어버리면 하나님께서 그 죄를 찾아내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피가 내 죄 위에 덮어지도록 회개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의 겉옷을 빠는 자라야 죄가 씻어져서 옷이 희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로서 자기의 겉옷을 빠는 자라야 12진주문을 통하여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성 안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을 수가 있는 것이다. 

  넷째, 예수님의 피가 실제로 영적 무기가 되어 사탄으로부터 우리를 이기게 해 준다는 것이다(계12:10~11). 왜냐하면 예수님의 피가 사람 속에 들어오면 귀신이 떠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피가 들어오면 귀신이 견딜 수 없어 하다가 결국 떠나가기 때문이다. 왜 그러한가? 사탄 마귀는 원래 참소하던 자였는데, 예수님의 탄생 직전에 하늘에서 쫓겨났고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때에 사망 권세를 빠앗기고 무저갱에 갇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자신의 종들인 귀신들을 올려보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죄를 짓게 되면 곧바로 귀신들이 공격하는데, 이때 회개하여 예수님의 피를 적용하면 귀신들은 더 이상 우리 몸속에 들어 있어야 할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면 귀신들이 떠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는 사탄 마귀가 우리 몸에서 떠나가게 하고 우리의 몸을 지켜 주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피는 귀신과의 영적 싸움에서 무기가 되어 주는 것이다. 

 

6. 예수님의 피에 대한 구약의 2가지 예표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예수님의 피의 4가지 효능에 대한 구약의 예표는 없었는가? 아니다. 있었다. 그것은 2가지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속제제물의 피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속제제물을 드리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때 죽어야 할 사람 대신에 속죄제물로서 양과 염소 혹은 송아지를 잡아 대신 피를 흘려 성소의 휘장에 뿌리고, 또한 향단 뿔에 바르면 그 사람의 죄가 용서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레4:6~7, 16:18~19). 이것은 어린양의 피의 세 번째 효능과 가깝다. 

  둘째, 유월절 어린양의 피다. 유월절 날에 장자를 죽이려고 재앙의 천사가 지나갈 때에, 그 집의 좌우 설주와 인방에 어린양의 피가 있으면 재앙의 천사가 그 집을 뛰어넘어 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때 유월절 양의 피는 속죄의 피가 아니라 보호의 피인 것이다. 죽음의 천사가 그 집안 사람을 헤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린양을 잡아 우슬초에 묻혀 자기 집의 좌우 설주와 문인방에 뿌리고 발랐다(출12:23,27). 그러므로 죽음의 천사라도 그 집안 사람을 건드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린양의 피의 네 번째 효능과 가깝다. 

 

7. 나오며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분은 원래 한 분 하나님이셨는데, 우리 인류의 죄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로 하나님의 왕국과 제사장이 되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구원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죄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으며, 죽은 뒤에 천국에 들어가서 왕국이 되고 제사장이 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우리는 죄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피는 죄와 저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되며, 속죄를 받아 깨끗하게 되며, 마지막으로는 예수님의 피가 영적 무기가 되어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게 도와주며, 귀신들이 자신의 몸에 달라붙지 못하게 하는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피 곧 예수님의 보혈을 귀하게 여기고 그분의 피를 적용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정결한 자가 되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들어가게 해 주고, 저주로부터 벗어나게 도와주며, 영원한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고 하늘나라의 기둥이 되게 도와주며, 마지막으로 영적 무기가 되어 귀신들을 쫓아내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때에는 믿음을 가지고 귀신에게 단호하게 명령하면 된다. 

 

 

2023년 11월 26일(주일)

정보배목사

2023-11-19(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댓가를 지불하지 않았는데 과연 은혜로서 영광을 얻을 수 있는가?(막10:35~40)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1부예배] https://youtu.be/wYmom5BNNQE

[2부예배] https://youtu.be/heZV_6BGcZU [또는 https://tv.naver.com/v/45413219]

 

1. 들어가며

  오늘은 세례주일이다.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세례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예수께서도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자신에게 주어진 잔을 마시고 또한 세례를 받는다고 하셨는데(막10:38), 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니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휴거도 다 은혜로 받는 것이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도 은혜로 성도가 다 참여하게 되고, 모든 사람이 다 천국에서 왕 노릇을 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천국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골고루 다 은혜로 주어지는 것일까? 천국에 들어가면 다같이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경 말씀과 천국의 현재의 상황을 토대로 우리의 구원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자리를 얻기까지의 과정을 하나씩 하나씩 점검하고자 한다. 아무쪼록 우리의 천국을 향한 신앙생활이 주께서 주신 은혜로 시작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은혜가 영원한 은혜 되게 하기까지 우리가 과연 어떠한 과정을 겪어야 하는지를 살펴보고, 그날을 잘 준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란다. 

