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93) 예루살렘 도착한 바울이 결례를 행한 것은 과연 옳은 선택이었나?(행21:17~26)_2023-01-04(수)

https://youtu.be/29lVqbp5qWk  [혹은 https://tv.naver.com/v/32116473 ]

1. 다메섹 체험 이후 바울의 생애 가운데 최대의 흠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은 무엇인가?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 전파에 힘쓰게 된다. 그런데 그의 생애에 흠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두 번은 흠이 보인다. 첫 번째는 2차 전도여행을 출발하기 직전 마가 요한을 동행자로 데려가는 문제로 바나바와 피차 싸웠다는 것이다(행15:39). 양보해 줄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끝내 바나바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 혈기 분노의 영이 아직도 남아 있었던 것이다. 둘째는 3차 전도여행 후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유대인들 앞에서 결례를 행했다는 것이다(행21:26). 이것은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바울이 다시 정결법을 지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2. 바울은 왜 결례(정결예식)를 행한 것인가?

  바울은 왜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예루살렘교회의 수장이요 예수님의 친동생인 야고보를 만나 선교 보고를 한 후에 왜 결례를 행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야고보의 제안이 있었기 때문이다(행21:23~24). 왜냐하면 바울에 대해서 유대인들에게는 좋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울이 이방 지역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첫째, 모세의 율법을 반대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둘째, 그들의 자식들에게 할례를 받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셋째, 유대인의 관습을 지키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행21:21).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는 약간 다르다. 첫째, 바울은 율법을 배반(배교, 변절)하라고 하지 않았다. 다만 바울은 율법의 한계를 지적했고 율법의 기능을 지적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율법이 가리키고 있는 그리스도께로 모두 나오라고 한 것이다. 둘째, 디아스포라 헬라파 유대인들의 자식에게 할례를 받지 말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알려진 기록에 의하면, 바울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편지만 남겼을 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편지를 남긴 것 같지는 않기 때문에, 과연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지침을 내렸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셋째, 유대인의 관습을 지키지 말라고 했는지도 사실 정확히 알 수 없다.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고보는 들은 소문을 가지고 바울을 우려하여 바울로 하여금 율법 폐기론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달라고 한 것이다. 

 

3. 바울이 결례를 행한 것은 그동안 바울이 전했던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베드로가 할례자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것처럼,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 그런데 그렇게 복음을 전할 때에도 먼저는 디아스포라(흩어진)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먼저 전했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가 오셨고 그분이 예수님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율법을 더 이상 지키지 말라고 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가 이방인들에게는 율법 가운데 도덕법은 폐기되지 않았어도 의식법들(할례법, 안식일법, 절기법, 제사법, 음식법, 정결법)은 폐기된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방인들은 더 이상 의식법들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서는 야고보의 말을 듣고 정결법을 시행한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그가 전해 온 것과는 다른 방향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다시 의식법을 준수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4. 바울이 정결례를 행한 것은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그렇다면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야고보의 제안을 따라 정결례를 행하고 그것도 다른 네 명의 사람들 정결례 비용도 대주면서 정결의식을 행한 것은 과연 옳은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는가? 얼핏 보기에는 율법과 복음의 경륜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미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복음 안으로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정결례를 행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정결례를 행한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왜 정결예식을 행한 것인가? 그 이유를 다 들여다볼 수는 없겠지만 그의 복음 전파의 원칙에 따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은 3가지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그는 교회의 권위를 존중하기 위해 정결예식을 행한 것이다. 사실 예루살렘교회에는 이방인 그리스도들인이 없었다. 전부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뿐이었다. 그런데 이들도 또한 주님의 백성이요 구원받은 자들이 아닌가?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의 복음 전파 노선과는 약간 달랐지만 그들을 형제로 생각하고 그들의 제안을 수용했던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교회의 대표자들이었던 70명의 장로들의 결의를 겸손히 수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그는 최소한 유대인 그리스도인의 오해와 의심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정결예식을 행한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진짜 문제는 오리지널 유대인들이다. 그런데 유대인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예루살렘에 수만 명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바울이 율법을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오해와 의심을 종식시키기 위해 바울은 기꺼이 정결예식을 행한 것이다. 

