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를 창조하신 분은 엘로힘이시요 그분의 이름은 여호와이시다. 그렇다면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을 보면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호산나"라고 찬양했을까? 부활승천하신 예수께서는 왜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이요 마지막이여, 시작과 마침이라"고 하셨는가? 여호와의 이름의 뜻은 대체 무엇이며, 하나님의 또다른 이름인 "아하야흐"는 무슨 뜻인가? 삼위일체 하나님과 한 분 하나님을 이제 어원적으로 정리해보자.

2021-02-07(주일) 주일오후찬양예배
제목: 창세기강해(12) 아하야흐(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요5:43)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0K6C0ZkL6m4  [혹은  https://tv.naver.com/v/18379505 ]

 

 

1. 들어가며

   우리는 2주전부터 창세기 강해를 시작하였다. 창세기 1장 1절을 통하여 창조하시는 하나님(엘로힘)을 배우고 있는데, 그것들 중에서 그분의 이름이 무엇인가를 배웠다. 그분의 이름은 "여호와(또는 '야훼')"이다. 이 정도는 거의 모든 성도들이 다 알고 있다. 그런데 그분의 이름이 또 다르게 불렸다는 것을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분의 다른 이름은 "아하야흐(또는 '에흐에')"이다. 그런데 여호와 외에 "내가 아하야흐"라고 말씀하신 분이 또 있다. 그분은 예수님이시다(요8:24,28,58).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가 하나님인가? 그래서 우리는 구약성경을 통하여 아하야흐가 무엇을 뜻하며, 그것인 신약성경에 어떻게 기록되어있는지를 성경원문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조금은 어렵겠지만 자꾸 들어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다. 그런데 누구든지 하나님이 누군지를 잘 모르면 믿게 되면 그 신앙은 미신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고 있ㅎ는 여호와와 예수님으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그래서 오늘은 어원적으로 그 이름에 대해서 알아보는데, 예수께서 "아하야흐의 이름으로 오신 분"이라는 각도에서 살펴볼 것이다. 영적인 놀라운 시야가 열리게 되기를 바란다. 

 

2.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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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이다. 여호와는 이름은 히브리어의 4개의 자음인 "요오드 헤 와우 헤"가 합쳐진 하나님의 이름이다. 이것을 어떻게 음가로 읽느냐에 따라 "여호와"가 되기도 하고, "야훼"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은 대체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그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는 아직까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그분의 이름의 뜻도 모른 채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인가? 그렇다. 하지만 오늘 메시지를 잘 들으면, 하나님의 이름이 어떤 뜻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처음으로 그분의 이름을 가르쳐주셨다는 사실이다(출3:14~15). 그런데 지금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녕되이 불러서는 안 된다는 십계명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면 유대인들은 다른 단어로 바꾸어서 부르고 있다. 그것은 '아도나이'라는 용어다. 이 "아도나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나의 주님"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에는 "주[님]"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는 문장은 원래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였던 것을 알 수 있다(마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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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대체 "여호와"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그 뜻은 무엇인지 모르나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이 누군지는 어느정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여호와"라는 신명4문자는 "요오드 헤 와우 헤"인데, 각 철자의 뜻이 "손을. 보라. 못을 보라"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생각나는 것이 없는가? 그것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실 때에 죄패가 붙어있었다. 그리고 죄패에는 3가지 언어(히브리어, 헬러어, 로마어)가 쓰여 있었다. 그것은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는 문구였다. 헬라어로는 "예수스 호 나조라이오스 호 바실류스 톤 유다이온"이다. 이것을 번역하면 "예수 나자렛사람 유대인의 왕"이다. 이것을 히브리로 읽으면, "예슈아 하나자레이 브멜레크 하예후딤"이다. 이것 역시 "예수 나사렛 사람 유대인의 왕"이다. 그런데 이 문구의 히브리어의 첫글자를 따오면 "요오드 헤 와우 헤(여호와)"가 된다. 그렇다. 유대인의 왕 나사렛예수가 여호와라는 말이다. 이것은 우연히 그런 것일까?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님이 누군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3.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 "아하야흐"는 대체 무슨 뜻인가?

