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23) 복음전파의 권리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행5:40~42)_2022-06-30(목)

https://youtu.be/ZokUXqk5-H0  [혹은 https://tv.naver.com/v/28024124 ]

 

1. 공회에 불려갔던 사도들이 석방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산헤드린 공회에 불려간 후 사도들은 취조와 심문을 받았지만 그들에게서 큰 죄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했던 선고(행5:28)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채찍질을 받고 풀려나게 된다. 만약 사도들이 안식일을 어겼다거나, 성전이 필요없다고 했으면 아마도 그들은 신성 모독죄로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도들은 안식일을 잘 지켰고(행1:12), 성전에 나가서 늘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행3:1). 그들에게서 죄를 책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2. 사도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 반드시 빼놓지 않고 전했던 것은 무엇인가?

  이상의 일들을 통해 사도 베드로에게는 3번에 걸쳐서 복음을 전할 기회가 주어졌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보고 몰려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때는 왜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가 나타났는지를 요엘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설교하였고, 그들이 못 박아 죽인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 것인데, 예수님은 죽으셨지만 시편16편의 예언을 따라 다시 살아나셨다고 증거하였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으면 그들에게도 성령의 선물이 주어질 것이라고 설교했다(행2:38). 둘째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의 미문에 있던,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를 고친 이후, 솔로몬 행각에 몰려온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였다. 그는 이번에도 역시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께서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를 성하게 고쳐 주셨다고 하면서 회개하고 돌이켜 죄사함을 받으라고 설교하였다(행3:19). 그리고 세 번째는 사도들 전체가 공회에 붙들려 갔을 때, 그는 공회석상에서 설교하였다.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님을 자기들의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셨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오른손으로 높여 왕과 구주가 되게 하셨다고 했고, 자기들이 증인들이며,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성령도 마찬가지라고 말이다(행5:32~32). 그렇다. 사도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에 반드시 빼놓지 않고 증거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회개였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켜 '복음'이라고 부른다. 고로 사도 베드로는 '복음'과 그리고 '회개'를 외친 것이다. 

막1:15 이르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3. 복음 전파의 권리를 얻기 위해 꼭 필요한 4가지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파할 권한을 어떻게 획득했던 것일까? 처음 오순절 사건 때에는 복음을 전파한 장소가 예루살렘의 마가 다락방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그곳은 성전 경내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말릴 수 없었다. 제지할 뾰족한 수단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사건은 성전 경내에서 일어났다. 베드로와 요한이 솔로몬 행각에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성전은 성전 경비대가 수비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그들이 관리 감찰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두개인들의 일이었다. 그런데 자기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을 성전 경내에서 전하는 것을 보자 그들은 성이 난 것이다. 그리하자 그들은 허락도 없이 성전 경내에서 복음을 전한다면서, 사도들을 잡아 가두기 시작했으니 먼저는 베드로와 요한부터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사도들 전체를 가두었다. 왜냐하면 두 번 다 솔모몬 행각에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사도들은 어떻게 되어서 솔로몬 행각에서 복음을 전파할 권리를 얻게 되었는가? 그것은 총 4가지였다. 첫째, 기도의 댓가였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들은 밤낮으로 기도했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한다는 놀라운 표적을 얻었기 때문이다. 초자연적인 역사인 따르는 표적으로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고 있음이 증명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그것은 온 백성들의 지지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루살렘 백성들은 예수님을 죽이는데 동조했던 자들이었다. 하지만 베드로의 두 번의 설교를 통해 첫 번째는 3천 명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게 되었고, 두 번째는 5천 명이 돌아왔다. 그리고 더 많은 남여의 무리가 주께로 돌아왔다.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사도들의 복음 전파로 인하여 당시 예루살렘의 인구가 10만 명이었는데,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하여 약 2만 명 이상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대세가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그들이 사도들을 잘못 건드린다면 돌로 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행5:26). 이러한 백성들의 지지가 사도들로 하여금 힘을 더 내게 하였던 것이다. 넷째, 고난에 직면하여 지레 겁먹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한 댓가다. 붙잡아서 위협하면서 감옥에 가두고 엄포를 놓았으면 보통 사람들은 그만 둘 것이다. 하지만 사도들은 달랐다. 그들은 목숨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사람의 말을 듣는 것보다 더 마땅하다고 그들은 믿고 행동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산헤드린 공회의 결정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매질을 당해야 했다. 우리말 성경에는 '채찍질을 당했다'고 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가죽을 벗겼다"는 원뜻을 가진 동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니, 그때 매를 상당히 많이 맞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지 않았나 싶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매질을 당했는데도 그들은 또다시 성전에서든지 집에서든지 예수께서 약속된 메시야이신 것을 증언하였고 그러한 사실을 가르치기를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행5:42). 그러나 그때 이후로는 아무도 사도들을 잡아가지 못했던 것이다. 

