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10) 하나님(예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면 어떻게 되는가?(렘11:1~12:17)_2023-02-17(금)

https://youtu.be/dHnT9ANcSD0 [또는 https://tv.naver.com/v/33254149]

 

1. 언약(言約)이란 무엇을 가리키는가?

  한글로 '언약'이라는 말은 '쌍방 간에 말로 하는 약속'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언약'(히브리어로 '베리트', 헬라어로 '디아데케')이라는 단어는 말로 하는 약속이라기보다는 '맹세의 서약(체결)'에 더 가깝다. 왜냐하면 쌍방 간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을 가리켜 '언약'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이 언약을 깨뜨린다면 쌍방 간에 체결된 모든 효력이나 특권이 상실되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가 원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한 번 언약을 체결했으면 쌍방 간에 그것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체결한 언약은 결국 이스라엘의 배반으로 끝이 난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세운 '구 언약'을 파기하시고 장차 영적인 이스라엘인 교회와 더불어 '새 언약'을 체결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렘31:31~34)

 

2. 하나님은 언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체결했으며 그 언약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B.C.622~609년의 어느 어간에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 언약의 준수를 남유다에게 다시 한번 요구하신다(렘11:6). 이 언약을 다시 듣고 지키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체결했는가? 그것은 그들의 조상들이 출애굽한 후 B.C.1446년경 시내산에서 체결한 것이다. 그러니까 출애굽한 1세대들과 하나님께서 언약을 체결한 것이다(출19~20장).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 지키고 보호해 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약속의 땅인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었다(렘11:4~5). 이것은 출애굽 1세대의 배신으로 결국 그때로부터 40년이 지나 B.C.1406년 출애굽 2세대들과 함께 모압 평지에서 다시 체결하신다(신5:1~21). 

  그렇다면 그때 하나님께서는 어떤 내용의 언약을 체결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이스라엘 백성을 쇠풀무인 애굽의 압제 가운데서 건져내시어,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실 여호와 하나님만을 참 신으로 알고 섬기라는 것이었다. 이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출20:1~17). 만약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긴다면 그들과 맺은 언약은 쓸모가 없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결국 이 언약을 깨뜨리고 말았다. 

 

3. 그때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그들에게 어떤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가?

  그때 하나님께서는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한다면 3가지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출19:5~6).

  첫째는 모든 민족 가운데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석처럼 귀한 존재,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실패했다. 그래서 이제는 교회가 그 배턴을 이어받았고 그들 중에 일부가 영광스러운 보석이 되어가고 있다. 둘째는 이스라엘 민족이 모든 민족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겠다고 하셨다. 이는 이스라엘 민족이 다른 모든 민족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감당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다. 왜곡된 선민사상에 빠져 있었고 자기들만 구원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촛대를 이스라엘에게서 교회로 옮기셨다. 그리하여 지금 교회가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셋째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고 하셨다. 여기서 '거룩'이라 함은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장 깨끗하게 하고 구별시켜, 하나님을 닮은 백성이 되게 해 주시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이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으며, 결국 교회에게 그 역할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교회 중의 일부가 거룩한 신부로 단장하고 있다. 

 

