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14) 법궤 재앙의 도구인가 축복의 도구인가(삼상6;1~7;2)_2021-12-03(금)

https://youtu.be/BpTP8d_MNCU  [혹은 https://tv.naver.com/v/23929198 ]

 

1. 블레셋에 빼앗겼던 법궤가 그곳에 7달을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아벡전투에서 블레셋에 빼앗긴 법궤는 블레셋 땅에서 일곱 달을 있었다(삼상6:1). 그러나 그 후 일어난 일은 블레셋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으니, 그것은 여호와의 법궤를 가져다 놓은 신당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첫째는 블레셋 사람들의 신이었던 다곤신이 굴복하였고 다곤신이 파괴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곤의 신당에 전쟁에서 승리한 전리품으로서 법궤를 바쳤으나, 다음 날 아침 다곤신이 넘어져 법궤 앞에서 코가 땅에 닿아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하여 다시 세워 놓았지만 그 다음 날 아침, 또다시 넘어져 있었는데 이번에는 목이 부러지고 손목이 부러져서 다곤 신전의 문지방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호와께서는 블레셋의 신이라 일컬어지는 우상을 굴복시켰고 또한 파괴해 버리셨던 것이다. 둘째, 여호와의 손이 블레셋 전역의 사람들과 블레셋의 다섯 방백을 쳐서 그들에게서 악한 종기가 발병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기 때문이다. 재앙이 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궤를 전리품으로 취하여 자랑했던 그들을 전염병으로 치심으로 그들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2. 블레셋 사람들이 모여서 토의한 끝에 결정한 사항은 무엇이었는가?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진행한다. 그리고 그 문제를 놓고, 그들은 자기들의 신이었던 다곤신의 제사장들과 점쟁이들에게 물어본다(삼상6:2). 그러자 그들이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을 노여워하시게 한 일이요 하나님의 처소를 더럽힌 것이 되었으니 2가지를 시행하라는 것이다. 첫째는 그 신에게 속건제를 드리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그 신의 궤를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 놓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당시 여호와의 손이 다곤신을 쳤고 블레셋 사람들을 쳤으며, 동시에 블레셋 다섯 방백들까지 쳤으니, 속건제물로는 금으로 만든 독종 모양의 형상과 금으로 만든 쥐 모양의 형상을 만들어 바치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다섯 방백들은 자기들의 죄를 속죄받기 위해 금독종들과 금쥐들을 바치게 된다. 그러자 제사장들은 그것을 상자에 담았고 이스라엘로 돌려 보낸다. 그리고 그때에 그들은 말했다. "이 모든 일이 진짜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지 다시 확인해 봅시다."라고 말하고는 아직 한 번도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나는 암소 두 마리에 수레를 달아서 거기에서 법궤과 속건제를 실어서 이스라엘로 보내었다. 

 

3. 법궤를 실었던 두 마리 암소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런데 놀랍게도 두 마리 암소는 우는 자기들의 새끼들을 뒤로 한 채 앞만 보고 이스라엘로 향해서 간 것이다. 물론 엄마 소들도 같이 울었으나 두 암소들도 곧장 이스라엘에 가까운 땅 벧세메스로 가는 것이었다. 이때 블레셋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겠는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진짜 살아 계시는 신이다. 그분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 시기는 밀 추수를 하는 시기였으므로 벧세메스의 사람들은 법궤를 싣고 오는 두 마리의 암소를 보게 되었고 그것이 블레셋에게 빼앗겼던 '법궤'라는 것을 알고는 즉시 법궤를 싣고 온 수레를 패고 그 암소들은 번제와 다른 제사로서 하나님께 드리게 된다(삼상6:14~15). 그런데 참고로 벧세메스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실은 그들은 다 제사장들로서 아론 자손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수21:13~16). 아벡전투에서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쳤고 또한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실로까지 쳐서 성소가 다 파괴당한 상태였기에 제사장들의 후손은 각기 자기의 성읍(13개의 성읍)에 살아야 했는데, 벧세메스도 그중에 한 개의 성읍이었기 때문이다. 

 

4. 이 일이 있은 후 벧세메스에서 일어난 슬픈 사건은 무엇인가?