 

4.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결국 우리는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정말 중요한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첫째는 기도다. 둘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역사다. 셋째는 백성들의 지지요, 넷째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음이다. 그렇다. 우리가 영적인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우리는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천국복음을 전파하려는 자들은 더욱 그렇다. 복음을 전하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회개를 전한다는 것도 더더욱 그렇다. 예수님을 믿었을 때에 이미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다 용서를 받았는데, 무슨 회개를 또 해야 하느냐면서, 회개하라는 말을 이상하게 취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한일서 1:9의 말씀을 보라. 회개는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문장은 현재 가정법 문장이다. 우리는 지은 죄를 계속해서 자백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지은 죄는 자백함으로서 용서를 받고 깨끗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예수께서도 세족식 때에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한 번 목욕한 자는 발은 씻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요13:10). 예수님을 믿어 사탄의 나라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겨온 자라도, 지은 죄들은 계속해서 씻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영적인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천국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기도를 드리되 특히 회개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5. 복음 전파자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아무리 좋은 '천국복음'이라고 할지라도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은 항상 2가지 방해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하나는 이 땅에서 천국가는 자녀가 탄생하도록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을 가만 놔두지 않으려는 악한 영들의 방해 공작이다. 그런데 이들 세력은 인간보다 힘이 더 세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회개에 힘써야 한다. 죄가 있는 곳에서는 악한 영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안에 아직 덜 회개된 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자기 안이 깨끗해야 영적인 전쟁의 기수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 권세를 얻기를 바란다면 먼저 자기의 죄를 철저히 회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땅에서 자기들이 누리는 혜택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순수한 복음 전파자의 활동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기득권 세력이 그들이다. 이들은 순수한 천국복음과 회개를 전파하는 자들의 활동이 증가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럴수록 자기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가 더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주님 앞에서 더 경건하게 살기를 바라는 자들은 핍박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핍박에 두려워하지 말라. 왜냐하면 우리가 가는 곳에 언제나 '가말리엘'과 같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고 계시기 때문이다(행5:34). 또한 무엇보다도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기 때문이다(마10:19~20).

마10:17~20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022년 06월 30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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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22) 복음전파자는무엇이 자신에게 영광이 되어야 하는가?(행5:25~42)_2022-06-29(수)

https://youtu.be/1gV_cylerK0  [혹은 https://tv.naver.com/v/27973893 ]

 

1. 복음 전파자들에게 언제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들에 의한 핍박과 사탄의 공격들이다. 그런데 사탄의 공격 정도는 우리가 죄가 없을 때에는 아예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를 열심히 하면서 복음을 전파한다면 사탄의 직접적인 공격은 다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에 의한 핍박이다. 사탄이 사람들을 써서 복음 전파자를 핍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핍박하는 자들을 죽여 달라고 기도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왜냐하면 그들도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으므로), 우리들은 사람들의 핍박을 예상하고 있어야 한다. 특히 그냥 일반적인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파하려 할 때에는 더더욱 사람들의 핍박이 있을 것임을 예상하고 있어야 한다. 사실 초대 교회 당시에도 역시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을 핍박했던 대상은 결코 이방인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그룹이었던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핍박했던 것이다. 그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2. 당시 사두개인들이 사도들을 잡아서 감옥에 가둔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렇다면 초대 교회 당시에 사도들을 잡아가둔 세력은 누구였는가? 그것은 공권력을 가지고 있던 당시 '산헤드린 공회'였다. 그들은 자체 내에 성전 경비병을 두고 있었다. 그러므로 공회원 중에서도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이 복음 전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였고 그래서 그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어 놓았던 것이다. 그럼, 왜 그들은 그날따라 사도들을 잡아다가 감옥에 처넣었는가? 그것은 자기들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즉 예수의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했던 결정을 사도들이 위반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차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대체 무슨 생트집이란 말인가? 사도들이 행한 것은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를 고쳐준 일이었고, 그리고 그것이 어찌된 영문인지를 모르는 군중에게 그것은 얼마 전 예루살렘에 모였던 자들이 죽였던 바로 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이라고 말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도들이 병자를 고쳐준 일은 결코 불법은 아니었다. 그저 좋은 일이었다. 또한 사도들이 큰 죄를 범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안식일을 어겼던 것도 아니며, 신성 모독죄를 지은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행한 것은 병자를 고쳐준 선한 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시기하여 감옥에 가둔 것이다. 