4. 하나님께서 언약을 체결하신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언약을 체결하신 것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은 언약을 파기하고 만다. 먼저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12부족 국가 체제를 전전한다. 그러다가 사울의 시대에 왕정 국가를 이룬다(재위 B.C.1050~1010년). 그리고 그로부터 3대 째에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으며, 북이스라엘은 B.C.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당했고, 남유다는 B.C.586년 4월 9일에 멸망당하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 이 언약 이야기를 꺼내시는 하나님께서는 왜 과거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조상들 대신에 예레미야 시대의 사람들 곧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게 언약 이행할 것을 요구하셨는가? 그것은 '이스라엘'과 '유다'라는 말이 특별한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이스라엘'은 야곱의 다른 이름으로서, 하나님과 사람이 겨루어 이겼다는 뜻에서 새로 부르게 된 이름이다(창32:28). 이는 장차 '이긴 자'가 결국 영원한 언약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유다'는 비록 죄를 지어 포로로 잡혀갔으나 끝까지 이방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고 신앙의 지조를 지킨 베냐민과 유다 지파를 일컫는 말이다. 둘째로, 유다'는 '지조를 지킨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고로 하나님께서 언약을 체결하신 대상으로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말씀하신 것은 장차 새 언약은 '이긴 자'가 되어야 하고, '지조를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고로 오늘날에 들어와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은 예수님의 피로 새 언약을 체결한 교회가 이어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 가운데 이기는 자가 있고 지조를 지키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5. 예레미야 당시 시내산 언약을 깨뜨린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과연 어떤 벌을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셨는가?

  예레미야가 예레미야서 중에서 11:1~12:17에 기록한 말씀을 선포할 당시는 B.C.622년 요시야왕이 종교개혁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 된 율법책 발견 이후의 시기로서, 요시야의 통치 후반기인 B.C.622~609년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과의 언약이 깨뜨려진 상태였다(렘11:10). 왜냐하면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이미 버린 채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고 있었으니, 바알신과 아세라신, 니므롯신과 하늘 여왕(세미라미스, 아스다롯), 인신제사를 받는 몰렉신과 같은 여러 신들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때 유다가 섬기는 신들의 수가 유다의 성읍의 수와 같다고 하셨고, 그들이 바알에게 분향하는 제단의 수는 예루살렘 성의 숫자만큼 많다고 하셨다(렘11:13). 그러니 하나님께서도 역시 시내산 언약을 깨뜨려 버린 이스라엘 민족에게 벌을 내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분이 그들에게 내릴 것은 곧 '저주'이자(렘11:3) '재앙'이라고(렘11:11,17) 말씀하셨다. 여기서 '저주'는 선언으로의 저주('케랄라')가 아니라 실체로서의 저주('아라르')를 가리킨다. 이는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의 특별한 관계를 청산하시고 그들을 아주 멸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흩어 버리시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유다는 북방으로부터 오는 민족 곧 바벨론의 침공을 4차례나 받아 결국 멸망을 당하고, 얼마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 

 

2023년 02월 17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09) 참 신과 가짜 신의 구별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렘7:1~10:25)_2023-02-16(목)

https://youtu.be/_el_yGJDSYI [또는 https://tv.naver.com/v/33254140]

 

1. 예레미야서에서의 단편 예언 12개 가운데 제3예언은 어떤 것인가?

  예레미야서에는 12가지 단편 예언들이 나온다. 그것은 본론(2~51장) 앞부분에 배치되어 있다(2~25장). 이들 중에서 제3예언(렘7:1~10:25)은 예레미야 7장부터 10장까지의 말씀을 가리킨다. 예레미야는 이 부분에서 왜곡된 성전숭배를 중심으로 한 총체적인 신앙 오염을 고발하고 심판을 예언하고 있다. 이 예언이 선포된 시기는 정황으로 보건대, 아마도 남유다 제18대 여호야김(B.C.609~598 재위)의 즉위 초인 듯하다. 이때는 바벨론의 1차 침공(B.C.605년) 직전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3가지다. 첫째는 남유다의 왜곡된 신앙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하고, 둘째는 남유다의 멸망이 되돌이킬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알려 주는 징표가 과연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셋째로, 참 신과 가짜 신을 구별하는 방법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2. 남유다의 왜곡된 신앙은 어떤 것이었는가?

