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분별력이 없으면 영적 세계에서는 거의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다. 다 가진 자 같으나 주님 보시기에는 하나도 가지지 않은 자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건강을 가졌는가 아니면 지식을 가졌는가? 권력을 가졌는가 아니면 물질을 가졌는가? 영원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그것은 오직 믿음과 회개를 통해서서만 얻을 수가 있다. 자, 지금 나는 어떠한 영적 상태에 있는지 라오디게아를 통해서 주님이 내리신 처방전을 보라! 오, 주님,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옵소서!

2020-10-04(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회개와 천국복음(76) 영적 분별력이 사라진 교회에 대한 주님의 처방전( 요한계시록 3:14~22 )
https://youtu.be/3TJSKMsYYfU [혹은 https://tv.naver.com/v/16065941 ]

 

 

 

1. 들어가며

  병원을 찾아간 환자에게 가장 불행한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의사가 진단을 잘못 내린 처방전 때문에 병은 낫지 않고 더 고생만 하는 것이다. 특히 수술을 해서 배를 갈랐는데 오진 때문에 다시 닫아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므로 의사는 정확한 진단이 생명이다. 이것은 영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영혼에 대한 진단이 잘못되었는데도 그 진단을 믿고 살고 있다면 그의 영혼의 문제는 더욱 더 악화될 것이고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영적 분별력이 사라진 교회 곧 과거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소아이사아 일곱교회 중의 하나인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과도 흡사하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오늘날 과연 나는 영적으로 어떤 상태에 있는지 정확히 진단을 받아보고, 주님의 올바른 처방전에 따라 자신의 영혼을 관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라오디게아 교회에 관한 메시지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사실 요한계시록의 말씀 중에서 가장 많은 설교를 차지하는 본문이 있다면 오늘 본문일 것이다. "뜨뜻미지근한 교회"요, "물질이 주인된 교회"라는 주제로 많은 설교를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보다 더 알려진 본문 말씀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은 계3:20의 말씀이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이 그림에서 특별한 것은 예수께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데, 문은 밖으로만 열리는 문이기에 안에서 열어주지 않으면 열 수 없는 문이다. 그런데 문밖에서 예수께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 믿는 사람들에게 영접기도를 할 때에 이 말씀을 들려주면서 영접기도를 하곤 했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본문의 문맥에 따르면, 이는 처음 예수믿는 자들을 위한 말씀은 아니며,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었는데도 어느샌가 자기도 모르고 예수님을 밖에 내놓고 자 곧 자기가 추구하는 것들로서 물질이나 명예와 인기 등이 주인되어 살고 있는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3.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 지금까지 알려진 잘못된 정보는 무엇인가?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 가운데 잘못 알려진 정보가 최소 2가지 있다. 하나는 잘못된 예화 사용이요 또 하나는 이 교회 상황에 대한 잘못된 이해다. 먼저, 이 교회가 뜨뜻미지근한 것은 이 도시에 흘러들어오고 있는 두 곳의 식수가 뜨뜻미지근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예화가 그것이다. 다시 말해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북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히에라볼리의 온천수가 이 도시에 오면서 뜨뜻미지근하게 되고고, 또한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동쪽으로 약 16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골로새의 차가운 냉수가 이 도시에 오면서 데워져서 뜨뜻미지근하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건 팩트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 도시의 식수는 이 도시로부터 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데니즐리"에서 직경 90cm되는 돌관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의미는 맞으나 예화가 좀 와전되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이 교회의 상황에 대한 잘못된 이해다. 보통은 이 교회에는 황제숭배나 수호신숭배와 같은 우상숭배 강요가 없었으며, 그래서 고난과 핍박도 없었고 평온한 교회였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다. 이 교회는 우상숭배와 황제숭배가 아주 만연된 교회였기 때문이다. 다만 아무도 그것이 우상숭배행위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올 가증한 행위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데 그 문제가 있다. 그 이유는 조금 후에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4. 이 교회에 대한 주님의 처방전은 무엇인가?

  그래서 주님께서 내리신 최종적인 결론은 이 교회를 입에서 토해버리고 싶다는 것이었다(16절). 더이상 이 교회를 품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이 교회를 버릴 수는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이미 예수님은 문바깥에 서 게셨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있었다. 그래서 이 교회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처방전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것은 3가지였다. 

