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8(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성령강림절(8)] A.D.30년 오순절날 왜 성령께서 오셨을까?(요14:16~19)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0Hmw_f-wp5I [또는 https://tv.naver.com/v/36740276]

1. 들어가며

  오늘은 성령강림절이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A.D.30년 5월 28일 오전 9시경에 약속하신 성령께서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에게 내려오셨다. 성령강림절은 이 일을 기념하는 절기다.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구약에는 없었는가? 아니었다. 구약 때에도 성령은 여전히 계셨다. 그런데 다시 오신 것이다. 그럼 오순절 날 대체 무슨 변화가 생긴 것인가? 그런데 우리는 그 변화를 하나의 용어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보혜사'라는 명칭이다. 성령을 '보혜사'라고 우리 주님께서 알려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보혜사란 대체 어떤 분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령강림절을 맞이하여, 보혜사라는 뜻이 무엇인지를 구약에 역사했던 성령의 역사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의 성령의 역사와 비교하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 곁에 오신 보혜사이신 성령께서 대체 어떻게 우리를 돕고 계시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성령은 누구신가?

  성령은 누구신가? 성령은 '하나님의 영'을 가리킨다. 그런데 성령은 이 땅에 보내어진 '여호와의 눈'(슥4:10)이자 '어린양의 눈'(계5:6)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성령은 이 땅에 보내어져 활동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영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천지창조 때부터 이미 활동하고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창1:2). 성령은 결코 오순절 이후에 나타나신 분이 아니다. 구약시대에 역시 성령께서 활동하셨기 때문이다. 그럼, 구약시대에 성령은 어떻게 활동하셨는가? 구약시대에 성령께서는 사사들이나 선지자들에게 내려오시어 그들로 하여금 어떤 직무를 감당하게 하셨다. 한편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여호와'로 그 이름을 계시하셨기에, 구약시대 성령의 명칭 역시 '하나님의 영'(창1:2), 내지는 '여호와의 영'(삿6:34)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그 성령은 예수님 공생애 때에도 여전히 이 세상에서 활동하셨다. 즉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께서는 예수님 머리 위로 비둘기의 형상으로 내려오셨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예수께서 설교하실 때에도, 귀신을 쫓아낼 때에도 늘 함께 하셨다. 그러다가 예수께서 이제 구속사역을 위해 제자들의 곁을 떠나가실 때가 되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떠나가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대신하여 아버지께로부터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오순절 날 오신 분이 바로 '보혜사'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이 성령은 이제 경륜적으로 볼 때, 아들의 영도 되셨다. 그러므로 오순절 이후에 보혜사 성령은 '아들의 영'(갈4:6), '예수의 영'(행16:7), '그리스도의 영'(롬8:9)이라고 불렸다.  

 

3. 오순절 날 강림하신 성령은 어떤 분이신가?

  그렇다면 오순절 날 강림하신 성령은 대체 어떤 분이신가? 구약에 여러 선지자들에게 활동하셨던 바로 그 성령이신가 아니면 그것과 전혀 다른 성령이신가? 결론적으로 그분은 둘 다 똑같은 성령이시다. 동일한 성령이신데, 다만 활동하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 그래서 오순절 이후에 강림하실 성령을 가리켜 주 예수께서는 '보혜사'라고 설명하셨다. 그렇다면 '보혜사'란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이다. 전치사 '파라'(곁에, 옆에)'에다가 동사 '칼레오'(부르다, 소환하다, 초청하다)의 변형인 '클레토스'가 합쳐진 말이다. 그런데 이 단어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다양하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단어를 '변호사', '상담자', '위로자'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원문적으로 보면, '파라클레토스'는 '곁에서 불러서 돕는 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근접한 번역이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옛날 성경책을 보면, '파라클레토스'를 '도와주시는 이'라고 번역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보혜사'라는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 총 5번 나오는데, 요한복음에서만 4번 나오고(요14:16,26, 15:26, 16:7), 요한일서에서 단 한 번 나온다(요일2:1). 요한복음에서는 그것이 오로지 오순절 이후에 오실 성령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요한일서에서는 예수님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고로 우리는 예수께서 원래 보혜사였고, 오순절 이후의 성령은 또 다른 보혜사인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여기서 '다른'이라는 단어가 '알로스'로서 같은 종류의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하시던 일을 같은 종류의 다른 성령께서 오셔서 감당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대체 무엇을 도와주시려고 오순절 날에 이 땅에 오신 것인가?

 

4. 보혜사 성령께서는 와서 어떤 것을 도와주시는가?

  예수께서 보내실 성령 곧 보혜사는 대체 무엇을 도와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4방면에서 도와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다. 첫째, 보혜사 성령께서는 항상 곁에 계시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오신 후에 항상 곁에 계시는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3가지 역할을 감당하신다. 첫째는 우리의 구원을 도와주시고, 둘째는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시며, 마지막으로 셋째는 우리의 복음 전파를 도와주신다. 이제 보혜사 성령의 달라진 사역이 무엇인지를 구약시대의 성령과 오순절 이후의 성령과 비교하여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5. 보혜사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신 첫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보혜사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신 첫 번째 이유는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고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기 위해서다(요14:16~17). 구약시대에는 성령께서 사람들 곁에 항구적으로 계시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사역자 위에 머물러 계셨지만, 그러다가도 그 사역자가 범죄했을 때에는 성령께서 그 사역자를 떠나가셨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울'왕의 경우다. 곧 그가 범죄하자 성령은 떠나갔고, 여호와의 부리시는 악신이 그를 번뇌케 했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삼상16:14). 삼손도 그중에 한 명인데, 처음에는 여호와의 영이 임하여 사사로 일했지만 그가 범죄했을 때에 곧 성령이 떠나가셨고, 그가 회개하자 다시 성령이 그에게 오셔서 활동함으로 원수를 갚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다윗도 범죄하였을 때 성령이 떠나갈 것을 매우 염려하였다. 그러므로 간절히 기도하기를 '주의 영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했다(시51:11). 그러므로 구약시대만 해도 성령께서 항구적으로 성도들과 함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께서 어느 날 예수님에게 내려오셨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공생애 내내 예수님과 함께 계셨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에는 제자들에게 아무런 부족함도 없었고 제자들이 위협당하는 일도 없었는데, 이제 예수께서 떠나야 할 시점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제자들은 두려워하였다. 예수께서 떠나가시면 어떡하나 하고 그들은 근심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이 떠나가는 것이 오히려 유익하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그래야 제자들과 항상 같이 계시는 성령이 오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요16:7~8). 예수께서는 육체를 지니셨기에 제자들의 곁을 떠나가실 수밖에 없지만, 보내실 보혜사 성령께서는 영으로서 언제나 제자들 곁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혜사 성령께서 오시는 첫 번째 이유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오시는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과 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으려고 오신 것이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믿는 성도들의 보호자가 되어 주시고, 인도자가 되어 주시고 계시는 것이다. 