  벧세메스는 사실 제사장의 성읍이었기에 그곳 사람들은 제사를 집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론 자손의 제사장들에게 법궤를 다루는데 주의할 것을 명령하셨다. 그것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아무리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법궤를 절대로 만지지 말고 이동을 할 때에는 그것을 천으로 덮어 놓으라고 하셨다. 그러면 아론 자손 중에서 고핫 자손들이 와서 법궤를 채로 들어서 운반하라고 하였다(민4:15). 둘째, 아무리 제사장들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함부로 쳐다보지 말라고 하셨다(민4:20). 그런데 벧세메스의 사람들과 그 법궤를 구경하러 몰려든 수많은 사람들이 그만 법궤 천(보자기)을 열고 여호와의 궤를 쳐다 보고 말았다(삼상6:19). 아마도 법궤 뚜껑을 열고 그 안을 들여다 본 것 같다. 그러자 그것을 구경하러 왔던 사람들 중에 무려 5만 70명이 그 한 날에 죽고 말았다. 큰 살륙이 벌어진 것이다. 법궤가 그들에게 슬픔과 재앙의 도구가 되고 만 것이다. 

 

5. 법궤는 과연 재앙의 도구인가 축복의 도구인가?

  법궤는 보통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법궤의 뚜껑인 속죄소 위 두 그룹 사이에서 말씀하시고 그곳에서 모세를 만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출25:22).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법궤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십계명의 두 돌판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을 보관하는 궤, 즉 법궤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그곳이 거룩한 장소이자 성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자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거나 모르는 자에게 법궤는 결코 축복의 도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재앙의 도구가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법궤를 모신 채 제사를 드렸던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였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기에 전쟁터에 나가서 법궤 때문에 죽임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누군지를 몰랐던 블레셋 사람들에게 법궤는 자기들의 신을 위한 전리품 정도였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들을 치는 재앙의 도구가 되고 말았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신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벧세메스의 사람들은 제사장의 후손들이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법궤를 다루어야 할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아 결국 축복의 도구였던 법궤가 그들에게도 그만 재앙의 도구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다윗시대에 그 법궤가 가드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이르러서 법궤는 다시 축복의 도구가 되기 시작한다(삼하6:11). 그 가정이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2021년 12월 03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13) 신들의 전쟁에서 권위를 스스로 드러내신 하나님(삼상5:1~12)_2021-12-02 (목)

https://youtu.be/CNL6J0JgZPQ  [ 혹은 https://tv.naver.com/v/23859932 ]

 

1. B.C.1050년경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블레셋이 행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가 아스돗에 있는 다곤(Dagon)의 신전 안에 넣어 둔다. 자기들의 신이 이스라엘의 신을 이겼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취하게 된 하나님의 법궤는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얻은 최고의 전리품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곤신(神)이 여호와의 궤(櫃) 앞에서 엎드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얼굴이 땅에 닿은 채 말이다(삼상5:2~3). 이는 마치 다곤신이 법궤를 향하여 절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러자 아스돗 사람들은 그러한 일이 처음 있는 일이니까 '우연히 그랬겠지'라고 생각하고는 다곤신을 그 자리에 다시 세워 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 다음날에 또 일어나게 된다. 이번에는 전날처럼 다곤신이 엎어져 법궤를 향해 또 누워 있을 뿐만 아니라 목은 부러져 있었고, 두 손목은 잘린 상태로 문지방에 걸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몸둥이만 덩그렇게 남아서 법궤 앞에 엎드려져 있는 형국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는 아스돗에 악한 종기(전염병)가 돌기 시작하는데, 악한 종기로 인하여 아스돗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한다. 

 

2.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아 간 블레셋 사람들이 섬기는 다곤신이란 대체 어떤 신인가?

