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이렇게 부지런히 열심히 일하며 사는데 가난하게만 사는 것일까? 왜 물질이 내게 들어오지 않는 것인가? 그리고 물질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금방 새어나가고 마는가? 왜 우리 집안에는 일찍 죽는 사람이 그렇게 많이 발생하는가? 왜 우리 집안에는 불치병이 있고 정신지체장애인이 나오는 것인가? 여기에는 그 비밀코드를 알려주는 놀라운 비밀이 있다.

2021-11-26(금) 금요기도회
제목: 사무엘상강해(09) 하나님보다 자기 자식을 더 사랑했던 엘리 제사장이 받을 4가지 재앙은 무엇이었나?(삼상2:27~3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XVHg-TnT8WA [혹은 https://tv.naver.com/v/23802301 ]

 

1. 들어가며

  엘리의 집에 어떤 사람이 찾아왔다. 그는 무명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엘리 제사장에게 전달했다. 그 내용은 엘리와 그리고 엘리의 두 아들들이 범한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이제 엘리 집안에 재앙을 내리겠다는 심판 예언이었다. 왜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으로부터 엄중한 재앙을 선고받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가 선고받은 내용은 과연 무엇이었으며, 그중에서 그들의 범죄에 따라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죄는 어떤 것이었는가? 오늘은 사람이 지은 죄 특히 조상들이 지은 죄와 그 형벌 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보고자 한다. 엘리 제사장의 죄에 관하여서는 이전의 '사무엘상강해(08) 하나님보다 자기 자식을 더 사랑했던 엘리 제사장, 과연 무엇이 예고되었을까?(삼상2:27~36)'의 말씀을 참고하기를 바란다. 

 

2.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 가문에 재앙을 내리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어떤 무명 선지자를 엘리 제사장에게 보내어, 엘리 제사장의 집안에 임하게 될 재앙을 선포하게 한다. 그때 무명 선지자는 왜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 가문에 재앙을 내리려고 하는지에 관하여 2가지 죄목을 그에게 들려주었다(삼상2:29). 그중에서 첫째는, 엘리와 그리고 엘리의 두 아들들이 하나님께 바쳐진 희생 제물과 하나님의 곡식 제물을 짓밟았다는 것이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여호와를 알지 못한 채 있었다(삼상2:12). 둘째는, 엘리에게 해당하는 죄였는데, 그 죄는 그가 자신의 두 아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겨서 이스라엘 백성이 드리는 가장 좋은 제물을 가지고 자기들의 배만 살찌우게 했다는 것이었다. 이는 결국 홉니와 비느하스가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의 가문을 멸망시키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해진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마22:37~40). 이는 사람이 지은 죄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지를 잘 알려 준다. 

 

3.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 가문에 내리려고 한다는 4가지 재앙은 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엘리 가문에 대해서 어떤 재앙을 내리겠다고 하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무명의 선지자를 통하여 그 집안에 다음과 같은 4가지 재앙을 내리겠다고 선고하셨다. 첫째, 엘리 가문의 제사장직을 모두 박탈하실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삼상2:31). 더이상 하나님께서는 엘리 가문을 제사장으로 쓰지 않겠다는 뜻이다. 둘째, 엘리의 두 아들을 죽여 그 표징이 되게 하시겠다고 하셨다(삼상2:34). 엘리는 분명 자신의 아들들이 무엇을 잘못 행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아들들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두 아들들의 범죄를 보고도 온전하게 야단치지 못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부모가 자기 아들을 책망하지 않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부모를 대신하여 책망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셋째, 앞으로 태어날 엘리 가문의 사람들은 일찍 죽게 됨으로 이 집안에 노인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삼상2:31~33). 모두가 젊어서 죽을 것이라는 뜻이다. 넷째, 엘리 집안은 이제 망하여 물질적으로 궁핍하여 거지처럼 구걸하며 살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삼상2:36). 분명히 엘리 집안도 제사장의 가문이지만 앞으로는 이 집안의 사람이 제사장으로 쓰임받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제사장이 제사장으로 쓰임받지 못함으로 인해 떡 한 조각도 얻지 못하게 되는 신세가 될 것라는 것이다. 

 

4. 엘리 집안에 내린 재앙을 영적으로 진단하면 어떻게 볼 수 있는가?

