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늘날 보편적인 교회에서 은사들이 사라지고 없어진 것일까? '은사'라고 하면, 왜곡된 성령운동을 하는 곳에서만 말해지고 있는 것인가? 왜 오늘날 교회에서는 초대교회가 경험했던 성령의 은사들이 보지 못하게 되었는가? 왜 기존교회에서는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은사에 대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는 무엇인가? 성령의 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2021-07-21(수) 수요기도회
제목: 고린도전서강해(16) 성령의 은사들과 한 몸 안의 많은 지체들의 신비적인 연합(01)(고전12:1~11)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8LLGeBqeMYs [혹은 https://tv.naver.com/v/21463212 ]

 

[ PDF 자료 다운로드] https://dongtanms.kr/75128 [성령의 은사(28장) 씨리즈 유튜브로 보기]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Pn1GC5bxDjj3FlDKUTo5VSC45mwHrCGF [성령의 은사(28강) 글로 보기] https://dongtanms.kr/board_UShK09

 

1. 들어가며

  예수님을 믿으면 그것으로 그냥 "땡"하고 종을 치는 것이 아니다. 믿을 때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성령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믿는 성도들에게 여러 선물을 나눠주시기 때문이다. 성경에서는 성령께서 믿는 이들에게 주시는 선물을 가리켜 "은사(카리스마)"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성령의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구약부터 있었던 은사들과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에 있는 은사들 간에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믿는 성도들에게는 왜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것일까? 더욱이 성령의 은사를 받는 입장에 있는 성도들은 성령께서 은사를 주실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구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성령의 은사들에 관하여 집중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고린도 교회는 대체 어떤 은사를 받았던 것일까? 그리고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 가운데 그들은 어떤 은사를 최고로 여겼을까? 그리고 오늘날 작금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믿는 이들이 구해야 할 진정한 은사는 어떤 것이며, 은사를 구하기 전에 먼저 선행되어야 할 요건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2. 고린도전서에서 12~14장은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가?

