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신칭의의 복음을 듣고 내가 예수님을 믿었다고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다. 그가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그날 바로 죽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사람이 그 이상 살게 된다면 이신칭의의 복음에 머물러서는 아니 된다. 우리가 듣고 믿어야 할 복음은 다름 아닌 '천국복음'이기 때문이다(마4:23).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그 복음만을 전하셨고 그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마4:17, 24;14). 천국복음이란 하늘에서 오신 예수님을 자기 인생의 왕으로 모셔들여 그분으로 인하려 살라는 복음이요, 그러면 죽은 다음에 셋째하늘에 마련해두신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시겠다는 복음이다. 그러므로 이신칭의의 복음이 구원의 시작을 위한 복음이라면, 천국복음은 구원의 과정이자 마침이 되는 복음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참으로 궁금하다. 주님께서는 왕의 아들의 잔치의 비유(눅14:15-24, 마22:1-14)를 통해 그들이 누가 될른지 말씀해주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원래 초대된 자였으나 그날 잔치자리를 거부한 자들은 제외되었다. 오히려 길거리나 골목에 버려진 소외되고 병든 사람들과 그 잔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방인들이 그 잔치자리에 참여하게 된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왕은 '하나님'을 상징하며, 아들은 '예수님'을, 초청하러 갔던 종들은 선지자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킨다. 또한 처음에 일찍이 초대받았으나 가지 않았던 자들은 유대종교지도자들을 상징하고, 가난하고 병든 소외된 자들은 유대종교지도자들로부터 냉대받고 천대받았던 세리와 창기들과 죄인들을 의미하고, 성 밖에 길을 가던 자들은 이방인들을 상징한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애시당초 초대하려 했는가? 미리 초대했던 자들이다. 그들은 어디로보나 그 잔치자리에 참여할 합당한 자격과 조건을 갖춘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왕의 아들이 왔을 때 그 왕을 배척해 버린다. 그래서 일부러 핑계대고 그 자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아들의 잔치가 있기 전에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진 권력과 부와 명예로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땅사는 문제와 소를 사는 문제가 더 중요시했다. 또한 세상이 주는 기쁨을 더 중요시했다. 그래서 그들은 정중하게 때로는 일언지하에 그 잔치를 거절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도 오셔서 복음전파 방향을 달리 정하셨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 즉 소외되고 병들고 비천한 사람들이 모인 지역인 갈릴리로 가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 동네 사람들을 자신의 제자로 삼았고 그런 자들에게 천국의 실재를 경험케 해 주었으며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셨다.

하지만 그래도 천국잔치 자리가 비자, 예수님은 이방인들 즉 천국잔치에 아무 상관이 없는 자들을 그곳에 초대하신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이 천국복음을 들었을 때 그들의 믿음이 예수님을 깜짝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특히 가버나움의 백부장과 수로보니게 족속의 가나안 이방여인의 믿음은 놀라웠다. 그들이 가진 믿음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진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마치 구약시대 갈렙이 본래가 가나안 잡족이었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간 단 두 사람 중의 하나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비록 이방인이어도 상관없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의 복이 그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되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방여인 기생 라합처럼 여관집을 운영하면서도 들려오는 소식을 듣고는그녀는 자신이 섬기던 가나안의 여신인 아스다롯을 과감히 버리고, 오직 홍해물을 말리신 여호와만이 진짜 신인 것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들을 숨겨주는 일에 자신의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방 모압여인 룻은 자기 민족이 섬기던 그모스 신을 버리고, 자기의 시어머니가 섬기던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된 신인 것을 알고, 고생길이 환히 열린 것을 보면서도 시어머니를 따라 낮설고 물설은 곳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그래서 보아스는 자기 민족을 떠나 여호와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온 그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었고, 결국에는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인다. 이것이 하늘 아버지의 마음이요 예수님의 마음이다.