  예레미야의 제3예언 중에서 남유다의 왜곡된 신앙은 예레미야서 7장에 나온다. 예레미야 7장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성전 문 앞에서 선포했다고 해서 보통 '성전설교'라 불리고 있다. 그러나 예레미야서 가운데 '성전설교'는 예레미야 7장 외에도 26장에 한 번 더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남유다의 왜곡된 신앙에 대해 예레미야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들이 비록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예루살렘 가운데에 성전이 있는 한 예루살렘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성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니, 이스라엘이 아무리 범죄하여도 하나님께서 당신이 계신 곳을 스스로 파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더불어 그들은 자기들을 할례를 받은 언약의 자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램9:25~26). 그래서 그들은 할례받지 아니한 이방인들은 멸망을 받는다고 해도, 하나님은 자기 민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기 민족 만큼은 절대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즉 자기들에게 만큼은 재앙이 임하지 아니할 것이고, 칼과 기근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렘5:12). 그러나 이것 역시 모두 다 왜곡된 신앙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채 형식만 가지고 있는 자들을 온전한 신앙인이라고 보시지 않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제사나 예배는 헛된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성전제사나 할례는 헛된 것으로 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이방신이나 우상들을 동시에 섬기는 신앙은 결코 하나님께서 용납하시는 신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섬기는 여호와께서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며, 그분은 자기의 백성들이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는 자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하셨다(렘9:24).

 

3. 남유다의 멸망이 이제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서 이미 결정된 것임을 알려 주는 표징은 무엇인가?

  남유다의 멸망이 이미 결정된 것임을 알려 주는 표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남유다의 가장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선지자와 제자들까지, 왕들과 백성들까지 총체적으로 부패하였다는 사실이다(렘8:10~11). 둘째는 남유다가 북이스라엘을 좇아서 높은 산과 푸른 나무 아래서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렘7:18,31). 즉 하나님께서 극도로 싫어하시는 1~2계명을 그들은 어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개하도록 보낸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렘7:25~26). 그러나 하나님께서 확정적으로 그것을 알려 주는 표징으로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다는 사실이다(렘7:16, 참고11:16). 기도해봤자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막으신다면 더 이상 소망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기도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 참 신과 가짜 신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참 신과 가짜 신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가르쳐 주셨는가? 그것은 예레미야서에서는 2가지로 나온다. 그런데 이샤야서를 읽어 보면 또 한 가지 방법이 추가로 더 나온다. 고로 그것까지 합치면 약 3가지 정도가 참 신과 가짜 신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천지를 창조하지 않았으며 자신도 피조물인 것들은 다 가짜 신이라고 하셨다(렘10:11). 하늘들과 땅 그리고 온 세계를 창조하지 않은 신은 가짜라는 것이다(렘10:11). 고로 이러한 신들은 역시 자신도 피조물로서, 결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창조주만이 하늘들과 땅 그리고 온 세계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온 세계 안에 있는 것들 곧 물과 구름과 비와 번개와 바람을 주관하시는 분은 주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뿐이시기 때문이다(렘10:12). 그러므로 가짜 신은 결코 어떤 것도 창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만 이미 창조된 것들을 제한적으로 파괴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둘째, 자기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생명을 줄 수 없는 신은 가짜라고 하셨다(렘10:14). 그렇다. 가짜는 제한적으로 죽일 수는 있지만 결코 그들은 생명을 줄 수 없다. 이는 모든 피조물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 뿐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늘 하시던 말씀은 자신은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나는 생명의 물이다(요4:14).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6:35). 나는 생명의 빛이다(요8:12). 나는 생명이다(요14:6)". 그렇다. 오직 하나님만이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당신이 만든 피조물들에게 생명을 주실 수도 있는 분이시다. 