  출애굽기 3:15를 보면,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혹은 야훼)"라고 나온다. 그런데 출애굽기 3:14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I am that I am)"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곧 자신이 "에흐예(I am)"라는 것이다. 그런데 "에흐예"라는 발음도 사실은 5~6세기 경에 히브리 맛소라 학파들이 히브리어 "알렢 헤 요오드 헤"에 모음을 첨가하여 음가를 만든 것이다. 오늘날에는 그 음가가 "에흐예"가 아니라 "아하야흐"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왜냐하면 "여호와(야훼)"라는 하나님의 이름의 축약형이 "야[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야"가 붙은 이름이나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예를 들어 "히스기야, 예레미야, 할렐루야"에도 "여호와(야훼)"의 축약형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출3:14에서 말하고 있는 또다른 하나님의 이름은 "아하야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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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아하야흐"의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하야[흐]"이다. 여기서 "아"는 1인칭 단수는 "나"를 뜻하고, "하야"는 be동사를 뜻한다. 그러므로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라는 문장을 영어로 옮기면, "I am [that I am]"이요, 우리말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이다. 그런데 "하야"라는 동사가 미완료형이므로 어떤 이는 "I will be that I will be"라고 해야 한다고도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헬라어 70인역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번역하고 있는가? 그것은 "에고 에이미 호 온(나는 '호 온'이다)"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에고 에이미"는 영어로 "I am"에 해당하며, "호 온"은 에이미동사(be동사)의 현재 분사 능동형으로서 "이제도 계시는 이" "지금도 여전히 계시는 이"라는 뜻이다. 고로 "에고 에이미 호 온"은 "나는 '이제도 계시는 이'이다"이다. 그런데 신약성경에 보니,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말씀하실 때에 "에고 에이미"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호 온'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더 살펴보도록 하자. 

 

4. 여호와와 예수라는 이름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이 여호와인가는 질문이 바로 나올 것이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는 것이 정답이다. 왜냐하면 구약에 나타난 "아하야흐"가 여호와이시요, 신약에 나타나신 "아하야흐"가 "예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하면,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리는 "예수"라는 이름을 통해서 그분이 누군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사람들이 그를 향하여 어떻게 소리 높여 찬양했는가? 그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21:8)"라고 했다. 요한복음에서는 그들이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신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요12:13)"라고 불렀다고 나온다. 그러니까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신 이"라고 칭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여호와라고 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정확히는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이 여호와이시요,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은 육신을 입지 않은 신성한 상태만을 지칭하는 이름이요, 신약의 예수님은 육신을 입으신 분으로서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니신 분을 지칭하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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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예수"라는 이름 속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가? 그것은 시편118:25~26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시118:25-26)". 이 문장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여호와 호슈아[흐] 나"이다. 여기서 "호슈아"는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야샤(구원하다)"는 동사의 히필형 명령형 남성 단수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이라는 뜻이다. 고로 이 문장은 "여호와여, 지금 구원하소서"라는 뜻이다. 우리가 찬양할 때 "호산나 호산나"라고 하는 것은 "호슈아 나"를 우리나라 발음으로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 호슈아(여호와여, 구원하소서)"를 축약하면, "여호슈아"이다. "여호슈아"는 헬라어 "예수"의 히브리어 형태인 "예슈아"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가 구원하신다." 혹은 "여호와가 구원자이시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아하야흐이신 여호와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의 신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시존재가 가능하신 분이시므로, 신약시대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5.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당신을 누구라고 소개하셨을까? 

  공생애 3년반을 사시면서 예수께서는 당신은 2가지로 소개하셨다. 하나는 나는 "아하야흐"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나는 ~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먼저, 그분이 나는 "아하야흐"라고 소개한 부분부터 살펴보자. 그것은 신약성경에서 딱 3번 나온다. 요8:24,28,58에 나온다. 그분은 신약의 아하야흐이셨던 것이다. 육신을 입고 오신 아햐야흐이셨던 것이다.