  첫째, 불로 연단된 금을 주님에게서 사라고 하셨다(18a절). 그래서 자신을 부요하게 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교회를 영적으로 진단해보면 매우 가난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자가진단은 달랐다. 그들은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계3:17)"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 교회 성도들은 왜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것은 이 도시에 있는 3가지 특징 때문이다. 그 첫번째 특징은 이 도시가 동서양의 무역로에 위치해 있어서 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금융업이 발달하였고 그러다보니 은행의 금고에 금을 많이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 마디로 금 부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이들을 부자라고 말하지 않으셨다. 가난하다고 말씀하셨다. 오히려 가진 것이 없지만 믿음이 큰 서머나교회가 부요하다고 선언하셨다(계2:8~9). 그런데 문제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다보니, 자기들의 부자로 살게 된 것마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은 어떻게 되어서 부자가 되었는가? 그것은 이들도 다른 시민들과 똑같이 상업조직에서 수호신들을 경배하고 있었고, 제사에 바쳐진 음식을 같이 나눠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정금같은 신앙을 다시 소유해야 한다고 주문하셨다. 그들이 우상 앞에 절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단지 "도시문화"라고 생각했고, "친교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순결하고 순수한 믿음이 결코 아니었다. 그들의 믿음은 주 예수님 이외에 신이 없다고 하는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희 신도 있고 우리 신도 있는데, 다 자기 신을 잘 섬기면 되는거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믿음을 가진 자에게 우상은 없는 것과 같기에 그것에 절한다고 해서 그것이 죄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잘못된 우상숭배의 교뢰가 교회에 깊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정금같은 정련된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세상과 타협하는 신앙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원자로 믿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이 떨어져서 결국 구원으로부터 탈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 주님께서는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도록 흰 옷을 사라고 명령하셨다(18b절). 주님 보시기에 그들은 겉옷조차 입고 있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옷들을 잘 입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 도시의 2번째 특징인 "모직 직물" 산업 때문이었다. 라오디게아가 위치한 메안더강 상류인 리쿠스 계곡에는 풀이 아주 많았다. 그래서 양떼가 많았다. 그것도 검은 양떼가 많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흑양모산업이 발달하였고 그것으로 고가의 옷을 만들어 팔아서 수입을 올리고 있었으니, 당시 소아시아에서 제일 유명한 부티나는 옷이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것을 걸치고 있었던 사람이 이 도시 사람들 뿐만 아니라 교인들도 그랬다. 그러므로 자기 딴에는 자기들이 옷을 잘 입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이 길드에서 가서 수호신을 경배할 때 예수님의 옷을 벗어놓은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랬다. 영적으로 음란한 짓을 하기 위해 그들은 주님의 옷을 벗어놓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벌거벗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회개하여 검은 털옷을 벗고 예수님만이 구세주인 것을 믿어 흰 옷을 입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이 순결한 믿음을 얻으려면, 그들의 신앙의 열정을 타올라야 한다고 권면하셨고, 그들의 회개는 냉철하게 하여 단호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계속해서] 열심을 내라. 그리고 [단호하게] 회개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계3:19).