 

6. 보혜사 성령께서 도와주시는 3가지 영역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기 위해 오신 보혜사 성령께서는 우리의 무엇을 도와주시는가? 그것은 3가지 영역에서 도와주신다.

  첫째, 우리의 구원의 모든 여정을 도와주신다(요15:26, 16:8~9). 그런데 구약시대에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책을 가까이 해야 했다. 하지만 구약시대에 율법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었는가? 그런데 이제 오순절 이후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 성령을 보내 주시어 사람이 구원받도록 도와주시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구원을 얻도록 도와주시는 것이다. 먼저 첫째로, 보혜사 성령께서는 주 예수님이 누구며 우리 죄인들을 위해 그분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믿도록 도와주신다(요15:26). 왜냐하면 보혜사는 예수님을 증언하는 영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 보혜사 성령께서는 죄를 책망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도와주신다(요16:8~9). 만약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은 자라 할지라도 죄를 지어 회개하지 않는다면 구원에서 탈락할 수가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도록 죄를 책망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회개하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것이다. 

  둘째,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도와주신다(요14:13~14, 롬8:26~27).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아무나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중간에 중보자가 있었다. 그것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들이다. 모든 성도들은 바로 이들을 통해서 제사도 드리고 기도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순절 이후에는 모든 성도들로 하여금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다 들어주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오순절 이후 구원받은 성도들은 누구나 중보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성도들이 기도를 잘하는가 하는 것이다.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에 보내시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신다. 우리가 세상적인 정욕을 따라 기도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대로 기도하도록 도우시는 것이다. 

  셋째, 우리가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신다(행1:4~5,8). 우리 믿는 성도들로 하여금 복음의 증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능력을 주시고 은사들을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아무나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될 수가 없었고, 또한 아무나 능력이나 은사를 받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순절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사모하고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을 통해 능력을 부어 주시고 은사를 주고 계신다. 그렇지 않으면 불신자들이 복음 앞에 굴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초자연적인 역사가 없으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성과 신념만을 믿고 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예수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을 힘입어야 한다. 그래서 능력을 받고 은사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온전한 전도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온전한 복음 전파를 돕도록 하기 위해 이 땅에 보혜사로서 성령을 보내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사람이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받으면 교만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능력과 은사를 자기 자랑의 수단으로 삼게 되고,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다가 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산상수훈의 말씀을 통해서, 그날에 주님 앞에 나와 심판을 받을 것인데, 주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귀신 쫓아내고 능력을 행했던 자라 할지라도 불법자로 분류되어 성밖으로 쫓겨날 사람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마7:21~23).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하라고 주신 능력과 은사를 잘못된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사와 능력을 받을 때에는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회개한 후에 성령의 선물인 은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행2:38). 그래야 귀신에게 속지 않게 되며, 교만해지지도 않는 것이다. 

 

7. 보혜사 성령을 우리도 누리면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날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실 보혜사 성령을 내 삶 속에서 누리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에는 첫째로, 보혜사 성령께서 나와 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심을 믿는 가운데 악한 영들과 싸움을 해야 한다. 악한 영들이 공격해 오면 죽을까봐 두려워 떠는데, 이제부터 그렇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성령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귀신에게 죽임당하지 않을 것을 믿으라. 둘째로, 예수님이 누군지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배워야 한다. 그리고 성령께서 죄를 책망하실 때에는 즉시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께서 근심하시게 되고 그러다가 더 이상 우리 안에서 활동을 하지 않으실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은 인격적인 분이기에 무안을 타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분이 싫어하시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기도할 때 혼을 사용한 기도만 하지 말고 영을 사용하는 방언기도도 같이 해야 한다. 사실 영의 기도는 하나도 불필요한 기도가 없으며 정욕적인 기도가 없다. 다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만 드린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혼을 사용한 기도만 하지 말고 영을 사용한 기도도 같이 해야 한다. 그래야 성령께서 우리에게 환상도 보여 주시고, 장래 일도 알려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현재의 영적 생활에 만족하지 말고 복음 전파를 위하여 더 큰 능력과 더 귀한 은사를 사모하고 간구하기를 바란다. 능력과 은사는 그것을 사모하고 기도하는 자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회개하고 능력과 은사를 받으라. 그렇지 않으면 귀신에게 속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로 처음에는 기도할 때에 회개를 90%하고 기도를 10% 한다면, 나중에는 50대 50으로 기도하라. 

 

8. 나오며

  우리는 이미 보혜사 성령이 이 땅에 오신 시대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것도 우리는 주님이 재림하시기 직전에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더욱더 영적인 진리의 말씀이 필요한 시대이며, 능력과 은사가 더욱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해 안일한 구원관에 빠져 구원에서 탈락하고 있다. 기도하지 않고 있으며, 영적으로 깊은 잠을 자고 있다. 영적으로 무장하지 않아 귀신들에게 농락당하고 있지만 그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치병과 사건 사고, 치매, 파킨스병,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지 아는가? 큰일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 시대의 성도들 중에는 상당수가 초자연적인 역사를 보지 못했다. 제자훈련 같은 말씀의 시대에 태어나서 말씀만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아니다. 말씀만을 들어 구원받은 자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주께로 인도하기 어렵다. 혹시 자신은 말씀으로 구원받았을지라도 조상적으로부터 내려온 악한 영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악한 영들이 지금 우리의 자녀들을 가만 놔두지 않고 있다. 그러니 대부분의 믿는 이들의 자녀들은 교회에 출석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한 번 구원받았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는 교리를 성경이라고 알아들어서 반복적인 회개를 등한히 여기고 있다. 회개하려고 하면 나를 믿음없는 사람이라고 몰아세운다. 그러면서 자신은 오히려 온갖 저주 속에 살고 있다. 아니다. 우리는 날마다 회개를 통해 우리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악한 영들을 내보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삶에도 저주가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아야 한다. 고로 지금 이 시대는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성령을 사모해야 한다. 성령께서 주시는 참 믿음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회개를 더욱더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방언기도로 영권을 더욱더 강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도하여 능력과 은사로 무장하여 악한 영들과 싸워야 한다. 그래야 이 마지막 시대에 알곡이 되고 주님의 거룩한 신부로 단장할 수 있다.  