그렇다. 예수님 때부터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그 천국을 침노하고 사모하는 자의 것이 되었다(마11:12). 유대인이라고 하는 특권을 주님께서 철폐해 버리셨기 때문이다. 이제 하나님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바라고 그분을 기꺼이 따르기로 원하는 자를 천국잔치로 초대하신다. 그래도 당신도 이 복음을 듣고 구원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던가! 아무런 자격이 없어 비천한 우리들을 불러내어 예수님으로 의의 옷을 입혀 천국잔치에 참여케 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드린다.

[출처] 천국에 초대받은 자들(눅14:15-24)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작성자 갈렙

 
  똑같이 주님을 부인하고 떠나갔지만 베드로는 왜 위대한 사도로 쓰임받았으며 가룟 유다는 왜 저주의 자식이 되고 말았을까? 둘 다 범죄한 것, 주님을 부인하고 떠나간 것으로 볼 때에는 둘 다 동일하다. 하지만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위대한 사도가 되었으며 하나는 멸망의 자식이 되었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그 답을 요한사도는 성만찬에서 제시하고 있다.
  성만찬,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가장 거룩한 만찬식사이다. 이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려 1500년동안 해마다 1월 14일에 유월절예식을 치렀다. 유월절양을 잡아 쓴 나물과 아울러 무교병을 먹으고 1주일동안 무교병의 절기를 지킨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돌아가시던 해에 예수께서는 유월절을 유월절 당일날에 지키지 아니하고 하루 앞당겨 1월 13일(목)에 지키셨다. 왜냐하면 정작 당신이 유월절 양이 되어 유월절날에 죽으시어 구약을 완성하셔야 했기 때문이다(고전5:7).
  그러므로 예수님의 유월절식사는 이스라엘 민족이 대대로 지켜오면 유월절의 절기가 종료되고 성만찬으로 대체되는 식사였다. 그때 예수께서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성만찬을 제정하신다. 유월절의 음식 중 무교병을 찢어서 제자들에게 나눠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해 내 몸이라" 말씀하셨고, 포도주를 주시며 "이것은 죄사함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다. 사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으신 순간은 오직 그 시절뿐이었다. 그 전에도 그런 일이 없었고 그 후에도 없는 일이다. 그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그들이 영원히 기도하길 원했다. 그래서 유월절을 식사를 마치시고 성만찬을 제정하신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성만찬을 제정할 때, 가룟유다의 동선을 보면, 공관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독특한 사실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가룟유다가 떡만을 먹고 그 자리를 떠나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때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 중에 누군가가 자신을 팔아넘길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자 제자들 간에는 누가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의아하게 생각했다. 마침 예수님 가까이서 비스듬히 누워 식사를 하던 사도요한을 향해 베드로가 몸짓을 하자, 사도요한이 물어본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자신이 떡을 초에 찍어 주는 이가 바로 당신을 팔아넘길 자라고 하신다. 그리고 그에게 떡을 입에 넣어주신다. 그러자 그 떡을 받은 가룟유다가 그 밤에 예수님의 곁을 떠나간다.
  성만찬의 예식 때에 누가 성만찬의 예식 순서를 다 참여하지 못했을까? 단 한 사람이다. 그는 떡만 먹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그는 바로 가룟 유다이다. 포도주가 예표상으로 죄사함을 의미하는 바, 그는 생명의 떡은 먹었지만 죄사함을 받게 하는 포도주를 먹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는 떡과 포도주의 예식에 다 참여한 사람이다. 결국 어찌 되었는가?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긴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자살로 그의 인생을 비극적으로 마감하고 만다. 하지만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그것도 저주하면서 부인하다가 도망치고 배은망덕한 놈이었다. 하지만 그는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아 위대한 사도로 쓰임받게 된다.