  우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왜 엘리 집안에 심판을 내리는지 그리고 심판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심판의 내용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놀라운 영적인 비밀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사람이 범죄한 대로 심판을 행하신다는 것이요, 그 심판이 자기 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혈통을 지닌 아래 세대가 그 책임을 같이 담당한다는 것이다. 이제 그 내용을 조금 세밀하게 살펴보자.

  첫째, 엘리 가문의 제사장직을 박탈하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것이 실행되는 때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왕 때에 시작되었고(삼상22:9~19) 그리고 솔로몬왕 때에는 완전히 실행되어 엘리 가문의 제사장이 멸문하게 된다(왕상2:26~27). 엘리 가문의 제사장이었던 아비아달이 파문당하여 더이상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로 이 심판은 그의 후손들이 담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엘리의 두 아들들이 죽임당한다고 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있는 표징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일은 이 심판의 경고가 있은 후 적어도 10~15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뒤였지만 당대에 그 일이 일어난 것만은 사실이다. 블레셋과의 전쟁터에 나가서 두 아들들이 즉사했기 때문이다. 

  셋째, 엘리 가문에 노인이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심판의 집행은 엘리의 손자들의 대부터 실행된 것이다. 고로 엘리와 엘리의 두 아들들의 범죄는 참으로 뼈아픈 것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엘리와 두 아들들의 범죄가 그의 모든 후손들의 육체의 생명의 때를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엘리와 두 아들들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로서 직책이 부여되었지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이요, 자기들에게 주어진 엄중한 직책과 권력을 남용하고 자기들의 배를 불리는 데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거룩한 직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은 일종의 무한대로 물으신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이 집안에 노인이 없게 만드시겠다는 말을 곱씹어 보면, 엘리 제사장이 회개할 수 있도록 98세까지 살도록 허락하였지만 엘리 제사장이 끝내 회개하지 않았기에 더이상 장수의 축복을 주지 않고, 장수의 축복을 걷어가시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넷째, 엘리의 후손들이 물질적으로 궁핍하게 살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사울왕 때부터 시작되어 숨을 죽이며 살았으며, 다윗의 말년에 엘리 가문의 제사장 아비아달이 아도니야의 반역에 동참하여 파문당하여 더이상 제사장으로 쓰임받지 못함으로 완성되었다. 이것은 사실 엘리와 엘리의 두 아들들의 범죄에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엘리와 두 아들들이 제사를 멸시하며 고기를 탐하여 배불리 먹었던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엘리 제사장이 죽던 날 그의 몸의 상태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가 두 아들들이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의자가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서 죽었는데, 이는 그의 몸이 비둔한 까닭이었다고 성경이 증언하고 있다는 것이다.

 

5. 나오며

  그렇다. 오늘 내가 어떤 저주 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실 우리가 죄를 지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엘리 제사장 가문이 말해 주는 것에 따르면, 대부분 그 이전의 세대가 범한 죄에 대한 그 반대의 형벌이 내려진다는 것이다. 엘리와 두 아들들이 고기를 먹고 배불러 살이 찐 상태에 있었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들에게는 먹을 것이 없게 하는 가난의 저주를 내리신 것이다. 그리하여 훗날 그 가문은 떡 한 조각과 은 한 조각을 얻기 위해 동냥을 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삼상2:36). 그것이 솔로몬 시대에 실행된 엘리 가문의 저주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당하고 있는 가난의 저주에 대해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 누군가에게 부요함의 축복을 허락하셨는데, 그 조상이 그 부요함을 오직 자기의 배만 불리는데 썼다면 그의 후손들 가운데 어느 세대부터는 가난의 저주가 휘몰아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부자로 사는 사람들의 경우를 들어보면, 그것은 예수님을 믿었느냐 믿지 않았느냐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과연 자기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했고 그것을 실천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6.25 전쟁 때에 그랬다. 피난 온 사람들에게 자기의 쌀을 퍼서 밥을 먹여 준 사람의 후손은 지금 잘 살고 있다. 그러나 그때 인색했던 자들은 지금도 가난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양반 집안이라고 해서 계속 부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동네 사람들에게 쌀을 풀어 그들을 먹게 한 양반은 지금도 그의 후손이 부자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리실 때나 혹은 형벌을 내리실 때에 그 사람이나 그 사람의 가문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징계를 내리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 사람이나 그 조상들이 지은 죄와 관련된 징계가 내려지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우리는 잘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1년 11월 26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08) 하나님보다 자기자식을 더 사랑했던 엘리 제사장, 과연 무엇이 예고되었을까?(삼상2:27~36)_2021-11-26(금)

https://youtu.be/6Zi_2fHeMmw [혹은 https://tv.naver.com/v/23801975 ]

 

1. 엘리 가문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무엇이었는가?