 

 

2023년 05월 28일(주일)

정보배목사

2023-05-21(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성령강림절(1)] 구약의 성도들은 경험할 수 없었던 오순절 이후 성령의 역사(행2: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C-UzliErr_k [또는 https://tv.naver.com/v/36738520]

1. 들어가며

  오순절 성령강림은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인 B.C.30년 5월 28일 오전 9시경에 있었다. 성령께서 당시 마가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고 있는 120명의 성도들에게 내려오신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오순절날 이전에는 이 세상에 아니 계셨는가? 아니었다. 성령께서는 그전에도 계셨고, 더욱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도 이 땅에 계셨다(창1:2). 하나님의 영은 그때 수면 위에 알을 품듯이 운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성령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또한 활동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또한 활동하시는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구약시대에 성령께서 일하시는 방식과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성령께서 일하시는 방식을 서로 비교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성령의 놀라운 은혜가 무엇이며, 우리 또한 그것을 어떻게 누리며 살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아무쪼록 오순절 이후에 달라진 성령의 역사를 잘 깨닫고 그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2. 성령께서는 일하시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성령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가? 아니다. 성령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지구가 존재하는 이래로 세 번이나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선 노아홍수 이전과 노아홍수 이후 시대로 나눌 수 있고,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10일 후에 내려오신 보혜사 성령시대로 나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에 임하셔서 일하시는 성령께서는 A.D.30년 오순절 성령강림 때의 성령과 똑같은 분이시다. 그래서 그 방식 그대로 지금까지 일하고 계신다. 하지만 구약시대 성령께서는 오늘날처럼 일하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노아홍수 이전에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임하셔서 일하셨다. 그것은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노아홍수 기사를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첫째, 노아홍수 이전에 성령께서는 어떻게 임하셨고 일하셨는가? 하나님께서 B.C.2458년경 이 땅에 홍수를 내려 숨쉬는 모든 생명체를 죽이셨다. 사람이 타락하여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타락한 인간들 때문에 동물들까지 함께 멸망을 당해야 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노아의 홍수를 일으키기 120년 전, 당신의 뜻을 노아에게 알려 주셨는데, 그 말씀은 노아홍수 이후에 달라지게 될 성령의 역사 방식을 미리 알려 준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영이 사람 안에 머물지 않게 하실 것이며, 더 이상 사람과 다투지도 아니할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창6:3 히브리어 원문 참조). 왜냐하면 사람이 육체가 되어 쾌락만을 쫓아가고 있었고 폭력만 일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아홍수 이전에는 성령께서 어떻게 역사하신 것인가? 그것은 노아홍수 이전에는 성령께서 사람 안에 거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는 사람이 잘못 행하면 그 사람을 책망하시면서 사람과 다투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이지 않았으며, 자기의 육체가 좋아하는 대로 행하고 말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성령을 거둬 가시겠다고 하신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노아홍수 이전에 살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담이 그랬고 가인이 그랬었다. 그리고 그것은 타락 이후에도 잠깐이지만 계속되었다. 한 마디로, 아담의 시대부터 그의 10대손 노아의 시대까지 성령께서는 사람 속에 머물러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사람들의 죄를 꾸중하시면서 바른길로 인도하려고 애쓰셨던 것이다. 

  둘째, 노아홍수 이후에 성령께서는 어떻게 임하셨고 일하셨는가? 그런데 노아홍 이후에는 완전히 달라졌다. 성령께서 더 이상 사람 안에 머무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노아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사람 위에 보내셔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직무를 수행하게 하셨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에 몇이라도 구원시키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이 사람들 위에 머무르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도 성령께서 사람 위에 내려오시면, 그 사람에게서 여러 종류의 은사들이 나타났고 또한 능력이 나타났다. 

  셋째, 오순절 성령강림 건 이후에 성령께서 어떻게 임하시고 일하시고 있는가? 오순절날이 이르자, 보혜사(돕는 자)이신 성령께서 오심으로 구약시대의 성령의 임하심과 일하시는 방식은 대폭 개선되었다. 그것은 조금 있다 살펴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께서 임하시고 일하시는 세 가지 방식의 차이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에 성령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고 계시는 혜택을 알아 그것을 마음껏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3. 노아홍수 이후 구약시대에 성령께서 임하시고 또한 일하셨던 방식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노아시대 때에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보시고 매우 탄식하셨다. 왜냐하면 아담 창조 이후 하나님께서는 사람들 속에 성령을 보내시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채 육체를 따라가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제 하나님께서는 개개인에게서 성령을 거둬 가시었다. 그러자 구약시대에 사람 속에는 더 이상 성령께서 거하시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당신의 구원사역을 이루어 가셨을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들을 통해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한 종들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와 능력을 받아서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받은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즉 몇몇의 족장들과 사사들 그리고 왕들과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쓰임받은 것이다. 

  이제 구약시대에 성령께서 임하시는 방식을 살펴보자. 이 방식은 노아홍수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이었다. 성령께서 사람들 속에 들어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 밖에,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 위에 머물러 계셔서 음성을 들려주시고, 환상을 보여 주시고 다양한 은사와 능력을 주셔서 일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때 쓰임을 받았던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족장으로 아브람과 이삭과 야곱, 요셉이 있고, 지도자로는 모세와 여호수아가 있다. 그리고 사사로는 기드온과 삼손이 있고, 왕으로는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이 있으며, 선지자로는 엘리야와 엘리사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여러 선지자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선택함을 받아서 성령이 그들 위에 보내어짐으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자들이다.

  문제는 아무리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특별한 부르심을 입은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범죄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거둬 가시기도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아홍수 이후 성령께서는 항구적으로 머물러서 역사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최초로 왕으로 선택받은 사울은 성령께서 내려오심으로 예언까지 하였으나(삼상10:6), 그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거역함으로 하나님께서 성령 거둬 가고 말았던 것이다(삼상16:14). 다윗도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에게 간음을 행하여 자칫 성령이 떠나갈 뻔 하였다. 그러자 다윗은 이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1)

 

4. 하나님께서는 왜 오순절 날에 성령의 역사 방식을 새롭게 바꾸려고 하셨는가?

  그런데 오순절 이후 성령께서 역사하셨던 방식은 구약시대와는 현저히 달라지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약시대 성령의 역사 방식으로서는 구원얻을 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거둬 가신 후 몇몇 택함받은 자들을 통해서 사람들을 인도하는 방식만으로는 사람들의 우상숭배를 막을 수 없었고, 그들의 타락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시대만 해도 하나님께서 구원할 대상은 많지 않았지만, 요셉 시대에 아곱의 후손들이 애굽으로 건너가서 400년을 살게 되자 그들의 인구 숫자도 늘어났다. 70명이 200만 명이 된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무엇이 죄인지를 알려 주시려고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다. 이것이 바로 구약의 율법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최소한 왕들은 율법책의 두루마리를 베껴서 그것을 가까이 두고 읽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백성을 통치하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왕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자 하나님이 선택한 최후의 선택은 그들을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은 B.C.722년에 멸망당하게 되었고, 남유다도 B.C.586년에 멸망당하게 된다. 하지만 남유다가 멸망하기 직전, 하나님께서는 언젠가는 다시 이스라엘 세울 언약을 말씀해 주셨으니, 그것이 바로 에스겔과 예레미야 선지자가 말했던 새 언약에 관한 말씀이다(렘31:31, 겔35:26~27). 이 언약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 밖에 두었던 율법책 대신에 성령을 사람들 속에 두어 그들로 하여금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게 하시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오순절 성령강림은 노아홍수 이전의 시대 곧 아담부터 노아 때까지의 시대에 성령께서 역사하신 방식으로 다시 회귀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하여 드디어 예수께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시자, 승천 후 10일이 지난 어느 날 성령께서 마가 다 120명의 성도들에게 내려오신 것이다. 