  그렇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이 할지라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는 일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을 보라. 한 번 예수님을 믿었으면 자신의 구원은 안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니다. 헬라어 원문상으로 볼 때, 한 번 믿었다고 구원을 받는다는 성경구절은 없다. 계속해서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원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므로 한 번 믿어 에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 하더라도 날마다 범죄하는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여 용서를 받아야 천국간다. 회개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지은 죄가 심판 때에 적당히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지 말라. 날마다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서 천국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은 성만찬을 제정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신다. 주님이 그들을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그래야 주님의 제자인 줄을 사람들이 알 것이라 하였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형제들을 우리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사 자기자신을 주신 것처럼 사랑하고 있는가? 없었다면 엎드려 회개하라.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라. 그래서 그러한 사랑으로 살아가라. 그러야 제자라 불림을 받을 수 있다.
예수께서는 천국에 관해서 대부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란 어떤 것을 빗대어서 설명하는 것인데, 천국을 그대로 표현하기가 어려우니까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천국은 아주 비밀스럽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것에 대해 '비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마13:11).
그렇다면 여기서 '비밀'이란 단어는 '씨크릿(secret)'일까요 아니면 '미스터리(미스테리, mystery)'일까요? 씨크릿이란 감추어놓고 자기만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은 씨크릿이 아니라 미스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헬라어로 보니, 비밀이란 단어는 '미스테리온'이라고 씌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자신만 감춰놓고 인간에게는 가르쳐주지 않을려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미스터리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미스터리란 무엇입니까? 수수꺼끼 혹은 신비라는 말로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을 전혀 알 수 없어도 귀와 눈이 열린 사람에게는 그것은 비밀이 아니라 열려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에게 천국은 지금 열려져 있습니까 아니면 닫혀져 있습니까? 우리의 눈과 귀는 천국에 대해서 열려지기를 소망합니다. 사실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했고 알고 싶어했던 천국입니까? 그러나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이 말씀들을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오셔서 그 비밀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천국은 마음의 문을 열고 경청하는 자에게는 그것이 열려지고 또 열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의 상태가 천국을 보고 듣고 얻는 것에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의 마음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주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의 상태는 4종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길가와 돌짝밭, 가시덤불과 좋은 땅이 그것입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은 주님의 말씀을 안 들으려고 귀를 막고 있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마음상태를 가리킵니다. 돌짝밭이나 가시덤불은 당시 무리들의 마음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좋은 땅은 12제자들의 마음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천국을 진짜 보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리고 실제로 그곳에 들어가게 될 사람은 어떤 종류의 사람입니까? 이들 4종류의 사람은 다 한결같이 말씀을 듣긴 듣고 있는 자들이지만, 길가와 같은 사람은 말씀을 들은 즉시 사탄이 그 마음에서 그 말씀을 빼앗아 가버리기 때문에 천국말씀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돌짝밭은 처음에는 말씀을 듣고 기뻐하고 좋아하지만 환란이나 핍박이 찾아오면 주님을 배반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가시덤불은 말씀을 들어 복을 받게 되었지만 그 복만을 추구하다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안타깝게도 돌짝밭이나 가시덤불은 둘 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에 해당하므로 이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천국의 비밀을 들을 때에 그것을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하며, 그것을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좋은 땅의 마음상태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마음을 기경해야 하겠습니다. 마음에 돌이 있다면 그것을 치워버려야 합니다. 가시덤불과 같은 잡초가 있다면 그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옥토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천국말씀을 듣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마음을 기경하여 천국의 비밀을 깨닫고 열매맺어 천국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은 무엇일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이라면 다 똑같은 복음이지 우리가 믿어 받아들어야 하고 전파해야할 복음이 따로 있는가 하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알 때가 되었다.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은 천국복음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예수님께서 온 공생애동안 전파하신 복음이 바로 천국복음이었기 때문이다(마9:35,눅4:43). 그리고 이 천국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때에 주님이 오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마24:14). 
  그러므로 천국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하는 것,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것은 순교자가 발생하는 것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순교자의 수가 차야 주님이 오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계6:11).