  타락하여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엘리의 집안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무명의 선지자를 엘리 제사장에게 보냈다. 그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정확히 그에게 전달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명칭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를 지칭하는 말로서(삿13:6, 왕상13:1), 구약시대에는 엘리야 선지자(왕상17:18), 엘리사 선지자(왕하4:16)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리웠었다. 

 

2. 아론 자손으로서 엘리 가문은 어떻게 해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는가?

  아론 자손이었던 엘리 제사장은 아론의 넷째 아들이었던 이다말 계열의 자손이었다. 그러므로 엘리 가문의 사람은 태어나면서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엘리 그리고 엘리의 두 아들이었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아론은 처음 어떻게 되어서 하나님께서 제사장으로 쓰임받는 사람이 되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에 따른 것이다. 사실 사람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크게 2가지를 통해서 결정된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여 이 땅에 보내면 그렇게 쓰임받는 것이다(물론 하나님의 정하심을 받고 태어났으면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데 그렇게 살아가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기도 하다). 또 하나는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 자신이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복된 삶인가를 듣고 깨달아서 자신을 쳐 복종시킴으로 자기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혈통의 유전자가 자식에게 전달되고, 그러면 자식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특별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 가문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은총을 가지고 태어난 채 있었기에 처음부터 복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삶을 살고 있었다. 

 

3. 하나님께서는 왜 엘리 가문을 버리려고 작정하셨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엘리 가문을 버리려고 작정하고 계셨다. 그것은 2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엘리의 두 아들의 죄악 때문이었는데,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삼상2:29a). 그들은 사실 일반 평민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이름이 그들에게 주어져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을 하고 또한 축복하며 또한 일을 하는 직분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직분의 막중함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이 가진 지위를 이용하여 자기의 배를 채우는데 사용하였다. 왜냐하면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기도 전에 취하여 가는 파렴치한 일들을 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위를 이용하여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의 성을 착취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엘리 가문을 멸망시키려고 작정하신 것이다. 둘째, 엘리 제사장 자신의 죄악 때문이었다(삼상2:29b). 왜냐하면 엘리 제사장은 자기 자식이 분명히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보고도 책망하지 않았으며, 바른 길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 자식을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는 뜻이다. 그랬다. 그는 하나님보다 자기 자식을 더 사랑하였기에 자기 자식이 화내고 짜증내는 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놔두면 자식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재앙을 당하고 결국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것이 뻔한데도 그는 자식들을 훈계하지 아니한 것이다. 크게 보면 엘리 제사장은 제1계명과 제2계명은 어겼다고 할 수 있다. 

 

4. 하나님께서는 왜 하나님의 사람을 보낸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엘리 제사장의 집안을 하루 아침에 없애버리시면 되었다. 왜냐하면 엘리 제사장과 그의 자식들의 죄악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엘리 제사장을 사랑하셨기에 그에게 경고를 먼저 보내셨다. 그것은 그가 회개하여 돌이키게 함이었다. 사실 오늘날에도 역시 하나님의 일만 한다는 목사에게 암병이 생겼을 때에는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회개하라고 하는 싸인을 보낸 것이기 때문이다. 왜 목사에게 암병이 들겠는가! 그런데 병이 들면 사람들은 자신의 병을 치료하려고만 할 뿐, 자신이 지금 무슨 죄를 저지르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도 않는다. 음식을 잘못 먹었겠지, 몸 관리를 잘못한 것이겠지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왜 하나님의 사람을 그에게 보냈겠는지를 우리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엘리 제사장의 집안이 멸망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그가 죽어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겠다고 미리 알려 준 것인데 엘리 제사장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이 일이 있은 뒤 적어도 10~15년 이상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엘리는 끝내 돌이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엘리 제사장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신다. 이번에는 사무엘을 통하여 그에게 경고를 하게 하신 것이다(삼상3:11~14).