  셋째, 이 말씀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말씀으로서, 지나간 과거는 혹 알 수 있는 것도 있으나 미래에 되어질 일들을 알지 못하고 있으면 그는 가짜 신이며,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어도 역시 가짜 신인 것이라는 것이다(사41:21~23). 그렇다. 무당은 가짜 신을 믿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무당이 점을 쳐주는 것은 전부 과거의 사실만 말하는 것 뿐이다. 그것은 점치러 온 사람에게 붙어 있는 악한 영에게 물어보아서 알아낸 정보를 말해 줄 뿐이다. 무당이 의지하는 귀신들도 사실은 천사였다가 타락한 것들이기 때문에, 그들도 역시 듣고 배워서 그리고 경험해서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마치 그런 것처럼 속이고 있을 뿐이다. 특히 무당들은 귀신을 힘입어 점을 치는 자들이기 때문에 과거의 정보는 어느 정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무당 속에 들어 있는 귀신이 클수록 더 많은 정보를 말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전부다 과거의 정보일 뿐 미래의 정보는 하나도 없다. 만약 미래의 정보를 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자기들도 모르는데 그렇게 되도록 점치러 온 사람에게 귀신을 딸려 보내서 그러한 일이 발생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장래사나 후래사를 알 수 없다. 그리고 어떤 우상도 전능하지 않다. 일부 힘만 발휘할 뿐이다. 왜냐하면 귀신들은 원래 천사요, 창조된 피조물로서 능력을 주어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게 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물론 계급에 따라서 능력도 각각 다르지만 말이다. 다시 말해서 악한 영들도 지식을 가지고 있고 능력도 있지만 그들이 가진 지식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5. 참 신과 가짜 신을 구분할 수 있는 기타 다른 방법은 무엇인가? 

  참 신과 가짜 신을 구분할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역시 있다. 그것에는 첫째로, 스스로 존재하지 않고 창조된 모든 것은 다 가짜 신이라는 것이다. 귀신도 천사였기에 어느 정도 정보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자존자가 아니다. 그들은 창조주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가짜 신은 동시에 존재가 불가능하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고로 스스로 있지 않는 모든 피조물은 다 가짜 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로, 가짜 신은 자기들도 전능한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 아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손을 떠난 피조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으로서, 그것을 선한 목적으로 사용하시든지, 악한 목적으로 사용하시든지 하나님의 주관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한 분 하나님 곧 여호와요 신약에는 예수님이신 한 분 하나님만 참 신으로 믿고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란다. 

 

2023년 02월 16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08) 진정한 회개의 조건 4가지는 무엇인가?(렘3:6~6:30)_2023-02-15(수)

https://youtu.be/ediVq8AnBAk [또는 https://tv.naver.com/v/33254109]

 

1. 예레미야가 회개를 촉구하는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예레미야가 남유다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했던 목적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것은 과연 남유다를 멸망함으로부터 건져내는 것이었을까? 아니었다. 예레미야가 남유다를 향해 회개를 촉구했던 것은 이미 예고된 멸망을 돌이키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남유다 백성들 중에서 다만 몇이라도 건질 자를 건지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 얻기를 바라시지만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지는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자유의지로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에 참여하기를 진정 바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남유다 백성은 선지자를 통해 외치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2.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 회개에 동참하여 구원얻을 사람은 대체 얼마나 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 회개에 동참하여 과연 천국에 들어갈 사람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극소수일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회개를 촉구했어도, 진정 예레미야의 외침을 듣고 회개에 동참하여 구원얻는 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그 숫자를 언급하셨는데, 그것은 성읍에서 한 명 정도요 족속 중에 둘 정도라고 말씀하셨다(렘3:14). 이 숫자가 회개의 외침을 듣고 구원얻을 자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 중에 보좌에 앉을 144,000명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천국에 들어가는 숫자가 그 숫자만큼 적을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 성읍에 한 명, 족속에 둘 이라는 말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마도 144,000명에 포함될 숫자를 말하는 것같이 보인다. 