요8: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아하야흐)"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요8: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아햐야흐)"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요8: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아하야흐)" 하시니 

  그리고 두번째로 예수께서는 "나는 ~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총7가지가 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8:12)", "나는 양의 문이다(요10:7,9)", "나는 선한 목자다(요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14:6)", "나는 참 포도나무다(요15:1,5)"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다"라는 중간에 우리가 대입하는 대로 그분이 그것이 되실 수가 있다. 그분은 전능자이기 때문이다(계1:8). 

 

6. 예수께서는 누구의 이름으로 오셨다고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5장에서 유대인들과 대화를 하시면서, 유대인들이 자신을 대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5: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이것을 헬라어원문에서 직역해보면, "나 자신은 나의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 이미 온 채 있다. 그러나 너희가 취하지 않고 있다. 만일 다른 이가 자기의 이름 안에서 온다면 너희는 장차 저이(저 사람)를 취할 것이다."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하야흐"이든지 아니면 "여호와"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당시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칭함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수"라는 이름 속에 이미 "여호와"라는 이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승천하실 때에 "그 아버지와 그 아들과 그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는데, "이름"은 단수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요10:30에서 "ㄴ아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을 소개할 때에는 "나는 아버지에게서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소개하셨다. 아버지로부터 오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아하야흐로부터 오신 신약의 아하야흐이시기 때문이다. 구약의 아하야흐가 "나는 알파다"라고 했다면, 신약의 아하야흐는 "나는 오메가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계1:8, 22:13). 그래서 구약의 이사야선지자는 장차 오시게 될 메시야는 이런 자라고 예언했다. 

사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한 아기이자 아들로 오실 분은 기묘자인 모사라는 것이다. 여기서 '모사'라는 헬라어단어는 "파라클레토스(보혜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에 성령으로 오시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자, "영원히 계시는 아버지"라 불리운다고 했다. 그분을 굳이 구약시대으 이름으로 부른다면 구약의 아하야흐이신 여호와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7. 나오며

  이제 우리는 구약시대에 아하야흐로 오신 여호와께서 신약시대에는 예수라고 불리는 아하야흐로 오셨다는 말씀을 배웠다. 한 분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사람으로 오신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자신을 아들이라고 칭했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이요, 마리아로부터 사람으로서 출생을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신 그분은 원래는 아하야흐이셨다. 스스로 계신 분이요, 모든 것이 되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은 죽고 부활하시면서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고전15:45). 생명주는 영은 곧 성령을 지칭한다. 고로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아하야흐는 성령이시다. 우리는 여호와와 예수님과 성령님을 이렇게 다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천국에 가면 보좌에 앉아계시는 분으로서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볼 수 없기 때문이요, 볼 수 있게 나타나셨던 분은 오직 신약의 아하야흐이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님도 볼 수 없다. 그분도 영이시기 때문이다. 오직 사람으로 나타나셨던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사람이 되신 하나님, 영원히 찬양받으실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린다.

 

2021년 02월 07일(주일)

정병진목사

 

구약의 여호와는 누구신가? 그분은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철저히 지키시는 분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셨다. 그리고 그 약속을 신실하게 성취하기 위해서 아하야[흐]이신(출3:14)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이 바로 신약의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그분을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어떻게 대했는가? 왜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데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것은 바로 "여호와(아하야흐)"라는 이름 속에 들어 있다.