 

3. 공회석상에 서게 된 베드로는 무엇을 말했는가?

  공회석상에 서게 된 베드로는 그들에게 어떻게 대답했는가?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사람들보다 오히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소? 여러분이 나무위에 매달아 잔혹하게 죽였던 분인 예수님을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사함을 주시려고 그분을 그분의 오른손으로 임금과 구주로 높이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셨던 성령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행5:29~32)". 그러자 사두개인들이 듣고는 마음에 찔려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그리고 난 후 그들은 사도들을 죽이고자 꾀하게 된다. 

 

4. 사도들의 유죄 선고를 막아선 사람은 대체 누구였는가?

  그때였다. 이들의 사형 선고를 막아선 인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리새인들의 거두였던 가말리엘이었다(이분은 사도 바울의 스승이었다). 그는 힐렐 학파의 거장으로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때 그는 사도들을 밖에 잠깐 나가 있게 한 후, 공회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여, 여러분이 이 사람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려는지는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서 스스로 선전하며 사람이 약 400명이 따르는 일이 있었지만 그가 죽임을 당하자 그를 따르던 자들이 흩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했지만 그도 망한즉 그를 따르던 모든 사람들 역시 흩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에게서 물러서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내버려 두십시오. 만약 이 계획과 행동이 사람으로부터 있는 것이라면 이내 곧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있다면 여러분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행5:35~39)". 그러자 모든 공회원들이 그의 말에 설득을 당하게 된다. 그러고 나자 공회는 사도들을 안으로 불러들였고, 그들을 채찍질하게 한 후에 더 이상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아주게 된다. 그렇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보내어 천국복음을 전파하도록 세운 자들이 죽고 사는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 전능자이시자 온 우주 만물의 대주재이신 예수님께서 결정하시고 주관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증거할 때에는 담대히 증거해야 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당신이 보낸 종들을 지켜보고 있으며, 또한 그들을 지켜야 할 때에는 그들을 지켜 줄 사람들을 언제 어디서나 준비해 놓고 계시기 때문이다. 

 

5. 복음 전파자에게 진정한 영광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복음 전파자에게 있어서 진정한 영광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멋지게 지어진 건물도 아니고, 성도들의 많은 숫자도 아니다. 또한 그것은 사람들로부터 영광과 칭찬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복음 전파에 있어서 진정한 영광은 자신이 복음을 전파하면서 자신의 몸에 남겨진 고난의 흔적들이다(갈6:17). 왜냐하면 이것이 장차 천국에 들어가면 영광의 면류관으로 바뀌어서 내게 돌아올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보통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숫자의 많음에 열광한다. 하지만 주님은 그것에 관심이 없다. 주님께서는 영혼들을 얼마나 천국 안으로 들어가게 했느냐만 관심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하든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우리의 복음 전파로 인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영혼을 상대적으로 많이 만들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존귀를 받을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것은 항상 핍박을 받은 흔적과 거의 정비례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은 우리가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또한 사람들을 회개시켜 천국에 들어가는 성도를 만들어 내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람들을 시켜서 정죄하고 비판하고 핍박하고 죽일 뿐이다. 그러나 놀라지 말라. 모든 일은 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니 말이다. 복음을 전하다가 받는 고난은 결코 천국에서 우리가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다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은 다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공생애 기간에 제자들을 세상을 파송하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7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 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16~17,21,28~29)" 그렇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니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부지런히 천국복음 및 회개를 전하는 사람이 되어보자. 

 

 

2022년 06월 29일(수)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21) 복음전파자의 진짜 자격기준은 무엇인가?(행5:12~24)_2022-06-28(화)
https://youtu.be/zUgq1NsaP40 [혹은 https://tv.naver.com/v/27621173 ]

 

1. 초대교회가 복음을 전파할 수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는가?