  고린도전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1장부터 6장까지이며, 후반부는 7장부터 16장까지다. 이중에 후반부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교회의 설립자인 바울에게 제기한 여러 질문에 대한 목회적인 답변을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7장에서 결혼 문제를 살펴보았고, 8~10장에서 우상의 제물 취식 문제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는 고전 11장을 통하여 예배시간에 여자들이 머리에 예배포(수건)을 쓰는 문제와 성찬식 문제를 살펴보았다. 이제 오늘부터는 예배 가운데 성령의 은사의 사용에 관한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부분은 12장에서 시작하여 14장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부분을 통하여 사도 바울은 고전 12장에서는 성령의 은사의 다양성과 한 몸 안의 많은 지체들의 신비로운 연합을 언급한다. 그리고 13장에는 사랑의 은사를 언급하고, 14장에서는 방언과 방언통역 그리고 예언의 은사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언급한다. 이것들 중에서 오늘은 성령의 은사에 관한 개론적인 부분이자 다양한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사도 바울은 "신령한 것들" 곧 "영적인 것들"에 관하여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고전12:1). 이 말은 성도라면 영적인 은사들에 대하여 꼭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왜 그런가? 성령의 은사를 모르면 은사를 통해서 성도들이 얻을 수 있는 유익들을 놓칠 수가 있기 때문이요, 악령의 역사를 성령의 역사로 잘못 알았다가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어떤 교회들은 성령의 은사들를 거부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바울의 가르침과는 반대된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들에 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령께서 개인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는 은사를 잘 받아서 그것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다만 성령의 은사를 가장한 귀신들의 활동으로 인하여 개인과 교회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성령의 은사문제를 통하여 초래될 수 있는 개인과 교회의 영적인 혼란에 대해서 미리 대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3. 우상을 섬기는 사람과 성령을 받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과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 간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그것은 한 마디로 "말"에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우상을 섬기는 자를 보자. 그들은 일종의 미신을 섬기는 자들이다. 미신이라는 것은 믿음의 대상인 신적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가늠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두려움 가운데 서 있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미신을 섬기는 사람은 자신이 섬기는 대상에게 물어볼 수가 없다. 왜 이러한 방식으로 그 신을 섬겨야 하는가 하고 질문할 수도 없다. 왜 그 신에게는 제사를 지내야 하는지도 물어볼 수 없다. 제사드리는 자가 알아서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하나씩 모여서 오늘날과 같은 형식의 제사가 되었고 그것이 전통이 되어 내려오고 있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우상의 실체는 어떠한가? 하나님께서는 '우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치신다(렘10:14~15).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수공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시115:4, 사2:8). 그것은 땔감나무에 불과하며, 금붙이 혹은 은붙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가져다 놓고는 그것에다가 절을 하고 향을 피운다. 그 앞에 음식을 차려놓는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상은 나무나 금은붙이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어떤 우상도 인간에게 반응할 수가 없다. 그것은 신적 존재가 아니며, 다만 누군가 만들어서 거기에 가져다놓은 한낱 조형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시115:4~7). 그렇지만 사람들이 자꾸 그러한 조형물에다가 예를 갖추어 절을 하게 되면, 귀신이 그 조형물에 달라붙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들이 찾아오는 사람에게 관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인간에 의해 미신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상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며, 누가 만들어서 거기에다 가져다 놓은 조형물에 불과한 것을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자꾸 거기에다가 절을 하고 향불을 피워놓고 음식을 바치니까, 귀신이 그 조형물에 달라붙게 되어서 귀신이 신의 노릇을 하고 있다 것이다. 그러므로 우상을 섬기는 것은 곧 귀신을 섬기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이 섬기는 하나님은 우상과 어떻게 다른가? 그분은 살아있는 인격체이시다. 또한 그분은 믿는 이들 속으로 들어오신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인류의 구원자되신 예수님에 대해 깨우쳐주시고 알려주신다. 그 깨우치심의 핵심은 예수께서 주님이라는 것이다(고전12:3). 예수께서 우리 인류 구원을 위해 이땅에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인류의 죄를 속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내 속에 들어온 귀신이 하나씩 떠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령을 따라가는 자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다(고전12:3). 우리는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비로소 완전한 신적인 실체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4. 예수믿는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은사'와 '직분'과 '사역'이란 대체 무엇이며, 이것들은 과연 누가 주시는 것인가?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게 하고 고백케 하시는 성령께서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 그리고 우리 인류의 구원자되시는 예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무슨 일을 행하시는가를 언급한다(고전12:4~6). 그리고 교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여러 가지 사역들은 누가 하게 하는지를 정확히 구분하여 설명한다. 그것이 바로 고전12:4~6에 나와 있는 말씀이다.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하여, '은사'와 '직분'과 '사역'의 주체가 누구이며, 그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먼저, "은사"의 분배는 같은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이라고 하였다(고전12:4). 이는 성령을 통하여 믿는 이들에게 은사가 분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은사가 무엇이며 과연 은사는 어떤 목적으로 주어지며, 어떤 종류가 있는지는 조금 있다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그리고 둘째로, "직분(섬김)"의 분배는 같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라고 언급한다(고전12:5). 이는 교회에서 일하라고 주시는 직분들은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주신다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서신을 통하여, 예수께서 교회에게 주시는 직분을 5가지로 언급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도와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라고 하였다(엡4:11). 그런데 오늘날에는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의 직분 등이 있다. 셋째로, "사역"의 분배는 같은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하였다(고전12:6). 즉 교회에서 여러 가지 행해지는 사역들은 다 성부 하나님께서 분배하여 그렇게 일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찬양하는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은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은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그는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들을 분배받을 수 있고, 직임을 받아서 교회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역의 안배를 따라 교회를 섬길 수가 있는 것이다.

 

5. 하나님께서는 왜 성도들에게 은사들을 주시는가?

  이어서 사도 바울은 성령께서 믿는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시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다. 왜 성령께서는 믿는 이들에게 은사(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을 주시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성령께서 성도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고전12:7). 사도 바울은 믿는 이들에게 나타나는 성령의 은사들은 다 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나눠주신다고 언급한다(고전12:11). 그러므로 혹시 자신에게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고 있다면, 그는 자기와 교회에게 매우 유익이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만 오늘날 성도들 중에 어떤 이는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에 대해 주저하거나 꺼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사가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를 뿐더러,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를 책임 맡고 있는 주의 종들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 잘 모르면, 성령의 은사를 가진 자를 교회 밖으로 내모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래서 어떤 교회를 가면, 아예 방언기도를 하지 못하게 막기도 하고, 그러한 사람을 따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들은 무서운 것도 두려운 것도 아니다. 더욱이 그것이 교회를 망가뜨리거나 나쁘게 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다만 성령의 은사를 가장하여 들어오는 귀신의 역사가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귀신의 역사 또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성령이 하시는 역사와 귀신이 하시는 역사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는 더욱 환영하고 귀신의 역사는 더 물리친다면, 교회는 성령의 은사로 인하여 더욱 더 견고해지며 바르게 성장할 수가 있을 것이다. 