 

3.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12가지 단편 예언들 중에 2번째 단편 예언의 말씀은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서에 말씀하신 단편 예언들이 앞부분에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2장부터 25장에 수록되어 있다. 그것들 중에서 제1예언은 2:1~3:5까지 말씀이며, 제2예언은 3:6~6:30까지의 말씀을 가리킨다. 전후 문맥으로 볼 때, 제1예언은 요시야왕이 종교개혁을 시도하기 전에 주신 말씀으로 보이며, 제2예언은 요시야왕이 종교개혁(B.C.622년)을 단행한 이후에 주신 말씀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제2예언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북이스라엘을 답습한 남유다의 심판에 관한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남유다 백성들에게 진실한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남유다 백성들이 비록 요시야의 종교개혁에 동참하였으나 그들의 동참은 아주 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4. 남유다는 종교개혁 중에도 어떤 것을 답습하고 있었는가?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자매'라고 하셨다. '언니'가 '북이스라엘'이고 '동생'이 '남유다'라고 하셨다(렘3:6~7). 그런데 북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다가 그만 회개하지 못하고 나라가 망해버렸다. 그때가 B.C.722년 남유다의 13대 히스기야왕 때다. 이때 북이스라엘은 19대 호세아왕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앗수르의 살만에셀의 침입을 받아 나라가 멸망했다. 그런데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의 모습을 자기들도 역시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남유다는 언니 북이스라엘의 영적 음행을 그대로 따라가고 말았다. 높은 산 위의 푸른 나무 아래에서 우상들을 섬기면서 그들에게 절하며 향을 피웠고 음식을 바쳤기 때문이다(렘2:20, 3:6).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을 가리켜 '변절자'라고 말씀하셨고, 이혼 증서를 써서 그들과 이혼한 관계라고 언급하셨다(렘3:6,8). 그런데 이것을 지켜본 남유다도 역시 똑같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따라가고 있었다. 남유다도 북이스라엘과 똑같이 '돌'과 '나무'와 더불어 영적 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여기서 '돌'이라 함은 남성신으로서, '풍요'를 상징하는 '바알신'을 가리키고, '나무'라 함은 여성신으로서, '다산'을 상징하는 '아세라신'을 가리킨다. 

 

5.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회개의 4가지 조건을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남유다가 주님께 돌아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4가지를 언급하셨다.

  그것은 첫째로, 가증한 우상들을 제거하되 망설이지 말고 제거하라고 하신 것이다(렘4:1). 이는 이방신들과 완전한 결별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렇다. 회개는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들과의 완전한 결별을 하는 것이라야 한다. 하나님도 섬기면서 우상들도 함께 섬겨서는 절대 아니 되는 것이다. 둘째로, 진실과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회개여야 한다고 밀씀하셨다(렘4:2). 즉 회개는 말이 아니라 삶이 따라오는 회개여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행함으로 그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회개란 사실상 하나님께서 회개로 인정해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이요, 또한 행함없는 믿음이 죽은 것같이, 행함으로 나타나지 않는 회개 역시 죽은 회개일 뿐인 것이다(약2:26). 셋째로,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위에 씨를 뿌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렘4:3). 이는 기존에 갖고 있는 생각과 관념을 뒤집어 엎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낱낱이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가시덤불 위에 씨를 뿌리는 격이 되고 말아서, 결코 열매를 수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내 마음이 잘못된 생각과 관념을 유지한 채로 회개하면, 회개의 모양은 있겠지만 그 결과는 결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시덤불 위에 씨를 뿌리면 그 사이에서 씨앗이 싹은 틔우겠지만 결코 열매를 거두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넷째로, 스스로 할례를 행하되 자신의 마음의 가죽을 제거해야 한다고 하셨다(렘4:4).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진정 마음을 다해서 돌이키는 회개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심을 담지 않은 회개는 회개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시야왕 때에 남유다 백성이 그러했다. 그들도 역시 요시야왕의 종교개혁에 동참하고 있는 듯했으나 그들은 위의 4가지와 같은 진실한 회개를 실천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참된 회개가 무엇인지를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알려 주시면서,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유다는 회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무인 그들에게 불이 되어 그들을 사를 것이라고 하셨다(렘5:14). 

