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16)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06) 우상의 제물을 먹고 준비한 것도 회개해야 하는가?(고전10:14~31)_2020-12-10(목) 

https://youtu.be/0HJugetxBbY  [혹은 https://tv.naver.com/v/17134251  ]

 

1. 오늘날 교회에서 실시하고 있는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는 과연 우상숭배행위일까요?

  예. 그렇습니다.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는 변형된 우상숭배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추도예배는 추도식을, 장례예배는 장례식을 기독교형태로 바꾸어서 수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죽은 자를 기념하여 드리는 추도식 그리고 죽은 자를 놓고 행하는 장례식은 죽은 자를 신을 섬기듯 행하는 행위로서 결국 귀신들을 불러들이고 귀신들을 섬기는 의식이 되기 때문에 엄연한 우상숭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897년 정동감리교회 이무영성도가 어머니 기일을 맞이하여 핍박을 면해보고자 추도식을 예배형식으로 바꾼 것이 추도예배의 시초가 되었고, 장례식도 그렇게 해서 기독교식으로 바뀐 것이므로, 모두가 다 변형된 우상숭배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추도예배든 장례예배든 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데 어떻게 그것이 우상숭배행위가 되는 것인가요?

  하나님께서 예배의 형식을 빌어 예배드린다고 해서 다 예배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거꾸로 말라기 1장의 말씀을 보면, 형식은 예배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내용면에서 하나님을 멸시하는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을 예배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제사장들이 더러운 떡을 제단에 드리고, 눈먼 것과 저는 것, 병든 것으로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리자, 하나님께서는 말라기선지자를 통하여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나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으며 그가 너를 받아주겠느냐(말1:8b)"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식만 있고 내용은 빠진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는 것처럼, 겉으로는 예배의 행식을 취하고 있느나 실제는 죽은 자나 시체를 놓고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더럽히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예배는 누가 받습니까?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예배가 되니, 귀신들이 와서 그 예배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는 귀신을 불러들이는 행위이자 귀신을 섬기는 예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다 우상숭배행위인 것입니다. 

 

3. 영적으로 볼 때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는 어떤 행위라고 할 수 있나요?

  영적으로 볼 때 추도예배는 그날 죽은 자를 기념하기 위해서 추도식을 행하는 대신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므로 그것은 귀신을 불러들이는 행위입니다. 또한 장례예배는 장례식을 기독교식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므로 시체를 놓고 예배를 드리면 시체 속에 들어 있던 귀신들이 밖으로 나와서 자신이 들어갈 다른 숙주를 찾는 일이 되어버리므로 결국 장례예배도 귀신숭배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를 결코 드려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추도예배는 폐지하여 드리지 말아야 하며, 장례식 때에는 조문은 할지언정(가족과 친분관계로 어쩔 수 없을 경우) 결코 죽은 자 때문에 예배를 드려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 장로교와 같은 경우는 1970년 초반만 해도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를 드리는 것은 우상숭배행위로 간주했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다보니 어느새 추도예배와 장례예배가 기독교의식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닙니다.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는 성경말씀에 따른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핍박을 면해보려고 만든 것으로서 결국 귀신을 숭배하는 의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4. 우상의 제물을 만들거나 먹어는 것도 죄가 되나요?