 

6. 성령의 은사들의 종류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신령한 은사(특별 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다음 주에 더욱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들에게는 크게 3종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일반 은사"이고, 또 하나는 "특별 은사"이며, 마지막으로 또 하나는 "직분 은사"다. 먼저 "일반 은사"를 살펴보자. 이 은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신령한 은사가 아니다. 이는 불신자도 갖고 있는 은사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특별 은사와 구별하여 "일반 은사"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러한 은사들에는 고전 13장에 나오는 "사랑"의 은사가 있고, 14장에 "절제"의 은사가 있다. 이외에도 일반 은사에는 노래(찬양), 화평, 온유, 지혜, 지식, 계획, 지도력, 섬김, 재물의 은사 등이 있다. 그리고 "특별 은사"라는 것이 있다. 이 은사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초자연적인 은사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은사로서 총 9가지를 언급한다(고전12:8~10). 그것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침, 능력행함, 예언, 영분별, 방언, 방언통역"이 것이다. 참고로 다음 주에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은사들이 나타나는 경로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의 영의 눈이 열릴 때에 비로소 확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 환상을 보고, 귀신을 보고, 천사를 볼 수가 있다. 그리고 예수께서 투영체로 오셔서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고 또한 그분이 말씀하는 것을 들을 수가 있다. 고로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신령한 은사는 은사자가 먼저 보고 먼저 들어서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은사들 중에는 "직분"의 은사라는 것도 있다. 사도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교회의 직분의 은사에는 위에서 언급했지만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의 은사가 있다. 

 

7. 나오며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께서 믿는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주시는 은사들에 대해 총 9가지를 언급하였다(고전12:8~10). 아마도 이러한 은사들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나타났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은사들을 가리켜 "신령한(영적인) 은사"라고 부른다. 이것들은 다 초자연적인 은사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은사들이 오늘날에 과연 얼마만큼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아니 이러한 은사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교회들도 많이 있는 것 같다. 왜 그런가? 왜 오늘날 교회에서는 성령의 신령한 은사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사도바울의 권면의 말씀을 잊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첫째, 믿는 자들이 되었어도 신령한 은사들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고전12:1, 14:1). 그것은 은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둘째, 더욱 더 큰 은사들을 사모하라고 하였지만 그것을 사모지 않기 때문이다(고전12:31). 이 모든 것은 사실 은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더불어 이것을 분별하고 활용할 수 있는 지도자들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별히 은사의 위험성만을 주지시키고 있을 뿐 그것의 유익성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에 이러한 은사들은 교회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하늘 창고에서 은사들이 잠을 자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신령한 은사를 말하는 단체가 잘못된 성령운동을 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라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은사들에 대한 시각을 바꿔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은사는 성령께서 개인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것을 잘 받아 활용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특히 마지막 때에는 말씀만이 아니라 능력도 같이 나타나는 지도자가 활동하는 시기가 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시기야말로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고 받는 적기 중의 적기가 아닌가 싶다. 물론 성령의 은사를 받기 전에 더욱더 철저히 회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회개 없이 성령의 은사를 사모했다가 귀신이 주는 은사를 받아서 성령의 은사라고 말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1년 07월 21일(수)

정병진목사

-----------------------------

[PDF 자료 다운로드] 

고린도전서강해(16) 성령의 은사들과 한 몸 안의 많은 지체들의 신비적인 연합(1)(고전12,1_11).pdf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의 은사(26) 다양한 일반은사들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롬12:6~8)_2020-07-20(월)

https://youtu.be/SUoaXUWqKeM  [ 혹은 https://tv.naver.com/v/14866134  ]

 

 

1. 성령의 은사들은 크게 어떻게 분류할 수 있나요?