  오순절 성령께서 강림하시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도들에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첫번째 사건은 오순절날에 일어났다.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받기를 기도하였을 때에 강한 바람같은 소리와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되자 모두가 방언을 말하게 되었고, 이때 이 소리를 듣고 찾아온 15개국 사람들은 자기나라의 말로 방언을 듣는 일 곧 방언통역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신비하고도 말이 안 되는 일에 어리둥절하고 있었을 때, 베드로가 일어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무려 3,000명이 회개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두번째 사건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가다가 나면서 못 걷게 된 사람을 고친 사건이 있었다. 초자연적인 능력이자 창조의 기적이 일어난 거이다. 그러자 베드로는 그 일로 몰려든 자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그러자 다시 새로 5,000명이 믿게 된다. 그리고 세번째는 교회 안에서 일어난 아나니아와 삽비라 즉사 사건 및 사도들의 치유, 축사 사건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즉사사건을 보면, 그 일을 통해 베드로는 과거의 일을 환상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과 천사와 귀신을 본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자 사람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길 거리에 몰려들었으니 인신인해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므로 남자들의 무리들과 여자들의 무리들이 합류하게 되었다. 그렇다. 세 번의 복음전파 사건을 보면, 첫째는 성령의 은사인 방언과 방언통역이 나타난 것이고 , 둘째는 병을 치유하는 능력이 나타난 것이며, 셋째는 과거를 환상을 보고 현재를 영안으로 보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교회의 부흥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결국 복음전파의 결정적인 계기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성령의 은사였음을 알 수 있다. 

 

2. 예수께서 하신 사역과 사도들이 행한 사역을 비교해보면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 이 지상에서 행한 일들이 있다면 그것은 딱 3가지다. 그것을 세리였던 예수님의 제자 마태는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라고 기록하였다. 이는 예수께서 힘썼던 3대 사역이 교육과 천국복음전파와 치유사역이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고스란히 제자들에게도 이여져서 오순절이후 사도들도 역시 이 3가지 일을 병행하면서 복음을 전판다. 그러나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왜나하면 초대교회가 예수께서 복음을 전파하셨던 그 방식을 그대로 따라갔기 때문이다. 즉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되, 병자들을 치유하고 귀신을 축사하며, 이 일을 기이하게 여기어 몰려든 사람에게 성경말씀을 풀어서 전파했기 때문이다. 

 

3. 오늘날 교회의 복음전도 사역은 과연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는가?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교회도 예수께서 행하셨던 복음전파 방법과 우리들의 복음을 전파하는 방법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는 초대교회 사도들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현상이 거의 사라지고 없다. 회당에서 가르치듯 교회가 성도들을 가르치고 있으나, 초대교회에게서 일어났던 2가지 사실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복음을 전파하기는 하고 있지만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는 복음 곧 천국복음이자 회개복음을 전파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초대교회처럼 초자연적인 현상과 기적이 거의 안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성령의 은사나 치유사역 그리고 축사사역은 배척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오늘날의 복음전파의 모습은 예수님과 비교해 본다면 1개는 똑같지 진행되고 있지만, 나머지 2가지는 행하지 않고 있으며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면 이단 삼단하면서 배척하고 있다. 그럼 과연 이러한 반응과 태도는 과연 성경적이며 합당한 것인가?

 

4. 이러한 사도들의 복음전파 방식을 가장 싫어하고 시기하고 배척했던 자들은 누구였는가?

  그런데 이러한 복음전파 방식을 가장 싫어하고 시기한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대제사장을 비롯한 제사상 그룹인 사두개인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활도 없고, 영도 없고, 천사도 없다고 하면서 그것들을 도무지 안 믿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행23:8). 그랬다. 그들은 영적인 것은 다 믿지 않았고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실제 일어나는 일은 다 영적인 일이었다.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그러나 자기들이 과거에 결의해서 통보한 말이 있었기에, 그들은 사도들이 병자를 고치고 표적과 기사들을 행하면서 예수님을 증언하자마자 곧바로 사람을 보내어 사도들을 옥에 가두어버린다. 그렇지만 그들이 아무리 가두어놓으려한다고 할 지라도 하나님을 능가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날 밤, 한 주의 천사를 보내어 그들을 옥에서 꺼낸 뒤에 다음날 또 성전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도록 명령을 하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날밤 사도들이 옥에서 탈출하는 장면을 본 자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분명 경비와 파숫꾼이 서 있었고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산헤드린 공회 의장과 그와 함께 있던 자들이 공회를 소집하고, 이스라엘의 원로들인 장로들까지 모아서 그들을 다시 취조하려고 옥에 사람을 보냈다. 하지만 하속들이 가보니 옥은 비어 있었고 사도들이 성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란 그들은 "이 일이 장차 어떻게 될 것인가?"하면서 이 모든 되어진 일들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하였다. 