  그렇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숭배에 동조한다는 것과 동일한 표현이기에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도 우상숭배행위에 해당합니다. 그것은 부활승천하신 주님께서 버가모와 두아디라교회에게 주신 말씀에 고스란히 나와 있습니다(계2:14, 20~21).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 우상숭배행위이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도록 지금도 진노와 징계를 내리고 계십니다. 구약시대의 경우에는 우상의 제물을 먹어서 하나님을 격노케 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재앙이 크게 내렸다고 말씀하고 있으며(시106:28~29), 신약시대 이후 예수께서는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는 침상에 던질 것이고, 그것을 따라가는 자들은 큰 환난 가운데 던지며, 자신의 자녀들은 죽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계2:20~23). 그러므로 자신은 오직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는 줄을 믿고 있으니, 자신이 우상 숭배한 것은 단지 행위만 불과할 뿐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억지주장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자신은 우상숭배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행위가 우상숭배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엄연히 죄에 해당하므로, 본인인 행위가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제시대 때에 신사참배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것은 우상숭배행위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예절이라고 주장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우상숭배행위가 되지 않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리고 자신은 우상에게 절하지도 않고 섬기지도 않겠지만, 어쩔 수 없이 제사지내는 시부모님과 남편 때문에 음식을 만들어주기는 한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믿는 자가 우상숭배를 할 수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그렇게 묘책을 짜낸 것이겠지만 그것은 남이 우상숭배하도록 거드는 일이 되기 때문에 그것도 당연히 우상숭배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역시 죄가 되는 것입니다. 제사음식 만드는 것도 우상숭배행위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십자가 긋고 제사음식 준비하고 먹으면 자신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주님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을 동시에 참여할 수 없다고 분명하게 언급했습니다(고전10:21~22). 한편, 장례식장에 가서 음식을 먹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상조회가 준비한 음식으로서, 죽은 자에게 바쳐진 것이 아니므로 먹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것을 먹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5. 장례식장에 가서 꽃을 바치는 행위는 괜찮은가요?

  아닙니다. 장례식장에 가서 흰 국화꽃을 바치는 행위는 과거에 불신자들이 향을 피우는 것을 대신해 행하던 일본식 장례문화로서 이것도 역시 우상숭배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사실 죽은 사람을 병풍 뒤에다 갖다 놓았습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시체가 썩으면서 냄새가 나기 때문에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향을 피운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즉시 영안실에 시신을 넣어둡니다. 그리고 장레식장에서는 영정사진만 내 걸어놓은 상태에서 조문을 받기에, 이제는 대부분 향을 거의 피우지 않으며, 국화꽃만을 바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러한 행위는 죽은 자에게 예의를 갖추는 행위이므로 우상숭배행위가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그것을 우상숭배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죽은 자를 섬기는 의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혹 장례식장에 가더라도 절대 국화꽃을 바치거나 영정 사진 앞에 절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리고 갔다왔으나 자신의 몸과 영혼이 더럽혀진 상태가 되므로 꼭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2020년 12월 10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15)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05)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도 우상숭배가 되는가?(02)(눅9:59~62)_2020-12-09(수)

https://youtu.be/MN0nnnPLcFo  [혹은  https://tv.naver.com/v/17111426  ]

 

 

1.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는 성경말씀에 해당할까요?

  추도예배는 장례예배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 것들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죽은 자를 위해 제사를 드렸다거나 혹은 예배했다는 대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는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를 예배의 한 종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관습에 해당하는 것일뿐 성경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따라, 식사하기 전에는 손을 씻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마15:2). 그러나 손을 씻는 것은 자신의 건강에 유익한 것이기에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는 영적인 건강에 매우 큰 해를 입히기 때문에 단순히 예배의 한 종류로서 취급해서는 아니 됩니다. 이것은 장로들의 유전 가운데 "고르반"과 비슷한 경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15:4~6). 이것은 마치 유대인들이 부모를 공경할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하면,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의 이러한 고르반 제도가 자신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것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라는 관습법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있는 관습이기기 때문입니다. 

 

2. 사람이 죽었을 때에 성경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나요?

  사람이 죽게 되면 즉시 매장을 하여 사람이 시체로 인하여 더럽히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 율법의 규정입니다(레21:11,22:8). 그러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당일날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날에 매장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죽자 당일에 그들을 매장했다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람이 죽었을 때에 시체를 빨리 처리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는 사람의 시체는 사망이 임한 것이므로 곧 부정한 것이 되며, 이러한 부정한 시체에 접촉하는 자가 똑같이 부정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라도 부정한 시체에 접촉하지 않게 하려면 빨리 장례를 치르는 길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3. 죽은 사람의 시체를 접촉한 자는 어떻게 하라고 했나요?