  성령의 은사들은 크게 "일반은사"와 "특별은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일반은사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라고 할지라도 조상들로 물려받을 수 있는 은혜의 선물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특별은사"는 다릅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주시는 초자연적이며 또한 영적인 은사이기 때문니다. 이러한 특별은사들에는 또한 3가지 종류가 있으니, 말의 은사들(예언, 방언, 방언통역)과 행동의 은사들(치유, 능력, 믿음)과 앎의 은사들(영들분별,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이 있습니다. 한편 "특별은사"에는 은사의 내용에 따른 은사들(성령의 9가지 특별은사, 고전12:8~10)과 직분에 따른 은사들(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 고전12:28~30, 엡4:11)이 있습니다. 

 

2. 롬12:6~8에 나오는 "일반은사"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롬12:6~8에 보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일반은사들로서 7가지 은사들이 나옵니다. 물론 일반은사가 이런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재물의 은사, 음악의 은사, 기술의 은상 등 더 많은 종류의 은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롬12:6~8에서 7가지 은사만을 언급하였는데 이는 완전수인 "7"을 사용하여서, 교회에는 다양하고도 풍성한 은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롬12:6의 말씀에서도 나타나는데, 이 말씀을 직역해보면, "그런데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졌던 은혜를 따라 다양한 종류의 은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반은사 7가지는 또한 그것의 내용에 따라 2가지 은사들 곧 "예언"과 "섬기는 일(봉사)"의 은사들과 그리고 직책의 은사로서 5가지 곧 "가르치는 자, 위로하는 자, 구제하는 자, 다스리는 자, 긍휼을 베푸는 은사"로도 나눠볼 수 있습니다. 

 

3. 일반은사로서 등장하는 "예언"과 "가르치는 자(교사)"의 은사(고전12:6~8)는 특별은사로서 "예언"과 "교사"의 은사(고전12:8~10,28~30)와는 어떻게 다른가요?

  "일반은사"로서 소개되고 있는 "예언"이나 "교사"의 은사는 초자연적인 은사라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이를 테면, 특별은사로서 "교사"의 은사는 성경말씀에 능통하여 그것을 잘 가르치고 설명할 수 있는 은사이면서, 교회 내에서 이런 직책만을 수행하는 자를 가리키지만, 일반은사로서 "교사"의 은사는 부모로부터 가르치는 은사를 물려받아서, 교회의 어떤 부서에서 가르치는 일에 봉사하고 있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은사로서 "예언"의 은사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은사로서 예언의 은사는 특별은사로서 나타나는 7가지의 기능(세움, 권면, 위로, 책망, 심판, 드러냄, 가르침) 중에서 어느 것 하나를 수행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일반은사로서 예언의 은사를 사용하는 자는 반드시 "믿음의 분수대로" 그 은사를 사용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일반은사로서 주어지는 "예언"의 은사는 분량이 적은데, 마치 자기가 특별은사처럼 "예언"의 은사를 전부 다 받은 것인량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7가지 일반은사는 어떻게 사용해야 하나요?

  7가지 일반은사들 중에서 만약 어떤 것이 예언의 은사라면, 은사자는 반드시 그것을 믿음의 분량을 따라 그 분량만큼만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만약 그것이 섬기는 일(봉사)의 은사라면 봉사 안에서 그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치고 있는 자라면 그는 가르침 안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위로(권면,격려)하고 있는 자라면 위로(권면,격려) 안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구제와 다스림과 긍휼의 은사는 그것을 사용하는 자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하였습니다. 

 

5. 구제와 다스림과 긍휼의 은사는 어떤 태도로 사용해야 하나요?

  사도바울은 7가지 일반은사들 중에서 3가지의 은사들 곧 "구제하고 있는(나누어주고 있는) 자"의 은사와 "다스리고 있는(지도하고 있는, 인도하고 있는) 자"의 은사 그리고 "긍휼을 베풀고 있는(자비를 베풀고 있는) 자"의 은사를 사용할 대에는 각각 성실함(순수함, 관대함)으로, 부지런함으로 그리고 즐거움으로(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이것은 앞에 나오는 3가지 은사자가 자신의 은사를 사용할 때에는 반드시 3가지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언급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은사를 사용할 때에는 항상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고연 나는 성실함으로, 부지런함으로, 즐거움으로 이러한 은사들을 사용하고 있는가?" 만약 이렇게 하고 있지 않는 은사자라면 그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에서 상급을 받지 못할 것이며, 또한 교회 안에 있는 다른 지체들에게도 결코 유익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0년 07월 20일(월)