  셋째,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것은 바울이 한 사람이라도 더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같은 모양이 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정결예식을 행한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을 사랑했다. 차라리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그들을 구원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율법 수호자들로서, 율법을 최고의 권위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자신이 율법 파기론자처럼 보인다면 아무도 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라도 마음의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자유자였지만 기꺼이 유대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결례를 행한 것이다. 그가 자신의 복음 전파의 원칙을 고린도전서에 기록해 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고전9:20~22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바울이 정결의식을 행한 것은 바울이 그것으로 인하여 자기 의를 이루어 자신을 구원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또한 유대교로 회귀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것에 어떤 효험이 있다고 믿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단지 유대인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그렇게 행한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에게라도 더 복음을 증거하여, 그들 중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행한 것이다. 

 

 

2023년 01월 04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92)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예언과 사명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했는가?(행21:1~16)_2023-01-03(화)

https://youtu.be/sDO6bFyCA0A  [혹은 https://tv.naver.com/v/32116444 ]

1. 사명자는 언제 사명이 주어지는가?

  바울은 주 예수님으로부터 처음부터 복음 전파의 사명을 부여받고 태어난 자였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자신의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택정함을 입었기 때문이다(갈1:15).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낸 자들 중에는 특별히 어떤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것이다. 바울도 처음에는 자신에게 어떤 사명이 있는지를 잘 몰랐다. 적어도 30대 정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주 예수님께서 그에게 찾아오셨다. 그리고 다메섹에 사는 아나니아를 통하여 그에게 사명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그것은 그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이 땅에 보내어진 사명자라는 것이었다. 아나니아는 그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이방인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파하도록 택한 주님의 그릇이라고 알려 주었다(행9:15). 그랬다. 바울도 처음에는 자신에게 어떤 사명이 있는지를 잘 몰랐으나,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때는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집사 가운데 하나였던 스데반을 죽이는 데 앞장설 때에, 주 예수께서 그에게 홀연히 나타나셔서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 이 땅에는 사명자가 있다. 사명자에게는 누구나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길이 있고 그 길을 걸어가게 된다. 그 길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고 해도 때가 되면 그 길을 가도록 하나님께서 불러내시고 그 길을 걷게 하시기 때문이다. 

 

2. 바울의 제3차 전도여행 중 밀레도 이후에 어디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갔는가?

  제3차 전도여행 중에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초청하여 고별설교를 한 바울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된다. 그때 바울은 밀레도에서 고스로 다시 고스에서 로도로, 로도에서 바다라를 거쳐 두로에 상륙하게 된다. '두로'라는 도시는 수리아의 아래쪽에 위치한 세계 최고의 항구도시였다. 그래서 배에 짐을 싣고 내려야 했다. 그러자 바울은 그 시간 동안 약 일주일을 그곳에서 보낸다. 그리고 돌레마이를 지나 가이사랴로 내려간다. 바울은 거기에서 예루살렘교회의 초기 일곱 집사 가운데 하나였던 복음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간 후 거기서 다시 얼마 동안 지내고 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3. 두로와 가이사랴에서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는가?

  그런데 바울은 두로와 가이사랴에서 예언을 듣는다. 그것은 바울 자신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에 관한 것이었다. 먼저, 두로에서는 어떤 제자들이 바울에게 영을 통하여 말하기를, 예루살렘 안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하였다. 아마도 바울의 신변에 어떤 위험한 일어날 것임을 환상으로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서 약 80Km 떨어진 가이사랴로 내려간다. 그런데 거기에서 바울은 예언이 아니라 어떤 선지자를 만난다. 그는 유대로부터 내려온 선지자로서, 과거 30년 전에 바울이 안디옥교회에 있을 때에 와서 천하가 흉년이 들 것을 예언했던 바로 그 선지자였다(행11:28). 그의 이름은 '아가보'였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서 정말 천하에 큰 흉년이 들었다. 그때는 A.D.46년경이었다. 그런데 다시 30년이 지나 그 아가보 선지자가 가이샤라에 있는 빌립 집사의 집에 온 것이다. 그리고 그는 바울의 허리띠를 가져다가 자신의 손들과 발들을 묶었다. 그러고는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라는 말과 더불어 예언을 하였다.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는 예언이었다(행21:11). 그는 말만 한 것이 아니라, 그가 보았던 것을 실제로 재현함으로, 예언을 하였다. 그것은 그만큼 바울의 결박과 체포 그리고 환난이 앞으로 확실히 일어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4. 두로와 가이사랴의 예언은 서로 어떻게 다르며, 어떤 것이 잘못된 예언인가?