 

5. 엘리 제사장 가문의 몰락이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은 무엇인가?

  엘리 제사장 가문의 몰락이 보여주는 중요한 영적인 교훈은 3가지다.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복을 받기를 원하시지만 그것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행동을 하게 된다면 결국 복을 받지 못하고 버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사람이 타락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은 중단없이 계속 진행해 가신다는 것이다. 그 사람만 버림당할 뿐이지 하나님의 나라는 누군가를 통해서 또한 완성되어지는 것이다. 셋째는 이 땅에 있는 사람들 중에 온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대제사장을 준비하셨으니 그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시110:4). 

 

2021년 11월 26일(금)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07) 구별된 제사장의 범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시는가?(삼상2:12~26)_2021-11-25(목)

https://youtu.be/wMrXy67x0s8  [혹은 https://tv.naver.com/v/23742570 ]

 

1. 엘리의 아들들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성경은 말한다. 엘리 대제사장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행실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언급한다(삼상2:12).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홉니와 비느하스는 행실이 나쁜 정도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은 '벨리알의 아들들'이라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벨리알'이라는 말은 '무가치한, 무의미한'이란 뜻을 지녔다. 그러니까 홉느와 비느하스는 비록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하나님의 나라에는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 자였다는 뜻이요,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추구하고 있기에 무가치한 사람들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벨리알'이라는 말의 의미를 신약성경에서는 좀 더 심각하게 우리에게 말해 준다(고후6:14~16). 

고후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벨리알과 우상을 그리스도 및 하나님의 성전과 비교하여 말한다. 이는 벨리알의 아들들이라는 말은 곧 그가 우상을 섬기는 자요 사탄 마귀에게 속한 자라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 엘리의 두 아들은 우상 숭배자와 같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조금 있다고 살펴보겠다. 

 

2. 엘리의 두 아들에 비해 사무엘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런데 불량자였던 엘리의 두 아들에 비해 사무엘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엘리의 두 아들은 하나님을 대변하는 역할과 직책을 맡고 있는 제사장의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타락하여 있었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엄마 한나에 의해 3살 때에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바쳐진 사무엘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어릴 적에(젖 뗄 무렵에)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었기에, 엘리 제사장 밑에서 제사장의 교육을 받고 자라고 있었다. 왜냐하면 엘리 제사장이 그에게 세마포 에봇을 입혀 일하게 했기 때문이다(삼상2:18).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은 점점 자랄수록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을 받아가고 있었다(삼상2:26). 이는 그가 기도의 여종이었던 한나의 자녀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는 기도하는 부모를 만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축복을 가지고 태어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한나의 부모는 기도만 지원한 것은 아니었다. 바쳐진 아들이었지만 해마다 새로운 옷을 만들어 입혔기 때문이다. 사무엘의 부모는 한 번 그를 실로에 있는 대제사장에게 맡긴 이후로 그를 내팽개쳐 버린 것이 아니라, 해마다 매년제를 드릴 때에 사무엘을 위하여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입히곤 하였기 때문이다(삼상2:19). 

 

3. 사무엘서의 저자는 엘리의 두 아들과 한나를 어떻게 비교하고 있는가?

  사무엘서의 저자는 히브리어의 발음을 가지고 독특하게 두 종류의 사람들을 비교하고 있다. 하나는 엘리의 두 아들이요 또 하나는 한나가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이 그들에게 내린 판단은 실은 정반대 방향이었다. 엘리는 자기의 두 아들이 히브리어 원문상 '벨리알의 아들들'인데도, 그것을 모른 채 눈감아 주고 있었다(삼상2:11). 그러나 진짜 하나님의 기도의 여종이었던 한나는 '나쁜 여자'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삼상1:16). 기도에 전념하여 오래 기도하다 보니 입술만 움직일 뿐,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보고서 그녀에게 '포도주와 독주를 끊으라'라고 했기 때문이다(삼상1:14). 그는 한나를 '악한 여자'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삼상1:16). 여기서 '악한 여자'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살펴보면, '벨리알의 딸'이라고 나온다. 그러니까 엘리는 실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눈이 어두워지듯이 그의 영적인 판단력도 흐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벨리알의 아들들은 그렇지 않다고 판정하고 한나를 벨리알의 딸이라고 판정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으면 어떡하겠는가? 우리 모두는 이 나라의 영적인 삶을 이끌어 가는 영적인 지도자들을 위해 늘 기도해야 한다. 