정병진목사 

주님께서는 믿음이 있으면 산이 들려 바다에 빠지라고 해도 그것이 그대로 순종할 것이라고 하셨다. 대체 어떤 믿음을 가지면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우리는 사도바울을 통하여 은사에도 특별히 "믿음의 은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전12:9). 산을 옮길만한 믿음은 믿음의 은사를 통하여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할 때 이러한 믿음의 은사를 얻을 수 있는가? 반대로 무엇이 이러한 절대적인 믿음을 갖는데 방해가 되 또한 나에게는 대체 어떤 것이 부족한 것일까? 오늘은 믿음의 은사를 받기 위해 필요한 3가지 조건을 살펴보자.

2020-07-03(금) 금요기도회
제목: 성령의 은사(14) 믿음의 은사를 받기 위한 조건 3가지(마21:18~22)
https://youtu.be/yTgRR599ELk [혹은 https://tv.naver.com/v/14617289  ]

 

 

1. 들어가며

  성령께서 믿는 자들 위에 내려오실 때에는 그들에게 선물을 주신다. 그것을 우리는 "성령의 은사"라고 부른다. 이러한 성령의 은사에는 "일반은사"가 있고, "특별은사"가 있다. "일반은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가지고 있는 은사이지만, "특별은사"는 오직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은사다. 이러한 은사는 대부분 초자연적인 것들이다. 그것은 오직 성령에 의하지 않고는 이 세상의 것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것들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있는 법칙을 초월하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령의 특별은사는 고린도전서 12장에 있다. 그것은 총9가지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침, 능력행함, 예언함, 영들분별, 각종방언말함, 방언들통역함"이 그것이다. 이것들 중에서 오늘 다루게 될 은사는 세번째 은사로서 "믿음"의 은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믿음의 은사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오늘 아침(2020.07.03) 새벽기도회 때에 전한 말씀을 참고하기를 바란다(https://dongtanms.kr/62091). 이 시간에는 믿음의 은사를 받기 위한 3가지 조건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아무쪼록 이 메시지를 통하여 초자연적인 성령의 "믿음의 은사"가 우리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물로 더 풍성히 넘치기를 바라는 바이다. 

 

2. "믿음의 은사"라 무엇을 가리키는가?

  "믿음의 은사"란 한 마디로 자신이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현실세계에서 그대로 성취되게 하는 은사를 가리킨다. 곧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경험하게 하는 은사를 믿음의 은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믿음의 은사에도 "일반은사"가 있고, "특별은사"가 있다. 일반은사는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죄사함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특별은사는 이러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믿음의 특별은사는 자신이 믿고 바라는 것을 이 세상에서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도하게 해주는 은사이기 때문이다. 

 

3. 믿음의 은사는 결국 어떻게 나타나는가?

  누군가 그리스도인인데 "믿음의 은사"를 받았다면, 그는 보통 3가지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첫째, 남을 치유를 해주거나 혹은 자신에게서 치유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즉 질병에서 고침받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데, 그 도구가 바로 믿음을 통하여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8장에 보면, 백부장의 믿음에 따라 자신의 하인의 중풍병이 치되는 장면이 나온다(마8:5~13). 이때는 본인의 믿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의 믿음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즉시 고침받았다. 그런데 마9장에 보면, 혈루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치료받는 또 다른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본인의 믿음으로 인하여, 의사들마저 절대 고치지 못했던 중한 질병에서 그 여인이 고침받는 장면이 나온다(마9:20~22). 그녀는 스스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뒤로와서 예수님을 옷가를 만져 고침을 받았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녀에게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간절한 소원과 믿음이 결국 그녀를 낫게 했다고 알려주셨다. 자신의 믿음으로 기적같은 치유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둘째, 믿음의 은사가 있으면 여러가지 기적, 표적을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자 그만 하루새에 뿌리채 말아버린다(마21:18~20). 말 한 마디 했다고 해서 식물이 고사할 수는 없을텐데,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식물이 말라버린 것이다. 또한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간 사건도 이와 마찬가지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베드로는 그냥 순종했을 뿐이다. 그런데 자신이 물 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다. 믿음의 은사가 주어지면 초자연적인 일도 해낼 수가 있는 것이다.