  율법규정에 따르면 죽은 사람의 시체를 접촉한 자는 셋째날와 일곱째날에 잿물을 사람에게 뿌려서 정결예식을 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민19:11~12,17~19). 만약 시체를 만지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이스라엘에게 끊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죽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시체를 접촉하고도 자신을 정결하지 않는 자가 여호와의 성막이나 성전에 들어가면 성막과 성전도 같이 더럽혀지게 된다고 했습니다(민19:13,20). 그러면 그 사람도 죽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시체와 접촉한 자는 반드시 정결예식의 절차를 통해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구약의 율법중 의식법들(제사법, 절기법, 정결법, 음식법)은 이미 그것이 완성되어짐으로 결국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 우리들이 장례식장에 다녀왔다고 해서, 꼭 잿물을 뿌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럴 때에 몸이 더럽혀진 것은 다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면,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면 죄용서도 받고 깨끗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요일1:9). 사실 장례식장에 가면 상주를 비롯한 가족들 대부분은 시체를 가까이 하기 마련입니다(적어도 입관식 때에). 그러므로 이러한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접촉하게 되면, 조문자도 당연히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례식장에 갔다 오신 분들은 회개기도를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장례예배라는 형식을 빌어서, 죽은 시체를 예배당 안으로 들여와서는 "교회장, 노회장, 총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도 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예배당을 더럽히는 것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옛날 사람들이 노제를 드리듯이 교회에 시체를 가지고 들어와서 예배를 드리니, 이것만큼 하나님을 노여하게 하게 만드는 죄는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4. 왜 성도들은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를 드려서는 안 되나요?

  추도예배는 사실 불신자들의 제사나 추도식을 예배의 형식을 빌어 만든 것이고, 장례예배는 불신자들의 장례식을 예배의 형식을 빌어서 만든 것입니다. 실상은 제사와 장례식으로서 우상숭배행위에 해당하는 것들입니다. 핍박을 면해보기 위해 시작한 추도예배나 장례식을 교회화하여 실시하고 있는 장례예배는 다 죽은 자를 숭배하는 의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러한 것들을 행하시면 안 됩니다. 이런 것들은 구약시대에는 단지 자기와 성전을 더럽혀진다고만 되어있지만, 신약에 들어와서는 귀신들이 직접적으로 사람의 몸에 들어오는 통로가 되어 사람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특히 고전10:20에 따르면,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은 죽은 조상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들에게 하는 것이요 귀신과 접촉하는 행위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보았을 때에 추도예배는 귀신을 불러들이는 시간을 가리키며, 장례식은 귀신들이 자신들이 들어갈 대상을 물색하는 시간을 가기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를 드리면 귀신이 사람 몸 속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귀신들은 저주받은 영들이기에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저주가 자신의 몸과 영혼에게 나타나게 된다고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를 드려서는 아니 됩니다. 

 

5.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라고 하셨나요?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장례가 났을 때에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오늘 우리가 읽었던 누가복음 9장에 보면, 그 예시가 잘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어떤 제자가 자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면서 장례를 치르고 나서 주님을 따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눅9:60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예수께서는 영이 죽은 자들로 하여금 자기자신의 육체가 죽은 자들을 매장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이미 죽은 자는 되돌이킬 수가 없으며 또한 죽은 자는 이미 그의 시체(껍데기)만을 남긴 채 그의 영(알맹이)은 천국과 지옥 둘 중의 어느 한 곳으로 가고 없기 때문에, 그 시체를 두고 지극정성을 쏟아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육체가 살아있는 자들은 믿고 회개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기에, 육체가 살아있는 사람들의 영혼구원에 더 신경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혼은 그 시체 속에 없습니다. 다만 시체 속에 남아있는 것인 귀신들(뱀들)일 뿐입니다. 조상의 시대부터 들어온 귀신들이 죽은 시체 속에 들어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시체를 놓고 지극 정성을 쏟거나 예배를 드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시체 속에 있는 귀신들이 몸 밖으로 나와서 시체에 대해 예의를 갖추어 섬기거나 절하는 자에게 쏙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효도하려면 사람이 살아있을 때 해야 합니다. 살아있을 때에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우리가 죽은 시체를 놓고 예배한다고 해서 그 예배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말라기 1장에 제사장들이 더러운 떡을 하나님께 드리고, 눈먼 희생제물과 저는 것과 병든을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제사를 받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말1:7~10).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는 죽은 자 때문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이기에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헛된 예배요 귀신에게 영광이 돌려지는 예배가 될 뿐입니다. 