 

4. 하나님께서는 홉니와 비느하스를 죽이기로 결정을 한다. 왜 그랬을까?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홉니와 비느하스를 죽이기로 결정하신다. 왜 그랬을까? 첫째로, 좀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이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벨리알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삼상2:11).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지위와 신분을 이용하여, 백성들의 것을 착취하는 자였던 것이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들이 얼마나 제사를 멸시하고 있었는지 하나의 일화를 소개한다. 그들이 아직 제사장이 아니었던 좀 더 젊은 시절 곧 그들이 젊었을 때에 경험했던 일화를 소개해 준다(삼상2:13~17). 그들 모두가 다 소년('나아르')이었을 때다. 그들은 제사를 드리려 백성들이 실로에 찾아오면, 먼저 세 살 고리를 가져다가 삶고 있는 고기를 콕 찍어 걸려 나오는 대로 무조건 가져가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제사 드리는 자가 기름을 태우기도 전에 생고기를 달라고 하여 억지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때 제사 드리는 백성이 그들을 저지해도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참으로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컸던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직분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만을 채우려는 자를 하나님께서 과연 기뻐하시겠는가? 직분을 남용하여 자기의 배만 채우려는 자의 행위를 계속 지켜보고만 계시는 것일까? 가장 거룩한 제사를 가장 추하게 만들고 있는 그들을 가만히 지켜만 보시는 것일까? 셋째, 그들이 이제 제사장이 되어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그들은 회막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을 하곤 하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여인들은 나실인으로 바쳐진 자들 같은데, 홉니와 비느하스는 그러한 여인들과 육체의 쾌락을 좇아가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여 연약한 여성들의 성을 착취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높은 지위를 이용하여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죽이기로 결정하신다. 

 

5. 엘리의 두 아들의 범죄가 큰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사실 엘리의 두 아들이 저지르고 있던 죄들을 일반 평민(백성)이 저지르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강하게 말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들이었다. 하나님의 이름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사장권의 타락은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이 멸시를 당하실 때에는 가만히 있지 아니하신다. 참고 참고 참으시다가 한 방에 끝내버리신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지도자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홉니와 비느하스의 최후를 자기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제사장이란 어떤 위치였는가? 당시 제사장은 사람을 하나님에게 연결시켜 주고,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러한 위치를 망각했다.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자기의 배를 불리는데 사용하고 있었고, 자신의 지위를 남용하여 남의 것을 착취하고 있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들을 하나님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매김 할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리신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하루 아침에 전쟁터에서 나가서 즉사하고 만다. 

 

 

2021년 11월 25일(목)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무엘상강해(06) 기도하는 여종이 받게 된 놀라운 영적인 지식과 예언(삼상2:1~11)_2021-11-24(수)

https://youtu.be/q6tX71x5PN0 [혹은 https://tv.naver.com/v/23742302 ]

 

1. 약 10년 만에 기적적으로 아들 사무엘을 낳게 되고 그 아이를 나실인으로 주께 드린 후 한나가 행한 것은 무엇인가?

  한나는 결혼 후 약 10년 동안 아이를 낳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기도로 그 문제를 뚫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녀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아들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자기가 하나님께 아들을 구하였다 하여 '사무엘'(하나님께 구하였다)이라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젖을 떼자 그 아이를 실로의 중앙 성소에 데려가서 하나님께 바친다. 그리고 서원 제사를 드리면서 그녀는 노래를 하였다. 그것이 사무엘상 2:1~10에 나오는데 이것을 일컬어 사람들은 '한나의 노래' 혹은 '한나의 찬가'라고 말한다. 그중에 중요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삼상2: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삼상2:6-8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2. 한나의 노래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나의 노래는 기도 형식을 취한 감사의 노래인데, 구약에서 가장 감동적인 노래가 아닌가 한다. 그녀의 이 노래는 그 내용이 첫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행한 일을 노래하고 있고(1절), 둘째는 하나님이 대체 누구신지에 대해 노래하였고(2~8절), 셋째는 여호와께서 앞으로 행하실 일을 노래하고 있다(9~10절). 이 노래는 자신의 간증이자 하나님이 누군지를 소개해 주는 노래요 장차 하나님께서 또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지를 알려 주는 노래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노래는 다른 신앙의 위인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니 시편에 이 노래를 인용한 성경 구절이 특히 많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다윗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으니 시편 133편의 후반부는 한나의 노래를 그대로 옮겨 적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신약에 들어와서는 장차 예수님의 모친이 될 마리아가 처녀인 상태에서 임신을 하게 된 것을 알고는 기쁨의 감격스러운 노래를 불렀는데 이 또한 한나의 찬가와 거의 비슷하다고 하겠다(눅1:46~55). 한 마디로 한나의 노래는 기도와 노래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으로서 후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노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한나는 무엇을 기뻐했는가? 