 

5. 복음전파자가 갖추어야 할 진짜 자격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상의 사실들을 통하여 복음전파자가 진짜 갖추어야 할 자격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가 있다. 그것은 첫째로, 학벌이나 교육정도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학벌이나 교육정도로 따진다면 산헤드린공회의 정식회원인 바리새인들이 아마 최고가 될 것이다. 오늘날로 치자면 이들은 아마 대학원 수준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식랍비학교의 전 과정를 마치고 거기에서 합격해서 바리새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많이 배운 대학원생들에게 복음을 맡기지 아니하고 초등학생 정도에 불과하는 갈릴리 사람들을 복음전파자로 세워주셨다. 그것은 복음이 학벌과 교육정도자가 복음전파자의 자격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둘째로, 신분이나 지위 권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신분이나 지위 권력을 가지고서 따지다면 아마도 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원만큼 높은 지위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신분이 좋고 높은 자들을 복음전파자로 세운다면 이들이 첫번째 대상에 포함되겠지만, 우리 주께서는 대부분 어부들로서 지위가 높지 않고 오히려 낮은 사람들을 데려다가 복음전파자로 세우셨다. 이것은 신분이 높거나 권력을 가진 자라고 해서 복음전파자가 응당 되는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세번째 자격인데, 그것은 셋째로, 복음전파자는 성령충만한 자요 기도 많이하고 회개 많이 한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로 과연 어떤 자드이 마가 다락방에 모여서 성령충만을 받고 방언을 말하게 되었는가? 그들은 오직 기도에 전념했을 뿐이다. 어떻게 되어서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를 치료할 수 있었는가? 역시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그렇게 한 것이다. 그렇다.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가 생활화되어 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는 과연 어떻게 되어서 환상을 통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과거에 한 일을 알고 있었으며, 그들 속에 악한 영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가? 역시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환상을 보고 영안으로 사람 속에 들여다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 역시 기도하되 회개하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날 성도들이나 교역자들이 영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기도하지 않으며, 또한 회개하는 데에도 거의 시간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2022년 06월 28일(화)

정병진목사

 

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사도행전 강해(20)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비극적인 최후, 무엇 때문이었는가?(행4:32~5:11)_2022-06-27(월)

https://youtu.be/RgEZUk9qAak  [혹은 https://tv.naver.com/v/27621090 ]

1.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비극은 무엇 때문에 발생한 것인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예루살렘교회의 초기 성도들이었다. 그런데 교회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그들이 그만 급사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러나 성령의 강력한 운행하심으로 인하여 아무런 소요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두려움이 임하여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 깨끗하고 정직한 삶을 살기로 결정하게 된다. 대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무엇을 잘못했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급사를 당한 것인가? 그것은 예루살렘 초기 공동체가 유무상통하는 교회여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자신의 재산을 팔아 사도들에게 위탁하고 있었는데, 그중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 땅을 팔아 사도들에게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부부가 땅을 판 값의 일부만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면서 땅 판 값의 전부를 낸 것처럼 속였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 부부를 치셨고 그들 부부는 거짓말을 한 즉시 그 자리에서 급사하고 말았다. 

 

2. 왜 예루살렘교회는 자신의 재산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았는가?

  베드로와 요한이 풀려나고 예루살렘교회가 복음 전파의 문제를 놓고 간절히 기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즉시 응답해 주셨다. 모인 곳의 땅이 진동한 것이었고, 모두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더욱 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살아계셔서 역사하고 있다는 믿음들이 강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예루살렘교회의 구성원들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함께 쓰고 자기의 재물을 자기 라 하지 않고 나눠 쓰게 되었다. 그리고 사도들의 큰 능력으로 인하여 주 예수의 부활에 관한 복음 전파가 힘있게 되었다. 그러자 자기의 밭과 집을 가진 자들은 그것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그것은 그 재산의 처분을 사도들에게 모두 맡긴다는 의미였다. 그러자 사도들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그것을 나눠 주었다.