 

2020년 12월 09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14)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04)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도 우상숭배가 되는가?(민19:11~22)_2020-12-08(화)

https://youtu.be/tQ97GrC-96o  [혹은  https://tv.naver.com/v/17090350  ]

 

 

 

 

1. 오늘날 예수믿는 사람들도 우상숭배하는 경우가 있는가?

  오늘날 들어와서도 예수믿는 사람들도 우상숭배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하면 도무지 믿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신약시대에 들어와서 우상숭배는 마음으로 짓는 우상숭배 행위도 있고 자기도 우상숭배인지도 모른 채 우상숭배 행위를 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통 성도들에게 우상숭배의 죄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예수 믿기 전에 지은 죄들이요, 조상들이 지은 죄들이라고만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마6:24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맘몬)을 겸하게 섬길 수 없다고 하시면서 돈을 추구하는 것이 곧 우상숭배라고 말씀해 주셨으며, 사도바울은 골3:5의 말씀을 통하여, 탐심(탐욕)도 우상숭배라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2. 오늘날에 성도들 중에 자기도 모르게 우상숭배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있을까요?

  오늘날에 들어와서도 자기는 전혀 우상숭배행위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실제는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들이 더러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추도예배나 장례예배를 드리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은, 추도예배든 장례예배든 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데, 그것이 어떻게 우상숭배행위가 되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교회에서 드리고 있는 모든 추도예배와 장례예배가 과거에는 우상숭배였다고 할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런데 일반적인 추도식과 장례식의 절차를 어느때부턴가 교회의 예배형식으로 바꾸어서 수용하게 되면서 그것은 예배의식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즉 제일 처음으로 감리교에서는 1934년부터 그것을 교리와 장정에 예배의식으로 수용하였으며, 구세군과 성결교에서는 1950년대 후반부터 받아들였고, 장로교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예배에 포함시킨 가운데, 오늘날에는 당연히 그것을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1930년 이전까지만해도 그것들은 다 우상숭배라고 불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법이 바뀌고 관습이 바뀜에 따라 우상숭배행위가 그만 예배형식으로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는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3. 우리나라에서 추도예배는 제일 처음 누가 시작한 것인가요?

  추도예배는 사실 세상 사람들이 행하는 일반적인 추도식을 예배형식으로 전환한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성도가 자기 어머니의 기일에 추도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1897년의 일입니다. 정동감리교회의 이무영 성도가 자기 어머니 기일을 맞이했는데, 추도식을 하자니 우상숭배행위가 될 것 같고, 그냥 넘어가자니 불효자식이라는 될 것 같아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추도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도예배"는 추도식의 변형된 형태일 뿐 그것의 실체는 추도식인 것입니다. 다만, 거기에 찬송과 기도와 말씀 등이 들어가니까 예배로 보이는 것일 뿐, 추도식 자체가 죽은 자를 기념하기 위해 행하는 의식이었기에 추도예배 역시 우상숭배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형식이 조금 바뀌었다고 해서 죽은 자를 기념하여 밤에 드리는 추도예배를 과연 하나님께서 받으시겠는지를 한 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예배의 형식을 빌어서 예배드리면 다 예배가 되는 것일까요?

 

4. 우리가 장례예배를 드린다면 예배이니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까요?