  셋째, 믿음의 은사를 받은 자는 자기가 하나님께 기도한 것에 대한 응답도 훨씬 많이 받는다. 우리 주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자에게 나타날 수 있는 신비한 일들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만약 우리가 믿음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고, 또한 의심하지만 않는다면, 무화과나무에서 일어난 일 말고도 산이 들려져서 바다에 빠져라고 해여도 그대로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동시에 우리가 믿고 기도한 것이 있드면 다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우리에게 믿음의 은사가 있으면, 날마다 기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큰 믿음을 갖기 위해 부단히 정진해야 할 것이다. 

 

4. 믿음의 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한가?

  성도가 믿음의 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에 주의해야 하는가? 적어도 3가지가 있다. 첫째, 의심케 하는 영을 제거해야 한다. 믿음의 최대의  적은 "의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간구하지 못하고 의심으로 기도하는 자는 주께로부터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의심하지 않고 믿는다면 그 사람은 믿음의 은사를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은 의심하는 것일까? 그것은 자기자신이 스스로 의심을 하게 하기보다는 자기 속에 들어있는 영적인 세력들(귀신들, 영들)이 그렇게 조정하는 것이다. 창세기 3장을 읽어보면, 뱀(사탄마귀)이 하와를 무너뜨리는 첫번째 방법이 하나님에 대한 의심이었다(창3:1). 그리고 이내 거짓말로 유혹한다. 뱀은 자신의 말을 믿고 만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여 부정하게 만든 것이다. 이것이 최초의 범죄다. 그러므로 의심병도 영적인 세력이 심어주는 것임을 알고 그것을 거부해야 한다. 특별히 영적인 세력이 힘을 잃게 하려면 우리는 날마다 자신의 죄와 조상들이 지은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러면 의심케 하는 영도 떠나가게 되어 교회는 자동적으로 성장하고 부흥발전하게 된다. 둘째, 어떤 상황이 발생한도 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이는 눅18장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의 이야기에 나온다. 힘도 없고 백도 없는 어떤 여인이 불의한 재판관에게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심판해 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불의한 재판관은 이를 무시한다. 하지만 그녀가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원통함을 호소하자, 결국 자신은 불의한 재판관이지만 그녀가 하도 자신을 귀찮게 하니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는 것이 이 이야기가 핵심이다. 한 번 자신이 바라고 소망하는 것은 그것이 이뤄질 때까지 포기하지 끝까지 구하는 것이 믿음의 은사를 받는 요체가 되는 것이다. 셋째,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기도하고 간구하 있는 것은 이미 다 받았다고 믿으라는 것이다. 자신이 소원에 대해서 이미 성취된 것으로 즉 과거적으로 알고 감사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에 관하여 마가복음의 저자는 이렇게 언급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그렇다. 이 말은 누구든지 자신의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아뢰되,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달라고 하는 자는 이미 기도했던 대로 받았다는 것을 믿으면, 그것이 그대로 성취된다는 뜻이다. 

 

5. 나오며

  주님께서는 눅18장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통하여, 과연 말세에는 이 세상에서 믿음있는 자를 볼 수 있겠는지를 언급하셨다(눅18:1). 즉 말세에는 끝까지 끈질기게 기도하여 기도응답을 받아내는 자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 오늘날에는 초자연적인 믿음의 은사를 가진 자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초자연적인 은사로서 "믿음의 은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님을 알라. 롬10:17에서 사도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했다. 그리고 회개없이는 우리의 안과 밖에서 역사하는 악한 세력을 이길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놈들은 자꾸 우리 안과 밖에서 자꾸 의심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놈들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려면 우리에게 회개는 필수적인 것이다. 회개할 때에 그놈들이 힘을 잃어버리고 그리고 떠나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믿음과 회개"를 꼭 구원얻는 데만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믿음과 회개"는 초자연적인 믿음의 은사가 제대로 발휘되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으면 말씀을 더 읽고 더 들으라. 그리고 날마다 회개하라. 자신과 자신의 조상이 지은 죄를 회개하라. 조상들의 죄는 나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듯 보이지만, 조상들이 지은 우상숭배의 죄가 3~4대인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출20:5). 믿고 회개하다보면, 어느날 의심이 사라지면서 성경 66권의 말씀이 다 믿어지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에게 있던 고질적인 질병마저 다 사라지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도가 즐거울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 응답으로 가득찬 기도라는 것이 믿어지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07월 03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성령의 은사(13) 믿음의 은사는 무엇을 가리키는가?(마21:18~22)_2020-07-03(금)

https://youtu.be/7DmnjHAF6YE [혹은 https://tv.naver.com/v/14599141  ]

 

 

1. 성령의 9가지 은사들 중에 믿음의 은사는 어떤 은사에 속하나요?