 

2.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에게 요청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약 일주일 전쯤,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한 가지 청원을 한다(막10:35~40). 그것은 곧 나타나게 될 주의 영광 중에 자기들을 주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는 곧 예수께서 다윗의 왕좌에 앉아 왕 노릇하실 것인데, 그때에 가장 영광스러운 지위에 자기들을 앉혀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들이 지금 요구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냥 떼쓰고 달라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첫째로, 곧 있으면 일어날 십자가의 사건처럼 잔을 마셔야 하고 세례를 받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그렇게 해서 잔과 세례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그 자리는 예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날 그 자리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들이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리만을 탐한 나머지 이러한 의미도 모른 채, 예수께서 장차 마시게 될 잔을 마시고 장차 받을 세례를 기꺼이 자기들도 받겠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3. 예수께서 마시는 잔과 예수께서 받으실 세례는 어떤 의미인가?

  그렇다면 곧 있으면 예수께서 마시게 될 잔과 예수께서 받으실 세례는 어떤 의미인가? 단지, 포도주 잔을 마시는 일이며,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던 것처럼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되는 일인가? 아니었다. 그것은 비유적으로 하신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이후 며칠이 지나서 마가 다락방으로 가서 성만찬을 제정하시면서 그 잔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셨다. 이때 '잔'이란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신의 피를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 곧 십자가에서의 죽음이라고 말씀하셨다(마26:27~28). 그러니까 '잔'은 그냥 포도주 잔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주님께서 이 땅에 육신 오신 목적을 성취하는 일이자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클라이막스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과정이 없이는 인류에게 구속이 일어날 수도 없고,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실현될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참으로 험난한 여정이었다. 죄 없으신 예수께서 수갑에 채워진 채 끌려가서 심문을 받아야 했고, 채찍질을 당해야 했으며, 사람들에게 침뱉음과 조롱을 당하다가 결국에는 옷이 벗겨진 상태에서 십자가 못박혀 죽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잔'은 마가복음에서는 고난의 '잔'과 죽음의 '세례'라고 보다 더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의미는 거의 동일한 것으로서 고난을 받고 결국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은 그것을 기꺼이 할 수 있다고 입으로 발설해 버렸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정확히 인지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함부로 말해버린 것이다. 

 

4. 자리를 요구하는 야고보와 요한 속에는 어떤 영들이 들어 있었으며, 다른 제자들 속에는 또한 어떤 영이 들어 있었는가?

  사실 야고보와 요한은 오순절 날에 이르러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죄된 본성에서 온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야고보와 요한이 가지고 있었던 천연적인 본성에는 혈기와 분노의 영이 많았었고, 조급과 세상적 욕심의 영도 가득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이 얼마나 성질이 급한 사람이었는지 주님께서 이 두 형제에게 별명을 붙여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보아너게'라 별명이었다. 이는 '우레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이들 성질이 어떠했는지를 여실 드러내 주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였다. 예수께서 사마리아의 어느 마을에 들어가셨는데, 그때 그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하자, 야고보와 요한이 말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시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물었던 것이다. 그랬다. 그들이 사실 회개를 통해 자기 속에 있는 영들을 제거하기 전까지, 그들은 여전히 혈기 분노의 영, 조급의 영, 욕심의 영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들의 요구를 나무랄 것은 못 된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역시 나머지 제자들처럼 똑같은 마음을 품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다른 제자들은 어떠했는가?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가 떨어지자마자 다른 제자들도 역시 시기 질투심이 섞인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과연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는지를 알려 주셨다. 그것은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라고 하셨다. 그리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가 아니라 종이 되는 자라고 하셨다. 

 

5. 야고보와 요한은 과연 주의 나라에서 주님 좌우편에 앉는 사람이 되었는가?