  셋째, 이제는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한 채 멀어버린 눈에 바를 수 있도록 안약을 사라고 말씀하셨다(18c절). 이것은 이 도시의 세번째 특징과 관련이 있다. 이 도시는 의료기술이 매우 뛰어났는데 그중에서도 안과 의료기술이 뛰어났다. 왜냐하면 당시 이 도시에 "멘 카루"라는 신전이 있었고, 의료학교(오늘날로 치자면 단과대학과 같은 것이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치료의 신을 숭배하는 학교로서, 당시에 이 학교에 유명한 대학교수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드향료를 가지고 "안연고"를 만들었고, 히에라볼리에서 가져온 것으로 "부르기아 가루 안약"을 만들었으며, 기름을 섞어 "안약"을 제조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것은 몰라도 라오디게아 성도는 눈의 건강에 대해서만큼은 자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세상을 보는 눈이 아니라 영적인 눈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영적인 것을 볼 수 있는 안약을 주님으로부터 사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영적인 것을 도무지 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사도로 쓰임받았던 바울도 다메섹도상에서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전혀 몰랐다. 그는 하나님에게 원수처럼 행하고 있었지만, 자신은 그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부자로 살고 있었고 부족함 없었으니, 자기들은 영적으로부터 부요한 자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의 눈이 멀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영적인 말씀을 들어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뜨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5. 이기는 자에 대한 주님의 약속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영혼에 대한 진단다운 진단을 받고 정련된 믿음을 갖기 위해서 열심을 내면서 회개하여 다시 흰 옷을 입는 자들은 어떤 복을 받게 되는 것일까? 주님께서는 이기는 자들에게 2가지 축복을 약속하셨다. 하나는 현재적인 축복이요, 또 하나는 미래적인 축복이 그것이다. 주님께서는 먼저, 다시 그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것이라고 말씀하셨다(20절). 왜냐하면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주인으로 맞아들인 자들은 다시 주님과 교제가 회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적은 축복으고서, 주님께서는 장차 주님이 오실 때에는, 이기는 자들로 하여금 당신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다(21절). 예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이기고 승리하여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처럼, 이제는 그들이 이기는 자들이 된다면 주님의 보좌에 그들을 앉혀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도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주님의 보좌는 "심판의 보좌"요, "통치의 보좌"이기 때문이요, 주님께서 이기는 자들에게 심판하는 권한을 위임하시고 또한 왕노릇할 것을 위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실제로 그렇게 실행하셨으니, 지금 천국에 가면 예수님께서 이기는 자들을 위하여 심판과 통치의 보좌 24개를 더 만들어 하나님의 보좌 좌우 뒤편에 배치해놓으시고 계신다(마19:28, 계4:4, 딤후2:11~12). 그렇다. 뜨뜻미지근한 신앙에서 벗어나 순전한 믿음과 회개의 흰 옷을 입은 자들에게는 이러한 축복이 뒤따라오게 될 것이다. 

 

6. 나오며

  주님은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자신을 "아멘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셨다(14a절). 이는 예수께서 "아멘" 곧 "진실하시고 참되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동안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허상을 진짜인 줄 알고 좇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 육적으로 부자가 아니라 영적으로 부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육적인 부자는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모든 것을 다 잃게 될 것이며, 죽어서는 죄값에 따라 불못에 들어가 영원토록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너무나 오래동안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고, 우상의 제물을 먹어온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문을 두드리고 계셨다. 이제는 자신을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라고 소개하시면서 말이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시면서 말이다. 말세에 과연 우리는 어떤 교회를 찾아가야 하는가? 첫째는 불순물이 하나도 들어가지 아니한 순전한 말씀을 전하는 교회를 찾아가야 한다. 둘째, 회개를 외침으로 흰 옷을 입게 해주는 교회를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셋째, 영적 분별력을 길러주고 키워주는 말씀을 선포하는 교회를 찾아가야 한다. 만약 그런 교회가 내 교회가 아니라면 그러한 교회가 되어지도록 날마다 눈물로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않으면 주님께서는 언젠가 그 교회를 밖으로 토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2020년 10월 04일(주일)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회개와 천국복음(75) 구원얻는 회개란 무엇인가(36) 라오디게아 교회는 무슨 죄를 지었을까?(계3:14~17)_2020-10-02(금)

https://youtu.be/oLRWmz7UHSI  [혹은  https://tv.naver.com/v/16041193 ]

 

 

1.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떤 교회였나요?

  라디오디게아 교회는 A.D.95년경 소아시아에 실재하고 있었던 교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당시 소아시아에는 요한계시록 2~3장에만 나오는 일곱교회만이 존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는 더 많은 교회들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히에라볼리교회, 골로새 교회 등등 말이죠.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교회들 중에서도 단 일곱 개의 교회만을 샘플로 지정하여 언급하신 것입니다. 그중에 라오디게아 교회는 일곱번째의 교회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이 교회의 특징은 뜨뜻미지근한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는 차갑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했기 때문입니다(계3:14~15).

 

2. 라오디게아 교회가 뜨뜻미지근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라오디게아교회가 뜨뜻미지근했다는 것은 그 교회가 신앙에 열심을 내지도 않았으며 죄에 대해서는 냉철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교회가 지리적으로 볼 때에, 두 개의 도시들 중간에 위치해 있던 것과도 매우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가 위치한 라오디게아 도시는 뜨거운 온천수로 유명했던 히에라볼리 도시와 차가운 물로 유명했던 골로새 도시 사이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곳에서의 물이 라오디게아로 흘러내려오게 되면, 뜨거운 물도 미지근해졌으며, 차가운 물도 역시 미지근했졌기 때문입니다. 