2021-02-05(금) 금요기도회
제목: 창세기강해(11) 여호와는 약속을 기억하고 믿는 이의 하나님이시다(출3:14~15)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3TR0tm4IcgM  [혹은  https://tv.naver.com/v/18349330  ]

 

1. 들어가며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가 조금은 다르다. 창1:1~2:3까지는 "하나님(엘로힘)"이 나온다. 그런데 창2:4~3:24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나오고, 창4장부터는 "여호가"로 나왔다가, 5장에 가서 다시 "하나님(엘로힘)"으로 나온다. 뭔가 강조점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모세가 창세기를 기록하였을 때, "엘로힘"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때와 "여호와"라는 명칭을 사용할 때에는 무언가 전달하려는 의도가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명칭 중에서 "여호와"라는 명칭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그것이 "언약"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고, 그것을 배반하는 자에게는 어떤 결과가 나타나며, 그것을 끝까지 믿고 신뢰하는 자가 받게 될 축복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하나님에 대한 2가지 명칭으로서 엘로힘과 여호와는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가?

  창세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명칭으로서 "엘로힘(창1:1)"이 있고 "여호와(창4:1)"가 있다. 그리고 중간에 "엘로힘 여호와"가 나온다(창2:4). 그렇다면 이러한 명칭들은 대체 어떤 특징들을 갖고 있는 용어들일까? 그것을 한 마디로 요약해서 말한다면, "엘로힘"이란 명칭은 없는 것으로부터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전능성과 초월성을 강조할 때에 사용하며, "여호와"는 어떤 개인이나 집단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것을 성취하시는 신실성을 강조할 때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엘로힘)"는 어떤 것인가? 그것은 이 둘을 합쳐놓은 것이다. 창조의 전능성과 초월성에다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성을 합쳐놓으면, "여호와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3. 여호와라는 명칭은 무엇인가?

  "여호와"라는 명칭은 사실은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킨다(출3:15, 사42:8). 그런데 "여호와"라는 음가는 자음으로부터 되어 있는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맛소라학자들이 4~5세기경에 장절을 구분하고 모음을 집어넣어서 만든 발성에 따른 명칭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뒤 전문학자들이 연구한 끝에 "여호와"보다는 "야훼"가 더 훨씬 더 원래 하나님의 이름의 음가에 가깝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말 개역성경에서는 "여호와"라고 번역하고 있기에 우선 이것으로 통일하겠다.

  그렇다면,. "여호와"라는 이름의 의미는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지금까지도 잘 모른다. 다만, 출3:14의 말씀에 따라 그 뜻을 짐작할 뿐이다. 그렇다면, 출3:14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그것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이다. 여기서 "나는 ~이다"라는 단어가 "에흐예"이며, "스스로 있는 자"라는 단어 또한 "에흐예"이다. 앞의 "에흐예"는 동사에 해당하지만 뒤의 "에흐예"는 명사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은 "에흐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적어도 그 뜻에 있어서만큼은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구약학자들이 더 연구해보니, 맛소라사본에 사용된 "에흐예"보다 "아하야[흐]"가 훨씬 더 원래의 음가에 가깝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혹은 야훼)"이며, 그 이름의 뜻은 "에흐예(아하야흐)"이다. 그렇다면, "아하야흐"는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나는 ~이다"라고도 할 수 있고, "나는 알렙(알파,시작,처음)이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아하야흐"는 하나님의 이름의 뜻을 가리키며(적어도 그 뜻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여호와"도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이 둘은 무엇인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4.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밝히셨던 때는 언제였는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여호와"로 가르쳐주시기는 했지만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하고 있다. 특히 아담이나 노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경우도 그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B.C.1446년경 애굽에서 노예살이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려고 모세를 애굽에 보내실 때에 비로소 "여호와"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셨다는 것이다(출3:14). 그것은 "아하야흐"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이름의 뜻일 수도 있고, 이름 자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우에 당신의 명칭을 "여호와"라고 말씀하시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분이 어떤 개인이나 집단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성취하실 때에 사용하는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개하실 때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이 말은 "나는 사람과 언약을 맺는데, 나는 나의 모든 신실성을 걸고 언약을 맺으면 한 번 맺은 언약은 반드시 지킨다"는 뜻이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되었으며, 그의 아들인 이삭, 그의 손자인 야곱에게도 계속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여호와"라고 말씀하실 때에, 어떤 의도를 가지고 "여호와"라고 말씀하셨는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경우를 가지고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세 명의 족장들과 어떠한 언약을 체결하셨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세 명의 족장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어떤 약속을 하셨을까? 그것은 창12장부터 35장까지 쭈욱 나온다. 그 약속들을 요약해보면, 딱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육적인 이스라엘이 받게 될 축복에 관한 말씀이며, 또 한 가지는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천하만민(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로 정했다면,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혈통적으로 받을 복만 생각하지 말고,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에도 주목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자만을 추구했다. 그래서 그때로부터 2천년이 지난 후 막상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바, 그 약속의 씨가 나타나자 그들을 그분을 외면하고 또한 멸시천대하고 말았다. 그리고 자기들의 자리를 침범한다고 그를 시기질투하더니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의 커다란 실수와 잘못은 아브라함의 씨(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해야 하는 일을 주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죄없는 예수님을 죽여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이렇게 선언했다. "그의 피를 우리 위에와 그리고 우리의 자손 위에 [돌릴지어다](마27:25)"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이미 구약성경에 350가지 이상 약속된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에게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몰라보았다. 그리고 그분을 핍박하고 괴롭혔다. 그리고는 결국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약속을 철저히 믿지 못하여 저지른 커다란 잔인무도한 죄였던 것이다. 그러니 나중에 그들의 후손이 받게 될 저주는 실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었다. 2차세계대전에 때에 죽임당한 600만명의 유대인의 처참한 모습을 당신은 기억하고 있는가? 