  그렇다면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는 실제로 천국에서 그대로 적용된 것일까?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쓰여질 당시 사도 요한이 살아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때는 A.D.95년경으로 예수께서 돌아가신지 벌써 65년이 지난 점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순교한지 약 3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천국에서 예수님의 보좌 좌우편 곧 가장 영광스러운 곳에 요한과 야고보가 앉아 있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 하늘나라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 곧 24장로의 자리에는 이미 모든 장로들이 다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고로 그들 가운데 사도 요한이 들어가지 못했던 것이 확실하다. 당연히 야고보도 들어가지 못했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천국의 자리는 자신이 탐낸다고 해서 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영광의 자리는 그 자리에 들어갈 합당한 일을 해낸 사람이 차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천국에서는 아무나 영광스러운 지위나 자리를 얻는 것이 아니다. 그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댓가를 치러야만 그 자리가 주어지는 것이지 아무나 그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고로 만약 우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려면 주님 말씀에 따라 주님께서 마셨던 잔을 마셔야 하고 주님께서 받으셨던 죽음의 세례를 우리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와 복음을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바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하늘에서 영광스러운 자리와 지위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사도 요한은 그 발언이 있은 후 정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현장까지 계속 주님을 따라갔었다. 그러므로 그는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일찍 죽지 않고 끝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성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날 예수님을 계속 따라가지 못한 채 도망쳤던 야고보는 이후에 성령받고 회개하고 달라져서 모든 제자들 중에서 가장 먼저 자신의 목숨을 내어드린 사람이 되었으니, 이 사건이 있은 후 14년이 지난 A.D.44년에 제자들 중에서는 제일 처음으로 자신의 목숨을 순교의 제물로 하나님 바칠 수가 있었던 것이다. 

 

6. 우리가 구원을 거저 얻는 것처럼 다른 모든 것들도 역시 은혜로 거저 주어지는 것일까?