  바울은 두로에서도 믿음의 형제들을 만났다. 특히 환상을 보고 말할 줄 아는 은사를 받은 형제들을 거기에서 만났다. 그때 그들 형제들은 바울더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 것을 권고했다. 그런데 바울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은 과연 옳은 예언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옳은 예언이었는지를 우리는 바울이 가이샤라에 도착했을 때 아가보 선지자가 했던 예언을 통해 비교해 보자. 아가보는 바울에게 어떻게 예언했는가? 그는 이렇게 예언했다. 그것을 헬라어 원문으로 그대로 직역해 보겠다. "성령께서 이것들을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 안에서 유대인들이 이와 같이 이 띠가 있는 바 그 남자를 결박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방인들의 손들 안으로 넘겨줄 것입니다(행21:11)" 그렇다. 아가보 선지자는 정확하게 예언한 것이다. 왜냐하면 예언이란 성령께서 보여 주시고 들려주신 것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지, 거기에다가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로의 형제들은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어 바울에게 말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미숙한 예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바울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예언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잘못된 예언을 한 것이라고 나무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예언을 은사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미숙하다는 것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예언이란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보여 주시고 들려주신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아가보 선지자는 자신이 보고 들었던 것에 어떤 것도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전달했던 바른 선지자였음을 알 수 있다. 

 

5. 바울은 형제들의 예언을 받은 후 자신의 사명과 그것을 어떻게 연결했는가?

  그때 바울은 형제들의 예언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는가?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을 포기하고 말았는가? 아니었다. 바울은 결코 그렇게 행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형제들이 그에게 한 예언은 성령께서 주신 예언이 아니란 말인가? 아니다. 맞다. 그들이 받았던 것도 역시 성령께서 주신 것이다. 하지만 예언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다만 그러한 일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 줄 뿐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의 길을 그대로 걸어갔던 것이다. 예언이란 사명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어느 부분에 있을 일을 미리 말해 주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사도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초청하여 말했던 고별설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행20:22~24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렇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가 걸어갈 길이 사명으로 미리 주어진 채 있는 것이다. 고로 그 길을 걸어가는데 어떤 환난이나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그 길을 가지 않고 다른 길을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란이 사명을 가로막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예언을 통하여 우리의 미래에 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를 미리 알 수 있으므로 그날을 마음으로 잘 준비할 수가 있을 것이다. 

 

2023년 01월 03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91) 바울의 고별설교(2) 바울의 교회론과 목회자의 4가지 주의할 사항(행20:28~38)_2022-12-30(금)

https://youtu.be/_KZrFhMUi00  [혹은 https://tv.naver.com/v/32116106 ]

 

1.  바울이 밀레도에서 전한 고별설교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전한 교회관은 무엇이었는가?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청하여 전했던 고별설교의 내용은 크게 2가지였다. 하나는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에베소 장로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중에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은 바울이 어떻게 에베소에 들어가서 주를 섬겼는지와 그가 전했던 복음의 핵심 4가지와 그리고 복음 전파자의 각오와 자세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또 하나로서 바울이 장로들에게 한 권면의 말씀에 관한 것이었다. 그랬다. 바울은 그때 자신이 바라보는 교회관이 어떤 것인지에 관해 전했으며, 동시에 양떼를 돌보아야 할 감독자가 지녀야 할 4가지 주의사항에 대해서도 전했던 것이다. 