 

3. 구브로 태생의 바나바가 한 일은 무엇인가?

  그런데 그때였다. 구브로 태생의 '요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그도 자신에게 있는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둔다. 그는 레위인으로서 마가 요한(마가복음의 저자)의 삼촌이었다. 그때 사도들은 그를 가리켜 '바나바'(위로의 아들)라고 이름을 따로 불렀다. 왜냐하면 그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행11:24). 바나바는 이후 예루살렘교회 공동체의 중간 정도의 지도자로 급부상하게 된다. 그리하여 얼마 뒤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지자 그는 그곳에 선교사 겸 담임 교역자로 파송된다. 그러자 그는 고향 다소에 있는 사울을 데려다가 같이 목회하였는데 그때 성령님의 지시로 인하여 둘이 함께 소아시아에 복음을 전파하러 떠난다. 이것이 바로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이라는 것이다. 

 

4.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의 재물을 바칠 때에 왜 베드로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일까?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예루살렘교회의 초기 멤버였다. 그런데 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것을 주님께 바치기를 원했다. 그런데 재물에 대한 욕심을 다 내려놓지 못했던 모양이다. 부부는 서로 상의하여 재산의 많은 부분을 땅 속에 묻어 두고는 일부만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둔다. 그러자 베드로가 아나니아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네 마음에 사탄이 가득하여 네가 성령에게 거짓말한 채 그 땅값 얼마를 횡령했느냐"(행5:3). 그들은 땅값 전부를 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부를 낸 자가 되고 싶어했다. 이는 아마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기들이 신앙이 있는 사람인 척하려는 마음이 있었 않았나 싶다. 그렇다면 그가 아내와 더불어 땅값 많은 부분은 감추고 일부만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둔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을까? 그것은 첫째, 위선적인 경건 때문이자, 둘째, 허황된 명예심 때문이며, 셋째, 왜곡된 경쟁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한 마디로 예루살렘교회에서 자기의 이름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 곧 공명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남편도 먼저 죽어 나갔고 이어 3시간쯤 뒤에 똑같이 그의 부인인 삽비라도 거짓말하다가 둘 다 고 만다. 그럼, 이들의 죄는 무엇인가? 첫째로, 거짓말을 한 죄이다(이것은 제9계명을 어긴 것이다), 둘째는 도둑질한 죄다(이것은 제8계명에 해당한다). 셋째는 그는 재물과 명예와 자신의 이름에 대한 욕심 곧 탐욕의 욕심을 품은 죄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 부부의 사망을 허락하셨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그때 예루살렘교회가 처음으로 교회를 시작하는 시점인 만큼, 교회가 거룩과 순결을 유지해야하였기 때문이다. 

 

5. 그리스도인들이 흔히들 범하고 있는 거짓말의 죄는 왜 조심해야 하는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거짓말 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때로는 상대방을 굳이 화나지 않게 하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자기의 삶에 대한 정당 방위나 또한 헌신을 강조하기 위해 사건을 과장하거나 부풀려서 거짓말을 하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래도 되는 것인가를 생각을 들 때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내주해 계시는 성령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도 자주 거짓말을 한다. 그럼 우리는 나중에 어떤 결과을 얻게 되는 것일까? 그것에 대하여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말씀은 우리 매우 정신차리게 한다. 왜냐하면 엄청난 징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거짓말의 결과는 총 3가지로 나타나는데, 첫째는 죽어서 그의 영혼이 새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계21:27). 왜냐하면 거짓말하는 자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거짓말하는 자에게 꾸준히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회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성 밖으로 쫓겨나 거기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계22:15).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자도 있을 것이다(계21:8). 성도들이여, 거짓말하지 말라. 그러나 거짓말도 오직 한 가지 외는 있다. 그것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거짓말하는 경우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결단코 거짓말 하지 말라. 정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을 때에는 "내가 거짓말하기 싫으니, 나에게 묻지마세요"라고 하면서 넘어가기를 바린다. 거짓말의 죄는 우리가 죽은 후에 우리의 구원 문제와 상급 문제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2022년 06월 27일(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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