  주님께서는 종려주일 둘째날, 감람산 위에 올라가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면서 종말의 때와 징조에 관한 말씀을 제자들에게 들려주셨다. 그때 주님께서는 종말의 때에는 4가지 일들이 있을 것이라 하셨다. 즉 전쟁과 기근과 지진과 거짓선지자들의 출현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통의 시작일 뿐이라 하셨다. 진짜는 2가지 일들 후에 있다 하셨다. 하나는 대대적인 환난과 핍박이요 또 하나는 천국복음이 전파되는 것이라 하셨다. 이 두 가지 것이 일어나야, 종말의 끝이 온다고 하셨다. 결국 이 둘을 하나로 합쳐보면, 종말의 끝에는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일로 말미암아 순교자의 수가 찬다는 것이다.
  그렇다. 종말은 환난이 핍박없이 찾아오지 않는다(마24:29~31). 환란전휴거설은 잘못된 것이다. 이런 환난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기에 주님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구원얻을 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셨다((마24:21~22).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이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힘쓰고 있는가? 우리나라에서도 일제시대 때와 6.25 때에 잠시동안 천국복음이 전파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천국복음을 전파한다면 사람들은 비웃는다. 우리들도 "예수믿으면 병에서 고침받고 인생에서 성공한다고 해도 믿을까말까 하는데, 보이지도 않는 천국지옥 이야기하면 누가 믿겠어요?"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천국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천국복음'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전파하는 것이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것인가? 먼저 알 것은 천국복음의 원 글자는 '왕국복음'이라는 것이다. 여호와증인들이 이 단어를 먼저 써버렸기에, 기독교는 이것을 '천국복음'이라고 번역한듯 싶다. 
  왕국복음의 핵심은 왕에 있다. 새로온 왕이 오셔서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신다는 것이 왕국복음의 핵심이다. 이때의 왕은 곧 예수님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출현은 새로운 왕의 출현을 알리는 것이었고 잠시나마 이 세상에 왕국을 가져오셨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에 완전한 하나님의 왕국이 세워지지는 아니한다. 이 땅에서 잠시동안 있게 될 왕국은 임시적인 왕국이요 미리 맛보는 왕국일 뿐임을 명심하라. 우리가 차지하게 될 완전한 왕국은 저 하늘에 준비된 것으로, 하나님이 계시는 셋째하늘에 들어가서 얻게 되는 천국이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저 셋째하늘에 준비된 천국에 데려가시기 위함이다. 그때 이 세상임금은 마귀였다(요12:31, 14:30, 16:11).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왕을 바꾸어주기 위해 오신 것이다. 이 세상임금을 따르게 되면 저주를 받다가 지옥갈거니까, 마귀 위에 있는 하늘의 왕이 오셔서 우리를 구출해 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완성될 완전한 왕국은 저 하늘 위에 있음을 명심하라.
  한편, 사도바울이 말했던 이신칭의의 복음 즉 구원의 복음과 왕국복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믿는 즉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이신칭의의 복음은 복음의 기초일 뿐이다. 천국복음으로 완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받을 대상이 너무나 율법에 갇혀 있었기에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믿음으로 성령받는다는 것을 먼저 알려주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는 곳마다 이신칭의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하지만 그후에 반드시 하나님의 왕국의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가 죽기 전에는 자신도 하늘에 마련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임을 증거했다(딤후4:18).
  그러므로 성도들이여, 이제는 이신칭의의 복음만으로 안심하지 말라.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예수님을 내 삶의 왕으로 모셔들이지 않는 한 우리는 왕국복음 안에 사는 자가 아님을 알라. 그런 자는 하늘에 준비된 완전한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금부터 삶을 바꾸어야 한다. 예수님을 나의 인생의 주인, 내 삶의 왕으로 모시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그분께 물어보고 그분이 멈추라 하면 멈추고, 가라 하면 어떠한 핍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어도 그곳에 가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더 이상 이 세상임금인 마귀의 지배를 받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하늘로 옮기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왕국복음이다. 
  이제 왕국복음을 알았는가? 그러면 이 복음의 가르침대로 살아보라. 그리고 우리가 생명이 마치는 날에는 천국문에 이르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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