 

2023년 02월 15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07) 구약시대에 회복이 불가능한 2가지 죄는 무엇이었는가?(렘2:1~3:5)_2023-02-14(화)

https://youtu.be/6IszWb5P8OI [또는 https://tv.naver.com/v/33254108]

 

1. 예레미야 선지자는 구약시대의 인물인데 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가?

  예레미야는 구약시대의 인물이다. 그는 B.C.627년(요시야 13년)~B.C.586년(시드기야 11년)에 활동한 남유다 선지자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를 주목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가? 그것은 그가 예수님 당시에 메시야를 예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세례 요한과 엘리야의 뒤를 이어 메시야의 예표자로 불려졌기 때문이다(마16:14). 그는 예루살렘 성이 망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려야 했으며,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엄청난 책망을 쏟아냈던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예수님처럼 홀로 어쩌면 외로이 자신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야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레미야를 메시야의 예표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우리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2. 예레미야 2:1~3:5의 말씀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예레미야서는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은 1장으로서 예레미야의 소명과 사명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결론은 맨 마지막 52장으로서, 예루살렘이 정말 멸망하는 과정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여호여긴왕이 어느 정도 회복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 남유다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중간이 본론 부분인데, 본론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눠진다. 첫째로, 먼저 유다의 심판에 관한 12가지 단편 예언들이 나온다(2~25장). 그리고 둘째로 예루살렘 멸망 전후에 있었던 이야기와 심판 예언이 나온다(26~45장). 그리고 셋째로, 남유다 주변에 있는 10개국에 대한 미래와 운명 예언이 나온다(45~51장). 그중에서도 예레미야 2:1~3:5의 말씀은 본론의 유다의 심판에 관한 단편 예언들이 기록되어 있는 2~25장의 맨 첫 부분으로서, 12가지 단편 예언들 중에 첫째 예언에 해당한다. 그리고 학자들은 이때를 예레미야가 부름받은 직후(B.C.627)의 어느 시점으로 적어도 요시야왕이 종교개혁(B.C.622)을 아직 시작하지 않는 시점에 받은 것으로 본다. 

 

3. 남유다에 관한 제1예언의 핵심 사항으로서, 구약시대에 회복이 불가능한 2가지 죄는 대체 무엇인가?

  남유다에 관한 제1예언(2:1~3:5)의 핵심 사항은 예레미야 2:13에 나와 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저수조)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저수조들)이니라(렘2:13)" 그렇다. 남유다 백성이 두 가지의 악을 행한 것이다. 하나는 그들이 생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버린 것이요 또 하나는 물을 가두어 놓기 위해 스스로 웅덩이(저수조)를 팠지만 그 웅덩이는 물을 저장할 수 없는 터진 웅덩이를 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배은망덕하여 하나님을 저버렸다는 것인데 이같은 사실은 2:1~2:12에 나오며, 또 하나로 터진 웅덩이를 팠다는 것인데, 이것은 2:14~3:5에 그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 죄가 회복이 불가능한 죄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심판의 불가피성을 언급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는 더이상 죄를 그냥 묵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오직 심판으로서만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유다의 멸망은 이미 결정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다만 죄가 조금 덜 차서 그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죄가 가득 차야(관영해야)만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노아의 홍수 때를 보라. 그때 죄가 관영했다고 했다. 즉 그때도 역시 죄악이 가득찼기에, 하나님께서도 홍수를 통해 전 인류에게 심판을 행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무슨 죄를 저질렀길래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 놓여 있었는가? 그것은 좀 전에 렘2:13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첫째는 하나님을 버린 죄요, 또 하나는 터진 웅덩이를 판 죄인 것이다. 

 

4. 회복 불가능한 2가지 죄는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가리키는가?