 

6. 오늘날에는 누가 하나님의 자손(씨)인가?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누가 하나님의 자손인가? 이스라엘 민족만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마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혈통적으로만 보았을 때는 말이다. 하지만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직계후손이었던 유대인들은 당시 예수님을 어떻게 대했는가? 그들은 아하야흐이신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를 않았다. 그리고 배척했다. 그리고 시기질투심으로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고로 정통 유대인이었던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특권은 이미 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혈통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선민은 이 땅에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갈라디아서를 읽어보라. 그리고 오히려 믿음으로 말미암은 새로운 아브라함의 자손이 생겨났다고 말했다(갈3:6~9). 그것은 약속의 씨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다. 그렇다. 오늘날에는 혈통이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자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고로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믿음이라는 도구를 통해서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7.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약속을 믿는 자가 받을 축복은 무엇인가?

  오늘날 믿는 신약의 성도들을 누구를 믿는 자들을 가리키는가? 그것은 알파요 시작이요 처음이였던 여호와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그들이 받았던 복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우리에게도 "믿음"이 필요하다. 그런데 믿음이 제 기능을 발휘하게 하려면 자신의 마음을 잘 정리할 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이 자신의 믿음을 통해 현재화를 시켜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믿음의 분량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들이 육화되어 나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예수께서는 무화과나무가 뿌리채 말라버린 사건을 통해, 영적 유대인들에게 필요한 믿음의 중요성을 말씀해주셨다. 

막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말]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오늘날 자신이 아무리 혈통적으로 유대인의 가문에서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그에게 영적인 축복은 예정된 것이 없다. 혈통적으로는 조금 있을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만 누구든지 마15장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신약의 아하야흐이신 예수님에 대한 신실한 믿음을 갖게 된다면, 그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8. 나오며

  올 해 조금은 늦었지만 이제 우리 모든 개인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정체성을 확인할 때가 되었다. 또한 우리가 믿고 있는 아하야흐이신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은 어떤 개인이나 국가와 민족과 관계를 맺을 때 즉 그들과 약속을 맺으실 때에는 반드시 "여호와"라는 명칭을 사용했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분은 알파이시고 시작이시고 처음이셨지만 이제는 육신을 입고 오셔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이요 마지막이며, 시작과 마침이다"고 말씀하고 계신다(계22;13). 구약시대에 여호와로 말미암아 하신 모든 약속들은 이제 예수님으로 인하여 성취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성경에서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말씀과 예수로 약속하신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신뢰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아멘하는 것이다. 자신의 입술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네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시행하리라(민14:28)"이다. 아멘.