  다곤(Dagon)신은 블레셋 사람들이 베니게(페니키아)에서 수입한 신으로서 고대 해양민족이 섬기던 신이었다. 그 생김새는 반인반어의 모양이었으니, 허리 이상은 사람의 몸과 머리를 하고 있었으나, 허리 아래에는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해양민족이었던 블레셋 사람들도 점차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가나안 땅을 정복함에 따라 그들은 이제 다곤신을 다산 및 풍요의 신으로 섬기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아스돗'이라는 지역에 다곤 신전이 있었다. 참고로, 블레셋은 5개의 부족이 하나로 뭉친 국가로서 아스돗, 가사, 가드, 에그론, 아스글론이 그 부족이며, 이 부족마다 각각 족장들이 있어서 부족연합국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3. 블레셋 사람들이 경험했던 두 사건을 통하여 깨달은 것은 무엇인가?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 신전 안에서 일어난 일도 놀라워했지만 자기들에게 직접 일어나고 있는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러다가 다 죽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스돗 사람들이 결정한 것은 첫째는 이스라엘의 신이 자기와 자기의 백성을 치고 있다고 판단을 하고는 블레셋 다섯 방백을 부르기로 했다. 그러자, 블레셋 다섯 방백은 이스라엘의 신의 궤를 우선 다른 지방으로 옮겨 보자고 결정을 하게 된다. 그러한 일은 아스돗 지방에서만 일어날 수도 있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궤가 가드에 옮겨가게 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가드 사람들이 독한 전염병으로 죽어 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것도 우연이겠지 하고 생각하고는 이번에는 법궤를 에그론 지역으로 옮기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에그론 사람들이 사망의 환난을 당해 독한 종기로 죽어 나가는 것이었다. 결국 블레셋의 다섯 방백들이 다시 모였다. 그리고 결정했다. "이스라엘의 신의 궤를 보내어 그의 원래 있던 자리에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이 죽임당하게 됨을 면합시다"라고 말이다. 

 

4.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 신전 안에서 일어난 일과 자기의 백성이 죽어 나가는 일을 보면서 깨닫게 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얼마 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블레셋이 승리한 것이 신들의 전쟁에서 이긴 결과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이스라엘 민족이 약체여서 그들이 이긴 것이었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섬기고 있던 신은 그야말로 최고라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둘째,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신상이 무너지고 이어질 뿐더러 목과 손목이 부러져 있는 사건을 보고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결국 자기들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약하거나 죽어 있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비록 이스라엘은 전쟁에 패했어도 하나님의 사람은 여전히 살아 있었던 것이다. 

 

5. 이상의 사실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인가?

  이상의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우리가 알 수 있는 영적인 비밀은 첫째,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명예와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매우 싫어하신다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존재하고 있어 달라고 부탁한다고 해서 존재하시는 분은 아니시다. 그분만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둘째, 다곤신전에서 일어난 일과 블레셋 사람들에게 급속히 번져 나간 전염병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들이 경험하게 될 지옥 체험의 일부라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은 일부 지역에서만 통치하는 지방의 신이 아니라 모든 신들 위에서 모든 신들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시136:2~3).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일 뿐만 아니라 모든 신들을 주관하고 계시는 신이요, 모든 왕들을 주관하고 계시는 신이셨던 것이다. 

 

2021년 12월 02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12) 엘리 제사장의 죽음이 가르쳐주는 7가지 교훈(삼상4:12~22)_2021-12-01(수)
https://youtu.be/Vaeh7lCkJ28  [혹은 https://tv.naver.com/v/23858913 ]

 

1. 엘리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엘리는 아론자손 중에서 이다말 계열의 제사장으로서, 사사기 시대의 끝 무렵에 활동했던 사사였다. 이때 그는 대제사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실로에 있는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겼다. 그의 아버지가 누구였는지는 나오지 않으나, 그의 아들들과 후손들에 대해서는 나온다. 그의 기록은 사무엘상 1장부터 4장에 주로 나오는데, 그는 슬하에 두 명의 아들을 두었으니, 홉니와 비느하스가 바로 그들이다. 이 엘리 제사장은 그의 나이 58세에 하나님으로부터 사사로서도 부름을 받았으며, 98세까지 무려 40년동안 사사로 섬겼다. 그는 대제사장이면서 사사였던 것이다. 

 

2. 엘리는 어떻게 죽게 되었는가?

  엘리는 자기 민족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졌다는 소식과 아울러, 자기의 두 아들이 전쟁터에서 죽었으며, 하나님의 법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만 놀라 자기의 의자에서 뒤로 넘어졌고, 그 충격으로 인하여 목이 부러져 사망하게 된다. 이때 그의 나이는 98세로서 이스라엘에서 사사로 섬긴지 40년이 되었던 때였다(삼상4:17~18). 