 

2.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전한 교회관은 어떤 것이었는가?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그들은 성령으로부터 양떼를 맡은 감독자(에피스코포스)라 부름받은 것이라고 전했다(행20:28). 그러면서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교회가 어떤 것인지를 언급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께서 피값을 주고 사신(획득하신) 것이라고 했다(행20:28). 이와 같은 사실은 첫째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고 대신해서 얻은 것이 곧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했다(롬5:8). 그리고 둘째로, 교회를 건져내기 위해 피흘리신 분은 실제로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인데 하나님이라고 했다는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은 역시 한 분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피흘려 죽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곧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교회는 감독자(목회자)와 양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행20:28). 오늘날에 들어와서 교회 안에는 목회자는 더이상 필요없고 모두 다 같이 형제자매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곳도 있지만, 그것은 결코 성경적이 아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관한 가장 정확하고도 많은 기록을 남겼던 사도 바울이 교회의 구성원을 '감독자'와 '양떼', 이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부활하신 예수께서도 사도 요한에게 편지를 써 보내게 하였는데, 그때 에베소교회에 보내라고 명령했던 편지를 통하여 말씀하기를, 주님께서 가장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이는 '교회의 사자'라고 했다. 여기서 '교회의 사자'는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자로서 오늘날의 목회자를 가리키는 용어이다(계2:1). 그렇다. 예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하늘에 계시지만 동시에 그분은 이 땅에 있는 일곱 교회로 지칭되는 7가지 유형의 교회에 관심을 갖고 계신다. 그리고 교회 중에서도 역시 교회의 메시지 전달자인 목회자에게 관심을 갖고 계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지금도 역시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고 계시는데, 그분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들을 쥐고 계시기 때문이다. 일곱 별들은 일곱 교회의 사자(메시지 전달자)이기 때문이다. 

 

3. 바울은 훗날 에베소에 보낸 편지(에베소서)를 통해 교회를 어떻게 정의하였는가?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들어갔을 때 문제가 발생하자 그 문제를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게 된다. 그러자 바울은 배를 타고 로마에 간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어떤 감옥에 갇혀 있게 되는데, 그때 그는 에베소교회에 편지(에베소서)를 써 보낸다. 그런데 이 편지에는 온통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표현으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를 어떻게 표현했는가? 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를 5~6가지로 정의했다. 첫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이라고 했다(엡1:23). 곧 교회는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기관이자,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목숨처럼 아끼는 각 지체들의 연합이라는 것이다. 둘째, 교회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라고 했다(엡1:10).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귀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셋째, 교회는 유대인들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한 새 사람이라고 했다(엡2:15). 과거에 하나님이 아닌 것을 믿고 따라 살던 옛사람을 장사지내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우주적으로 큰 새 사람이라는 것이다.  넷째, 교회는 성전으로서 하나님께서 거주하시는 처소라고 하였다(엡2:21~22).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처소는 성막이었다. 그것이 성전으로 발전했는데, 어느 날 예수께서 오셔서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몸안에 하나님께서 거하시고 있었기 때문이다(요2:19~21). 그리고 그것이 믿는 성도들인 교회가 된 것이다(고전3:16). 다섯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신부라고 했다(엡5:25~27,32). 이것은 교회의 미래적인 지위를 말씀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교회는 그분의 신부가 될 것이다. 여섯째, 교회는 영적 전사라고 했다(엡6:12). 교회는 악한 영들로서,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 싸워서 승리해야 할 전사들이기 때문이다. 

 

4. 바울은 양떼를 돌보아야 할 감독자(목회자)가 주의하고 있어야 할 4가지 주의사항으로 무엇을 말했는가?

  바울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그는 거의 모든 계시를 다 받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에베소 장로들에게 감독자들이 해야 할 일이자 또한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 무엇을 말했는가? 그것은 총 4가지를 언급했다. 이것들을 주의하라는 것이다. 첫째, 양떼를 해치는 포악한 이리 떼로부터 교회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행20:28~29). 즉 이단 세력으로부터 그리고 거짓 교사들로부터 교회를 지켜내야 할 책임이 목회자에게 있다고 한 것이다. 둘째, 잘못된 가르침으로 교회를 미혹하고 있는 거짓된 세력을 분별해 내라고 하였다(행20:30). 이들은 자기의 뒤를 따르게 하기 위해 주님의 제자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불러내어 왜곡된 말을 하고 미혹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두 종류의 이단 세력들이 있었다. 하나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믿고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들이다(행15:1~2). 오늘날에 이런 세력들은 일부 안식교에도 있는데, 대표적인 이단 세력은 하나님의 교회 안상홍증인회다. 또 하나는 영지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영적인 지식만을 깨우치게 되면 육은 아무렇게 사용해도 상관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자기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자신의 영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우상에게 경배해도 그것은 우상숭배 행위가 되지 아니하며,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상관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당시에는 에베소교회에 있던 '니골라당'이 여기에 속하며(계2:6), 버가모교회에서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여기에 속한다(계2:15~16). 그리고 두아디라교회의 경우는 거짓 선지자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자들'이 이들이다(계2:20). 고로 교회에서 목회자는 이런 세력들이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분별해내어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셋째, 사도 바울이 무려 3년 동안이나 밤낮으로 쉬지 않고 가르쳐 주었던 말씀들을 기억하라는 것이다(행20:31~32). 이것은 곧 회개와 주 예수님에 대한 믿음,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의도, 경륜)에 관한 말씀들이다. 넷째, 범사에 모본을 보이라는 것이다(행20:33~35). 물질에 욕심을 내지 말고 수고하여 약한 자들을 도우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처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고 했던 말씀을 기억하고 그렇게 실천하며 살라는 것이다. 