  성령의 9가지 은사들은 사람에 따라 분류하는 기준이 각각 다르기는 하지만, 그것을 "말의 은사, 행동의 은사, 앎의 은사"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분류할 때에 "믿음의 은사"는 행동의 은사에 속합니다. 그것이 반드시 어떤 행동으로 귀결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2. "믿음의 은사"라는 어떤 은사를 가리키는 것인가요?

  "믿음의 은사"는 자신이 바라고 소망하는것이 이 현실세계에서 실제로 이뤄지는 것을 자신이 보게 해주는 은사를 가리킵니다. 고로 "믿음의 은사"도 일반은사와 특별은사가 있어서, 은사로서의 믿음은 성령의 특별은사로서 믿음의 은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실 "믿음"에도 일반적인 믿음이 있고, 특별한 믿음이 있는데, "일반적인 믿음"이란 예수님을 믿으면 자신이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의 말씀을 통하여 사람의 구원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라고 일반적인 믿음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은사로서의 "믿음"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가져오는 믿음이요, 현실세계 속에서 실현되게 하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3. 믿음의 은사에는 어떤 종류가 있나요?

  믿음의 은사는 보통 2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주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자신이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남에게 이뤄지게 하는 믿음입니다. 예를 들어, 마8장에 나오는 가버나움의 백부장의 믿음같은 것입니다(마8:5~13). 가버나움의 백부장은 로마사람이었으나, 자기 마을에서 활동하시는 예수님을 지켜보면서 믿음을 키워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하인이 중풍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그는 주님께 오셔서 치료해주시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이내 사람을 보내어 주님이 오시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주께서 계신 곳에서 말씀만 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칭찬하셨습니다(눅7:9). 그리고 또 하나는 주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내가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이뤄지게 하는 믿음입니다. 이는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의 질병도 고쳐진다는 것을 믿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혈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의 믿음의 경우입니다(마9:20~22). 그녀는 무려 12년동안 자신의 질병 때문에 고통을 받았습니다. 많은 의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 그녀는 믿음을 키워갔습니다. 그분이라면 내 질병을 낫게 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바쁘고 귀한 분에게 자신의 질병을 치료해달라고 부탁하기가 죄송스러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의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가라도 만지면 낫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뒤로 와서 가만히 예수님의 옷술을 만졌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말 그녀의 질병이 나았습니다. 혈루가 그쳤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그러한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예수께 와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녀의 믿음이 그녀의 질병을 치료했다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자신의 믿음으로 자신의 질병을 고칠 수 있는 믿음, 이것이 바로 "특별은사로서의 믿음"인 것입니다. 

 

4. 믿음의 은사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3가지 일은 무엇인가요?

  은사로서 갖게 되는 믿음이 주어질 때 사람은 3가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참고로 셋 다 초자연적인 것들입니다. 첫째는 질병에 걸린 자라도 치유를 경험하게 됩니다. 가버나움의 백부장이 그랬고, 12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두 명의 맹인도 자신이 믿음으로 고침을 받아서 곧 보게 되었습니다(마9:27~31). 둘째는 기적같은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로 무화과 나무가 말라버린 일이나, 베드로가 물 위에 걸어갔던 사건은 다 은사로서 믿음이 주어질 때에 일어날 수 있는 기적과 같은 것들입니다. 셋째는 기도응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 만사가 인간의 능력과 지혜만으로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주시는데, 이것에 대한 기대가 남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드시 기도한 대로 주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라리라(마21:22)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5. 은사로서의 믿음이 통용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주님께서는 은사로서 믿음이 통용되기 위해서 2가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21:21). 첫째는 계속해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자신이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주님에 의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고, 또한 그렇게 되어질 것에 대해서 의심을 하지 않게 된다면, 누구든지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은사로서의 믿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큰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2020년 07월 13일(금)

정병진목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