 

2021년 02월 05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0) 엘로힘과 여호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출6:2~8)_2021-02-05(금)

https://youtu.be/3X7ThN2Dtns  [혹은  https://tv.naver.com/v/18325116 ]

 

1.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상용되고 있는 "엘로힘"과 "여호와"는 어떤 단어인가요?

  창세기 1장 1절에서는 하나님를 지칭하는 용어로서 "엘로힘"이라고 하는 용어(대명사)가 나오지만, 창세기 4장 1절부터는 "여호와"라는 용어(이름)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둘은 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어떤 속성부분을 강조하기 위하여 다르게 사용하는 용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둘의 공통점은 둘 다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것들 중에서 "엘로힘"이라는 용어는 일반대명사로서, 복수의 형태로 존재하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왜냐하면 한글성경에서 "하나님"으로 쓰이고 있는 용어에는 "엘로힘" 외에도 "엘", "엘로하" 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하나님에 대한 고유명사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킵니다. 물론 이 단어는 단수입니다.

 

2. 엘로힘(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그렇다면 "하나님(엘로힘)"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어떤 분은 하나님에게도 이름이 있느냐고 묻는 이가 있는데 있습니다. 그것은 곧 "여호와"라는 용어입니다. 물론 우리말 개역성경에서 그렇게 쓰고 있는 것일 뿐, 실제는 하나님의 이름은 "야훼(야웨)"라는 용어가 훨씬 더 실제에 가까운 발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 보면, "여호와"에 대한 단축형으로서 "야[흐]"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할렐루야"는 '찬양하다'는 뜻의 '할랄'에다가, '루'라는 2인칭의 복수 접두사이며, '야[흐]'는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라는 용어의 단축형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이름 중에서도 "히스기야, 예레미야" 등에서 "아[흐]"가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들이 다 '여호와'를 지칭하는 단축용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개역성경에서 "여호와"라는 단어를 번역할 때에 "야훼(야웨)"라고 번역했어야 더 좋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여호와"와 "야훼(야웨)"라는 발음 중에서 "여호와"를 선택해서 사용해왔기에 우리도 그렇게 쓰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진짜 이름은 무엇인가요?