 

3. 이 교회가 뜨겁지도 않았도 차갑지도 않았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 교회가 뜨겁지 않았다는 것은 이 교회가 불순물이 하나도 섞여있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데 결코 열심을 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교회가 차갑지도 않았다는 것은 이 교회가 자신의 죄를 냉철하게 분석하여 회개하는 데에도 열심을 내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교회의 신앙은 불순물로 이미 오염된 채 있었으며, 죄를 책망하는 지도자도 없었고 또한 죄에 대해서 아파하고 탄식하는 성도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4. 이 교회는 어떤 착각을 하고 있었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도다(계3:17a)" 그럼 이 교회는 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경제적으로 매우 풍요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계3:17a). 그들은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잘 해왔기에 하나님께서 물질적으로 자기들에게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셨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진단은 그와는 정반대였습니다. "너는 비참하고 불쌍하구나. 왜냐하면 네가 가난하고 눈이 멀어있고 벌거벗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있기 때문이다(계3:17b)"라고 진단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어서 앞뒤를 분간하지 못해 자기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영적으로 볼 때에 그들은 자기들의 실상이 어떠한지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교회는 자신의 구주이신 주님께서 이 교회 안에 죄정해 있는지 혹은 밖에 서 있는지도 분간하지 못한 채 살고 있었습니다. 

 

5. 이 교회가 다시 살아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 교회를 입에서 토하여 내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계3:16b). 이 교회는 교회로서 더이상 쓸모가 없을 뿐더러, 그 상태로서는 천국에 들어갈 자가 한 사람도 나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편 사데 교회는 살아있다고 하는 이름은 가졌지만 죽은 교회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사데 교회에는 흰 옷을 입고 걸어다니는 몇 명의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아디라교회는 이미 집단적으로 모두가 타락해 있으니, 교회의 지도자도 타락해 있었고 평신도도 타락해 있었기에, 그들 누구도 자기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진단하지 못한 채 있었습니다. 모두가 다 이미 오래 전에 이교신(수호신, 우상)을 숭배하는 것에는 "문화행위"라는 명목으로 용인해 왔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해서는 "친교행위"라는 목적으로 제물을 먹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 누구도 지적하거나 책망하는 자도 없었습니다. 천국가는 바른 믿음은 이런 것이라고 가르쳐준 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 교회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불순물이 전혀 포함되어있지 않은 순수한 신앙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상숭배나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죄라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다시 회개를 해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 교회는 자가진단능력을 상실한 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돈을 벌어들이는 데에만 눈이 멀어있었기 때문입니다(계3:17a). 그래서 그들은 물질적으로는 부자였고 부족한 것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얼마나 우상숭배를 열심히 행했으며, 우상의 제물도 이미 친교의 목적으로 먹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이 교회는 어떻게 해야 되나요? 이 교회의 치유책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020년 10월 02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회개와 천국복음(74) 구원얻는 회개란 무엇인가(35)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계3:1~6)

https://youtu.be/RJ8kW-LoajU  [혹은 https://tv.naver.com/v/16036360  ]

 

 

1. 사데 교회에게 나타나신 주님은 자신을 어떻게 소개했나요(계3:1)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사데교회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에, "하나님의 일곱 영들과 일곱 별들을 가지고 있는 이"로 소개하셨습니다. 

 

2. "하나님의 일곱 영들"과 "하나님의 일곱 별들"은 무엇을 가리키나요(계2:1,4:5,1:20)

  주님께서 언급하신 "하나님의 일곱 영들"은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에 성령님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계1:4)"로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일곱개의 등불들"을 가리킵니다(계4:5). 그런데 일곱 등불들은 일곱금촛대 위에서 타오르고 있는 일곱 등불들입니다(계1:12). 그런데 예수께서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게1:20). 그렇다면, "일곱 별들"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들의 사자들(메시지 전달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계1:20). 일곱 교회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지도자들 곧 주의 종들을 가리킵니다. 

 

3. 사데교회는 어떤 교회였나요?(계3:1~2)

  사데교회는 A.D.95년 당시 소아시아에 위치한 일곱교회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계1:11, 3;1). 이 교회는 "두아디라 교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도시 안에 한 개의 교회만 있는 교회가 아니라, 한 도시 안에 여러 개의 작은 공동체 교회를 가지고 있는 특별한 교회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데"라는 지역명이 다 복수로 쓰여있기 때문입니다(계3:1,4). 그런데 이 교회는 칭찬은 하나도 없고 책망만 있는 교회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이 교회의 행위를 보고서, 살아있다고 하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죽어있는 교회라고 평가하셨습니다(계3:1). 왜냐하면 이 교회의 거의 전부의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입고 있는 흰 옷이 이미 더럽혀진 채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생명책에 기록된 그들의 이름들이 이제는 거의 지워져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황제숭배나 우상숭배의 유혹과 명령 앞에서 이들은 거의가 다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계3:4~5). 