 

5. 오순절 이후 뚜렷이 달라진 성령의 역사 방식은 어떤 것이었는가?

  그러므로 오순절 이후 성령께서 역사하는 방식은 현저히 달라지게 되었다. 구약의 방법으로는 구원받을 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의 성령의 역사 방식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그것은 크게 다음과 같이 4가지 방식의 차이로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성령 받는 것을 모든 믿는 자들에게로 확대하셨다는 것이다(행2:4). 구약시대에는 몇몇의 소수의 선택한 사람에게만 성령을 주셨던 것을 이제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로 확대하신 것이다. 그것이 오순절 이후의 성령의 역사에 대한 요엘 선지자의 예언에 따른 것이다(욜2:28~29). 성령을 만민(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러자 오순절 날 11명의 사도들에게만 성령이 임하신 것이 아니라 마가다락방에 모인 모든 성도들 곧 120명의 성도들에게 동시에 다같이 성령이 임하시게 된 것이다(행2:1~4).

  둘째, 성령께서 사람에게 임하시는 방식을 밖에서만 역사하시는 방식과 더불어 사람 속에 내주하시는 방식까지 추가하셨다는 것이다(요14:17). 다시 말해 구약시대에는 오직 성령께서 밖에서만 역사했는데,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는 사람 속에도 들어가서 일하시게 한 것이다. 이것은 에스겔 선지자와 예레미야의 선자자가 예언했던 새 언약의 성취다(겔26:26~27, 렘31:31). 그리하여 오순절 이후에 성령은 모든 믿는 자들 속에 내주하시게 되었다(요14:16~17).

  그렇다면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는 무슨 일을 하시고 있는가? 첫째는 사람들을 거듭나게 하시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요3:5, 고전15:45). 그리고 둘째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천국까지 인도하시는 일을 하신다. 이때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증언하시어,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하신다(요15:26). 또한 예수께서 들려주셨던 말씀을 생각나게도 하시고, 모든 것들을 가르쳐 주시기도 하신다(요14:26). 그리고 무엇보다도 믿는 이들로 하여금 가짜가 아니라 진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심지어 장래 일까지도 알려 주신다(요16:13). 더욱이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그것이 왜 죄인지를 깨닫게 하시고 책망하여 회개하게도 하신다(요16:8). 한 마디로 우리 믿는 이들 안에 들어오시는 성령은 예수님을 믿게 하고 회개케 하고 진리를 깨닫게 하여, 사람을 구원받게 하고 천국까지 인도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다. 

  셋째, 한 번 들어오신 성령께서는 성도가 죽는 그날까지 결코 떠나지 않게 하신다는 것이다(요14:16). 이제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처럼 사람이 범죄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 성령을 거둬 가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계속해서 거주하는 임마누엘의 방식으로 변경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 자신이 혹 죄를 범하였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죽는 그날까지는 성령은 떠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신약의 사도는 자기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결코 근심하지 말게 하라고 명령하였고(엡4:30), 성령을 소멸시키지 말라고 분명히 말하였다(살전5:19). 고로 만약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계속해서 죄짓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죽는 날까지 성령은 떠나시지 않을지라도, 그가 죽는 날에 비로소 성령께서 떠나가시게 되는 것이다(엡4:30). 왜냐하면 성령의 인치심은 구속의 날까지만 효력이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 믿 자였다고 할지라도 새 예루살렘 성 밖으로 쫓겨나거나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계22:15, 21:8)

  넷째, 위에 내려오심으로 주시는 성령의 은사들이 더 풍성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구약시대나 노아홍수 이전에는 결코 받지 못한 은사들을 부어 주신다는 것이다. 오늘날 성도들의 일부는 성령의 은사들을 오순절 이후의 세대만이 받은 줄로만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노아홍수 이전에도 역시 많았고, 노아홍수 이후에 구약시대에도 있었다. 다시 말해 구약시대에도 성령께서 어떤 특정한 사람들 위에 내려오심으로, 그에게 어떤 특별한 은사와 능력으로 무장시켜 주셨던 것이다. 예를 들어, 성령께서 내려오시자 사사 기드온에게는 지도력의 은사가 임하였고, 사사 삼손에게는 힘(능력)의 은사가 임하였다. 그러자 삼손은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음 같이 찢어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모세에는 영안 열림의 은사가 임하였고, 여호수아에게는 지도력과 담대함의 은사가 임하였다. 그리고 엘리야나 엘리사는 죽은 자도 살리는 기적의 은사가 임하였고, 엘리사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눈으로 다 볼 수 있었고 귀로 들을 수도 있었다. 엘리야와 엘리사에게 기적 같은 것은 예삿일이었다. 그리고 이사야나 에스겔과 다니엘과 같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고 환상도 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오순절 이후에 살고 있어 성령받은 우리 성도들 역시 이러한 은사와 능력을 맛볼 수가 있는 것이다. 

  더욱이, 오순절 이후의 세대들은 구약시대나 노아홍수 이전에 살던 사람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은사를 받게 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방언의 은사(방언 통역의 은사포함)요, 또한 귀신 쫓는 은사다. 고로 오순절 날 보혜사 성령께서 120명의 성도들 속에 들어오셨을 때에, 그들은 모두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기도하는 그들에게 내려오시자 그들은 귀신을 쫓아낼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왜 성령을 받은 자에게 가장 먼저 방언으로 은사가 나타나는가? 그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사람의 영 속에 들어오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사람의 영이 살아나서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영의 언어 곧 방언의 은사이기 때문이다(행2:4, 고전14:2,14).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기본적으로 귀신을 쫓을 수 있는 권세가 주어진다(막16:17~18).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더 신령한 은사를 받게 되는데, 그러면 아주 높은 계급의 악령들도 추방할 수 있게 된다.

 

6. 나오며

  오늘날 우리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행전 서신서에 나오는 모든 성령의 은사들을 받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 속에 성령을 보내주시며, 성도들에게 은사와 능력을 주시고 있는가? 그것은 2가지 목적 때문이다. 하나는 성도들로 하여금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다(요3:5). 성령께서 내주하셔야 사람이 거듭나게 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회개하여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께서 내주하심으로 교사가 되실 때에 우리가 신령한 것들을 알게 되고 그러한 것들을 사모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성도들로 하여금 복음의 담대한 증인으로 살게 하시기 위함이다(행1:8). 성령을 받고 기도로써 성령의 선물인 각종 은사들을 받을 때에 성도들은 비로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을 수 있으며, 또한 세상으로 나가 담대히 복음을 증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성령을 내 마음속에 받을 수 있으며, 자신의 머리 위에 받음으로 은사와 능력을 장착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내 마음속에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며(요7:39), 우리가 하님께 기도하고 요청할 때 성령의 은사와 능력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다(눅11:13). 아무쪼록 우리 성도들은 내주하시는 성령을 받은 상태로 만족하지 않기를 바란다. 더욱더 회개하여 성령을 기쁘시게 할 뿐만 아니라, 성령의 은사와 능력도 사모하여 담대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장착해서 방언을 말하고 귀신을 쫓아냄으로, 자신의 영적 계급을 올리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여 전도하고 주의 일을 성실히 감당함으로 하늘의 상급도 많이 쌓을 수 있기를 바란다. 