  우리는 죽은 자의 제삿날에 드리는 추도예배가 성경적인가를 생각해 보았어야 했습니다. 성경에 그러한 사례가 과연 있었는지(행5:6,10), 또한 우리 주님께서는 추도예배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고(눅9:60) 사도들은 또 어떻게 언급했는지를 살펴보았어야 했습니다(고전10:20). 하지만 우리나라의 장로교 교단과 같은 경우는 벌써 50년이상을 시행해오다보니, 응당 그것을 예배라고 생각하고 있고 또한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 일날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장례예배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사망의 권세가 그를 차지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영혼이 떠나버린 육신은 귀신들이 곧 접수하게 됩니다(창3:14, 마12:43~45). 그러므로 죽은 자를 놓고 예배한다는 것은 사망이 가득한 곳에서 예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함께 할 수 있겠으며, 생명과 사망이 어찌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둘 줄의 하나는 그곳에 없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망이 임한 시체 곧 사탄마귀가 장악한 시체를 놓고 거룩한 하나님께 예배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어불성설이었습니다. 그것은 양립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핍박을 면해보고자 시작되된 추도예배와 장례예배는 이제 한국교회에서는 어느덧 없어서는 안 될 거룩한 예식으로 자리잡은 뒤 전통으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정해야 합니다. 추도예배와 장례예배 앞에 섰을 때에 과연 전통과 관습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갈 것인가를 말입니다. 사람이 죽거나 죽을 무렵이 되면 각종 장례예배들이 드려지고 있습니다.  곧 임종예배, 위로예배, 입관예배, 장례예배(발인예배), 하관예배(화장예배)들이 즐비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시체에다가 염을 하고 옷을 입혀 관에 넣은 것을 보고서 예배를 해야 하는 것인지 물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5. 성경에서는 죽은 사람의 시체에 대해 어떻게 처리하라고 말씀하고 있나요?

  성경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날 당일에 장사(매장)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어서 시체와 접촉한 자는 부정하게 되었으니, 3일째 되는 날과 7일째 되는 날에 부정한 자의 죄를 씻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시체로 더러워진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면,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은 다음 그것을 그 사람에게 뿌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민19:11~12,16~19). 만약 자신이 시체나 무덤을 만짐으로 부정하게 되었는데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그는 더럽혀진 채 그대로 있는 것이며, 그런 자가 제사드리려 여호와의 성막이나 여호와의 성전에 오게 되면 여호와의 성막과 여호와의 성전도 더럽혀진다고 했습니다(민19:13,20). 그리고 만약 부정한 자가 거룩한 곳에 오게 되면, 그는 결국 이스라엘에게 끊어져서 죽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민19:13,20). 또한 시체나 무덤을 만져서 더럽혀진 자와 접촉하는 그 사람도 부정해지며, 그는 저녁까지 부정한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민19:22). 그러므로 신구약에 나오는 거의 모든 인물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날 당일날에 메고 나가서 장사하여 빨리 시체를 치워버렸습니다. 놔두어서 접촉하게 하면 할수록 부정한 자가 더 많아지게 되고, 그러다가 정결예식을 하지 않은 자가 거룩한 장소에 들어갔다는 죽임당하기 쉽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목사와 장로가 죽게 되면 교회장이나 노회장 그리고 총회장이라고 하면서 시체가 든 관을 교회의 아래강대상에다가 가져다놓고 예배를 드립니다. 이것은 어떤 행위입니까? 하나님을 노여워하시게 하는 행위가 아닙니까? 그러면 장례가 나면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내일 이 시간에 체계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020년 12월 08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바른 회개(13)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03) 사람의 가장 큰 죄는 무엇인가?(요16:7~9)_2020-12-07(월)

https://youtu.be/6OFDHBKDLYQ  [혹은 https://tv.naver.com/v/17069110  ]

 