  어떤 분들은 말한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처럼 다른 모든 것들도 하나님은 은혜로 거저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은 누구든지 다 은혜로 휴거를 받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도 참여하고, 천국에서 다 왕 같은 제사장 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인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구원을 제외한 그 어떤 영적인 것도 거 주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전부다 댓가를 지불해서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지 결코 은혜로 거 주시지 않으신다. 그러면 하나님은 불의한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고, 불공평한 하나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결코 훗날 사탄 마귀와 악한 자들을 심판하실 수가 없으시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구원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거 주신다는 것이다. 만약 구원이 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이 세상에 구원얻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만약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다 자백하고 용서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면 이 세상 사람 치고 구원을 얻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과거에 자신이 저질렀던 모든 행동의 죄와 언어의 죄 그리고 생각의 죄를 다 토해 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셔야 우리도 하나님의 생명을 받고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데, 성령은 거룩한 영으로서 더러운 곳에 역사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덮어버리지 않으신다면 아무도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가 과거에 무슨 죄를 지었든지 상관없이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순간, 우리의 죄들을 다 덮어버리시고 죄없다고 선언해 주신다. 한 마디로 우리의 죄를 순간 탕감해 주시는 것이다. 죄는 있으나 죄가 없는 것으로 여겨 주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순간에 성령께서도 우리 안에 들어오실 수가 있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공급되어 거듭나게도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살아갈 때 우리가 받을 모든 축복이나 천국에서 누릴 모든 축복들은 단 하나도 거저 어지는 법이 없다는 사실이다(계22:12). 휴거도 마찬가지다. 훗날 적그리스도의 치하에 들어갈 때에 주 예수께서 공중으로 구름 가운데 오실 것이다. 그때 주님께서 성도들을 공중으로 휴거시킬 것인데, 그때에 주께서는 모든 성도들을 다 휴거시키시는 것일까? 아니다. 요한계시록에 따르면, 익은 곡식만을 휴거시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계14:14~16). 그리고 새 예루살렘 성 안에서 펼쳐지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도 누구나 다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세마포 옷을 예수님의 피로 정결하게 한 자들과 의로운 행실로 자신을 단장한 사람만이 참여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계19:7~9). 어디 그뿐인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보다 더 좋은 거처(천국집)를 얻는 것도, 또한 면류관을 얻는 것과 보좌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다 결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회개하고 충성하고, 섬기고 인내하는 자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우리 인간이 당하고 사는 온갖 저주들도 사실은 우리가 자신이 과거에 지었던 죄를 회개하고 조상들이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까지 회개할 때에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었다는 이유 하나로 결코 저주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만약 예수님을 믿었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이 받는 저주가 다 사라지게 된다면 아마도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을 믿을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과 동시에 저주가 벗어지고 형통이 찾아오는데 누가 안 믿겠는가? 아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이러한 저주를 제거할 수 있는 자격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가 회개할 때에 그 저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7. 우리가 천국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는 영광스러운 지위는 과연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온전한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 그러나 그러한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책임의 분량이 있다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자신이 가진 믿음을 보존하는 일이며, 또한 자신이 지었던 죄들과 조상들의 죄를 회개하는 일이다. 만약 우리가 믿다가도 믿음을 포기하고 세상길로 떠나간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취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점차 생명책에서 그 사람의 이름이 흐려지다가 그가 죽는 그날에 결국 그 이름이 지워지고 성령께서도 그를 떠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구원은 완전한 구원이지만,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야 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사탄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집어삼킬 자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그가 예수님을 믿었다고 그를 봐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택하신 자들도 더 미혹하여 구원을 못받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혜로 얻은 구원은 가만히 있으면 잘 보존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자신이 받은 한 달란트를 수건에 싸 두었다가 주인이 돌아오는 날 내놓았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셨다.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를 가만히 놔두면 아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을 더 아름답게 빛이 나도록 그리고 천국에서 영광스럽게 드러나도록 날마다 가꾸어 나가야 한다. 그것은 회개하고 충성하고 섬기고 인내하는 것이다그래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집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금방 허물어지고 썩어버린다. 하물며 우리의 구원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그냥 놔두면 마귀의 밥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람들 속에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이미 귀신들로 꽉 차 있기 때문이다. 아니 우리의 몸이 귀신의 집으로 도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귀신들이 활동하여 우리 집을 더욱더 귀신으로 가득차게 한다. 우리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을지라도, 귀신들은 가만히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로 거받은 구원을 보존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천국에 들어갔을 때에 더 영광스러운 지위를 얻으려면 우리는 오늘도 자신의 육체를 쳐 복종시켜야 한다. 그리고 천국복음을 전파하는데 힘써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믿음도 보존할 수 있고 천국에서 받을 영광도 미리 준비할 수가 있는 것이다.

 

8. 나오며

  예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말씀하셨다. 천국에서 사람들이 누릴 지위와 상급을 얻기 위해서는 댓가의 지불이 필요하다고 말이다(막10:38). 특히 주님 나라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지위를 얻으려면 자신의 목숨이라도 주님의 나라와 복음 전파를 위해 내놓아야 한다고 하셨다. 주님에게 자신의 목숨을 내놓지도 못하는 자가 어찌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 좌우편에 앉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천국에서 주님의 좌우편에 앉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주와 복음을 위해 고난의 잔도 마셔야 하고, 죽음의 세례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 자신의 목숨을 비칠 기회가 찾아오면 기꺼이 자신을 내어드려야 한다. 고로 야고보 사도는 처음 자리를 탐할 당시에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지 못했지만, 회개하고 성령을 받은 이후에는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주님께 산 제물로 내어놓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에 그는 자신의 입이 부끄러웠지만 나중에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주님께 쓰임받는 그릇이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회개의 분량을 채우는 일이다. 회개의 분량을 채우지 못한다면 귀신도 잘 떠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회개의 분량을 채우지 못하면 큰 영들을 자신의 몸에서 내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게 주신 은사가 활성화되지 아니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지만 귀신들이 그것을 튕겨버린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회개를 하는 자에게 은사도 주시고 사명도 발견케 하셔서 하늘나라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다시 시작하려거든 회개부터 시작하라.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자신의 죄와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길 바란다. 그러면 그때부터 우리의 몸이 귀신의 집에서부터 성령의 전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께 존귀하게 쓰임받는 깨끗한 그릇이 되는 것이다. 오늘부터 시작하라. 회개하라. 그러면 진짜 복이 온다. 그러면 이 땅에서부터도 복을 받고 하늘에서도 영원히 복을 받는 것이다. 

 

 

2023년 11월 19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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