 

3. 엘리 제사장의 죽음이 알려 주는 7가지 중요한 교훈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세 번째는 무엇인가?

  사무엘상 1~4장에서 엘리 제사장의 죽음이 알려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7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하나님을 자신의 성공의 잣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법궤를 전쟁 승리의 도구로 사용하였지만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평소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했더라면 아마도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었겠지만 이스라엘은 평소때에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숭배했으며, 당시 제사장이었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을 믿지도 않았을 뿐더러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던 불량자였기에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법궤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징계하기 전까지는 경고하시지만 그래도 경고를 듣지 않을 때에는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짓고 멸망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잘못한 일이 있을 때에는 확실히 경고하신다. 어떤 사인을 보내시는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 듣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죄에 대한 죗값을 물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두 번씩이나 경고하셨다. 한 번은 무명의 선지자를 보내서 경고하셨고(삼상2:27~36), 또 한 번은 12살 무렵의 어린 사무엘을 통하여 경고하셨다(삼상3:11~14).

  셋째,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사명을 주어 보내신 자에 대해서는 그가 수명이 다할 때까지 기다리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엘리 제사장이 분명하게 잘못을 범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왜 그를 죽이시지 않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렇게 자기 자식의 잘못을 알면서도 깨우치지 않았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버리거나 내치거나 그를 죽이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구약시대 '아간'의 범죄나 '고라 일당'의 범죄를 보라.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를 보라. 즉결 처분되었다. 하지만 엘리 제사장의 경우는 즉결 처분하지 않았다. 엘리는 98세 즉 자신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40년간 사사로 계속해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이 땅에 보내실 때에 이미 사명을 주어서 보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엘리는 사사로서의 은사를 가진 채 태어났고 또한 그러한 일을 잘 감당했던 것이다. 한나가 중얼중얼 기도할 때에 처음에는 야단을 쳤지만 이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그녀를 축복해 줌으로 그녀가 임신하게 한 일이나, 사무엘이 어떤 음성을 들었다고 찾아왔을 때에 또 그러한 음성이 들려올 때에는 이렇게 처리하라는 등의 영적인 일들을 처리하는 것을 보면 그는 확실히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은사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태어날 때부터 왕의 은사를 가지고 태어났던 사울왕의 경우도 비슷한 경우다. 그러므로 이러한 은사를 가진 자에 대해서는 그가 회개하고 돌이킬 때까지 하나님은 더 참고 기다리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도록 그를 구별해서 보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죽기 전에 회개하여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바라고 계셨던 것이다. 

 

4. 엘리 제사장의 죽음이 알려 주는 7가지 중요한 교훈 중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무엇인가?

  엘리 제사장의 죽음이 알려 주는 교훈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는가? 

  넷째,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우상이라는 것이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했다. 그러므로 자식이 잘못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식을 엄하게 책망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자식들은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고 결국 백성들로부터 웃음거리가 되었으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섬기는 직책을 가진 자였지만 자신의 배만 불리는 자가 되고 말았다. 그러자 하나님의 제사는 멸시를 받았고 그의 자식들의 오만과 그리고 권위의 남용은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것이 우상 숭배가 된다는 것이 여기서도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엘리 제사장은 한 마디로 제1계명과 제2계명을 어겼던 것이다. 그리고 저 지옥에 갔다 온 분의 간증을 들어보면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은 현재 지옥에 있다. 

  다섯째, 하나님을 대표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이 그에게 주어진 자가 죄를 범하였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죗값을 더 크게 물으신다는 것이다. 지도자의 범죄는 일반 평민의 범죄와 같지 않은 것이다. 똑같은 죄라도 하나님은 훨씬 더 죗값을 엄하게 물으시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자들은 하나님을 대신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레위기 4장에 보면, 속죄하는 제사법이 나오는데, 여기에 보면 대제사장이 속죄제물을 드릴 때에는 족장이나 평민보다 훨씬 더 큰 것을 드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족장이나 평민은 속죄제물로 '염소'를 바치라고 되어 있지만, 대제사장은 '송아지'를 바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송아지를 바치는 것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 죄를 범하였을 때에 바치는 것이다. 