  그렇다면 하나님의 진짜 이름은 "야훼(야웨)"가 맞을까요? 아니면 다른 이름이 또 있나요? 그것은 "야훼(야웨)"라는 용어가 하나님의 이름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사42:8, 시83:18). 그런데 놀랍게도 출3:14에서는 "야훼(야웨)"라는 하나님의 이름 이외에 "에흐예"(히브리어맛소라사본 즉 히브리어 자음에다가 모음을 붙힌 버전)라는 이름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흐예"라는 용어도 사실은 "아하야[흐]"로 발음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짜 이름은 "야훼(야웨)"이거나, "아하야[흐]"일 것입니다. 그리고 "야훼"라는 이름은 지금까지 그것이 무슨 뜻을 지녔는지를 모르지만, "아하야[흐](혹은 '에흐예')"는 그 뜻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밝혀져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이다" 내지는 "나는 알렙(알파)이다"이거나, "나는 지금 존재하는(존재케하는) 이이다"입니다. 고로 우리말 개역성경에서는 이것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번역하고 있고, 표준새번역에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나라"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4. 엘로힘과 여호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그럼, 하나님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엘로힘"과 "여호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 용어가 쓰일 때의 강조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먼저 "엘로힘"은 창1:1에 나오는 용어로서, 그분이 창조주라는 의미로서 처음으로 나오는데, 이 용어는 한 마디로 그분의 전능성(못 하실 일이 없고, 못 아시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을 매우 강조할 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출6:2~3). 그래서 이 용어는 하나님에 대한 초월성과 전능성이 강조된 객관적인 용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는 그 뜻이 "아하야[흐]"이므로 그분이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분이자, 그분은 "알렙 곧 시작하는 이"라는 뜻이지만, 특별히 이 용어를 사용된 곳을 보면, 대부분 그분이 어떤 개인이나 민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것을 성취하시는 분으로 나타날 때 사용이 됩니다(출6:4~8). 그러므로 "여호와"라는 용어는 하나님의 이름으로서, 그분이 시작하시고 홀로 자존하시는 분을 뜻하는 용어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대상과 약속을 맺으시거나 혹은 그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으로 사용할 때에 나타나는 용어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여호와는 약속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늘 자신을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약속하셨고 이삭에게 그리고 야곱에게도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약속의 궁극적인 성취자로서 신약시대에 예수께서 오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로 구약의 "아하야[흐]가 "여호와"로 표현된 것이라면, 신약의 "아하야[흐]"는 "예수"로 표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체적으로 구약의 여호와가 "약속하신 이"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면, 신약의 예수님은 "약속을 성취하신 이"로 강조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5. 우리는 어떻게할 때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나요?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먼저, 여호와(신약은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곧 언약을 맺으시고 성취하셨던 하나님이신 여호와요 예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어떠한 약속을 하셨는지를 꼭 붙드는 것이 관건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이름("아하야[흐]")은 한 번 약속하셨으면 그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신다의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어떤 것들을 약속하셨는지를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둘째는, 그분의 전능성을 믿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분을 "엘로힘"으로 믿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고로 우리가 성경말씀을 통하여 여호와의 약속을 찾았다면, 이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요일5:18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예수)가 그(하나님께로부 난 자들=거듭난 성도)를 지키시매 악한 자(마귀)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는 약속의 말씀을 들었다면, 우리는 즉시 그 말씀을 이루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또한 믿어야 합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는 악한 자인 마귀는 결단코 나를 건드릴 수 없으며, 어거하지 못한다는 것을 믿은 후에 담대히 그들에게 떠나갈 것을 명령해야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 믿음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러면 그 시간 속에서는 물리적인 법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지대로 모든 것이 움직이고 바뀌게 됩니다. 건투를 빕니다. 

 

2021년 02월 05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09) 왜 신약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요8:24~28)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qtSi0PRDiEg  [혹은  https://tv.naver.com/v/18302497 ]

 