  한나는 자신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기뻐했다(1절). 그러나 사실 사무엘을 낳기까지 그녀는 매우 많이 마음 고생을 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는지(삼상1:10), 그리고 슬퍼하고 있었는지를 말하기도 하였다(삼상1:15). 그러나 그녀는 이 모든 문제를 기도로 뚫었다. 그럼, 그녀가 드린 기도는 대체 어떤 기도였는가? 그것은 적어도 3가지였으니, 하나는 작정하여 드리는 기도였고, 또 하나는 금식하는 기도였으며, 마지막 하나는 눈물의 기도였다. 그러므로 이제 사무엘을 낳고 봉헌하면서 자신의 괴롭고 슬픈 마음을 기쁘게 바꾸어 준 하나님을 그녀는 노래하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그녀의 기도는 더욱더 권세가 있게 되었고 아울러 부끄러워 말할 수 없었던 그녀의 입술이 이제는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였음을 기뻐하였다. 

 

4. 한나는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어떻게 노래했는가?

  한나는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자신의 찬가를 통해 노래하고 있으니, 그 내용을 살펴보면, 그녀는 참으로 하나님이 누군지를 제대로 알아본 여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하나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8가지 사항을 알고서 그것을 노래로 읊조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그녀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노래했는가? 첫째로 그녀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초월성을 노래했다(2a절). 둘째로 그녀는 하나님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노래했다(2b절). 셋째로 그녀는 하나님이 견고한 반석이심과 피난처 되심을 노래했다(2c절). 넷째로, 그녀는 하나님의 전지성도 아울러 노래했다(3절). 다섯째로, 그녀는 하나님이 공평한 심판주가 되심도 함께 노래했다(3절). 여섯째로, 인생을 역전시키는 하나님을 노래했다(4~5절). 일곱째로,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노래했다(6~8a절). 여덟째로, 만물의 주인되시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노래했다(8b). 그랬다. 그녀는 하나님의 거의 모든 속성들을 알아보았고 그것을 경험하였으며, 그분의 위대하심을 이렇게 노래한 것이다. 

 

5. 한나의 노래(찬송)가 들려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한나의 노래는 10구절 밖에 안되어 긴 문장은 아니지만 강한 인상을 주는 노래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은 그녀가 기도를 가지고 자신의 문제를 끝내 해결했고, 그 해결했던 것을 노래로 직접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한나의 노래는 어디서 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노래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노래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크게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그녀는 기도하면 인생은 얼마든지 역전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하겠다. 사실 그녀가 사무엘을 낳기 전까지 그녀는 비침했고 사람들에게는 조롱거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드린 기도의 결과는 모든 것을 뒤바꾸어 놓았다. 기도가 그만큼 강력하다는 것이다. 둘째, 그녀는 기도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녀가 하나님이 누군지를 알게 된 것은 사실 누군가로부터 배워서 안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부분 그녀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터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하나님의 8가지 방면을 여기서 노래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셋째, 기도하면 장래사에 대해서 알 수 있거나 그것에 관해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그녀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약점이 있어서 그녀는 기도에 정진할 수 있었고 결국에 그녀는 기도의 사람이 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미래를 어떻게 계획하고 있는지까지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장차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왕을 기름을 부어 세우실 것이라고 예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삼상2:9~10). 그렇다. 기도하면 이렇게 복을 받는다.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누군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미리 내다보고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모두들 한나처럼 기도의 종들이 되어 보지 않겠는가!

 

2021년 11월 24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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