 

5. 엘리 제사장의 죽음이 알려 주는 7가지 중요한 교훈 중 여섯 번째와와 일곱 번째는 무엇인가?

  이제 마지막으로 엘리 제사장의 죽음이 알려 주는 교훈에는 또 어떤 것들이 있는가? 

  여섯째, 하나님을 현저하게 멸시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죄는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행위가 죄라는 것이 분명한데도 그리고 그대로 놔두면 어떠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냥 방치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죄를 결코 용서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러한 죄는 어떠한 제물이나 예물로도 속죄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삼상3:13~14). 특히 백성의 지도자들의 범죄의 경우에는 더욱더 처벌이 엄격하다. 그러므로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었으며, 이것을 방조했던 엘리 제사장도 엄격하게 죗값을 물게 되었던 것이다. 

  일곱째, 이것이 가장 큰 일인데, 내가 지은 죄들이 용서받지 못한 채 있다면 나의 후손들은 그 죄 때문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엘리 제사장과 그의 두 아들이었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자신의 지위(직책)를 이용하여 자기의 배만 부르게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후손들은 장차 은 한 조각이 없어서 구걸할 것이고 떡 한 덩이가 없어 동냥하는 신세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삼상2:36).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거룩한 직책을 이용하여 자기의 사리사욕을 챙기자, 하나님께서는 그의 후손에게는 거룩한 직책을 주지도 않으실 뿐더러, 주어진 것도 빼앗아 가기도 하셨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오래 참아 그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렸지만 회개하지 않자 그의 후손에게는 장수하는 축복을 거두어 가셨으니, 그의 모든 후손들 모두가 일찍 죽어 노인이 하나도 없는 저주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삼상2:31~32). 그러므로 우리는 빨리 회개하여 우리의 후손들에게는 좋은 것만 물려주자. 

 

2021년 12월 01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11) 법궤를 가져간다고 해도 전쟁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삼상4:1~11)_2021-11-30(화)

https://youtu.be/e36JVonBnwI  [혹은 https://tv.naver.com/v/23816746 ]

 

1. B.C.1075년경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람들 사이에 치른 1차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진 이유에 대해 이스라엘 장로들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시간이 흘러 사무엘은 청년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이제 엘리 제사장은 나이가 많아 98세를 넘기고 있었다. 시기적으로 보면 B.C.1075년경의 일이다. 그때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와 최소 40년이라는 나이 차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들의 나이도 이제 58세를 넘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이스라엘이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쟁에 패하여 죽임당한 자가 4천명 가량이나 되었다. 그러자 군사들이 진영에 돌아오자 이스라엘 장로들이 모여 말했다. "오늘 우리가 블레셋 사람에게 패하게 된 것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져가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그것을 가져다가 우리의 원수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합시다." 그들은 자기들이 전쟁에서 패한 이유를 오직 법궤를 모시지 않은 데에 그 원인이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2. 왜 이스라엘 장로들은 전쟁터에 법궤를 가져와야 한다고 판단한 것인가?