 

5.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전한 고별설교는 왜 중요한가?

  바울은 이러한 만남을 끝으로 더 이상 에베소 장로들과 만나지 못한다. 그때 그들에게 전해 준 것이 장로들이 꼭 들어야 할 메시지였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에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해 준다. 그것은 첫째로, 목회자는 교회의 수호에 있어서 책임이 아주 크다는 것이다. 둘째로, 목회자는 반드시 이단 세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하고 그것에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교회가 가르쳐야 할 복음의 핵심 4가지를 잘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로, 목회자는 베푸는 데 있어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목회자가 이러한 것들에 주의하면 교회는 건강해질 것이고, 또한 성도들은 죽어서 천국에 들어갈 것이며, 거기에서 왕 노릇하는 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2022년 12월 30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강해(90) 바울의 고별설교(1)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 4가지는 무엇이었나?(행20:13~27)_2022-12-29(목)

https://youtu.be/nbgKGxZkYN0  [혹은 https://tv.naver.com/v/32116058 ]

 

1.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밀레도에 도착하여 행한 것은 무엇인가?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에 드로아를 지나 밀레도에 도착했을 때 행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에베소의 장로들을 밀레도에 청하는 일이었다. 밀레도는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도시로서 에베소에서 남쪽으로 약 45Km 떨어진 곳에 있다. 바울이 드로아를 떠나 이곳 항구도시에 정박해 있을 때에 에베소의 장로들을 그곳으로 불러낸 것이다. 그런데 당시 에베소는 바울의 전도여행 가운데 약 3년 동안 머물러 있었던 곳으로서, 그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도시였다. 그리고 바울은 여기에서 최초로 두란노 서원이라는 선교센타를 운영하여 선교사를 훈련하여 각 지역으로 파송한 바 있다. 

 

2. 바울이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무엇을 말했는가?

  바울이 이때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무엇을 말했을까? 우리는 이때 바울이 말했던 것을 한 마디로 바울의 '고별설교'라고 부른다. 그럼, 바울은 이때 무엇을 전했는가? 그것은 자기 자신이 거기에서 어떻게 복음 전파를 했는지를 말했고, 장로들을 향한 권면의 말씀을 전했다. 이때 바울은 먼저 자신이 에베소에 들어가서 어떻게 주님을 섬겼는지와 거기에서 전했던 복음이 무엇이었는지를 전했다.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는 자의 각오와 자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것은 자신에 관한 언급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바울은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권하는 말을 전했다. 그들이 어떻게 교회의 감독자가 되었는지 기억하고 감독자로서 양떼를 위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말했다. 그리고 이단에 대한 경계와 아울러 기독인들의 바른 삶의 자세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다. 

 

3. 바울이 밀레도에서 행한 고별설교의 특징은 무엇인가?

  바울은 적어도 3번의 설교를 했다. 첫 번째는 1차 전도여행 중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행했던 설교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2차 전도여행 중 아덴에서 행한 설교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3차 전도여행 중 밀레도에서 행했던 이번의 설교다. 그런데 이 세 번의 설교는 상당히 구별된다. 왜냐하면 안디옥에서의 설교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설교였고, 아덴에서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설교였는데, 이번 밀레도에서 전한 설교는 복음 전파를 위한 설교가 아니라 에베소의 장로들 그러니까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의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교였기 때문이다. 일종의 목회설교를 한 셈이다. 그러니까 앞의 두 번 설교가 전도설교였다고 한다면, 뒤의 한 번의 설교는 목회자들을 위한 훈련과 권면의 설교였던 것이다. 