1. 주의 천사가 나타나 알려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미칠 가장 큰 기쁜 소식은?(눅2:10~11)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유대땅 베들레헴(다윗의 동네)에 "구주(구원자)가 나셨다"는 소식입니다. 천사는 그분이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그리스도)이시며, "주님"(아도나이)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다시 말해 구약성경에 350가지 이상 약속된 메시야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탄생했다는 소식이야말로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쁜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눅2:10-12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2. 이 세상에 구주(구원자)로 오실 분에 대해 B.C.730년경 이사야선지자는 어떻게 예언했나요?(사9:6)

  이 세상에 탄생할 구주(구원자)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렇습니다. 이사야선지자는 말하기를 "그분은 장차 한 아기로 태어나실 것인데, 아들로 오실 것이다. 그런데 그분의 어깨에는 통치권이 있고 그분은 그의 이름을 위대한 보혜사요, 강한 하나님이요, 영원한 아버지이며, 평강의 통치자라고 부를 것이다"라고 예언했습니다. 
 

3.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죄는 무엇인가요?

  그럼, 사람이 짓는 가장 큰 죄는 대체 어떤 죄일까요? 그것은 우상숭배의 죄일까요? 아니면 살인죄일까요? 그와같은 죄들도 사실 심각한 죄임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크고 근원적인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7)."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행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을 믿지 않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일은 이미 2천년전경 유대땅에서 일어났으며, 벌써 2천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중에 이 놀라운 소식을 듣지 못한 이들이 아직도 있으며, 또한 그 소식을 듣고도 그것을 귀히 여기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들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이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일입니다. 가장 먼저는 자기 가족부터 전해주어야 하고 친구와 이웃에게 전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행1:8, 행16:31). 왜냐하면 아무리 놀라운 소식이라 할지라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자는 그 혜택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4. 예수께서 누군지를 알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오늘날에 예수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어떻게 대답할까요? 당시 예수님을 가장 근거리에서 지켜보았던 베드로는 예수님이야말로 "[구약성경에서 약속하고 있는 바로 그] 메시야(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16:16)"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실은 이것도 대단한 고백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영이 없었다면 결코 그러한 고백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바요나(요나의 아들=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일지라도 실제로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신앙고백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계시를 받지 못했다면 결코 알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사도바울의 기도처럼, 지혜와 계시의 영을 달라고 늘 기도해야겠습니다. 나를 위해서도 그렇게 기도해야겠지만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예수님은  진정 누구신가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진정 누구신가요?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은 구원자요, 메시야(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 의하면, 그분은 "주님이자 하나님"으로 나타나 있습니다(요20:28). 그런데 예수께서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뵈온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공생애 기간에는 우리와 똑같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있었으니 누가 그것을 알았겠습니까? 그래서 이 세상에서 인간이 고백할 수 있는 최고의 고백은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 정도가 아닌 분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니, 그분은 "스스로 계신 분" 곧 "나는~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그분으로, "한 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요8:24,28,58). 그런데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았던 당시 유대인들일지라도 그들 대부분은 다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요8:21-24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22 유대인들이 이르되 그가 말하기를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그가 자결하려는가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여기에 나오는 "내가 그인 줄"이라는 말씀은 그분이 바로 출3:14에 나오는 "스스로 있는 자" 곧 "여호와"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18장에 보면,여호와께서 사람의 모양을 하고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는데 그때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내년 이 맘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해에 아브라함에게 정말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고로, 그 일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는 아들로 오신다는 것일 실행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까지 한 분 하나님께서 구약시대만해도 자신을 여호와로 계시하셨지만 그분이 육신을 입고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으며, 그분이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은 잘 모릅니다(딤전3:16). 지금도 믿는 이들 중에는 예수님이 처음과 마지막이요 알파와 오메가이신 한 분 하나님이신 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계1:8, 22:13). 그런데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당시 유대인들의 대부분은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께서 가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누군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분이야말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잘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누군지를 모르는 죄만큼 큰 죄는 없습니다. 

 

2020년 12월 07일(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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