 

 

2023년 05월 21일(주일)

정보배목사

2023-05-14(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왜 바울은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도방법을 전환했는가?(고전2:3~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BbVvOBDcME4 [또는 https://tv.naver.com/v/36738127]

1.들어가며

  한국 교회가 전도의 위기에 봉착했다. 전도가 잘 되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정의 복음화가 되지 않는다. 이는 실로 심각하다. 한국 교회의 50~60대 성도들의 자녀들과 젊은 세대들이 대부분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신앙이 가정에서 계승되지 않고 끊어지고 있는 것인가? 대체 그 원인은 무엇인가? 그래서 오늘은 초대 교회를 장식했던 사도 바울이 왜 고린도에 가서 전도 방법을 새롭게 바꾸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전도 방법 전환을 통하여, 오늘 우리의 전도가 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는지를 분석해 보고, 앞으로 어떻게 전도하여야 신앙의 계승이 이어지게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지금 한국 교회가 잃어버린 전도 방식은 무엇인가?

  오늘날 한국 교회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교회의 전도 방식을 사실상 잃어버렸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초대 교회의 전도 방식으로 전도를 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초대 교회의 전도 방식은 대체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도하는 방식이었다(고전2:4).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이러한 전도 방식을 채택하게 된 데에는 아주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그것은 조금 있다가 자세히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한국 교회가 최근 20~30년간 채택했던 전도 방식은 대체 어떤 것이었는가? 그것은 지혜로운 말로 하는 전도 방식이었다. 4영리와 같은 것을 달달달 암송하여, 복음을 전해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상당한 수준으로 전도의 열매를 거둘 수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전도 방식으로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성도들의 자녀들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에는 부모가 가니까 따라와서 교회에 출석했지만 청소년이 되고 청년이 된 후부터는 아예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 큰 자녀를 이래라저래라 강요할 수는 없기에 언젠가 변화되어 신앙생활을 잘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지만 그것이 바람대로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그렇다고 마냥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아니한가? 그래서 고민이 깊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초대 교회의 전도 방식을 되찾아 나부터 변화되는 수밖에 없다. 가정의 복음화는 말로 해서는 안 되고 삶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야 하기 때문이다. 

 

3. 왜 바울은 고린도에 갔을 때에 전도 방법을 전환하게 되었는가?

  바울이 2차 전도여행(A.D.49~52)시 고린도에 가기 전까지, 그는 전도 방식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그 시에 할 수 있는 전도 방식으로 전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1차 전도여행(A.D.47~49)과 2차 전도여행 초반까지 사도 바울은 주로 이방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전도하되 주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동안 자신이 배웠던 율법에 기록된 그리스도가 어떻게 이 땅에 오셨는지를 설명해 주면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이야말로 자기 조상들이 그토록 바라고 기다렸던 메시야라는 것을 풀어서 알려 주면 되었다. 그렇지만 문제가 없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 중에 귀가 열린 사람들이야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였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바울을 두 분 하나님을 전하는 자로 판단하고는, 그가 신성모독죄를 짓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얼마 되지 않아서 바울은 각처의 전도지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쫓겨났고, 또한 데살로니가에서 베뢰아로, 그리고 베뢰아에서 아덴(아테네)으로 쫓겨나다시피 하여 그곳을 빠져나와야 했다.

  그런데 바울이 아덴에 도착했을 때에 또 다른 상황을 맞딱뜨리게 된다. 그에게 순전히 이방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지 않는 이방인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하는지를 고민한 끝에, 논리적으로 예수님을 설명해 주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바울은 아덴 사람들이 저마다 우상을 두고 섬기는 것을 보고는 그러한 사실에서부터 전도를 시작하였다.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제단도 거기에 있었다. 그러자 바울은 우주와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누군지부터 전했다. 그분이 온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신 분이라고 하면서, 그분이 인류를 한 혈통으로 만들었고, 이 땅에 살게 하셨으며, 인간의 연대를 정하시고 거주의 경계를 정하셨다고 했다. 그들 가운데 있는 어떤 시인의 싯귀처럼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그 신은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가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길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 신은 온 천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분이 온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시고 우상숭배의 죄로부터 구원할 한 사람을 보내 주셨는데, 하나님께서도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고 말했다. 

  이것은 메시야에 대한 기대나 정보를 모르는 이방인에게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전도 방식이었다. 그러나 반응은 싸늘했다. 그들은 바울이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한다고 하면서, 어떤 사람은 바울을 조롱하기도 하였고, 어떤 사람은 다시 듣겠다고 했으나 전도는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복음을 논리적으로 증언해 보았지만 그 결과는 싸늘했던 것이다. 그러자 바울은 속소로 돌아가서는 아덴을 떠나고 만다. 그리고 고린도로 이동하게 되는데, 그는 이제 많이 위축되었고, 약해졌으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복음 전파에 자신감이 떨어진 것이다. 그러한 사실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쓰고 있으니 "내가 너희 가운데에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고전2:3)"고 고백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비로소 바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어떻게 전도해야 이방인들에게서 전도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른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비로소 깨달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복음을 증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4. 바울이 깨달은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의 나타남'의 전도 방식은 무엇이었는가?

  바울은 생각했다. 그 해답은 바울이 이전에 빌립보에 갔을 때에 이방인을 어떻게 전도했는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때 바울은 마게도니아인의 환상을 본 후, 에게해를 건너 유럽 대륙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빌립보로 갔다. 처음에는 이전의 전도 방식처럼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래서 자주 장사 루디아를 얻었다. 그러다가 시내를 전도하던 중에 귀신들려 점치는 여자를 만났다. 그런데 그녀가 따라다니면서 바울의 전도를 방해했다. 그러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녀에게서 귀신을 쫓아 준다. 하지만 귀신이 떠나가자 점을 치지 못해 화가 난 그녀의 주인들이 바울을 고발해버린다. 그러자 지휘관들이 바울의 옷을 벗기고 매로 치고는 그를 감옥에 가두어버린다. 그러자 바울과 실라는 깊은 감옥에 갇혀 착고가 채워진 채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한다.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다시 기회를 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천사를 보내신다. 큰 지진이 일어났고 옥터가 흔들리면서 문이 열리고 모든 죄수들의 결박이 풀어지고 착고도 벗겨졌다. 그러자 간수는 죄수들이 도망친 줄 알고는 그만 자결하려고 한다. 죄수를 잘못 관리하면 자신이 똑같은 형벌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바울은 큰 소리로 그를 안심시키면서 말린다. 그러자 간수는 그동안 왜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되어서 옥터가 흔들리게 되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바울에게 자신이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자 바울은 간수의 집에 들어가 그의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그래서 그들이 세례를 받는다. 그리하여 이방인들이 빌립보교회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랬다.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논리적으로 그리고 설득력 있게 전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 앞에 이방인들이 굴복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자 이때를 기점으로 바울은 복음 전파 방법을 대대적으로 수정한다. 그래서 이때부터 바울은 말의 지혜와 아름다움으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5. 바울이 고린도에서 적용하기 시작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의 전도 방법이란 어떤 것인가?