 

4. 왜 예수께서는 거의 죽어있다시피하는 이 교회에게 자신을 가리켜, "성령을 가지고 계시고 주의 종들을 붙들고 있는 이"라고 말씀하신 것인가요?

  지금까지 여러 교회들의 경우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주님께서 어떤 교회에 편지를 쓰라고 하실 때에는, 주님께서 당신을 소개하는 구절에서 당신 자신이 누군지를 소개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개는 단순한 소개가 아니라 그 교회의 상황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께서는 사데교회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에, 그분은 "성령"을 가지고 계시며, "주의 종들"을 붙잡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인가요? 그것은 교회가 아무리 타락했어도, 또한 그 교회 성도들의 생명이 거의가 다 꺼져가고 있는 상태에 있다고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그 교회의 지도자와 성도들에게서 결코 성령을 거두어가시지 않으시며, 또한 그들을 끝까지 붙여주시어 그들의 회개하도록 돕겠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도들의 회개에 있어서 핵심은 주의 종들에게 있다고 보셨기에, 주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주의 종들을 붙들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만큼 주님께서는 한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지도자를 결코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붙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주의 종들이 진리와 생명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더욱 더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5. 당시 보혜사 성령께서는 구약시대와는 경륜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으며, 또한 언제 떠나실 수 있나요?(요14:16~17,엡4:30)

  사데교회에 주신 말씀은 성도들이 아무리 타락해도 또한 주의 종들이 거의 죽어가고 있는 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이들에게 성령을 끝까지 거두어가시지 않으시고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불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람이 거듭날 때에 사람 속에 들어오시는 성령은 영영 떠나지 않으시는가 아니면 떠나실 수도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보통 성도들은 한 번 신자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은 결코 그 사람을 떠나지 않으신다고 들었을 것이고 배웠을 것입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소개하는 말씀 속에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요14:16)"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한글성경으로만 보면, 한 번 주어진 보혜사 성령은 결코 성도들을 떠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영원토록"이라는 단어가 "에이스 톤 아이오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를 직역하면, "그 세대까지" 혹은 "그 시대동안" 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성령께서는 성도들이 살고 있는 그 시기동안에는 성도들을 결코 떠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그 시기는 언제까지일까요? 그것은 엡4:30에 따르면, 우리의 몸이 구속받아 다음의 세계로 들어갈 때까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죽는 날에 성령께서는 떠나가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진실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죽음이 두려워 주님을 부인한다거나,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가 살아 있을 때에는 성령께서 떠나지 않으시나, 그가 죽는 날에는 성령께서 그를 떠나실 수도 있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죽는 날에도 성령께서 계속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좋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 날에 생명책에 기록된 우리의 이름도 지워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결국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에 쉽게 속아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믿을 때에 자신의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받았다는 말에 속아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만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만 회개함으로 용서받을 수 있음을 확고히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미래에 지을 죄까지도 다 용서받았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누구든지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할 때에 용서받게 되기 때문입니다(요일1:9). 그러므로 우리가 죽는 날에 성령께서 우리를 떠나지 않게 하려면, 어떤 고난이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부인하지 말아야 하며, 지은 죄가 있다면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을 얻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0년 10월 01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회개와 천국복음(73) 구원얻는 회개란 무엇인가(34) 범죄한 자라도 회개하면 어떻게 되는가?(계3:1~6)_2020-09-30(수)

https://youtu.be/jaEnsgIN0bY  [혹은  https://tv.naver.com/v/16024828  ]

 

 

1. 사데교회는 어떤 교회였나요?

  사데교회는 칭찬이 전혀 없는 교회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사데교회에 대해서, 이 교회가 살아있다고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그것은 과거의 명성일 뿐 현재는 이미 죽은 상태에 있는 교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계3:1). 그런데 내부사항을 살펴보니, 이 교회도 두아디라교회의 경우처럼 여러 작은 공동체 교회들이 모여 하나의 사데교회를 이룬 교회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데"라는 지명이 복수형태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즉 이 교회는 일컬어 "사데들 안에 있는 교회"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계3:1)

 

2. 사데교회의 상태는 어떠했나요?