  당시 전쟁에 이스라엘은 왕이 없었다. 그러므로 특별한 지도자도 없었다. 그러므로 백성의 장로들이 모여서 전쟁의 의사를 결정해야 했다. 그런데 장로들의 결론은 이스라엘에게 법궤가 없어서 전쟁에서 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도 자기들의 윗대 조상들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진입하려 할 때에는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먼저 요단강 물을 밟았을 때에 요단강의 물이 그쳤고 그들이 마른 땅을 건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수3;17). 그리고 가나안의 첫 성이었던 여리고를 정복할 때에도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맨 앞에 앞장서서 견고한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 번씩 일주일 동안 돌고 마지막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았는데,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성을 지르자 함께 여리고성도 무너졌다는 이야기도 들었을 것이다(수6:12~13,17).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법궤에 큰 힘이 있다는 것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법궤만 있으면 블레셋과 같은 적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대패하고 말았다. 보병이 무려 3만명이나 죽었으니 말이다. 이는 이스라엘의 한 개의 지파가 다 죽어 없어진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때 큰 살륙이 있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3. 이스라엘이 법궤를 가져와서 전쟁을 하였으나 2차 전쟁에서도 패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장로들의 의견에 따라 실로에 있었던 법궤가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왔을 때에 이스라엘의 진영에서는 엄청나게 큰 환호 소리가 있었다. 그 환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땅이 올릴 정도였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니네들 이제 다 죽었어. 우리 진영에 방금 그 위대한 법궤가 들어왔거든..." 하지만 2차 전쟁에서도 역시 패하고 말았다. 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전쟁에서 패할 수밖에 없었는가?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실패한 이유로 2가지를 말할 것이다. 첫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들이 블레셋의 철제 무기를 당해 내지 못해서라고 말이다. 둘째는 이스라엘에는 언약궤가 있었지만 그 언약궤가 신통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증거하고 있는 바, 이스라엘 백성이 진짜 전쟁에서 패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3가지다. 첫째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작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무명의 '하나님의 사람'과 '사무엘'을 통하여 엘리 제사장 가문을 없애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이제 그 심판을 해야 할 때가 되었는데, 마침 블레셋이 쳐들어왔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전쟁에서 이기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일부러 징계의 도구로서 블레셋을 시켜 이스라엘을 치도록 하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둘째는 이스라엘이 전쟁의 실패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그들을 붙이신 일이었는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회개하지 않았고 우상 숭배로부터 돌이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도 그 전쟁에 패하도록 하신 것이다. 셋째, 무엇보다도 가장 크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의지해야 했던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을 알지도 못한 채 있었고 오히려 벨리알의 아들들이 되어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홉니와 비느하스가 심판을 받도록 그들을 블레셋에게 붙이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전쟁은 이미 패하도록 작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즉 어떤 위대한 왕이 이 전쟁을 이끌었다고 할지라도 이 전쟁은 반드시 패하게 되어 있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4. 왜 하나님의 언약궤는 아무런 힘이 없는 궤짝으로 변한 것인가? 

  사실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거기에 계시겠다고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출25:22). 주님께서는 언약궤의 뚜껑에 해당하는 두 그룹 사이에서 모세와 말씀하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던 법궤는 어디를 가든지 기적을 창출할 수 있었다. 법궤 자체가 힘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법궤의 뚜껑 곧 하나님께서 두 그룹 사이에 함께 임재해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수아 때만 해도 전능하시고 초월해 계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살아계심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법궤 위에 임재하고 있었을 때에는 이 법궤가 어디를 가든지 이 세상의 법칙이 아니라 초월적인 법칙들이 적용되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법궤가 뺏겨진 채 블레셋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에도 법궤가 가는 곳마다 거의 초토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지 않는 법궤는 한낱 나무 궤짝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고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이 누군지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귀신들도 예수의 이름으로 떠나가는 것이다. 종이로 인쇄된 성경책을 귀신들린 자에게 들이민다고 해서 귀신이 떠나가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분의 임재가 중요하고, 우리 편에서 보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중요한 것이다. 

 

5.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아도 당신이 존재하시며 또한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로서 최고의 전능자이신 것을 어떻게 법궤를 통해 알려 주셨는가?

  사실 하나님께서는 어디 한 곳에 갇혀 계시는 그러한 분은 결코 아니시다. 무소부재하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켜 영계와 물질계가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일부러 만들라고 지시하셨다. 그곳이 곧 성막이요, 주님은 성막 안에 있는 지성소 두 그룹 사이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법궤는 그 능력이 탁월하지 아니 할 수 없었다. 고로 법궤가 가면 요단강 물이 말라버렸고, 여리고성이 그만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블레셋 땅으로 이 법궤가 들어갔을 때에는 블레셋의 다섯 고을 사람들은 악한 종기에 시달려야 했고, 그들이 섬기던 다곤 신도 목이 부러지고 손이 부러지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만약 그날에 전쟁터에 가지고 나왔던 법궤의 효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알았더라면 그날 전쟁에 그토록 무참히 패배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법궤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이 교회에 예배드리려고 함께 앉아 있다 할지라도 다 천국가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2021년 11월 30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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