  사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비로소 깨달아서 실천하게 된 전도 방법, 곧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도하는 방법은 바울이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전도할 때 사용하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전도할 때에 어떻게 했는가? 예수께서는 회당에서 율법 말씀만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셨고, 병든 자를 치유해 주면서 복음을 전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2년이 지났을 때에 예수께서는 자신의 12제자들에게 귀신 쫓는 권세와 병 고치는 능력을 주면서 그들을 세상에 전도하러 보내신다. 그러자 제자들이 나가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치유하면서 복음을 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린도에서 깨달았던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의 전도 방법은 이미 예수님께서 사용하시던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의 나타남'의 전도 방식은 어떤 것인가? 첫째, 성령의 나타남을 사용하여 전도하는 것이다. 이때 사도 바울은 '성령의 나타남'이 무엇인지를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 적어 놓았다. 그것은 성령의 초자연적인 9가지 은사를 사용하는 전도 방식이었다. 그것은 바로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함, 영들 분별함, 각종 방언말함, 방언들 통역함'이었다(고전12:8~10). 그렇다. 오늘날 우리가 제대로 된 전도를 하여, 불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하게 하려면, 우리도 성령의 은사를 받아 그것으로 전도해야 하는 것이다. 환상을 보고 불신자의 영적 상태를 파악한 뒤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 특히 질병이나 가난의 문제를 풀어 주는 방식으로 전도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능력의 나타남을 사용하여 전도하는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에 제자들에게 그냥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권면하지 않으셨다. 성령이 제자들 위에 내려와서 능력을 받으면, 그때에 나가서 전도하라고 하셨다(행1:8).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어떠한가? 성령이 위에 내려와서 능력을 받은 상태로 나가고 있는가? 아니다. 성경 구절을 외워서 전도하고 있다. 성령이 위에 내려오심으로 은사도 받고 능력도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때는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으며, 병든 자도 치유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안 믿는 자들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고서 예수님을 믿었던 것이 그때의 전도 방식이었다. 하지만 말로만 복음을 들어서 믿게 된 오늘날의 성도들은 예수의 이름의 능력도 모르고, 복음의 능력도 모른다. 그러므로 믿다가 떨어져 나가기도 하고, 예수님을 담대하게 전해 주지도 못한다. 특히 자기 자식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 주지 못해, 자기 자식들을 전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면서 새로운 전도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전에는 한곳에서 채 한 달을 채우지도 못한 채 쫓겨나야 했지만, 고린도에서는 1년 6개월을 유하면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의 나타남으로 전도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이동한 에베소서에서는 무려 3년 동안이나 머물면서 전도를 하게 된다. 그러자 바울의 영적 수준은 최고 수준에 오르게 된다. 왜냐하면 바울이 자신의 손을 얹기만 해도 기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울이 일하다가 땀을 닦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환자의 몸에 얹어도 병이 낫고 귀신이 떠나갔기 때문이다(행19:11~12). 

 

6. 어떻게 하면 나도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도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도 어떻게 하면 바울처럼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 안에서 전도할 수 있는가? 그럴려면 2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나도 바울처럼 성령의 나타남 안에서 전도하는 것을 사모하는 것이다(고전12:31, 14:1, 39). 그리하여 성령의 무기를 장착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모한다'는 말은 '젤로오'라는 동사인데, 이는 '열심을 내다, 열정적이다'는 뜻이다. 더불어 '본받으려고 노력하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대로 된 전도를 하려면 바울과 같은 방식으로 전도하는 것을 사모해야 한다. 아니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처럼 전도하는 것을 사모해야 한다.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를 사용해 복음을 전하는 것을 사모하는 것이다. 둘째, 열심으로 기도하는 것이다(행1:12~14). 왜냐하면 그래야 능력의 천사들이 달라붙게 되고 그럴 때에 나도 능력을 장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귀신잡는 군대천사의 도움을 받아서 귀신을 쫓아내며, 사람의 육체를 치유하는 치유천사의 도움을 받아 병을 치료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예루살렘교회가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얻게 된 데에는, 그들이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다(행1:12~14). 우리는 이 시대에 왜 다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무장해야 하는가? 그것은 불신자를 사로잡고 있는 귀신들을 때려잡지 않고서는 온전한 전도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불신자들의 육체 안을 보면 얼마나 많은 귀신들이 집을 짓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밖에도 어마어마한 숫자의 귀신들이 죽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바울처럼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의 초자연적인 은사와 능력으로 장착해야 한다. 

 

7. 나오며

  사실 오늘날 복음을 받아들였으나 그 믿음이 흐지부지 되는 것과 자기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지 못하는 이유에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기적을 맛보지 못했던 것과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자신도 그렇게 해서 간들간들하게 붙잡고 있는 신앙을 어찌 자녀들에게 담대하게 전해 줄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한국 교회는 지금 신앙 계승의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우리 세대가 끝나면 더 이상 한국 교회에 부흥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여태껏 우리나라 교회가 예수님과 초대 교회의 전도 방법을 사용하여 전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로만 복음을 듣고 전도받은 자들 중에, 상당수가 죽은 후에 구원을 받지도 못한 채 성밖이나 지옥에 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하지 못한 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환난이나 핍박이 찾아오면 과연 그것을 얼마나 이겨낼 수 있을른지 의문이다. 과연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신앙을 수호할 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마지막 때에는 능력으로 전도해야 하는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계11:5~6). 이제는 다시 초대 교회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사용하던 전도 방법을 배우고, 그래서 영적인 전도 무기들로 장착해야 한다. 그럴 때에 우리의 자녀들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면서 부모의 신앙을 물려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3년 05월 14일(주일)

정보배목사

2023-05-07(주일) 주일낮2부예배

제목: [천사론(1)] 하나님으로부터 파송된 천사들은 성도들을 과연 어떻게 돕는가?(히1:13~14)_동탄명성교회 정보배(정병진)목사

https://youtu.be/uaYJukIpWTQ [또는 https://tv.naver.com/v/35893050]