 

4. 바울이 이때 전했던 4가지 복음의 핵심은 무엇이었는가?

  바울의 설교 가운데서 가장 무르익은 설교를 하나 고르라면, 우리는 응당 밀레도에서 행한 고별설교를 들 수 있다. 바울은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할 에베소의 장로들을 불러다 놓고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권면의 말씀을 하였는데, 가장 중요하고도 핵심적인 복음과 교회 생활에 대해 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그가 회고하면서 전했던 말씀을 보면, 복음의 핵심 4가지를 말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을 크게 보면, 영육 간에 유익한 것을 전한 것이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회개'와 '믿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에 관한 메시지였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이때 유대인들과 헬라인 둘 다에게 이러한 복음의 핵심을 전했던 것이다.

  첫째, 바울은 그들에게 '회개'에 대해 언급했다(행20:21). 이는 '하나님께 대한 회개'를 가리킨다.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숭배한 삶을 살았던 것을 회개하라고 권하고 가르쳤던 것이다. 이때 바울이 전한 회개는 구원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는 회심으로서의 회개와 자백으로의 회개를 전한 것이며, 그것을 내용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우상숭배'에 대한 회개와 '자범죄'에 대한 회개를 전한 것이다. 우상숭배의 죄도 자신이 범한 죄를 회개함으로서 죄용서를 받고 천국에 들어가는 회개와 조상들의 죄를 회개함으로 저주 가운데서 해방되는 회개를 전한 것이다. 

  둘째, 바울은 그들에게 '믿음'에 대해 언급했다(행20:21). 이는'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누구시며 우리를 위해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 하는 믿음을 전한 것이다. 그럼, 예수님은 누구신가? 그분은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이신데,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신 분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한 분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주 하나님 자신이요, 한 분 하나님의 표현이시다. 그렇다면 그분은 무슨 일을 하셨는가? 그것은 인류의 속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신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므로 피를 흘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류는 아담 이후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에 흠없는 제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흠없는 제물로서 사람이 되신 후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그리고 피가 없이는 속죄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피 흘리심으로 죽으신 것이다. 

  셋째, 바울은 '나라(왕국)'를 전했다. '하나님의 나라' 곧 예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나라에 대해 전한 것이다. 하나님의 왕국은 두 종류가 있다. 상태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공간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상태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부터 실현되는데, 이 세상의 임금인 마귀와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이 쫓겨남으로 실현된다. 그리고 장소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죽은 후에 장차 들어가게 될 공간적인 천국을 가리킨다. 

  넷째, 바울은 '하나님의 뜻(의도, 계획, 경륜)'을 전했다. 여기서 뜻이라는 단어는 '쎌렘마'(뜻, will) 가 아니라, '불레'라는 단어로서, 이는 뜻과 의지 그리고 의도와 목적, 계획과 경륜을 의미하는 단어다. 이는 바울이 왜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게 되셨는지를 그 근본 의도와 뜻을 전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나라를 인간에게 상속시켜 주고자 함이다. 이는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포함되는 만세 전의 계획이다. 그것은 이 땅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천국에 들어가서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고 거기에서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아 왕 노릇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이 바울이 전한 것이다. 

 

5. 오늘날 교회에서 전하는 복음과 사도 바울이 전했던 복음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오늘날 교회에서 전하는 복음과 사도 바울이 전했던 복음은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을 본다. 왜냐하면 오늘날 교회에서는 회개를 잘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천국에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핵심사항이 회개요, 저주로부터 해방되는 비결도 회개인데도 사람들은 회개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 그리고 오늘날 교회에서는 주 예수님이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으로서, 그분이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도 모르며 또한 그러한 사실을 잘 전하지 않는다. 다만 그분이 메시야 곧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만 전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경륜)에 대해서도 잘 전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우주 경륜에 대해서 전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에 대한 복에 대해서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시 바울이 전한 순수하고 위대한 복음이 회복되고 온 세상에 그 복음이 전파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2022년 12월 29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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