1.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우리 하나님(엘로힘)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이름은 신명사문자(יהוה)인데, 우리말 개역성경에 따르면 "여호와"입니다(출3:15, 사42:8). 그런데 그 이름의 실제 발음이 어떤 것인지를 아무도 알지 못한 채 있습니다(참고로, 유대인들은 "여호와"를 읽을 때에는 지금도 "아도나이(나의 주님)"이라고 읽을 뿐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출20:7의 제2계명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다보니, 그만 그 음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고로 신명사문자(יהוה)를 읽을 때에는 "아도나이"라고 읽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은 신명사문자(יהוה)로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신명사문자(יהוה)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이것을 읽는다면, "요오드, 헤, 와우, 헤"입니다. "요오드"는 어떻게 발음하느냐에 따라서 그 음가가 "Y 혹은 J"가 될 수 있고, "와우"는  "W 혹은 V"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명사문자(יהוה)는 읽는 이에 따라 "야훼(YHWH)"라고도 읽을 수도 있고, "여호와(JHVA)"라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16세기에 비로소 사람들은 신명사문자를 "여호와"라고 읽었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야훼"라고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출3:14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의 이름은 그 뜻으로 치자면, "에흐에" 혹은 "아하야[흐]"라고도 읽을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이름인 "야훼" 혹은 "여호와"는 어떤 뜻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렇다면,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소개하실 때에 "אָﬣיּﬣ"(에흐예 혹은 아하야[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제가 보기에는 아하야[흐]가 더 훨씬 더 원래 글자와 가까울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아하야[흐]"는 어떤 뜻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것은 "아(1인칭단수)+하야[흐](나는~이다)"가 합쳐진 단어로서, "나는 ~이다" 혹은 "스스로 있는 자"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접두어 "아"는 히브리어의 첫글자로서 "알렙"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אָﬣיּﬣ"(아하야[흐])는 "나는 알렙이다. 나는 알파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요한계시록 22:13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마침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시대에 자신을 알파라고 소개하시면서 시작하셨던 하나님께서 장차 예수께서 오메가로 재림하심으로 모든 것을 완성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신약성경에서는 왜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혹은 야훼)"라고 등장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구약성경에서 5,321번이 쓰였던 "여호와"라는 이름은 신약성경에 들어와서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손치더라도 신약시대 사람들은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에는 적어도 "여호와"라는 단어를 사용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신약성경 어디에도 "여호와"라는 단어가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간단하게, 신약성경의 기록자들이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에 구약성경의 히브리어사본인 맛소라텍스트에서 인용하지 않고, 전부다 구약히브리어성경을 가지고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 LXX)를 인용했기 때문입니다. 70인역에서 "여호와"라는 단어는 전부다 "퀴리오스("주")"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 나오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시118:25)"라는 말도 신약성경에서는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마22:32)"라고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피상적인 이유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 실제적인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요? 그것은 다음의 2가지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혹은 야훼)"인지, "에흐에(혹은 아하야[흐])"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아하야[흐]"의 이름은 그 이름의 뜻에서 온 이름 같고, "야훼"의 이름은 그 단어의 음가에서 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둘째, 구약의 자신을 "아하야[흐]"라고 소개하신 분이 신약시대에는 "예수"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4.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예수께서는유대인들에게 자신을 누구라고 소개하셨나요?

  요한복음 8장에 보면, 무려 세 번 씩이나 자신이 누군지를 묻는 유대인들에게 예수께서는 "나는 ~이다" 혹은 "스스로 있는 자"라는 뜻의 문장인 "에고 에이미"는 문장을 사용하셨습니다(요8:24,28,58). 다시 말해, 예수께서는 그때 자신을 "아하야[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말 개역성경에서는 "내가 그인 줄"을 나온 본문이 원래는 히브리어의 "아하야[흐]에 해당하는 "에고 에이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원문에 맞추어 이 문장을 다시 번역해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출3:14~15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하야[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아하야[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요8: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아하야[흐]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요8:28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아하야[흐]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요8: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나는 아하야[흐]이니라 하시니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자신을 "아하야[흐]"라고 소개하신 분께서 이제는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아하야[흐]"라고 소개하셨고, 자신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셨으니,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이름은 더이상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왜나하면 예수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5. 구약의 하나님의 이름이었던 "아하야[흐]"가 신약의 예수님을 가리킨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놀랍게도 구약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단어 "아하야[흐]"가 신약의 예수님을 가리킨다는 것은 출3:15의 말씀에 고스란히 암시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아하야[흐]"를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3: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다시 말해, 출애굽기 3:14에서 자신을 "아하야흐"라고 소개하신 분이 15절에는 "여호와,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하야[흐]"가 누군지는 "여호와(야훼))"에다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합치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소개하실 때에 굳이 "나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셨던 것일까요?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 여호와께서 기한에 이르면 사라에게서 아들로 오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창18:10,14).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은 후에 진실로 기뻐했던 이유는 자신이 100세에  아들을 얻어서라기보다는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아들로 오셨음을 보고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아하야[흐]께서는 비로소 아들로 오셨습니다. 그러면 응당 자기의 백성들이 자신의 옴을 기뻐하고 환영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채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과거 "아브라함은 나에게 이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8:56). 그렇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여호와가 아니라 아들로 오신 아하야[흐]께서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는 굳이 구약의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야훼)"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미 아하야[흐]께서 육신을 입고 아들 "예수"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2021년 02월 04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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