1. 들어가며

  성도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붙여 준 기도천사가 그 성도의 기도를 그릇에 담아서 하나님께 전달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적절하게 응답하신다. 그렇다면 그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응답하시는가? 어떤 것은 성령께서 응답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천사가 파송되어 기도가 성취되게 한다. 다시 말해, 기도 응답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적절한 천사가 파송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위기에서 건져 달라고 하면 능력의 천사를 파송하시고, 병을 고쳐 달라고 하면 치유천사를 파송하시고, 귀신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달라고 하면 전투천사를 파송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천사들이 구원얻을 상속자들을 수종든다고까지 언급한다. 이는 구원얻을 상속자들이 부릴 수 있는 천사들이 있음을 말해 준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천사들이란 어떤 존재이며, 인간과 관련된 천사들의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천사들 중에 하늘의 상속자인 거듭난 성도들이 부릴 수 있는 천사는 어떤 천사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시는가?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다(시65:2). 그런데 지상에서 드리는 성도들의 기도는 천사들의 손에 의해 향의 형태로서 그릇에 담겨 하나님께 보고되는 것이다. 개인 기도천사가 하나님의 보좌까지 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제 갓 믿은 성도들의 경우 영권이 약해 공중의 악한 영들을 뚫지 못한다. 그때에는 더 큰 능력을 가진 천사에게 전달하고, 그 천사는 더 큰 능력을 가진 천사에게 전달하여 결국 천국에 있는 기도 담당 천사에게까지 전달된다. 그러면 성도들의 기도는 기도 담당 천사의 금향로에 담기게 하고 그 천사는 그것을 제단에 붓는다(계8:3~4). 그러면 불이 타는 제단에서 태워진 향을 24장로들이 금대접에 받아서 거문고를 연주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다음에, 그 대접을 하나님께 올리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적절하게 응답해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까? 그것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의 천사들을 파송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다윗왕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천사들을 파송하시는지 자신의 시편에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능력이 있어서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여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시103:20)" 그렇다. 기도 응답은 바로 파송받은 천사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3.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초자연적인 일들은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가?

  사실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초자연적인 역사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어떤 필요에 따라 행하는 일이든지, 아니면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행하는 일이든지 대부분 천사들에 의해 수행된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렇게 말했다. "능력이 있어서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여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에게 수종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 천군이요, 여호와를 송축하라(시103:20~21)".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초자연적인 일들은 그 실체가 바로 천사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에 홍해 앞에 갇혀 있을 때다. 바로가 군대를 거느리고 뒤쫓아왔다. 그들을 떠나보낸 것이 후회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여 없애기 위해 급히 추격해 온 것이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려달라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다(출14:10). 그러자 그때였다. 이스라엘 백성 앞에 인도하던 구름기둥이 움직이더니 이스라엘 백성과 바로 군대 사이에 가서 서게 되었다. 그리고 밤이 되니 그것은 불기둥으로 변하였다. 그러자 바로의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 쪽으로 접근하지 못하였다. 그런 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지팡이를 들어 홍해가 갈라지게 한 뒤 새벽녘에 마른 땅을 건너게 하였다. 그런데 성경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설명해 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천사가 움직이자 곧바로 구름기둥과 불기둥도 이동했다는 것이다(출14:19~20). 그러므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바로 천사가 만들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도행전 12장을 읽어 보면,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모여 합심하여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행12:5). 그러자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의 천사가 내려온다(행12:7). 그러자 베드로를 묶고 있는 쇠사슬이 스르르 벗겨진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는데, 여러 명의 파수를 지나면서 나와도 파수들은 그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는 천사가 베드로의 쇠사슬을 풀어 주었기 때문이고, 파수의 눈들을 감겨버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천사를 파송하시는 것이다. 

 

4. 천사는 어떤 존재인가?

  천사란 어떤 존재일까? 천사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피조물로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심부름꾼으로 쓰시려고 창조된 영적 존재들이다(시103:22).

  그렇다면 천사들은 언제 창조되었을까? 창세기 2:1의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늘들과 지구(땅)를 창조하시고 또한 하늘들의 군대(짜바)가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하늘들의 군대를 다른 본문에서는 '천사'라고 언급한다(왕상22:19, 느9:7). 그렇다. 천지창조 때에 천사들도 함께 창조된 것이다. 그런데 욥기서 38:7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땅(지구)의 기초를 놓을 때에 천사들이 기뻐 노래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사는 적어도 지구가 창조되기 전에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하늘들을 창조하시고 지구를 창조하기 전에 천사를 창조하신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천국에 가 보면 이들이 거주하는 처소가 따로 있음을 알 수가 있는데, 이들의 거처는 하나님의 보좌 아래의 뒷편의 공간이다. 천사들은 그곳에서 파송받기 위해 항상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사는 무슨 목적으로 창조되었는가? 성경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천사는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시103:20~22). 그리고 나중에는 구원얻을 상속자인 우리 인간을 위해서도 창조되었다는 사실까지 확인할 수 있다(히1:14). 천사가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함은 2가지 이유를 의미하는 것인데, 하나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영광돌리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계5:11~12).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하기 위해 천사들이 창조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에게 수종들기 위해 창조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을 잘 수행하도록 천사들에게 힘과 능력과 지혜를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시103:20, 벧후2:11, 겔28:12). 하지만 모든 천사들은 다 똑같은 힘과 능력과 지혜를 가진 존재로 창조된 것은 아니다. 이들이 천군(하늘의 군대)이니만큼 계급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천사가 하나님만 수종들라고 창조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을 상속자들도 섬기고 수종들라고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다(히1:14). 그러므로 지금도 하늘에서 천사들은 하나님께 수종들기 위해 5분 대기조처럼 대기하고 있으며, 구원얻을 상속자들의 명령에도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5. 천사들은 어떤 종류로 구분되어지며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가?

  사실 천사들이 얼마만큼 많은 수로 창조되었으며, 무슨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창조되었는지를 전부를 알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성경에 나온 말씀을 바탕으로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추정해 볼 뿐이다. 왜냐하면 천사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는 천천만만이라고 했으며(계5:11), 그들이 하는 역할을 살펴보면 다양한 종류의 천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선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그룹천사'와 '스랍천사'가 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따르면, 물을 다스리는 천사, 불을 다스리는 천사, 바람을 다스리는 천사 등 자연을 다스리는 천사들이 있으며, 다니엘서의 말씀에 따르면, 국가를 다스리는 천사가 있음도 알 수 있다. 또한 자연(지해강천)에 지진과 가뭄 등의 재앙을 일으키는 천사도 있고, 사람을 전쟁과 전염병 등으로 괴롭히고 죽이는 천사들도 있다. 또한 천사들 중에는 인을 치는 천사도 있고 사람을 보호하는 수호천사도 있다. 

  그런데, 유대 전승의 기록과 외경들의 기록 그리고 직접 천국에 들어가서 보고 온 자들에 의하면, 천사들은 각기 고유의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그 역할에 따라 고유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정리해 보면, 대략 7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천사들의 역할이 7가지만 있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라 구분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들은 크게 예배천사, 기록천사, 건축천사, 경비천사, 전투천사, 치유천사, 소식전달천사로 구분된다. 물론 이들은 군대들이므로 군대처럼 계급이 있고 최고 꼭대기에는 천사장들(괄호)이 있다.