  남유다가 심판을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은 무슨 죄 때문인가? 그것은 첫째, 그들이 하나님을 버린 죄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망각하고 은혜를 저버린 죄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어 하나님을 버리게 되었는지를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민족의 태동기 때 곧 출애굽 하여 광야에 있을 때에는 그들이 하나님을 따랐지만(렘2:1~3) 그들이 기름진 가나안 땅에 정착하자 그만 하나님을 저버렸다는 것이다(렘2:4~8). 왜 그랬는가? 그것은 그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을 때에는 그곳 사막에서는 농사할 수 없었기에 하나님이 주신 양식(만나, 메추라기, 반석에서 생수)만을 바라고 먹었으며, 또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받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기름진 땅, 과목이 있고 농사를 할 수 있는 땅에 이르자 금새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 살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도 살 만했기 때문이다. 이는 남유다가 가나안 정착 때부터 배도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렘2:4~8).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방 지역의 사람들 곧 서쪽의 깃딤의 사람들이나 동쪽으로 게달 민족을 보더라도, 그들이 비록 하나님을 섬기지는 않는다 해도 자신의 신들만큼은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유다는 자신의 신을 무익한 것들과 바꾸어 버렸다는 것이다(렘2:10~11).

  둘째, 그들이 스스로 웅덩이를 팠는데 터진 웅덩이를 판 죄 때문이다. 이스라엘 나라는 물이 귀한 나라다. 그래서 물이 생명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와 천국의 모든 땅을 적시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이치다. 그런데 그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있을 때에는 물을 저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광야는 물을 흡수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도착하니 물을 가둬놓을 수가 있었다. 그래서 저마나 농사를 위해 웅덩이(저수조)를 만들어 농사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것은 다 터진 저수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의지했던 가나안의 신들 및 우상들, 그리고 주변 민족들(애굽과 앗수르)은 생수를 계속해서 공급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고로 남유다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섬기기 시작한 신들 및 우상들 그리고 주변 민족들은 다 가짜였던 것이다. 일시적으로 그들에게 물을 공급해 줄 수는 있지만 그들은 결코 하늘에서 단비와 늦은 비를 제공해 줄 수는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이 생수의 근원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하늘에서 단비와 늦은비를 공급해 줄 수 있는데, 남유다 백성들은 터진 웅덩이를 하나님으로 알고 그들을 섬기고 있다는 것이다.

 

5.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사항은 무엇인가?

  그러자 하나님께서 유다에 대한 심판의 불가피성을 신명기의 말씀을 들어서 언급하신다. 그것은 어떤 남자의 아내가 수치되는 일이 발견되어서 이혼증서를 써서 보내면 그 여자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갈 수 있으나 그 남자에게서 또다시 버려질 경우 다시 본 남편이 그 아내를 취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하다고 하셨다(신24:1~4). 그러므로 그 아내가 아무리 불쌍하다고 할지라도 전 남편은 그를 아내로 맞이하지 말라는 것이 율법 규정이었다. 그러므로 남유다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며 살고 있는데, 그들도 얼마 안 있으면 이방신들에게 버림을 당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또다시 받아 주겠느냐고 물으시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은 어리석어서, 하나님은 자기들의 소시적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노여움을 한없이 내지 않으실 것이고, 끝까지 노여움을 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렘3:4~5). 하지만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겠느냐면서 반문하신다. 그렇다. 이와 같은 상황은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복음이 들어왔던 초기에는 가난했고 병들었기에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눈물로 기도하여 잘사는 나라를 일구어 놓았는데, 이제 나라가 살만해지니까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가는 상황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이미 나를 구원하였으니 그분을 절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이 한국 교회다. 그리고 그 이유는 한 번 구원을 받았으면 영원히 구원을 받은 것이요, 자신의 구원은 만세 전에 작정된 전적인 예정에 따른 것이니 자신은 절대 지옥에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과거에는 내 아내였지만 다른 남자에게 가서 그 남자에게서까지 버려진 아내를 다시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기 때문이다. 

 

2023년 02월 14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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