  사데교회는 여러 작은 공동체 교회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거기에는 작은 공동체 교회들의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영적으로 거의 다 죽어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조금 있으면 다 죽을 텐데,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아서 마지막으로 조금 꿈틀거릴 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는 황제숭배와 이교신숭배(우상숭배)를 모든 교회(지도자들과 교회들)가 다 받아들인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3. 이 교회에 대한 주님의 권면은 무엇이었나요?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어서 깨어나라." 그리고 "죽어가고 있는 남은 것들이나마 강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계3:2).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 죽어가고 있는 이 교회의 어떤 작은 교회 지도자가 자신이 어디선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원인을 찾아내었고 그것은 황제숭배와 우상숭배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러니까 작은 공동체 교회에서 그와 같은 사실을 전했고 그 작은 공동체 교회는 결국 이전에 행하던 우상숭배행위를 그만 두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국가반역행위가 될 수 있어서 국가로부터 벌금을 물게 된다든지 아니면 재산을 몰수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모든 성도가  다 우상숭배하고 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판국에 "너희들만 잘 난 체 하느냐"는 빈정거림과 아울러, 이교신들에게 제사드리고 그 음식을 먹는 것은 문화활동이며, 친교행위로 몰아가는 당시 교회분위기로부터 본인은 정작 왕따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상업조직에서는 상업활동행위를 박탈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몇몇 소수의 지도자와 성도들은 새로운 결정을 따르기로 한 것입니다. 

 

4. 주님께서는 몇몇 소수의 사람들에게 어떤 칭찬과 격려와 약속을 해주셨나요?

  교회의 지도자들도 죽어있고 성도들도 다 죽어가는 상태에 있었는데, 몇몇 지도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켰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속한 작은 공동체 교회에 그것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소수의 사람들이 돌이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영적으로 그들의 옷을 보면, 그들의 옷은 더럽혀진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자, 그들의 옷은 점점 더 하얗게 변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지은 죄들을 솔직히 시인하면서(요일1:9), 예수님의 피공로에 의한 용서를 간절히 구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대환난 가운데 처에 있었는데 회개를 통해서 빠져나오고 있었던 것입니다(계2:22). 그런데  한편 두아디라교회의 작은 공동체 교회의 지도자들 대부분은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대환난 중에 머물러 있었던 것과는 달리, 사데교회의 일부 작은 공동체 교회의 지도자들은 대환난을 받으면서 회개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려는 그들에게 큰 축복들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첫째, 장차 그들은 깨끗하고 흰 세마포옷을 입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그들의 이름이 거의 지워져가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들의 이름을 결코 흐리게 하지(지우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셋째, 그들의 이름을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시인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계3:5). 이 말씀은 거꾸로 뒤집어보면, 사데교회는 대부분이 흰 옷이 아니라 더럽혀진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에 회심했을 때만 해도  깨끗했던 세마포옷이 그만 더러운 옷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음이 약해지고 회개가 안 된 상태에 계속 놓여 있었기에, 생명책에 기록된 그들의 이름마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상업조직에서 실시하는 친교파티에 참여하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시인하지도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와중에서도 몇 몇 소수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과거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키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5. 회개와 관련하여 이 교회의 특징은 무엇이 있나요?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와 관련하여 이 교회의 특징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지옥에 떨어질 만큼의 우상숭배가 만연한 교회했지만 그래도 깨어서 죽어가고 있는 것을 강하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작지만 회개한 자들이 생겨나 그들만큼은 기사회생의 절차를 밟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둘째, 이미 믿음으로 구원얻은(명성있는) 자라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가 있으며,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질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에 들어와서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지은 자범죄로 인하여 옷이 더럽혀지고 있고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셋째, 어떠한 죄를 범했어도 오직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고 회개하면 다 용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시인하여 예수님의 피공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더럽혀진 옷도 희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넷째, 주의 종이 죽어있는 교회는 성도도 영적으로 거의 죽어있는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고로 주의 종들이 살아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 교회에 자신을 소개할 때에, 성령을 가지고 있고 일곱별들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설령 주의 종이 타락한다 할지라도 그가 죽기 전까지는 성령을 빼앗지 않아서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것과 그래도 주님은 각 교회의 별들인 주의 종들이 회개에 이르시기를 원하고 바라신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2020년 09월 30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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