  이들 천사들 중에는 하늘에만 있는 천사들이 있고 이 땅에 내려와서 일하는 천사들도 있는데, 하늘에만 있는 천사들에는 첫째, 기록천사(우리엘), 둘째, 건축천사(사리엘), 셋째, 경비천사(라구엘)이다. 이들 중에서 첫째로, ‘기록천사’는 생명책과 행위책을 담당하고 있으며, ‘행위책’은 모세가 관리하고 있다. 둘째로, 건축천사(사리엘)가 있다. 건축천사는 소식전달천사가 보고한 것을 바탕으로 기록된 행위책을 보고 가서 천국에 우리들이 장차 거할 집을 짓는다. 집을 지을 때에는 먼저는 땅을 정지하는 작업을 하고 생명수가 들어오도록 물꼬를 만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땅 평수에 따라 건축물을 짓기 시작한다. 거기에 들어가는 것들은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행했느냐에 따라 결정이 되는데, 예를 들어, 우리가 “예수믿고 천국가세요”라고 말하면, 즉시 천국집의 우리 연못에 물고기 한 마리가 쏙 생긴다. 그리고 교회에서 열심히 청소하든 밥을 짓든 어떤 봉사를 하면, 천국집의 정원에 꽃 한 송이가 생겨난다. 그런데 우리가 열심히 수고하되 세상 사람들로부터 대접을 받지 아니했을 때에 천국집이 더 아름답게 보석으로 꾸며진다. 그리고 셋째로 경비천사는 천국에 악한 영들이나 성밖에 있는 사람들이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12대문에서 지키는 역할을 한다. 일종의 수도 경비 사령부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 있으면서 이 땅에도 내려와서 일하는 천사들은 다시 4가지가 있으니 첫째로, 예배천사(예레미엘))가 있는데, 이들은 하늘에서도 악기를 연주하고 찬양하면서 예배를 드리지만, 이 땅에서 예배드릴 때에도 내려와서 우리의 찬송을 받아서 하나님께로 바치기도 한다. 그리고 둘째로, 전투천사(미가엘)가 있다. 이들은 마귀와 그의 귀신들을 쫓고, 귀신들을 음부로 끌어가는 천사들이다(유1:9, 단12:1). 하늘의 군인들이 이들이다. 셋째로, 치유천사(라파엘)가 있다. 이들은 병을 치료하는 천사들로서, 보혈과 생수를 들이붓는다. 그리고 의료 기구인 메스, 붕대, 고약, 주사기를 가져와서 수술하기도 하며, 때로는 우리의 영혼을 천국 병원(3층짜리)으로 입원시켜 치료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섯째로, 소식전달천사(가브리엘)가 있다. 이러한 소식 전달 천사들 중에는 개인마다 2명의 기도천사가 달라붙어 있어서 기도할 때마다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님께 전달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전도하고 헌신하고 봉사했을 때에 그 행위들을 하나님께 보고한다. 

 

6. 천사들 중에 구원얻을 상속자들이 부릴 수 있는 천사들은 어떤 천사들인가?

  천사들은 원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수행하도록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듣는다. 그런데 이 땅에는 장차 천국에 들어가서 거할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이미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열심히 수고하고 전도하고 사역하여 하늘나라를 상속받을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이 지상에서 살고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천사들을 부릴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그런데 이러한 특권은 모든 천사에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막16:17~18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딱 2가지 종류의 천사들을 부릴 수가 있는 것이다. 즉 천사들 중에 딱 두 종류의 천사들이 우리와 동역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천사들에는 첫째로 '전투천사'가 있고 둘째로 '치유천사'가 있다. 

막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그렇다면 누가 귀신을 쫓아내는 전투천사와 병을 치유하는 치유전사를 부릴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한 가지 조건이다.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실체를 알아보면, 정말로 성령받아 구원받은 자가 되어서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라면 2가지 종류의 천사들을 부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하고 천사들에게 명령했을 때, 금방 낫는 자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잘 낫지 않는가? 그것은 사람마다 영권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사람의 영권에 따라 부릴 수 있는 천사의 숫자가 다르다. 그리고 높은 계급의 천사들까지도 부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영권을 강하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다음의 몇 가지 사항을 준비해 가면 된다. 첫째는 회개를 많이 해서 자신이 깨끗한 자가 되어야 한다. 더러우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그릇으로 잘 안 쓰시기 때문이다. 둘째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예수 믿고도 죄를 짓는 자는 성밖이나 지옥에 떨어질 수 있고, 귀신들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영권을 허락하지 않는다. 셋째는 부모가 영권이 있었던 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조금 더 높은 영권을 물려받을 수도 있다. 넷째는 그러한 부모가 없더라도 영적인 스승을 두어 엘리사가 엘리사를 스승으로 두어 영권을 물려받은 것처럼 그렇게 물려받을 수도 있다. 다섯째는 무엇보다도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특히 방언 기도를 많이 하여, 자신의 영을 강하게 하고 영적인 일에 예민하게 해야 한다. 그러면 많은 은사가 뒤따라오기 때문이다. 


7. 나오며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일하신다(요5:17). 그런데 그 일을 주로 수종들고 있는 천사들을 시켜서 행하신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초자연적인 일들은 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시켜 일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천사들에게는 힘과 능력과 지혜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천사들의 1/3이 타락하여 귀신들이 되었으니, 하나님이 행하지 않는 초자연적인 일들에는 사실 귀신들이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 초자연적인 것을 경험하려면 하나님을 의지하든지 귀신을 의지하면 된다. 그러나 귀신들은 우리들에게 힘과 능력과 지혜를 주어서 쓰다가도, 우리들의 죄가 차는 즉시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내려간다. 귀신들은 도둑놈들로서 우리의 영혼과 육체와 지식과 건강을 도둑질할 뿐만 아니라 죽이고 멸망시키기 때문이다(요10:10).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하나님만 섬기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에 우리가 요청할 때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 그리고 기도에 따라, 우리의 영권에 따라 파송받는 천사들이 파송된다. 그중에서도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이 부릴 수 있는 천사들이 따로 있으니, 그들은 바로 귀신을 쫓아내는 전투천사들이요, 병을 치료하는 치유천사들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공생애 후반에 당신의 12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실 때에, 회개하라 전파하고 천국을 함께 전파하라 하시면서(마10:7~8, 막6:12~13, 눅9:1) 그들에게 2가지를 들려주셨다. 그것이 바로 귀신을 쫓는 권세와 병을 고치는 능력이다(마10:1, 눅9:1). 그리고 그것의 실체가 바로 전투천사이며 치유천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회개 많이 하고 기도 많이 하여 이러한 천사들을 부릴 수 있는 영권을 더 가져야 한다. 그래서 회개와 천국복음을 땅끝까지 전해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2023년 05월 07일(주일)

정보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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